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설 <새나라>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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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김일성동지께서는 토성랑을 찾으시였다. 김책과 리주연이 장군님을 동행하였다. 먼발치에 차를 세우신 장군님께서는 토성뚝을 따라 천천히 마을로 걸어들어가시였다.
다들 밥벌이하러 나갔는지 마을은 괴괴한 정적에 짓눌려있었다. 강변에서는 배가 불룩하고 팔다리가 새들새들한 아이들이 무슨 장난질을 하는지 오구구 모여있었다. 그 애들과 좀 떨어진 곳에서는 두 녀인이 쭈그리고앉아 땅속을 들여다보고있었다.
녀인들은 장군님께서 다가오시는줄도 모르고 물동이를 하나씩 끼고앉아 물이 고이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수도가 없는 마을이라 강기슭에 웅뎅이를 파고 모래를 펴놓았다가 물이 고이면 바가지로 퍼내군 하는것이였다. 토성랑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천연샘물이였다.
녀인들의 시름겨운 목소리가 장군님의 귀전에 울려왔다.
《에그, 가물철이라구 물도 잘 안 고이누만.》
《그까진 가물철이야 뭬라우? 난 올해장마를 겪을 생각을 하면…》
장군님께서 잠시 그 자리에 서계시다가 녀인들 가까이에 다가가시였다.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던 녀인들은 화닥닥 일어섰다. 손에 들고있던 바가지들이 동시에 물웅뎅이에 떨어졌다.
《아니? 장군님께서?》
《어쩜…》
장군님께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인사를 하시였다.
《수고들 합니다.》
그제서야 녀인들은 흰 머리수건을 벗겨버리며 황황히 허리를 굽혔다.
《장군님!》
장군님께서는 녀인들의 인사를 받으시고나서 물웅뎅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시였다.
《여기서는 다들 이 물을 잡숫겠지요?》
《예.》
그이께서는 무릎을 굽히시고 웅뎅이에 떨어진 바가지로 물을 조금 뜨시였다. 바가지의 물을 찬찬히 들여다보시다가 한모금 물맛을 보시였다. 누가 미처 만류할새도 없었다.
《아니?》
녀인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비명이였다.
《그 물을 그냥 마시면 아니됩니다. 큰일납니다.》
김책이며 리주연이도 얼른 장군님곁에 다가섰다.
《장군님, 어쩌자구 그러십니까?》
그래도 장군님께서는 그 말을 듣지 못하신듯 또 한모금 바가지를 기울이시였다. 역한 쇠비린내와 쩝쩔한 감탕내가 풍기는 물이였다.
그만에야 녀인들중의 한명이 터져나오는 오열을 막으려는듯 머리수건을 쥔 손으로 입을 싸쥐였다. 세상에…
뒤늦게나마 김책이 장군님의 손에서 바가지를 빼앗다싶이 해서는 자기도 물맛을 보았다. 비릿한 물맛에 얼굴이 찡그려졌지만 장군님께서 아무 내색없이 맛보신 물이고 늘쌍 그 물을 마시며 사는 토성랑녀인들앞에서 표정을 달리할수가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중 나이들어보이는 녀인에게 물으시였다.
《이 물을 그냥 마시군 합니까?》
장군님께서 하도 다정하게 물으시여서인지 녀인은 친정오라버니에게 평소의 고달픔을 하소하듯 탄식조로 말씀올렸다.
《그저… 물을 끓여마시느라 하지만 꼭 그렇게만 되나요? 그래서 숱한 사람들이 이 물때문에 병을 만나군 합니다.
참말 토성랑사람들한텐 물귀신이 딱 붙어있나 봅니다.》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표정으로 녀인의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발걸음을 떼시였다.
《인젠 가서 아주머니네 집구경을 좀 합시다.》
녀인은 당황해졌다.
《에그, 거길 어떻게. 루추해서…》
《일없습니다.》
장군님께서 앞장서 마을로 들어가시는 바람에 녀인은 할수없이 물동이마저 팽개치고 뒤따라섰다.
장군님께서는 녀인의 안내로 어느 한 집앞에 이르시였다. 정확히 말하면 집이 아니라 움막이였다. 토성뚝을 직각으로 따내고 들어앉은 움막은 바람벽을 모두 판자로 둘러쳤었다.
정녕 이게 사람이 사는 집이란 말인가. 어째서 우리 인민은 이런 원시시대의 움막같은 곳에서 살아야 했단 말이냐? 어째서? 누구때문에…
장군님께서 토성랑인민들의 비참상을 처음 직접 목격하신것은 어린시절 3. 1만세시위에 떨쳐나선 만경대어른들과 함께 성안에 들어오셨을 때였다.
그때 그이의 마음속에는 게딱지같은 움막에서 사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또렷하게 사진찍혀졌었다. 그후 창덕학교시절 물란리를 겪고난 뒤 토성랑에서 터져오르는 통곡소리를 직접 들으시면서 왜놈들을 몰아내고 내 나라를 찾으면 토성랑사람들을 잘살게 해야겠다고 다짐하시였었다. 그래서 백두산시절에도 국내인민들을 생각하실 때면 토성랑이 먼저 떠오르고 기어이 인민의 새 나라를 세우리라는 신념을 더 굳게 다지군 하시였었다. 정말이지 토성랑의 모습은 수십년세월 장군님의 마음속에 민족의 한으로 돌덩이처럼 들어앉아있었다.
장군님께서 움막집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시는 사이에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장군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와- 몰려들었다.
그이께서는 토성랑사람들과 마주 앉으시여 해지는줄도 모르고 그들의 피눈물나는 과거사를 들어주시였다.
마을의 늙은이 하나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여 층층 고여온 설분을 다 털어놓았다.
