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북부조국 방문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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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20
학교와 사회는 똑같은 곳 (25년 전의 여중학교 방문)
새벽 4시 넘어 내가 잠이 깨면 대부분 동시에 일어나신 노길남 박사님은 컴퓨터 앞에 앉아 민족통신에 기사를 올리거나 어제 올린 기사를 살펴보는데 오늘은 내가 조금 늦게 일어나면서 바로 기침이 콜록콜록 나온다. 같은 방에 묵으면서 방 안에서는 나를 위하여 절대로 금연을 하기로 하셨는데 잠깐 일에 열중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담뱃불을 붙이신 모양이다. 아이구 미안하다시며 얼른 담뱃불을 끄고는 창문을 여신다. 평소 일할 때는 줄담배를 태우신다는데 그래도 나 때문에 많이 줄이게 되었다고 내가 편하도록 말씀하신다. 나도 왠만하면 그냥 편안하게 태우시라고 하면 되겠지만 담배연기를 마시고 나면 당장 목에 담이 차고, 조금 심하면 감기가 걸리거나 기관지염을 앓게까지 된 전력이 있어 나와 띠동갑이 되는 대선배님이지만 어쩔수 없어 담배를 자제해주실 것을 부탁드린 것이었다.
나와 같이 한 방에 묵지 않고 따로 방을 얻었으면 박사님은 더 편안하게 지내셨겠지만 북에서 머무는 동안의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사실 나로서는 그 바람에 북을 62번째 방문한 통일운동의 대선배와 같이 지내게 되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많았고, 필요한 사항을 미리 알려주셨는가하면 내가 궁금한 것은 바로 질문할 수 있어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의 이번 여행의 목적은 유명한 건물이나 관광지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여행은 이미 25년 전에 방문했을 때 충분히 보았으니 이번엔 북부조국의 제도와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깊이 공부해보려 한 것이니만큼 노 박사님이 민족통신 기자로서 여기저기 취재를 하는 곳에 나 또한 함께 동행하여 듣기도 하고 질문도 하며 답을 구했다. 한편 때로는 내가 방문하기를 원한 곳을 찾게 되어 노 박사님이 그것을 취재하기도 하였으니 이번 여행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미리 세수하고 준비했다가 어김없이 6시가 되자 호텔을 나와 아침 산책을 나선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약간의 새벽안개가 남아 있지만 참 좋은 날씨다. 먼저 대동강으로 향하여 전날과는 반대로 남쪽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입구에는 여전히 어제처럼 수많은 여성들이 아침체조를 하는가하면 그냥 열심히 걷는 사람들도 많다. 저멀리 양각도호텔이 마침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안개속에서 드러나면서 물그림자를 비춘다. 주로 남한에서 북을 방문하면 저 호텔에서 묵게 된다고 하는데 수십 층 높이의 엄청나게 큰 현대식 건물로 보인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을 하러 나온 평양 시민들
이쪽에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강가의 움푹하니 패인 곳엔 특별히 고기가 잘 물리는 곳인지 진을 치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데 그 모습들이 아주 진지하다. 저 강태공들은 우리보다 한참 더 일찍 날이 새기 전부터 이곳 낚시터로 달려나왔으리라. 일출에 그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아 사진으로 남긴다. 좀 더 걸으니 따로 줄낚시를 하는 어른이 8개의 낚싯줄을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리고 있어 잠시 대화를 나누는데 입질이 온다. 역시 이 분은 낚시 경험이 많으신지 놓치지 않고 입질이 세게 올 때 줄을 탁 채어서는 슬슬 잡아당기니 작은 손바닥만한 붕어 한 마리가 올라온다.
