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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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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199회 작성일 15-10-2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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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새나라를 통하여 해방후 북부조국이 어떻게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으며 그 새나라는 무엇을 목표로 세워진 나라인지를 재미와 함께 공부해보시기 바랍니다. 


3

 김일성장군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늦은 점심때가 되여서야 룡산고개를 넘어 시내로 들어오고있었다. 승용차의 뒤좌석에 앉으신 장군님께서는 여느때없이 마음이 즐거우시여 조용히 미소를 짓고계시였다. 앞좌석에 앉은 부관 리병설은 운전사와 눈을 끔쩍거리며 자기들끼리 소리없이 웃군 했다.

《세건인 왜 자꾸 웃나?》

이런 때는 운전사 량세건이 리병설이보다 푸접이 좋았다.

《장군님께서 기뻐하시니 저희들도 절로 웃음이 납니다.》

《절로 웃음이 난다? 하긴 나도 그렇소. 농민들이 기뻐하니 절로 웃음이 나거던.》

운전사는 더 사기가 났다.

《장군님께선 농민들때문에 기뻐하시구 저희들은 장군님께서 기뻐하시는게 기쁘구…》

리병설이 운전사에게 입을 다물라고 눈짓했다. 장군님께서 또다시 명상에 잠기신것을 감촉했기때문이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웃음어린 안색으로 차창밖을 내다보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토지개혁실태를 료해하시기 위해 평양시주변농촌들을 돌아보고 오시는 길이였다.

난생처음 제땅을 가지게 되였다고 감격에 흐느끼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농민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그이께서는 미소를 거둘수 없으시였다.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된지 20여일 남짓한 기간에 북반부에서는 일제히 토지분여가 실시되고 농민들은 땅의 주인이 된것이다.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안고계시던 많은 짐들중에서 제일 크고 무거운 짐을 하나 벗어놓으신것만 같아 그이께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어떤 때는 노래라도 부르고싶으신 심정이시였다.

《장군님! 빼앗겼던 들에 진정 봄이 왔습니다.》

룡산리의 한 농민이 분여받은 제땅을 밟고서서 눈물을 좔좔 흘리며 장군님께 올린 말씀이였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봄을 원망하던 농민들, 해마다 봄이 오면 희망이 아니라 절망에 한숨쉬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고 억이 막혀 가슴을 치고 땅을 치던 이 나라 농민들이 올해에는 희망의 봄, 행복의 봄이 왔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 세기적변혁앞에서 누구보다도 눈물겹도록 기쁘고 행복하신분은 바로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왜 그렇지 않으랴. 제2차 세계대전이 파시즘의 패망으로 막을 내리고 많은 나라들에서 독립을 이룩했지만 제일먼저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을 풀어주지 않았는가.

물론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다고 해서 농촌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였다고 볼수는 없었다. 그들을 진정한 땅의 주인으로 되게 하자면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다는것을 그이께서는 모르지 않으시였다. 일부 지방에서는 농민들이 지주의 눈치를 보면서 분여받은 땅이 제땅이라는것을 실감하지 못하고있었다. 혹시 지주한테 땅을 다시 떼우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농민들도 있었다.

그들모두를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하자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언제나 인자한 미소를 짓고계시면서도 그이께서는 크나큰 심뇌를 마음속에 안고계시였다.

승용차가 옷고개를 넘어 뺑대거리로 들어서는데 장군님께서 차를 멈추게 하시였다.

《우리 저기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가자구.》

그러시고는 먼저 차에서 내리시여 길옆의 국수집으로 향하시였다. 예견치 못했던 정황이여서 리병설은 좀 당황해졌다. 장군님께서 국수를 좋아하시는줄은 잘 알지만 성안에 다 들어왔는데야 왜 하필 저런 허술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신단 말인가. 온전한 국수그릇 하나 있을상싶지 않은 길거리의 초라한 국수집에서 식사를 하시였다는걸 김책동지나 안길동지들이 알면 자기가 또 된욕을 먹을게 뻔했다. 김정숙동지에게는 또 뭐라고 말씀드린단 말인가.

리병설은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황급히 장군님의 뒤를 따랐다.

