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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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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257회 작성일 15-12-02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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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로동법령초안을 검토하시던 장군님께서는 김책이 들어서는 바람에 색연필을 놓으시였다. 김책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번 장마로 남조선지역이 큰물피해를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서울방송으로 수자를 불어대긴 했는데 실상은 더 참혹한것 같습니다.》

김책은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게 된것이 자기 잘못이기나 한듯 무거운 표정을 바꾸지 못하고 들고온 서류중에서 필요한 대목만 읽어드리였다. 6월 중순의 보리장마로 남조선각지에서 수해를 입었는데 특히 서울지방의 수해가 제일 우심하다고 했다.

한강의 물이 불어나면서 숱한 사람들이 사망하고 많은 주택이 침수되였으며 수천정보의 논밭이 물에 잠기였다. 게다가 폭우로 교통이 두절되여 서울지방에서는 쌀값이 대폭 뛰여올라 시내주민들이 고통을 겪고있다고 했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이 읽어내려가는 수자를 들으시며 안색을 흐리시였다.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지금까지 <림정>법통을 계승한다던 최동오선생까지 <좌우합작>놀음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판인지 모르겠습니다.》

《최동오선생은 <제갈공명>이라는 별명을 들을만큼 사리에 밝은분인데 그 놀음에 끼여든걸 보면 놈들의 술책이 그만큼 교활하다는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에게 놈들이 벌려놓은 좌우합작의 내막을 알기쉽게 까밝혀주시였다.

불과 한달전까지만 하여도 미군정청은 쏘미공동위원회를 결렬시킨 후 소위 민주의원의장 리승만과 김구, 김규식을 우익 《3령수》로 내세워 남조선단독정부조작을 꾀하였다.

그것이 저들의 뜻대로 되지 않고 리승만에 대한 실망이 커지자 미군정청은 좌우익의 대립에 불만을 느끼고있는 애국적민주인사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악용하여 좌익의 려운형과 우익의 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좌우합작극을 연출하게 되였다.

《좌우합작》의 표면상 명분은 결렬된 쏘미공동위원회를 재개하도록 하며 좌우가 합작하여 통일적민주주의의 림시정부를 세우자는것이지만 실제로는 남조선의 애국적민주세력을 분렬와해시키고 미군정을 기반으로 《남조선과도정부》를 조작해내기 위한것이였다.

《좌우합작》의 산파역을 담당한 하지의 정치고문 버취의 궁냥대로 하면 좌우익이 대립되여있는 현 상황에서 《합작》은 국민이 바라는것이며 결국 《좌우합작위원회》가 나오면 앞으로 탄생하게 될 과도정부의 모체로서 통일적민주주의성격을 세상에 납득시킬수 있다는것이였다.

《그럼 남조선의 정객들이 왜 이런 유치한 놀음에 말려들었는가?》

장군님께서는 가슴이 답답하신듯 원탁우에 놓인 주전자에서 물 한고뿌를 부어마신 다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민중과 동떨어져있기때문입니다. 앞으로 진보적인 좌익세력은 물론이고 우익의 민주인사들도 미제의 속임수를 깨닫고 정신을 차릴 때가 오긴 하겠지만 그들이 인민에 대한 사랑을 자기의 정치리념으로 간직하고있었다면 이런 회오리바람에 흔들리지 않았을것입니다. 이번 수해도 결국은 인민이 외면당하고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장군님의 음성은 격해지시였다. 일제의 식민지기반에서 해방된 조선사람들이 또다시 새로운 주인들의 무관심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하시니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 없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이 나간 뒤에도 한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집무실을 거니시다가 아까 밀어놓으시였던 로동법령초안을 당겨놓으시였다. 벌써 두번째로 보시는 초안이였다.

그이께서는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법령의 매 조항마다에 조선로동계급에 대한 사랑을 쪼아박고싶으시였던것이다.