《토성랑인생들이라는게 홍수때는 물거품 한가지였지요. 요행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홍수뒤에 들이닥치는 전염병으로 목숨을 떼우구… 해방전엔 홍수뒤끝이면 저 선내리화장터에서 연기가 그칠새 없었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왜놈들이 태워죽였지요.
우리 옆집에 정근이네가 살았는데 부모들이 병에 걸렸지요. 하루는 왜놈경찰이 그 애 부모들을 화장터에 실어갑디다. 그런데 글쎄 그 악귀같은 놈들이 울면서 따라갔던 아홉살짜리 정근이까지 산채로 태워죽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뿐인가요. 인수네는 4년전 홍수때 온 가족이 통채로 물에 떠내려가지 않았수. 어휴…》
사람들은 저저마다 수십년 쌓아온 억울한 만단사연들을 장군님께 낱낱이 아뢰였다. 이 나라 수난의 력사가 해질녘의 토성랑마당에서 총화되는듯싶었다.
장군님께서는 손수건으로 자주 눈굽을 찍으시며 그들의 설분을 끝까지 들어주시였다.
그러는새 주위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다. 그래도 그중 지각있어보이는 사람이 장군님께 한말씀 올렸다.
《장군님, 이젠 다 지나간 일입니다. 해방이 되였으니 우리 백성들도 설음을 모르고 살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그이의 신색은 밝아지지 못했다.
장군님께서는 퍼그나 갈리신 음성으로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옳습니다. 토성랑사람들도 다시는 예전처럼 비참하게 살지 않을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장마철전으로 보통강개수공사를 하자고 합니다.》
《그게…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공사가 시작되면 여러분들도 한몫 해제낄수 있습니까?》
《여부가 있습니까. 제가 살 터전을 닦는 일인데… 장군님께서 령만 내리시면 밥술 뜨는이들은 다 떨쳐나설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토성랑인민들에게 나라의 주인된 역할을 다할데 대해서 손가락을 꼽아가며 강조하시였다. 모두들 장군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있을 때 아까 물을 긷던 녀인이 김책의 팔소매를 조심스레 잡아당겼다.
녀인은 종이에 싼것을 내밀며 변명조로 떠듬거렸다.
《이거… 백반이올시다. 장군님께서 그 험한 물을 그냥 드시였는데… 이거라두… 글쎄 장군님께 청수 한그릇 대접하지 못하구… 우리 미련한것들이 죄가 큽니다.》
김책은 종이봉지를 받아들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혈육의 정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가.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날이 어두워서야 토성랑을 떠나시였다.
만세소리가 터져올랐다.
그러나 토성랑에서 만세소리가 높아질수록 장군님의 마음은 몇곱절 더 무거워지시였다.
다음날 북조선공산당조직위원회 청사에서는 김일성동지의 사회하에 협의회가 다시 열렸다.
안건은 역시 보통강개수공사문제였다.
장군님께서는 푹 가라앉은 어조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어제 토성랑을 돌아보신 사연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며 자신의 진정을 헤쳐보이시였다.
나라를 찾겠다고 나선 길우에 부모형제들을 이국땅에 묻었고 귀중한 전우들도 백두광야에 묻었다.
그렇게 값비싼 희생을 치르며 쟁취한 조국해방이 단순히 잃었던 땅이나 되찾는것이라면 그건 해방의 의의가 왜소화된것이다. 아직도 토성랑사람들은 해방의 기쁨을 실생활로 느끼지 못하고있다. 해방은 인민들에게 참된 존엄과 권리를 안겨줄 때 진정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 토성랑사람들은 《김일성장군 만세!》를 부르는데 난 정말 미안해서 그 만세소리를 들을수 없었다.…
일군들은 장군님의 말씀을 들으며 머리를 수그렸다. 장군님의 마음속엔 토성랑이 자리잡고있는데 자기들에게는 없었다. 이것이 장군님과 자신들의 인민관에서 하늘땅의 차이를 가져왔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유독 오기섭이만은 아직 깨도가 안되는지 장군님께서 말씀을 끊으신 기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인간애에 탄복하였습니다. 저는 이 공사를 반대하는것이 아니라 리론적으로 잘 납득이 되지 않기때문에 일어섰습니다. 이번에 김일성동지께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심으로써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있는 농민을 쟁취하시였습니다. 그런데 토성랑의 주민구성을 보면 품팔이군이나 수공업자들 같은 도시서민층이 기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그처럼 큰 공사를 벌려놓는다는게 저로서는 잘 리해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맑스는 자기의 저서에서 룸펜프로레타리아트는 혁명의 동력이 될수 없다고 명백히 밝히지 않았습니까? 다 아시겠지만 정치가는 라침판의 바늘이고 한 민족의 길라잡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일이 아니기때문에 령도자를 위인이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레닌동지도 쏘베트를 창건하고 사회주의혁명단계에 들어선것이 아니라 전시공산주의라는 과도기단계를 설정한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김일성동지께서 보통강개수공사로부터 민주건설을 시작하자고 하시는것은 어떤 정치로선에 부합되는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리고 무슨 힘으로 이 공사를 해내겠는지 납득시켜주십시오. 우리에게야 아직 자연과 싸울 준비가 안돼있지 않습니까?》
《오기섭동무는 토성랑주민들이 로동계급이나 농민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을 외면해도 된다는겁니까?》
장군님께서는 그가 공사의 거대한 의의를 리해하지 못하는게 안타까우시였지만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말씀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사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인민생활안정, 산업복구,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남북통일에 의한 전조선적인 통일정부수립, 무장력건설, 교육, 보건… 어느 하나도 절박하지 않은것이 없다. 이 모든것은 인민대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여 제 손으로 일떠세워야 할 력사적과제이다.
