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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코리아 전쟁 그 진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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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민족
댓글 1건 조회 4,626회 작성일 13-06-2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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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코리아전쟁 진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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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공동] 본격적인 코리아 전쟁(1950.6.25~1953.7.27) ,,  세나라의 합의에 의해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위한 수순을 밟자고 합의한 이후 이제 60주년을 맞이하는 날자가 한달가량 남았다. 돌이켜 보면 미국은 해도 너무했다. 90일내로 평화협정을 맺고 코리아 땅에서 당연히 떠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시간까지 코리아 남녘땅을 틀어쥐고 앉아 조국반도를 긴장과 전쟁의 수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연재-1]코리아전쟁 진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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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공동] 본격적인 코리아 전쟁(1950.6.25~1953.7.27) ,,  세나라의 합의에 의해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위한 수순을 밟자고 합의한 이후 이제 60주년을 맞이하는 날자가 한달가량 남았다.
돌이켜 보면 미국은 해도 너무했다. 90일내로 평화협정을 맺고 코리아 땅에서 당연히 떠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시간까지 코리아 남녘땅을 틀어쥐고 앉아 조국반도를 긴장과 전쟁의 수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명박정권에 이어 박근혜정권도 지난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조국땅 절반을 점령하고 틀어앉아 군사주권, 경제주권  사회전반을 흔들어 놓으며 강점하고 있는 점령군의 바지가랭이를 잡고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심지어는 남녘의 청소년들 70% 코리아전쟁이 북침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대해 박근혜정권은 큰일났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민족통신 편집진은 다시 한번 코리아전쟁의 진실에 대해 밝히기로 하고 연재로 소개하고자 한다.  
 
남녘 동포들은 민족분단사와 코리아 전쟁역사에 대해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부터  이후 대부분의 집권자들과 어용학자들은 주로 왜곡역사를 사실처럼 선전하여 왔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보안법’이라는 말도  되는 악법을 이용하여 진실을 진실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였고,  동족인 북을  형제자매로  생각하지 않고  미국 지배세력의 조작에 의해 동족인 북을 적으로  매도해야 했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그것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어 감옥에 가야 하는 그런 참담한 사회가 바로 한국의 현주소로 되어 왔다. 
 
코리아 전쟁을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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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님의 댓글

한민족 작성일

이어서 계속....

코리아 전쟁을 보는 관점도 미국정부와 이를 추종하는 남한의 역대 집권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미국의 양심적인 학자들이나 정의감을 가진 종군기자들이나 중국인이 보는 관점이 아주 다른 점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남한의 양심적인 학자들과 해외동포 학자들이 보는 관점도 미국정부와 이에 추종해 온 남한의 사대매국정권의 주장들과는 완연하게 다른 것이 구체적으로 검증되어 왔다. 미군이 자기 나라 이해관계 때문에 코리아 반도에 들어 온 것을 ‘점령군’이라고 말하지 않고 이를 거꾸로 천사로 미화하여 ‘해방군’이라고 주장하는 상반된 관점을 주장하는 이들이 바로 미국 지배세력이며 이에 추종해 온 사대매국세력의 입장이다. 
 
미국의 학자 부르스 커밍스가 쓴 ‘코리아 전쟁의 기원(The Origin of  Korean  War)’을 비롯하여 미국의 종군기자 아이 에프 스톤의 ‘코리아 전쟁의 숨겨진 역사(The Hidden Story of Korean War), ‘중국인이 본 한국전쟁’(윤영무 번역), 한길사가 펴낸 ‘1950년대의 인식’, 풀빛 출판사가 펴낸 ‘한국민중사 II’, 자주민보가 펴낸 이도영 박사의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쏴라’, 그리고 인터네트 상에 올라 온 코리아 전쟁의 자료 등의 내용들은 남한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미군의 <해방군> 주장이나 전쟁의 원인을 북의 <남침설>로 보는 입장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일방적인 견해만을 펴고 있는 관변 입장보다는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학자들과 종군기자의 견해에 입장을 함께 한다는 사실을 여기에 밝히면서 계속해서 코리아 전쟁의 진실을 벗겨 본다.
 
지난 한세기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민족은 미국과 일본에 의해 숱한 고통을 받아 왔다. 일제40년도 미국과 일본의 비밀협약(1905년 가쯔라-태프트 밀약)에 의해 수난을 받게 되었고, 8.15해방 이후에도 미군정의 간섭과 탄압정책으로 우리 민족은 말할 수 없는 수난과 대학살의 치 떨리는 참혹한 시대를 겪어야 했다. 그것도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군정 치하인 지난 1947년 8월부터 1950년 9월까지 통영•거제 일대에서 군경에 의해 민간인 수백 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였다 빙산의 일각이지만 이것부터 돌이켜 본다.
 
하청면과 장승포읍 주민들도 1949년 '빨치산'에 협조한 혐의로 국군 제16연대 등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그 행위는 하수인 역을 맡은 남녘 군인이 하였지만 그 주범은 배후의 미군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좌익으로 몰린 진영의 여교사는 얼굴이 예쁜 젊은 처녀들과 함께 능욕을 당하고 암매장되었는데 그녀는 다리까지 잘리었다. 또 충무•통영군 남녀 800여명의 학살은 헌병무관들이 부녀자 약탈의 은폐 책으로 빨갱이로 몰아 수장한 사건이었는데 이 당시 그들은 창고에 끌려가 남녀 모두 옷을 벗긴 채 구타를 당하였다(김삼웅, 1996:169). 남원군 대강면 강석리에서 11사단 205부대는 마을 주민 60여명을 살해하고 부녀자 7명을 끌어내어 대검으로 목과 유방, 심지어 음부까지 난자하여 모두 죽였다. 이번에는 19명을 일보도로 참수하였는데 김점동이 일본도에 의해 목을 두 번이나 내려쳐졌으나 죽지 않자 "더러운 놈 모가지가 왜 이렇게 질겨"하면서 장교는 세 번째 내려쳤다(서중석, 1999:620). 창원군 북면에서도 해군첩보대대장으로 황광수 수병 등이 이곳 주민과 피난민 60명을 빨갱이로 몰아 살해하면서 어린애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일본도로 내리쳐 죽이고 부녀자들에게는 젖가슴을 칼로 자르고 팔다리를 절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김삼웅, 1996:107-108). 이미 앞에서 보았지만 아산군 신창지서 주임이던 유해진은 마을 부녀자를 농간하고 부하까지 농간하게 하고 좌익 측 부녀자를 첩으로 삼았다.
 
