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26회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조선소설 <대박산마루> 제 26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180회 작성일 15-12-25 01:53

본문

37

 

마지막으로 집을 나가던 날 박진규는 이렇게 말하였다.

《례영아, 신지성이 있는 비류강 건너편 룡산리가 마음에 짚인다. 강의과제가 끝나면 너도 따라나오너라.》

신지성이 있는 룡산리의 룡산이란 룡이 누워있는 모양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 나라에 룡산이라고 이름이 붙은 지명이 많다. 현재 평양만 봐도 만경대구역의 룡산리, 력포구역의 룡산리를 들수 있다.

이 고장들은 풍수로 보면 매우 잘생긴 고장들로서 예로부터 조상들이 터를 잡고 살아오면서 큰 마을과 도읍을 형성하였다. 룡산리를 안고 흐르는 비류강은 벼랑이라는 이름이 변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 단군의 후손들이 세운 비류국이 세운 비류국이 있었다는 말도 전해지고있다. 신지성은 고조선의 관리(혹은 왕)와 관련되여 붙은 이름이다.

아무튼 이 고장에 유골이 존재할수 있는 큰 무덤이 있었다. 그러한 조짐으로 이곳에는 류달리 큰 고인돌무덤이 많았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자 례영은 즉시 비류강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군대에서 돌아온 진웅이가 먼저 가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곳에 진웅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것인가? 그렇더래도 갔을것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어이 5천년전 유골을 찾으려는 열망으로 온몸이 불타고있었던것이다.

물론 진웅을 만난다는것은 죽기보다 괴로운 일이였다. 무슨 렴치로 그의 얼굴을 마주 본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수치로 몸이 화끈해진다.

아버지의 장례기간 당중앙위원회에서 내려온 일군이 진웅에 대한 말을 비쳤을 때 례영은 당조직에서 자기의 일신상의 문제까지 다 알고있으며 구체적인 관심을 돌리고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격동되여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자기에게 있어서 진웅은 더는 바라볼수 었는 존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몸부림치며 울었다.

보석을 잃었다고 하셨다던 수령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났다. 나야말로 얼마나 경망하고 가련한 녀자인가!

그가 내던진 보석은 저 하늘 높이에서 더욱 밝고 빛나는 빛을 뿌리고있다. 눈이 부시여 차마 바라볼수 없는 보석… 진웅! 진웅오빠…

노랑나비에 홀려 수정천에 뛰여들었던 철부지소녀에게 하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다시는 물에 빠지지 말라, 그땐 건져주지 않을테야.…

례영은 쓰라린 눈물을 삼키면서도 길을 떠났다.

길을 줄이느라고 아버지가 했던것처럼 벼랑을 내려 강기슭에 이르렀다. 캄캄해진 때였다. 강건너에서 불빛이 빤했다. 다리로 건너가자니 상류로 10리 올라가야 했다.

례영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강물에 들어섰다. 두렵지 않았다. 찬 강물이 차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허리에 차오르는 강물이 깊어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가 가려고 했던 길인것으로 하여 례영의 마음은 굳세여졌다. 비상한 각오와 정신적앙양속에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는데도 그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강물이 가슴까지 차오르자 그는 헤염을 치기 시작했다. 강건너 불빛은 아직도 멀리에 있었다. 그는 맥이 진했다.

인생이란 참으로 기이하였다. 그는 물에 빠졌다. 길지 않은 인생에 세번째로 빠지는 물이였다.

《사람… 살려… 줘요.―》

례영이가 의식을 차렸을 때 처음 눈에 뜨인것은 뿌연 전등이였다.

그러자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에서 깨여난 사람처럼 인차 정신이 맑아졌다.

조심스레 사위를 둘러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운것은 회칠한 벽에 걸려있는 추가 주렁주렁 드리운 투망이였다. 그옆에는 번개표식이 그려져있는 스위치함, 자그마한 뙤창이 달린 벽에 허름한 작업복과 농립모가 걸려있었다. 례영은 몸을 반쯤 일으키다가 저쪽 한구석에 커다란 전동기가 놓인것을 보고야 비로소 여기가 어딘지 짐작이 갔다. 그는 휘청거리는 몸을 끌고 간신히 밖으로 나왔다.

얼마 떨어진 곳에 웬 사나이가 잔등을 돌려대고 모닥불앞에 앉아있었다.

몇걸음 다가서던 례영은 그가 자기의 젖은 신발을 말리고있는것을 보고는 멈춰섰다. 그리고는 더 다가가지 못하였다.

아,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듣지도 못하는 목석이 되여지라! 눈앞에는 보석이 빛을 뿌리고있었다. 진웅, 진웅오빠가…

한참 정신이 아찔하여 서있던 그는 다시 집안으로 뛰여들었다. 그 집은 강기슭에 있는 양수장의 휴계실이였다.

처녀는 진웅이 말린 신발을 들여다놓고 나가는것을 보지 못했다. 기척을 느끼지도 못했다. 모포를 뒤집어쓴채 꼼짝 않고있었다. 그러나 처녀는 마음속의 눈으로 모든것을 보고있었다.

