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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이후 첫 인터뷰]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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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중
댓글 1건 조회 1,844회 작성일 12-07-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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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대해 겸허하면 결국 화해할 수 있어”
[침묵 이후 첫 인터뷰]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민중의소리 / 이정무 기자 / 2012-07-11)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5월 2일에 시작된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이 전 대표는 스스로 ‘침묵의 형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두 달 가량 인터뷰 요청에 묵묵부답해 왔던 이 전 대표를 지난 8일에야 신림동 자택에서 만났다. 단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얼굴은 다소 핼쑥했지만 표정은 예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인터뷰는 고 박영재 당원의 장례식을 제외하면 이번 사태 이후 첫 발언이다.

이 전 대표는 인터뷰가 있었던 8일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이 전 대표의 지방 일정은 당직 선거에 후보로 나선 강기갑 비대위원장 측으로부터 ‘선거운동’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강 후보 캠프의 박승흡 대변인은 ‘침묵의 형벌을 계속해 줄 것’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영향 탓인지 인터뷰 이후에 이 대표 측에서도 가급적 늦게 대담이 공개되길 요청해왔다. 복잡한 해석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오늘(11일)에서야 기사가 게재된 이유다. 이 대표 측의 요청을 감안하여 일체의 요약 없이 전문만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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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양지웅 기자

- 박영재 당원의 장례식에서는 먼발치에서 뵈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분들이 이 대표를 찾아와 많이들 우시더라고요.

= 다들 아픈 경험을 한 것이니까요. (울고 나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위로를 많이 받았지요.

- 이번 인터뷰는 5월 13일 이 대표께서 스스로 ‘침묵의 형벌’에 들어간 이후 처음입니다. 계기가 되었던 중앙위에서의 폭력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 중앙위에서의 안타까운 일. 누가 그걸 의도했겠어요. (침묵) 국민들이 보시기에, 또 누가 보더라도 실망스러운 일이지요. 사태가 그렇게 길어지고, 또 갈등이 증폭되고 결국 충돌이 빚어졌지요.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도의적 책임,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변명이나 이유를 내놓을 상황이 못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침묵하고 돌을 맞겠다고 한 것이지요.

- 당시 이 대표께서 트위터에 올린 표현은 “저는 죄인이다. 어제 제가 무릎 꿇지 못한 것이 오늘 모두를 패배시켰다”라는 것이었습니다.

= 5월 7일 공청회를 하고 나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어요. 우리가 통합을 하면서 이른바 ‘55:30:15’(통합에 참여한 세력들의 지분을 의미)로 대의기구를 구성했지요. 그런데 그 의미는 통합의 주체 그 누구도 숫자로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5월 2일 이후 모든 게 표결이 되었어요. 5월 12일의 중앙위원회도 그렇게 될 것이 분명했지요. 저는 당 대표였지만 사실상 어떤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저의 지적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다 말씀을 드렸지요. 그렇게 하고 나니까 절망하게 되더라고요. 당이 어떤 상황으로 가게 될지는 다 정해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날(중앙위가 있던 5월 13일) 아침에 행사장이었던 일산 킨텍스를 가다가 되돌아왔어요. 검은 색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일산으로 향했습니다. 진실은 가려지고 표결만 남은 상황, 이제 당이 장시간 갈등구조로 가게 될 텐데, 그것에 대해 당 대표로서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요. 중앙위 회의가 끝날 때까지 석고대죄 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있을까? 솔직히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하면 당원들이 더 격분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못했지요. 한편으로는 이미 제가 당 대표로서의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또 제가 동의할 수 없는 안건을 부의장석에 앉아서 처리하거나 반대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고, 그래서 대표직을 내려놓고 나온 것이지요. 당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면 안 될 것 같아서 짧게 인사만 하고 나왔지요.

- 이 대표가 이석한 것을 놓고 폭력 사태를 이미 예견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 (침묵) 충돌이 일어난 것에 대해 많이 놀랐어요. 모두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지요. 당시 회의 진행에 항의하고 싶은 당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제가 더 적극적으로 극한적 상황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어요. 제가 13일에 올린 글은 그런 의미였습니다.