그런데 인민은 언제한번 자기 힘의 무한대함을 모르고있다. 때문에 우리는 새 조선의 출발선에서 인민이 자기 힘을 믿게 하여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한마음으로 굳게 뭉쳐 일떠선다면 얼마든지 제 손으로 새 나라를 건설할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놓고볼 때 보통강개수공사는 단순한 치산치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정치가로서 이 공사를 주장하는것이 아니다.
나는 제 나라를 빼앗기고 제 민족이 수난당하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서 혁명을 시작했다.
무장투쟁을 시작하던 그때에도 손에 쥔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인민의 힘을 믿었기때문에 일제의 백만대군과 싸웠고 싸워서 이길수 있었다. 그때에도 력량상차이를 따져본다면 애당초 싸울 생각을 포기하고 노예의 운명에 순종해야 한다는건데 그렇게 살수야 없지 않았는가.
보통강개수공사문제도 단순히 론리적으로만 따져보려 해서는 안된다. 이제 장마가 지면 토성랑사람들이 또 물란리를 겪겠는데 해방된 제땅에서 그런 고통을 당할거라고 생각하면 난 못 참겠다.
《그러니 이 공사에 어떤 정치적의의를 부여해야 한다면 이 공사를 통해서 인민들의 설음을 가셔주고 그들을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우는것이 나의 정치로선이라고 리해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민의 나라를 세우자고 하는 현시점에서 어떤 정치로선이든 인민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지 않습니까. 다시말하면 우리는 인민의 리익을 모든 정치로선의 기초로 보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어느때나 인민의 존엄과 복리를 첫자리에 놓는것이 우리 혁명의 목적이고 정치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각계각층 인민들의 힘을 동원하여 장마철전으로 이 공사를 끝낸다면 후날 력사가들은 이 공사의 정치적의의를 옳게 평가할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호흡을 가다듬으신 다음 이 공사를 통해서 식민지사회가 남겨놓은 온갖 낡고 부패한 사상잔재를 보통강의 탁류와 함께 쓸어버리고 새 사회의 진정한 주인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결국 보통강개수공사는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인간을 개조하는 하나의 혁명으로 될것입니다. 동무들은 공사비용부터 걱정하는데 난 인민들의 건국열의를 믿습니다. 인민이 바라는것이라면 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힘도 인민자신이 안고있습니다. 인민의 요구는 력사의 요구이기때문에 인민이 바랄 때에는 그것을 실현할 력사적조건이 성숙되였다고 봐야 합니다. 오기섭동무는 어제 혁명의 씨뚜아찌아에 대해서 말했는데 토성랑에 사람이 살고있고 장마철이면 그들이 또 홍수피해를 입게 될 정황에서 무엇을 기다리자는겁니까?
인민이 바라는것을 첫자리에 놓고 그것을 실현할줄 아는 사람이 팔짱끼고 앉아서 기다리는것보다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예, 저야 뭐…》
오기섭은 더 할 말을 찾을수 없었다.
《재삼 말하지만 해방된 오늘까지 홍수때문에 인민의 곡성이 터지게 할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민정권이 있는 한 단 한사람도 불행에 울게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동무들이 토성랑주민들을 자기 부모형제처럼 생각할 때 비로소 인민정권기관의 참된 일군이 될수 있다는것을 새겨두기 바랍니다.》
장군님의 말씀이 끝나자 김책이 벌떡 일어섰다. 그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기관총처럼 냅다 쏘아댔다.
《동무들이 죽을 때까지 명심해야 할게 한가지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장군님께서 어떤 문제를 제기하실 때는 벌써 그 해결방도까지 환히 내다보고계신다는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문제라도 장군님께서 결심하시면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장군님을 모시고 싸워오면서 심장으로 체득한 진리요. 여기 모인 동무들은 장군님의 건국로선을 앞장에서 받들어야 할 일군들인데 어째서 이걸 모르오?》
협의회는 밤이 어두워서야 끝났다. 장군님께서는 평안남도인민위원회와 평양시인민위원회가 주체가 되여 공사준비와 관련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도록 과업을 주시였다.
12
이튿날 리주연은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로 찾아갔다. 장군님께서는 마당에 세워놓은 화물자동차곁에서 일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리주연의 인사를 받으시며 그를 차있는데로 가까이 부르시였다.
《주연동무! 이 차를 타고 공사장에 갔다와야겠습니다. 지금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해방떡>만 먹으면서 일하다보니 배앓이를 자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수쌀을 좀 보내주자고 합니다.》
리주연은 얼결에 수수쌀마대가 가득 실린 적재함을 올려다보았다. 공사장에 만주콩을 보내준것은 자기였다. 그것도 몇번이나 재다가 여유가 생겼길래 보내주면서 공사장에 식량이 해결된것을 다행으로 여겨왔었다. 로동자들이 그 콩만 먹고 배앓이를 할수 있다는것도, 그때문에 장군님께서 심려하시리라는것도 리주연은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로동화를 몇마대 실었는데 가져다주시오. 토목로동을 해서인지 공사책임자라는 사람도 발가락이 나오는 신발을 신고있더란 말이요. 그다음에 또 있소. 재정국장동무!》
장군님께서는 큼직한 가방을 들고서있던 재정국장을 찾으시였다.
《그 가방을 주연동무한테 주시오. 재정국장동무랑 머리를 싸매고 짜낸 돈이요. 로동자들에게 로임도 주지 못한다는데 도인민위원회에서 책임지고 공사비용으로 쓰도록 하오. 이젠 더 없던가?》
장군님께서는 한가지라도 더 보내지 못하는게 아쉬우신듯 일군들을 둘러보며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에 농림국장은 진짜로 놀라와하며 반문했다.
