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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아리랑> 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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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411회 작성일 16-01-1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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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새벽부터 구질거리며 내리던 비는 한낮이 되여서야 멎었다. 인차 하늘은 씻은듯이 파아랗게 들리였고 따뜻한 봄볕이 아낌없이 쏟아져내리며 눅눅한 대기를 가셔내기 시작했다.

련이틀에 걸쳐 도안의 주요 공장, 기업소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토지정리전투가 마감고비에 이른 도의 어느 한 협동농장을 찾으시였다. 영접나온 도안의 책임일군들과 농장의 관리일군들, 토지정리전투에 참가하고있는 박철건부대장을 비롯한 인민군군부대 지휘관들과 인사를 나누신 그이께서는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나지막한 둔덕에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오르시였다.

곧 그이의 시야에 눈뿌리 아득하게 펼쳐진 드넓은 전야가 비껴왔다.

《대단하오, 아주 대단해.》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에 두손을 얹으시며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한데 저긴 왜 저렇소?》

그이께서는 전야의 북쪽 한귀퉁이를 가리키며 물으시였다. 검스레한 그 귀퉁이가 금방 모내기를 하여 연푸른 주단을 깔아놓은듯 한 전야의 매력에 흠처럼 보이시였던것이다. 얼굴이 감시레하고 키가 자그마한 협동농장의 녀성관리위원장이 한발 나섰다.

《이번에 토지정리를 하면서 찾아낸 새땅입니다. 지력이 낮아서 흙깔이를 다시 하다나니 좀 늦었습니다. 이제 며칠내로 거기에도 모내기를 하게 됩니다.》

《음- 그래, 얻어낸 새땅은 얼마나 되오?》

녀성관리위원장의 대답을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옆으로 몸을 돌려 토지정리사업을 총책임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손짓하시였다.

《이 농장이 이 정도인데 도적으로 보면 어지간하겠소?》

《그렇습니다. 도적으로 합하면 토지정리를 하여 얻은 새땅이 4천여정보입니다.》

《4천여정보, 산간지대 한개 군의 부침땅을 공짜로 얻은것이나 같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수긍하시며 일군들쪽으로 돌아서시였다.

《내 언젠가 수령님을 모시고 이 농장에 왔던적이 있습니다. 그때 여긴 온통 올망졸망한 뙈기논들만 있었는데 이상한건 논배미나 논뚝의 생김새가 하나같이 다르더란 말이요. 농민들보고 물어봤더니 그들이 하는 말이 해방전에 이 벌을 28명인가 되는 지주들이 차지하고있었는데 서로마끔 땅도적질을 세게 했다고 하오. 땅을 도적질하고는 잃어먹을가봐 겨끔내기로 류다른 표적을 해놓았다던지. 그 통에 여기 논들이 모두 이런 꼴이 되였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 이 뙈기논을 두고 심려하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재작년에 여기 왔을 때 동무들이 도의 토지정리총계획도를 설명하는걸 들으며 보니 논두렁이 거미줄같기도 하고 뇌수의 주름살같기도 한게 여전하더란 말이요. 그랬던 이곳이 때벗이를 쭉 했습니다.

수령님께서 오늘 사회주의대옥토로 전변된 이 전야를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소, 우리 수령님께서 보시면 말이요.》

무척 절절하신 그이의 교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힘있는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바로 이런걸 보고 천지개벽이라고 합니다. 해방전 잔재가 남아있던 이 벌이 오늘에야 비로소 로동당시대의 농토답게 달라졌소. 아마 지주들이 토지문서장을 들구와서 아무리 눈을 밝혀도 제땅이 어디에 가붙었는지 찾을 엄두조차 못 낼거요.》

계속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자리에서 일군들에게 현재 하고있는 황해남도토지정리전투정형을 알아보고나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다음 대형속보판들이 량옆으로 쭉 늘어선 전망대 앞도로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거 마치도 하나의 거리같구만.》

그이께서는 농장마을어귀까지 길게 늘어선 형형색색의 대형속보판을 가리키시였다.

《돌격대원들이랑 우리 병사들이 이 길로 해서 전투장으로 나가군 하오?》

《예, 그렇습니다.》

현장지휘부의 한 책임일군이 대답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좌우의 속보판내용들을 주의깊게 보시였다. 거기에는 박철건의 부대장병들의 투쟁위훈을 소개한것들이 많았다.