“믿을 겁니다. 믿지 않고 어떻게 함께 가겠어요”

- 지금 통합진보당의 당직 선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나온 이야기들 중에는 그 날의 사태에 대해서 ‘당권파’ 중의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그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저예요. 몇 월 몇 일에 일어난 사건만이 아니라, 비례경선 결과를 발표한 시점부터 그 때까지 온 갈등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또 당내의 의사가 표출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저에게 있습니다. 말로서 사과가 필요하다면, 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제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있어요. 그 사태가 있은 후에 박영재 당원이 몸에 불을 붙이셨고 떠나가셨어요. 통합진보당의 출범을 정말 기뻐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왜 중앙위에서 분노를 표출하셨을까? 그것도 당의 지도부에 대해서... 저는 우리 당을 이끌어 온 지도부라면 그 마음을 한 번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아쉬움이 있으신 것이지요. 제가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을 해보겠습니다. 사실 통합진보당의 출범에는 이 대표와 유시민 대표 사이의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두 사람의 신뢰가 없었으면 성사되기 힘든 일이었지요. 방금 이 대표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지만 실망스럽거나 서운한 마음이 서로에게 있을 것 같습니다.

= 아까 이야기를 조금 더 드리자면... 제가 ‘침묵하겠다. 매를 맞겠다.’고 한 건 그 때까지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 제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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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양지웅 기자

- 알겠습니다. 당시 상황을 좀 벗어나서 그냥 좀 더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통합진보당의 갈등이 계속되니까 여기저기서 ‘그러기에 왜 통합을 했냐?’는 푸념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 통합진보당을 만든 것…글쎄요. 유시민 대표께서는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추진한 것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는데, 당에는 당의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대표로서 저는 제 역할을 했지요. 물론 많은 분들이 함께 애쓰신 것일 테고요. 제가 통합을 처음 논의할 때 즈음에 유 대표께 확인한 것들이 있어요. ‘이 당은 한 번 만들면 절대 갈라져서는 안된다’는 것. 진보의 분열에 대해 너무 아픈 기억이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있고, 국민들에게 있다, 이것에 동의하시냐? 이렇게 여쭤보았었지요. 또 하나가 있었는데, 앞으로 당에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더라도 이 당의 주인은 노동자, 농민이라는 것이었지요. 저는 유 대표께서 어느 정도 공감을 하셨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5월 3일에 유 대표를 마지막으로 만났어요. 분당을 생각하시는 거냐고 여쭤봤지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을 책임져 주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했어요.

- 이른바 ‘당권거래설’이 거기서 나온 건가요?

= 며칠 뒤에 신문에 꽤 크게 실렸어요. 제가 무슨 ‘거래’를 일삼는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통합을 일구었던, 그리고 총선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협력해서 당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지분을 나누거나 무슨 권한을 이리저리 주고받는 게 아닌데... 온전히 책임을 지고 또 돕는 문제인데 하여간 잘 이야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헤어지면서 생각을 했어요. 이미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도 너무 달랐고, 해결방법에 대한 생각도 차이가 컸어요. 어쩌면 아주 적대적으로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지요. 제가 마지막에 나오면서 ‘유 대표님을 또 믿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두 달간 침묵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는 사태가 좀 정돈이 되겠지요. 그런 때가 되면 더 넓게 더 유연하게 더 포용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

- 명확한 답을 하시기 어려운 건가요?

= 믿을 겁니다. 믿지 않고 어떻게 함께 가겠어요.

- 그 이야기는 그 쯤 하겠습니다. 사태의 진상이라는 점에서 이제 어느 정도 알려질 것은 모두 알려진 것 같습니다. 2차 진상조사 특위의 외주를 받아 시스템의 로그를 분석했던 김인성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뺑소니 사건’이라고도 했지요. 물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게 인터뷰의 중심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대표께는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처음 ‘총체적 부실. 부정’이라는 발표가 나왔을 때 진보진영의 상당한 인사들이 ‘당권파는 그럴만해’라는 인식을 보여줬습니다. 그건 왜 그랬다고 보시는지요?

= 제가 언젠가 언론 인터뷰에서 ‘경기동부의 실체를 모른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지요.(웃음) 제가 당 대표를 했는데 왜 그런 말을 안 들어봤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당 대표로 있던 기간에, 이를테면 당직을 맡고 있지 않은 분이 또는 공식직책을 가진 분들이 ‘어떤 정파가 이렇게 결정했으니 따라 주셔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일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게 일하지 않았어요. 이른바 정파, 정파와 정파 사이에서 대표를 맡은 게 아니니까요. 최고위원들, 시도당위원장들과 역할과 책임을 나누어 대표직을 수행했습니다. 물론 그 분들과 나눈 대화의 깊이가 부족했다는 점은 반성합니다. 더 깊이 대화했더라면… 특히 통합 이후에 더 깊이 대화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지요.