맑스의 경제사관에서는 인류발전력사를 생산력발전의 력사, 생산도구의 교체의 력사라고 했지만 장군님께서는 이 법령에서 생산의 주인인 로동계급의 지위를 새롭게 천명하고싶으시였다.

맑스의 잉여가치학설도 결국은 로동자들이 자본가에게 더 많은 로동시간을 착취당하는것을 인정한데서부터 생겨난 리론이다.

만약 고률리윤을 짜내는 자본가가 없고 로동계급이 물질적부의 창조자인 동시에 향유자가 되였더라면 애당초 잉여가치학설은 성립되지조차 않았을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바로 그런 세상, 로동자들자신이 공장의 주인, 생산의 주인이 되는 로동계급의 참세상을 이 땅에 세우고싶으시였었다.

지나온 력사를 돌이켜보면 1802년에 영국에서 처음으로 《로동법》이 출현한 때로부터 여러 자본주의나라들에서도 《로동법》이 존재했지만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의 모순을 인정한 사회제도하에서의 《로동법》이 로동자들의 리익을 옹호하면 얼마나 했겠는가, 때문에 일찌기 로동운동의 선각자들은 로동운동의 력사는 로동시간함축의 력사라고 했었다.

장군님께서는 로동계급의 민주주의적해방을 철저히 실현하며 그들의 사회경제적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가장 인민적인 로동법령을 조선로동계급에게 안겨주고싶으시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일정한 사회력사적제조건이 성숙되였다고 볼수 있었다.

다시말하면 근로인민대중이 정권의 주인이 되였고 해방과 함께 일제와 그 주구들이 가지고있던 공장과 광산, 은행을 비롯한 생산수단이 로동계급의 수중에 장악되였다. 예전에야 로동자들이 아무런 권리도 없이 식민지적착취와 압박속에서 비인간적인 노예로동을 강요당해오지 않았는가.

장군님께서는 초안을 밀어놓으시고 지난날 조선로동계급의 가혹한 로동실태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집어드시였다. 해방전 《동아일보》를 비롯하여 서기가 구해온 자료들에는 로동자들이 2중3중의 식민지적착취를 당하며 기아와 빈궁속에서 신음하던 피눈물나는 력사가 수자적으로 기록되여있었다.

일제는 식민지초과리윤을 짜내기 위하여 조선로동자들에게 하루 14~16시간의 로동시간을 강요하였다. 조선인로동자들은 이처럼 긴 로동시간을 강요당하면서도 《렬등민족》이라는 천대와 멸시속에서 일본인로동자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았다. 일제는 로동자들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면서 아무런 로동안전대책도 세우지 않았고 징용, 보국대로 본토에 끌어간 백수십만명의 조선로동자들에게 노예로동을 강요했으며 심지어 군사시설장에서는 비밀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생각만 해도 원통한 수난의 력사는 영영 끝장이 났다. 이제부터는 로동계급이 참다운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지니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떠받들리워야 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색연필을 드시고 8시간로동제, 로동에 대한 보수문제, 로동자들의 휴가제, 로동안전문제, 특히 녀성로동자들에 대한 우대제 등 법령초안의 매 조항들에 자신의 진정을 부어넣으시였다.

1946년 6월 24일.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9차회의를 소집하시고 《북조선 로동자, 사무원에 대한 로동법령》을 발포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후에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상무위원회를 지도하시면서 농민들의 부담으로 되였던 가렴잡세를 페지하고 곡물수확고의 25%를 국가에 납부하는 농업현물세제를 실시하시였다.

그날 저녁 장군님께서는 김책과 안길을 비롯한 백두산시절의 동지들을 저택으로 초청하시였다.