《이거 뭐 철건이네만 일하는것 같구만. 온통 박철건의 부대에 대한거요. 참, 철건이 아직 총각인가?》

한 속보판앞에서 걸음을 멈추신 그이께서는 뒤켠에 서있는 박철건에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총각부대장과 처녀지배인》이라는 제목을 단 그 속보판에는 군민일치사업에서 그들이 발휘한 소행이 씌여져있었다.

철건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의문을 표시하시였다.

《왜 아직 장가갈념을 안하고있소. 눈에 드는 처녀가 없는가?》

《아닙니다.》

《그럼?》

한순간 박철건은 대답을 못 드리고 우물쭈물했다. 그 거동이 하도 민망스럽게 보였던지 곁에 있던 정치위원이 입을 열려는데 박철건이 그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며 제지시키는것이 눈에 띄우시였다.

《인차 장가를 가겠습니다.》

《음, 봐둔 처녀는 있는거구만. 나이두 적지 않은데 철건이, 혼기를 놓치지 말고 빨리 마련을 보라구.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는 체험을 해봐야 부대장병들을 더 잘 돌봐줄수 있소. 알겠나?》

《알았습니다. 올해중에 꼭 가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속보판에 시선을 돌리시였다. 말씀없이 소개 내용들을 훑어보며 걸으시던 그이께서는 대문짝같이 유난히 크고 높은 속보판앞에 멈춰서시였다. 다른 속보판내용들처럼 위훈이나 미담이 아니라 짤막짤막한 시들이 적혀있고 그밑에 돌격대 명예대원 리강이라고 쓴것이 류달리 눈길을 끄시였던것이다.

《올해 여섯살나는 유치원 어린이인데 아버지는 토지건설사업소 돌격대에서 불도젤운전수로 일하다가 작년여름장마때 떠내려가는 불도젤을 구원하고 현장에서 그만 잘못되였습니다. 그런 담부터 어린것이 아버지를 대신한다면서 이렇게 시도 지어보내고 위문편지도 써보내면서 돌격대원들을 고무해주고있습니다.

현장지휘부에서는 그 애를 우리 돌격대의 명예대원으로 등록했습니다. 부모없이 일찍부터 외할머니손에서 자라서인지 애가 얼마나 조숙하고 어른스러운지 모릅니다. 지금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참가하느라고 평양에 가있습니다.》

현장지휘부의 례의 책임일군이 설명해드리였다.

《〈아리랑〉이라… 음, 어머니도 잃은거구만.》

《두해전에 중병을 앓다가 잘못되였다고 합니다.》

《돌격대에서는 그 애를 어떻게 돌봐주고있소?》

책임일군은 현장지휘부와 돌격대가 그간 어린것의 생활을 돌봐준 정형을 간단히 알려드리고 달포전에도 유치원의 자모들과 함께 지원물자를 마련해가지고 평양으로 올라가 애를 만나보고 왔다는것을 덧붙이였다. …

오후 한겻이 지나가서야 현지지도를 마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떠나기 아쉬운듯 드넓은 전야를 보고 또 보시였다.

《나는 이 며칠사이 도안의 공장, 기업소를 돌아보면서 우리 인민의 정신력이 얼마나 무한대한가, 그 정신력이 폭발할 때 얼마나 무서운 힘을 낳게 되는가를 다시한번 절감하게 되였습니다. 여기 이 협동농장에서 일어난 천지개벽을 놓고도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당과 수령에 대한 무한한 신뢰, 승리를 믿는 드놀지 않는 의지, 이것은 오늘 우리 인민의 투쟁의 좌우명, 생활의 좌우명으로 되고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우리는 새 세기에 기어이 이 땅우에 강성국가를 소리치며 일떠세울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현장책임일군에게 물으시였다.

《여기에 시인들이랑 예술인들, 창작가들이랑 더러 오군 하오?》

《많이 옵니다. 토지정리전투에 참가하고있는 우리 인민군장병들과 돌격대원들은 그들의 경제선동과 예술공연을 통하여 큰 힘을 얻군 합니다. 정초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의 시인들이 왔다갔는데 후에 〈로동신문〉을 보니 이곳 협동농장의 전변을 노래한 피가 뛰는 좋은 시들이 실려있었습니다.》

《〈아리랑〉에선 누구들이 왔댔소?》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매일, 매 시각 변모되는 거창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 하며 그것을 대예술작품에 반영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아리랑》 창작가들, 그들이 여기에 와보지 않았다는 사실앞에 의문을 금할수가 없으시였다.

