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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별의 세계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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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343회 작성일 22-10-26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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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4

그를 사체실에서 들어내가고있었다. 소지들이 마지 못해 팔과 다리를 잡고 장작개비같은 그의 몸을 날라갔다. 파리들이 윙윙거리고 짱- 짱- 하는 철문소리가 스산하다. 살가죽을 지지는듯 한 따가운 볕과 후더운 바람, 이어 절그럭거리는 열쇠묶음, 짱- 철문소리. 그리고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지독한 악취… 참으로 귀에 익고 코에 익고 눈에 익은 그 모든것들이 다시 반복된단말인가?… 그는 죽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꿈도 없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들어가고있는것이다. 웅성거리는 저 소음, 변기통의 냄새, 또다시 여닫기는 철문소리를 나는 들을수 없고 느낄수도 없다.

사람들이 부르는 저 웨침소리도 누군가 다른 사람을 찾는것이다.

《국홍동지!-》

《살아있습니까. 예?》

《김국홍동지, 힘을 내시오!》

드디여 그를 세멘트바닥에 내던지듯 했다.

짱- 하는 철문소리, 철문은 또 얼마나 많은것인가. 멀어져가는 발자국소리, 그를 안아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꺼칠한 볼이 와닿고 뜨거운 눈물이 그의 얼굴에 번져진다.

《진서동지!》

이렇게 그의 본명을 불러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눈을 뜨려했으나 허사였다. 안깐힘을 쓰다가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의 입으로 피방울이 흘러들고있었다. 동지들이 손가락을 깨물어 한방울 또 한방울 넣어주고있다. 그새 그가 있던 호실에 두사람이 더 늘었다. 비좁은 콩크리트바닥에 그를 눕혀놓고 다른 사람들은 벽에 붙어 웅크리고있지 않으면 안되였다.

《정신이 들었소. 동무들, 보시우. 눈시울이 떨리고있단말이요.》

《정말, 살아났소. 기적이요!》

누군가는 다른 방들에 통방하는듯 했다. 웅성거리는 소음이 흘러왔다. 간수가 왔다 갔다 하며 사정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그의 이름은 정규찬이다.

사상범들의 무서운 신념과 의지에 감복하여 몰래 도와나서고있는 사나이였다.

《아무렴 누구라구.》 흐느끼는 목소리의 임자는 류은혁이다.

《진서동지가 그렇게 맹탕 죽을수 없지!… 어떻소, 내 말이 들리지?… 나 류은혁이요. 여기 최하준동지, 안기영동지, 구인철동지도 있소. 다들 얼마나 걱정했다구…. 놈들은 진서동지가 자살했다면서 그걸 리용해서 오랜 동지들을 꺾어보려 했지만… 우린 믿지 않았소. 온 사동이 집단단식투쟁으로 빼내왔소. 죽었든 살았든 당장 옮겨오라구 강하게 들이댔지. 조금만 늦었더라면 어쩔번 했소!》

눈을 떴다. 험상궂게 그리고 처참하게 변한 동지들의 수염끝에 매달린 눈물을 본다. 이들이 그를 살린것이다. 동지들이 굶으며 이를 악물고 빼내왔다. 단식투쟁이 어떤것인지 진서가 왜 모르랴.

진흙덩이도 씹어먹지 않으면 삶을 지탱하기 어려운 최저급식조건에서 그마저 여러 날, 지어 열흘을 굶고나면 그들자신이 죽어버리는 일도 많다. 그렇게해서 동지를 빼내왔다. 죽어버린 김진서를 살려내였다!…

최하준도 다른 새 동거자들도 무릎을 곧추 망치처럼 세우고 그의 머리맡에 앉아있다.

《놈들이 죽었다구 할 때.》 최하준이 말하고있다. 《우린 정말 아뜩했댔소. 그런데 자살이라구 계속 선전하거던. 그러면서 아무리 버텨봐야 못견딘다는거요. 악질빨갱이 김국홍이도 똥물을 퍼먹이니 자살하고말았거던, 이제 너희들도 그렇게 썩어지구말아! 뭐 이러겠지. 우리가 그 말을 믿을것 같소? 천만에!…》

정규찬간수가 살창안으로 입을 들이밀고 떠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진서는 자기의 손에 쥐여주던 싸늘한 메스며 촉탁의사의 애원에 가깝던 목소리를 상기했다. 그때 누가 그것으로 허벅지를 찔렀던지… 어쨌든 놈들은 그가 자살을 했다고 동지들의 억척같은 마음을 짓이겨놓았다. 그를 괴롭히던끝에 죽게 하고는 그 죽음을 다른 동지들을 모욕하고 신념과 의지에 금이 가게 하는데 리용하였다. 결국 그는 잔악하고 간교한 놈들의 미끼로 리용된셈이였다. 그는 미칠듯 한 증오와 회한에 몸부림쳤다.