조선식기와지붕우에 간판을 올려놓은 국수집은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미닫이를 활짝 열어놓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리병설에게 아무소리 말라고 눈짓해보이시고는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가 앉으시였다. 식당안에는 두세패의 손님들이 끼리끼리 마주앉아있었다. 한잔씩 마신 손님들이라 누가 들어오건 상관없이 자기들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룡산리의 누구는 옥답4천평을 분여받고 밤새 지경을 돌며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 오류리에서는 갓 마흔이 되도록 머슴살던 로총각이 땅을 받고 지주가 살던 집까지 받고 장가를 갔다는 이야기.…

들어보면 거의다 토지개혁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였다. 그런데 장군님앞에 마주앉아있는 중늙은이는 이야기판에도 끼우지 않고 혼자서 창밖을 내다보며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앞에는 국수 한그릇과 소주종발이 놓여있는데 국수는 아직 저가락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말씀을 건네시였다.

《국수가 다 풀어지겠습니다. 어서 드셔야지요.》

로인은 하찮은 촌늙은이를 존대해주시는 젊은분에게 머리를 굽석해보였다.

《그까짓 국수야 풀어지면 뭐랍니까? 그저 속이 흐뭇한게 먹지 않아두 배가 부르는것 같습네다.》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지요?》

《다 좋지요. 땅도 내 땅이요, 집도 내 집이요, 이 국수도 내 국수요, 이제는 다 우리건데 왜 안 좋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다 우리거라… 그참 좋은 말씀입니다. 로인님은 어데 사십니까?》

《예, 옷고개너머에서 삽니다. 엊그제는 땅을 받구 오늘은 성안에 들어가 소 한마리 사가지고 오는 길이웨다. 참 꿈같은 일이지요. 제땅에서 제 소를 가지고 농사를 짓게 됐으니 농사군에게야 그 이상 단꿈이 있나요. 이게 다 김일성장군님 은덕이지요. 헌데 이거 안됐소만 점잖으신 어르신네 담배 한대 없소이까? 쌈지를 어데 떨궈나서…》

장군님께서는 얼른 담배를 꺼내여 권하시였다. 성냥으로 불까지 붙여주시였다.

향긋한 담배맛에 기분이 더 좋아진듯 로인은 아예 말보따리를 헤쳐놓았다.

《오늘 아침에 저 옷고개를 넘으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참, 어르신네는 저 옷고개를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아십네까?》

장군님께서는 창덕학교시절부터 옷고개의 유래를 알고계시였지만 로인의 흥을 깨뜨리고싶지 않아 모르는척 하고 물으시였다.

《로인님이 좀 말씀해주십시오.》

로인은 담배연기를 탐스럽게 삼켰다가 시원스레 내뿜고나서 말을 이었다.

…옛날에 대동군을 비롯한 여러 고을의 량반선비들은 평양으로 올 때 평양성이 바라보이는 그 고개마루에서 새옷을 갈아입군 했다고 한다. 평양감사가 있는 성안에 어지러운 옷차림으로 들어갈수 없어서 그랬다는것인데 그때문에 고개마루에는 량반선비들이 벗어놓은 옷이 늘 하얗게 걸려있군 해서 옷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로인은 손톱이 따거워질 때까지 담배를 피우고서야 아쉬운 표정으로 재털이에 비벼껐다.

《오늘 아침에 옷고개를 넘으면서 생각해보니 옷고개도 이젠 우리 고개인데 내 두루마기도 좀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소. 그래서 입었던 두루마기를 벗어서 척 걸어놨지요.》

건너편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어느새 로인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으며 키득거렸다. 그러거나말거나 로인은 종발밑창에 조금 남았던 술을 쪽- 소리가 나게 들이키고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헌데 한참 고개를 내려오다보니 옛날 량반놈들이야 평양감사가 무서워서 옷을 갈아입었지만 이제야 우리 세상인데 뭐가 무서워서 헌 두루마기라고 벗어놓겠는가 하는 배짱이 생기더란 말이웨다.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올라가서 두루마기를 입고 내려왔지요.》

《하하… 그거 참 잘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웃몸을 젖히시며 통쾌한 웃음을 터치시였다.

로인의 이야기에는 제 나라, 제땅을 다시 찾은 인민들의 감격과 환희가 반영되여있었다.

여기에 들리지 않았다면 이 좋은 이야기를 어데가서 들어보겠는가.

앞치마를 두른 접대원이 국수그릇을 쟁반에 받쳐들고 부엌에서 올라왔다.

장군님께서는 저가락을 드시며 로인에게도 권하시였다.

《좋은 이야기를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로인님도 이젠 식사를 합시다.》

로인은 점잖으신 어르신이 어떤분인지 짐작조차 못하고 그냥 벙글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청사에 도착하실 때까지도 국수집의 즐거운 분위기에 잠겨계시였다.

