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설 <새나라> 16-17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조선소설 <새나라> 16-17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610회 작성일 15-11-01 01:50

본문

16

 

해방전에 수영이가 리화녀전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의 생활반경은 학교와 가정뿐이였고 따라서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에는 시야가 너무 좁았었다. 온실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수영에게 그때 제일 고민스러운것은 그 시절에 누구나 홍역처럼 경과하는 사랑과 행복에 대한것이였다. 그것이 인생의 풀기 어려운 숙제로 생각된데는 부모들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서울에서 크지 않은 방직공장을 경영하는 수영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아준다고 동대문구에 첩살림을 두고있었다. 아버지가 작은댁에 간다면서 뻐젓이 집을 나갈 때면 어머니는 구두를 반들반들하게 닦아 퇴마루아래 놓아주고 개화장을 쥐여주면서 대문밖에까지 나가 공손히 바래주군 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언젠가 그걸 목격한 수영은 대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등뒤에 대고 우정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엄마 버리고 가시는 아버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년아!》

외동딸에게 큰소리 한번 안 치던 어머니였건만 그때만은 진정으로 노했었다. 어머니는 노기를 띠고 엄하게 오금을 박았다.

《그럼 못 쓴다. 아버지는 아버지야.》

평생을 삼강오륜의 바오래기에 묶이워 살아온 어머니에게 있어서 남편은 무슨 죄를 지어도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던것이다. 자기의 절대적인 하늘이고 땅이였다. 수영은 어머니의 노예적인 순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만 자존심도 없는가? 아버지가 의로운 길을 가는것도 아닌데 《잘 다녀오십시오.》… 대문을 막아서서 행악질은 못해도 그렇게까지 비굴할거야 있는가, 아들을 못 낳은게 엄마죄인가?

복잡한 인간세상에 무슨 일인들 없으랴만 백포처럼 순결하기만 했던 처녀에게는 부모들의 생활태도가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 현상으로 인찍혀졌던것이다. 하기야 신식문명을 배우고 《해연의 노래》를 열독하며 자유와 참된 사랑을 갈망하는 수영이가 봉건유교도덕의 옹호자이고 희생자이기도 한 어머니를 어떻게 리해할수 있으랴.

수영은 가시같은 말마디들이 막 쏟아져나오려고 입술이 떨리는것을 겨우 참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수영이와 함께 잠자리에 누워서 조용조용 말했다.

《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단다. 녀자의 행복이란 생각하기에 달린거야.》

어머니가 정말로 자기 인생에 만족을 느끼고있었는지 아니면 다 자란 자식앞에 아버지의 권위를 지켜주고 자기를 변호하느라고 그랬는지는 수영이도 알수 없었다. 수영은 묻고싶은것이 많았지만 공연히 어머니의 가슴을 더 허빌것 같아 잠자코있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여서 수영은 일요일례배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학교로 갔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수영은 여느때는 례배에 참가해서도 앞에 선 아이의 머리꽁지를 장난질하며 캐드득거리군 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쓸쓸해서 학교전임목사의 설교를 묵묵히 들었다.

《오늘은 구약성서를 학습하겠습니다. 이스라엘왕 솔로몬의 잠언 제5장을 펼치십시오.》

목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암사슴같고 아름다운 암노루같은 제 안해를 배반해서는 안된다고 알쏭달쏭한 말로 설교를 늘어놓았다.

성서에서도 저렇게 남자들의 방탕을 타이르는걸 보면 남자란 믿고 의지할만 한 존재가 못되는게 틀림없었다. 그 주제에 녀자의 존재를 기껏 암사슴이나 암노루로 취급하고있다.

녀자는 정말 이렇게밖에 살수 없단 말인가? 과연 녀자는 어떤 존재인가? 녀자인 수영으로서는 녀자의 본질, 녀자의 정체성을 해명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자기의 생활방식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방금전에 목사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가는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해주신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가?

한평생 행복의 길로만 곡절없이 걷고싶은데 지금 수영이에게는 길이 너무 많고 갈래가 복잡했다.