인근에 여학생 넷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노 박사님이 다가간다. 중학생들인데 모두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라 아침 산책을 나왔다고 한다. 각자의 옷차림도 다양해서 오늘 학교에 안가느냐고 물어보니 이미 방학이 끝나서 개학을 했기 때문에 학교가는 날이라면서 이제 곧 집에 가서 아침 먹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8시에 등교한단다. 그 중 한 학생에게 이담에 커서 무슨 일을 하고싶은가하고 물어보니 교원이 되고싶다고 한다. 이곳 북부조국에서 교원이 된다면 참 보람있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나라에서도 교원들을 귀하게 대접하기에 전날 전국에서 수많은 교육자들을 평양으로 초대하여 대회를 갖고는 옥류관에서 점심을 들게 하는 풍경을 보았지 않은가? 하긴 이곳에서 는 어떤 직업이라해도 모두 인민을 위해서 복무하는 것이니 그 일이 귀하고 보람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대동강에 새벽산보를 나온 여중학생들
나도 젊은 시절에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처럼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 길을 걷다가 한국에서 편히 공부를 계속하며 살 수 없어 이민자가 되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미국에 살면서 아무런 보수 없이 몇 년 동안 주말마다 한글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쳐보았으니 아예 선생님이 되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래 남한에서 후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았다. 분명히 좋은 선생님이 될 수는 있었겠지만 선생님으로 평생 살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한때 교직을 잃은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렇게 된 선생님들 가운데 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내 어렸을 적의 친구들 가운데 몇몇은 아직도 교직에 있으면서 지금은 교장선생님이 되어 근무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나 또한 두 갈래 갈림길에서 다른 한 길을 선택했으면 이렇게 교장선생님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인생은 짧고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내게 남은 시간을 나름대로 더 보람있게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리라. 바로 오래 전에 내 삶의 목표로 세웠던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나의 남은 삶을 보람있게 사는 것이리라.
여학생들과 헤어지고는 생각해보니 이번 방문에 따로 학교를 방문할 계획이 없는 것이 참 아쉽다. 그래 내가 25년 전 평양축전에 참여한 미주 지역의 동포들과 함께 평양 시내의 한 여자중학교를 방문한 것이 떠오르고 그 기억을 더듬어서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여기서 나눌까 한다.
25년 전 평양의 한 여자중학교의 수업 모습
그날 우리들은 몇몇 교실에 들러 수업을 참관하였는데 한 교실에서 우리들을 환영하기 위해서 꽃다운 여학생들이 예쁜 공연복으로 갈아입고는 가야금과 손풍금 등 여러가지 악기를 연주하는가 하면, 여러 종류의 노래를 불러주었고 또한 율동도 보여주었다. 그 학생들이 전문적으로 음악이나 율동을 전공하는 것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누구든지 악기 하나쯤은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예능교육을 하기에 그 공연은 어쩌면 정식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최상급의 공연과는 달리 북에서는 아주 평범한 공연이었는데 그런데도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엔 ‘고향의 봄’ 노래를 서로 분단된 남북 동포들이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하는 깊은 마음을 담아 울먹이며 불러주어서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었다.
89년 평양축전때 우리를 위해 공연한 평양의 여중학생들
공연 후에 우리들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아주 예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른 한 여학생에게 나중에 공부를 마치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그 학생은 자신은 농촌으로 가서 농삿일을 하겠다고 겸손한 태도로 말하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농사를 짓고 싶으냐고 하였더니 우리 인민들에게 필요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농촌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였다.
생각해보라. 평양이라는 북한의 수도에서 나고 자라서 좋은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머리도 좋고 노래도 잘하는 예쁜 여학생이 자신은 학교를 졸업하면 살기도 편하고 모든 인민들이 살고싶어하리라고 우리가 여기는 평양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조국의 식량생산을 위해서 농촌으로 가서 일하겠다고 할 때 그 사회 자체가 무엇을 중요시 여기며, 학교에서 후세들을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교육하고 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런 똑똑한 학생이라면 무엇을 해도 평양에서 할 일이 있을텐데 무엇하러 고생이 되는 농촌으로 가려고 할까하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 북부조국의 학생들은 내가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라를 위하여 어떤 보람된 일을 하면서 봉사하는가를 삶의 가장 귀중한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 학생이 당시의 11년 의무교육을 마치고 농업대학으로 진학하였을 수도 있고 전문학교를 거쳤거나 아니면 바로 농촌으로 원하던대로 가게 되어 일하게 되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그때쯤엔 북부조국이 제 2의 고난의 행군 시기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 학생의 농촌행은 아주 옳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 싶다. 무엇보다 식량이 부족하여 온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 학생은 일선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여 인민을 배부르게 할 수 있을지를 고심하며 온갖 노력을 다했으리라.
인간이 배고플 때는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며, 무엇보다 식량을 생산하는 일이 가장 값진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그 학생과 동료들이 20여년을 함께 그 어려움을 헤쳐나왔다면 그 결과 지금 북부조국이 식량을 거의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북부조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 자본주의 방식으로 판단하고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시기에도 평양을 떠나 아주 먼 농장으로 지원해서 가서는 사서 고생을 하지만 커다란 보람을 갖고 사는 어떤 중년의 남자에 대해서도 이후에 내가 소개하게 될 것이다. 내가 방문한 농촌에 실제로 젊은이들이 아주 많았던 것으로 보아 지금도 북부조국의 농촌은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리라. 여기에 희망이 있지 않은가?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피폐해져만 가는 남한의 농촌과 비교가 되지 않은가?