그날 저녁.

평양으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진우를 부르시려다가 그가 서울에 가있다는것을 알고는 차성규부부장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작품진행정형과 후방사업실태를 비롯한 《아리랑》전반사업을 료해하시였다.

차성규는 작품진척속도며 보장부서사업들이 힘들게 진행되고있다는것, 기본문제는 창작가들이 《아리랑》의 중점을 바로 쥐지 못하여 매 장과 경들이 좌왕우왕하고있는 실태를 솔직하게 보고드리였다.

《그러니까 현재 경기장에 들어와 종합훈련을 하는 장들은 하나도 없겠소?》

《얼마전에 교예장 〈행복의 락원〉이 비교적 준비가 되였기때문에 경기장에 기재를 설치하고 실동훈련을 했는데 그나마도 사고를 쳐서 중지했습니다. 그외에 하나도 없습니다.》

수화기에서는 사고가 일어난 경위를 설명하는 차성규의 어딘가 저어하는듯 한 목소리가 단조롭게 흘러나왔다. 그에게서 상했던 배우들이 완치되여 얼마후에 퇴원하게 된다는것을 확인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바꿔드시였다.

《창작가의 모험적인 주관주의, 나쁜 일기조건, 낡은 탄력바, 그밖의 문제점들, 이게 사고의 원인이라는거겠소. 콤퓨터모의시험을 통하여 확인된 한정수치와는 모순되는구만. 차동무, 한데 림진우동무가 사람들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왜 그 작품을 지지하는것 같습니까?》

《〈아리랑〉의 전반흐름에서 생기는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균형과 고저를 보장하는데는 현재 작품이 적중하기때문이라고 합니다.》

(순전히 실무적이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속으로 뇌이시였다.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실패한 일일수록 더욱 그렇소. 원인을 똑바로 찾아야 작품을 바로잡을수 있소.》

《끝까지 원인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제기되는것이 있으면 얘기하오.》

수화기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소리만이 들리였다. 제기할것은 분명히 있는데 어쩐지 주저되는 모양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드럽게 다시 재촉하시였다.

《사실 〈아리랑〉국가준비위원회는 작품창작문제를 제외하고도 출연자들의 출퇴근보장과 후방공급때문에 큰 애로를 겪고있습니다. 시내 주요로선뻐스사업소들과 지하철도, 궤도전차사업소들과 련계를 가지고 일부 차량들을 〈아리랑〉전용으로 돌려 출퇴근문제를 다소 풀었다고는 하지만 출연인원이 워낙 10만명 가까이 되는데다가 주변구역과 교외에 집을 둔 출연자들이 적지 않아 공연훈련에 지장을 받고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아이들 간식보장도 그래 후방공급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고충을 겪고있습니다. 이걸 풀어보려고 상무성원들이 뛰긴 하는데 원체 나라의 경제형편이 어려워서인지 소득이 별로 없습니다. 자체로 해결해보자고 해도 준비위원회는 후방물자원천지가 없는 비상설기구여서 그것두 방도가 묘연합니다.》

《그럴게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성규의 제기를 긍정해주시였다.

《동무생각엔 우리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소?》

《출퇴근문제는 시간을 아예 정해놓고 지하철도와 시내의 모든 로선을 통채로 〈아리랑〉이 리용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후방공급문제는 문화성이 조성해놓은 외화로 해결받을수 있게 돌려쓰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로선을 통채로 돌려쓰는 문제는 안되겠습니다. 시민들이 교통상 불편을 느낄수 있소. 이렇게 합시다. 내 운수기동려단을 보내주겠으니 그걸로 출연자들의 출퇴근을 보장하도록 하오. 자금문제는 동무의 제기대로 풀어주겠습니다. 거기에 밀가루가공공장에 있는 추가생산분을 덧붙이면 후방공급문제는 대체로 풀릴거요.

우리 꼬마들에게 뭘 좀더 줄것이 없던가. 아, 그렇군. 거 금수산기념궁전(당시)정원에 심은 포도랑 수박, 복숭아 같은 과일들의 수확량이 적지 않을거요. 거기서 나오는 과일들을 우리 〈아리랑〉꼬마들에게도 먹이는게 좋겠구만.》

《장군님, 고맙습니다.》

《수령님께서 생전에 아이들을 그리도 사랑하셨는데 자신께서 가꾼 정원의 과일이 〈아리랑〉어린이들에게도 간다는것을 아시면 아마 기뻐하실거요.