《며칠전에 로동법령을 발포한 날도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오늘까지 그냥 보내면 동무들이 섭섭해할것 같아서 식사나 같이하자고 불렀습니다.》

김책은 버릇처럼 두손을 마주비비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닌게아니라 오늘 저녁엔 장군님을 찾아와서 인사를 올리자고 저희들끼리 약속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 안길동무랑 림춘추동무랑 농사군출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뭐 우리만 좋아했습니까? 김책동지야 농사군이 되고싶다고까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농민들의 기쁨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림춘추의 말에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방가운데 놓인 긴 식탁에 모두를 둘러앉히시였다.

《농민들이 좋아한다면 됐습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농사군의 리익을 이처럼 철저히 옹호해주는 법령을 갓 해방된 우리 나라에서 발포했다는건 세상을 놀래울만 한 사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로동법령이나 농업현물세제실시나 그 어느 나라를 뒤져봐도 찾아볼수 없는 가장 인민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법령이며 토지개혁과 대등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것으로서 로동자나 농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것을 세상에 선포한 선언문과도 같은것입니다.》

림춘추는 정말로 선언문을 랑독하듯 일사천리로 내리엮었다.

림춘추가 저런 론조로 말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해야 했다. 할수없이 김책은 그만하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 력사적의의는 력사가들에게 맡기고 당장은 장군님께 축배부터 드립시다.》

그러면서 부엌에 대고 제집에서처럼 큰소리쳤다.

《정숙동무, 거 있는대로 들여보내시우.》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정숙동지께서 쟁반에 감자를 무드기 담아들고 들어오시였다. 감자와 인연이 깊은 북쪽내기들이여서 그런지 모두 환성을 올렸다.

《벌써 햇감자가 나왔소?》

《예, 햇감자예요. 평원군의 농민이 분여받은 제땅에서 수확한 첫 열매를 장군님께 올려온것입니다.》

모두들 식탁가운데서 김을 문문 피워올리는 햇감자를 신기한 보물처럼 바라보기만 했다. 하긴 그것을 어찌 무심히 대하랴. 이 나라 농민들이 처음으로 제땅에서 제손으로 거두어들인 자기의 재부인데 그게 보물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내 동무들한테 편지를 하나 보여줄게 있습니다. 이 감자를 보내온 농민이 써보낸것인데 한번 읽어들 보시오.》

장군님께서는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시여 옆에 앉은 안길에게 넘겨주시였다. 안길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나서 소리내여 편지를 읽었다.

《김일성장군 전 상서

조선민족을 해방시켜주시고 무산대중을 건져주신 은혜는 백골난망이오나 크신 은혜를 보답할길이 막연하와 우선 제땅에서 캐낸 감자를 보내오니 약소타 꾸중말으시고 받으시오면 저는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김일성장군 만세!》

장군님께서는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으로 꽁다리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한자한자 땅처럼 진실한 자기의 마음을 담아보낸 생면부지의 그 농민을 그려보시며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좌중의 침묵을 깨뜨리시였다.

《이 감자를 보낸 농민도 농업현물세제실시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더 기뻐할것입니다. 식기 전에 하나씩 들면서 이야기합시다. 감자는 따끈할 때 후후 불면서 먹어야 제맛이지요.》

장군님께서는 매 사람에게 감자를 한알씩 집어주시고 자신께서도 감자껍질을 벗기시였다.

《우리가 인민의 나라를 세운다는것은 결국 인민이 잘사는 나라를 세운다는것인데 그러자면 인민의 리익을 철저히 지켜주는 법을 만들어내는것은 당연한 리치가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로동법령을 발포하고 농업현물세제가 실시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는 근로대중이 나라의 주인이라는것을 법적으로 담보한셈입니다.

이 위대한 세계사적변혁이 바로 북조선에서 이룩되였습니다.》

《장군님!》

김책은 격정에 넘친 어조로 흉금을 터놓았다.