어느 길로 가야 행복할수 있겠는지 인생의 출발점에서 미리 알고 떠났으면 좋으련만…

자기가 가는 길의 종착점에 분명 행복이 기다리고있다는 담보만 있으면 부지런히 그 길로만 걷겠는데 모든게 안개속에 묻혀있으니 발걸음을 내디디기가 두렵기만 했다. 이 길로 가면 너무 에돌지 않을가. 저 길로 가면 낭떠러지나 가시덤불이 기다리지 않을가…

례배가 끝난 뒤에도 텅 빈 례배당에 혼자 앉아있던 수영은 때각때각 울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례배당을 돌아보던 수영의 담임교원이였다.

하느님의 품에 자기를 의탁하고 산다는 그리스도교인 이 녀자는 40대에 이르도록 시집을 가지 않은 로처녀였다.

그 녀자는 수영이가 하느님이 계시해준 진리의 무아경에서 깨여나지 못하고있는줄 알고 독실한 신자를 사뭇 기특하게 여기며 앞의자에 앉았다.

《왜 아직 안 가고있지요?》

《선생님, 전… 무섭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데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녀교원은 애티를 벗지 못한 녀학생의 얼굴에서 하도 짙은 고민을 보았던지 수영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겠단 말이지요? 그래요, 그건 응당한거예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쌍한 어린 양이라고 하시는거예요. 양들에게는 혼자서 제집으로 돌아오는 능력이 없거던요. 하느님께서는 갈길 몰라 헤매이는 불쌍한 우리들을 행복한 세계에로 안내하라고 목사님들을 보내주신거예요.》

수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녀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녀자는 꼭 시집을 가야 합니까?》

그 녀자에게는 천진하고 또 천진한 《어린 양》에게 행복의 길을 가르쳐줄 능력도, 한생의 신조로 간직한 참된 진리도 없었다.

대답이 궁해진 그는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수영에게 나직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글쎄… 예수의 품이 아무리 자애롭다해두 녀자들에겐 사내의 품이 더 좋은 법이지.》

중년나이가 되도록 결혼이란걸 해보지 못하고 따라서 가정생활의 재미라는걸 맛보지 못한 독신녀성이 사내품이 좋다고 경험자답게 말하는걸 보면 그의 사생활을 가히 짐작할만 하련만 천진한 수영은 그것도 느끼지 못하고 또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째서 시집가지 않고 혼자 사십니까?》

《사랑할만 한 사내가 있어야지.》

《그래서 예수를 사랑하십니까?》

《난 예수를 사랑하는게 아니예요. 그저 믿을뿐이지.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위안을 얻을수가 없거던. 살아보면 인생이란 공허한거예요.》

8. 15해방은 자기라는 존재에 집착해있던 수영에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었다.

해방후에도 서울에는 달라진것이 별로 없었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총독부 지붕우에서 날리던 히노마루가 성조기로 바뀌우고 초밥이나 우메보시를 좋아하던 난쟁이들대신 껌을 질근거리면서 주머니에 꼬냐크병을 넣고다니는 우멍눈의 꺽다리들이 이 땅의 주인으로 바뀐것뿐이였다.

당시 남조선에서는 미군용기로 수입된 리승만이 자기가 리씨왕조의 후손이라면서 옥좌를 탐내여 좌익세력은 물론이고 림정인물들과도 자리다툼을 하고있었고 《해방자》의 탈을 쓰고 기여든 미군도 맥아더포고 제1호와 제2호로써 자기들이 남조선땅의 새 《주인》이라는것을 명백히 선포하였다. 그런데 주인노릇을 하겠다고 부랴부랴 남조선에 날아든 미군정청관계자들중 그 누구도 조선말을 몰랐고 조선인민에 대해 몰랐으며 조선이 지구의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던 놈들이였다.

《주인》으로서 그들이 할 일이란 점령지역 인민들에 대한 통치와 남조선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방파제를 구축하는것뿐이였다.

리화녀전을 졸업하고 서울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수영은 미군이 《해방자》가 아니라 강도이며 야만이라는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였다.

어느날 병원으로 머리가 터진 한 미군병사가 실려왔었다. 거리에서 폭도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부상당했다는데 사실은 백주에 보석상점을 털다가 얻어맞은 놈이라는것을 수영은 알수 없었다.

설사 알았다 해도 천성이 착하고 의술로 인간을 구원해볼 꿈을 지녔던 수영이로서는 그 미군병사를 치료하는데 정성을 다했을것이다. 더구나 미군은 조선민족을 해방시켜준 《은인》이 아닌가. 그 미군병사가 중환자는 아니였지만 《은인》을 일반환자취급할수 없다는 병원측의 요구에 따라 수영은 담당의사로서 꼬박 이틀밤을 밝혔다. 사흘째되는 날 밤도 간호원과 교대로 환자를 지키던 수영은 책상에 엎디여 깜박 졸았다.