동무가 제기한 문제는 이쯤하면 기본적으로 해결된셈이고.》

김정일동지께서는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요즘 〈아리랑〉 창작가들이 현실에 더러 나가보군 합니까?》

《아동장과 교예장창작가들을 내놓고는 나가보지 못하고있습니다. 대본의 중점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형편에 현실침투를 요구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탁상공론들만 하고 앉아있었구만. 잘못되였소. 지금이 어느땐데 책상머리에서 짜낼내기만 한단 말이요. 차동문 혹시 당권을 가지고 창작실무에 간섭한다는 소리를 들을가봐 창작정형에 신경을 덜 쓰는게 아니요?》

《…》

《그래서는 안됩니다. 물론 창작행정에 감 내놓아라, 배 내놓아라고 하면 안되지만 동무는 〈아리랑〉을 맡은 당책임일군으로서 그들이 당의 의도대로 작품을 만들수 있도록 키를 정확히 잡아주고 들끓는 현실을 항상 잊지 않도록 요구하며 현지에 나가면 창작가들이 체험을 잘하도록 조건을 충분히 보장해주고. 바로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소.

나는 오늘 낮에 토지정리전투장에 나갔다가 다른 기관의 창작가, 예술인들은 현지에 다녀갔는데 유독 〈아리랑〉에서만 나와보지 않았다는것을 알고서는 그들이 현실을 모르면서 무슨 작품을 쓸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리랑〉의 중점을 세우는것은 힘들지 않소. 지난날 지지리도 멸시만 받아오던 우리 민족이 오늘은 어떻게 되여 자주적이고 강위력한 민족으로 세계의 무대에 당당하게 등장하였는가를 예술적으로 해명하면 되는것입니다. 그럼 소재들, 형상화폭들은 어디에 있는가. 현실에 있습니다. 나는 창작가들이 아직도 좌왕우왕하는 기본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다고 봅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탁상창작을 추구하기때문이요. 그렇지 않소?》

《가책되는바가 큽니다. 제 사실 림진우동무에게만 방임해두고 크게 관심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대책을 세워 바로잡겠습니다.》

《림동무가 서울에서 돌아오면 내 말을 그대로 전하오. 그리고 그가 대본을 시급히 선행할수 있도록 곁에서 잘 도와주기 바랍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밖에도 대공연을 비롯한 문화성이 진행하고있는 사업정형을 알아보시고나서야 송수화기를 놓으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집무를 일단락 끝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텔레비죤을 켜고 보도를 청취하시였다. 보도내용을 주의깊게 들으시던 그이께서는 흩어진 북남가족친척상봉소식이 방영되자 문득 림진우가 생각키우시였다.

아니나다를가 인차 텔레비죤화면에 진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몇개의 화면이 지나가고 묘소장면이 집중적으로 비쳐졌다. 흰 상복을 입은 림진우는 비척이며 묘소앞에 다가가 끓어앉는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술을 부은 그는 잔을 놓더니 하염없는 눈길로 사진을 보다가 그만에야 오열을 터뜨리는것이였다.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제 이제야 엄마께 왔소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십니까. 반백년을 하루같이 손을 꼽아가며 아들을 기다리셨다는 어머니가 아닙니까. 해마다 생신날이 오면 저의 이름을 부르며 그냥 눈물만 흘리셨다는 어머니가 아니였습니까. 이제는 이 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에도 삭막하다 하셨다지요.

그 말씀을 전해들으니 가슴이 막 찢기는것만 같소이다. 저도 역시 헤여질 때 그리도 젊으셨던 어머니 고운 모습 어디 간지 없고 사진속의 낯설은 파파로인을 어머니로 여기자니 비통한 설음만 차오를뿐입니다.

어허허- 어머니!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야 하는것입니까. 우리 민족은 언제까지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합니까.》

70객의 머리 허연 로인이 사진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다가는 상돌이며 비석, 봉분을 어루쓸며 눈물을 쏟는 모습에 둘러선 사람들도, 지어 기자들까지도 촬영기를 내리고는 손수건을 눈에 가져가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을 에이는듯 한 아픔을 느끼시였다.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꺼내드시였다. 앓고있다더니 끝내 아들을 못 보고 가셨구만. 이럴줄 알았으면 해당부서에 임무를 줘서 따로 먼저 나가도록 해줬어야 하는건데. 못내 후회되시였다.

