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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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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951회 작성일 15-12-2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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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3 회 )

 

34

 

원장의 방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떠돌고있었다. 마주 앉아있는 두사람은 다 당 및 행정책임자들로서 그들에 의하여 과학원안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가 결정된다고 할수 있었다. 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 때에는 토론범위를 확대하여 초급당위원들이 다 모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많은 문제들은 그 성격에 따라 당 및 행정책임자의 결심으로 그들의 수표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당비서인 한응삼은 자기가 짜놓은 명단에 수표하려다 말고 김석진이를 찾아왔다. 미타한 점이 있는 보고를 수령님께 올린것으로 하여 긴장하고 불안한 분위기에 잠겨있는 과학원에 뜻밖의 희한한 소식이 전해졌다. 수령님께서 가을경치가 좋으니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하시며 학자들을 묘향산에 부르시였다는것이다.

뒤이어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로부터 공로있는 학자들의 명단을 짜서 올려보내라는 과업이 한응삼에게 떨어졌다. 이것이야말로 당비서의 몫이다.

한응삼은 학자들을 부르신 수령님의 의도를 짐작해보며 단군릉발굴과 단군조선연구에 참가하고있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명단을 짰다. 그는 수령님께서 이 기회에 올려보낸 그 불안한 보고에 대한 교시를 주실것이라고 여기면서 그것을 주관하여 작성한 리관직이를 명단에 넣었다.

그는 명단을 짜면서 박진규의 이름앞에서 생각이 많았었다.

한응삼이 박진규를 놓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된데는 리관직의 말에 귀를 기울인탓이기도 했지만 보고문제가 무난히 넘어가길 바라는 그의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문제의 보고에 허점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작성하고 과학협의회를 주관하여 통과시킨 리관직이 한사람에게만 책임을 넘겨씌울수는 없다. 아무 단위에서나 최고지도기관은 해당 당위원회이다. 크고작은 모든 문제를 당위원회가 책임진다. 문제거리가 제기되였을 때는 더욱 그렇다. 당위원회가 책임진다는것은 많은 경우 당비서가 책임진다는것을 의미했다.

한응삼은 요새 매우 불안하고 긴장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는 우산없이 서서 비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바라보는 심정이였다. 비가 오면 어차피 비를 맞게 되여있었다. 이러한 심정인 한응삼은 이미 올려보낸 보고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들고다니는 박진규가 붙는 불에 키질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른 한편 김석진원사는 문제의 보고에 대한 견해에서 한응삼이와 차이를 가지고있었다. 그는 틀렸으면 바로잡자는 립장이였다. 설사 수령님께 올린 보고라 할지라도 다시 찾아올 심산이였다. 그러니 박진규에게 의거할수밖에 없었다. 그도 책임문제가 두렵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그는 이번 문제는 과학문제인만큼 응당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있었다.

두사람은 이러한 속생각을 털어놓지 않은 상태에서 명단문제를 토론하고있었다.

한응삼이 명단을 짜면서 박진규를 놓고 착잡해지는 자기 심정을 숨김없이 이야기하였다.

《박진규선생은 좀 과격한 편이지요. 자기를 숨길줄 모른단 말입니다. 전 수령님을 모시게 될 그 자리에서 박진규선생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안합니다. 리관직부원장방에서처럼 행동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밤에 리관직의 방에 들이닥친 박진규는 대바람에 따지고들었다.

《동무, 량심에 꺼리는게 없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어떻게 하는 말인가?》

《보고말일세. 조금이라도 량심에 꺼리는게 있으면 수령님께 사죄드리고 도로 찾아오게!》

《정신 나갔나?》

《찾아오게!》

박진규는 한발 다가서며 불호령하였다.

그 서슬에 리관직이도 한발 나섰다. 두사람의 눈길이 강렬히 부딪쳤다.