이제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반 인륜과 패륜아 행위를 살펴보겠다. 이에는 6.25전후 가장 악명을 떨치던 일본군 출신이고 이승만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김종완이 대표적이다. 그는 여수 등에서 일본도로 사람을 참수하는 것을 즐겼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1950년 5월 6일 6.25전에 백골부대를 이끌고 거제도 일운면 구조리 앞 바다에 주민 1천명을 1시간 동안 찬물에 세워놓고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등 서로 어려운 사이를 골라 서로 마주 뺨을 때리도록 하고 만약 세게 때리지 않으면 총개머리판과 몽둥이로 난타하는 짐승 같은 짓을 저질렀다(서중석, 1999:583). 이 같은 '뺨 때리기'와 '말 태우기'는 흔히들 자행되던 보편적 현상이었다. 제주에서 토벌대는 주민들을 모아 놓고 시아버지를 엎드리게 하고 며느리를 태워 빙빙 돌게 하고, 할아버지와 손자를 마주 세워 놓고 서로 뺨을 때리게 하였다. 총살에 앞서 가족들을 앞에 세워놓고 총 맞아 쓰러질 때 가족들로 하여금 만세를 부르게 하기도 하였다(김종민, 1998:33).
 
통영에서는 죄 없는 양민 수십 명을 창고에 가두어 놓고 강제로 정교를 맺게 하고는 수장시켜 죽였고(김삼웅, 1996:108), 필자와의 면담에서 어느 육군상사는 시숙과 제수를 옷을 벗겨 강제로 정교를 맺게 하고는 덮석에 말아 굴리는 반인륜적인 만행을 저질렀다는 전언을 해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가공스런 야수적 행위는 이미 제주에서부터 알려졌다. 처녀와 총각을 불러내어 서로 정교를 강요하였고(황상익, 2000:153 재인용), 처모와 사위를 대중이 모인 가운데 정조를 맺게 하고는 쏘아 죽이기도 하였다(김종민, 1998:33). 완도 경찰은 완도읍 두암리에 살던 좌익아들을 둔 할머니의 이야기다. 경찰이 그 아들을 죽이고는 아들의 간을 꺼내 할머니 입에 물리고는 마을을 돌아다니게 하였던 일이다.
 
그 할머니는 반 미친 상태에서 경찰이 시키는 대로 하였고 13년 형을 받아 7-8년 복역 후 석방되었으나 몇 달 후 죽었다고 한다(김삼웅, 1996:119).
 
위와 같은 행위는 미국을 등에 엎고 자기 형제자매를 살해하고 탄압했던 반 민중, 반민족 세력의 횡포였다. 요즘으로 비유하면 자기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우리 민족에게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미국에 기생해서 기득권을 누리는 이명박 정권의 잔인 무도한 행위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런데 그 주범은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직접 만행을 저지른 친일세력들은 하수인에 불과하고 그 주범은 무기를 공급하고 지시를 내린 미군이다. 더구나 미군은 그 당시 사람을 많이 죽인 친일매국노를 높이 평가해 주고 진급을 시켜 고무하였다.
 
이러한 반인륜적 행위가 단지 6.25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일본군국주의의 악랄한 인권말살주의에 물들어 있던 친일파, 곧 민족반역자들이 반공제일주의를 걸었던 미군정과 결합하여 그들의 생사를 걸고 남한사회의 권력을 장악하면서부터 구조적으로 잉태되었다. 실제로 미군정 당시에도 마크 게인의 일본 일기장(Mark Gain’s Japan Diar)에 서술되어 있듯이 경찰이 유사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물론 6.25이전에도 4.3항쟁과 여수항쟁에서 보듯이 토벌대의 이러한 만행은 다반사였다. 단지 6.25이후 보다 대규모로 빈번히 일어났을 따름이다.
 
신불산 공비는 여수, 순천반란사건 때의 공비들이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가 그 일부가 울산으로 이동해오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공비를 토벌하기 위한 군, 경과 민간 의용대의 작전은 1949년 말∼1954년 초까지 4년 넘게 계속됐다.
 
감옥은 좌익분자로 넘치는데도 반정부 기운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반정부 집단의 배후에는 북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좌익세력을 일거에 제거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한국전쟁의 발발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은 공비들을 지원하는 북한과 그리고 북한을 지원 하는 중공까지 점령 할 수 있는 기회로 되는 것으로 미국과 친일세력, 그리고 이에 결탁한 반민족 세력들은 모두가 그렇게 소망했다.
즉, 전쟁만이 모든 것을 해소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미국은 전쟁을 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착착 준비했다. (다음에 계속)
 
2013년 6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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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War: A History Part 1 - Bruce Cumings
http://youtu.be/ba3dgDUtE9A

The Korean War: A History Part 2 - Bruce Cumings
http://youtu.be/6KCBH2QVL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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