당장 뛰쳐일어나 사납게 저주하고 목구멍이 찢어져라 하고 울부짖고싶었다. 놈들을 저주하고 자신을 저주하고 닥치는대로 들부시고싶었다. 어쨌든 그는 죽고싶어했던것이다. 그이상 더 삶을 지탱할 힘이 없었고 그럴 의지도 희망도 죄다 잃었었다. 죽음만이 유일한 길이였다. 피할길없는 죽음, 출로는 없었다. 다시 끔찍한 삶을 이어가기가 무서웠다. 그때 누가 메스로 살을 베였든 찔렀든 그는 죽음을 향해 가고있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더냐. 엄연한 사실… 하여 그는 달달 까드라드는 혀를 놀리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그의 가슴에 머리를 숙이며 귀를 강구었다.

《뭐라구? 국홍동지, 이자 뭐라구 했소?》

《그건… 사- 사실이요.》

《사실? 무스게 사실이라는거요?》

《내가… 죽으려 했던… 거.》

《?!…》

한순간 감방안은 침침한 어둠속에 잠겨버렸다.

납덩이같이 무거운 침묵, 누군가 가늘게 소리쳤다.

《아니 그럴수 없소. 국홍동지가 어쩌문…》

《거짓말이지?》 류은혁이 속삭이였다. 《정신잃고 쓰러졌을 때… 우리가 그런 경우를 적게 당했소? 놈들이 무슨 짓인들 안했다구… 진서동지, 다신 그런말 마오. 응?!…》

바로 이 사람들이 끝까지 그를 믿고 필사적으로 구원해주었다. 바로 이들과 같이 《세포결정》으로 끝까지 살며 싸울것을 다짐한 그였었다.

그는 손더듬으로 동지들을 한사람한사람 쓸어만졌다. 고마운 동지들, 순간이나마 죽음을 생각하고 그것을 조용히 기다렸던 이 김진서- 그래서 이미 죽어있던 나를 동지들이 살려주었소. 끝까지 살며 싸우기 위해서!… 가죽만 남아있는 손들이 그를 부둥켜잡고있었다. 참으로 여기엔 뛰여난 영웅도 투사도 따로 없다. 하나의 뜻으로 숨쉬는 사람들, 생사를 같이 하는 동지들만이 있을뿐이다.

《내 다시는…》하고 그는 가까스로 입을 놀리며 속삭이였다. 《동지들 곁을 떠- 떠나지 않을테요. 하- 한순간도… 정말이요!…》

×

한달이 지났다.

진서는 처음으로 류은혁과 안기영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운동시간이였다.

한여름의 태양이 머리우에서 따가운 볕을 쏟아붓고있었다. 강대처럼 말라버린 그의 몸을 지져대고 무수한 바늘침처럼 콕콕 찌르는 해볕아래에 나서니 불에 달군것처럼 머리속이 웅웅거렸다. 그는 눈을 감고 겨우 허해진 몸을 가누고있었다.

최하준이 그에게 풀한줌을 뜯어다 주었다. 저 태양의 빛과 열을 받으며 자라난 운동장의 잡풀, 그마저 없으면 《무한궤도옥살이》를 견디여내지 못한다. 그러지 않아도 비타민결핍증으로 이몸이 다 문드러진 그들이였다.

그는 형언할길 없는 충동과 감격에 겨워 흐르는 눈물과 함께 풀을 씹었다. 야들야들한 잎사귀들은 거의나 통채로 삼키고 풀대만은 천천히 씹고있다. 그마저 씹기 어려웠으나 입술을 우물거리며 그 맛과 향기에 한껏 취하고있다. 잔디는 물론 쐐기풀, 크로바, 쇠뜨기 할것없이 다 제나름의 맛과 향기를 가지고있다. 거기에 태양의 열과 빛을 안은 따사로움과 청신한 활력도 감미를 보태준다. 보통사람들은 알지 못하리라. 세상만물의 생의 원천인 태양의 빛과 열ㅡ 그 순수하고 위대한 혜택을. 그리고 어둠속에서 추위에 떨며 지지리도 길고 괴로운 밤을 새워보지 못하고서는 경건한 감사의 정을 상상조차 할수 없으리라.

그는 풀을 씹으며 삶에 대하여 환희에 넘쳐 생각하고있었다. 삶이란 진정 얼마나 귀중한것인가. 그것을 버린다는것은 또 얼마나 무서운것인가?!… 그만 이 한자리에 가만히 서있다. 경비교도대원들도 그에 대해서만은 례외로 내버려두었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트집을 걸지 못해 몸살이나 있다.

《입다물엇. 어느 새끼가?》

교도관이 악청을 지르건말건 수인들은 귀가 멘듯 묵묵히 《무한궤도옥살이》 그대로인 타원형자리길을 돌고 또 돈다.

