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북부조국 방문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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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27
평양방직공장의 노동자를 위한 복지제도
평양방직공장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는 강창숙 해설원의 안내로 혁명사적교양실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두 여성이 우리를 반겨 맞이해준다. 이곳 노동자들과 직접 대화하기를 원하는 우리들을 위한 배려로 이분들이 나온 것이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빙 둘러 만들어놓은 좋은 벤치가 있어 거기 자리를 잡고 대화를 나누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전옥화 선생, 세 번째는 리명순 씨.
한 분은 노력영웅 전옥화 선생으로 올해 77세가 된다는데 1951년부터 2009년 까지 근 60여년 동안 이 공장에서 일하였다고 한다. 아직 건강한 모습의 이 분은 평양방직공장 역사의 산 증인이다. 평안북도 빈농 출신으로 전쟁으로 부모님을 모두 잃고 이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여 평생을 한 길을 걸었다고 한다. 전쟁 당시 미국이 조국에 가한 처참한 광경들을 직접 목격하였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자신이 공장에서 열심을 다하여 일하는 것으로 나라와 인민에 기여하기로 마음먹고 평생을 열심을 다해 이곳에서 일한 것이다.
전옥화 선생은 1977년에 북부조국 최고의 영예인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고, 중국과 러시아 헝가리 몽고 등지로 보상여행을 배려받았다고 했다. 아들 딸 하나씩 두었고 손자 손녀도 있어 남은 여생을 연로보장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신다.
다른 한 여성은 선군시대중앙공로자 (숨은영웅) 리명순 씨로 올해 38세라고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방직공장 기능공 학교를 마치고 이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서거 소식 들었을 때가 그의 나이18세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나라를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각오로 다음 달인 8월부터 직포공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일을 조금씩 익혀가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일했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이 그 어려웠던 제2의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언제나 목표량을 두 배 세 배 초과달성했다고 한다.
노력영웅 전옥화 선생과 (왼편) 선군시대숨은공로자 리명순 씨와 함께한 필자
그동안 우리를 안내하며 대화를 통해 조금 친해진 강창숙 해설원에게 우리 조국의 통일을 위해 내가 궁금해하던 여러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한다. 그래 공장의 현황에 대해서 몇가지 물어보았고 또한 그동안 이곳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는 되었지만 공장의 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북부조국에서 처음으로 인터뷰하게 되었다면서 여러가지 질문을 하였고 다음과 같은 답을 들었다.
강창숙 해설원과 인터뷰하는 필자
평양방직공장의 위치는 평양시 동평양 선교구역 강안동이다. 이곳에선 방적공장과 직포공장 모두 있는데 실을 뽑기 위한 정방기는 예전부터 있던 기계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제직기로는 유연창대직기를 사용하는데 이 기계는 북에서 직접 생산하는 기계라고 한다. 내가 무명의 원료가 되는 목화는 어떻게 구입하느냐고 물어보니 목화는 외국에서 수입한다고 했다.
이곳 평양방직공장에선 매년 필요한 인원이 있을 터인데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 신청하는 젊은이들의 상황은 어떤가하고 물어보니 지금까지 필요한 인원은 늘 지원하는 사람들로 충분히 메꿔졌다면서 올해의 경우 200여 명이 새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 17살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이곳 기능공 학교에서 6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졸업한 후에 직장에 배치된다고 하였다.
모두 8,500 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데 미혼의 직원들은 합숙소에서 생활하고, 기혼자들은 평양 시내의 살림집에 살면서 공장버스로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곳 평양방직공장은 여성 직원들의 숫자가 많고 남성이 적으므로 남성들이 일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예상 밖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미혼 여성이 결혼을 하게 될 때 그 배우자가 이곳 평양방직공장에서 함께 출퇴근하며 일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래 남자들이 이곳에서 할 일이 별로 없지 않으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면서 기계 수리공, 차량들의 운전수, 보일러 담당, 그외 공장 부속의 여러 사업소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많은 직장에서 남성들을 오도록 하여 함께 일하도록 하는 취지가 참 신선하다.
