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조국 방문기 59. 천리마운동과 강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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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 59
천리마운동과 강계정신
추석날 낮의 평양 거리는 명절이라 한산한 편이지만 친지들을 방문하러 오가는 인민들로 큰길에는 버스와 승용차도 제법 다니며 여유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모란봉을 향하여 가는 동안 시가지를 지나며 차안에서 추석날의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저만큼에서 개선문이 보인다. 내가 25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저 개선문을 함께했던 미주동포들과 답사하며 설명을 들었는데 오늘은 그 아래로 차를 타고 지나친다. 개선문 윗편 벽에는 김일성장군의노래가 새겨져있다. 조국을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노라는 맹세를 하고 1925년에 다시 압록강을 건넜던 김주석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동지들과 함께 눈보라 속에서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을 거쳐 1945년 해방을 이루어 인민혁명군과 함께 힘차게 조국으로 개선한 것을 기념하는 탑이다. 내가 지난 방문기 40회에서 그 노래에 대하여 썼는데 오늘은 개선문의 사진을 여기 남긴다.
개선문 아래로 지나면서
차가 모란봉으로 다가가는데 저쪽 언덕에 천리마 동상이 세워져있다. 달리는 차안에서 사진으로 남길 수 없었기에 여기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을 참고로 사용한다. 천리마 동상에 대하여 김미향 안내원에게 질문을 하자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전쟁때 평양은 인구가 40만이었는데 미국은 폭격으로 폭탄을 42만개나 퍼부었다고 한다. 인구 한 사람당 폭탄을 1개 이상 사용한 셈이니 그 폭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하였겠는가. 건물 하나, 집 한 채도 성하게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북부조국 인민들이 미국을 철천지 원수라고 여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폭격으로 땅위의 모든 공장들도 파괴되었다. 그렇지만 전후복구사업을 늦출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철강이었다.
“어려울 때 인민을 찾아가는 것이 수령님의 방식이었습니다” 라며 김미향 안내원은 모란봉 주차장에 도착하여 공원길을 걸으면서 계속해서 설명을 해준다. 강선제강소를 찾아간 김주석이 철강 노동자들 앞에서 현재 연간 선철 6만톤을 생산하고 있는데 거기서 1만 톤만 더 생산할 수는 없겠는가하며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고 호소하였다. 얼마나 나라 사정이 어려우면 김주석이 직접 찾아와서 노동자들에게 철강증산을 부탁하였을까하고 노동자들은 9만톤을 생산하겠노라고 결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야말로 피땀흘려 생산에 매진한 결과 그해에 무려 12만톤의 선철을 생산하게 되었다.
모란봉 공원길에서 천리마운동과 강계정신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는 김미향 안내원
그렇게 철강생산을 두 배로 늘이게 된 것을 보고받고는 김주석은 “이것이 바로 천리마다. 남들이 한 걸음 걸을 때 우리는 천 걸음을 걸어야 한다”라며 온 나라에 호소하였는데 1956년에 일어난 이 천리마운동은 북부조국 최초의 대중운동이었다고 한다. 천리마운동으로 온 인민이 떨쳐일어나 혼신을 다하여 사회주의공업화를 완성하게 되었다. 미국이 북부조국에 대하여 백년이 걸려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고 큰소리를 쳤다는데 이 운동으로 전후 14년만에 목표로 했던 공업총생산량을 달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부조국의 대중운동은 막연하게 생산만 증가시키는 운동이 아니었다. 바로 인민을 각성시켜 인민들 스스로가 주인된 마음으로 개인(하나)은 전체를 위하여, 그리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산다는 의식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의식혁명을 통하여 각자 온 힘을 쏟아부으며 전후복구사업을 해낸 것이다. 나라를 일으켜세우는 기초를 외부의 물질적인 요인에 두지 않고 바로 인간의 사상혁명에 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으로 기존의 생산수단은 크게 파괴되었고 외부세계로부터의 지원은 너무도 제한되어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서 인민의 의식혁명을 일으켜 전후복구사업을 해결해낸 것이다. 바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사상을 실제로 인민들이 이런 대중운동을 통하여 생활 속에 도입하여 직접 경험하고 성공적으로 이뤄냄으로서 그 사상이 진리라는 것을 검증받게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천리마 동상 (인텨넷 자료)
북부조국 최초의 대중운동인 천리마운동은 그 뒤를 이어서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사상, 기술, 문화혁명), 숨은영웅따라배우기운동, 희천속도정신, 강계정신창조운동, 라남의 봉화 등으로 이어졌는데, 북부조국이 강대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고립되어 그야말로 제2의 고난의행군 시절을 당하였을 때에도 이와 같은 대중운동은 그런 극단적인 시기를 돌파하고 인민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부여하는 운동이 되었다. 이런 대중운동은 어떤 지역에서 먼저 시범을 보여주게 되고, 그것이 전국으로 확산되어지는데 그 모든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김미향 안내원이 말해준다.
