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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와 답은 결국 현장에/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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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민
댓글 0건 조회 1,675회 작성일 12-09-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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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 106,164명이 받아보고 있습니다.
약 1시간 전 · 
  •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크게 우려했던 가을 태풍 산바가 강릉 앞바다로 빠져나갔다는 소식입니다. 산사태로 인해 전국에서 2분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45만 가구가 정전이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아직 모든 피해가 다 파악되지는 않았겠지요. 모쪼록 모든 분들, 큰 피해 없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 번, 태풍 볼라벤으로 인한 피해 농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낙과 구매 운동을 펼쳐주신 시민 여러분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제게는 큰 감동이자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서울시가 지역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도 잘 살펴주시고, 다시 한 번 현장을 돌아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행정의 힘은, 그리고 모든 문제와 답은 결국 현장에 있습니다. 지난주였죠. 화요일, 11일부터 13일까지 해당 실국의 여러분과 해당 산하기관 여러분, 전문가 분들, 복지관 선생님과 정신과 선생님 분들과 해당 시민 단체 여러분과 함께 임대주택단지에를 다녀왔습니다. 갔습니다. 현장에서 임대주택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분들의 문제와 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다루었던 지역에는 부러 가지 않았습니다. 부시장님께서 다녀오시기도 하였고, 자칫 그 분들의 삶의 문제가 시장의 홍보용 일정이 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3일간의 임대주택 청책 투어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습니다. 때문에 이 글에서도 구체적인 지역 이름은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13일 마지막 날에는 하루 어느 댁에서 자고 왔습니다. 밤늦도록 지역 주민 여러분과의 인상적이었던 대화들이 이어졌고 아침이 되어 돌아 나오는 길, 귀가 잘 들리시지 않는 아저씨께서 폐지를 모으고 계셨습니다. 가까운데 팔면 40원, 멀리서 팔면 더 받는 것 같던데 멀리가기 힘드니까 그냥 가까운데 팔고 계셨어요. 그런 것을 우리가 조금만 조직화 시키면 좋은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아저씨께도 적지만 안정적인 수입과 자긍심을 함께 드릴 수도 있겠지요.

    우리나라는 일 년에 50만호의 주택을 지으면 10만호는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나라입니다. 또한 서울시 산하 기관이며 임대 주택 건설을 담당하고 있는 SH 공사의 경우 관내 330개의 단지와 13만 4천호의 가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거 복지 센터는 약 800여개 정도이지요. 그런데 정작 그 안에 거주하시는 주민들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종합적인 제도는 미비한 상태입니다. ‘이곳은 장애인 수용소입니다.’라던 주민의 호소가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정신적 아픔을 나누는 상담소에 오셔서는 ‘법적 수입보다 한 달에 4만원을 더 벌게 되자 기초 수급자에서 제외되어 차상위 계층이 되었고 정부 지원이 끊겼습니다. 차라리 장애인 판정을 내려주십시오’라고 울며 호소하신다던 아픈 지적 앞에서는 해드릴 수 있는 어떤 말도 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빵과 영혼’이라는 책에는 ‘오랜 기간 빵이 부족하면 영혼의 결핍이 올 수밖에 없다’던 상담 업무를 하시는 정신과 전문의의 말씀도 제게는 긴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다중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임대주택 정책입니다. 다양한 수렴의 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요. 이것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령 개정부터 개별적 사례 관리까지 너무나 다양한 이슈들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해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면 실마리가 잡힐 겁니다. 연말까지는 서울 시내 임대 주택 단지에 대한 종합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여러 해당 실국과 전문가들, 주민 여러분과 토론하고 협력하겠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가장 훌륭한 인력은 활동적인 통장님들이셨습니다. 복지사 여러분께서 혀를 내두르실 정도의 지식과 열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가가호호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계셨습니다. 이분들의 의견을 모으고, 이분들에게 보다 전문적인 교육과 지원을 해드리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실질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노노케어 (건강한 어르신들께서 다른 어르신들을 돌보는 매칭형 복지 사업) 말씀하셨는데, 일본에 가서 보니까 주부들로 이루어진 복지 생활 협동조합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 될 텐데요. 홀몸노인(홀로 사는 노인)의 댁에 도시락 배달을 해드린다든지, 전등을 갈아드린다든지, 자녀분께 전화를 해드린다든지, 시간이 되면 시장도 같이 가는 일종의 공동체적 돌봄 서비스였습니다. 이러한 제도를 우리가 응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먹거리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단지 끼니를 때우는 것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밥상에서 생활에 필요한 영양분과 열량 뿐 아니라,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우리를 배웁니다. 독일의 <경계 없는 식당>이나 그것의 우리 버전인 <문턱 없는 밥집>과 같은 개념의 식당들이 임대 주택 단지에 들어서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식당 체인 사업체들이라면 공공과 50%씩 부담하여 적지만 일정한 수입도 보장 받고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일을 추진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최근 제가 만나 뵈었던 상담 전문가 선생님께서는 ‘wounded healer’라는 개념을 알려주셨습니다.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 그 상처를 가장 잘 치유한다는 명제에 입각한 것입니다. 정규 교육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같은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라면 가능합니다. 아파본 사람이 가장 잘 간호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일 것입니다. 임대주택 내에는 알코올 중독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를 극복하신 분들, 가능한 같은 단지 내의 분들을 모셔 조금만 교육과 지원을 해드리면 그 어떤 상담사보다도 이 문제를 섬세하게 잘 해내실 거라 생각합니다.