《전 지금 온 세상에 대고 새 나라 만세를 부르고싶은 심정입니다. 이 편지를 쓴 농민처럼 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흥분을 걷잡지 못하고 들썩거리는 동지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하긴 우리가 이런 날을 보자고 혈전만리를 헤쳐온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김책동무! 동무들! 우리 아직은 만세를 부르지 맙시다. 아직은 할 일이 많습니다.》

부엌에 내려가셨던 김정숙동지께서 매 사람앞에 모두부접시와 술잔, 수저를 놓아주시고 차례로 술을 부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정숙동지께서 술을 다 부으실 때까지 기다리시였다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아직은 중요산업을 국유화하는 문제,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포하는 문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는 문제 등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파괴된 산업도 하루빨리 복구해서 경제를 살려야 하고 종합대학도 세워야겠고…

또 당면하게는 보통강개수공사를 장마철전에 꼭 완공해야 합니다. 이 공사를 완공해야만 인민들은 자기들의 무궁무진한 힘을 믿게 될것이며 인민의 나라를 세우려는 새 정권의 진정을 더 잘 알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이번에 로동법령과 농업현물세제실시로 앙양된 인민들의 혁명적열의를 총발동하여 보통강개수공사를 마감짓기 위한 대중적돌격운동을 더 힘있게 벌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공사가 완공되여 토성랑사람들이 <새 나라 만세!>를 부르는 날 우리도 <인민 만세!>를 부릅시다. 그날을 위하여 잔을 듭시다!》

장군님께서 잔을 드시자 투사들도 일제히 잔을 높이 들었다.

이튿날부터 평양시당과 시인민위원회에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로동법령 및 농업현물세제실시경축 돌격운동을 발기하고 시민들이 이 운동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호소하였다. 공사현장에서는 보통강개수공사향토건설대 로동법령 경축대회를 열고 대중적돌격운동을 벌릴것을 결의하였으며 김일성장군님께 자기들의 맹세를 담은 편지를 삼가 올리였다.

1946. 7. 1 《정로》1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님께 드리는 편지

우리 향토건설대원들은 이번에 발포된 위대한 로동법령을 절대지지환영하며 로동법령을 경축하는 보통강개수공사 제2차 돌격운동을 벌리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공사를 예정기한을 앞당겨 완성함으로써 민주건설의 방해물을 그것이 인간이든 대자연의 홍수이든 제거하고야말것을 위대한 장군님앞에 맹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단결하여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의 힘과 우리의 손으로 아름다운 조선민주건설을 완성하기 위하여 언제든지 계속 용감히 투쟁할것을 장군님앞에 다시한번 맹세합니다.》




56

 

며칠만에 집에 들렸던 명덕은 다음날 아침일찍 통근렬차를 타기 위해 사동역으로 나왔다. 공사지휘부에서 발파조에 따로 가설건물을 지어주고 침식을 보장해주는 덕분에 그는 며칠에 한번씩 이렇게 집을 다녀가군 한다. 집에 홀로 계시는 늙은 아버지는 명덕이가 오면 자기 걱정은 말고 일만 잘하라는데 왜 또 왔는가 지청구를 하면서도 공사장소식을 꼬치꼬치 캐묻군 한다.

《네가 발파대장이 됐다구?》

《대장이야 뭐… 그저 책임지구있어요.》

《그게 그 소리지. 부하가 몇이냐?》

얼마전에 발파조책임자가 다른데로 가는 바람에 명덕이가 책임을 졌는데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일러준 모양이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다섯이예요.》

《네가 용쿠나. 그저 일이 사람이다. 대장이라구 호령질만 말구 너부터 오륙을 아끼지 말아라. 집걱정은 안해두 된다.》

아버지의 말은 사실이였다. 나라에서 잡곡이나마 식량공급을 해주고 함께 밥벌이하던 지게군들이 자기네 동료가 대장이 됐다면서 여러가지로 집일을 도와주는 덕에 명덕은 일에만 전심할수 있었다.