그는 문득 자기 어깨너머로 누군가의 손이 와닿는 느낌에 머리를 들다가 그만 《악!》소리를 질렀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구척장신의 미군병사가 두툼한 입술새로 흰 이를 드러내며 징그럽게 웃고있었던것이다. 다른 인종에게서 풍기는 불쾌한 냄새, 짐승의 앞발같은 털부숭이 손…

수영은 입원실에서 어떻게 뛰쳐나왔는지 몰랐다. 몸에 배인 습관대로 의무실에서 위생복을 벗어버리고는 무작정 병원을 나섰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이 막혔다. 어쩌면 자기를 성의껏 치료해준 의사에게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할수 있단 말인가. 그게 사람인가. 그도 사람이라면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제 생각에 옴해있던 수영은 째는듯 한 호각소리에 아차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격분한김에 뛰쳐나오다보니 통금시간을 까맣게 잊고있었던것이다. 말이 통하면 집이 코앞이라고 설명이라도 해보련만 꺽다리 미군순찰병은 카빙총을 겨누고 몸수색부터 했다. 수영은 난생처음 당해보는 일이여서 총구앞에 서있다는 공포심보다 전신을 태우는 수치감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날 밤 처녀는 류치장에서 한밤을 새웠다.

너무 기가 차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세상이 왜 이렇게 괴이하게 되여가는가. 제땅에서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게 하니 도대체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침에 류치장에서 풀려나온 수영에게는 뜻밖에도 해고장이 기다리고있었다. 그 미군병사가 병원측에 항의했고 병원측에서는 비굴하게도 수영이가 환자에게 무책임했다는 딱지를 붙였던것이다.

수영은 기막힌 현실앞에서 자기에 대한 변호를 포기하고 말없이 병원을 나오고말았다. 진실이 우롱당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말할수 있단 말인가.

그 다음날 석간신문에는 미군병사가 보석방에 뛰여들어 주인을 쏴죽이고 보석을 다 털어갔다는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수영이덕분에 건강을 회복한 그 미군병사가 병원을 나서는길로 《복수》를 단행한것이였다.

그래도 미군정청은 그 병사가 《폭도》들에게 뇌타박을 받았기때문에 정신분렬증으로 인한 과실이라고 변호해나섰다. 사건은 그것으로 끝났다. 주객이 전도된 세상이라 누구도 감히 미군정청에 시비를 가르자고 나서지 못했던것이다.

과연 넓고넓은 이 천지에 정의가 살아있는 세상, 착하게 살고싶은 마음을 보석처럼 귀중히 여겨주는 그런 세상은 없을가, 생활은 자기만의 좁은 울타리안에시 동화의 주인공처럼 살고싶어하던 수영에게 허다한 난문제들을 덧쌓아놓는듯싶었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아버지네 공장은 남조선전역을 휩쓴 통화팽창의 회오리바람에 말려들어 파산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심보나쁜 일본놈들이 조선의 산업을 질식시키려고 수십억원의 《조선은행권》을 람발한 후과로 숱한 중소기업들이 넘어졌던것이다.

가뜩이나 고혈압병으로 신고하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뇌출혈로 쓰러졌다. 수영은 정신없이 뛰여다녔다. 발병초기에 좋은 약을 쓴 덕분인지 어머니는 다음날에 의식을 회복하였다.

의식을 차린 어머니가 제일먼저 찾은것은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수영은 어머니병구완에 제정신이 아니여서 아버지에게 미처 알리지도 못했다. 더구나 어머니가 생사기로에서 헤매는줄도 모르고 작은댁에 가있을 아버지가 미웠던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머니를 노엽힐줄이야.

어머니는 실망어린 눈길로 철없는 딸을 서글프게 바라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주름잡힌 어머니의 눈귀로 한줄기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다.

그제서야 수영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했다는것을 분명히 알았었다. 어머니가 죽음의 문어구에서 마지막으로 보고싶었던 사람이 친딸인 자기가 아니라 일생을 함께 해온 남편이였음을 깨닫는 순간에 수영은 어른이 된듯 한 기분을 느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수영은 황황히 병원을 뛰쳐나와 아버지를 찾아 떠났다.