북에서 직접 생산한다는 유연창대직기로 천을 생산하는 직포공들
내가 가장 궁금해하던 이곳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물어보면서 그동안 내가 만나서 대화했던 식당이나 호텔의 봉사원들은 월급 6천원에 상금 5만원으로 모두 5만 6천원을 받는다고 하던데 이곳 노동자들의 수준은 어떤가하고 물어보았더니 강창숙 해설원은 살짝 웃으면서 ‘우리 월급은 그 두배가 넘습니다’라며 거기에다 생산량에 따라 차등해서 분배한다고 말해준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일하면서 생산량을 높이면 그에 따라 분배도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사무직보다 노동자들이 훨씬 나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같은 노동자들인데도 일급 호텔의 봉사원들보다 이곳 북부조국의 공장 노동자들은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미 얼마간 알고는 있었지만 강창숙 해설원과의 대화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노동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복지혜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주택은 무료다. 쌀은 배급으로 필요한 양을 공급받게 되며 김치를 담기 위한 배추도 세대 수대로 공급하고, 부식물은 공장 안에 매대가 있어 거기서 값싸게 구입이 가능하다. 거기다가 노동자들의 부식을 위해서 다양한 후방공급소가 있는데 단천에는 수산기지가 있어 거기서 직접 잡은수산물을 공급한다. 젓갈과 까나리 젓까지 공급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부업기지가 있어 강냉이 등 농산물도 공급하고 오리 닭 돼지를 농장에서 사육해서 고기를 공급하기도 한다고 했다.
혁명사적교양실의 이 사진을 통해서 평양방직공장에서는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의 부식 생산을 위해서 노력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정말 뜻밖의 일이다. 우리처럼 시장에서 무엇이든지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굳이 공장에서 이렇게 노동자들의 부식제공을 위한 사업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아직은 북에서 편리하게 필요한 식재료들을 충분히 집에서 가까운 시장에서 구입할 수 없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제 2의 고난의 행군 시절을 거치면서 부족한 음식물 재료를 직접 생산해낸 전통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충분하게 부식을 공급하기 위해서 공장에서 직접 부식 생산까지 맡아서 제공하고 있다하니 노동자들을 위하는 그 정신을 내가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이곳 평양방직공장은 자본가를 위한 공장이 아니라 바로 인민을 위한 노동자들의 공장인 것이다.
평양방직공장의 부지 면적은 64만 6천 평방미터로 웬만한 고을만한 면적이라고 한다. 그래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탁아소와 6살 까지 다니게 되는 유치원도 무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선생님들도 모두 공장 소속이라고 했다. 공장 소속의 병원도 있는데 수술이 가능한 곳으로 입원실도 있다. 료양소도 운영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신경통이나 질병이 생겼을 때 40일 동안 요양하고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노동정양소도 있는데 이곳은 혁신자들을 보내어 식사의 질을 높여서 보양해주는 곳이라 한다.
노동자들의 문화생활에 대해서 물어보니 연극이나 공연은 국가에서 표가 나오고, 옥류관 청류관 등의 식당은 천 원 정도의 금액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고, 여행을 가기도 하느냐고 물어보니 당연하다면서 예를 들어서 멀리 견학으로 백두산 답사권이 주어지기도 하는데 그곳 신흥지구 비밀근거지 등을 답사하러 간다고 했다.
김 주석의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는 문귀다.
노동자들이 언제 쉬느냐고 하니 일요일과 국가 명절에 쉰다고 한다. 마침 추석 직전이라 추석때는 어떻게 고향으로 가는지를 물어보니 직장에서 지역별로 가는 차들을 준비해서 고향으로 가게 하는데 보통 2-3일 후에 돌아올 때는 자체적으로 평양으로 돌아오는 차편들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북부조국에선 주택과 쌀을 무료로 제공하고 학생들의 교복까지 제공하지만 그래도 인민이 입을 옷은 스스로 구입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괜찮은 옷을 구입하려면 얼마 정도 하느냐고 물어보니 2만 원에서 3만 원 정도라고 한다. 노동자들의 월급에서 옷을 구입하기 위해 지출되는 금액은 다른 비용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지만 따로 주거비용이나 교육비, 의료비의 부담이 없는 것을 고려할 때 그리 비싼 것 같지는 않다.