일찌감치 역에 나오느라 했는데 벌써 숱한 사람들이 렬차를 기다리고있었다. 이윽고 대피선에 있던 렬차가 홈에 들어서자 서로 먼저 오르겠다고 밀치닥거리며 혼잡이 이루어졌다.

명덕은 여느때와는 달리 사람들의 혼잡속에 끼우지 않고 한옆에 물러서있다가 좀 즘줏해진 다음에야 렬차에 올랐다.

발파대책임자라는게 일반 건로대원들처럼 처신해서는 안된다는 인격관념이 상사말같던 그를 점잖은 사람으로 다듬어놨던것이다.

가운데쯤 들어가니 마침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 조금후에는 차시간을 맞춰나온 사람들이 연방 밀려들면서 통로까지 꽉 메워버렸다.

명덕이앞에는 나이든 녀인이 바투 붙어서있었다. 점심밥곽을 옆구리에 낀걸 보니 녀맹돌격대가 분명한데 아마 집에서 뒤거두매까지 하고 나오느라 늦은 모양이였다.

명덕은 움쭉 일어나며 의자모서리를 잡고있는 그 녀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여기 앉으시라요.》

《아이구, 일없어요.》

뜻밖의 호의에 당황해진 녀인은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그러자 맞은켠에 앉았던 사람이 훈수를 들었다.

《아주머니, 앉으시우, 젊은 사람이 권하는데 거절하면 안되지요.》

옆에서들 한마디씩 해서야 녀인은 송구함을 감추지 못하며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차안의 분위기는 자연히 화기애애해졌다.

《해방이 되더니 베천같던 사람들의 마음도 비단같아졌수다.》

맞은켠에 앉은 사람이 또 한마디 칭찬하는 바람에 명덕은 쑥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서는 흐뭇한 기분에 몸이 둥 뜨는것 같았다. 그 사람의 말이 옳았다.

예전에는 착하게 살아야 할 리유가 없지 않았던가.

그 시절에는 자기자신과 제 집안일이 제일 걱정스러웠었다. 그런데 공사장에 나와 사람들과 섭쓸리면서 명덕은 애국자가 돼야 한다던 임성민의 말이 조금씩 리해되는듯싶었다. 지금은 제집근심이 작아지고 대신 공사일이 더 걱정스러워졌던것이다. 예전에는 자기의 울분을 대변하여 걸핏하면 휘둘러대던 주먹도 이제는 부드러워진 제 마음을 닮아 공손해지고 오직 창조를 위해서만 힘껏 틀어쥐군 했다.

그래도 명덕은 자기가 얼마나 성장하였는가를 의식하지 못하고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명덕은 작업조직을 하고나서 지휘부에 화약을 타러 올라갔다. 자재부에서는 로이문이 혼자 앉아있었다.

《요샌 임자보기가 힘들구만. 책임자가 되더니 이젠 봉수국수집같은 눅거리음식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건가?》

명덕은 그 집에서 받았던 께름한 느낌과 수리날의 후회가 한꺼번에 떠올라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 집엔 안 다니겠수다.》

《왜?》

로이문의 표정은 대번에 차거워졌다. 명덕은 그래도 자기를 후하게 대해준 로이문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것 같아 적당히 넘겨버렸다.

《딴건 없어요. 그저 로형한테 외상값두 있구. 요샌 두루두루 바빠서…》

《흠. 그래두 외상값을 잊지는 않았군. 이젠 공사두 거의 끝나가는데 빨리 회계를 해야지.》

로이문은 쌀쌀한 웃음을 흘리며 되박이마를 살살 긁었다.

《공사가 끝난 후에 삯벌이를 해서라도 값을 물겠으니 걱정마시우.》

《물어줄 생각만 있다면 이제라도 방도야 있지.》

명덕은 대번에 눈살을 세웠다.

