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섬김의 대상 이다
그러나.....상황을 인지 못하는 국민은 굴복시킬 대상으로 전락한다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기 위해 1860년대의 미국에서는 人頭稅를 바치게 하고 이 영수증 없이는 투표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늦게나마 선거의 중요성을 깨달은 흑인들은 반드시 자신들의 대표자를 의회에 보내자는 운동에 호응하여 모두가 이두세를 납부하고 그 영수증을 받았다. 그러자 그 마을에 민주당원이 서커스단을 끌고 들어왔다. 입장료를 묻는 흑인들에게 입장료는 무료 이지만 다만 입장료 대신에 인두세영수증을 받았다 공짜여서 즐겁게 들어간 흑인으로 서커스는 만원 이었지만......선거일에는 흑인이 한사람도 나타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진보는 보수의 서커스에 혼미하여 투표날
어디에서 유흥을 즐기고 있었는가? 인두세의 영수증을 어디에 사용하고 정작 투표로 우리의 잠재적 힘을 보여 주어야 할때 투표소에 못 들어가거나 투표소의 주위를 배회 하거나 투표소에 들어가서
보수를 찍고 나오는가? 선거를 공명하게 치를 수있는 사람들은 반란도 역시 진압할 수 있다 A. Lincoln 이 議會에 보낸 메세지 이다.
선거전은 고의적으로 사람을 감정의 수라장으로 이끌어 가며 긴장된 쟁점으로부터 관심을 쏠리게 한다 그럼으로써 보통 때 같으면 사람들이 능히 발휘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마비 시킨다.
국민을 자기의 수단과 도구로 삼기위해 국민에게 아첨 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국민이 자기들에게 아첨 하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유권소가 태동했다 섬겨야할 유권자를 섬기도록 강요하는
정통성 결여된 부정선거의 집단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민이 권력자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국민의 항거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李兌榮님은 그의 책 '피로 쓴 碑文' 에서 말했다 국민은 명령하기도 하고 主宰 하기도 하는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의 근원은 아무도 모르며 또 설명할 수도 없다 이 국민의 힘이야말로 최후까지 가려고 하는 지칠줄 모르는 열망의 힘이며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죽음을 부정하는 힘이다.
유권소는 순수 국민의 자발적 집단이며 열망의 힘이며 권력앞의 비겁한 죽음과 순종과 포기를 부정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