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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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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964회 작성일 15-12-0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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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중에서 장편소설


대박산마루


(제 1 회)

 

1

 

1992년 어느 봄날 밤이였다.

왕건릉이 자리잡고있는 개성시 해선리의 안침진 골안은 보름달밑에서 대낮처럼 밝았다.

옛무덤이 지우는 그림자곁에 두 녀인이 손을 맞잡고 서있었다. 팔순이 썩 넘어보이는 로파와 스물이 될가말가한 처녀의 형용은 꼬부라든 고목과 그 몸에서 생명을 받아 싱싱하게 자라는 어린 나무를 련상케 했다.

《할머니두 참, 열번도 더 물어보시네.》

《얘야, 열번이 아니라 백번, 천번이라도 또 듣고싶어서 그런다. 다시한번 더 말해주렴.》

처녀는 증조할머니의 요구인지라 대답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오늘 수령님께서 왕건릉을 찾아주셨다는것, 왕건릉이 너무 초라하다고 하시면서 웅장하게 다시 건설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는것, 그래서 개성시에서는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받들고 왕건릉개건을 위한 실무적인 조치들을 취했는데 자기네 공장에서는 자기를 포함하여 여러명이 그 공사에 동원되게 됐다는것 등 알고있는만큼 다시 곱씹었다.

《이 릉을 돌아보시면서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대요. 촌부자무덤 같다고…》

턱을 주억거리며 듣고있는 로파의 눈귀가 쪼프려지더니 한방울의 맑은 눈물이 조용히 슴새여나왔다.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지… 수령님께서…》

감회어린 눈으로 옛무덤을 다시 둘러보는 증조할머니를 살피며 처녀는 점점 더 이상한 감이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내 이런 날이 오리라 믿었다!》

초저녁 집에 들어서면서 처녀가 처음 이 말을 전했을 때 증조할머니는 누웠던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얘야, 나하고 좀 다녀올데가 있다.》

처음엔 마실이라도 가자는 소린줄 알았었다. 이젠 팔순정도가 아니라 구순을 넘어선 로할머니가 아닌가. 육신을 간신히 움직이며 방안에 앉아 잔소리가 업인 증조할머니가 바깥세상에 나가겠다는것은 좋은 일이였다. 처녀는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꾸레미까지 들고나선 증조할머니를 동무하여 한발자욱, 한발자욱 시작한 걸음이 10리길을 왔던것이다. 그러다가 여기 인적이 드문 왕건릉앞에 도달했을 때는 더우기 놀람을 금할수 없었다. 무덤이란 곳은 아무리 후손들이래도 추석때나 혹은 의의있는 날과 시각을 택하여 찾는것이 상례이다. 혹 유적유물을 즐겨찾는 사람들인 경우에도 밤에는 저어하는 곳이다. 이곳에 증조할머니는 무슨 연고가 있어 삼라만상이 고이 잠든 깊은 밤 달빛을 밟으며 찾은것인가.

《할머니… 밤중에 여긴 왜…》

조심스럽게 말깃을 다는 증손녀의 푸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로파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름달이 서쪽으로 좀 기운걸 보니 자정이 훨씬 넘은것 같았다. 달빛이 째지게 밝았다.

《날 좀…》

로파가 지팽이를 놓아버리였다.

로파는 처녀의 손에 의지하여 한자욱한자욱 릉을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녀는 증조할머니가 자기에게 의지한것이 아니라 자기가 따라가는것 같은 감을 느꼈다. 증조할머니의 심중에는 지금 터놓지 않은 크나큰 비밀이 담겨져있었다. 그것을 감득하면서도 처녀는 감히 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릉을 한바퀴 돌아 다시 대돌앞에 이른 로파가 몸가짐을 바로 하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분부를 내렸다.

《얘야, 술을 꺼내거라.》

그는 잔디밭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보퉁이를 가리켰다.

《어서 술을 부어라!》

처녀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잔디우에 놓여있는 보퉁이를 풀었다. 거기에는 개성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가운 손님을 위해 집안에 한병쯤은 건사해두는 개성특산의 고려인삼술이 담긴 자기술병과 은잔 하나와 접시가 있었다.