대량생산에 대량소비, 그리고 무역의 자유화로 우리들은 일상용품들을 아주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것을 잘 보존해야 하고, 하나밖에 없는 이 지구의 주어진 환경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해서 무한정으로 생산되는 상품의 구입 또한 절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절에 모두가 검소하고 절약해서 살아간다면 경기하락에 공황으로 이어져 생산과 유통에 큰 혼란을 주게 되고, 그걸로 유지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 자체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소비성향을 부추겨서 대량소비로만 유지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때 우리 사회에서도 절약과 검소한 생활이 본이 되는 시절이 있었고 그것을 국가에서 권유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생필품이 부족하다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불행은 그것보다는 편히 쉴 집이 없다거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없어서 였고, 돈이 없어 자녀들의 교육을 못 시킨다거나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거나 부정과 부패한 정치와 사회로 억울한 일을 당한 것에 있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여러가지 질문에 성심껏 대답해준 강창숙 해설원과 함께
시장에 나가면 값싼 생필품이 넘쳐나지만 그것을 우리가 구입할 수 있다해서 우리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각자의 수입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우리는 주택, 교육, 교통 혹은 차량유지, 의료, 보험, 통신, 문화생활 등에 사용하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들을 옭아매게 만들고 수입이 충분하지 못할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도록 만든다.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을 원하지만 모두가 그런 직장을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의 직장에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도 큰데다 그것마저도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며, 그런 날이 오면 그야말로 의식주를 해결할 방법이 캄캄해지니 우리가 날마다 불안 가운데서 살게 되고 걱정근심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생활고로 인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살에 까지 이르진 않더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안한 심정을 우리 사회에서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는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넘쳐나는데도 먹거리와 생필품이 흔한 곳에 우리가 산다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이 떡으로만 행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들의 차가 멀어지는데도 계속 손을 흔들어주는 강창숙 해설원. 잠깐 만나도 서로 소통하고 나니 정이 넘쳐흐르는 사람들이 바로 북부조국의 동포들이다.
내가 대화한 평양방직공장의 전옥화 노력영웅, 리명순 숨은영웅, 그리고 강창숙 해설원도 그러했지만 그외 만나서 대화를 나눈 북부조국 인민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생활을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이 생필품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기도 하겠지만 이미 그것에 오랫동안 익숙해있으니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듯이 절대로 그것 때문에 불행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의식주 생활에 걱정거리가 없는 사회제도를 갖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린 이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들 또한 보다 민주적인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하며 싸워왔다. 우리가 꿈꾸는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와 복지제도 자체가 당장 모두를 배부르게 하지 않더라해도 그런 제도가 정착되면 그것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리라 여기기 때문에 싸워온 것이 아닌가? 북부조국 인민들이 개인적으로 물질을 많이 갖고 많이 먹고 많이 누려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온 우리들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행복은 오히려 가난하더라해도 정의로운 세상에서 인민이 서로를 위해주고 화목하며 함께 나누는 것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나의 질문에 성심껏 답변해준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의 강창숙 해설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아래 링크에서 북부조국 방문기 26회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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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광개토왕님의 댓글
광개토왕 작성일
북부조국 인민들이 개인적으로 물질을 많이 갖고 많이 먹고 많이 누려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온 우리들의 생각전환이 필요하다. 행복은 오히려 가난하더라해도 정의로운 세상에서 인민이 서로를 위해주고 화목하며 함께 나누는 것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북한이 진정 위와같은 인적 동감대에서 사회를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란 가정하에 북한관련 소식과 정보들을 보아가노라면 주어진 자료들이 건전하게 평가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직도 북의 민중들이 폭력과 탄압에 시달리며 김씨 일가의 독재에 희생되고 있다는 류의 의구심이 박혀있는 사람들은 한번 속은셈치고 이전의 편견과 기억을 버리고 백지상태에서 본 여행기와 같은 주어진 정보들을 관심있게 살펴보기 권한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광개토왕 님, 신혼 초에 아무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결혼도 물질이 뒷받침되어야 행복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당사자들은 정말 맨주먹으로 시작해도 행복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북에서의 신혼부부라면 적어도 고급이 아니라해도 입주할 집도 나라에서 주는데다 먹는 것 걱정 없고 직장이 주어지니 얼마나 행복할지를 잠깐 상상해보았습니다. 행복이란 상대적이기도 하지요. 사회 자체가 정의롭고 평등한 것에서 당장 생필품이 부족해도 별로 투정하지 않고 행복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데다 아무도 진단해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들여다볼 여가도 없이 무심하게 넘어갑니다. 제 3의 눈으로 우리의 사회 자체를 들여다본다면 그야말로 개인 각자는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수많은 스몰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계속 살아남는 문제 또한 보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대형화되고 자동화 되는데 작은 비즈니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직장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화되고 자동화 되고 로봇화 되는 세상에서 그 미래는 참 암담합니다.
