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설 <새나라>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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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에 대한 소문으로 제일 충격을 받은 사람은 오성재였다.
그는 중성리에 있는 정근식의 사랑채에서 불편없이 살고있었다. 자기가 살던 토성랑움막에 비하면 불편없는 정도가 아니였다. 정근식의 내외가 인정이 각박하지 않은데다 자기를 여기로 데려온 수영이는 어찌나 마음이 착한지 말이 모자랄 지경이였다.
로친의 병이 하루하루 호전되여갈수록 오성재는 이젠 어디 가서 살아야 할가 하는 근심이 점점 더 커갔다. 로친의 병이 나은 뒤에야 무슨 렴치로 이 집에 눌러있겠는가. 토성랑에 다시 가고싶어도 땅을 버린 놈으로 락인이 찍혀있어서 거기에도 갈 체면이 못되였다.
그동안 오성재는 자기가 분여받았던 땅을 매일 돌아보군 했다.
그것도 대낮에는 가보지 못하고 점심참이나 날이 어슬해질 때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는 돌아서군 했다.
한뉘 땅을 다루어온 농사군에게 제땅에 대한 미련은 검질긴것이여서 제살붙이를 남에게 떼운것만 같아 발길이 저절로 거기로 향하군 했던것이다. 봄을 맞아 다른데서는 밭을 갈고 두엄을 내고 씨를 뿌리는데 자기가 분여받았던 땅은 묵묵히 주인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러니 올해는 그 땅을 묵이게 된것이다. 오성재로서는 후회가 막급했다.
그때 자기에게 무슨 귀신이 붙어서 그런 미련한짓을 했을가.
그런데 하루는 수영이가 로친의 약을 가지고 방에 들어왔다가 별 희한한 소리를 전해주었다.
《아저씨, 보통강개수공사를 시작한대요.》
《허허… 뜬소문이겠지.》
오성재가 믿으려 하지 않자 수영은 자기가 들은것을 그대로 알려주었다.
《정말이예요. 올해 장마철전으로 공사를 끝낸대요. 그래서 설계두 다시 한대요.》
그래도 오성재의 귀는 열리지 않았다. 모를 소리다. 한달전에 혁수를 만났을 때에도 아무 소리 없지 않았는가. 더구나 장마철전에 공사를 끝낸다는게 어디 리치에 닿는 소린가. 암만 헛소문이래두 그런 왕청같은 소리를 누가 믿겠는가.
이튿날 또 제땅을 보러 나갔던 오성재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숱한 사람들이 제땅에서 벅적거리고있었던것이다. 밭을 가는 사람, 달구지로 두엄을 내는 사람, 호빠를 쥐고 밭이랑을 고루는 사람… 아뿔싸!
오성재는 그만 무릎을 꺾고 풀썩 주저앉았다. 제땅이 종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제땅을 되찾을수 없게 되였다.
그날부터 오성재는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았다. 어쩌면 자기 팔자는 이렇게 꼬이기만 하는가.
어제 저녁 퇴근해온 수영이는 머리를 싸매고있는 오성재에게 마지막일격을 가했다.
《아저씨, 내 말이 맞았어요. 보통강개수공사를 당장 시작한대요.》
《엉?》
오성재는 눈을 흡떴다.
《오늘 시인민위원회에서 <보통강개수공사 건국로력동원령>을 발표했어요. 5월 21일부터 7월 31일까지 한대요.》
수영은 오성재가 기뻐하리라고만 생각하고 자기가 보고들은것을 빼놓지 않고 말해주었다. 오성재는 아예 울상이 되였다. 도대체 이런 때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던것이다.
(내가 청맹과니였어. 한치앞을 내다보지 못해서 땅을 내놓다니.…)
그러고보니 엊그제 그 땅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개수공사를 한다는걸 확실하게 알고있은것이 분명했다.