장군님의 승용차소리에 안길이 2층에서 달려내려왔다. 조국에 돌아오자마자 함경북도에 파견되여있던 안길은 얼마전부터 장군님의 곁에서 사업을 보좌해드리고있었다.

《무사히 다녀오셨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안길과 인사를 나누시고 집무실로 올라가시며 제기된것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쏘미공동위원회 공동성명서 제3호가 서울에서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농림국장동무가 두번이나 다녀갔습니다.》

《무슨 일때문입니까?》

《토지분여사업에서 제기된 문제라고 합니다. 장군님께서 돌아오시면 직접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농림국장을 부르라고 이르시며 집무실로 들어가시였다. 집무탁우에는 쏘미공동위원회 공동성명서 제3호 원문이 놓여있었다.

지난해말 모스크바에서는 쏘, 미, 영 세나라의 외무상들이 모여 포츠담회담에서 아퀴를 짓지 못한 날카로운 현안문제들을 토의결정하였다. 그 회의에서는 5년이내의 후견제를 실시하여 장차 조선에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가 수립되도록 도와준다는것이 결정되였다. 그 결정의 실행을 위해 올해초에는 쏘미공동위원회가 조직되였고 지난 3월 20일부터 서울의 덕수궁 석조전에서는 공동위원회가 자기 사업을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손에 들고계시는 공동성명서의 내용보다 그것이 작성된 회의장소로 생각을 달리시였다.

석조전이라면 20세기초 조선에서 서유럽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루네쌍스식으로 지은 2층짜리 화강석건물이다. 그곳은 왕궁의 미술작품들을 소장해두는 곳으로서 우리 나라의 미술관으로 되여있었다.

조선민족의 슬기와 문명을 자랑하는 문화재가 집중되여있던 미술관에서 조선사람은 제힘으로 자주독립국가를 세울수 없기때문에 대국들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모여앉은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무거우신 안색으로 공동성명서의 내용을 대충 훑어보시였다. 성명서에는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결정한대로 조선에 잠정적인 림시정부를 세우기 위한 대책적문제들이 제시되여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들과 림시정부수립을 합의하기 위한 조건과 절차, 림시정부와 지방행정기관의 구성과 조직원칙에 대한 토의, 림시정부의 정강과 방침제시 그리고 제기된 문제들을 맡아수행할 분과위원회들이 조직된데 대해 밝혀져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성명서를 덮어놓으시며 알릴듯말듯 머리를 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미전부터 쏘미공동위원회 회의장에 드리워있는 구름장을 보고계시였던것이다. 그것은 조선문제를 토의하는 그 자리에 유감스럽게도 조선사람이 앉을 의자는 준비되여있지 않았기때문이다. 주인이 없는 자리에서 손님들끼리 모여앉아 주인노릇을 하면서 주인의 리익을 론하고있는것이다. 지금 미국은 남조선을 영구강점하여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흉심을 점점 로골적으로 드러내고있었다. 남조선주둔 미군사령관 하지는 회의시작전에 미국의 립장을 밝힌 《성명》을 발표하면서 조선인에게 미국식민주주의에 기초한 절대적인 자유를 약속하였다.

하다면 무슨 권리로 미국은 조선이 자주적인 국가로 되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가? 이것이 소위 민족자결에 대해 그토록 말하기 좋아하는 미국이 하는 말인가?

미국이라는 욕심많은 나라가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을 휴지장으로 만들것은 명백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아직 그 누구앞에서도 자신의 견해를 맡씀하는것을 삼가하고계시였다. 거기에 기대를 걸고있는 사람들을 미리부터 실망시키고싶지 않으시였던것이다. 중요한것은 회의결과가 아무리 비관적이라 해도 자체의 힘으로 민주주의독립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심만은 변할수 없다는것이였다.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안길이 농림국장을 대동하고 들어섰다.

장군님께서는 사색의 문을 닫으시고 두사람에게 의자를 권하시였다.

《앉으시오.》

그러나 농림국장은 앉을념을 않고 죄지은 사람처럼 머뭇거렸다. 토지개혁법령을 관철하기 위해 밤잠을 잊고 뛰여다니면서도 노상 싱글벙글하던 사람인데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농림국장은 대답대신 옆에 끼고온 가방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여 장군님께 올렸다.

그것을 받아드신 장군님께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농림국장을 바라보시였다.