꼬부라진 허리로 어렵지 않게 접시와 잔을 받아든 로파가 접시우에 잔을 받쳐들었다. 처녀는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병을 집어들었다. 마개를 열고 잔에다 술을 부었다. 손이 떨리면서 술이 넘쳐나 접시우에 쏟아졌다.

로파는 접시를 두손에 받쳐들고 릉을 정면으로 마주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태조마마!》

처녀는 너무 경악하여 하마트면 악ㅡ 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거의 한세기를 살아오는 증조할머니가 구습에 완고하고 일상적으로 고투를 자주 섞어쓰는줄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감히 옛 왕무덤을 향하여 고전소설들에서나 볼수 있는 그런 호칭을 부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증조할머니가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 옛말에 나오는 신선처럼 느껴졌다.

그의 귀전에는 증조할머니의 목소리가 허공중에 흩어진 혼백들을 부르는것처럼 신령스럽게 들려왔고 이 세상이 아니라 딴 세계에서 울려오는듯 하였다.

《멸족지화를 면한 우리 왕씨가 간신히 피줄을 끊기지 않고 장장 남의 눈을 피해가며 자기 본색을 숨기고 살아온지도 600년… 태조마마께서 세상에 강림한지 1115년이 되는 올해에 비로소 구름이 걷히고 경사가 찾아들었소이다. 우리 왕씨문중도 더이상 자기 조상을 세상에 감추지 않아도 되게 됐소이다.》

로파의 울음섞인 목소리는 점차 고조되였다.

《이제는 천여년의 력사가 흘러 고총의 대돌에 이끼가 낀지도 수백년… 세월의 풍상고초에 무덤조차 낮아져 이제는 직계후손들마저 기억이 삭막해가고있을 때… 글쎄 오늘 우리 수령님께서 태조마마의 릉을 찾아주실줄이야… 역적 리성계가 군림한이래 그 많은 임금들의 태평성대속에 우리 왕씨들에게 몰아친 수난의 비바람은 얼마나 모질었고 오랑캐의 발굽은 또 몇번이나 이 릉우를 지나갔소이까.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으시고 국토의 통일성업을 이룩하신 태조마마께서 어찌 한시 편히 눈을 감고 계셨고 그 후손들인들 어느 한시절 세상에 머리들고 살아왔겠소이까. 하지만 오늘 수령님께서 마마의 혼백을 찾아주셨으니 이게 경사가 아니겠소이까. 빈촌초야의 백성들조차 피줄을 알아 추석이면 조상을 찾을 때 태조의 릉을 눈앞에 두고도 찾아뵙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던 우리 조상들의 일을 생각하면… 이제 수령님 슬하에서 우리 왕씨들도 하늘아래 떳떳이 머리들고 살게 되였으니 가문의 대통운이라 하지 않을수 없나이다.》

눈물로 얼굴을 적시던 로파는 숨이 차 잠간 소리를 죽이고 맘을 다잡는듯싶었다.

《내 이밤 마마를 대신해 그분께 인사를 올리려 하오이다! 이건 왕씨가문에만 비쳐든 별이 아니옵니다. 민족의 혈통을 중히 여기시고 그 정기를 빛내여나가시는 수령님께서 이 나라 백성들에게 안겨주신 은총이로소이다.》

처녀는 고투가 섞인 로파의 말을 똑똑히 가려들을수 있었다. 그때에야 처녀는 자기의 성이 왕씨라는 사실을 재의식하며 온몸에 쩌릿한 전류가 흐르는것을 느끼였다. 고려태조 왕건릉이라 일컬어오던 이 유적이 아득히 먼 자기 조상의 무덤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던것이다.

혼백이 절반 달아나버린 처녀에게 로파가 다시 물었다.

《얘야, 평양이 어느쪽이냐?》

대번에 가슴이 찌르르 울리고 두눈에 눈물이 고여올랐다. 증조할머니의 술잔이 결코 조상에게 받쳐든것이 아님을 깨달았던것이다.

처녀가 북쪽하늘을 향해 몸을 돌렸다. 로파도 처녀를 따라 돌아섰다. 처녀보다 한발 앞에 나선 로파는 북두칠성이 보이는 하늘을 우러러 잠시 시선을 던지고 섰다.

두손에 받쳐든 접시우의 은잔에 달빛이 부서지고있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잔을 높이 들었다.