오성재는 앉은자리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한숨과 담배연기로 방안을 채우며 평생 손해만 보며 살아온 자기의 기구한 팔자를 한탄했다. 따져보면 자기는 여태 생활에서 리득이라는걸 모르고 살아왔었다. 어느해 봄인가 보통강여울목에서 알쓸이를 하려고 풀숲에 들었던 잉어가 얕은 물에서 철벅대는것을 호미날로 때려잡은것이 제일 큰 리득이였을가? 아니면, 아니면?… 종시 생각나는것이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 복이 없어서야 어떻게 살고…
이른아침에 오성재는 조반을 드는둥 마는둥 하고 장혁수를 찾아 떠났다. 가서 공사를 한다는게 사실인지 속시원히 물어보고 애끓는 심정을 하소하고싶었다. 그런다고 땅을 되찾을수는 없겠지만 아무에게나 제 속을 터놓지 않고서는 답답해서 견딜수 없었던것이다.
공사장사무실에 찾아간 오성재는 수영이가 한 말이 헛소문이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사무실앞에 세워놓은 큼직한 공시판은 전에 본적이 없던것인데 거기에는 《보통강개수공사 건국로력동원계획》이 나붙어있었다.
글을 모르는 오성재가 그것을 읽어볼수는 없었지만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으로 그게 공사와 관련된 글이라는것쯤은 짐작할수 있었다. 사무실의 문짝마다에도 전번에는 볼수 없었던 패쪽들이 걸려있었는데 그것은 지휘부가 구성되면서 기술부, 시공부, 동원부, 자재부 등의 문패를 써붙인것들이였다.
마침 장혁수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 사람, 혁수!》
《성재형님!》
장혁수는 오성재를 와락 붙어잡고 격해서 물었다.
《어딜 갔댔수? 장군님께서…》
그는 어안이 벙벙해있는 오성재에게 장군님께서 공사장을 찾아주신 사실과 땅을 묵일가봐 걱정하신데 대해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주게, 그게 참말인가?》
그날 저녁 오성재는 정근식의 살림방으로 건너갔다. 그는 오늘 자기가 보고 들은것을 죄다 이야기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자기 행방을 찾으시였고 자기가 받았던 땅을 묵이지 않도록 하시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말했다. 자기가 어떻게 그 전설의 주인공이 될수 있었는지는 오성재도 모르는것이여서 그저 나타난 현상만 이야기했다. 정근식내외와 수영은 오성재의 이야기가 하도 기이해서 이것저것 물어볼념도 않고 듣기만 했다.
《그래서 토성랑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그간 이 집에서 입은 은혜는 내 죽어도 잊지 않겠수다.》
정근식은 으흠 기침을 하고나서 점잖게 만류했다.
《이왕 살림을 펴놓았던건데 그대루 살게. 임자네가 나가면 또 빈방이 되겠는데 마음에 부담받지 말구 눌러있게.》
《그렇게 하세요. 아직은 아주머니병두 깨끗해지지 않았어요.》
수영이가 진심으로 권고하고 정근식의 처도 오성재를 만류했다.
《우리한테 뭐 언짢은거라도 있는게 아니유?》
《아이구, 주인마님. 무슨 말씀을…》
《아니라면 그대로 있어요. 집두 봐주는겸…》
그러나 오성재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있었다. 자기를 념려해주는 이 집주인들의 진정은 고맙기 이를데 없고 그래서 죽어도 그 은혜만은 갚고 죽으리라 생각하고있지만 더이상 여기에 얹혀있을수는 없었다. 제땅이 아직 제 이름으로 남아있고 장군님분부가 계시여 남들이 씨앗까지 묻어주었다는데 이제부터라도 그 땅에서 밤낮없이 살아야 할게 아닌가. 그러자면 분여지에서 가까운 토성랑집에 옮겨앉아야 했다. 더구나 공사가 완공되여 토성랑에 물란리가 없어지면 제 살던 집을 품놓고 꾸려야지 언제까지 남의 집 사랑방신세를 지겠는가.
정근식은 오성재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더 권고하지 않았다.
오성재가 사랑방으로 나간 뒤 정근식은 새까맣게 먹칠한 지구의를 빙글빙글 돌리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를 일이다. 이 땅에서 정말로 백성들에 대한 무관심의 력사가 끝장났다는게 모를 일이야. 저 보통강의 물길을 돌리듯이 수천년 흘러오던 수난의 력사를 비틀어 돌려세워 백성을 위한 사랑의 새 력사가 흐르게 한다는게 믿어지지 않는구나.》
정근식은 지구의에 한손을 얹고 혼자생각에 잠겨있다가 빙그레 웃으며 수영에게 물었다.
