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상일박사(전 한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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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상일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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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먹이를 먹는 동안에도 한 놈은 반드시 망을 보고 있다. 그런데 대한 민국 국민들은 지금 올림픽 메달 소식에 목을 메달고 있다. 이 와중에 적이 쳐들어오면 고스란히 앉아서 당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올림픽에 국민들의 눈길을 돌려놓고는 무시무시한 작당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서울중앙지검에 공안3부를 신설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안3부가 무엇인지 알자면 두 말 할 것 것 없이 박종철의 죽음을 생각하면 된다.
민주통합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7일 법무부의 서울중앙지검 공안3부 신설 검토에 대해 국회 정론관에서 현안브리핑을 갖고 “한상대 검찰총장이 작년 8월 취임 일성으로 종북·좌익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때 아닌 소리를 하더니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이 현실화되는 모양새”라며 “공안부서의 확대는 검찰 조직의 불필요한 비대화를 불러, 과잉수사.정치수사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서울중앙지검에 기존 공안 1.2부 외에 집회.시위와 인터넷상 국가보안법 위반을 다루는 공안 3부 설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안 1부는 국가보안법 위반과 선거법 위반을, 공안 2부는 노동.학원 사건을 맡고 있다.(통일뉴스 8월 7일)
한겨레 신문은 MB정부 ‘빅브라더’ 행보(8월 5일자)라고 했다.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얼굴 없는 잔인무도한 독제자를 두고 하는 말의 대명사이다. 그러면서 오웰이 예언한 1984년이 정확하게 적중한 곳이 바로 북조선이라는 데는 이구동성인 같다. 그러나 지금 지구촌은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 미래에 정말로 1984년 같은 비관적 디스토피아가 실현되고 기다리고 있다면 그 곳을 피해 어디든지 가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가장 그러한 의미의 유토피아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반대이다.
지금 세계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뒤 늦게 놀랍다 할 정도로 적중해 가고 있다. 영국 제국 경찰로 근무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얀마에서 자란 조지 오웰은 1948년에 ‘1984’ 을 썼다. 오웰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를 겨냥해 이 소설을 썼다고 했지만 이 예언적 소설이 적중한 곳은 공산권이 아니고 최첨단의 정보산업으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과 주제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미래 예측도 적확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이 소설의 주제를 ‘빅브라더 Big brother'로 본 데서 오웰이 구소련의 스탈린이나 레닌이 바로 그라고 보아 왔다. 구공산권이 무너지자 이제 마지막 남은 북과 북의 지도자들이 다름 아닌 ’빅브라더‘ 라고 점찍고 오웰의 예언이 북에서 완벽하게 실현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제는 빅브라더가 아니고 ‘텔레스크린’이다. 개인의 방 안과 거리는 물로 인적이 없는 들판이나 그 어디에도 설치 돼 있는 것이 텔레스크린이다. 쉽게 말해서 CCTV이다. 남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와 여주인공 쥬리아는 당에서 금지하고 있는 남녀 간의 사랑을 인적이 없는 들판에서 나누다가 텔레스크린에 잡혀 그만 쥐들로 살을 파먹게 하는 형을 받고는 죽고 만다는 것이다.
오웰이 소설을 쓸 당시는 막 컴퓨터가 등장할 무렵이었다. 그 때 까지만 하여도 CCTV나 휴대전화 같은 것으로 개인의 정보가 노출되고 감시당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웰의 형안은 미래 사회가 지금과 같은 전산화와 정보화 가 될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의 도래를 확신했던 것이다.
오웰이 이 정치 소설을 쓴 이유가 당시 미얀마가 사회주의 사상이 지배적이었고 미얀마가 공산주의와 불교 사상을 일치 시키려 노력 하던 때이고 보면 그가 겨냥한 미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를 겨냥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보아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소설이 겨냥한 대상은 빗나갔다.
개인의 사상과 자유가 철저하게 통제되고 감시 받고 사방에 CCTV까 설치 돼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기 때문이다. 구글회사는 얼마전 ‘구글맵스 코디네이터’(GMC)를 출시하였다. 직원들의 전화기에 이 장치를 하면 5초 간격으로 직원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미국 최대 대형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반스 앤 노블스는 e북 사용자들의 취향을 실시간 분석하는 기계를 개발하여 독자들의 독서 취향을 조사하여 회사 운영에 이용하겠다고 한다.
프로노를 누가 읽고 보고 있는지도 추적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불온서적을 읽고 있는지도 현지 추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종북주의자들을 색출해 내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말이다.
오웰은 이러한 전체주의 국가의 이름을 오세아니아라 했고 그러한 사회를 ‘영사 English Society’ 라고 했다. 이러한 이름들로 보아 그가 차라리 서구 자본주의 사회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소설을 잘 못 이해해 왓다는 말이다. 소설의 주제는 빅브라더가 아니었고 텔레스크린이었다.