《장군님, 이렇게 많이 보내시면서 아직두 적다는겁니까?》
《농림국장동무가 수수쌀 한차에 으쓱해졌구만. 이제 공사가 완공돼서 서평양과 대타령일대의 논밭들이 홍수피해를 면하고 진펄도 다 논으로 개간되면 동무도 수수쌀대신 흰쌀을 보내지 못한걸 후회하게 될거요.》
장군님께서는 즐거운 기분으로 말씀하시며 리주연에게 돌아서시였다.
《어서 타오. 가서 로동자들에게 내 인사를 전해주시오. 그리구 공사를 단기일내에 끝내기 위해서는 준비를 잘해야 한다는걸 특별히 강조하시오. 삽이나 곡괭이 같은것은 동원되는 사람들이 가지고나올수 있지만 목도 같은것은 공사장에서 보장해야 하는것만큼 봉수산에서 목도를 넉넉히 장만해놓아야 한다고 말이요.》
그러시면서 도인민위원회가 책임지고 장혁수의 안해와 아들의 시신을 잘 안장해줄데 대하여 다시 상기시키시였다.
공사장으로 차를 타고가는 리주연의 심중은 무거웠다. 사람이 자기를 부정한다는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더구나 자기가 진리라고 확신했던 정치적리념이나 생활신조를 스스로 부정하게 될 때 그 인간은 어쩔수없이 자체모순에 빠지게 된다. 지금 리주연의 경우가 그 비슷하였다. 그는 여태 자기가 무산민중의 리익을 위해 싸워왔다고 자부하고있었다.
일찌기 맑스-레닌주의에 매혹되여 혁명의 길에 나섰던 그는 파도우의 일엽편주마냥 세상풍파에 시달리다가 김정숙동지로부터 장군님의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과 전민항쟁방침을 직접 전달받고서야 비로소 옳바른 투쟁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정말 라침판도 없던 쪽배에서 군함으로 옮겨탄 기분이였다. 그는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평양지방에 옮겨앉아 당소조를 조직하고 전민항쟁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해방직후에는 평남도당부를 조직하는데도 관여하고 평남도인민정치위원회 총무부장으로 일하였다. 도당1비서였던 현준혁이 그에게 도당부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으나 리주연은 도리머리를 했다. 조만식의 민주당세력에게 평남도자치기관인 인민정치위원회를 맡겨두는게 불안했던것이다. 신간회시절부터 조만식을 알고있던 리주연은 《평안남도인민정치위원회》라는 간판을 내걸 때에도 그와 의합이 맞지 않았었다. 조만식은 그냥 정치위원회로 하자고 고집했고 리주연은 인민위원회로 해야 한다고 우겼던것이다.
《조만식선생은 어째서 인민이란 말을 싫어합니까?》
《리군도 내가 민족주의자라는것을 알지 않소? 그런데 인민이란 말에서는 공산주의냄새가 진하게 난단 말이요. 그저 백성이라고 해도 되지 않소? 황차 왜놈을 몰아낸 이 땅에선 조선사람이라면 덮어놓고 대동단결을 이룩해야 할 때인데 인민이다, 아니다 하구 편을 가를게 있는가 말이요.》
《선생님의 말씀대로 덮어놓고 대동단결을 해야 한다면 친일파나 민족반역자, 악질지주나 매판자본가까지 다 품어주자는건가요? 그렇게야 안되지요. 내가 말하는 인민은 그런자들을 제외한 반제국주의적, 반파쑈적인민입니다. 계급혁명의 동력으로 될수 있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인민으로 되는거지요.》
《그렇게 차 떼구 포 떼구나면 누구와 건국을 하겠소? 건국을 하자면 자본이 있어야 할텐데 맨주먹밖에 없는 백성들만으로 뭘 한다는거요? 밉든 곱든 자본을 가진 사람들과도 화해를 할수밖에 있소? 그리구 왜놈들 시달림을 그만큼 받았으면 이젠 제 사람들끼리 오손도손 살아야 할게 아니요? 왜놈들 세상에서 살아가자니 할수없이 친일을 좀 했을수도 있구 돈두 벌었을수 있지. 이제 또 계급혁명이라는 슬로간을 내걸구 저 아라사에서처럼 공민전쟁이라두 해야 한다는거요?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두 제 민족을 사랑할줄 모른단 말이요?》
리주연은 그때 조선의 《간디》로 자처하던 조만식의 반동성을 똑똑히 보았으며 그와는 끝까지 한길을 갈수 없으리라는것을 깨달았었다.
《조만식선생은 얼마나 도량이 커서 과거 일제에게 붙어먹던자들과도 어깨동무하자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일찌기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청산하고 진정한 인민혁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하시였습니다. 이제 장군님께서 개선하시면 모든게 명백해지겠지만 나는 우리가 조직하려는 도내 주권기관이 명실공히 인민의 리익을 위하는 기관으로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만식은 리주연의 꿋꿋한 태도에 기가 눌렸는지 정치인민위원회로 하자는 타협안을 내놓았었다. 그래서 다른 도들에서는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였지만 유독 평남도에서만은 《평안남도인민정치위원회》라는 간판이 걸리게 되였었다.