《수영아, 저 사람 이름이 뭐라고?》
《오성재예요. 갑자기 이름은 왜 물으세요.》
《흐흠, 옛말이 하나 생각나서 그런다.》
《옛말이요?》
방금전까지 심각해있던 외삼촌이 갑자기 옛말이라니?…
수영은 호기심이 동해 외삼촌을 바라보았다.
《옛날 어느 한 마을에 큰 부자가 살았단다. 그 부자네 집에서는 먹다남은 찌꺼기를 대문밖에 있는 오물장에 버리군 했는데 거지 하나가 늘 그 오물장에 붙어살았지. 그래도 부자는 그 거지를 시끄럽다고 쫓아버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생각해서 동냥을 준적도 없었다. 거지는 평생 오물장에서 찌꺼기를 먹으며 살다가 죽고 부자도 살만큼 살고 죽게 되였다. 거지와 부자는 나란히 하느님앞에 끌려갔단다. 부자는 생각했지. (저 거지는 지금까지 내 덕에 살아온셈이니 난 당당히 천당에 갈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거지만 천당으로 보내고 부자는 지옥으로 보냈단다. 그래서 부자가 항의했지.
<하느님! 난 이승에서 착한 일을 했습니다. 저 거지도 우리 집에서 버린 음식을 먹으며 오늘까지 살아왔는데 어째서 거지만 천당으로 보내고 나는 지옥으로 보냅니까? 이건 불공평합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물었단다.
<너는 저 거지의 이름을 아느냐?>
<모릅니다.>
<그것 봐라! 거지가 네 덕에 오늘까지 먹고살수 있은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저 거지에 대한 무관심때문이였지 네가 거지를 동정해서 그리한것은 아니였다. 차라리 네가 단 한번이라도 저 거지에게 관심을 돌려서 오물장에서 쫓아버리기라도 했다면 나는 너를 천당에 보냈을거다. 그러나 너는 그 거지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 그래서 나는 너를 용서할수 없다. 인간의 가장 큰 죄악은 같은 인간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래서 그 부자는 지옥으로 갔다더라.》
수영은 외삼촌이 왜 그런 옛말을 하는지 알수 있었다.
외삼촌은 지금 오성재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오늘의 현실을 보았고 그 현실이 너무도 아름다운데 놀랐던것이다.
지구전체를 인간사랑의 불모지로 대해왔고 이 세상의 앞날에 대해서 어떤 기대조차 가지지 않고 살아왔는데 오성재에게서 들은 전설같은 이야기는 그의 허무주의적인 생활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지금껏 본적 없던 아름다운 새세상을 분명히 약속하고있었던것이다.
수영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외삼촌에게 김일성장군님께서 토성랑주민들의 생활을 얼마나 심려하고계시는가 하는것을 운상에게서 들은대로 이야기해주고싶었다.
그런데 수영이자신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이상의 충격은 받았지만 이 땅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화폭의 본질을 자기것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따라서 현실에 대한 자기의 정확한 견해를 세우지 못하고있었다. 운상을 만나면 자기가 모르는것들을 좀 물어보기라도 하련만 그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24
평양광성중학교 강당에서 개수공사의 성과적보장을 위한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합회의가 있은 뒤 평양시당에서는 확대회의를 소집하고 당원들이 공사에 앞장설것을 호소했으며 그로부터 이틀후에는 시민총동원령이 공시되였다.
또한 광범한 대중이 새로운 로동관념을 가지고 공사에 자원적으로 참가하도록 하기 위한 선전요강들이 작성되여 사회적분위기를 조성하는 사업들이 활발히 벌어졌다. 그런 환경에서 공사지휘부에서는 수정한 설계도를 놓고 공사량을 확정하였으며 공사계획을 세분화하였다.
우선 지휘부에서는 넓은 공사구간을 다섯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공사량에 맞게 로력공수를 배정하였다. 개수공사의 기본작업은 새 통수로 굴착과 제방공사로 이루어졌다.
형제산쪽에서 봉수산기슭을 감돌아흐르던 보통강줄기를 꺾어돌리자면 새 통수로를 곧추 째서 봉수산허리를 자르고 새로 낸 물길에 련결시켜야 했다.