《진규, 지난날의 감정을 아직 가지고있는게 아니야?》

《뭐라구?! 에익, 개꼬리 3년 가도 황모 못된다더니!》박진규는 주먹을 쳐들었으나 그를 쥐여박지 못하고 쾅 하고 책상을 쳤다. 주먹을 맞은건 리관직이 아니라 책상이였다.

원사는 개탄했다. 부원장방에 뛰여들어 란동을 부리다니? 뭐 개꼬리 3년 가도 황모 못된다? 폭행까지 했다?

이런 망나니짓이 어데 있는가.

원사는 자기 방에 찾아왔다가 리관직을 벼르며 뛰쳐나가던 그를 멈춰세우지 못한것을 한탄하였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아직 검측결과가 나오자면 시간이 걸리겠는데 박진규동문 왜 굳이 반대쪽으로 생각을 몰아가고있는건지…》

한응삼은 김석진의 의향을 묻기보다는 그에게서 박진규라는 이름을 빼자는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한응삼이 알고있는 김석진은 충분히 그렇게 하자고 제안할 사람이였다. 매사에 소심하고 일이 불거지는것을 싫어하는 원장인것만큼 수령님을모신 좌석에 의합이 안된 사람들을 함께 참가시키자고 할리 만무한것이다. 그의 동의를 얻는다면 마음도 한결 개운해질것 같았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김석진은 힘들게 말을 뗐다.

《그 자리에…》

수령님을 모신 자리이다. 수령님께서는 묘향산의 단풍계절에 수고하는 학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르시였지만 그 좌석에서 반드시 과학원에서 올린 보고에 대한 결론을 주실것이라고 석진은 믿어의심치 않았다.

《우리가 올린 보고에 이의를 가지고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박진규동무를 빼놓는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잘하는 일같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께름한게 있을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한응삼은 자기가 원장에 대하여 너무도 잘못 알고있었다는것을 순간에 깨달았다. 과학문제에서만은 결코 소심할수가 없는 김석진이라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들은 인차 잠잠해졌다. 서로 상대를 존중한 까닭이였다.

당비서는 교수이고 박사이며 원사인 원장을 언제나 존중했고 원장 또한 나이가 아들벌되는 당비서의 권위를 지켜주기 위해 각별히 애써왔었다.

그런데 잠간이긴 하지만 그들이 왜 호상 다른 견해를 가지고 마주앉게 되였는가.

제기된 문제가 엄청나게 컸던것이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밤이고 낮이고 생각했으며 밤잠도 잊고 밥맛도 잃었다.

불안과 고민속에서 그들은 신경이 날카로와질대로 날카로와졌고 이의는 그래서 생긴것이였다.

두사람은 서로 자중하고 앉았지만 여전히 충돌의 불씨를 안고있었고 그 충돌을 야기시킨 박진규문제를 결속짓지 못하고있었다.

지금 원장방에 떠도는 무거운 공기는 바로 그때문이였다.

《박진규동무는》하고 한응삼이 오랜 침묵을 깨쳤다. 그는 평상시에 학자들을 선생이라고 부르다가도 자기가 당비서라는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는 동무라고 하였다. 지금 박진규가 없는데서 동무라고 부른것은 사실상 원사에게 자기의 지위를 암시한것이였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말에 무게를 실으려고 하였다.

《박진규동무는》 그는 이렇게 박진규의 이름을 곱씹고나서 계속 하였다. 《과학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지하고 실력도 있으며 학자로서의 량심도 나무랄데 없으나 이번 문제에서만은 감정을 섞고있는것 같습니다.》

《부원장에 대한 감정인가요?》

원사가 당비서의 말에 압박감을 느끼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 보고문을 다른 사람이 낸것이라면 박진규동무가 어떻게 나왔을가요?》

《나는 부원장을 탐탁하게 보지는 않지만 다른 감정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보고에 의견이 있는데요. 당비서동문 박진규선생에 대해 뭔가 잘못 보고있습니다. 그 선생이 부원장과의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때문에 아직 감정을 품고있다는 말인가요?》

