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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새나라> 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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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45회 작성일 15-11-2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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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제 밤 일어난 사건을 리주연에게서 보고받으시였다.

《오성재라구?》

너무도 낯익은 이름이였다. 그럼 오성재가 반동이란 말인가? 그가 땅을 안 가지겠다고 한것도 토지개혁을 혼란시키기 위한 고의적인 행동이였단 말인가? 정근식의 로력동원증문제도 그런 각도에서 봐야 한단 말인가?

장군님께서는 왕청같은 결론이 나오는 바람에 절로 허거픈 웃음을 터치시였다.

《주연동무는 이 문제를 어떻게 봅니까?》

리주연은 미리 생각했던대로 말씀드렸다.

《본인의 말을 들어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반동놈들의 흉책에 말려든것이 분명합니다. 공사속도에 겁을 먹은 반동들이 일부 각성되지 못한 사람들을 리용하여 대중을 인민정권으로부터 리탈시키려고 책동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리주연은 그 다음말에 자신이 없는지 좀 머뭇거리다가 다시 뒤를 이었다.

《그러나 리유는 어떻든 현행범으로 붙잡혔기때문에 무죄로 인정하기도 힘듭니다. 더 엄중한것은 보통벌대지주 구문선이로부터 해방전 빚문서와 함께 많은 현금을 받은 사실입니다. 본인의 진술에 의하면 한달전에 서울에서 들어온 반동놈으로부터 전달받았는데 어제 밤 사건의 주범이 그놈이였다고 합니다.》

《보시오. 땅과 공장을 빼앗기고 달아난 놈들은 제놈들의 세상을 되찾을 야망을 포기하지 않고있습니다. 공사지휘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려고 합니까?》

《제기된 문제가 복잡하기때문에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았으면 합니다.》

《주연동무, 그 농민을 믿을바에는 끝까지 철저하게 믿읍시다. 그 농민이 고의적으로 나쁜짓을 하지 않았다는게 확실한 조건에서 현행범이니 무죄니 하는 형법상의 술어를 쓰는것조차 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농민에게 우리가 어떤 법적처벌을 준다면 오히려 반동놈들을 도와주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우리는 백두산시절에 일본놈들의 강요에 못이겨 사냥군으로 가장하고 밀영에 들어왔던 사람도 로자까지 주어서 고스란히 돌려보내군 했습니다.》

장군님의 명백한 결론에 리주연은 머리가 거뜬해졌는지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알겠습니다. 사실 공사장에서는 건설자들의 격분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반동놈들과 같이 밀려다닌 놈도 반동이나 같다면서 오성재를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고 윽윽합니다.》

《그럴수 있지.》

장군님께서는 만년필로 책상을 다독이시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우리는 이번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계급적각성을 더 높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물론 오성재농민이 오늘은 비록 원쑤를 가려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변함없이 믿고 사랑한다면 래일에는 반드시 새세상의 주인으로서 자기의 역할을 다할것입니다. 인민에 대한 믿음에서는 절대로 한계점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무슨 힘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심중을 퍼내시다가 양복안주머니에서 오성재의 토지소유권증서를 꺼내드시였다. 지난 두달동안 품속에 소중히 간직해오시던 증서였다.

《난 이 증서를 보통강개수공사가 끝나는 날 본인에게 돌려주자고 했댔습니다. 그 땅이 다시는 수해를 받지 않는다는게 확실해진 다음에 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돌려주어야 할것 같습니다. 주연동무가 이걸 본인에게 전해주시오. 이제는 새 통수로가 완성돼서 물길을 돌렸으니 안심하고 농사를 지으라고 하시오. 그리고 다시는 반동놈들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고 인민정권을 믿으라고 하시오.》

리주연은 언제 한번 단 한순간도 인민이란 존재에 대해 실망해본적이 없으시는 장군님의 하늘같은 도량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음미해보았다.

《그리구 내 잊을번 했는데 그때 우리가 만났던 정근식이라는 사람이 공사장에 나옵니까?》

리주연은 까마득히 잊고있던 정근식이란 이름을 장군님께서 상기하시자 얼굴을 붉혔다.