《이거야 토지소유권증서가 아닙니까?》

《옳습니다. 보통벌에 사는 한 농민의것인데 땅을 바꾸어달라고 해서 회수한것입니다.》

《땅을 바꾸어달라니, 그건 무슨 소리요?》

농림국장은 서성리농촌위원회에 실태료해를 나갔던 부원이 그 증서를 가져오게 된 전후사연을 구제적으로 보고드렸다. 농림국장의 입에서 토성랑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장군님께서는 마음속에 둔중한 아픔을 느끼시였다. 가슴에 묵은 상처처럼 도사리고있는 보통강을 올해 장마철전으로는 대수술을 해야겠다고 이미전부터 다짐해오시였는데 그 상처가 불시에 타격을 받은것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오성재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그 증서를 손에 드신채 아무 말씀없이 앉아계시였다.

《장군님!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그 농민을 다른데로 이주시키고 좋은 땅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농림국장이 조심스레 말씀올렸으나 장군님의 상심어린 안색은 풀리지 않으시였다.

《그건 옳은 해결책이 못됩니다. 보통강류역에 토지를 받은 사람이 그 한사람뿐이겠습니까? 서평양일대를 포함해서 많은 토지가 수해의 위험을 받군 하는데 그중에서도 토성랑주변에 있는 30~40정보의 논밭은 해마다 물에 잠기군 합니다.》

농림국장은 자기도 모르는 그곳 실태를 장군님께서 손금보듯 알고계시는데 대해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언제 그런것까지 다…》

《여기야 내 고향이 아닙니까.》

장군님께서는 범상한 어조로 한마디 하시였으나 듣는 사람들은 경건한 감정에 휩싸였다. 15성상 총을 잡고 일제와 싸우시면서도 삼천리강산의 방방곡곡에 대하여 어느 경제학자나 지질학자 못지 않게 속속들이 알고계시는 장군님이시다.

어느 광산의 광석매장량, 어느 탄광의 석탄매장량, 어느 지방의 특산물…

농림국장이 집무탁앞에 한걸음 다가섰다.

《제 생각엔 그 농민이 땅타발을 하는게 너무하다고 봅니다. 남들은 제땅이 생겨서 고맙다는 인사뿐인데 그 농민은 투정질부터 하니 이건 정말 말타면 견마 잡히우고싶다는 격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아까부터 말없이 서있기만 하는 안길에게 시선을 돌리시였다.

《안길동무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그 농민의 땅타발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집무탁을 돌아 긴책상을 사이에 두고 두사람과 마주앉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그들에게 담배를 권하시며 달래듯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난 오성재농민의 땅타발을 리해해주고싶습니다. 그 땅이 남의 땅이라면 타발할 필요가 없겠지만 제땅이기때문에 함구무언하고있을수 없었던게 아닐가요? 말하자면 그 땅이 좋다나쁘다 할수 있는것은 주인의 권리입니다. 그 농민이 오죽이나 물란리를 겪었으면 그랬겠습니까? 올해에도 장마가 지면 땅이 또 못쓰게 되겠는데…》

장군님께서는 진심으로 그를 리해해주고싶으시였다. 그 농민의 투정질을 받아주고싶으시였다. 투정질을 받아줄 품이 없다면 그랬겠는가. 그 농민은 우리 인민정권을 믿고 투정질을 한것인데 우리에겐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는가.

장군님께서는 안길과 농림국장에게 말씀하고계시였지만 자신의 심중에도 그것을 되새겨넣으시며 마음을 가다듬으시였다.

《난 오늘 주변농촌들에 나갔다오면서 기분이 참 좋았댔습니다. 땅을 받고 기뻐하는 농민들을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고 노래라도 부르고싶었댔습니다. 그런데 이 증서를 보니 우리에게 할일이 너무도 많다는것을 다시한번 자각하게 됩니다.》

《…》

안길은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입을 열지 못했다. 장군님의 괴로움을 덜어드릴만 한 말을 찾을수 없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집무탁으로 돌아가시여 증서를 집어드시였다. 거기에 씌여진 글을 읽고 또 읽으신 장군님께서는 양복의 두번째 단추를 끄르시고 그 증서를 소중한 보물처럼 안주머니에 간직하시였다. 가장 귀중한것을, 가장 무거운것을 그이께서는 자신의 심장가까이에 간수하신것이다.

농림국장과 안길이 나간 뒤에도 그이께서는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시고 집무실을 거니시였다.

(보통강… 토성랑… 보통강…)

그이께서는 문득 지난해말 김책과 함께 평양학원에서 돌아오시다가 보통강개수공사문제를 처음으로 의논하시던 때를 회상하시였다.



