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별의 세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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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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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충돌이 일어난곳은 51사전연에서도 제일 산세가 험하고 교통이 불리한 솔개령초소였다. 지난 시기의 군사지도들에는 850.1고지로 표기되여있었으나 어느 병사시인이 인민군신문에 발표한 《옛 싸움터에서》라는 시에서 산봉우리를 사나운 소리개로 표현한 때부터 솔개령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단장 림철은 충돌이 끝나자 솔개령으로 차를 달렸다. 도중에 위생차를 만났다. 제일 심한 부상자를 군단병원으로 후송하는것이였다.
림철은 차를 세우고 위생차에 올라가보았다. 대위령장을 단 군의와 처녀간호원 둘이 중상당한 전사곁에서 경례를 했다. 피비린내와 소독수냄새가 한데 엉켜 페부를 찌르고 눈이 쓰리게 했다.
나어린 전사가 백지장같이 하얘진 얼굴을 돌리며 그를 바라보는데 웬일인지 미소를 그리려고 애쓰는듯 했다. 그 얼굴이 낯익어 보였다.
《동무이름이 뭐드라?》
《심- 현오- 입니다.》
가까스로 입술을 놀려 대답하고는 또 웃으려 했는데 그 모양이 눈물겨웠다.
심현오!… 비로소 생각났다. 부대에 배치되여오자 기어이 민경중대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던 전사. 리유는 한가지였다. 외할아버지가 비전향장기수라는것이였다. 그런데 어쨌다는건가? 하고 대렬부장이 소리쳤다고 한다. 우리 부대엔 할아버지가 항일투사인 전사도 있고 락동강에까지 갔다온 로병의 자손들은 셀수 없이 많다. 그렇다고해서 그들모두를 민경중대에 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얼굴이 동그랗고 가늘게 좁혀뜬 두눈에 늘 미소가 새물거리는 이 전사는 기어이 그를 꺾고야말았다. 무슨 특별한 수단이나 웅변으로 감동시킨것도 아니다. 그저 《비전향장기수》라는 말만 무슨 신임장마냥 계속 내대였다고 한다.
림철은 그의 왼쪽 옆구리에서 붕대를 흥건히 적시고있는 검붉은 피를 살피며 입술을 악물었다. 그의 두볼도 검붉어졌다. 마침내 군의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신음소리처럼 말했다.
《내 차에 옮겨 타오. 빨리 병원으로!》
얼마후 그는 솔개령으로 올랐다. 키가 꺽두룩한 솔개령중대장이 달려와 보고를 했다. 림철은 대충 손을 들어 답례하고 곧장 교통호쪽으로 걸어갔다.
삭도가 올라온 경사면에 아담한 병실들이 산턱을 깎고 들어앉아있었다.
손바닥만해보이는 운동장도 있는데 그 한쪽에 롱구대를 세워놓았다. 여기서 림철도 중대군인들과 같이 롱구경기를 한적이 있다.
전대미문의 롱구경기였다. 하나밖에 없는 롱구대와 기다란 줄을 매놓은 롱구뽈, 다섯발자국만에 투사를 하는 경기로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시합이라고 할수 있다. 뽈에 매놓은 줄이 거치장스럽긴 해도 그마저 없으면 아찔한 계곡으로 굴러내린 뽈을 영영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 림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말없이 적진을 한눈에 볼수 있는 감시소에까지 걸어갔다.
격전이 휩쓸어간 전장을 묵묵히 둘러보는데 초소장이 쌍안경을 내밀어주었다.
불에 타고 끄슬린 나무들이 창대같이 서있는가 하면 산중턱에까지 굴러내린 대구경기관총과 탐조등의 잔해들이 눈앞에 바투 안겨왔다. 알싸한 그을음내가 바람에 실려왔다. 크고작은 포탄구뎅이들을 에돌며 무엇인가를 날라가고있는 적병들의 후줄근해진 몰골도 낱낱이 볼수 있었다.