그런 연고로 하여 리주연은 조만식일당이 올해 1월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을 로골적으로 반대해나서는것을 계기로 그자들을 인민정권기관에서 축출하는데 앞장섰던것이다. 그때 리주연은 인민이란 말자체를 싫어하는 조만식의 반인민성을 규탄하여 《인민정치위원회의 정치적성격》이라는 글을 《정로》에 싣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리주연에게 있어서 인민이란 존재는 정권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혁명의 위력한 동력이였으며 따라서 그들의 복리를 책임지고 돌보아주는것은 정권기관 일군의 응당한 본분이였다. 그는 자기가 그 본분에 성실해왔다고 믿고있었다. 그런데 어제 협의회이후부터는 그러한 자부심이 없어졌다. 장군님의 인민관은 절대적인것인데 자기에게는 허용오차가 컸었다.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인민이 친부모형제로 자리잡고있는데 자기에게는 그저 책임지고 돌보아주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어제 협의회에서는 그것이 태양과 뭇별의 차이로 나타난것이다. 장군님께서 나라형편을 모르시고 그런 방대한 공사를 결심하시였겠는가. 자기는 고작 한개 도의 살림을 맡아안고 숨가빠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를 다 안고계시지 않는가. 그런데도 감히 객관적실태를 솔직히 보고드린다고 하면서 장군님의 뜻을 흥정하려 했으니 김정숙동지한테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얼마나 섭섭해하시겠는가.
무슨 일에서나 실수없이 장군님을 받들어온 리주연이로서는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었다.
차가 공사장에 도착했을 때 로동자들의 감격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지금껏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그들은 향토건설대를 해산하고 다 떠나자고 했댔는데 어제는 장군님께서 몸소 찾아오시고 오늘은 또 이런 경사가 난것이다.
《난 신발이 다 해져서 미투리라도 삼으려고 했는데 내가 신발을 걱정하는줄 장군님께서 어떻게 아시구…》
《이런걸 두구 하늘에서 떨어진 복이라구 하는거야.》
《아니, 장군님께서 보내주신건데 웬 하늘타령이요?》
《차차… 장군님이 바루 하늘이다, 이 소리지.》
로동자들은 적재함의 짐들을 부리우면서 도무지 진정을 못했다.
리주연은 로동자들을 모아놓고 공사준비를 잘할데 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자기비판을 했다.
《난 동무들보다 못한 놈이요, 훨씬 못한 놈이요. 난 장군님께 이 공사를 당장은 할수 없다고 말씀드렸댔소. 동무들, 나를 비판해주오.》
장혁수는 감격에 겨워 아까부터 눈만 슴벅거리다가 리주연의 팔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우린 더 한심한 놈들입니다. 장군님께서 이 공사를 중시하시는줄도 모르고… 다 떠나려고 했댔수다. 엊그제 장군님께서 공사장에 찾아오신 다음에야 정신들을 차렸수다. 야! 성칠이, 덕배, 말을 해라! 여기를 뜨겠다던 놈들 말을 해봐라! 아직두 가겠어?》
장혁수의 사나운 고함소리에 로동자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우리가 제 생각만 하는 덜된 놈들이였소. 부위원장어른! 김일성장군님께 우리가 죽어두 제방을 베고죽겠단다구 말씀드려주시우.》
《옳수다! 말씀드려주시오!》
사람들은 제 동가슴을 두드려대며 이구동성으로 호응했다. 그러다가 자기들의 진정을 담은 편지를 장군님께 올리자는 누군가의 제의에 와- 환성을 올렸다.
리주연은 공사장에서 돌아오는 길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찾아갔다. 장군님께서는 리주연이 가져온 편지를 반갑게 받아보시였다.
《김일성장군님 전 상서
조선을 해방시켜주시고 무산민중의 새 나라를 세워주신 김일성장군님께 보통강개수공사 향토건설대 대원들은 감격의 마음을 주체할길 없어 장군님께 삼가 이 글월을 올리옵니다. 국사에 다망하신 장군님께서 썩은물 흐르는 보통강때문에 이렇듯 심뇌가 크신줄 우린 정말 몰랐습니다. 토성랑움막이 아무리 춥다 한들 만주의 눈보라만이야 했겠습니까? 우리한테는 움막이나마 제집이 있었지만 장군님께서는 20성상 풍찬로숙을 하시며 강도 일제와 혈전분투하시고 오늘은 또 건국도상에 할 일도 많지만 보통강을 제일 걱정하신다니 공사를 맡은 저희들은 하늘에 얼굴을 들수가 없습니다. 이젠 우리도 정신을 차렸습니다. 우리들은 장군님배려에 천백번 감사하면서 이 몸으로 제방을 쌓아서라도 장군님 분부하신 기한내에 공사를 기어이 완공하겠습니다. 그러니 공사는 념려하지 마시고 장군님께서 부디 귀체만강하시옵기를 일구월심 바라옵니다.
보통강개수공사 향토건설대 일동
1946년 4월 xx일》
장군님께서는 편지를 다 읽으신 다음 리주연에게 말씀하시였다.
《로동자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니 고맙습니다. 그 편지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 인민들은 정에 주려 살아왔습니다. 우리 인민정권이 자기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것을 느끼게 되면 그들은 무한대한 힘을 발휘할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고 하지요. 주연동무! 어떻습니까? 아직도 이 공사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까?》
장군님의 말씀은 가뜩이나 격앙되였던 리주연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어주었다.
《장군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장군님 가까이에서 일해오면서도 인민에 대한 리해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자신을 지내 혹독하게 대하는게 아닙니까?》
리주연은 정중한 자세로 장군님을 우러르며 자신의 심중을 퍼내였다.
《아닙니다. 저는 장군님께서 보통강개수공사를 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잘 리해하지 못했댔습니다. 현시점에서 건국의 순서로 보나 경제적득실관계로 보면 불합리하지만 그래도 공사를 강행하여 인민정권의 성격을 내외에 시위하려는것으로만 생각했댔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수긍되면서도 오늘의 객관적형편이 너무 어렵다는데만 포로되여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대답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쥐꼬리만 한 소총명으로 장군님의 웅지를 재단하려 들었으니… 용서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리주연의 말을 제지시키시였다.