4

 

그날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양으로 들어오시던 길에 봉수산기슭 서재골입구에서 차를 세우시였다. 이 길로 다니실 때면 드문히 차를 세우시고 강건너 토성랑이며 빈민촌인 적굴동쪽을 점도록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시군 하는 장군님이시였다. 그때까지는 그 누구도 지어 운전사나 부관도 장군님께서 왜 자꾸 이곳에 차를 세우군 하시는지 알수 없었다.

오늘 장군님께서는 가슴속에 혼자 묻어두고계시던 문제를 김책과 조용히 의논해보고싶으시였다. 이미전부터 결심을 굳혀오신 문제였지만 지금형편에서는 그것이 너무 엄청난 일이 아닌가싶어 주저되는바가 없지 않으시였는데 제일 가깝고 믿음이 가는 전우의 동의를 받게 되면 그 결심을 실현하는데 큰 힘이 될것 같으시였던것이다.

지난밤에 내린 눈이 대지를 온통 하얗게 단장하고있었다. 며칠 있으면 설날이다. 어지러운 세월이 남긴 흔적들을 감추어버리고 신생의 깨끗한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려는듯 강산은 포근히 눈포단을 덮고있었다. 이따금씩 바람이 불어치면서 해빛에 반사된 눈가루들이 보석알갱이처럼 반짝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시였다. 보이는 모든것이 그이의 마음을 아프게 해주었다. 선내리쪽에 솟아있는 화장터의 거무틱틱한 굴뚝도, 당상철교근방의 오물적치장도 다 눈에 거슬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운하동너머의 토성랑마을을 김책에게 가리키시였다.

《저기가 아래토성랑이라고 부르는 사람 못살 곳입니다. 그리고 저쪽(현재 붉은거리)은 거지들이 벌거벗고 산다고 해서 적굴동이라고 부르는 빈민촌입니다. 난 토성랑을 바라볼 때마다 과거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 대해 새삼스럽게 되새겨보군 합니다. 그래서 난 올봄부터 보통강개수공사를 시작하자고 하는데 김책동무 생각엔 어떻습니까?》

그이의 말씀이 너무 뜻밖이여서 김책은 반문하지 않을수 없었다.

《개수공사를 한단 말입니까?》

《힘들것 같습니까?》

장군님앞에서 언제한번 속에 없는 소리를 해보지 않은 김책은 자기가 우려하는바를 숨김없이 말씀올렸다.

《지금같은 형편에서 그런 방대한 토목공사를 한다는것이 너무 아름차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나라형편이 어려운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김책동무에게 먼저 물어보는것입니다.》

장군님의 안색이 하도 무겁고 말씀하시는 그 어조가 하도 심중해서 김책은 당황해졌다.

자기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느라 했는데 장군님께서는 다른 대답을 바라신다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하다면… 김책은 온몸이 굳어졌다. 사실말이지 오늘의 형편에서 자연개조공사를 벌려놓는다는것은 너무도 아름찬 일감이였던것이다.

다른것은 다 제쳐놓고 경제형편 하나만 놓고도 충분히 그렇게 말할수 있었다.

패망을 앞둔 일제는 조선의 산업시설을 닥치는대로 파괴하였다.

8. 15해방후에도 일제는 본토에 실어갈수 있는 재산과 기술자들을 철수시키고 광산지대와 공장들을 파괴할 시간을 얻기 위하여 악랄하게 저항하였다. 결과 북조선의 수십개 중요광산들이 완전침수되고 숱한 탄광, 광산의 갱들이 파괴매몰되였으며 중공업공장들과 발전소를 포함한 공장, 기업소들이 페허로 되였다.