림철은 쌍안경을 넘겨주고 처음으로 중대장을 향해, 그의 강마른 얼굴을 면바로 쳐다보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럼 중대장, 일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말해보오, 자세히!》
중대장이 한걸음 나서며 서둘러, 마치 그 누가 자기의 말을 중단시킬가봐 겁내듯 숨이 차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비무장지대의 우리측 순찰통로와 적들이 접근을 불허한 군사분계선표식물 그리고 우리가 표식물을 바로 세우려고갔을 때 갑자기 사격을 퍼붓던 적초소(그것들은 이미 우리의 포화력에 산산이 날려가버렸다.)의 위치, 우리 순찰조원들이 은페하고 총격전을 벌리던 개활지대의 홈타기며 바위들을 팔을 내뻗쳐 하나하나 가리켜보였다. 림철은 그가 입을 다물자 눈앞에 드리워있는 솔가지를 꺾어 마구 짓씹기 시작했다.
그후의 일은 사단장 림철이 사단폭풍을 부르는것으로 이어졌다. 급보를 받자 먼저 지휘소대로 뛰여 들어간 그는 솔개령의 중대장에게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무슨 말이 그리 길어? 적들이 총질을 한다면서 전화통만 붙들고있으면 어떻게 해?!… 당장 전체 중대화력으로 답새기오. 당장!》
그리고는 솔개령전면의 적초소들에 포화를 퍼붓게 했다. 군단은 물론 총참모부에 보고하는 일은 참모장에게 일임했었다. 지휘감시소에 달려올라가 적들이 반발하면 더 무서운 일격을 가하려고 포대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있었다.
그때 그는 우리가 지금껏 최대한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정전협정을 준수해왔다는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충돌이 확대되면 전쟁으로 번져질수 있다는것도 생각지 않았다. 불은 불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였다.
적들이 직승기를 띄워 흰기를 내들며 사격을 중지해달라고 방송으로 간청하지 않았더라면 징벌은 계속되였을것이다.
림철은 또 중대장에게 중대가 진지를 차지하는데 걸린 시간과 사단에까지 보고하는데 걸린 시간을 따져물었다.
갓 면도를 한 그의 퍼릿한 턱이 흥분으로 하여 실룩거렸다.
《중대장, 동문 5분이란 시간을 전화기에 매달려있었소. 5분, 5분을 잃었소!》
《?!…》
중대장의 강마른 얼굴을 쏘아보며 그는 준렬하게 말을 이었다.
《동무가 잃어버린 5분때문에 부상자들이 났소. 적들이 총을 쏴대는데도 전화통만 붙들고있는 사람이 최전방민경중대를 어떻게 지휘하는가?!…》
분노를 억누르는 그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매몰스러웠다. 해쓱해진 얼굴을 실룩거리며 한마디 한마디를 토하는데 마치 파편이라도 뿌려치는듯 했다. 중대장의 얼굴은 컴컴하게 질려있었다. 사단장이 무엇을 결심했는지 그는 벌써 짐작하고있었던것이다.
한시간후 그는 사단지휘부에 도착했다. 그간 총참모부에서 전화기에 불이 일 지경으로 충돌사건의 전말을 캐물었다고 한다. 그는 우에서 오는 전화는 참모장이 맡아달라고 부탁한후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머리를 좀 식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정치위원이 무슨 종이장을 들고 뒤따라 들어왔다.
《사단장동무, 이걸 좀 봐주시오.》
사단장보다 10년이나 우인 정치위원은 체소하고 가무잡잡한 사람인데 동작은 느리고 성미도 느슨했다. 그가 느릿느릿 말할 때엔 화가 치미는것을 겨우 참을 때가 많았다.
《그게 뭡니까?》
정치위원은 의자를 당겨앉으며 종이장을 책상우에 놓고 손바닥으로 다리미질까지 하고서야 뜨직뜨직 말했다.