《주연동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만 합니다.》
그러시면서 리주연을 의자에 앉히시고 담담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참된 정치는 어머니와 같은 사랑의 마음에서만 나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민의 리익을 안중에 두지 않는 통치배들은 정치를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으로 보았기때문에 애당초 인민에 대한 사랑과 인연이 없었습니다. 결국 정치와 폭력은 동의어로 되고말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인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리주연은 흥분을 걷잡을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군님의 뜻대로 공사를 장마철전에 꼭 끝내겠습니다.》
《조직사업을 잘해보시오. 물론 공산당에서 공사를 맡아할수도 있지만 나는 인민위원회에서 책임지고 하는게 더 좋을것 같습니다. 우리는 공사과정을 통해서 각계층 군중들을 인민정권의 두리에 묶어세워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결성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보통강개수공사를 평안남도인민위원회가 책임지고 할데 대해서와 공사지휘부를 튼튼히 꾸리고 공사계획을 면밀히 세울데 대해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공사의 단계별계획, 설계선행, 자재소요량…
장군님께서 설계수정에 대해 말씀하시자 그는 장혁수에게서 제기된 내용을 보고드렸다.
《장혁수동무의 말이 설계가 걸렸답니다. 장군님께서 왜놈들의 설계를 뜯어고치라고 하셨는데 그걸 할만 한 사람이 없답니다. 제 보기에는 도인민위원회 토목과에도 그런 설계를 맡을만 한 사람이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럴수 있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시며 잠시 생각을 더듬으시다가 양복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드시였다. 거기에는 조국에 개선하신 후 찾아내신 여러명의 지식인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내가 한사람 소개하지요. 중성동에 있는 구강병원에 가면 1층에 건축가들이 모이군 한다는데 거기에는 김운상이라는 건축가가 있습니다. 그 동무에게 맡기면 해낼겁니다.》
장군님께서는 만경대에 새집을 짓겠다고 했다는 김운상을 만나보시지는 못했지만 그에 대한 료해를 구체적으로 해두시였던것이다. 리주연은 어려운 문제가 즉석에서 풀리자 사기가 났다.
《래일중으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리주연은 보고를 드려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장혁수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 공사장을 다녀가신 뒤 장혁수동무는 오성재농민을 찾아갔댔답니다. 장군님께서 오성재농민에게 걱정하지 말고 분여받은 땅에 씨앗을 묻으라고 하신 말씀을 전해주자고 갔는데 그 농민이 며칠전에 토성랑을 떠났더랍니다.》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긴장되시였다.
《어데로 갔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 집 안주인이 며칠전부터 앓고있었다는데 하루는 웬 처녀가 손수레를 끌고와서 세간살이까지 다 걷어싣고 갔답니다.》
《친척이 아니였답니까?》
《예, 시내엔 친척이 없답니다.》
장군님의 안색은 어두워지시였다. 그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혹시 그때 농촌위원회에서 평양에서 살 자격이 없는 놈이라고 욕을 했다더니 그래서 떠나지 않았을가? 고지식하고 순박한 사람이니 어디 외진 곳에 가서 숨어살자고 영영 떠난게 아닐가?
하긴 공사소식을 들으면 천리밖에서도 다시 찾아오겠지… 농사군이 땅을 떠나서 가면 어디로 가겠는가.
장군님께서는 다소 마음을 놓으시며 리주연에게 돌아서시였다.
《그리구 2~3일후에 안주쪽으로 가볼 계획인데 주연동무도 함께 갑시다. 안주, 숙천벌 농민들이 예로부터 물고생을 많이 했는데 평남일대의 관개공사를 빨리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럼 안주관개공사장에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리주연은 놀랐다. 선뜻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보통강개수공사만 해도 아름찬데 새로운 공사를 또 시작한단 말인가.
원래 안주, 숙천벌은 비옥한 곡창지대이지만 하늘을 바라고 농사짓는 천수답, 수리불안전답이였다. 해방전에 왜놈들은 농민들로부터 물세를 비싸게 받아 폭리를 보려고 관개공사를 계획하였지만 시작도 못해본채 쫓겨가고말았다. 리주연이 대충 알기에도 이 공사는 여러개의 저수지와 수십개의 양수장을 건설하고 수백리물길을 형성하는 대관개공사였다. 그 방대한 공사를 또 계획하시다니 과연 장군님의 그 담력과 배짱은 어디서부터 생겨나는것인가. 리주연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지만 장군님의 안색은 여전히 평온하시였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수 없습니다. 우리 인민은 이 모든 력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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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수 없습니다. 우리 인민은 이 모든 력사적과제를 자기 힘으로 해낼것입니다.》
장군님의 음성은 확신에 넘쳐있었다.
리주연은 놀랐던 가슴이 진정되고 용기가 백배해지는듯 한 신비경에 휩싸였다.
언제나 인민을 먼저 생각하시는 인민의 령도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담력과 배짱이 생길수 있겠는가.
인민의 소원을 모든 사색의 출발점으로 정하시고 종착점 없는 헌신의 장정을 걸으시는 장군님!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인민이 잘사는 세상을 세울것인가 하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꿈이고 소원일진대 아! 이 나라 동포들아!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고 자애로운분을 민족의 령도자로 모시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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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리 구강병원은 2층으로 된 석조건물이였다. 그 건물의 2층은 병원으로 쓰지만 아래층에는 각종 건재류들을 판매하는 도매소가 자리잡고있었다. 그 도매상이 한때는 측량기를 메고다니던 사람이여서 한켠 구석방을 내주었는데 시내의 건축가들은 그곳을 모임장소로 리용하군 했다. 휑뎅그렁한 방안에는 편수책상 하나와 나무의자 몇개 그리고 낡은 도판 하나가 먼지를 들쓰고 외롭게 서있었다.