장차 공산정권이 서게 될 북조선에는 애당초 그 경제적기초를 파괴해버리자는것이 섬나라족속들의 저렬하고 고약한 심보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제가 파괴한 산업을 하루빨리 일떠세우기 위하여 조국에 개선하신 후 평양곡산공장과 서선전기회사를 비롯한 시내의 공장, 기업소들을 현지지도하시였으며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기도 전에 강선의 로동계급을 먼저 찾아주시였다. 그 믿음에 고무되여 강선의 로동계급은 일제가 파괴한 전기로를 자체의 힘으로 복구정비하여 한주일전부터는 새 조선의 기둥이 될 첫 쇠물을 뽑아냈으며 전국의 방방곡곡에서도 생산돌격대가 조직되여 생산공정을 살리고 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리고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방대한 자연개조공사를 할만 한 경제적잠재력이 없었다. 아직은 공사를 담당수행할 국가주권도 없고 도움을 받을데도 없었다. 아직은 인민들이 공사에 자각적으로 동원될만큼 각성되지도 못했다. 아직은 형편이 너무도 어려웠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무슨 타산으로 이 공사를 결심하시였는가. 만약 그때 김책이 장군님께서는 어째서 보통강개수공사를 건국의 앞자리에 놓으시였는가고 물었다면 그이께서는 하고싶은 천만마디를 함축하여 자신께서 조선의 아들, 평양의 아들이기때문이라고, 따라서 토성랑의 비참상이 가슴아파 견딜수 없다고 말씀하시였을것이다.

장군님의 음성은 갈려있었다.

《여기는 조선인민이 겪어온 수난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력사의 고발장과도 같습니다. 그들이 겪은 수난이 단순히 보통강이라는 자연때문이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끊으시고 멀리 토성랑쪽에서 시선을 돌리시였다.

토성랑… 토성랑이란 보통강변의 옛 토성뚝을 따라 움막집들이 랑하처럼 나란히 붙어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였다. 원래 보통강은 지금으로부터 500년전에는 홍수를 모르고 조용히 흐른다고 해서 평안강이라고 했는데 19세기부터 보통강으로 불리워왔다.

평원군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사시장철 맑은물 흐르던 보통강은 조선을 강점한 일본놈들이 상류의 산림자원을 마구 찍어냄으로써 흙탕물이 범람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또한 시내의 하수도를 보통강으로 뽑아돌리고 강변의 곳곳에 오물적치장과 인분저장탕크들을 되는대로 널어놓아 보통강변을 도시의 시궁창으로 만들어놓았다. 또한 왜놈들은 경치좋은 본평양의 구릉지대에는 돈많은 놈들만 살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보통강의 진펄지대로 내쫓아 비참한 빈민굴을 형성하게 하였다. 그렇게 생겨난것이 바로 토성랑이였다.

토성의 경사면을 감자움처럼 파내고 출입문대신 거적을 드리운 움막집들이 지금 그이의 시야를 꽉 채우는듯싶었다. 눈이 덮여서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모름지기 움막지붕에는 양철쪼박들과 합판쪼박들이 얹혀져있을것이다. 그래서 낮에는 해빛이, 밤에는 별빛이 새여들고 여름에는 비물이, 겨울에는 눈석이물이 떨어지는 움막집, 어둡고 누기찬 방안에 비오는 날에는 개구리가 뛰여들고 청청한 날에는 쉬파리가 몰려드는 무덤보다 못한 집…

그렇게 사는것도 행복이라고 장마때면 그 잘난 집마저 홍수에 잃고 목숨까지 물거품처럼 떠내려보내며 최하층의 생활을 강요당해온 토성랑사람들… 아! 조선인민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가.

이제 저 사람들이 올해의 추운 겨울을 또 어떻게 견디여낼것인가? 저 사람들도 《해방 만세!》를 목청껏 웨쳤을진대 해방이 그들에게 가져다준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건국이라는 말속에는 토성랑이 포함되지 않는단 말인가.

그이께서는 토성랑사람들앞에 진심으로 미안스러우시였다. 그들에게 《만세!》의 진정한 대가, 해방의 참된 의미를 안겨주지 않고서는 그 미안함을 털어버릴것 같지 못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봉화산쪽으로 난 오솔길을 천천히 걸으시며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뒤따르는 김책에게 문득 물으시였다.

《김책동무는 정치라는 말을 어떻게 리해합니까?》

《…》

그이께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정갈한 숫눈우에 《정치》라는 단어를 한자로 쓰시였다.

《한자로 쓰면 정사 정에 다스릴 치입니다. 17~18세기에 유럽에서 신흥부르죠아지들이 봉건왕조의 절대적인 전제제도를 반대하여 들고나온 삼권분립의 정치제도가 현대사회의 정치구조라고 할수 있는데 그들은 정치를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것으로 리해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민의 요구를 실현시켜주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보시오, 다스릴 치의 부수는 물 수 변입니다. 그러니 정치라는 말에는 물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뜻도 포함되여있는게 아닙니까?》

김책은 손벽을 마주쳤다.

