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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그리고 탈북자들의 삐라에 실린 독재자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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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2건 조회 11,114회 작성일 14-10-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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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항상 이 때가 오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당시 청운국민학교 5학년에 재학중이던 때였고,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방과 후엔 개구쟁이 친구들과 함께 궁정동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청와대 인근은 언제나 경비가 심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했지만, 우리 개구쟁이들에겐 '해방구'였습니다. 심지어는 궁정동 파출소에서 경비를 서던 순경 아저씨들조차도 우리들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했으니 아이들이 놀기엔 더 안전하리라고 판단했을 거라는 생각이 아주 나중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다른 날과는 달리 순경 아저씨가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고, 바리케이드를 지나가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느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궁정동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놀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의 일이었습니다. 숙제를 하는데 콩 볶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궁정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누하동에 살았던 터라, 그 소리는 너무나 확실하게 들렸습니다. 어른들이 모두 "무슨 일이지?"라며 웅성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외'란 걸 뿌리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호외요! 호외요!"를 외치며 거리를 누비며 낱장짜리 신문 뭉치를 하늘로 던지는, 교복을 입었지만 그래도 앳돼 보이던 키 작은 중학생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남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 호외를 집어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사진이 크게 박혀 있었던 호외의 제호는 국민학교 5학년생은 알 수 없는 한자들이었지만, 저는 이게 무슨 말인가를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유.고."  청운국민학교 옆의 문방구 아저씨는 저에게 이 말을 또박또박 읽어 주었었습니다. 

"유고가 뭐예요?" 

"대통령 '각하'가 아프신가봐." 그리고 저는 문방구 아저씨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못했습니다. 아저씨는 그 호외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야 어머니께 여쭤보았습니다. 

 

"유고가 뭐야?" 

"응... 대통령이 일을 지금 못 하게 된 거야." 어머니도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어른들끼리 쑥덕거리던 것이 기억납니다. "죽었나봐." "죽은거야?" 

 

제 기억은 대략 이런 것들이고 아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 직에 앉아 있는 분에겐 트라우마가 확실한 날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비련의 공주'의 신화가 완성된 날이기도 합니다. 일찌기 '인자하고 우아한 국모님'을 흉탄에 잃었는데, 그 아버지마저도 부하의 흉탄에 간, 그래서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한 공주의 스토리가 국민들에게 각인된 날인 것이지요. 

 

그리고 보면, 박근혜 씨는 인간적으로 참 불쌍한 사람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속으론 본인의 잘못 때문에 아버지가 가셨다는 그런 참회는 하고 있지 않을까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이미 언론을 통해 지금은 공개되어 있는 재판 기록에서 "근혜 양이 구국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온갖 부정비리를 저지르는 최태민을 너무 감싸고 돌았고, 각하께 말씀을 드렸으나 각하께서는 그 말씀을 듣고 직접 최태민을 국문하시기도 했으나 영애가 최태민을 그래도 감싸고 돌았다.." 며, 이런 것들이 차지철과의 알력으로, 그리고 결국 10.26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됐음을 시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집권할 때와, 그 딸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 서른 다섯 해의 세월의 무게를 무색할 만큼 그때와 지금이 많이 닮아 있다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 합니다. 최근 탈복자들이 북으로 삐라를 풍선에 매달아 날리려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저지로 인해 불발에 그친 바 있습니다. 그 삐라의 내용을 봤더니 이런 것이더군요.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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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님의 댓글

주체 작성일

자신이 지닌 허물을 스스로 고발하고 있는 셈이나
진작 그 자신은 그게 자신의 일인지를 모르고 있으니...
그래서 김영삼옹께서 일찌기 그미를 그렇게 불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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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동님의 댓글

궁정동 작성일

와! 그 당시 국5에 자전거라?? 혹 3발 자전거가 아니라면 역시 청운애들은 틀려도 뭔가 틀리군요!!! ㅎㅎ 종상씨 집안이 재벌이 거나!! ㅎㅎ 난 대학생이 되서나 가정교사 월급 모아서 중고 자전거 처음으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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