《국홍동지.》

진서는 몸을 흠칫하며 눈을 떴다. 상긋한 풀향기에 취해 눈앞에서 걷고있는 사람도 겨우 알아본다. 안기영이 눈짓하며 재빨리 속삭이고있다.

《이자 박영발동지 형님되는분… 국홍동질 만나겠다 하오.》

느릿느릿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거니 보면서 그는 생각한다. 박영발동지의 형이 살아있는가?…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동지는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하던데… 눈앞을 지나는 허리굽은 장기수들, 다치기만 해도 마른 삭정이처럼 부러져나갈것 같은 사람들속에서 누가 만나자는 사람일가 하고 열심히 살핀다. 자리길을 돌며 정신없이 풀을 뜯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비물고인 진흙땅에서는 흙을 뜯어먹기도 한다. 질척해진 흙과 물기에 쪼여진 해빛을 먹는것이다. 태양을 떠나 존재할수 없는 생명, 사람은 물과 공기와 더불어 빛을 마시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한다.

《오고있소.》

이번엔 류은혁이 지나가며 귀띔한다. 아마 어데선가 박영발의 형이 자리길을 바꾸어 이쪽으로 오고있는것 같다. 놈들에게 들키는 날엔 살가죽을 무두질하리라는것을 잘 알면서도 모험을 하는것을 보면 특별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드디여 그가 나타났다. 전날의 호방하고 손아귀센 당일군이였던 박영발동지와 모색이 비슷한 사람이 눈을 끔벅하며 오고있다. 백발늙은이가 된 박영발동지가 불쑥 나타난것만 같다.

사람들의 걸음이 떠진다. 저 앞쪽에서 최하준과 안기영이 잡풀을 뜯는척 자리길을 조금 벗어나며 경비교도대원들의 시선을 끌고있다.

《하정례 알제라?》

진서는 불시로 숨구멍이 막힌듯 했다. 느닷없이 하정례의 이름이 튀여나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목에 걸린것을 삼키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얼마전에 출소했는디. 전향설 쓰구…》

《예?!…》

《나가서 변절자들을 죽이겠다고 했셔라오. 꼭 다시 돌아온다구 진서동지한테 전해달라구…》

그는 말끝을 채 맺지 못하고 지나갔다.

눈앞에서 무수한 불꽃들이 아물거렸다. 온몸이 모래무지처럼 무너져내리는듯 했다. 손에 쥐고있던 풀잎들이 떨어져내렸다. 저 앞쪽 담벽밑에 서있던 버드나무가 능청능청 넘어지고 운동장변두리가 거꾸로 일어서는것을 보았다. 시야에 비껴들던 모든것이, 사람들까지 비뚤서해서 위태롭게 움직이고있었다.

충격이 너무도 커서 한순간 의식까지도 마비된듯 싶었다. 가증스러운 변절자 최동환과의 상면, 엄정독거와 죽음의 선택에 이어 세번째 타격이 가해진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김진서와 제일 인연이 깊었던 하정례가 전향서를 쓰고나갔다. 전향한 자만이 만기를 채우지 않고 형기의 절반만 살면 출소할수 있다. 그런데 하정례가 전향했다는것을 과연 믿을수 있겠는가?… 물론 녀자의 몸으로 남자들보다 갑절 더 곤욕스러웠을것이다. 남자들과 꼭같은 고통과 고독에 또 녀성들만이 겪는 치욕과 생리적극한점을 이겨내기가 결코 헐치 않을것이다.

진서는 교도소에서 한번도 그 녀자를 보지 못했지만 따로 떨어진 녀성사 어데선가 변치않고 싸울것이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그가 알고있는 하정례는 남들과 달랐다. 비록 한때 《망가진 축음기》소리를 낸다고, 너무 독살스럽다고 생각한적도 있지만 언제보나 예리하고 극성스러웠다. 그 녀자는 매를 맞아 죽어나갈지언정 전향은 하지 않을 비수같은 성격이였다. 그래서 진서는 그 녀자를 끝까지 아껴주고 힘껏 도와주었었다. 재귀열에 걸려 죽어갈 때, 지리산에서 놈들에게 발각되여 붙잡히게 됐을 때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진서는 자기를 내던지면서까지 그 녀자를 구원해냈었다. 그런데 그가 전향을 했다고 한다.

사랑을 배반당한듯 한 모진 아픔이 그를 괴롭히였다. 놈들의 전향테로도 이처럼 그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자기가 죽음을 바라던 그때의 일도 상기되였다. 별안간 허탈상태에 빠져 공손히 죽기만을 바라던 그날… 그자신도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던지려하지 않았던가?… 죄책감은 그의 쓰라린 마음을 밤낮으로 게염스럽게 파고들었지만 매번 정신나간것처럼 머리를 흔들군 하였다.