아버지는 공장에 있었다. 텅 빈 작업장 한가운데 퍼더버리고앉아 한숨을 쉬고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몹시도 처량해보였다. 며칠동안에 아버지는 흰머리칼이 더 많아진것 같았다.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아버지의 얼굴은 무섭게 변했었다. 아버지는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병원에 달려갔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졸아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우는것을 수영은 처음 보았었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어머니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재차 강한 대출혈로 손쓸새없이 사망했을 때 아버지는 극도의 슬픔으로 침식을 전페하다싶이 했다. 어머니 수의도 제손으로 입혀주었다.

《여보, 평생 고생만 시키다 먼저 보내는구려. 래세에 태여나면 나처럼 신의없는 놈을 만나지 마오.》

그때 수영은 만약 어머니가 그 말을 들었다면 다음세상에서도 꼭 당신한테 시집오겠다고 말했을것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어머니를 잃고 공장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빚때문에 집까지 내놓아야 했다.

그것이 해방이 수영이네 집에 가져다준 《혜택》이였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에도 며칠동안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만 퍼마시던 아버지는 수영을 불러앉혔다.

《이 애비를 원망해라, 앞으로는 어쨌으면 좋겠느냐?》

《…》

《이 서울바닥에서는 살아갈 길이 막혔으니 난 네가 얼마동안이라도 평양에 있는 외삼촌을 찾아갔으면 한다.》

수영이도 진작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북조선에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정사를 보신다는데 아무렴 여기처럼 무법천지야 아니겠지. 그럼 아버지는? …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함께 가요.》

아버지는 머리를 저었다.

《내 걱정은 말아라. 네 에미를 먼저 보내구 집안을 이 꼴로 만들어놓은 주제에 무슨 낯으로 처남앞에 나서겠느냐. 혼자 가거라, 난 불가에 의탁해보련다.》

《예?》

수영은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겠단 말인가. 아버지는 허탈감에 빠진듯 한 어조로 뒤를 달았다.

《속세에서 아득바득하며 살아오느라 내 별로 공덕을 쌓지도 못한 주제에 극락왕생이 가당하겠냐만 그래도 악한 일은 안하고 늙어왔으니 늦게나마 찾아가보련다. 부처님은 자비하시다는데 설사 극락세계가 비좁다 해도 나 하나쯤이야 받아주시겠지.》

바람벽에 기대앉아 천정을 올려다보는 아버지의 눈가에는 뿌연 눈물이 고여있었다.

수영은 아버지가 가엾어보였다. 아버지는 단란하던 가정을 풍지박산내버린 잔인한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무력감을 인정하기때문에 황황히 속세를 떠나 부처님한테서 안식을 찾으려 하고있다.

반대로 수영이 자기는 아직도 행복에 미련을 가지고 공산정권이 서있다는 북조선에 가려고 한다. 이 극적인 작별의 마당에서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은것일가.

아버지는 수영의 생각을 알아맞히기라도 한듯싶었다.

《자고로 신통한 세상이란 있어본적이 없다. 네가 아무리 안데르쎈의 동화를 좋아해도 인류사에 동화의 세계와 같은 곳은 없었다. 이북의 공산세상이라고 다르겠느냐. 하지만…》

아버지는 바람벽에서 등을 떼고 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혹시 알겠느냐, 지금 북조선에선 김일성장군이 인민이 잘 사는 나라를 세우신다는데 그분이 극락세계는 아니더라도 선한것이 악한것을 이기고 백성이 마음편히 사는 새 나라의 표본을 이 땅에 세우신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비록 꿈같은 소리이긴 하다만 착한 마음씨 하나만 가지고 인생살이를 시작하려는 너한테 이런 미련까지 없으면 세상이 지겨워서 어떻게 살겠느냐. 내 부처님앞에서 네 앞길에 구름이 끼지 않게 해달라고 일구월심 빌것이니 어서 떠나도록 해라.》

아버지는 포목상을 하는 친구가 밀선을 타고 북반부에 드나든다면서 그를 수영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수영은 해방후 석달만에 평양으로 들어왔었다. 아직은 자기의 선택이 옳았다는 절대적인 확신은 가질수 없지만 수영은 여기 평양에 와서부터 마음속깊이 얼어붙었던 행복에 대한 갈망이 조심조심 싹을 틔우고 아지를 펼치면서 자기의 가슴을 부풀게 한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수영은 날이 어둑어둑해서야 병원을 나섰다.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면서 수영은 저도 모르게 운상을 생각했다.