당권파가 욕먹을 짓을 했다, 이런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제가 당에 들어왔던 2008년 이전 일들이 대부분이에요. 제가 당에 들어와서 어떤 정파, 그게 당권파든 아니든, 어떤 정파가 문제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느낀 적이 거의 없었어요. 대표가, 최고위원회가 결정을 하는 데 어느 정파가 바꾸라고 해서 바뀔 수가 있겠습니까? 진상조사위원회에도 말씀을 드렸는데, 선입견을 갖고 또 옛날 경험을 마구 섞어서 보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입견에서 벗어나 온전한 판단을 하기에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상처를 받은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보수언론이 ‘배후’가 있다는 식으로 공격한 것도 영향을 끼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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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양지웅 기자


“진실에 대해 겸허하면 결국 화해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 하지만 이 대표가 ‘경기동부의 얼굴 마담’이라는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습니다.

= 제가 당 대표로 일하면서 오래전부터 당에서 일해 온 분들과 늘 의논을 하면서 일을 했어요. 제 견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 의견을 듣고 ‘저 판단이 옳다’는 생각이 들면 말을 바꾸기도 했지요. 대표의 권위? 또는 행동의 일관성 같은 걸 왜 유지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럴 경우 일부러라도 한 발 떨어져서 다시 생각을 했어요. 그럴 때 제 판단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매번 정치적 판단이 필요할 때 고심해서 했지만, 늘 함께 논의하는 자세를 지키려고 애를 썼지요. 이게 저의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려진 판단은 저의 판단이고 책임이지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진다는 것, 그건 결국 판단을 도중에 바꾸게 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대표로서의 자각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정치인 개인의 판단이 중요한, 그리고 일제히 그에 따르는 기성정치에서 보면 낯설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여론주도력을 가지고 있고, 인지도가 있는 정치인들은 자신의 말에 얽매이죠. 같이 일하는 분들과 논의를 해서 자신의 판단을 바꾸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저는 그게 꼭 옳은 것이라고만 보지는 않습니다. 이미 내린 판단조차도 한발 떨어져 볼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당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드린 질문들은 다 두 달 전부터 궁금했던 것이었습니다. 워낙 인터뷰에 응해주시질 않으셔서(웃음), 그리고 두 달이 흘렀습니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에 응하신 것은 이제 하실 말씀이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겁니다.

= 처음에는 참 막막했어요. 신화에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서 온갖 불신과 의혹, 이런 것들이 나왔다고 하잖아요. 우리 당에서도 판도라상자가 열린 것이지요. 우리 당에 적대적인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는 것들.(침묵) 이런 게 당내에서 쏟아져 나왔죠. 하나하나 대처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대표직에 있을 때에도.

그런 것들이 이제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잖아요. 제가 5월 초에, 그러니까 막 하루가 멀다 하고 뭔가가 튀어나오던 시절에, 조준호 대표께 물어봤어요. 왜 그러셨는지. 그랬더니 조 대표께서 ‘주민번호가 같은 사람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동원된 유령당원이 되겠지요. 그게 그 이후에 언론 인터뷰로 다 나왔어요. 물론 다 해명이 되었지요. 온라인 선거에서 무죄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유죄 혐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소명이 가능하다는 김인성 교수의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또 다른 여러 가지 사실도 알려졌지요.(침묵)

현장 투표, 저는 이른바 투표 용지가 붙었던 일은 어떻게 해도 부정일 것이라고 최근까지도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2차 조사를 해보니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소명이 되었어요. 판도라의 상자에 담겨있던 불신과 의혹은 오해와 억측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게 드러났습니다. 이 진실에 대해서는 서로 겸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불신의 밑바탕에 뭐가 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실에 대해 겸허하면 결국 화해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난 두 달간 그런 변화가 있었고, 그래서 저도 다시 입을 열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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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양지웅 기자

- 이른바 ‘팩트’에 관해서는 이 대표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제 와서 비례 당선자들의 사퇴 없이 과연 수습이 가능하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설사 모든 사람들이 ‘그 때 우리가 판단 실수를 했어’라고 하더라도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 아닐까요?

