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눈으로 미국 흑인신학을 들여다 본다-유태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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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님의 댓글
고슴도치 작성일
계속이어서...
말컴 엑스의 블랙파워는 “오른뺨을 맞으면 총을 들라”고 웨쳤다. 말컴 엑스의 당연한 웨침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미국 언론은 흑인들이 백인을 향하여 증오로 가득찬 것으로 교묘하게 묘사하여 백인들로 하여금 흑인을 증오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말컴 엑스는 1965년 2월 21일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의 집중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살해를 당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꿈”을 주장했는데 말컴 엑스는 “악몽”으로 쓰러졌다.
비폭력 흑인 해방운동자인 미틴 루터 킹 목사의 운명과 블랙파워를 주장한 말컴 엑스의 운명은 흑인 해방운동 방법론에 있어서 두 사람의 차이점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실은 흑인 해방운동 정신에 있어서 차이점보다는 분명히 공통점이 보다 더 크고 많은 근본적으로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목적으로 투쟁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주의와 말컵 엑스의 블랙파워는 흑인 해방역사의 한 시대적인 과제를 그들의 가슴에 품고 총탄에 쓰러진 동지였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 간 후에 40여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 미국 역사는 흑인 대통령이 선출됐다.
킹 목사의 비폭력주의와 말컴 엑스의 블랙 파워의 념원이 극히 일부 일지라도 조금씩 성취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킹 목사와 말컴 엑스가 꿈꾸었던 흑인의 정신으로 미국의 미래를 심도 있게 깊이 들여다 본다면 흑인들의 꿈과 희망의 성취는 빙산의 일각만도 못한 것으로서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멀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2. 흑인신학의 혁명과 폭력에 대하여
미국의 흑인신학은 단순히 항의가 아니다. 흑인신학은 종교적 양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과 모순되는 백인의 법률을 타파해야할 의무를 느낀다. 그럼으로 백인의 불법적인 억압에 대항하고 불복종하는 것은 흑인신학의 진리에 대한 충성이며 인종차별 사회에서 혁명적인 과업이 된다.
인간의 운명과 민족주의 진로는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미국의 흑인신학이 추구하는 확고한 신념이다. 이 신념을 부인하는 것은 인간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며 종교적으로 타락한 것을 의미한다.
백인에 대한 흑인의 저항은 인간적이며, 종교적이며, 혁명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흑인신학이 혁명적이라는 말은 때로는 강제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흑인신학을 <폭력 신학>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어킨다. 백인이라는 압제자를 타도하기 위하여 흑인신학이 게릴라전이라도 일어킨다는 말인가? 절대로 그런것이 아니다. 그런 말은 백인들이 고의적으로 만들어 악선전을 하는 말 뿐이다.
하지만 만일 피압박자의 목에 백인들이 죽음의 밧줄을 매고 그 밧줄을 잡아 당기 려 하는 긴박힌 순간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를 상상해 보라. 이러한 긴박한 위기에 처한 순간에 반드시 생각하게 되는 실존적 질문이다. 피입박자가 억압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성이 깨지고 물건으로 취급당하고 있을 때 그 반응이 자연발생적인 생존을 위한 “폭력”이라는 단어가 필연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백인 압박자들은 뻔뻔스럽게 <질서 있는 사회에서 정의는 실현된 다>라고 하면서 “폭력”이라는 말의 단어를 이유막론하고 범죄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백인의 살인적인 행동을 문화와 종교적인 이유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질서란 누구를 위한 질서인가? 그러므로 흑인신학이 백인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피압박자들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고난의 문제를 최급하면서 불가불 폭력의 사용 문제를 솔직하고 진리로 당연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폭력에 의하여 회생을 당하는 약한 자를 구출해 내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의로운 혁명적 폭력이다. 정의로운 폭력이라면 정당화 될 수 있 으며 또 반드시 필요한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흑인신학은 이 문제에 대하여 보다 더 깊이 고민을 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기독교 전 통을 과시하고 있는 미국의 백인들에게 끝까지 추궁해야 할 정의에 관한 문제이 기도 하다.