《어떻게요? 전번처럼 화약을 또 잘라먹자는거요?》

그러거나말거나 로이문은 장부책과 전표에 몇자 끄적거리더니 좀전에 책임자가 꺼내놓은 폭약과 도화선을 명덕이앞에 밀어놓았다. 도화선은 로이문이가 이미 필요한만큼 잘라내고 남은것이였다. 로이문이 창고를 관리한다고는 하지만 폭약출고만은 매일매일 자재부책임자가 립회하기때문에 로이문으로서는 다소 위태롭긴 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던것이다.

《이 자리에서 결판을 보자구. 공사가 끝나서 다 흩어져간 다음에 내가 임자한테 외상값 받으러 따라다니라는건가? 그것두 뭐 삯짐벌이를 해서 물어준다구? 흠! 말두 안될 소리. 임자 엉큼하구만. 외상이라구 먹을 땐 좋구 값은 안 물겠다? 나한텐 그런 수가 통하지 않아.》

로이문으로서는 밸이 꼬일만도 했다. 처음엔 명덕이를 주먹이나 휘두르는 상놈으로 보고 쉽게 거머쥘수 있을것 같아서 공밥을 먹였는데 수리날 이후부터 별스레 열성을 피우는걸 보고는 케가 글렀다고 짐작했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그후에는 발파조에서 《명덕이》, 《명덕이》하는 판이였다.

명덕은 눈짐작으로 도화선이 어방없이 모자란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어쩌자는거요? 공사를 못하게 하자는거요?》

《흥! 그럼 공사만 중요하구 내 돈은 휴지장이라는거야? 그러니 괜히 소란피웠댔자 임자한테 좋을건 없어.》

로이문은 은근히 명덕을 위협했다. 출고량은 다 나갔으니 명덕이더러 책임지라는 소리였다.

《도대체 도화선은 해서 뭘한다는거요?》

로이문은 어처구니없다는듯 앙천대소를 하는데 그 웃음소리가 꼭 염소울음소리였다.

《글쎄… 혹시 고기잡이라도 하려는지. 해해…》

순간 명덕은 한팔을 내뻗쳐 로이문의 멱살을 움켜쥐였다.

염소울음소리가 딱 멎었다.

《네놈은 어떤 놈이냐?》

숨통이 막힌 로이문은 대번에 얼굴빛이 수수떡처럼 되였다.

《이놈! 캑캑! 이걸 놔! 캑캑!》

명덕은 손아귀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가 저만치 뿌려던졌다.

로이문은 명덕의 기상이 하도 무서운지라 감히 짹소리도 내지 못했다.

《내 지은 죄가 있어서 이번까지는 참는다. 하지만 내 손에 걸려들기만 해봐라.》

명덕은 한옆에 사려놓은 도화선퉁구리를 들고 뚜벅뚜벅 자재창고를 나섰다. 암만 생각해봐도 로이문이란 작자는 공사장에 어울리지않는 놈이 분명했다.

그놈은 길바닥의 흐린 물웅뎅이같은 놈이였다. 깊이를 알수 없는 그 흐린물의 수면에도 맑은 날에는 푸른 하늘이 비끼는 법이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한발을 내짚었다가 그만 무릎까지 빠진셈이였다.

(어쨌든 보기만 해도 재수없는 놈이야. 우리같은 로동자하고 다른 놈이라면 나쁜 놈이 분명한데 좀 캐봐야겠어. 그놈은 그놈이구… 이걸 어쩐다?…)

도화선이 절반밖에 없으니 야단 아닌가.

오늘 계획한대로 발파를 못하면 남교제방에 필요한 장석을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머리를 짓수굿하고 걷던 그는 선교4리 작업장옆에서 걸음을 늦추었다.

선교4리에서는 작업시작전에 회의를 하고있었는데 마침 임성민이 일어서서 주먹을 흔들며 연설을 하고있었다.

《보통강개수공사만 완공된다면 나는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장군님께서 바라시는대로 기한전에 이 공사를 끝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정식 야간돌격대를 뭇고 밤일을 하자는걸 제기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에 호응해나섰다.