내가 근래에 읽게된 ‘강계정신’이라는 북부조국의 소설로 바로 위에 든 강계정신창조운동을 깊숙히 알게 되었는데 북부조국에서 고난의행군시절 식량의 터무니없는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전기공급이 거의 끊어지게 되어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곳이 바로 자강도였다.
그런 자강도에 김정일 위원장이 가장 관심을 보이면서 소형수력발전소 건설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전기난을 해결하도록 지침을 내리자 온 인민의 각성과 단결로 한 두개도 아니고 무려 29개의 소형수력발전소를 6개월만에 건설해가는 과정을 읽는 중이다. 북부조국에 대한 경제봉쇄로 인하여 자강도의 공업시설들은 전기부족으로 노동자들이 일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생산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공업생산이 중단되면 자강도의 인민경제가 도저히 회복할 수없음에 그 대책으로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여 해결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전기생산을 위하여 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하자니 시멘트가 필요한데 만포시멘트공장에선 석탄이 공급되지 않아서 시멘트 생산이 중단되고 있었고, 석탄 탄광에선 전기공급이 끊어져 침수된 갱도의 물을 퍼낼 수 없어서 석탄생산이 중단된 그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서로 맞물린 어려움을 자체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고난의행군 극복을 인민이 지혜를 모으고 의식혁명을 통하여 자주적으로 이뤄낸 것이다. 그러니 최악의 조건이었던 자강도가 강계정신으로 고난의행군을 이겨낸 것이 모범이 되어 그곳보다 나은 환경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 대중운동이 확산되고 강계정신으로 무장한 인민들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노력하여 드디어 고난의행군을 마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근래에 인터넷을 통하여 읽고 있는 소설 강계정신
사람들이 열심을 다하여 단결하고 창조적으로 일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북부조국의 이런 대중운동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을 더 주는 것으로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데 노동자들이 돈만 많이 준다고 자신의 일을 신명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고 나면 힘든 일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돈을 더 준다해도 그보다는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이 몇배에서 몇백배의 보수를 더 받는 것이 자본주의다. 그래 남부조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힘들고 어려운 노동을 하려는 사람이 없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인간에겐 스스로의 맡은 일이 중요한 일이란 것을 깨닫고, 자신이 직장에서 이뤄낸 것을 통하여 자신과 가족과 그 직장의 성원들과 온 나라에 이익이 되고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자각하면서 자신의 하는 일을 사랑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제도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이뤄졌다면 지속적으로 인민을 교육하고 계몽하여 개인이 나태해지고 태만해지지 않도록 이끌어나가야 한다.
