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통합진보당에 무슨 일이 있었나? (블랙박스는 닫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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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는 닫혀야 한다
페친 여러분 중에는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라는 월간 신문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마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듯합니다. <르 몽드>의 국제판과 <한겨레신문>의 기자들이 편집한 국내판이 어우려져 만들어진 월간신문입니다. 그런데 그 논조는 <한겨레신문>과 사뭇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이번 9월호에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 언론에서는 최초로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의 심층 서평이 실린 것은 이 신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 기사를 읽고 기고자인 유영초 님과 통화했고, 제 페이스북에 전재해도 좋다는 허락을 흔쾌히 받았습니다. 또한 <르 몽드>의 편집장인 이인우 님에게서도 아주 호의적인 허락을 받았지요. 이인우 편집장님께서는 많은 분들이 <르 몽드>의 정기독자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해주셨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호의가 가신다면 그렇게 해주셔도 좋은 신문인 듯합니다.
유영초 님은 <숲에서 길을 묻다> <바다사자의 섬>을 썼고, 녹색문화운동 단체인 풀빛문화연대와 산림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로 계십니다.
저는 아무 언론에서도 다루어주지 않은 이 글을 읽고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인터넷판에 게시되기 전인 이 글을 링크하지 않고 졸나 타이핑했습니다.
다음은 ‘블랙박스는 닫혀야 한다’의 전문입니다. 좀 길더라도 인내심 있게 읽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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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는 닫혀야 한다>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블랙박스라니! 무슨 비행기 사고도 아니고, 대체 진보에 무슨 사고가 났기에 블랙박스까지 열어야 했을까?
블랙박스라는 게 알다시피 한번 추락하면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사망하는 비행기처럼 그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장치이다. 물론 요즘같이 흉흉한 인심에는 블랙박스를 교통사고 증거 확보용으로 많이 장착하고 다닌다.
비행기의 진짜 블랙박스는 이름과는 달리 발견하기 쉽게 빨간색이나 오렌지색으로 도장되어 있다.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역시 발견하기 쉽게 검은색 바탕에 진한 오렌지색 ‘박스’로 디자인되어 있다.
다만, 불행히도 이 블랙박스에는 어디론가 진보하는 비행(飛行)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그릇된 행동으로서의 ‘비행’(非行) 기록과 처참한 분석이 담겨 있다.
‘2012년 통합진보당에 무슨 일이 있었나?’ 이것이 책의 부제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죽고, 백주대낮 통합진보당 게시판에 아직도 서로 씹고 뜯고 때리고 할퀴는 일이 그치질 않는지, 그 내막을 밝히는 일종의 ‘고발서’라고 해야 할까?
흔히 내부 고발자들의 이야기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내용이 적나라하고 진실성이 있을수록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 철저히 차단당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그 이해 관계자들, 이른바 ‘진보’를 정치적 브랜드로 삼은 정치인, 이와 결탁한 언론과 지식 권력자들에 의해 철저히 차단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한 정당이 처참하게 일그러질 정도의 사고가 일어났고 그 와중에 사람이 죽었다면, 그 중대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면, 이렇게 ‘따돌림’ 당할 리 없다. 오죽하면 책 서문에 지난 엄혹했던 시절 언론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때 출판사와 서점들이 그 역할을 했음을 상기시키겠는가.
책이 출간되자마자 초판이 절판되고, 한 달도 안 되었는데 3쇄를 찍어내고, 지역별로 북 콘서트가 열리는 이 책을 소개하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혹자는 그럴 것 같다.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은 구당권파이거나 종북파이고, 책이 팔리는 것은 종교적 집단과 같은 구당권파들이 사재기를 하거나, 또 이 책을 통해 이정희의 재기와 반전을 노리는 정치적 술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콘텐츠가 부실하고 진실하지 않은 책 한 권으로 반전을 일으킬 만큼 독자들과 ‘실체적 국민’은 어리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믿거나 말거나, 필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통합진보당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필자들은 페이스북에서 형광을 발하는 반딧불이와 같은 존재였다. 정치적으로 매장당한 이정희의 무덤 위에서 반딜불이들이 진실을 찾아 하나둘씩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서 드라마틱한 부분은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이 제1장 김인성의 블랙박스이다. 컴퓨터 법의학(Digital Forensic)이라는 다소 낯선 분야를 통해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 혐의 관련 온라인 진상조사의 결과를 밝혀내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선거 부정과 관련된 다양한 편견을 단번에 바꿔버린다.