《옳습니다. 옛날 중국에서도 황하나 양자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을 임금으로 추대했다고 했습니다.》

《김책동무, 인민의 나라를 세우자고 혁명을 해온 우리가 저 토성랑을 그대로 두고서야 무슨 건국을 한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무리 힘에 부치고 할 일이 많아도 보통강개수공사를 먼저 함으로써 평양을 수해로부터 보호하고 보통강반에 락원을 일떠세우자는것입니다.》

장군님의 절절한 음성은 김책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김책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절모를 벗어들고 장군님을 우러러보았다. 장군님께서 보통강개수공사의 필요성을 나 한사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도 이렇듯 품을 바치시는데 이제 이 공사를 위해 얼마나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셔야 할것인가.

김책은 늦게나마 시원스럽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공사를 합시다. 제가 좀 복잡하게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김책동무가 지지해주니 나도 힘이 생깁니다.》

장군님께서는 어느덧 공사장이 바라보이는 봉화산중턱에 이르시였다. 왜놈들이 공사를 한답시고 파헤쳐놓아서 공사장은 사방에 흙무지뿐이였다. 대지는 곱게 눈이불을 덮고있건만 구뎅이의 경사면들은 하늘이 덮어준 눈이불도 안 차례져서 시뻘건 생땅을 상처처럼 드러내고있었다.

원래 일제놈들이 1937년부터 이 공사를 벌려놓은것은 서평양일대의 수해방지를 위해서가 아니였다. 애당초 그놈들에게는 조선사람들의 생명재산에 대한 어떤 책임감 같은것이 없었다. 그놈들에게는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에 운하를 형성하여 알곡, 목재를 비롯한 서선지방의 자연부원을 손쉽게 본토로 실어갈수 있는 수상운수가 필요할뿐이였다. 또한 이 일대에 군수산업체들을 건설하면 공업용수와 페수처리로 보통강을 리용하는것이 유리했기때문이였다.

그러한 필요성으로부터 일제는 이 공사를 《조선총독부》가 관할하게 하고 해방되는 날까지 10년동안에 많은 로력을 동원시켰다. 공사속도가 굼벵이와 자리다툼을 하게 되자 놈들은 전라도와 경상도에서까지 알선인부들을 모집해왔으며 평양은 물론 평안남도 매개 군들에서 인민들을 《보국대》로 끌어오기까지 했다.

1940년대부터 일제는 전쟁의 수렁창에 더 깊숙이 빠져들면서 전쟁비용의 충당으로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큼직한 먹이감으로 생각했던 보통강개수공사도 귀찮아질 지경으로 급급해난 《조선총독부》는 공사의 리권을 개인들에게 팔아넘기지 않을수 없었다. 그 리권을 날쌔게 차지한자가 조선에서 금광업으로 거금을 긁어모은 나까무라라는 일본인과 평양의 대지주 구문선이였다. 그놈들은 합작회사를 만들어놓고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한 방도로 십장들의 수를 대폭 늘이였으나 결국은 총공사량의 절반도 못하고 일본의 패망과 함께 손을 떼고말았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이 공사장전체가 평양의 상처, 조국의 상처처럼 생각되시였다. 그렇다, 이것은 식민지사회가 남겨놓은 악성종양이나 다름없다. 몸에 난 상처는 아픈 법이다. 그래서 더 마음쓰게 되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는것이다. 평양의 상처와 다름없는 이 공사장도 그와 같은 리치라고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치료대책을 세우는것은 너무도 응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적한 공사장의 전경을 오래동안 바라보시다가 김책에게 돌아서시였다.

《이번에 내가 모스크바에 가서 쓰딸린을 만났을 때 그는 3상회의가 열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조선의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적극 도와줄 의향을 표시했습니다. 물론 난 그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체의 힘으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야 합니다. 어쨌든 조선혁명의 주인이야 조선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주인이란 말뜻도 모르면서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비온 뒤의 버섯처럼 많아졌습니다.》

김책으로서는 일제를 반대하여 총 한방 쏴보지 못하고 개화장이나 짚고 다니던 《유명인사》들이 해방이 되자 저마끔 제 문패를 써가지고 주인흉내를 내려는것이 달갑지 않았던것이다. 한쪽에서는 매일같이 공공장소에 순박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해방조선이 나갈 길을 제나름대로 력설하느라 목에 피대를 세우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쏘련이나 중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엉치를 붙이고 앉을 자리를 편안히 마련하느라 저들끼리 부스럭대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너도나도 주인노릇을 하자고 하는 때에 인민을 나라의 진정한 주인으로 내세운 공산주의자들의 책임감에 대해 다시 강조하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파시즘의 억압에서 해방된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선포하고 자기식의 민주국가건설을 위해 노력하고있는 오늘 우리는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 같은 제반 민주개혁들과 함께 보통강개수공사를 우리 힘으로 완수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나라를 세우려 하는가를 세계앞에 똑똑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바로 그 시각에 멀리 쏘련에서는 쏘, 미, 영외무상들이 모여앉아 조선이라는 나라가 제발로 걸어갈수 있을 때까지 대국들이 《보모》가 되여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결정서의 마지막문구를 작성하고있었다.