《그후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알아보시오. 그리구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 다시 찾아가보시오.》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리주연은 잘 알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다시 의자에 앉으시며 리주연에게 1단계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낸 기세를 늦추지 말고 2단계공사를 진행할데 대해 말씀하시였다.

《올해 일기조건을 보면 장마를 서두르고있습니다. 그것도 례년에 없는 큰 장마가 질것 같은데 그전으로 2단계공사를 무조건 끝내야 합니다. 그러자면 시내 공산당원들과 시민들을 다시한번 대중적돌격운동에로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우리는 1단계공사에서 앙양된 대중의 열의를 총발동하여 7월말까지 예견했던 이 공사를 7월 15일까지 끝내야 합니다. 평안남도인민위원회에서는 공사를 앞당겨끝내기 위한 대책적문제들을 평양시당과 시인민위원회 일군들과 잘 토론해보시오.》

《알았습니다.》

 

×

 

흐릿한 날씨였다. 하늘에는 구름층이 두텁게 드리워있어서 해가 어디바루쯤 떠있는지도 알수 없었다. 오성재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보통강변의 자기 밭머리에 앉아있었다. 이제는 수수대가 어깨를 넘게 자랐다. 비료를 얼마 치지 못했는데도 땀흘려 가꾼 덕인지 본래 땅이 좋아서인지 시퍼렇게 독을 쓰며 하루가 다르게 크는데 특별히 실한 수수대들은 오성재와 키를 다투며 바람에 설렁대고있었다.

봄에 이 땅을 가꾸기 시작할 때만 해도 장마걱정이 마음 한구석에 없지 않았는데 이제는 물길을 돌렸으니 올해의 풍작은 먹어놓은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자기는 미련하게도 이 땅을 못쓰게 만들려는 반동놈들의 꼭두각시노릇을 하지 않았는가.

아직도 그는 지난밤에 있은 일들이 한바탕 꿈을 꾸고난것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그 꿈속에서 깨여난 지금의 오성재는 어제날의 오성재가 아니였다. 그는 자기 손에 움켜쥐고있는 토지소유권증서를 바라보며 리주연부위원장이 하던 말을 되새겨보았다.

《장군님께서는 이 증서를 임자에게 돌려줄 때가 된것 같다고 하시면서 제땅에서 농사를 잘 지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하시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동무가 계급적으로도 각성하여 나라의 참된 주인이 되기를 바라고계십니다.

오성재동무, 이제부터라도 믿으시오!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땅은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것을 믿으시오! 장군님 세우시는 새 나라가 진정한 인민의 나라라는것을 믿으시오! 오직 김일성장군님만을 믿으시오!》

오성재는 터져나오는 오열을 걷잡지 못하고 으흑- 신음소리를 내면서 땅에 어푸러졌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땅에 이마를 대고 꺼이꺼이 울었다. 어릴 때처럼 마음껏 소리내여 울었다. 자기에게 땅을 주고 사람답게 살게 해준 이 세상에 죄를 지은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땅에 어푸러져 태질하면서 그는 태여나던 그때부터 뒤집어쓰고있던 무지렁이의 허울을 벗어버리고있었다.

오성재-너는 과연 어떤 존재였더냐? 지금까지 세상은 너라는 존재를 티끌처럼 여기면서 너의 행복에 무관심했고 너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너는 이 세상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였다. 구진배가 너에게 뭉치돈을 준것은 네가 고와서가 아니라 예전처럼 노예로 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자들은 네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것을 바라지 않았었다.

네가 은인처럼 생각하는 정근식도 너에게서 기대한것은 자기의 육체적로동을 대신해주는것뿐이였다. 네가 그 이상의 귀한 존재가 될수 있다는것을 믿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새 나라는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는것이 없었다. 바란것이 있다면 네가 새세상의 주인이 되여 행복하게 사는것뿐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너와 같은 인간들도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시면서 주인구실을 다하리라고 믿으시였다. 그런데 너는 뭐냐? 운명의 노예로부터 자주적인간으로 그 모양새를 바꾸기가 그렇게도 힘이 들더냐…

일어서라! 눈물만 짜지 말고 이 땅에 두발을 벋디디고 일어서서 장군님 바라시는 모습으로 어깨를 펴고 살아라!