《나도 야간돌격대에 들겠소.》

《까짓거 우리 몽땅 돌격대에 들자구요.》

《좋수다!》

선교4리건국로력대는 남교제방을 맡았는데 그곳은 2단계공사에서 제일 중요한 구간이였다. 1단계공사때 쌓은 제방이 보리장마는 견디여냈지만 아직 견고하지 못하고 더구나 7월초부터 기본장마가 시작되면서 급격히 불어나는 강물이 제방을 시시각각 위협하고있었다.

만일 남교제방이 터지는 날에는 지금까지의 공사가 수포로 돌아간다. 때문에 지휘부에서는 제일 핵심적인 단위들을 남교제방에 붙였던것이다.

임성민네 돌격대원들의 열띤 모습을 바라보고 서있던 명덕의 얼굴에는 전에없이 심각한, 비장하다고까지 할수 있는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옳다! 그거다!)

명덕은 드디여 결심이 섰다. 그는 자신있게 걸음을 옮겼다.

《명덕아!》

회의를 끝낸 임성민이 소리쳐불렀으나 그는 손을 내젓고는 발파현장으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명덕의 결심이란 도화선을 절반으로 잘라쓰자는것이였다. 도화선을 규정대로 쓰면 불을 달고 대피소까지 와서도 한숨 돌린 다음에야 첫 발파가 시작되는데 불을 달자마자 죽기내기로 냅다 뛰면 도화선을 절반으로 잘라써도 일없을것 같았다. 설사 위험하다 해도 다른 길이 없었다. 방금 성민형도 공사를 완공할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라고 그렇게 결심 못할건 뭔가.

가설막에 돌아온 명덕은 발파조성원들을 다른 작업에 돌려놓고 혼자서 작업준비를 해나갔다. 위험한 일에 다른 사람들을 껴들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진흙떡을 빚어놓고 도화선을 절반으로 잘라 뢰관에 련결했다.

현장이 조용해지는 점심시간을 발파시간으로 정하고 한참 발파준비를 하는데 임성민이 찾아왔다.

《아까 왜 왔댔나?》

《예? 그저 지나가다가 들렸댔어요.》

임성민은 별로 허둥대는 명덕을 의아스레 바라보다가 노루꼬리만 한 도화선에 눈길을 멈추었다.

《도화선이 왜 저렇게 짧아?》

더 숨길래야 숨길수도 없었다. 사연을 대충 듣고난 임성민은 펄쩍 뛰였다.

《너 죽자고 그래?》

《그럼 어찌겠소? 발파를 못하면 오후작업을 못한단 말이요.》

《그러니까 지휘부에 제기해서 해결받으면 되지 않아?》

《젠장, 내가 말하지 않았소? 이제 무슨 낯으로 지휘부에 손을 내밀어요? 이건 내가 보상해야 하는거란 말이예요.》

《그럼… 같이하자.》

《발파가 애들 장난인가 하시우?》 명덕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듯 돌아서다가 임성민에게 어깨를 잡혔다.

《야, 발파라는게 불달고 뛰는건데 뭐가 대단하다구 그래? 어쨌든 혼자서 하는것보다 둘이서 하면 불다는 시간을 그만큼 단축할게 아니야?》

암만 궁리해봐야 임성민을 떼버릴 방도는 없었다.

한참동안 임성민을 바라보던 명덕은 승낙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고맙수다. 죽으러 가는 길두 동무가 있으면 헐하다는데.》

그리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제까지 무겁게 매달려있던 비구름을 다 털어버렸는지 하늘도 오늘은 청청하게 개여있었다.