정례, 그게 정말이요? 전향서에 손도장을 누를 때 과연 심장이 떨리지 않았소? 지리산에서 함께 싸우던 동지들이 떠오르지 않던가말이요! 리현상, 박영발, 박종하, 류주목… 그들이 동물 얼마나 아껴주고 사랑하였소. 왜 그랬는지 동무도 잘 알고있지 않소. 불같은 처녀여서, 한번 먹은 마음 꺾이지 않는 미더운 동지여서 그랬던거요. 그런데 뭐 변절자들을 복수한다구? 아니요. 정례! 동문 잘못 생각하구 있소. 그 전향서 한장이 숱한 동지들을 괴롭히게 된다는걸 생각 못했단말이요?…

나도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죽어버리려 했던 일이 있소. 그게 얼마나 용렬한짓인지 요즘 매일같이 생각하군 하더랬소. 그런데 동무까지 전향을 했다 하니 막 미칠것만 같소. 나의 귀중한 동지 하정례가 놈들에게 굴복하였다면 그건 내게도 죄가 있는게 아니겠소. 오래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 동무는 복수만을 생각했드랬지. 마치 개인복수가 삶과 투쟁의 목적이고 전부인것처럼!… 그걸 제때에 바로 잡아주지 못한것이 얼마나 한스러운지… 이제 와서, 한생을 거의다 보낸 오늘에 와서 이런 일이 있다니! 정례동문 자기의 자랑스럽던 한생을 그 전향서 한장으로 지워버렸소. 동지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구 동지들을 모욕하였소. 자기를 제일 사랑해준 동지들을!… 이걸 알기나 하오?!…

낮과 밤에 이어 그 녀자와 격한 어조로 마음속대화를 계속 했는데 어인일인지 정례의 얼굴모습은 단 한번도 생생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마치 하정례라는 가상적인 녀성과 다투고있는듯 했다. 그가 열을 올리면 올릴수록 허울만을 가진 가상적인 하정례는 증을 내고 랭소를 던지며 자꾸만 피하고 달아나버리군 했다.

자기를 정당화하는 수단과 방법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짜 지장을 찍고 우선 살아나가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는것이 더 유익하지 않는가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욕에서 벗어나보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정의와 량심까지 배반했다고는 아직 말하지 말자. 그러나 그것을 버리기 시작했다는것만은 명백하다.

한감방에 들어있는 동지들속에서 하정례를 알고있는것은 류은혁뿐이였다.

그는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하정례는 정말 특이한 녀자이지. 배신자로는 되지 않을거요. 절대 그러진 않아. 하지만… 꼭 후회할거요. 참, 불쌍하겐 됐지.》

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정 생활은 얼마나 많은 피의 교훈을 새겨주는것인가. 한 걸음의 후퇴도 굴복이며 사소한 굴복도 치욕을 가져온다. 한때 스피노자는 말하였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옳은 말이기도 하거니와 극히 위험한 사상이기도 하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하정례에게는 들어맞는 말이지만 그를 추동한 사상은 위험한것이다!…

이렇게 《무한궤도》는 굴러갔다. 소름끼치는 쇠붙이소리를 찌국거리며 날과 달을 짓뭉개고 물어뜯으며 피로 얼룩진 광주, 대전, 대구 등의 암흑세계를 굴러갔다.

겨울이 왔다.

진서는 또다시 배앓이로 고통받고있었다. 차디찬 콩크리트바닥은 그의 살가죽을 물고늘어졌고 어린 아이 팔목보다 가는 그의 다리는 제한몸도 일으켜세우지 못하였다. 인제는 무릎을 세우고 앉을 힘도 없었다. 최하준이 주동이 되여 장기수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을 벌렸다. 1사와 4사에서는 리석훈, 강일범 등이 합세해나섰다.

당시 교도소의 루진처우규정은 감옥에서의 생활정형과 복역년한에 따라 4급으로부터 1급까지 취로(로동할수 있는)권리, 령치금(돈차입), 병보석, 급식조건 등을 점차 완화, 개선했는데 강력범, 파렴치범, 극악범들에까지 적용하면서도 흔히 사상범, 확신범으로 불리운 비전향장기수들만은 제외시키고있었다.

최하준은 강직하고 불같은 성격으로서 리론수준도 높은 조직자형의 인물이였다.

그는 김진서나 류은혁을 통해 지리산빨찌산의 처절한 투쟁을 듣고 깊이 감동되였고 진서네는 그를 통해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성과와 빛나는 래일에 대하여 눈물속에 새겨안군 하였다.

최하준이 감옥안의 비인간적폭행과 부당한 대우를 현 행정법의 제도적, 물리적본질을 폭로하며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고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변절자로 락인되고 증오받던 최동환의 처참한 비극적사연이 알려졌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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