우리가 그 학교에서 떠나오기 전에 교장선생님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 가운데 지금도 아주 뚜렸하게 남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학교와 사회가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나 사회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모두 똑 같다 이말입니다. 학교에서 이것이 옳다고 가르치면 사회에서도 그것이 옳으니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가? 마치 남한의 학교와 사회의 다른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말한 것 같았다. 이곳에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앞 글에서 북의 연극이나 예술작품에서 일어나는 일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북부조국은 이론과 실제가 서로 맞닿는 사회인 것이다.
25년 전 우리들을 위해 노래와 춤을 보여준 평양의 여중학생들
내가 다녔던 실업계 고등학교 시절에 졸업 몇 달 전에 먼저 취업을 했던 급우들이 학교로 찾아오면 종종 이런 말을 했다. “학교와 사회는 다른 곳이다. 학교에서 하던대로 사회에 나가서 하면 절대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내가 처음 그 소리를 듣고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한의 그 시절은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때였으니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자면 그것에 맞춰서 살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었으랴. 그러니 그때만해도 덜 오염되었던 학교와 사회는 천지 차이였고, 이왕 사회에 나왔으면 그 사회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는다면 낙오자가 되기 마련이니 거기 맞춰서 잘 처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에 먼저 나간 친구들의 말이었다.
그런 그 시절의 학교와 사회에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어쩌면 이미 학교에서 학생들은 더 심한 경쟁을 겪으면서 극도의 개인주의자로 키워져 이후에 사회에 나가면 더더욱 심한 경쟁 가운데서도 나 혼자만이라도 살아남는 일에 일부 똑똑한 학생들은 잘 적응하게 되리라. 그런 학생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의를 추구하지도 않고, 바른 정치에 대한 관심도 갖지 않는데다 사회의 온갖 비리와 부조리에도 눈을 감고 있다. 예전의 대학생들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그래 이제는 학생들도, 근래에 학교를 졸업한 사회인들도 분단된 조국의 통일마저도 내 알바 아니라고 모른척 외면하는 것이다.
대동강변 공원의 잔디밭. 고향의 강아지풀이 생각나 사진으로 남김
우리의 2세 교육이 자본주의에서도 가장 추악한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유지하고 그것에 부합하도록 되어지는데 이대로 둔다면 교육자체도, 인격체인 학생들도, 그리고 그렇게 교육을 받은 학생들로 이뤄지게 될 이 세상 모두도 망치게 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아무 희망없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하루속히 교육도 정상을 찾아야 하고 세상 또한 1% 의 부자들과 재벌들의 세상으로부터 참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 어떻게 지금의 제도를 바꿀 수 있을지 남부조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리라. 사방에서 매스컴을 통하여 온 민중이 신자유주의로 세뇌당하고, 또한 북한을 모략하는 선전에 끊임없이 세뇌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과감하게 진실을 추구하고 모두가 통일을 꿈꾸며 통일운동을 확산시키며 살아가는 참 민중이 되고, 행동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 아닐까 한다.
아래 링크에서 북부조국 방문기 19회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seattle.com/main/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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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아주 의미있는 내용의 글 잘 읽었습니다.
학교와 사회가 다르지가 않다는 말씀이 아주 새롭습니다.
정말이지 그 말을 한 당사자분은 남한사회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있었던 분인 모양이군요.
북한이 진정 그런 사회인지의 여부는 고사하고서라도 한국에 사는
소위 지식인들은 모두가 한번씩 돌이켜 생각해볼 주제가 아닌가 합니다.
읽어갈수록 여행기가 보다 흥미진진해지는군요. 노고에 감사합니다.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글쓴이처럼 한국인의 한사람으로서 통일에의 열망을
강하게 지닌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현재 잘먹고 잘살고 있는데 공연히 통일할 필요가 뭐가있냐
하는 사람도 있고 잘살고아니고를 떠나서 굳이 버겁게 일을
만들어 합친다해서 남북 상호간에 좋을 일이 뭐가 있는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통일이 대박이라는 식으로 말을 해서 마치 통일하면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이 되고 유라시아로 연결되어 경제적으로로도
좋아지게 된다는 쪼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않습니다.