오성재농민의 일로 모욕을 당한 순간부터 다시는 만나고싶지 않았던 청년이였다. 못할짓을 하다 들킨 사람이 후날에도 그 목격자를 만나면 어쩔수없이 느끼게 되는 창피감때문이랄가.…

그런데 오늘 그가 장군님을 만나뵈온 사연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자기는 그에게 의자까지 권했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이건 분명 환자들외에는 누구에게도 친절을 보인적 없었던 수영이 자기가 그 사람에게 공감되였다는 증거가 아닐가.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의 호의를 무시하고 훌쩍 가버렸다. 그래도 모욕감을 느끼지 못했으니 어인 일인가.

운상을 미워한다고는 하면서도 수영은 스스로 자기 마음을 믿을수 없었다.




17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집무실에서 쏘련군전권대표 슈띠꼬브대장을 기다리고계시였다. 조금전에 쏘련군사령부에서 슈띠꼬브대장이 떠난다는 전화가 왔었다. 그는 쏘미공동위원회 대표로 서울에 나가있다가 미제의 방해책동으로 공동위원회가 무기휴회되는 바람에 어제 평양으로 돌아왔던것이다. 결국 작년말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3개국 외무상회의에서 토의결정되였던 전후 조선문제 즉 조선에 통일적민주주의독립국가를 세우도록 협조한다던 결정은 휴지장이 되고만것이였다.

과연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해 영영 둘로 갈라져야 한단 말인가. 무거운 생각에 잠겨계시는 그이께 서기가 조용히 다가왔다.

《장군님, 슈띠꼬브대장이 도착했습니다.》

고개를 드시니 군복차림의 슈띠꼬브가 집무실에 들어와 거수경례를 하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문가로 향하시였다.

《그동안 수고많았습니다. 슈띠꼬브동지! 서울에 나가서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와 인사를 나누신 다음 친절하게 자리를 권하시였다.

그러나 슈띠꼬브는 앉을념은 않고 정색해서 말씀드렸다.

《제가 김일성동지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자기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지 못한데 대해서는 쓰딸린동지와 우리 정부앞에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만 김일성동지앞에서는 인간적으로 량심의 총화를 지으려고 합니다.》

슈띠꼬브의 말은 진심이였다. 전쟁전에는 레닌그라드주에서 구역당사업을 했고 전쟁시기에는 전선군 군사위원을 력임해온 그는 자기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것이 한 민족의 장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제가 서울에서 가지고온것이 있습니다.》

슈띠꼬브가 문을 열자 서기실에서 대기하던 그의 부관이 하얀 모시퉁구리를 안고 집무실에 들어섰다.

《이건 웬겁니까?》

장군님께서는 슈띠꼬브에게 사연을 물으시였다.

《공동위원회를 개회하는 날 남조선의 좌익계 정당단체들의 축하연이 있었습니다. 그때 서울시 종로구의 녀맹위원장녀성이 저에게 선물한것입니다. 그 부인은 조선민족을 이 모시퉁구리처럼 한덩어리가 되게 해달라고 절절하게 당부했댔습니다. 그 부인의 부탁이자 전체 조선인민의 념원인데 제 노력이 부족해서…》

장군님께서는 긴 상우에 올려놓은 모시퉁구리를 쓸어보시였다. 발이 가늘고 하얀 모시퉁구리는 속대를 넣고 돌돌 말아서 봇나무토막처럼 단단했다. 그것은 마치 남북이 갈라지지 않고 하나로 뭉치려는 민족의 념원을 상징하고있는듯싶으시였다.

《이건 슈띠꼬브동지가 건사하십시오. 언제나 우리 인민의 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아닙니다. 나에겐 그걸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슈띠꼬브가 더 고집하지 못하게 손을 저으시였다.

《쏘미공동위원회가 파탄된것은 결코 슈띠꼬브동지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할수 있는껏 다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공동위원회가 파탄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정말이지 그들과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지 않고는 말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슈띠꼬브는 자기의 고심을 알아주시는 장군님께 변명조로 말씀올렸다.