자리에서 일어선 오성재는 허둥허둥 집으로 반달음을 놓았다. 아는 사람이 찾아도 입안에서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 들어선 그는 궤짝에 넣어두었던 빚문서와 돈뭉치를 꺼내들었다. 한뭉테기 되는 더러운것들을 마당가에 팽개치고는 주저없이 부시를 쳐서 불을 싸질렀다. 너울거리는 불길을 바라보는 오성재의 눈동자에서도 불길이 너울거렸다. 그는 지금 전혀 새로운 오성재로 다시 태여나고있었다.

오성재는 전에 없던 근엄한 표정으로 재무지를 짓밟아버리고는 삽을 들고 공사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반동이라고, 머저리라고 욕을 해도 좋았다. 나라에 죄를 짓고도 장군님덕분에 새롭게 태여났으니 땀으로 그 죄를 씻어야 했다.



52

 

시당회의실에서는 시당열성자회의가 열리고있었다.

안길이 주석단가운데 틀지게 앉고 그 량옆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로동부장 오기섭과 평양시당책임비서 그리고 평양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앉아있었다. 회의에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공사를 7월 15일까지 앞당기기 위하여 대중적돌격운동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구체적문제들이 토의되였다.

연단에 나선 리주연은 2단계공사 과업에 대해 설명하고있었다. 2단계공사의 중심과업을 통수로굴착작업을 계속하여 너비 10m 깊이 7m의 통수로를 본래설계대로 50m로 넓히는 한편 제방뚝을 더 튼튼하게 쌓아올리는것이였다. 여기서도 기본은 새 통수로의 량쪽에 길이 2km, 높이 5m의 제방뚝을 쌓는것과 함께 10m 높이의 남교제방을 든든하게 완성하는것이였다. 2단계공사의 작업량은 22만 900여㎥이였다. 특별한 기계수단도 없이 순수 사람의 힘으로 이 방대한 토량을 한달동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심각한 현실앞에서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쉽게 입을 벌리지 못했다. 만약 공사를 끝내기 전에 장마가 들이닥치면 새로 쌓은 제방이 위험해질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때까지 기울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리주연은 공사를 빨리 끝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나서 신심에 넘친 어조로 말을 맺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공사과정을 통해서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만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과정에 대중의 자각적열성과 애국적헌신성도 높아지고 공사전망에 대한 신심도 확고해진만큼 이제 남은 공사과제도 얼마든지 해낼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대중의 앙양된 열의를 어떻게 총동원하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런걸 다 헤아려보시고 대중적돌격운동을 벌릴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신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리주연의 연설이 끝난 뒤 실무적인 문제토의로 넘어갔다. 회의에서는 공산당원들이 앞장서서 리민돌격대외에 단체돌격대를 많이 조직하며 하루책임량을 늘일데 대한 문제가 결정되였다.

그때까지 말없이 앉아있던 오기섭은 자기 존재를 시위할 필요를 느꼈는지 앙바틈한 목을 빼들고 장내를 내려다보았다.

《조용하시오! 공사지휘부에서 시공책임자 왔소?》

회의장뒤쪽에 앉아있던 장혁수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사실 그는 공산당원이 아니여서 이 회의에 참가할 자격이 없었지만 시공책임자가 참가해야 한다고 해서 제일 뒤자리에 앉아있었던것이다.

오기섭은 그를 지명해놓고도 공연히 노트를 벌컥거리며 자기에게 시선을 집중시켜놓고야 말꼭지를 뗐다.