김운상은 해방산쪽으로 면한 그 방의 창문가에 서서 멀어져가는 태호의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일이 참 별나게 됐는걸.…)
운상은 지금 수영이라는 처녀의사때문에 딱한 처지에 몰리우게 된것이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며칠전에 태호가 하숙집으로 찾아왔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어머니가 앓는다면서? 어제 자네가 왔댔다구 수영선생이 말해주더군.》
태호가 왕진가방을 메고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였다.
《해열제를 썼더니 열은 좀 내렸어.》
태호는 하숙집 어머니의 체온도 재보고 맥도 봐주고나서 필요한 약들을 꺼내놓았다. 운상은 그가 치료를 끝낸 다음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었다.
《그 처녀가 다른 말은 안하던가?》
《아니, 왜?》
《내 그 처녀한테 싫은 소리를 좀 했댔네. 의사라는게 너무 랭랭하더란 말이야.》
《우리 수영선생이 랭랭하다? 그건 말두 안돼.》
《가재두 게편이라더니 그 처녀를 두둔하는건가?》
운상은 자기가 목격한것을 대강 추려서 말해주었다. 그래도 태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를 소리다? 수영선생은 어제 저녁에 토성랑에 왕진을 갔댔어.》
《자네가 어떻게 아나?》
《오늘 아침에 과장선생에게 그렇게 보고하더군. 오후에도 토성랑에 또 가봐야겠다면서 일찍 나갔네.》
운상은 한방망이 맞은 기분이였다. 그럴줄 알았으면 처녀에게 그렇게까지 아픈 소리를 하지 않는건데…
《래일이라두 찾아가서 사죄하라구.》
태호의 말에 운상은 눈을 치떴다.
《난 사죄할게 없어. 그땐 처녀가 분명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자넨 녀자를 볼줄 몰라. 수영선생은 인물로 보나 마음씨로 보나 나무랄데가 없어.》
곁에서 듣기만 하던 하숙집 어머니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태호에게 한마디 했다.
《이보라구, 그런 처녀라면 운상이 저 사람에게 소개해주지.》
태호는 한쪽눈을 껌벅거리며 능청을 부렸다.
《어머니, 그럴 생각도 없지 않은데 이 친구가 불합격맞을가봐 걱정이예요. 우리 병원에선 그 처녀를 에베레스트(주물랑마봉)에 비유하거던요.》
《그건 무슨 말인가?》
《그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이름인데 아직은 누구도 그 산꼭대기에 올라가본 사람이 없대요.》
《거긴 왜 힘들게 올라가나?》
말문이 막힌 태호는 늙은이와 말할 재미가 없었던지 손을 내저으며 운상에게 돌아앉았다.
《그쯤하면 수영선생의 금새를 알겠지?》
운상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비유는 요란한데 자네가 모르는게 있어. 사람들이 에베레스트정점에 오르지 못하는건 높고 험하기때문이 아니라 산소가 희박하기때문이야. 산소가 부족한 그곳에 오르다가 질식되기보다는 청신한 공기가 차넘치고 푸른 잔디가 깔린 언덕에 오르는 편이 낫지.》
태호는 껄껄 웃었다.
《자신없으면 없다구 하게, 변명하지 말구. 푸른 동산이 아무리 좋다 한들 에베레스트에 비기겠나. 솔직히 말하라구, 내 소개 할가?》
《필요없어. 내가 찾아보지 않으리.》
《서른살까지 못 찾았는데두?…》
그날은 롱담 절반 진담 절반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말았다.
그런데 방금전에 왕진가는 길에 들린 태호는 먼저 그 소리부터 꺼내는것이였다.
《자네 아직 수영선생에게 사죄 안했더구만.》
운상은 화를 벌컥 냈다.
《내가 왜 사죄한단 말인가? 사람을 우습게 만들지 말라구.》
태호는 여느때없이 정색해서 충고를 주었다.
《자네가 가지 않으면 정말로 우스운 졸장부가 될거야. 우리 의사들에겐 심장이 차겁기때문에 의사자격이 없다는 말처럼 가슴아픈 모욕이 없어. 해방덕에 우리 의사들의 직업륜리도 달라졌단 말이야. 더구나 그 처년 서울에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기업이 파산당해서 집까지 잃구 따뜻한 인정을 찾아 북에 들어온 처녀야. 그 처녀는 여기서 생활의 안정과 행복을 찾고싶어한단 말이야. 그런데 자넨 자기 직업에 애착을 느끼고 사는 그 처녀를 아프게 해주고도 아닌보살하겠다는건가? 무슨 권리로 자네가 그 처녀를 모욕해?》
《…》
운상은 그만에야 할 말이 없어졌다. 태호는 갈길이 바쁜지 선자리에서 돌아섰다. 문손잡이를 붙어잡고 그는 다시한번 오금을 박았다.
《수영선생에겐 자네가 찾아올거라구 말해뒀네. 그러니 오늘 당장 가보라구. 자기 인격이야 자기가 지켜야지.》
운상은 지금 창가에 서서 태호가 남긴 말들을 음미해보며 자기의 실책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태호의 말대로 병원에 찾아가서 그 처녀에게 미안하다고 사죄해야 할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처녀앞에서 허세나 부리는 졸장부로 락인찍힐수 있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문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방안에 들어서는 사람은 뜻밖에도 리주연이였다.
《아니, 부위원장동지가?…》
달포전 3. 1운동 27주년 평안남도경축대회때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주석단에 올랐던 리주연을 본적이 있었던것이다.