이는 현 정황을 전혀 고려치도 않고 그저 남한주도로 당연히
통일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한데 설령 그런 통일이라 하더라도
굳이 어렵게 그렇게까지 희망가지며 남북을 공연히 합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연히 북을 자극하여
상호간 관계가 더 나빠지게 된다는 우려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황에서, 글쓴이는 왜 한반도 통일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행여 앞뒤 생각없이 또한 확고한 목적이나 의식도 없이 젊은시절
한때나마 가졌던 꿈이기에 그냥 재미로 한번 밀어나가 보겠다는 것은 아닌지요.
아니면 배달민족으로써 당연히 합쳐야 하는 것아니냐는 당위론적 입장입니까.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갯가용 님, 북에서는 학교에서 옳고 성실하고 바르게 살라고 학교에서 배운대로 사회에 나가서 그렇게 살면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사회가 그렇게 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인권문제니하고 그곳은 인권자체가 없는 곳으로 너무도 허무맹랑하게 북을 모욕하는데 그렇게 학교와 사회가 똑같은 세상이라면 인권문제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겠지요.
우리가 매스컴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세뇌당하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몇 회 후에 통일헌장 탑에 들르게 될 때 좀 더 자세하게 거론하고 싶습니다.
오늘 여기서는 왜 안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의견이 있으면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어떤 부류들이 통일을 반대할까요? 대략 적어봅니다.
1. 내가 바로 친일 친미 사대매국노일 경우 민족 앞에 너무도 큰 죄를 지어서.
2. 민족의 분단으로 크게 이익을 보는 전쟁무기생산업자일 경우.
3. 가진 것이 제법 많아 아무 걱정 없이 앞으로 몇 대는 먹고 살 수 있는 경우 (1%에 들 경우)
4. 직업도 괜찮고 먹을 걱정은 않고 세상을 살지만 태어나자마자 늘 듣고 보고 느낀대로 북한이란 것은 모두 다 틀린 곳이기에 무조건 싫은 사람들 (전형적인 세뇌당한대로 사는 중산층)
5. 배운 것도 없고, 직업도 변변치 못하고, 먹고 살기도 힘들고 귀찮지만 통일이 되면 이정도의 자유마저 뺏겨서 강제노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 전형적으로 세뇌당한대로 사는 민초들)
6. 통일을 하면 막연하게 손해가 될 것이라고 여기는 학생층 (지난 7년 동안의 통일교육 부재로 인한)
황진우님의 댓글
황진우 작성일
제 생각은요,
나누기 싫은 자
벌 받기 싫은 자
속죄하기 싫은 자
바르게 건전하게 살기 싫은 자 들이 통일을 두려워하리라 봅니다.
황진우님의 댓글의 댓글
황진우 작성일검 경 군 법 언 정 이들은 통일이 된다면 거의가 도망을 가던지 자살을 할겁니다.
주체님의 댓글의 댓글
주체 작성일
자살까지나 할 정도 심지의 사람들이라면 그간에
그따위 못난 짓들을 할 엄두를 감히 냈겠습니까.
그동안 자식들을 보내 미리 살 곳을 마련해둔 미국 등지로
모두 도망가려 하겠지요.
새로운 역사교육과 정신교육만 일정기간 성심으로 수료하면
과거의 허물을 모두 용서받고 새로운 세상에 같이 편하게
동참할 수 있는데..공연히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는 것이지요.
스스로 켕기는데가 있어 그런 것이니 말리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정말 통일을 하게 되면 큰일이 날 사람들이 아주 일부 있을 것입니다.
민족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통일이 된다면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겠지요.
그외 사람들이 통일을 반대한다면 그건 각자의 터무니없는 상상 때문이라고 봅니다.
세뇌된 것이 워낙 깊다보니 그걸 뿌리뽑기는 어렵겠지요.
평화통일, 연방제통일을 북은 주장하는데 통일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전쟁의 방식으로, 아니면 남한의 방식으로 강행하게 될 경우 부작용이 많겠지만 일단 연방제는서로의 체제를 그대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한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통일로 인해서 손해볼 일이 전혀 없는 것이지요.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통일비용 어쩌고 하는데 통일비용은 오히려 북쪽에서 더 져야할 수도 있겠습니다. 남한이야 어차피 주민들의 복지에 돈을 쓰지 않고 알아서 살도록 하지만 북엔 직업에다 모든 복지에 집까지 지어줘야 하는데 만일 수많은 남한의 동포들이 북으로 간다면 엄청나게 비용이 많이 들겠지요.