이 공사량을 완수하자면 연 백만명의 로력으로 60만립방의 토량을 처리해야 하였다.
지휘부에서는 공사과정을 두 단계로 구분해놓고 매 단계에서 수행하여야 할 중심과업을 확정하였다.
제1단계공사는(5. 21-6. 15) 보통강의 물줄기를 새 물길로 련결시키기 위하여 새 통수로의 강바닥을 굴착하는데 중심을 두면서 제방을 쌓아올리는것이였다.
2단계공사(6. 16-7. 30)에서는 새 물길로 통수로가 련결된 조건에서 제방을 높이 쌓고 튼튼히 다지며 통수로를 더 깊이 파고 강폭도 넓혀야 했다. 이와 함께 위험구간들에는 장석을 입혀야 하고 수문공사도 해야 했다.
정작 구체적인 조직사업을 하면서 마음먹고 달라붙으니 공사량이 아름차보이기는 해도 두렵지는 않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쏘미공동위원회를 파탄시킨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국토분렬책동을 규탄하는 평양시군중대회를 소집하시고 전체 인민이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을 가로막는 온갖 반동세력을 물리치고 새 조국건설투쟁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시였으며 군중대회에서 앙양된 시민들의 기세를 늦추지 말고 지체없이 보통강개수공사를 벌릴데 대해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착공식을 정치적의의가 있게 잘해야 한다는것과 그를 위한 대책적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시였다.
김책, 리주연을 비롯한 일군들은 시내 공장, 기업소들을 찾아다니며 착공식준비를 위한 조직사업을 빈틈없이 해나갔다.
리주연은 선교공업지구를 맡아가지고 나갔다가 평양곡산공장의 준비정형을 알아보고는 어성을 높이였다.
곡산공장로동자대렬이 착공식에 들고나갈 구호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여보, 임성민동무! 로동계급이 만들었다는 구호판이 왜 저렇게 쪼물짝하오? 동무넨 공사장에서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게 아니요? 이 공사를 단순한 토목공사로 봐선 안된다구 몇번이나 강조했소? 장군님께서는 착공식을 통해서 우리가 제힘으로 새 조선건설을 시작했다는것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하시였소. 그러니 <민주건설 만세!>라는 이 구호를 대문짝같이 큼직하게 써서 저 하늘높이 들어올릴 생각을 왜 못하는가 말이요?》
퉁을 맞은 임성민은 얼굴이 벌개서 고개를 수그렸다.
착공식을 하루 앞둔 날 리주연은 시인민위원장을 비롯한 일군들과 함께 공사현장에 나왔다. 장군님께서 착공식에 몸소 참가하시겠다고 말씀이 계신것만큼 사소한 빈틈도 없게 행사준비를 해야 했던것이다.
그들은 공사장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착공식자리를 마련했다. 널판자와 각목을 잘라 주석단을 만들고 모임장소 곳곳에 구호판들과 기발들을 세웠다.
혁수는 신바람이 났다. 그는 주석단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드느라 꽝! 꽝! 망치질을 하며 리주연에게 물었다.
《부위원장동지! 정말 꿈만 같습니다. 글쎄 장군님께서 착공식에까지 참가하신다니… 참…》
《그렇소, 이런 일은 세상에 없을거요!》
리주연이도 자기의 흥분을 표현할 말이 없었다.
착공식장을 꾸리는 일은 저물녘에야 끝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리주연은 래일 착공식에서 발표할 로동규정에 대한 해설문을 오늘 밤중으로 끝내야겠기에 아쉬운대로 떠났다.
그날 밤 그의 집에서는 불이 꺼질줄 몰랐다. 리주연은 로동규정에 대한 해설문을 제대로 쓸수 없었다. 한것은 도녀맹선전부장을 하는 안해 김운죽이 래일 착공식에서 녀맹을 대표하여 토론을 하게 되였는데 그 토론문을 도와달라고 자꾸 방해를 놓기때문이였다.
《당신이야 처녀때부터 웅변술이 좋다고 소문났는데 나한테 뭘 도와달라고 성화요?》
리주연의 말은 사실이였다. 처녀시절 김운죽은 녀성조직인 근우회의 명천군대표로 서울전국대회에 참가하여 봉건의 질곡과 왜놈의 압제에 짓눌려있던 녀성들의 가슴을 류창한 웅변으로 활 열어제껴 만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았었다.