《사단지휘부군관가족들로 〈병사들을 위한 날〉을 조직하자는겁니다. 륜번제로 매달 하루이틀씩 군인들의 식생활을 맡아주면 어떨가 해서… 어떻습니까?》
림철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뜻밖의 무장충돌때문에 화끈 달아오른 사단장에게 군관가족들로 륜번제식사당번을 제기해오는 정치위원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림철이 군단내의 사려단장들가운데서 제일 말이 적은 얌전데기라면 정치위원은 자기 급에서 제일 말이 느리고 굼뜬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좋군요.》
림철은 책상우에 접은채로 놓여있던 지도를 펴놓았다. 난 바쁜 사람이니 좀 자리를 떠주시오 하는 명백한 암시였다. 그러나 정치위원은 눈치가 무딘 사람이였다.
《그럼 이대로 집행하겠습니다. 사단장동무네는 매달 첫주 월요일과 세번째주 일요일입니다.》
《예, 예, 좋습니다.》
그래도 정치위원은 자리에서 일어설념을 않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갑을 꺼내였다.
그때 사단참모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총참모부에서 사단장동무가 돌아왔는가고 묻는데 그 어조가 심상치 않다는것이였다. 림철은 지친듯 말했다.
《어쨌든 우에서 온 전화는 참모장동무가 맡아주시오.》
송수화기를 절컥 놓고 책상한끝까지 전화기를 쭉 밀어버렸다.
정치위원이 찌글써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군요, 사단장동무.》
《그 중대장때문에… 또 우에서 자꾸 캐묻는게 리해되지 않습니다.》
《너무도 큰 사건이지요. 아직 군사분계선상에서 이렇게 큰 무력충돌은 없었습니다.》
《화력충돌이지요.》
《예, 옳습니다. 화력충돌… 그런데 상부의 승인도 없이 놈들의 초소 5개를 박살냈으니… 엄중시할수 있습니다.》
《흥!》 림철은 코웃음쳤다. 《엄중시한다… 왜? 누구를?… 이런 경구를 들어봤습니까? 〈모기에겐 연기를 쏘여야 하고 하늘소에겐 채찍을 안겨야 하고 승냥이는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
《사단장동문 경구를 잘못 인용하는군요.》 정치위원이 말했다. 《〈모기에겐 연기를 쏘여야 하고 하늘소에겐 채찍을 안겨야 하고 사람에겐 도리를 따져야 한다-〉 이렇습니다.》
림철은 신중해졌다.
《도리를 따진다?-》
《예, 책임문제가 설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적들은 사건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면서 판문점군사정전위원회를 열자고 벅적 떠들고있다 합니다. 우리의 〈남침위협〉에 대해 대변인담화요 성명이요 하면서 소리방송과 텔레비로 복닥소동을 피운다는데… 이런 사정을 알고 사단장동무가 확고한 주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러니 정치위원동문?》
《나는 사단장동무의 결심이 옳았다고 봅니다.》
림철은 잠시 그의 거무스레한 얼굴을 지켜보았다. 도무지 속을 알수 없는 사람, 그러나 꼭 필요한 사람이다. 림철이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한가지 의논할게 있는데… 나는 솔개령중대장을 제2제대 구분대로 조동시킬 결심입니다.》
《유진국중대장을?》
《그를 잘 압니까?》
《예, 사관시절부터… 주먹이 드센 동무이지요.》
《주먹은 드셀런지 모르지만.》하고 림철은 열을 올렸다. 《그에겐 지휘관들에게 꼭 필요한 결단성이 없습니다. 결단성이 없는 지휘관은 녹쓴 검이나 같다는걸 정치위원동무도 모르지 않겠지요?… 민경초소는 최전방에서도 제1선에 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첫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런데 결단성이 없는 한 지휘관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 그는 제1선중대장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 곧 명령서를 작성할 생각입니다.》
정치위원은 입을 꼭 다물고 손에 쥔 담배가치만 주무럭거리고있었다. 림철이 라이타를 켜주었으나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왜, 정치위원동문 반대입니까?》
그는 무던히도 느리게 입을 열었다.
《정치위원은… 언제든 지휘관의 결심이 흔들리게 해선 안되지요.》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칙적인 의미에서의 립장을 말한것일뿐 지금 사단장의 결심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한것은 아니다. 림철은 그가 말꼬리를 이을가봐 서둘렀다.