갯가용님의 댓글
갯가용 작성일
사실 근래들어 한국에서는 통일비용이니 통일대박이니, 통일될 경우
남한에서 미리 신경써야하는 사회부문들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갑작스레 전에 하지않던 짓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암매도 추측컨데 황진우님이 말씀하신 부류의 사람들이 스스로 켕기는
점이 있어 이리저리 부산을 떠는게 아닐까 합니다. 무언가 갑작스레
자신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통일 비슷한 상황이 급작히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먼저 그런 정황을 주도하는듯한 모습을
억지로 내보이는 것이지요. 똥뀐놈이 먼저 성내는 모습이랄까요.^^
우리 남북이 왜 평화적 통일상태의 여건을 지향해야 하는지
몇가지 문장으로 명확히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반박이나 의문의 여지없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명쾌한 명분을 정리하여 세워두어야 하겠습니다.
꿀꿀이님의 댓글
꿀꿀이 작성일
남북 지도자들께서 만나셨을 때 명언을 남기셨지요.
우리가 강성하면 사대주의가 낄 틈새가 있겠느냐" ,촌철살인적인
말씀이라고 사려됩니다.
구한말의 노론파들이 나라를 팔아먹는데 일등적으로 발광했었으며
일제 강점시기에는 왜의 앞잡이로서 동포의 억압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
완장차고 개지랄을 떨었어요.
미군이 들어오자 스스로 반공"이라는 완장을 주워차고 양키의
똥구멍을 빨며 보신해 왔지요.
아주 변신에는 귀신도 곡할 자덜입니다.
강성한 통일조국이 이뤄질 상서로운 조짐이 뵈면 이자덜은 또 한 번의
기막힌 변신을 시도하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다 하겠지요.
가령, 재산의 잘반을 헌납해 통일조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던가
즈그 조상들은 소작농이었거나 심지어는 노비출신였다며 불쌍한 가닥을
찾으려 사력을 다한다든가...
물론 미국이나 일본으로 토끼는 도망로가 차단됐다든가
갸덜측에서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아 갈 곳이 막혀
도저히 아닐 경우 마치 똥개가 매맞기가 두려워 미리 엄살 겸 애교떠는
모드를 취할 개연성이 큽니다.
매국친일파가 저런식으로 미군정에 빌붙어
기막히고 더러운 역사가 계속 됐지요.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이나
냉정한 잣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사려됩니다.
이번 세월호대참사"를 전동포가 애도하며
눈물짓고 있는데....전반적인 분위기가 술먹고 노래방가는 곳을
삼가는 분위기 입니다.
형평성을 잃은 세금먹는 하마인 공원연금을 조금 삭감한다고 하자
전철밥통들이 난리가 났지요.
어이가 없는 건 세월호 대참사"에 대한 망극의 표현조차도
없습니다. ㅊㅊ
나랏밥을 먹는다는 인텔리층이...소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공복"이.....
논지에서 다소 벗어났으나 몇자 끄적여 봤습니다.
북부 조국방문기"를 의미깊게 보고 있답니다.
덕분에 다소나마 눈이 뜨이는 느낌입니다.
건강하십시요.
감사합니다.
비모차나님의 댓글
비모차나 작성일
좋은 글 이렇게 나누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궁금해지는 게 있어서 말인데요.
매년 국가별 행복지수도를 평가하는 게 있잖아요. 노르웨이나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스칸디나비안 나라들이 상위를 늘 기록하던...
북한도 이 평가대상에 포함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혹 그렇다해도 외부적 시선과 평가기준으로 북을 제대로 가늠할 순 없기도 하겠지만,
혹 북한 동포들의 행복지수는 몇위 정도로 평가되어왔는지 궁금하네요.
북한이 이 대상에 포함된다면 어쩌면 최상위권에 들 것 같은데요,
이런 외부적인 기준으로 인정을 받으면, 그동안의 세뇌화로 인해 굳어버린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인 깨어남이 될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냥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비모차나 님, 저도 현재의 북부조국 인민들의 스스로 느끼는 행복지수는 최상위에 들어가리라고 여겨집니다. 외부적인 평가가 아니고 인민들 스스로의 주관적인 평가를 하도록 좋은 설문지를 만들면 그것을 조사하는 일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