당시 신간회상무위원으로 서울에 올라가있던 리주연의 귀에까지 그 소문이 흘러들어와 두사람의 인연이 맺어지게 되였던것이다.
안해는 평소의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남편에게 매달렸다.
《우리 녀자들끼리 하는 회의라면 걱정없겠는데 장군님께서 직접 참석하신다니 토론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요.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쩌겠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리주연은 할수없이 자기가 쓰던것을 밀어놓고 안해에게 돌아앉았다.
《그럼 토론문을 보기 전에 당신 옷차림부터 보자구. 래일 무슨 옷을 입고 나가겠소?》
《아니, 그건 왜요?》
《장군님앞에 어떤 차림으로 나서겠는가를 생각 못했단 말이요? 당신은 녀성이란 말이요.》
남편의 말투가 엄해지는 바람에 안해는 자신없는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난 그저… 회의때 입군 하던 밤색양복이면 어떨지…》
《그건 불합격이요.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큰 정치행사에 늘쌍 입던 양복차림으로 나서겠단 말이요? 안되오! 치마저고리를 입소. 아니, 이제 당장 입어보우.》
《이제요? 래일…》
《입어보라는데…》
리주연은 안해를 강박하다싶이했다.
《입어보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큰소리를 치면서… 당신답지 않게 그러세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매사에 사려깊고 리해심이 풍부한 남편에게 습관되였던 김운죽은 여느때없이 흥분한 남편의 태도에 어지간히 당황스러워지기도 했고 불만을 느끼기도 하였다.
《당신은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소? 이건 장군님을 모시는 자세문제란 말이요.》
그는 개수공사문제가 제기된 때부터 오늘까지 자기가 체험하고있는 크나큰 세계를 안해앞에 그대로 펼쳐놓았다. 리주연은 일찍부터 김일성장군님의 항일유격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을 조선민족이 낳은 탁월한 군사전략가로 흠모해왔었다. 그러다가 단천군 도덕사에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직접 만나뵙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받아안으면서부터는 장군님을 군사가로서만이 아니라 위대한 정치가로, 조선혁명의 진정한 수령으로 받들어모시여왔다.
장군님을 받드는 길에 민족의 장래가 있다고 믿었기에 그는 장군님의 전민항쟁로선을 받들고 평양일대에서 맹활약을 하였고 해방후에는 조만식일당을 비롯하여 저저마다 새 조선의 주인이랍시고 연탁을 두드릴 때에도 오직 김일성장군님의 평양입성만을 애타게 기다려왔었다.
이번에 장군님께서 보통강개수공사를 발기하시였을 때 리주연은 그것이 위대한 인간으로서의 장군님의 진심이라는것을 리해하지 못했고 장마철전으로 공사를 해낼수 있다는 확신도 못 가졌다.
리주연은 점점 자기의 흥분을 걷잡지 못했다.
《사실 나도 장군님의 뜻을 한치 에누리없이 받들자면 아직 멀었소. 지난해말에 북조선행정10국을 조직하고 처음으로 토론된 문제가 소금문제였다는걸 당신도 알겠지? 나라의 형편이 그토록 어려운 때에 장군님께서는 동해안인민들의 겨울김장용소금을 걱정하시여 그런 조치부터 취해주신거요. 그게 쉽게 리해될 일이요? 올해 2월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제1차회의 의정에 연필문제도 제기하실 때 난 정말 놀랐댔소. 그러니 보통강개수공사도 제2의 소금문제, 제2의 연필문제나 같다고 할수 있지.
당신은 사람들에게 이걸 알려주어야 하오. 그리고 장군님을 진심으로 받들자면 이 공사에 자기를 깡그리 바쳐야 한다는걸 말해주오. 인민이 주인된 나라를 인민자신의 힘으로 일떠세우시려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유일한 건국공식이요. 우린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공식에 충실해야 하오. 결국 보통강개수공사는 건국의 경락혈이라고 말할수 있지. 세상은 보통강을 통해서 우리 인민을 제일 사랑하시는 우리 장군님의 위인상을 알게 될것이고 새 나라의 참모습을 보게 될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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