《음, 누군가 했더니 주먹군이로군. 마음에 드오. 프로레타리아트한테는 붉은 주먹이 제일이지. 안 그렇소, 안길동무?》

오기섭은 장혁수가 명덕이와 싸웠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안길을 슬쩍 건드렸다. 안길은 말같지 않은 소리에 대답하기도 싫은지 마뜩잖은 표정을 지을뿐이였다. 오기섭에게는 이 회의장에서 제일 마음쓰게 되는것이 안길의 존재였었다. 안길이만 없다면 격동적인 연설로 회의장을 후끈하게 달구어놓을수 있겠는데… 사실 공사에 무관심하던 오기섭이가 오늘 회의에 얼굴을 내민것은 공사전망이 확고해진 조건에서 로동부장의 생색을 내고싶었기때문이였다.

오기섭은 다시 장혁수에게 갈구리를 던졌다.

《참, 내 알기엔 무소속이라던것 같은데 언제 공산당에 들었소?》

아픈데를 찔리운 장혁수는 앞걸상의 모서리를 움켜쥐며 주눅이 든 소리로 웅얼거렸다.

《아직은…》

《아직 비당원이라?… 그런데 어떻게 이런 정수분자들의 회의에 참가했소?》

옆에 앉은 리주연이 오기섭에게 가만가만 말하는 소리를 장혁수는 듣지 못했다. 그는 침중한 낯빛으로 주석단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난 당원이 되고싶지만 아직 자격이 없어서 감히 넘겨다보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면 선참으로 당에 들겠습니다.》

장혁수의 대답에 제일 흡족해하는 사람은 안길과 리주연이였다. 토성랑내기가 공산당원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다니… 장군님께서 들으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장혁수의 당당한 대답에 오기섭은 말문이 막혔다. 제일 만문해보이는 장혁수의 얼을 뽑아놓고 제 의도에 맞게 회의흐름을 조정해보려던노릇이 예상치 않은 암반에 부닥친것이다. 오기섭은 한동안 장혁수를 노려보다가 다시 물었다.

《그 결심은 좋소. 그건 그렇구… 공사를 한달이내에 끝낼수 있겠소?》

《예, 할수 있습니다.》

《덮어놓고 할수 있다고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납득시켜보란 말이요. 시공도 주먹치기를 하겠다는거야 아니겠지?》

장혁수는 기분이 상했으나 주석단에 앉은 사람의 말을 반박할수는 없었다.

《현재 남은 토량이 22만㎥이 좀 넘으니까 하루에 만명씩 동원돼서 한사람당 1㎥씩만 처리해두 스무이틀이면 공사를 끝낼수 있습니다. 그런데 책임량을 2. 5㎥으로 정했으니 그보다 더 빨리 끝낼수도 있지요.》

《하하하…》

오기섭은 고개를 제끼고 웃다가 갑자기 뚝 그치더니 채머리를 떨며 아량있게 말했다.

《그게 주먹치기라는거야. 평양시민들중에 녀자들과 늙은이들, 아이들, 거기에 병신들까지 빼놓으면 일할수 있는 로력자가 몇명인가? 그리고 1단계공사에서 기운이 빠진 사람들이 하루에 얼마나 일할수 있겠는가 하는거랑 다 타산해봐야 한단 말이요.》

《어제 증성리건로대원은 하루에 3㎥을 처리했습니다.》

《저 사람 말하는거 보라. 여보! 그건 각성된 프로레타리아트에게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현상이구 일반적인 평균실적은 아니란 말이요. 력사적으로 조직적단련이 부족한 조선로동계급의 취약성도 주산으로 튕겨봐야 할게 아닌가?》

그 말에 안길은 오기섭이쪽으로 획 고개를 돌렸다. 꾹 참고 보자보자하니까 점점 못하는 소리가 없었다. 그의 눈에서 사납게 번쩍이는 빛이 오기섭의 입을 얼구어버렸다.

《오기섭동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안길은 숱한 사람들이 있는데서 큰소리로 싸울수 없는게 안타까왔다. 그는 가까스로 분을 참으며 장혁수에게 물었다.

