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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백행기 사범, "우리는 모두 태권도 가족들"...남편 9단, 부인 4단, 아들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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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댓글 1건 조회 4,499회 작성일 13-03-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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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3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백행기 태권도사범 가족, 모두17단

글쓴이 : 노길남 특파원 날자 : 2013-03-01 (금) 00:01 조회 : 252 btn_singo2.gif btn_prin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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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행기태권도사범 가족, 모두17단:
2010 방북해 이모와 가족들 상봉

[샌프란시스코=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샌프란시스코 외곽도시, 밀브레(Millbrae)에서 22 동안 1662740850_083d0108_6-paikhengki-03.jpg
한자리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해 백행기 사범(64) 부인이 태권도 4, 14 아들도 태권도 4단이다. 가족들이 모두 유단자인데 모두 합치면 17단이 된다.

백행기 사범의 가정은 북조선 태권도 관계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가정은  특히  5 전인 지난 2007  9 북부조국 태권도 방미단의 미국 순회공연 시기에 이들의 샌후란시스코 시범대회를 준비하여 성공적 행사로 이끈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당시북측의 IOC 위원인 장웅 선생을 비롯하여 태권도 관계자들이 이들 가정이 북측 태권도 방미단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준 것을 알고 있었다.  

사범은 이러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그의 어머니 소원을 있었던 것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밝힌다.

그는  한살 월남하여 60여년만에 어머니가 그렇게 보고싶어 하던 이모와 가족들을 만난 것이 내게는 무척 감격적이었다.”라고 2010 1020일부터 일주일 동안 방북한 추억들을 가슴뜨겁게 간직하고 있다고 돌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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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이모를 만나는 것이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남긴 소원이며 동시에 유언이었다. 소원을 60년이 지난 세월이 되어서야 조카인 자신이 풀수 있었다고 고백한 사범은  그러나 아직도 혈육을 만나지 못한 동포들이 많은데 하루 빨리 모두가 만날수 있는 평화통일의 날이 왔으면 좋겠다.” 염원하고 있다.

그는 유언을 이뤄내는데 18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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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님의 댓글

고슴도치 작성일

그는 그 유언을 이뤄내는데 18년이 걸렸다고 밝히면서 “나는 1949년 이북 진남포(지금은 남포)에서 태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950년 봄에 부모를 따라 남녘으로 왔는데 이모, 외삼춘 등 친척들이 이북에 살고 있어서 저의 어머니는 늘 이모를 그리워하다가 1992년에 눈을 감으셨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는 비무장지대가 가까운 강원도 거진에 집을 마련하여 그곳에 거처한다음 이모가 있는 북녘 하늘만 바라보며 그리움에 지친 생활을 하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가셨다고 술회한다.   

 백행기 사범은 그 동안 주로 미국주류사회에서 활동해 왔지만 이북을 방문하고 혈육들을 만나고 이후에는 북녘에 둔 가족들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샌후란시스코에 있는 북가주 이북인연합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북녘 가족들을 찾아주는 사업을 하려고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윤길상 회장, 김현환 사무총장 및 뉴욕의 유엔대표부 관계자 등을 만나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고 그러한 사업을 추진해 보려고 노력중이라고 말한다.

남과 북에 흩어진 가족들이 무려 1천만여명 되지만 남측 당국에 이산가족으로 등록된 사람들의 숫자는 12만8천7백여명에 불과하다. 이중에 그 동안 추천으로 북녘 혈육을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숫자는 고작 2만1천7백34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남북관계가 냉각되어 인도주의적인 교류마져 차단되어 온 상황이었다.

그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누가 뭐래도 이러한 일은 당당하게 해 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서로 화해협력적 관계가 이뤄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북을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하기도 한다.

백행기 태권도 도장(Black Belt School) 입구 벽에는 북녘의 올림픽위원회 장웅선생과 그의 부인과 아들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도 걸려있고, 북녘 태권도 선수들과 샌후란시스코 태권도 선수들이 인공기와 성조기를 들고 함께 찍은 기념사진들도 걸려 있다.

그는 또 북미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2007년 이후 2011년 미국 동부지역 순회시범만 있었고, 그 이후 북의 태권도 방미단이 지속적으로 이곳을 올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북미관계도 이젠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정상화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고 말한다.

백 사범은 민족통신 기자와 대담을 나누는 동안 그의 이모와 외삼춘, 그리고 그 자녀들과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동족들끼리 서로 마음놓고 만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2년동안 이곳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거의 백인들(95%)과  사업해 왔다. 이들 중 250여명의 유단자들을 배출했다. 이 태권도 도장에서 배운 미국인들의 출신국들도 17개 나라가 된다.

백행기 사범은 남한의 창무관 출신 유단자로 미국에 와서 오로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생활했다.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이 도장을 찾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학부모 세대를 비롯하여 어린이 세대( 3살부터 74세까지 연령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이다.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유단자들은 백 사범(9단)을 포함하여 그의 부인 세라 백 여사(4단), 그리고 그의 아들 백호(14살-4단)군 3명이 수련생들을 지도한다. 백 사범의 아들 박군은 10대 초반인데도 6피트의 장신으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다. 그는 학교에서 농수선수 센터로서도 활약해 지난해 이 도시에서 우승한 선수팀을 이끈 주역이었다. 

이 태권도 도장을 찾는 수련생들은 이곳에서 흰띠로 시작해 5개월 지나 심사받고 노랑띠, 3개월 후 오렌지띠, 3개월 후 보라띠, 5개월 후 초록띠, 6개월 후 청띠, 7개월 후 갈색띠, 7개월 후 홍(빨강)띠, 주니어 블랙띠(15세 미만 연령), 흑(Black)띠(15세 이상) 심사를 받는 10단계 수순으로 되어 있다. 보통 유단자가 되려면  4년 정도 수련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한다.

백행기 사범은 중동중학교, 성동고등학교를 나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졸업하고 학교 선생, 상공부와 외무부 근무, 그리고 자영업 등을 하다가 1990년 미국에 이민왔다. 미국에 온 이후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곳 한곳에서 태권도 도장만을 운영해 왔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백행기 사범 가정은 코리안 태권도 3총사 가족으로 널리 알려져 유명하다. 이들 가족들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문의 연락처: millbraeTKD@yahoo.co.kr

전화: 650-873-0393 혹은 650-302-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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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2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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