마치 DNA 검사를 통해 범인을 잡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스토리를 구성했다. 이야기 전개방식도 디지털 포렌식 실습이라는 형태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사태를 판단해나가도록 한다.
그는 “1차 진상조사보고서는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감추고 상대의 부실을 모아, 총체적 부정인 것처럼 위장한 잘못된 보고서이다”라고 결론짓고, “이 사회는 지금 비이성적인 상태로 보인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를 외면하는 것은 진보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된 언론의 문제, 지식인의 문제를 망라해 다루고 있다. 필자 김갑수는 구당권파에 대한 진보언론의 편파적 보도가 이른바 조중동을 뛰어넘는다는 점을 일부 진보 언론의 기사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한편 경선 부정에 관한 진실 규명의 우선에 논점을 맞춰 의결을 피력함으로써, 구당권파의 처지를 옹호해온 유명 언론인으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라 할 수 있는 시사평론가 유창선의 페이스북 단문도 전재되어 있다.
6장에는 ‘천개의 눈들’이라고 할 만한 페이스북과 트위터 사용자들의 짤막한 기록을 정리해놓았고, 그 어록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록의 자료집으로 시건일지와 이정희의 보고서가 실려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사태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글은 이병창과 김대규가 제기한 진중권 등과 같은 지식인들이 취하는 종북문제와 관련된 허위의식의 문제, 그리고 이시우와 김귀옥이 쓴 종북 논쟁의 역사적, 철학적 맥락과 배경, 전략을 분석한 글이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을 사회적, 역사적, 철학적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짚어내는 김영종의 글은 가히 압도적이다. 삶의 깊이와 애정 없이 정치공학적으로 만들어내는 글과는 차원이 다른 지적 성찰과 사유를 하게 한다. 그의 이정희에 대한 사유를 근거로 내린 주문이다. “광야에서 홀로 분투한다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세상을 향한 재생의 장소라는 걸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 이런 사명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윤숙의 48일간 농성기는 이번 사태를 쉽게 간파하게 한다. 진실 규명 후 책임이라는 단순한 요구는 묵살되었고, 제명과 꼼수를 통해 장애인 명부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승계를 파탄내고, ‘국민 판사’ 서기호가 국회의원직을 줍게 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생태적 종다양성의 역사가 자연 속에서 진보의 역사이고, 사회적 종다양성 획득의 역사가 인류 진보의 역사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는 사회적 종다양성 획득의 역사를 보여주는 진보의 징표이다. 통합진보당은 그것을 가차 없이 자른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무겁고 비장한 것은 역시 고 박영재 당원에 대한 글이다. “영등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책을 한 장도 읽지 못했는데 벌써 도착했네요.” 어쩌면 사건현장에서 치여 죽은 불나방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 그의 분신을 두고 광신도쯤으로 치부하는 이른바 진보 지식인들도 다수 있었다.
흔히 교통사고가 나면 우선 뒷목을 움켜쥐고 나와 우격다짐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목격되는 문화다. 그런데 사고가 났는데 차량이 얼마나 흠집이 나고 찌그러졌는지 먼저 살피는 것이 가장 저질스러운 일이지만 부끄럽게도 이게 가장 현실적인 ‘국민의 눈높이’일 것이다.
과연 ‘국민의 눈높이’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사고현장’에서 사람이 치여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보라는 차량 엔진이 망가졌다’는 둥, ‘이렇게 진보가 찌그러져서야 팔리겠느냐’는 둥, 아예 ‘진보는 죽었다’는 둥의 말을 지금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필자 김영종은 이렇게 썼다. “나는 보았고, 천개의 눈이 보았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만큼 많은 눈들이 보게 될 것이다.” 블랙박스는 빨리 닫힐수록 좋다. 그것은 사건의 종결이자 새로운 비행(飛行)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종결은 당사자의 손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다.