생각에 잠겨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림시인민위원회 재정국장과 평안남도인민위원회 리주연부위원장을 전화로 부르시였다. 재정국장에게는 올해국가예산초안을 가지고오도록 하시였다.

지난 2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된 후 김일성동지께서는 재정국에 국가자금을 계획적으로 동원하고 계획적으로 지출하는 예산편성제도를 확립할데 대해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며칠전에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제5차회의를 지도하시면서 국가재정사업을 잘하며 농민은행을 창설하여 토지개혁의 성과를 공고히 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에 따라 재정국에서는 파괴된 산업을 복구하는데 선차적힘을 넣으면서 교육, 보건 등 민주주의시책들을 재정적으로 안받침할수 있는 국가예산제도를 4월부터 정식 실시하기로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재정국장이 가져온 문건을 한장한장 넘기시며 올해 국가예산을 받을 대상기관들의 명단을 주의깊게 훑어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보통강개수공사장은 빠졌구만.》

《예?》

재정국장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로서는 매 부문별 대상기관들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장악한데 기초하여 제일 중요하고 급한 대상에 한해서만 한푼한푼을 따져가며 예산을 세웠던것이다. 따라서 공사장처럼 확대재생산이 불가능한 소비단위의 예산지출은 생각밖의 일이였다.

문기척소리와 함께 서기가 들어와 리주연이 도착했다고 장군님께 보고드렸다.

《들여보내시오.》

장군님께서는 리주연의 인사를 받으신 다음 직방으로 물으시였다.

《부위원장동무는 보통강개수공사장에 나가봤습니까?》

《예, 한달전에 장군님말씀을 받고서야 나가보았습니다.》

《형편이 어떻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한가닥 기대를 안고 물으시였다.

《공사장이 텅 비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군님말씀대로 공사를 다시할수 있도록 준비사업을 해놓으라고 과업을 주었습니다. 지금은 한 50명정도의 로동자들이 향토건설대를 뭇고 일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리주연은 이런것까지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는듯 재정국장을 얼핏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실태를 그대로 말해주시오.》

《며칠전에 공사책임자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로동자들한테 로임을 주지 못하기때문에 하나둘 떠나간답니다.》

장군님께서는 속이 타시는듯 담배갑을 손에 쥐시였다.

《결국 돈이 문제란 말이지요. 50명도 되나마나한 사람들에게 지불할 돈도 없는 형편이란 말이지…》

그이께서는 담배가치를 그냥 만지작거리시며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리주연에게 물으시였다.

《거기 책임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리주연은 장혁수가 해방직후에 공사를 언제 시작하는가고 도인민정치위원회에 찾아왔던 이야기를 간단히 말씀올렸다.

《우리 도인민위원회에 토목과를 내오긴 했지만 책임자로 내보낼만 한 적임자도 없는데다 당장은 중요시할만 한 대상이 아니기때문에 그 사람더러 공사장을 림시책임지고있으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리주연이도 공사를 먼 후날의 일로 생각하고있은것이였다.

《그 사람이 왜 해방후에도 공사장에 남아있었는지 모릅니까? 무슨 사연이라도 안고있는지…》

지금 그이께서는 인간적인 립장에서 장혁수에 대해 자상히 알고싶으시였던것이다.

《그런 내막까지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리주연은 얼굴을 붉히며 말씀드렸다. 자기가 보통강개수공사장을 차요시하고 장혁수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을 모르고있은것때문에 장군님께서 실망하시였다는것을 몸으로 느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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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장군님께서는 재정국장에게 문건을 넘겨주시며 간곡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물론 재정형편이 어려운줄 압니다. 하지만 공사예산을 다문 얼마만이라도 조성해보시오. 부탁합니다.》
재정국장은 장군님의 부탁을 그 어떤 엄한 명령보다 더 무게있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리주연동무는 나와 함께 며칠내로 보통강개수공사장에 나가봅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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