《미국사람들이 3상회의 결정을 그렇게 쉽게 실천할것 같으면 무엇때문에 남조선우익세력을 내세워 기를 쓰고 <반탁>소동을 벌리게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슈띠꼬브는 장군님께서 권하시는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공동위원회가 이렇게 끝나리라는걸 예견하고계셨습니까?》

《나는 슈띠꼬브동지를 실망시키고싶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미국의 태도에 우려를 느끼고있었습니다. 그 우려가 현실로 증명되였을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이 난김에 미제와 남조선반동세력의 《반탁》소동의 본질을 명백히 밝혀주고싶으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은 저들이 강점한 일본이라는 섬나라를 련합국들과 나누어먹지 않고 통채로 삼켜버릴 욕심을 로골적으로 드러내고있었다.

한편 쏘련은 자기들의 북방령토를 되찾는데 초점을 두었기때문에 미국의 욕심을 너그럽게 리해해주었다. 트루맨의 특사로 중국에 파견되였던 웨더마이어는 작년 11월에 미륙군성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장개석의 가치를 인하시키면서 그가 국내전쟁에서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인민해방군을 이기기가 불가능하다는것을 론증하였다.

미국은 장개석이 중국을 통일하고 약속대로 부르죠아친미정권을 수립한다는 당초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조선남부에라도 자기들의 친미정권을 세워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일본방위의 국경으로 리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미 테헤란회담과 얄따회담에서 조선에 20~30년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미국으로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결론이라고 볼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저들의 전략수정에 대한 조선인의 지지를 세계앞에 선전하는것이 필요하였기때문에 리승만역도를 괴수로 하는 반동단체들을 내몰아 조선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는 소동을 벌리게 한것이였다.

미국은 말을 바꿔타는 저들의 대외정책변화가 세상에 폭로되는 시기를 될수록 미루려고 했다. 그것은 쏘련의 태도나 장개석의 반발이 우려되였기때문이였다. 그런 리유로 하여 미국무성은 쏘미공동위원회가 열리는 마당에서도 《남조선에 단독정권을 세울 계획은 없다.》고 뻔뻔스레 거짓말을 했던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분렬의 위험이 박두해오고있습니디. 이 엄중한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분렬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슈띠꼬브에게 힘있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내가 항상 주장하는것이지만 조선문제는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해결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의 통일독립을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는 한편 전체 인민의 단결된 힘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여 조선인민은 그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제힘으로 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줄것입니다. 지금 평양에서는 민주건설의 첫 사업으로 보통강개수공사를 벌리기 위한 준비사업을 하고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건국의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슈띠꼬브는 처음 듣는 소리여서 어지간히 놀랐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공사의 절박성과 규모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시였다. 슈띠꼬브의 놀라움은 더 커졌다.

《그 방대한 공사를 장마철전에 끝낸다는건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럴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결심했고 꼭 해낼것입니다.》

《제가 우리 정부에 제기해서 굴착기라도 몇대 도와주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고맙긴 하지만 우리 힘으로 해내겠습니다. 쏘련에서도 지난 3월에 최고쏘베트 제1차회의에서 5개년인민경제발전계획을 세우고 전쟁의 후과를 가시기 위해 애쓰고있는 형편인데 남을 도와줄 형편이 못될겁니다.》

《김일성동지의 민족자주정신은 저도 공감합니다만 그러나…》

슈띠꼬브는 자기의 내심을 털어놓고 말씀드릴수 없었다.

현재 북조선의 긴장한 정치정세로 보나 경제적잠재력으로 보나 그처럼 큰 공사를 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였던것이다. 만약 이 공사를 제 기일내에 끝내지 못한다면 건국은 욕망으로만 하는게 아니며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는 독립국가를 건설할수 없다는것을 내외에 증명하는 계기로도 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조선의 완전독립을 주장해온 쏘련측의 립장도 어지간히 난처해지게 될것이며 더우기는 큰나라 대표로서 자기 립장도 딱해질수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슈띠꼬브의 심중을 꿰뚫어보신듯 미소를 띠우시며 말씀하시였다.