다시 말해서 소설 1984년의 주인공은 빅브라더도 윈스턴 스미스도 아니고 텔레스크린이다. 서경에는 사람이 골방에 있어도 지켜보는 자가 있으니 항상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에 대한 사자성어가 ‘CCTV’ 이다.
누가 앞으로 더 북한 사회를 두고 1984년의 사회라고 할 것인가. CCTV같은 것이 가장 없는 곳이 바로 북녘 사회이다.
앞으로 첨단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북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같지는 않을 것이다. 구글사나 반스 앤 노블사같이 자본주의 첨단을 달리는 회사들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바로 돈을 어떻게 하면 많이 벌 것인가 하는 데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 중심’이 아니고 돈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어 인간을 통제하는 이유도 권력의 집중과 권력의 집중을 통해 자본을 최대한 축적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된 ‘연가시’를 보라. 제약회사가 돈을 벌기 위해 100만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가면서 까지 신약 팔아먹으려 한 악덕 자본가들을 고발하는 영화를 보라. 사람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웰의 1984년과 함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역시 미래 정치 소설이다. 인간을 알파, 베타, 감마 등급으로 태어나도록 유전자 조작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 계급은 태생적으로 유전인자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버리면 인간 사회에 계급은 운명적으로 고착되고 만다.
정규직과 비정규적으로 태어 날 때부터 결정을 해 버리면 노사문제나 계급투쟁 같은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서 초기에 광우병 파동으로 잠시 대규모 군중 동원이 가능했지만 점점 그것이 불가능해 지는 것을 경험 했을 것이다.
서울 광장은 개방 되었지만 청중 동원은 옛날 같지 않다. 그 이유는 시위하는 군중들을 체증하는 기술이 최첨단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 도중 발 한 짝이라도 도로에 떨어져 걸어도 이것이 체증이 되어 300만 원 이상의 범칙금이 날아온다.
누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누가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가? 인터넷 공간에서 개인 사생활은 노출 될 대로 노출되고 있다. 과연 우리를 그렇게 하는 것이 빅브라더인가. 아니다. 히틀러도 그 어느 독제자도 군중을 통제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그러나 텔레스크린이 먼저이고 빅브라더은 그 다음이다.
이명박대통령은 첨단기술에 의한 체증 기술에 톡톡한 재미를 본 인물이다. 그는 지금 불안하다. 그의 측근들이 다 잡혀 들어 가 있는 마당에 그의 은퇴 이후가 여간 불안하지 않다. 그는 심리적으로 보호 장치벽이 필요하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완벽한 텔레스크린을 가지 빅브라더가 되고 싶어 한다. 1984년 까지는 빅브라더는 있었어도 텔레스크린이아직 미비하였다. 그래서 오웰의 예언은 약간 늦추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안3부의 부활은 이명박대통령에게 시의 적절한 조치이다. 대통령의 머리 속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사람’이다. 사람 잡는 데 물 불 안 가려 왔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모든 국민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삼고 싶은 충동을 지금 그는 강력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텔레스크린을 갖춘 빅브라더라고 자처하고 싶어 한 것이다.
이에 반해 북과 북의 지도자는 사람 중심 사상에 투철하다. 앞으로 어떤 기계 기술도 사람이 주인이 되어 그것을 사용하고 이용을 하지 그 반대는 아닌 사회가 북조선일 것이다. 서양의 산업 혁명 이후 인간은 자본의노예가 된지 오래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최첨단 정보 산업화 기술은 자본가가 자본을 축적하고 그 자본으로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여건이 그 어느 때 보다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헌법 1조를 아무리 소리쳐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자본이 빅브라더가 되었고 정보 과학 기술이 텔레스크린을 양산하고 있다.
앞으로 인류가 북을 따라하지 않으면 멋진 신세계는 인간을 유전자 조작을 하여 태어나게 할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이러한 미래 디스토피아 사회로부터 출구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조선이라는 나라뿐이라고 본다. 텔레스크린없는 사회 CCTV가 철거된 사회가 바로 홍길동이 그리던 율도일 것이다.
앞으로 인간들이 CCTV 를 제거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것이 받아드려 지지는 않을 것이다. 제거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 이유는 미국이 총기를 제거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총은 공격용인 동시에 방어용이기 때문이다. 총기의 위협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것도 총기이기 때문이다.
들판에도 산골짜기에도 CCTV가 작동되는 곳에 살면서 인간은 매순간 범인 같은 정신 상태로 살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CCTV는 강도들로부터 자기를 지켜 보호 해주는 것이라고 감사해 하면서 말이다. 이런 정신 착란 환각 상태가 진정한 의미에서 ‘멘붕’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도 나도 멘붕이 되어 가면서 남이 그렇다고 비난하고 있다.
앞으로 두고 보아라. 지구촌의 인구들이 북조선으로 몰려 들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 예측해 본다. 사람을 하늘 같이 여기는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오직 조선 땅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 북조선에로의 인구 유입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빅브라더가 문제가 아니고 텔레스크린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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