혁명이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회개혁을 이뤄나가면서 인간의 성품 또한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미 피흘려 이루고 지켜낸 그 사회가 쇠퇴하고 타락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의 사회로 발전되어지도록 해야 하며 그것은 결국 새로워진 인민들의 몫인 것이다. 동구의 사회주의가 그것을 이루지 못하여 모두 무너졌지 않은가? 그에 반하여 북부조국은 사상혁명으로 인민들이 새롭게 된 사회다. 그런 새로운 사회에서 저런 구호들과 대중운동은 식어질줄 모른다. 그런 열정이 있고 지속적인 개혁이 있는 사회는 희망이 있다. 북부조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활기차고 차원 높은 사회로 지금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추석날 낮의 평양시내 거리풍경
내가 남부조국에서 청년기에 접어들 무렵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라는 구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라디오를 통하여 들었다. 그 구호는 참 좋았지만 그것은 거짓구호에 불과했다. 당시의 사회는 성실하게 일만 열심히 해서 잘 사는 사회가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 바로 부정과 부패와 불법으로 이뤄진 박정희의 유신정권에서 그런 구호를 외쳤던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돈을 잘 벌고 잘 살려면 그 불의한 사회에 맞춰서 눈치껏 살아야지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한다해서 어떻게 잘 살 수 있었으랴 생각하니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어렸을 때 북부조국의 저 천리마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에 대하여 우리는 북부조국이 인민을 억압하고 강제노동을 시키는 정권으로 배웠다. 학교에서 북부조국의 새벽별 보기 운동도 들었고 밤중별 보기 운동도 들어보았다. 날이 밝기 전부터 일터로 나가서 캄캄한 밤중이 되어야 강제노동을 마치고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북부조국의 인민들이 물론 한때 그렇게 심하게 육체적인 노동을 하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로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을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하여 온 인민이 스스로 자각하여 나선 차원높은 노동이었지 우리가 세뇌교육을 받은 것처럼 총칼로 억압하는 그런 강제노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민주적인 사회주의 정권에서 인민들에게 무엇때문에 강제노동을 시킨다는 말인가? 강제노동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이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일뿐 북부조국은 생산이 증가하는 만큼 그 이익을 농장이나 공장의 주인인 인민이 공유하는 세상인데 누가 무엇을 위하여 강제로 노동을 시킨다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들은 아무런 논리를 갖추지 못한 반공을 그저 주입식 세뇌교육으로 학교와 사회에서 배워왔던 것이다.
민중 스스로가 지금까지 당해온 세뇌교육에서 깨어나 통일을 외치려면 북부조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데 그건 보안법으로 막는 세상이다. 얼마나 수많은 애국자들이 지금도 보안법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고 그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는가. 의식있는 모든 민중은 외쳐야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민중의 기본적인 권리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당장 철폐하는 것이 바로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되찾는 길이고 통일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페이스북 통일그룹 '우리는하나'로 통일을 꿈꾸는 민중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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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광개토왕님의 댓글
광개토왕 작성일
참으로 새겨들을 가치가 있는 내용의 글로 생각됩니다.
백보 양보해서 설령 북한이 추구하는 사상이나 사회운동 등이
이상적이거나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러한 북한 사회가 와해되지않고 여지껏 많은 굴곡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타국들과는 달리 지금의 당당한 위치에 와있음은 글쓴이의
북에 대한 추정과 인식이 거의 틀리지 않음을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천리마 운동 등 그 상세 근거를 이해하게되어 도움이 되어 감사합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광개토왕 님, 소설 강계정신은 지금 조선의 오늘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는데 아직은 초 중반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사상혁명이 없었다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지 못하였을 정도로 당시의 경제봉쇄는 가혹하였던 것을 이 소설을 통하여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링크를 걸어보겠습니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소설 강계정신은 녹음이 되어 있어 눈이 피로한 분은 플레이를 누르면 들을 수도 있습니다.
http://www.dprktoday.com/index.php?type=3&page=2
그리고 총검을 들고 소설도 함께 올려져있는데 그 소설도 같은 시대의 배경입니다. 제가 막 읽기 시작하였는데 모두와 나누고 싶군요. 어떻게 고난의 행군을 헤쳐나왔는지를 알게 되면 앞으로의 조선의 앞날이 얼마나 밝을지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