공중에서는 수리개 한마리가 그 장한 기상을 시위하려는듯 빙빙 원을 그리고있었다. 명덕은 수리개를 점도록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난 예전같으면 이런 생각을 안했을거예요. 많은 돈을 준대두 안하고 죽이겠다고 때려두 안했을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말려두 하고싶어요. 언젠가 형님이 말했지요. 우린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길에 목숨두 아끼지 말아야 한다구요.》

임성민은 몰라보게 성장한 명덕을 껴안아주고싶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제 기분대로 살던 명덕이가 지금은 공사를 하루빨리 끝내기 위하여 서슴없이 한몸을 내대고있는것이다.

임성민은 명덕의 손을 지그시 잡아주며 말했다.

《명덕이, 장군님께선 우리같은 사람들이 새 조국건설에서 로동영웅이 돼야 한다구 말씀하셨대. 우리 잘해보자구.》

그들이 준비작업을 거의 끝낼무렵에 장혁수가 현장에 나타났다. 장혁수는 점심시간에조차 쉬지 않고 일하는 두사람을 멀리서 알아보고 대견해서 찾아왔던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 장혁수도 처음엔 노발대발하다가 나중엔 제 몫을 챙기려들었다.

《둘이 하는것보다 셋이서 하면 더 안전해.》

《좌우간 권한은 나한테 있수다.》

명덕은 툴툴거리며 머리를 짜보았으나 현장책임자를 쫓아낼수는 없었다. 결국은 셋이 한동아리가 되여 발파준비를 완료했다.

임성민이 성냥을 꺼내들자 명덕은 씩 웃더니 담배쌈지를 꺼냈다.

《이럴 땐 이게 제일 확실해요.》

그는 마라초를 두툼하게 말아 장혁수와 임성민에게 한대씩 들려주고 자기도 한대 말았다. 깊숙이 한모금 빨고나서 그는 두사람에게 머리를 수그렸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남들앞에 머리를 숙여보지 않았던 명덕이였다.

《형님들! 용서하라요. 내가 잘못해서… 나때문에 이런 위험한 일을…》

임성민은 명덕의 손을 꾹 잡아주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장혁수는 허허 웃으며 명덕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자식, 마음에 들어!》

총지휘는 명덕이가 했다.

열두개의 발파구멍을 한사람이 네개씩 맡기로 했다.

그는 두사람에게 발파구멍을 지정해주고 도화선에 불을 다는 순서와 방법을 알려주었다.

《절대 덤비지 말고 침착해야 해요.》

제각기 위치를 차지했다. 명덕은 담배를 몇모금 빨고 불덩이가 커진 다음 짤막하게 구령을 쳤다.

《시작!》

저마끔 자기 맡은 도화선에 불을 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장혁수가 덤벼치며 미처 달지 못한것을 명덕이가 마저 불을 붙였다.

《뛰자요!》

세사람은 동시에 내달렸다.

명덕이가 돌부리에 걸려 곤두박질할번 하는것을 임성민이 가까스로 부축해주었다. 빨리 더 빨리…

그들이 대피호에 채 가닿지 못했는데 첫 발파소리가 울렸다.

쿵!…

《엎디라!》

장혁수는 명덕이를 와락 밀쳐넘어뜨리며 제 몸으로 덮었다. 임성민이가 또 제 몸으로 그들을 덮쳐눌렀다.

쿵, 쾅, 쾅…

돌부스레기들이 임성민의 잔등에까지 떨어졌다.

맨 밑에 깔리운 명덕은 그 정황속에서도 발파소리를 하나, 둘… 세였다.… 열하나, 열둘!

《됐어요. 이거 숨막혀죽겠수다.》

임성민이 허리를 펴고 장혁수도 일어섰다. 다행히도 누구 하나 상한 사람이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세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벙글거리다가 고개를 제끼고 호탕한 웃음을 터쳤다. 발파먼지가 자오록한 곳에서 얼굴을 땀과 먼지로 매닥질한 세 사나이가 격정을 누를길 없어 터친 웃음소리는 봉수산 멀리로 메아리쳐갔다. 건국의 나날에 태여난 수많은 로동영웅들중에는 그들의 모습도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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