미국의 흑인신학에 있어서 탁월한 흑인 신학자 제임스 코온 (James Cone)이 있다. 코온은(1938-) 현재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의 석좌 교수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흑인 신학자로서 많은 제3세계 해방신학의 신학자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한국의 민중신학에도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제임스 코온은 미국의 흑인 신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참으로 만일 기독교가 억압당하는 자를 위하여 있다면 나는 주장하기를 종교는 반드시 흑인을 위하여, 흑인을 통하여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임스 코온은 미국의 신학은 미국의 흑인신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검은 색은 미국 주류사회에서 억압의 표시로 제일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코온은 그의 저서 “흑인 신학과 혁명 (Black Theology and Power)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출판했는데 그의 일관된 주장은 기독교적인 흑인이 됨으로서 미국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흑인의 사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민이 된다는 것은 피부의 색깔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백인이든 흑 인이든 자기의 피부의 색깔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 자기의 영혼, 자기의 지성, 자기의 몸이 귀중하고 고귀하다는 뜻이다. 그럼으로 비록 피부의 색깔은 다르다 할지라도 인간의 동일성을 중요시하는 것이 정말로 종교적 역할이다. 이와 같은 종교적 역할이 올바로 인식될 때 이런 사람이 점점 많아지기를 나는 희망한다. 인류의 인간성이란 똑같다는 사실을 종교적 차원에서 올바로 깨닫게 되는 것 이 비로소 미국을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는 길이다>
제임스 코온이 주장하는 흑인 신학은 피부의 검은 색의 문제가 분명이 미국의 분쟁의 암으로 역사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사실대로 시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백인이든 흑인으든 종교적으로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신학자인 것을 엿볼 수 있다.
제임스 코온은 유명한 미국의 오늘의 흑인신학자로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적 흑인 해방운동과 그와 상반되는 말컴 엑스의 블랙파워 흑인 해방운동의 두 진영의 상이한 흑인 해방운동 방식에 대하여 두 사람이 하나의 같은 목적으로 투쟁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화합하고 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임스 코온은 흑인의 해방운동 양진영의 대립에 대하여 흑인신학자적인 역할을 통하여 양진영의 운동 방식을 화합과 협동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제임스 코온의 해방신학이 미국의 백인과 흑인의 피부 색갈의 차이로 대립하고 있는 극한 상황을 종교적으로 똑같은 이념의 화합을 성취함으로써 능히 평화적으로 인종적인 색깔의 대립을 화해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 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임스 코온은 오늘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로서 미국의 흑백 대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미국인들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종교적 이념으로 똑 같은 길을 선택하는 길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을 끝맺으며
흑인과 백인이 같이 뻐스를 탈 수 있도록 결사적으로 투쟁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없었다면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감히 될 수 있었을까? 왜 미국이 다른 나라의 인권을 간섭하고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 내의 인권 상황은 이 모양으로 날로 악화되고 있는가 라고 폭력적으로 항의한 말컴 엑스가 없었다면 오늘 흑인 오바마가 감히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영화 뿌리, 흑인 오르페, 흑과 백, 칼라퍼플등 흑인들의 처절한 삶을 고발한 작품들이 없었더라면 미국에서 역사적이며 개혁적인 변화가 일어나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역사가 절대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중에 흑인 신학의 등장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쨋든 1863년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이후 142년 만에 미국의 흑인이 대통령이 되여 집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신보수주의는 무능해졌고, 신자유주의는 탐욕으로 사면초과의 위기에 빠진 미국은 할 수 없이 졸시 탈출구를 찾아 낸것이 바로 백인들이 보기에 우스꽝 스러운 선거 비상대책으로 흑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삼은 것이다. 미국이 덜 오만한 척하는 위선적인 겉모양을 전 세계에 보이려고 흑인 대통령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 흑인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역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외교정책에 있어서 더욱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베트남전과 캄보디아에 대한 미국의 과거사에 대하여 솔직히 사과를 했다. 캄보디아에 대한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1975-1979년에 170만 명이 희생됬다. 하지만 오바마는 동남아를 순방하면서 미국의 과거사를 논의하는 것조차 회피하고 의도적으로 외면했다고 언론은 분석보도를 했다.
어디 그뿐인가? 힐러리 클린턴 외무장관과 미구 국무성 동아태 차관보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 자신은 분주하게 줄줄이 미얀마를 방문하여 미얀마-북조선 관계를 단절하고 적대하도록 헙박하면서 이간을 조성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북조선을 고립압살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전직 대통령들의 유산을 오바마가 그대로 이어받은 증거이다. 그뿐만 아니라 또 오바마 대통령은 오히려 대조선적대정책을 전보다 더 강화함으로서 흑인 오바마는 미국의 백인들의 기득권 세력에 아부하고 충성심을 표시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오바마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2월 대선에서 코리 아 반도 남단에 진보세력이 연합한 문재인 정권를 창출하고 코리아 반도에 평화 정착이 이루워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 북조선의 대표자를 축하객으로 초청할 것을 선거공약중에서 분명히 언급했다.
분명히 그렇다. 우리민족끼리 북과 남이 손잡고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대행진이 분명히 전개될 때 오바마 대통령도 속으로 못견디는체 하면서 코리아 반도의 난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해결하는데 양심적인 호응을 분명히 하게 될것이다. 만일 오바마가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마틴 루토 킹 목사와 말컴 엑스에 대하여 배신자가 될 것이다. (끝)
과제님의 댓글
과제 작성일
일단 새누리당에 압승해야 하는 과제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남은 기간 모든 깨인 한국 국민들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