《그럼 이 문젠 정치위원동무와 합의한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천천히, 무겁게 일어나더니 문께로 걸어갔다. 문앞에 이르러서야 문득 생각난듯이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군단병원에서 심현오전사의 수술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무엇때문에 이 말을 꺼낸것인지, 그것이 지금껏 론의된 문제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것인지 그의 무표정한 얼굴로서는 알수 없었다.
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이날 정치위원은 솔개령의 충돌때 중상당한 심현오전사의 수술립회인으로 군단병원에 가있었다고 한다.
×
다음날 림철은 총참모부의 호출명령을 받았다.
처음 작전직일관인 대좌 김천수를 만났다. 그는 림철과김일성군사종합대학 동기동창으로서 박격포신같은 림철과는 달리 몸이 가늘고 조개턱을 가진 익살군이였다. 그는 솔개령에서의 무장충돌에 대하여 실은 《로동신문》을 펴놓고 몇번이고 눈밝혀 읽고있던중이였다. 반가운 인사말끝에 그가 말했다.
《이보게 림철, 중부쪽에서 북소리가 요란하길래 난 제꺽 짐작했지. 북잡이가 자넬거라구 말일세. 군사대학에서도 북과 하모니카로 유명하지 않았나. 응?!》
림철은 롱을 할 계제가 못되였다.
《왜 나를 호출했는지 모르나?》
《훈장을 달아주자구 부른것 같진 않네. 북을 때려도 북통이야 꿰지지 않게 쳐야지.》
림철은 그의 재담을 더이상 들어주고싶지 않아 《로동신문》을 당겨갔다.
사건의 당사자로서 무장충돌에 대하여 쓴 보도에 자연히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남조선군사들이 우리 인민군군인들을 향하여 총포사격 감행
〔평양 7월 16일발 조선중앙통신〕
남조선군사들이 전선중부 군사분계선근처에서 엄중한 무장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10시 50분경 사회주의조국의 최전방초소를 지켜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군사분계선표식물 제0607호 북쪽 우리측 지역에서 정상적인 순찰근무를 수행하고있었다.
우리 인민군군인들의 순찰근무상태를 살피고있던 남조선군 무장악당들이 불의에 무반동포와 12. 7㎜ 대구경기관총들을 비롯한 3 060여발의 총포사격을 가하는 무지막지한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이로인하여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심한 부상을 당하였으며 초소건물들이 파괴되였다.
조성된 엄중한 사태앞에서 우리 인민군군인들은 부득이 자위적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었다.
군사분계선상에서 적아쌍방간에는 치렬한 무장충돌이 벌어졌다.
남조선군들의 무모한 무장도발행위는 안팎으로 고립, 배격당하여 최후괴멸의 위기에 처한 김영삼역도가 충격적인 사태를 일으켜 여기에서 출로를 열어보려는 고의적이며 계획적인 도발책동이다.
우리는 이미 군사분계선일대에서 남조선군들이 정상적인 순찰근무수행을 방해해온데 대하여 여러차례 경고한바 있다.
남조선군들은 분별없이 날뛰지 말아야 한다. 만일 김영삼역도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와 인내성을 오산하고 또다시 우리를 반대하는 무장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 인민군군인들은 추호도 용서치 않을것이며 무자비하고 단호하게 짓뭉개버릴것이다.
림철은 부르쥔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 기사의 마지막 글줄은 바로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옮긴것이였다. 무자비하고 단호하게! 짓뭉개버려야 한다!…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깜짝 놀란 김천수대좌가 소리쳤다.
《왜 그러나, 림철. 여기 와서까지 북통을 때리려나?》
림철은 처음으로 소리내여 웃었다.
《우리 당보가 내 북장단을 칭찬했단말이네, 무자비하고 단호하다구!》
그는 자신심이 생겼다. 자기를 뜻밖에 호출한데 대하여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다음날 오전, 그는 작전직일관을 따라 총참모부의 어느 한 방으로 들어갔다. 총참모장과 부총참모장들, 무력부 부부장들인 차수, 대장들이 모여있었다.