= 통합진보당의 출범을 자신의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당원 한분을 잃었어요. 그 동안에.(침묵) 5월 4일인가요? 전국운영위를 했던 날. 그 때 음... 이런 느낌이더라고요. 내가 화형 당했구나. 정치적 인간으로서, 다시 무엇인가 영영 할 수 없게 된 상황. 이제는 다시 무엇인가를 기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거구나. 이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아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판단을 했었어요. 이석기 김재연 두 분의 의원도 같이 화형대에 끌려갔지요. 고통스러웠어요. 두 분도 그랬을 것이고요.(침묵) 이제 더 고통이 필요한가요? 미래를 기약 없이 내려놓는 것은 글쎄요, 저 말고 또 필요했을까요? 더구나 두 분 의원의 경우엔 당이 만들어낸 일 때문이에요. 당이 적대하는 세력에게 먹잇감으로 내 준 일이지요. 그 분들의 멍에를 벗겨드릴 의무가 저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 최근에 단식을 마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뭔가 맺혀있는 건 여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 박영재 당원이 돌아가시기 나흘 전에 단식을 시작했어요. 열흘 쯤 하고 지금은 복식 중입니다. 단식을 한 건 살려고 한 거예요. 그냥 있으면 정말 죽겠더라고요. 제일 아팠던 게 비난과 욕설이 아니었어요. 그건 제가 ‘매를 맞겠다’고 한 것이고, 제 책임도 있는 것이니까요. 제일 힘들었던 게 ‘장래가 창창한 사람이 왜 그러냐,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국민들 편으로 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언젠가는 설명을 드릴 수 있는 날이 올거야, 한 시간의 설명이 아니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때가 올거야, 하고 생각을 했어요. 그냥 참을 수 있을 거라 믿었지요. 그런데 당 상황이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고, 통합진보당이 어려우니까 야권연대도 안 될 테고, 그러면 정권교체도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단식을 시작했어요.

박영재 당원 돌아가시고 그 날 밤 조사를 썼어요. ‘정권교체 못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써야 하는데, 정말 그렇게는 못 쓰겠더라고요. 어렵다고 일 안 한 거 아니니까, 상황이 좋을 때만 일한 거 아니니까… 약속은 지켜야겠다, 하려고 했던 일은 해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억지로 조사를 썼어요. 박영재 당원이 땅 속에 묻힐 때까지는 정말 많이 울었는데, 하관하고 흙 덮고 나니까 마음이 바뀌는 거예요. 저는 제 마음속의 죄책감을 박영재 당원이 가져가 주신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포기 못 하게…

- 진보개혁 쪽 정치인들이 ‘집에 간다’는 말을 자주 하지요. 정치 그만두겠다는 말인데, 이 말이 욕심이 없다는 좋은 의미로도 쓰이거든요. 이 대표께서는 ‘집에 간다’는 말을 안 하시지요. 제가 3년 전 인터뷰 때도 질문을 했던 것인데, 그 힘든 정치를 왜 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당시에 이 대표께서는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대답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 진상조사 보고서 나오고, 제가 진실을 찾겠다고 버티고 있을 때 그 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계 은퇴를 생각했어요. 아니 (내 생각과 무관하게) 정계 은퇴로 이어지겠구나 생각했어요. 정치 말고 뭘 할까 생각도 했었지요. 언제 무엇을 다시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 않고 정치라는 길에 들어선 거고, 또 다른 기대를 해 본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당원들과 함께 만들었던 기대, 믿음 이런 걸 다 버린 거잖아요. 절망했지요.

중간에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런 게 정치야?’하는 생각.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당원 정보도 넘길 수 있다는 게 드러났을 때… ‘정말 안 하고 싶어, 지긋지긋해.’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원래 저는 그게 싫어서, 진보정치는 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잖아요. 우리는 노동자 농민이 나서서 정치하는 건데, 그 분들이 ‘정치9단’이 될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옳고 그른 것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지, 공작이나 타협이나 그런 것 가지고 정치를 하면 노동자들은 영영 정치 못해요. 그런 거 하지 말자고 시작한 건데 거기서 지쳐서 나도 떨어져 나가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반복하고 있어요.

이정희 전 대표는 이때부터 한참 ‘버벅거리’다가 자신에게는 여전히 ‘고통에 대한 책임감’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가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것은 국민의 몫이니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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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님의 댓글

작성일

우짜다가 유시민이 이정희 같은 사람과도 척이 지게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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