《과거의 감정을 다 씻어버렸다고는 할수 없지요.》

《리해되지 않는데요?》

《그들 두사람을 놓고보면 다같이 결함이 있습니다. 한사람은 초당적인 반면에 다른 사람은 비당적입니다.》

《그를 그렇게 보다니? 당비서가…》

《당비서는 사람들의 여론과 반영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틀리는 평가가 아니라는거지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지금 과학원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의견들이 있어하고있습니다. 과학적주장만 주장이라고 하면서 당의 요구, 수령의 요구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뭐라구요?!》

두사람은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고있으나 그들의 감정은 폭발직전으로 치달아오르고있었다. 입에 올린 화제와는 달리 그들의 가슴속에는 보고에 대한 상반되는 립장이 마주 서있었으며 더 든든하게 배수진을 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니 어찌 화합이 이루어지겠는가?

어느 한쪽이 꺾이우는수밖에 없었다.

한응삼이 내심을 누르고 조용히 말했다.

《리관직부원장에 대한 평가도 저는 군중의 의견에 기초하여 내렸습니다. 이번 경우만은 초당이 아닙니다. 유물자료에 철저히 기초한 5천이라는 수자가 초당이라고 할수야 없는거지요. 반대로 박진규동무는 뭡니까? 이 5천이라는 수자는 보지 않고 극히 부차적인 의미밖에 가지지 못하는 무덤의 구조형식문제를 고집스럽게 들고나오니 아무리 과학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지만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합니까?

적중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초과학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가요? 그는 과학과학 하면서 어버이수령님의 절박하신 심정을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수령님께서 매일 매 순간 유골을 기다리시는데 답답하지 않습니까. 박진규동무는 확실히 수령을 모시는 자세가 되여있지 않습니다. 현재 나타난 현상을 놓고 이러한 결론을 내릴수밖에 없습니다. 당비서는 항상 제기되는 문제의 본질을 밝혀낼 때 나타난 현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현상이 본질을 외곡반영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거의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 경우는 현상이 본질을 반영하고있습니다. 과학사업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사업도 나타난 행위를 놓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해당한 대책을 취하는것입니다.》

《비서동무의 말을 들어보니 이 원장도 비당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런가요?》

《굳이 날을 세워 말한다면 그런 결과로 떨어질수 없다고 장담할수 없습니다. 저는 박진규동무를 추종하지 말라는것을 권고하고싶습니다. 이건 당적충고입니다.》

이 말을 듣는 원장이나 이 말을 한 당비서나 동시에 굳어졌다.

불꽃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사이에 있은 가장 큰 충돌을 의미하는 말이기때문이였다.

방안의 공기는 터질듯이 팽배해졌다.

한응삼이 인차 긴장한 공기를 풀려고 좀 덤비면서 말했다.

《원장동지, 제 말이 과한것 같은데 용서하십시오. 모처럼 마련된 영광의 자리에서 자그마한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길가봐 제 신경이 날카로와진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야 석진은 자기와 당비서와의 의견충돌이 왜 생겨난것인지 알수 있었다.

《그렇군요. 당비서동무에게는 그 자리가 영광의 자리란 말이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 자리는 우리 과학자들이 수령님을 보좌해드려야 하는 보다 무겁고도 책임적인 자리입니다. 난 지금에야 깨달았습니다. 당비서동무에게 박진규선생을 뺐으면 하는 의견이 왜서 생긴것인지…

우리는 수령님의 천리안을 너무 믿는 나머지 응석꾸러기가 되여가고있습니다. 수령님께서 만사를 옳게 판별해주시고 명확한 가르치심을 주시겠는데 우리는 제기되는 문제점들이나 보고올리고 그이의 결론을 받아 일을 해나가자는것이지요. 안전하고 무난하게…》

석진의 어조가 점점 높아졌다.