《슈띠꼬브동지! 우리 조선인민을 믿으십시오. 우리 인민은 해낼것입니다.》

슈띠꼬브는 어쩔수없이 자기의 심중을 내비쳤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군중의 힘만 믿고 그 공사를 결심하신 모양인데 지나친 모험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북조선에서는 아직도 식민지의 락후성을 청산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혁명적각성이 부족한 군중을 하루아침에 민주건설의 주력군으로 내세운다는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제 심정을 리해해주십시오. 우리 쏘련의 경우를 보면 1919년에 레닌의 호소에 의해 무보수로동으로 전개된 공산주의토요로동이 대중적경쟁운동의 시초로 되였고 1935년에 돈바쓰탄전에서 스따하노브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토요로동에 처음 참가하였던 15명의 철도로동자들은 다 공산당원들이였습니다. 그리고 스따하노브운동은 기준량을 초과완수한만큼 보수가 차례졌습니다. 그 운동마저도 최근에 와서는 점차 기운이 사그러져가고있습니다. 그런데 보통강개수공사는 어떻습니까? 공산당원들만 참가시킬수도 없고 더구나 변변한 기계수단도 없이 인민들의 힘만으로 장마철전에 공사를 끝낸다는것은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시였다. 오래동안 당사업을 해왔다는 슈띠꼬브까지도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믿지 못하고있다. 더 가슴아프고 섭섭하신것은 우리 조선인민의 애국열의를 믿지 못하고있는것이였다. 어느때나 인민을 무시할수 없다는거야 력사가 증명해준 진리가 아닌가.

그이의 눈앞에는 어린시절 어른들과 함께 성안에 들어오시여 《만세!》를 부르시던 3월 1일, 그날이 삼삼히 밟혀오시였다. 바로 그날에 그이께서는 인민대중의 힘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는것을 처음으로 체험하시였던것이다. 그때 쇠스랑과 걸이대를 추켜들고 자신과 나란히 서서 만세를 부르던 흰옷입은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전설속의 용사들이였던가. 노도같이 일떠선 그 영웅적인민들은 만경대와 칠골에서처럼 묵묵히 밭을 갈고 씨를 뿌리던 어질고 어진 농민들이였고 해종일 구슬땀을 흘리던 로동자들이였으며 한푼이라도 벌어보려고 아득바득하던 장사군들, 품팔이군들, 아낙네들이였다. 그들에게 싸움에 나서라고 부추긴 사람도 없었고 조국을 잃었으니 땅을 치며 울라고 호소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목숨을 바쳐야 할 혈전장으로 스스로 달려나갔고 《조선독립 만세!》를 웨치며 피를 쏟았고 주검으로 굳어졌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속에 차넘치는 민족에 대한 절대적인 긍지를 마음껏 퍼내시는듯 열변을 터치시였다.

《력사적으로 놓고볼 때 반제반봉건투쟁의 주력은 언제나 인민대중이였습니다. 수천년 인류력사는 인민대중에 의해 발전해왔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력사적지위와 사명에 대해서는 어느 기성리론에도 밝혀져있지 않았습니다. 과연 인민대중이 그렇게까지 외면당해도 무방한 보잘것없는 존재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인민은 오랜 세월 사회적예속과 자연의 구속에서 자신을 해방하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줄기차게 싸워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연과 사회를 개조할 지혜와 힘이 있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혁명을 시작할 때부터 조선의 해방을 위해 영원히 나와 함께 싸울 혁명동지가 인민대중이라는것을 절대진리로 간직하고 오늘까지 인민에게 의거하여 싸워왔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해방된 조국땅에 인민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투쟁하고있으며 아무리 어려워도 천대받던 토성랑인민들을 나라의 주인으로 대접해주기 위해 보통강개수공사를 주장하는것입니다.》

슈띠꼬브는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이의 절대적인 인민관에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저렇듯 열렬하게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 민족의 위대성을 확신하는 령도자가 동서고금에 있었던가. 문득 2차세계대전 말기에 히틀러가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도이췰란드인민은 내 목적을 리해하지 못하고있다. 내 목적을 인식하고 실현하기엔 인민이 지내 보잘것없다. 만일 나에게 죽음이 차례진다면 도이췰란드인민도 죽을것이다. 왜냐면 인민은 나보다 가치가 없기때문이다.》

슈띠꼬브는 그 말을 들으며 역시 정신병자는 어쩔수 없구나 하고 넘겨버렸었다. 지금 그 말이 다시 생각나는것은 하늘땅과 같은 대비적고찰이라는 론리학적사고때문이 아니라 김일성동지의 절대적인 인민관을 현대정치인들의 유일한 인민관으로 관통시켜야 할것이라는 흥분과 확신에서부터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보통강개수공사를 단시일내에 끝낸다는데 대해서는 쉽게 믿을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 북조선의 형편에서는 그런 물길공사에 힘을 소모할 때가 아니지 않는가.