진웅은 모닥불도 사그라지고 기대일데도 앉을데도 없는 텅 빈 밭한가운데 서있으리라, 서서 밤을 지새우리라, 추위에 떨고있으리라.

이때 처녀는 자기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의식하였다.

진웅이를 품에 안아 따뜻이 녹여줄수만 있다면 아니, 그의 널다란 품에 안겨 용서를 빌수만 있다면…

무엇을 용서빌어야 하는가. 처녀의 귀가에는 진웅이가 자기의 뺨을 때리면서 뱉은 소리가 쟁쟁히 울리고있었다.

《이 너절한!…》

돈앞에 미혹되였던 자기였다. 거기에 그 어떤 명예와 보수도 바람이 없이 한생 당의 요구에 자신의 발걸음과 숨결을 따라세우며 묵묵히 심혈을 바쳐오는 깨끗한 이 나라의 공민들에 대한 모욕이 있었던것이다.

《들어가도 좋소?》

문밖에서 진웅의 소리가 울렸다.

잊을수 없는 다정한 목소리, 오래간만에 듣는 그 목소리, 허지만 대답할수 없는 처지이고 그를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것이다.

례영은 아버지의 장례때 당중앙위원회 일군으로부터 진웅의 마음이 풀렸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래서 지금 더구나 배수진을 치는것이다.

《…》

《들어가도 좋소?》

재차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찌그덕 하고 양수장 휴계실의 널문이 열리더니 진웅이 들어섰다.

이때 처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도사리듯 앉아있었다.

《그새 잘 있었소?》

《…》

《이런 인사불성이라구야, 왜 대답이 없소?》

진웅이 처녀의 곁에 앉는데 처녀는 벌떡 일어섰다.

《안돼요!》

그 소리가 하도 단호해서 진웅은 우뚝 굳어졌다.

처녀가 선자리에서 말했다.

《우린 가까이 해선 안될 사이잖나요, 미안해요.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세요, 전 나가겠어요.》

《동무를 오해했댔소, 용서하오!》

진웅이 정색해서 말했다.

《집에 갔댔소. 함께 떠나자구… 어머니가 다 이야기해주었소. 먼저 떠났다고 하기에 뒤따라 오던 길이요.》

그러자 처녀의 언제나와도 같은 검고 큰 눈에 그렁하니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처녀는 눈물을 털어버리듯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오해하지 않았어요. 전 거기 발꿈치에도 못 갈 녀자였어요! 거기서 본대로 전 너절한 녀자가 옳았어요. 거기서 저를 정확히 보았어요!》

《례영이…》

《만일… 만일… 거기서 허락하신다면 전 오빠로는 따르겠어요, 평색토록… 이건 한번도 변해본적이 없는 저의 진심이예요!》

《뭐 오빠라구?!》

《그래요! 오빠예요. 그 이상은 아니예요. 오빠를 위해서, 오빠를 위해서! 그 이상은 안돼요!》

《례영이!》

《오빠처럼 훌륭한 사람한텐 응당 훌륭한 녀자가 곁에 있어야 해요. 이것도 저의 진심이예요!》

그 목소리가 얼마나 단호하고 견결했던지 진웅은 할 말을 잃고말았다. 그는 례영이가 이렇게 나오리라는것을 모르는것은 아니였다. 점도록 앉아있던 진웅은 덕대우에서 자기의 제대배낭을 내리워 거기서 쪽지편지 하나를 꺼내 례영이앞으로 밀어놓고 자리에서 잃어섰다.

찌그덕 문소리가 들렸다.

쪽지편지를 펼치는 례영의 손길이 가늘게 떨렸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있었다.

《례영동무, 나는 전사 진웅동무에게 동무를 용서해줄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제대명령을 받은 나의 대원에게 하는 나의 마지막명령입니다. 그가 옛상관의 명령을 수행할수 있도록 해주기바랍니다.

진웅동무의 중대장 상위 김인철》

아, 이 일을 어쩐담?

처녀의 두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날이 밝자 그들은 함께 일을 시작했다.

아무리 해도 한배를 타지 않으면 안될 운명인가.

양수장에서 바라보면 반정보가량의 그루가 남은 강냉이밭이 있었다. 진웅의 눈길을 끈것은 밭에 널려있는 고인돌무덤을 만드는데 흔히 쓰는 점판암 판석쪼각들이였다. 주변에 점판암지대가 없는데 강기슭의 이 뙈기밭에 널린 쪼각들은 어데서 굴러온것일가?

평평한 밭가운데 두두룩해진 곳이 있었다.

혹시 이곳이 박진규의 눈을 끈게 아닐가.

그는 지명학자이지 고고학자는 아니였다. 먼저 삽을 댈 생각이 불같았으나 그 어떤 예감으로 가슴이 후두둑 뛰기까지 한 그는 전문가의 손을 기다렸다.

이때 례영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그를 어찌 뿌리칠수 있으랴!