《시공책임자동문 토성랑출신인데 토성랑사람들은 이 공사에 어떤 립장을 취하고있습니까? 강건너 불보듯 합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토성랑사람치고 공사에 안 참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녀자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다 떨쳐나섰습니다. 금단이 할아버지는 환갑나이이지만 오늘까지 하루도 번진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짝다리 광수는 매일 야장간에 나와서 풀무질을 하지요. 그뿐인가요?…》

《됐소! 됐소!》

오기섭이 다급하게 장혁수의 말을 중단시켰다. 가만 놔두면 장혁수가 독판치기를 할것 같았다.

안길은 그를 자리에 앉히고 오기섭을 바라보며 엄하게 말했다.

《들었소? 우리 인민은 이런 인민이요. 타산을 세우려면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건국위업에 떨쳐나선 인민들의 애국열의부터 계산해야 할게 아니요?》

퉁을 맞은 오기섭은 쓰다달다 말없이 입만 다시는것으로 자기 심사가 편안치 않다는것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 그가 회의장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왕청같은 소리를 하는데는 그럴만 한 리유가 있었다.

열흘전에 쏘련에서 최고쏘베트상임위원회 위원장인 깔리닌이 서거한것과 관련하여 평양에서는 조의대표단을 파견했는데 오기섭은 아쉽게도 그 명단에 끼우지 못하였다. 간부사업을 보는 연안파인 무정이 될수록 자기와 같은 얼마우재들이 쏘련에 들락날락하는것을 경계한 모양이였다.

오기섭이 부디 쏘련에 다녀오려는것은 어떻게 하나 공사에 필요한 굴착기를 다문 한두대라도 받아오려는 의도에서였다. 공산당 제2비서자리에서도 밀려나고 얼마전엔 선전부장자리에서도 밀려나 지금은 로동부장자리에 엉치를 붙이고있지만 날이 갈수록 자기 몸값이 인하된다는것을 예민하게 발달된 권력의 촉각으로 감각하면서 그는 모스크바의 힘을 빌어서라도 자기의 위상을 회복해야겠다고 타산했던것이다. 그래서 쏘련에 있을 때 자기의 뒤를 봐주던 크레믈리의 모모한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편지를 보냈었다. 그런데 굴착기가 나오기 전에 공사가 끝난다면 행차뒤 나발이 되는셈이다.

회의에서는 15일간을 경쟁기간으로 설정하고 제일 성적이 우수한 돌격대에 김일성장군상과 우승기를 수여하기로 하였으며 책임량을 초과수행한 개별적인 혁신자들에게도 상품을 수여하기로 하였다.

심사가 뒤틀린 오기섭은 돌격운동을 벌리자고 할 때에는 귀를 막고있다가 표창문제가 론의되자 다시 찬물바께쯔를 준비해가지고 끼여들었다.

《내 생각엔 토목공사나 하면서 김일성동지 개인의 명의로 된 표창을 하는건 적당치 않을것 같소. 또 그런 표창을 하는데 대해 김일성동지께서 허락하시겠는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명의로 표창을 주면 어떨지…》

오기섭은 그만 안길에게 말꼬리를 잘리웠다.

《오기섭동무!》

그의 목소리는 별로 높지 않았지만 바스락소리조차 없는 회의장 맨뒤에서도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김일성장군님은 개인이 아니라 전체 조선인민의 령수이시오! 우리 민족의 태양이란 말이요! 온 나라 인민이 김일성장군님의 건국위업을 받드는 길에 떨쳐나선것을 당신은 보지 못하오? 그런 인민에게 장군님의 존함으로 불리우는 표창장을 받는것보다 더 큰 영광이 무엇이고 그보다 더 높은 표창이나 수훈이 어디 있는가?》

안길의 불같은 질책에 오기섭은 꿀꺽소리 한마디 할수 없었다. 범의 수염을 다쳐놓은셈이니 조금이라도 움쩍했다간 당장 떡메같은 주먹이 날아올것만 같았다. 안길은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구 이런 표창은 장군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정하고말고 하는게 아니요. 이건 장군님을 받드는 우리모두의 자세문제란 말이요. 조선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초기혁명활동시기부터 그이께서 허락하시지 않았지만 그이를 조선혁명의 태양으로 우러러 받들면서 <조선의 별>노래를 지어불렀고 <김일성>이라는 태양의 존함으로 높이 칭송하였소.》

안길의 말은 회의참가자들의 마음을 후덥게 달구어주었다. 제 곬을 타고 흐르는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정이 채택되였다.