《그 과정이 곧 보신과 무책임, 나아가서 아첨으로 된다는것을 당비서동무가 모른단 말입니까?》

한응삼은 드디여 원사앞에 머리를 숙이였다.

그는 수많은 원사, 교수, 박사들을 망라하고있는 지식인집단의 당일군이라는 자존심을 가지고 언제나 자신의 인격을 지켜오느라고 애썼다. 사업실적도 그만하면 괜찮아서 상급당에서도 인정을 받고있으며 수령님으로부터도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은 허둥거리게 되는지 자신도 모를 일이였다. 지금 그는 자기가 리관직에게 휘둘리운감도 없지 않았다. 과연 그가 말한대로 박진규가 비당적인가. 그리고 김석진원사까지도…

당일군이 이러저러한 리유로 한번 휘둘리우기 시작하면 원칙을 잃게 된다. 원칙은 당일군이 죽어도 베고 죽어야 할 기본무기이며 손에서 한순간도 놓아서는 안될 사업의 자막대기이다.

한응삼은 고통속에서 잠시 자신을 잊고있었다.

《원장선생, 알았습니다. 제 잠시 당비서의 본분을 망각했던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아마 밤이 깊었으니 박진규동무가 발굴현지로 떠나지 않았을겁니다. 지금 집에 있을겁니다.》

 

×

 

박진규는 자기가 리관직의 방을 차고나온 뒤 김석진의 방에서 원장과 당비서가 자기 문제를 놓고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원래는 그길로 발굴현장에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갔댔자 일손이 잡힐것 같지 않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들어서니 어째서인지 두 모녀가 깊은 밤인데도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넌 집에 있니?》

《아버지가 오늘 집에 들어오겠는가 안 오겠는가 엄마와 내길 하고있었는데 누가 이겼을것 같아요?》

《누가 이겼든 그거야말로 우연이다.》

그 말에는 아랑곳없이 례영은 부엌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어머니, 내 말이 꼭 맞았지요?》

례영이가 방글거리며 진규의 손을 잡았다.

《우린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설줄 알았어요.》

그는 대학연구소에서 갑자기 제기된 문제가 있어 발굴사업에서 며칠간 떨어져 집에 와있었다. 그는 사랑문제로 하여 생긴 고민을 속에 묻어두고 아버지앞에서 일체 나타내지 않았다.

《나도 방금전에 결심한건데 네가 어떻게 알았다는거냐?》

옷을 벗으며 진규가 심드렁해서 물었다.

《그건 엄마가 아버지가 와주었으면 하고 너무 바라길래 내가 한번 어림짐작을 했는데 이렇게 맞아떨어진거예요. 아버지, 좋은 일이 있어요.》

《좋은 일이라니?》

《엄마, 어서.》

진규가 어리둥절해서 안해와 딸을 번갈아보는데 복순이가 부엌에서 나왔다.

《됐다, 뭘 그리 급하게. 아버지가 당장 어딜 가는것 같구나. 저녁이나 먹구 천천히…》

《그래두 난 빨리 보고싶어. 엄마, 어서…》

《참, 네 성화두 어지간하구나.》

복순이가 웃방에 올라가더니 새 양복에 새 와이샤쯔, 새 넥타이까지 받쳐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어딘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옷을 한벌 마련했수다.》

《좋은 일이라는게 이거요?》

《그럼 아버진 나빠요?》

《허허…》

박진규는 모녀의 정성에 대번에 가슴이 젖어들어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지 못할 선소리를 냈다.

례영이가 기성복을 사와서 맞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어서 입어보라는것을 마다하며 박진규는 말했다.

《천이 좋아보이누만 있다가 천천히 입어보지.》

《아버진 참, 뭐 그리 품드는 일이라고… 제창 입어봐요.》

례영이는 막 속이 타했다.