《수령님!…》

로파의 손이 우들우들 떨리는 바람에 술잔이 흔들거리고 맑은 술방울들이 은빛으로 부서지며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 잔디우에 점점이 떨어졌다. …

그들은 날이 샐녘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할머니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없이 노상 기쁨속에 중얼거리였다.

《대가 왜 끊겨? 증손자가 없으면 뭐래? …》하며 소리내여 웃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는 실성한것처럼 다시 중얼거리는것이였다.

《암, 가문의 피줄같은게 다 뭐야. 반만년력사의 혈통이 이어지고있는데… 그래그래, 효자구말구, 효자!…》

집가까이에 와서는 더욱 알지 못할 소리를 내지르는것이였다.

고려성균관에서 송악산쪽으로 치우쳐 단층집이 한채 있는데 세멘트로 미장을 했고 회가루로 벽을 바른 집이지만 어딘가 고풍이 느껴졌다. 이 집에서 풍기는 고풍이 콩크리트담장우에 씌워놓은 이끼돋은 조선기와때문인지도 몰랐다. 세월의 풍운속에 이제는 성한 기와장이 몇 안되지만 이 집 사람들은 좀체로 기와장을 바꾸려 하지 않고 끈덕지게 유지해오고있다.

야밤에 왕건릉을 찾았던 두 녀인이 사는 집이였다.

로파는 왕씨집 문턱을 넘어선 박씨였고 처녀는 그의 증손녀로서 외동딸이였다. 왕가이면서도 대를 이어놓을수 없는 왕가였다.

로파는 왕씨대가 끊기게 됐다고 평생 한탄하고있었다.

처녀는 눈물속에 하는 그 한탄을 어린 소녀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는 지금처럼 개명한 세월에 봉건유생들처럼 종씨를 따지는 증조할머니의 한탄을 병적인 현상으로 리해하고있었다.

《암, 그렇구말구. 내 그분에게 드릴게 있어. 그것만 드리면 내 죽어도 편히 눈을 감을수 있지!》

로파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처녀는 정신이 막 혼미해지는게 자기가 꼭 꿈을 꾸는것 같았다.

로파는 온밤 먼길을 걸어온 피곤도 잊은듯 집에 도착하자 부엌과 잇달린 개성지방 특유의 지하창고로 증손녀를 데리고 들어가 몇년 묵은 고추장독을 치우게 하더니 그 자리를 파라고 하였다.

피곤같은것이 천리만리로 달아나버린 처녀가 시키는대로 하자 유지로 싸고 또 싸 사과지함만 한 나무함 하나가 나왔다. 함은 옻칠을 하고 은자개를 박은 매우 희귀한 골동품이였다.

로파가 처녀의 손에서 함을 받아안고 호기있게 한마디 분부하였다.

《네 아비를 불러라!》

대를 못 이어놓은 자식이라고 말끝마다 욕설이더니 왜서 이날에 그 불효손자를 찾는것일가. 더우기 집안의 가보인듯 한 함을 가슴에 안고… 혹시 이 함을 아버지에게 넘겨주려는것일가.

처녀는 최면술에 걸린것 같았다.

하지만 처녀는 아버지를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되였다. 이 모든것을 지켜보고있은듯이 아버지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 그들앞으로 나타났던것이다.

《거기 가셨댔지요, 할머니? 오늘 소식을 듣고…》

순간 처녀는 자기 가문이 안고있는 크나큰 비밀을 유독 자기만 모르고있었다는 사실앞에 영문모를 울음을 터뜨렸다.

증조할머니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자, 어서 올라가자.》

방안으로 올라온 로파는 당장 수령님께 편지를 올리라고 머리가 허옇게 된 손자를 다그었다. 로파와 손자 그리고 증손녀는 그날 밤을 꼬박 밝히였다.

그러나 이밤을 지샌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였다.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시당과 시인민위원회, 설계사업소와 문화유적관리소를 비롯한 시안의 많은 기관 일군들도 왕건릉개건과 관련한 설계도를 짜며 잠 못 들었고 시민들은 자기네 고장을 찾아주신 수령님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새날을 맞았다.

이해는 김일성동지께서 탄생 80돐을 맞으시는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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