    또 오늘 아침에 단지 내에서 뵈었던 몸이 불편하신 한 분은 전동차를 타고 계셨는데, 예전과 달리 충전 비용이 지원이 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이 단지 주민의 48%가 몸이 불편하시다 들었는데, 이 정도 된다면 전동차를 수리하고 충전에 편의를 제공하는 간단한 기구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헤아려보아야겠습니다.

    복지관이나 관리 사무소의 개편과 개혁도 우리의 중요한 토론 주제였습니다. 복지관의 경우는 복지 개념이 조금 더 달라지면 좋겠습니다. 입고 먹고 하는 것을 제공하는 전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해결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 지역의 자원들을 연결해서 자족적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렇게 지속가능한 삶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처음에는 정말 태산처럼 어려운 일지만 일단 만들어지면 저절로 돌아가고 성장할 것입니다. 관리사무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외부 용역으로 사업이 이루어진다 들었는데 주민 내부에서 가능한 조직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 역시 많은 토론을 해야겠습니다.

    어떤 분께서는 몇 십 억짜리 제안을 주셨습니다. ‘임대 주택은 시설물 관리 유지 차원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도배와 같은 설비를 교체하는데요. 어느 댁은 깨끗이 관리하여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잘 관리한 집에는 시설물 관리 비용의 얼마를 격려금으로 주십시오. 그러면 집도 마을도 더 깨끗해지지 않겠습니까’ 라는 제안이었는데, 정말이지 꽤 많은 서울시 예산이 절약되겠지요? 그렇다면 이 제안을 해주신 아주머니도 인센티브를 받으셔야죠. 물론 이 글에서 약속을 드릴 수는 없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임대주택은 곧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이 쏟아질 것이다, 영구 임대 주택 아파트 입주자에 배점표를 개선해 달라, 장애인과 고령자로만 나뉘니 마을이 죽어간다. 젊은 부부나 젊은 싱글 인력들이 입주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 달라 하셨습니다. 이 역시 혁신적이고 실용적인 생각입니다. 여러분과 토의해 나가겠습니다.

    정말이지 시민 여러분께 임대 주택에 관해 말씀 드리고 여쭤보고 싶은 내용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페이스북에 올리기에는 너무나 긴 글이 되어버렸지요. 이쯤에서 그만 적고 대신 올 연말까지는 우리가 함께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종합적인 대안을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채무 감축에 임대 주택 건설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소명을 받은 우리 실국 관계자, 산하 기관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께 인간이 아닌 신이 되시라는 주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이 일을 해내야지요. 저도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지금처럼 늘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3일간의 임대 주택 현장 확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던 주민들의 의견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며 토론하던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 ‘우리를 교육시켜 주십시오’, ‘인문학 강좌를 들어보니 참 좋았습니다’, ‘폐교 위기에 놓인 작은 학교를 지켜주십시오’와 같은 이야기들은 큰 감동이자 우리가 힘을 합하면 어떤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집단 공동 주택은 민주주의와 인권, 무엇보다 나의 존엄과 우리의 행복을 배워나가기에 최고의 장소입니다. 일상에서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자치단체는 물론 중앙정부에서도 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시민 여러분께서, 함께 해내실 수 있습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 막는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가난은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금만 지혜를 더하고 힘을 합치면 어렵게 사시는 분들의 삶을 돌볼 수는 있습니다. 지난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1위 자살률의 국가입니다. 게다가 그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살아주십시오. 모쪼록 함께 살아주십시오.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주십시오. 오래오래 살아주십시오. 

    오늘도 바쁜 하루가 지났습니다. 생각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참, 지난주에 제가 섀릴 샌드버그 COO도 만났지요? 페이스북에서 마크 주커버그 다음으로 영향력이 높은 인물입니다. 샌드버그는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 재무부 비서실장, 구글 부사장을 지냈고요. 2008년 페이스북 COO로 영입돼 1년 만에 적자에 허덕이던 페이스북의 수익화를 성공시키고 지금의 페이스북을 만든 인물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상냥하고 힘 있는 인상이었습니다. 프로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미인이셨고요. 함께 원순씨 서울이야기를 진행했는데요. 소통을 넘어선 사회 혁신의 도구로서의 SNS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재인식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장기기증의 뜻을 모을 수 있는 도구로서의 페이스북, 자살 방지 시스템으로 실시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페이스북의 모습은 서울시의 혁신에도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페이스북 이용자가 무려 10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까요.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이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그 중에 특히 샌드버그씨가 이야기 해준 이야기가 제 생각에 남습니다. 페이스북 경영자로서 느끼는 가장 큰 소회는 전 세계적으로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투명함’의 중요성을 이야기 했는데요. 큰 울림이었습니다. 가슴 떨리는 본질이지요. 저 역시 백 번 동감합니다. 시정의 장으로서 시정에서 ‘다양한 진실의 힘’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투명함의 저력’을 키워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민 여러분, 어디 계시든, 페이스 북에 계시든, 임대주택에서든, 모두 평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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