이렇듯 엄엄한 좌석에 여태 앉아본 일이 없는 그였다. 어쩐지 전날의 안도감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야릇한 불안과 위구심이 엄습해왔다.
마치 군사재판정에 내세운듯 했다. 금빛의 장령별들과 차수별들이 그를 둘러싸고 렌트겐빛처럼 그의 마음속생각까지 샅샅이 들여다보는듯 했다.
부총참모장이 먼저 솔개령에서의 무장충돌에 대하여 요약해서 개괄했다. 림철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아무리 무서운 일을 저질렀어도 판결을 기다릴 때가 제일 힘들고 괴로운 법, 정작 그 시각이 오면 마음은 평온해진다.
그는 얼마후 여러 사람들의 엄한 질문에도 태연히 대답할수 있었다.
문 사단장동문 포사격을 명령하면서 우리가 수십년동안 정전협정을 인내성있게 준수해왔다는걸 생각해봤소?
답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문 생각하지 않았는가, 못했는가?
답 그런 생각은 없었습니다.
문 그럼 충돌이 확대되는 경우 그 후과에 대해서는?
답 생각지 못했습니다, 차수동지.
문 그럼 무엇을 생각했소?
답 불은 불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오직 한 생각뿐이였습니다.
문 사단장동문 자신의 결심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지금도 믿고있소?
답 그렇습니다. 대장동지!
문 사단폭풍을 부르고 포사격을 명령하면서 왜 보고할 생각을 못했소?
답 그럴새가 없었습니다. 차수동지, 전투에선 순간의 지체가 치명적인 후과를 가져온다고 저는 믿고있습니다.
문 민경중대장을 처벌한것도 그때문이였지?
답 그렇습니다.
문 그를 처벌한것도 역시 옳았다고 믿고있겠소?
답 그렇습니다. 대장동지!
문 그러니 하나도 잘못한게 없구만. 응?
답 …
차수들과 대장들이, 그처럼 엄엄하게 따지고들던 상관들이 머리를 뒤로 젖히며 웃어댔다. 이윽고 총참모장이 일어나 정색하여 말하였다.
《오늘 우리는 그 무슨 사건심의를 하려고 모인것이 아닙니다. 최전선부대를 지휘하는 사단장이 어떤 배심과 믿음을 가지고있는가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동지들, 지금 적들은 우리의 힘과 의지를 시험해보기 위해 갖은 발악을 다하고있습니다. 51사전방의 솔개령충돌사건도 우연한것이 아닙니다. 계획적인 모략이고 도발이였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행군을 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있는 이때, 제일 어려운 이때 우리가 어떻게 나오는가 건드려본것이였습니다.
사단장의 결심은 옳았습니다. 제때에 결단을 내렸고 단호한 징벌을 안겼습니다. 우리 장군님군대의 성격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적들이 벌리고있는 〈남침위협〉소동따위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 어느때든 우리를 건드리는자들은 용서치 말아야 합니다. 무자비하게 철추를 내려야 합니다. 림철동무, 이걸 잊지 마시오. 그러되 또 한가지 명심할것은… 동문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아니라 사단장입니다. 조국의 최전선 관문을 지켜선 사단장!… 그런데 동문 복수심만 앞세웠습니다. 적들의 음흉한 기도를 간파하고 결단을 내릴 대신 오늘 들어본것처럼 보복만을 생각했는데… 이것이 자라면 무모한 객기를 부릴수 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민경중대장을 처벌한것도 옳았지만 그를 떼여버린것은 잘못된 처사입니다. 그렇게 떼여버릴 내기를 하면 누구와 어떻게 싸우겠는가?… 우리 장군님군대의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정신의 근저엔 동지애의 위대한 초석이 놓여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림철동문 자기를 검토하시오. 이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뜻입니다.》
한순간 림철은 전류에 감전된듯 벌떡 몸을 일으키고 굳어졌다. 귀방울밑에서 피가 툭툭 튀는듯 했다. 숙연한 정적, 어느 구석쪽에선가 채칵거리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챙챙하게 울려오기 시작했다.
- 이전글한반도에서 미중 대리전을 치루지 못해 환장하는 윤 정권 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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