《김운상선생입니까? 반갑습니다.》
리주연은 방안을 두루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선생들의 생활에 관심을 돌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선생들이 변변한 건물 하나 없어 이런데서 생활한다는것도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르쳐주셔서야 알았습니다.》
운상은 와뜰 놀랐다. 갑자기 심장이 후드득 뛰면서 온몸이 긴장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여기를 알고계신단 말입니까?》
《예, 난 김일성장군님께서 운상선생을 만나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선생은 이제부터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맡아해야겠습니다.》
리주연의 말이 너무 비약하는통에 운상은 반문하지 않을수 없었다.
《장군님께서 저에게 무슨 과업을 주셨다구요?》
《장군님께서는 보통강개수공사를 발기하시고 그 설계를 수정할데 대한 과업을 선생에게 맡겨주시였습니다. 그러니 오늘중으로 공사장에 가서 기존설계를 인계받아야 하겠습니다.》
리주연은 명백하게 말했지만 운상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부위원장동지, 좀 차근차근 말씀해주십시오. 그러니까 보통강개수공사를 당장 시작한단 말입니까? 전 믿어지지 않습니다.》
《나도 처음엔 선생처럼 생각했댔습니다. 그래서 무엄하게도 장군님앞에서 반대의견을 내놓았댔지요.》
리주연은 장군님께서 나라사정이 어려운 이때 얼마나 큰 용단을 내리시였는가에 대해 자기가 느낀것만큼 이야기해주었다. 그래도 운상은 모든게 선명치 않았다.
건국이자 건설이라는것을 잘 알고있는 그는 새 조국건설의 첫삽을 어디서부터 뜨겠는가 하는데 대해 누구보다 신경을 써오고있었다. 건축가는 나라에서 국책으로 중시하는데가 어떤 분야인가를 잘 알아야 했기때문이였다. 산업건설을 우선시할것인가, 주택건설이나 공공건물에 투자가 집중될것인가. 그런데 토목공사부터 한다고 하니 건축가인 운상으로서는 건국의 방향타가 어디로 정해졌는지 가늠할수 없었던것이다.
리주연은 운상의 착잡한 심정이 리해되는듯 여유있게 말했다.
《이제 설계를 직접 맡아하느라면 장군님의 뜻을 더 잘 알게 될겁니다. 운상선생, 시간이 없습니다. 혼자서 힘들면 토목설계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인입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합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감이였지만 운상은 리주연에게 더이상 묻지 않았다. 너무도 명백해서 물을것이 없었다. 모를것이 있다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이 공사를 어째서 당장 해야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운상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앞에 무력한 존재였다.
아무리 훌륭한 창조물도 세월의 흐름이나 자연재해앞에서는 한갖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여 살면서 그것을 리용할수는 있었으나 자연을 개조할수 있는 존재는 못되였다. 자연은 너그러우면서도 엄격해서 인간이 본래의 자기 상태를 파괴해놓으면 무서운 보복을 들씌우군 했다.
때문에 개수공사와 같은 큰 토목공사를 벌리자면 자연의 힘에 대응한 인간의 힘이 준비되여야 한다. 국력을 기울여야 할 크고 중요한 공사가 지금형편에서 가능하겠는가? 혹시 장군님한테 누구도 모르는 큼직한 금고가 있는게 아닐가?
이랬든저랬든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이니 기쁜것은 말할것도 없고 무조건 집행해야 한다는것도 명백하지만 그 의문만은 털어버릴수 없었다.
밖으로 나온 운상은 봉수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한 걸음이였다. 가벼운것은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받아안고 가는 걸음이기때문이고 무거운것은 어째서 이 공사가 제일 첫자리에 놓였는가 하는 의문때문이였다.
장혁수에게서 설계를 인계받은 운상은 그날부터 설계수정에 달라붙었다. 왜놈들이 만들었다는 쪼물짝한 설계를 어떤 대홍수에도 견딜수 있도록 대폭 수정하자니 할 일이 많았다. 그는 토목설계에 경험이 있다는 두명의 설계가를 더 선발하여 매일 측량기를 메고 공사장을 오르내렸다.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토목공학을 함께 배워둔것이 오늘을 위해서인듯싶었다.
일반적으로 자연흐름식물길설계에서는 물흐름속도를 어떻게 정하는가 하는 문제가 기본이였다. 물흐름속도가 너무 빠르면 제방흙이 패워나가고 너무 늦으면 풀씨같은게 내려앉아 강바닥에 수초가 무성해지는데 수초의 저항으로 물흐름이 더 떠지면 감탕이 퇴적되여 제방을 무너뜨릴수도 있었다.
그러니 표척의 눈금 하나 잘못 찍어도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낳을수 있었다. 하기야 인간이 자연을 길들인다는게 용이하겠는가. 운상은 낮에는 공사장에 나가있고 밤이면 현장사무실의 동쪽끝방에 들여놓은 책상에 마주앉아 참고서들을 뒤적이며 설계를 완성해나갔다. 그러다보니 수영에 대해서는 아예 잊어버리고말았다.
어느날 밤 그는 물길의 천메터당 표고차가 엄청나게 차이나는통에 연필을 집어던지고 머리를 싸쥐였다. 문득 그는 일본에 가서 함께 공부한 구진배가 생각났다. 평양출신의 구진배는 운상이보다 후배인데 같은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었다. 운상은 건축인동맹을 무으면서 구진배의 행방을 찾아보았었다. 그런데 구진배는 해방후에 지주인 아버지를 따라 남조선에 나갔다는것이였다. 그가 있었더라면 이런 설계쯤은 쉽게 해제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