진규는 딸의 극성에 못이겨 새 양복을 입고 벽거울앞에 다가섰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듯 한 자기의 모습과 등뒤에 서서 환히 웃고있는 안해의 모습이 거울에 비껴있었다.

곁에서 재잘거리는 례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옷이 날개라더니 야, 아버지도 멋있네!》

안해의 떨리는듯 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어버이수령님을 뵙는 자리에… 매번 다 입던 낡은 옷을 입혀보낸것이 가슴에 걸려 한벌 마련했어요. 이 애가 너무 곡진하게 조르기두 하구…》

박진규는 안해의 그 말을 들으며 코허리가 시큰해왔다.

그 말에는 안해의 간절하고도 눈물겨운 소원이 깔려있었다. 저 사람은 이 박진규에게서 무얼 보고 한생을 묵묵히 바쳐왔던가. 재물? 명예? 직위?…

설사 그것을 바랐어도 이 박진규는 그중의 하나도 해준것이 없다. 십년전쯤 자기가 천연색텔레비죤수상기를 배정받았을 때 안해는 눈물을 지은적이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였을가.

그도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희망과 포부, 가치관이 있을것이 아닌가? 자그만치 형제 11남매가 되는 대가정의 맏며느리로 들어와서 시동생, 시누이들의 뒤치락거리를 하면서도 언제 한번 얼굴을 흐린적이 없다. 이 박진규가 과학연구사업을 한답시고 석달이고 반년이고 집을 나가있어도 가정잡사를 놓고 지청구 한마디 없었다. 이러한 그를 위해 지방에 나갔다가 호박이나 푸성귀를 배낭에 넣고올 때면 체면에 신경쓰라고 싫은 소리를 하며 얼굴을 흐리였다.

체면?

이 박진규가 어디 체면에 신경쓸 겨를이 있던가. 남편의 뒤바라지를 위해 이른새벽에 일어나 탄불을 지피고 밥이 잦을 사이면 빨래를 하고 남편이 식사하는 사이면 구두를 닦아놓던 안해, 그 앞에서 체면을 생각하는것은 죄악이 아닐수 없다. 나에게 푸성귀배낭을 지고왔다고 《체면》을 운운하지만 그는 남새를 얻으려 주변농장에도 기꺼이 웃으며 다녀오군 하였다.

그러던 안해가 이 박진규가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 온 날 온밤 흐느껴울었다. 안해가 그렇게 우는걸 처음 보았다. 그 울음에 안해의 인생관, 가치관이 있는것이 아닐가.

《아버지, 이제 단군연구가 성과적으로 끝나면 우리 사회과학자들이 수령님을 또다시 모시게 되겠지요?》

《엉?》

딸의 그 말에 왜서인지 가슴이 뭉클하였다. 박진규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수령님을 몇번씩 만나뵙는 영광을 누린것도 한생에 여한이 없을 행복인데 또?…

수령님의 접견, 수령님과의 기념촬영, 국가적인 대회 참가, 훈장과 메달 등을 표창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할수 있다. 표창은 두말할것도 없이 당의 신임이다. 돈이 행복이고 돈이 인격인 다른 사회와는 달리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당의 믿음이 인간의 가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표창을 영광으로 생각하는것이리라.

그는 기대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딸에게 정색해서 말했다.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아버지는 자격이 없다.》

밖에서 번쩍 천둥이 쳤다. 박진규는 집에서 쉬려던 생각을 접고 집을 나섰다. 발굴현장에 우비대책을 세우지 않고 온것이 맘에 걸렸다. 안해와 례영이가 현관앞에까지 따라나오며 극구 만류하다가 종시 비옷과 우산을 쥐여주며 바래주었다.

비가 줄금줄금 내리고있었다. 점차 굵어지는 비발을 가늠하며 박진규는 걸음을 다우쳤다.

박진규의 집에 당비서로부터 전화가 온것은 박진규가 떠난지도 두시간이 착실히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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