《제가 김일성동지께 말씀드리고싶은것은 쏘미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남북통일정부수립이 장애에 부닥친만큼 북조선현실에 맞는 정치체제를 공고히 하는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하는것입니다. 저는 쓰딸린동지한테서 정치를 배운 사람입니다. 쓰딸린동지가 현재의 중앙집권적정치체제를 어떻게 마련하였는가 하는것은 김일성동지도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슈띠꼬브동지는 정치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말씀하시려는것 같은데 나는 거기에 대해선 론의할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장군님께서는 화제가 탈선하는것을 바로잡으시려고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대화분위기는 자연히 론쟁의 형식으로 바뀌여졌다.

《아시겠지만 맑스-레닌주의에서는 민중이 력사의 창조자이며 력사발전의 결정적력량이라는것을 명시하면서 민중이 정권과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사상을 처음으로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맑스-레닌주의에서 근로인민대중이 력사의 창조자라는것은 생산발전력사행정에서 민중이 물질적부의 직접적인 생산자이며 생산방식의 모순의 해결자라는 리해를 정식화한것이지 결코 근로대중을 력사의 주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한것은 아니였습니다. 민중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는 문제는 애당초 정치의 주되는 문제로 전개되지조차 못하고 사회발전에서 경제의 결정적역할이라는 대전제의 론의속에 매몰되여있었습니다. 다시말하면 맑스-레닌주의에서는 정치의 사명을 로동계급의 경제적해방으로 보고 정치운동은 그 수단으로 보면서 국가정권문제도 경제적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맑스의 학설은 로동계급이 경제적지배계급으로 되는데 정치의 목적이 있다고만 보았기때문에 민중이 국가주권의 주인이 되여야 사회의 주인, 정치의 주인이 될수 있다는데까지는 발전할수 없었으며 경제적변혁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한 수단이라는것을 옳게 전개할수 없었다는데

댓글목록

profile_image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장군님께서는 맑스의 학설은 로동계급이 경제적지배계급으로 되는데 정치의 목적이 있다고만 보았기때문에 민중이 국가주권의 주인이 되여야 사회의 주인, 정치의 주인이 될수 있다는데까지는 발전할수 없었으며 경제적변혁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한 수단이라는것을 옳게 전개할수 없었다는데 대하여 론증하시였다.
슈띠꼬브는 착잡한 생각에 잠겨 평소의 자신심을 잃어버린듯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당사업을 해오면서 정치를 폭력의 은페된 형태로 리해해왔습니다.》
《해당시기 어떤 정치로선을 제기하든 그 기초에는 자기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이 깔려있어야 할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시기의 민본사상이나 중민사상, 민권옹호론과도 구별되는 이민위천의 사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슈띠꼬브는 어느 정도 리해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김일성동지께서 보통강개수공사를 중시하시는것은 거기에 이민위천의 사상이 반영되여있기때문이라는거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글쎄 난 정치가이기 전에 여기 평양에 고향을 둔 한 인간으로서 이 공사의 정당성과 절박성을 주장하고싶을뿐입니다. 나는 해방된 땅우에 인민의 나라를 세우자는 조선의 공산주의자입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인민대중을 력사의 주체로, 혁명의 동력으로 믿고 인민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것이 과연 잘못된 로선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인민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힘있는 존재였지만 그들이 력사밖으로 밀려나있었던것은 인민이란 존재를 력사무대의 한복판으로 안내할만 한 로선과 령도가 없었기때문이였습니다. 때문에 인민의 힘을 믿고 이 공사를 시작하는것은 방금 슈띠꼬브동지도 말씀하다싶이 북조선의 정치체제를 공고히 하는것과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인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할 때까지 기다릴것이 아니라 등을 떠밀어 내세워주는것이 정치가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슈띠꼬브는 확신에 넘치신 장군님께 더 다른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다. 그러나 과연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그렇듯 방대한 공사를 장마철전에 끝낼수 있겠는가 하는 의혹만은 말끔히 털어버리지 못하였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