페친 여러분 중에는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라는 월간 신문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마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듯합니다. <르 몽드>의 국제판과 <한겨레신문>의 기자들이 편집한 국내판이 어우려져 만들어진 월간신문입니다. 그런데 그 논조는 <한겨레신문>과 사뭇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이번 9월호에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 언론에서는 최초로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의 심층 서평이 실린 것은 이 신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 기사를 읽고 기고자인 유영초 님과 통화했고, 제 페이스북에 전재해도 좋다는 허락을 흔쾌히 받았습니다. 또한 <르 몽드>의 편집장인 이인우 님에게서도 아주 호의적인 허락을 받았지요. 이인우 편집장님께서는 많은 분들이 <르 몽드>의 정기독자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해주셨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호의가 가신다면 그렇게 해주셔도 좋은 신문인 듯합니다.
유영초 님은 <숲에서 길을 묻다> <바다사자의 섬>을 썼고, 녹색문화운동 단체인 풀빛문화연대와 산림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로 계십니다.
저는 아무 언론에서도 다루어주지 않은 이 글을 읽고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인터넷판에 게시되기 전인 이 글을 링크하지 않고 졸나 타이핑했습니다.
다음은 ‘블랙박스는 닫혀야 한다’의 전문입니다. 좀 길더라도 인내심 있게 읽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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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는 닫혀야 한다>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블랙박스라니! 무슨 비행기 사고도 아니고, 대체 진보에 무슨 사고가 났기에 블랙박스까지 열어야 했을까?
블랙박스라는 게 알다시피 한번 추락하면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사망하는 비행기처럼 그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장치이다. 물론 요즘같이 흉흉한 인심에는 블랙박스를 교통사고 증거 확보용으로 많이 장착하고 다닌다.
비행기의 진짜 블랙박스는 이름과는 달리 발견하기 쉽게 빨간색이나 오렌지색으로 도장되어 있다.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역시 발견하기 쉽게 검은색 바탕에 진한 오렌지색 ‘박스’로 디자인되어 있다.
다만, 불행히도 이 블랙박스에는 어디론가 진보하는 비행(飛行)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그릇된 행동으로서의 ‘비행’(非行) 기록과 처참한 분석이 담겨 있다.
‘2012년 통합진보당에 무슨 일이 있었나?’ 이것이 책의 부제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죽고, 백주대낮 통합진보당 게시판에 아직도 서로 씹고 뜯고 때리고 할퀴는 일이 그치질 않는지, 그 내막을 밝히는 일종의 ‘고발서’라고 해야 할까?
흔히 내부 고발자들의 이야기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내용이 적나라하고 진실성이 있을수록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 철저히 차단당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그 이해 관계자들, 이른바 ‘진보’를 정치적 브랜드로 삼은 정치인, 이와 결탁한 언론과 지식 권력자들에 의해 철저히 차단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한 정당이 처참하게 일그러질 정도의 사고가 일어났고 그 와중에 사람이 죽었다면, 그 중대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면, 이렇게 ‘따돌림’ 당할 리 없다. 오죽하면 책 서문에 지난 엄혹했던 시절 언론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때 출판사와 서점들이 그 역할을 했음을 상기시키겠는가.
책이 출간되자마자 초판이 절판되고, 한 달도 안 되었는데 3쇄를 찍어내고, 지역별로 북 콘서트가 열리는 이 책을 소개하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혹자는 그럴 것 같다.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은 구당권파이거나 종북파이고, 책이 팔리는 것은 종교적 집단과 같은 구당권파들이 사재기를 하거나, 또 이 책을 통해 이정희의 재기와 반전을 노리는 정치적 술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콘텐츠가 부실하고 진실하지 않은 책 한 권으로 반전을 일으킬 만큼 독자들과 ‘실체적 국민’은 어리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믿거나 말거나, 필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통합진보당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필자들은 페이스북에서 형광을 발하는 반딧불이와 같은 존재였다. 정치적으로 매장당한 이정희의 무덤 위에서 반딜불이들이 진실을 찾아 하나둘씩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서 드라마틱한 부분은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이 제1장 김인성의 블랙박스이다. 컴퓨터 법의학(Digital Forensic)이라는 다소 낯선 분야를 통해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 혐의 관련 온라인 진상조사의 결과를 밝혀내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선거 부정과 관련된 다양한 편견을 단번에 바꿔버린다.