북의 체제를 비판하고 얼른 개방하고 자유화 하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이 현실을 따르라는 것인데 그게 과연 인민들에게 이로울까요? 북에서 본다면 한마디로 정신나간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당연히 북도 개방하고 자유화하길 원할 것입니다만 그렇게 개방하고 자유화한다면 그 주체가 서방세계재벌들의 입장이 아니고 바로 북의 인민의 입장에서 인민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주체님의 댓글
주체 작성일
보다 철학적 견지에서 접근해 본다면.. 북의 민중들이 진정 현재와같은
북의 사회시스템을 지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김일성 사회주의에 교화되어
현 사회구조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행복해 하는 것인지 - 아니면 그런
행복감조차 의도적으로 강요받고 있는지의 - 여부가 온전히 구분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북유럽처럼 사회주의가 정착된 나라도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세계는 자유민주
자본주의 위주로 영위되고 있고 그 문제점 또한 적지않은 현실을 근래들어 맞고는
있지만 최소 아직까지는 그 체제가 크게 부정되지않고 수긍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설령 김일성주의가 아주 이상적인 것이며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런 이상적인
세상을 분명 맞이하게된다 하더라도 차라리 자유가 좀 제한되고 정의롭지 못한
경우가 있더라도 힘센 국가들로부터 지속 위협당하지 않고 그런대로 개인적
물질적으로 풍요할 기회가 있다면 차라리 그 쪽을 택하겠다는 부류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의 이상적 사상을 위한 개인의 기회박탈이냐는 것이지요.
갑작스레 역사와 정의는 승리자의 것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습니다.
부디 북이 지닌 주의가 승리하여 그들의 이상이 옳았으며 그런 세상이 참되고 바람직한
세상임을 만인이 알게되는 큰 변혁이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vimocana님의 댓글
vimocana 작성일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나라와 인민을 위해 기여하리라,는 마음으로 한평생을 일했다는 그 노동자 분의 말이 가슴에 큰 울림을 줍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이런 귀한 마음을 품는 이를 아직 개인적으로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다들 생존을 위해,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지 이걸 나라와 인민을 위해 기여하고프다는 마음을 낼 수 있는 사회, 북한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그 정신적 기저와 이렇게 이끌어온 지도자들, 그리고 함께 해온 인민들의 내공에 새삼 감탄하게 되네요.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주는 단순히 계약한대로 임금만 지급하면 되고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는 것 같은데
우리 북부 조국은 전체의 복지를 우선시하면서도 개인의 복지를 등한시하지 않고
그 두 마리 토끼를 균형적으로 잘 버물러온 것 같아 그 역량이 놀랍기도 합니다.
올해 한국에 몇개월 지내면서 가까운 주위사람들, 평범한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지 깊이 느끼고 안타까운 마음 가득했습니다.
지금 남한사회는 노동자들이 연이어 자살을 하고 있고, 생계 유지 자체가 버거운 개인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겉만 번지르하고 국가경제력이 세계상위권에 들고 한다지만, 개인 서민의 삶은 정말 어렵습니다. 인간의 기본 권리인 의식주, 교육, 의료가 보장이 안되니,
우리의 의식이 이런 차원의 허덕임에 많이 매여있어서, 인간의 고차원적인 잠재력이나 높은 층의 의식의 계발, 혹은 인류사회를 위한 더 고상한 것들을 생각할 그런 여유자체를 잃고 사는 듯합니다.
개인의 안위가 아닌 나라와 인민을 위해 오롯이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 지도자가 부재한 탓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강산님의 '인간의 소비성향을 부추겨서 대량소비로만 유지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성찰에 깊이 동의합니다.
현 신자유주의시대의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사회를 꿈꾸는 세계의 많은 이들이 북한의 사회에서 배워야 할 뭔가 귀한 원칙들이 있다고 저도 고개를 끄덕여봅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미ㅏ어리ㅏ머님의 댓글
미ㅏ어리ㅏ머 작성일이거완전히 빨갱이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