《표창은 15일간성적에 의해 진행하며 공사를 완공한 다음에는 전기간성적에 따라 특별표창을 하기로 한다. 특별표창은 한개 대상에 김일성장군상과 상금, 우승기를 수여하며 2등은 세개 대상에 1만원의 상금과 우승기를 수여한다. 그리고 책임토량보다 0. 5㎥을 더한 사람에게는 상품을 수여한다.

표창기준은 다음과 같다.…》

1차돌격전투가 벌어지는 첫날 아침부터 51개 단체돌격대와 75개의 리민돌격대가 공사장으로 모여들었다. 거기에다 대동군에서 달려온 1 700명의 응원대, 강선제강소 300여명의 용해공돌격대 그리고 무소속으로 자원진출한 사람들까지 합쳐 공사장은 하얗게 사람천지였다.

공사장에 달려온 대렬들은 돌격대기발과 프랑카드, 표어기들을 기세좋게 펄럭이고있었다.

《념려되는 장마전에 공사를 완공하자!》

《당원의 핵심적역할과 모범적작용을 더욱 높이자!》

《녀성의 민주력량을 발휘하여 애국제방공사돌격운동을 적극 후원하자!》

구호의 내용들은 각이했지만 읽어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삽쥔 손에 저절로 힘이 가게 하는것들이였다.

돌격전투는 제방을 쌓고 강바닥을 파내고 남교제방에 장석을 입히는 등 공사장의 곳곳에서 동시에 시작되였다.

누구나 땀투성이, 흙투성이가 되여 경쟁적으로 뛰여다니고 흙을 퍼담는 사람들의 삽날에서도 번개불이 일었다.

선교4리돌격대원들은 웃옷을 벗어제끼고 찰떡같은 진흙을 망짝만하게 떠가지고는 그대로 어깨에 메고달린다. 그옆의 선교3리사람들은 그 작업방법에 내심으로 감탄하면서 한마디씩 해댔다.

《저 친구들 잠자리에 오줌 싸겠군.》

이쪽에서도 가만있지 않는다.

《자네들은 밤에 잘 생각을 다 하는걸 보니 안되겠어. 우린 오늘 밤을 밝히자는거야.》

《두고보게, 김일성장군상은 우리거야.》

그리고는 입씨름할새도 없다는듯 떡판처럼 따놓은 흙을 하나씩 안고 와- 하며 제방으로 내닫는다.

현장을 돌아보던 장혁수는 그 광경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시당 열성자회의가 있은 후부터 그는 예전보다 더 과묵해졌다. 그날 흥분한김에 많은 사람들앞에서 당원이 되겠다고 말해놓고는 은근히 속을 태우고있는 혁수였다.

그가 알고있는 당원이란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한치 에누리도 없이 받드는 특별한 사람들이였다. 이 공사장에서만 봐도 제일 어렵고 힘든 곳에는 언제나 공산당원들이 서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공사장에 나오시였던 장군님께서 자기더러 당원이 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그날부터 자나깨나 그 생각뿐이였다.

(내가 정말 당원이 될수 있을가? 공산당원들의 회의에서 내 입으로 당원이 되겠다고 말했으니 죽으나사나 당원이 돼야겠어.)

그러자면 남보다 열배는 더 땀을 바쳐야 했다. 그는 시공책임자로서 할바는 하면서도 공사장의 어려운 모퉁이마다에 어깨를 들이밀군 했다. 그가 제일 많이 가서 일하는 곳은 기림리녀맹돌격대옆에서 통수로를 넓히고있는 중성리작업구간이였다. 오늘은 거기에도 가지 못하고 선교4리의 작업모습에 흥이 살아나 항상 가지고다니는 자기 삽으로 떡판처럼 흙을 따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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