그들은 조심조심 삽을 놀렸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오전내내 쉬지도 않았다. 마음의 풍랑우에 배를 저어가고있는 그들은 쉬고 어쩌고 할 계제가 못되였다. 아니, 지금 그들의 온 넋은 그들이 파들어가고있는 땅속에 쏠리고있으면서 일손을 재촉하고있었다.

그들은 개인집 터밭만큼 부지를 잡고 겉흙을 몽땅 파냈다.

정오쯤 되였을 때 진웅의 삽날에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례영이가 그 소리를 가려듣고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흙을 파제끼기 시작했다. 잠시후에 널다란 판돌의 한 부분이 드러났다. 그것은 틀림없는 무덤의 뚜껑돌이였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동시에 피여오르는 환희, 그것은 밀물처럼 밀여오는것이여서 누구도 막아낼수 없는것이였다.

다음순간 진웅은 처녀를 밀어제치고 판돌주변을 더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판돌에 균렬이 가면서 짬이 생긴 부분이 드러났다. 두사람은 동시에 그 짬사이로 미궁과도 같은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런데서 유골이 나오지 않으면 어떤데서 유골이 나온단 말인가.

성공의 눈앞에 다가왔음을 의식하는 순간 두사람은 얼싸안았다.

그래서는 안될 사이일지라도 어떻단 말인가.

수령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두고, 민족의 경사를 두고 함께 울고 웃으며 기뻐하였다.

사랑이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얼음밑을 흐르는 샘물, 고열속에도 피는 꽃, 암야의 등불, 영원한 생명! 하여 진웅은 미친듯 한 기쁨속에서도 자기의 가슴속으로 밀고들어오는 례영의 존재를 의식하고있었다.

그를 누가 떠밀어보내고있는가?

《진웅동무, 언제 결혼식을 하겠소? 당에서 관심하는 문제라는걸 알아주길 바라오.》

바로 어제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우정 찾아와서 하던 말이다.

그는 뜨거운것을 삼켰다.

 

×

 

룡산리무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발굴사업이 진행되였다.

여기에는 가장 능력있는 발굴대원들이 참가하였으며 과학원의 권위있는 학자들이 현지에 나와 침식을 하면서 유적의 위치와 규모를 확정하였고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을 조사분석하여 협의를 거쳐 결론하였다.

현장에는 김석진원사는 물론 비판을 받고 새 출발을 한 한웅삼이도 나와있었다.

타자수들은 현지에 나와 과학협의회의 결론이 나오는 즉시 타자하였다.

시일이 급했다.

이해의 개천절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타자수들이 찍어낸 문건은 다음과 같았다.

 

…이 무덤의 11개 무덤칸에는 모두 사람의 뼈가 남아있다. 중심부 무덤칸에는 2개체분, 그밖의 무덤칸들에서는 각각 3~4개체분의 사람뼈가 나왔다. 그중에는 어린애의 뼈도 있었다.

이것만 가지고도 이 무덤에는 적어도 30여명의 노예가 순장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 무덤을 순장무덤이라고 보는 근거는 첫째로, 무덤의 짜임새가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보여주고있다는것.

둘째로, 작법상 중심무덤칸은 크지만 2개체분의 뼈가 나온데 비하여 둘레의 작은 무덤칸들은 3~4개체분의 사람뼈가 나왔다는것.

셋째로, 유물의 질적차이 즉 중심무덤칸에는 청동기가 들어있지만 둘레의 무덤칸에는 석기가 들어있는것을 들수 있다.

이 무덤에서 나온 사람뼈는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년대측정한 결과 기원전 30세기초경의것으로 확증되였다.

1960년대초에 조중발굴대에 의하여 료동반도연안에서 노예순장무덤인 강상무덤과 루상무덤이 발굴되였다. 바로 그 두 무덤이 그때까지 고조선이 노예소유자국가이고 그 중심이 료동에 있다는것을 유일무이하게 증명해주고있었다. 그러나 그 무덤들은 넉넉히 잡아서 기원전 1천 500년의것이였다.

이번에 비류강기슭인 평안남도 성천군 룡산리의 순장무덤은 보다싶이 기원전 3천년기의것으로서 료동의것보다 훨씬 앞선다.

이것이야말로 반만년전 평양지방에 노예소유자국가가 존재했으며 그 중심이 평양이였다는것을 부인할수 없는 사실로 증명해준다.…

 

이상의 자료들이 즉시 평양으로 모사전송되였다.

우리 민족사의 공백이 완전히 메꾸어졌다.

김석진원사는 저 멀리 박진규가 타고넘어오던 벼랑턱을 바라보며 새초들이 설렁이는 언덕을 천천히 걷고있었다.

(진규 이 사람아, 왜 며칠을 못 참고 간단 말인가. 이 가슴에 그렇게도 모질게 아픔을 주고싶었단 말인가.)

그의 앞에서 비류강의 푸른 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발길이 어디에 닿는지도 모르고 정처없이 발을 내짚었다. 그러던 그는 강기슭의 후미진 곳에서 나는 흐느낌소리에 문득 상념에서 깨여났다.

두 젊은이가 어깨를 기댄채 절벽을 굽이도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