마치 DNA 검사를 통해 범인을 잡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스토리를 구성했다. 이야기 전개방식도 디지털 포렌식 실습이라는 형태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사태를 판단해나가도록 한다.
그는 “1차 진상조사보고서는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감추고 상대의 부실을 모아, 총체적 부정인 것처럼 위장한 잘못된 보고서이다”라고 결론짓고, “이 사회는 지금 비이성적인 상태로 보인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를 외면하는 것은 진보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된 언론의 문제, 지식인의 문제를 망라해 다루고 있다. 필자 김갑수는 구당권파에 대한 진보언론의 편파적 보도가 이른바 조중동을 뛰어넘는다는 점을 일부 진보 언론의 기사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한편 경선 부정에 관한 진실 규명의 우선에 논점을 맞춰 의결을 피력함으로써, 구당권파의 처지를 옹호해온 유명 언론인으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라 할 수 있는 시사평론가 유창선의 페이스북 단문도 전재되어 있다.
6장에는 ‘천개의 눈들’이라고 할 만한 페이스북과 트위터 사용자들의 짤막한 기록을 정리해놓았고, 그 어록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록의 자료집으로 시건일지와 이정희의 보고서가 실려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사태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글은 이병창과 김대규가 제기한 진중권 등과 같은 지식인들이 취하는 종북문제와 관련된 허위의식의 문제, 그리고 이시우와 김귀옥이 쓴 종북 논쟁의 역사적, 철학적 맥락과 배경, 전략을 분석한 글이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을 사회적, 역사적, 철학적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짚어내는 김영종의 글은 가히 압도적이다. 삶의 깊이와 애정 없이 정치공학적으로 만들어내는 글과는 차원이 다른 지적 성찰과 사유를 하게 한다. 그의 이정희에 대한 사유를 근거로 내린 주문이다. “광야에서 홀로 분투한다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세상을 향한 재생의 장소라는 걸 역사는 웅변하고 있다. 이런 사명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윤숙의 48일간 농성기는 이번 사태를 쉽게 간파하게 한다. 진실 규명 후 책임이라는 단순한 요구는 묵살되었고, 제명과 꼼수를 통해 장애인 명부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승계를 파탄내고, ‘국민 판사’ 서기호가 국회의원직을 줍게 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생태적 종다양성의 역사가 자연 속에서 진보의 역사이고, 사회적 종다양성 획득의 역사가 인류 진보의 역사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는 사회적 종다양성 획득의 역사를 보여주는 진보의 징표이다. 통합진보당은 그것을 가차 없이 자른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무겁고 비장한 것은 역시 고 박영재 당원에 대한 글이다. “영등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책을 한 장도 읽지 못했는데 벌써 도착했네요.” 어쩌면 사건현장에서 치여 죽은 불나방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 그의 분신을 두고 광신도쯤으로 치부하는 이른바 진보 지식인들도 다수 있었다.
흔히 교통사고가 나면 우선 뒷목을 움켜쥐고 나와 우격다짐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목격되는 문화다. 그런데 사고가 났는데 차량이 얼마나 흠집이 나고 찌그러졌는지 먼저 살피는 것이 가장 저질스러운 일이지만 부끄럽게도 이게 가장 현실적인 ‘국민의 눈높이’일 것이다.
과연 ‘국민의 눈높이’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 엄청난 ‘사고현장’에서 사람이 치여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보라는 차량 엔진이 망가졌다’는 둥, ‘이렇게 진보가 찌그러져서야 팔리겠느냐’는 둥, 아예 ‘진보는 죽었다’는 둥의 말을 지금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필자 김영종은 이렇게 썼다. “나는 보았고, 천개의 눈이 보았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만큼 많은 눈들이 보게 될 것이다.” 블랙박스는 빨리 닫힐수록 좋다. 그것은 사건의 종결이자 새로운 비행(飛行)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종결은 당사자의 손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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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님의 댓글
배포 작성일이런 책들이 좀 더 널리 배포되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