아! 분렬되여 어느덧 반세기, 기나긴 그 나날 저주로운 그것은 이 민족의 매 가정, 매 사람에게 얼마나 크나큰 불행을 들씌웠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운 비극을 가져다주었는가. …

화면은 련이어 바뀌였다. 숱한 사람들속에 에워싸인 림진우가 기자들에게 동창생들과 친구들, 소꿉시절동무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장면이 흘러가고있었다. 그이의 뇌리에는 얼핏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10여년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준비때 진우를 처음 만나시였던 자리에서 들으신 이야기였다. 옳다. 그때 진우는 1950년 가을에 북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이야기하다가 친구와 만삭이 된 안해를 버리고 남으로 달아난 한 인간을 두고 말하면서 의분에 차있었지. 혹시 저 사람들속에 친구라는 그 사람도 있을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시였다. 그이께서는 사색을 《아리랑》에로 돌리시였다.

민족의 수난사와 새 력사를 체험할대로 한 림진우, 그는 틀림없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민족의 가슴을 더웁게 적시는 좋은 작품으로 만들것이다.

그이께서는 림진우의 재능과 실력을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8

 

2001년 여름 어느날.

미국의 중서부를 련결하는 련방도로에는 주말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들과는 달리 록키산별장구역으로 들어가는 한대의 검은색 대형 《벤즈》가 있었다. 인차 국도를 벗어난 《벤즈》는 계곡과 구릉들사이로 우불구불 휘여돌아간 작은 도로를 한시간정도 달려 침엽수림속에 들어앉은 동방정교사원풍의 꽤 큼직한 독립가옥앞에 멎어섰다.

차문을 열고 내린 사람은 동양인치고는 드문 여섯자가까이 되는 장대한 체격을 가진 반백이 훨씬 넘은 늙은이였는데 까만 샤쯔에 흰 넥타이를 매고 같은 색갈의 바지를 받쳐입어서인지 단정하고 무게있는 기품이 엿보이고있었다. 그는 이전에 미국 시카고교향악단의 작곡가로, 피아노연주가로 명성을 떨치였던 재미동포음악가 전상음이였다.

잠간 서서 우중충한 산발이며 가파로운 계곡들을 무심히 휘둘러본 그는 곧 차문을 닫고 빠른 걸음씨로 집으로 들어갔다. 전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전상음은 교향악단과 작업시 신호를 주기 전에 그러하듯 방안 기물들을 엄격한 눈초리로 지켜보다가 얼굴앞에 쳐든 두손으로 허공을 날카롭게 휘저었다. 입가에서는 브람스의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그는 오늘 기분이 몹시 좋았다. 미국의 동포사회계에서 유력자로 알려진 아이오와주의 한 음악애호가로부터 자연스러운 기회를 마련하여 북부조국을 방문할수 있도록 힘을 써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던것이다.

꼭 가보고싶었던 땅이였다. 그 소원을 성취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였던 그였다. 그런데 드디여 만단시름이 풀리게 되였다. 윤이상씨와도 련계가 깊고 북에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라고 하니 소문없이 조용히 다녀올수 있도록 틀림없이 약속을 지킬것이다. 미소가 저절로 피여오른다.

전상음은 텔레비죤을 켜고 그앞에 마주앉았다. 화면에는 최근의 불안정한 지역정세문제들, 로씨야의 체츠냐며 팔레스티나의 가자지역,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정세들이 방송원의 해설과 함께 현지촬영장면들로 방영되고있었다.

흥심없이 얼핏얼핏 텔레비죤을 보며 커피를 타던 상음은 문득 손놀림을 멈추고 화면에 눈과 귀를 강구었다. 지역정세해설뒤끝에 조선의 북과 남에서 진행하고있는 흩어진 가족친척상봉상황이 방영되고있었는데 화면에 비쳐진 사람들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던것이다. 누굴가? 추억의 갈피를 빠르게 뒤번지며 애써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얼굴이 전상음이에게 준 충격은 너무도 컸다. 한동안 꼼짝 않고 과거를 더듬던 그는 마침내 그 이름을 찾아내고야말았다.

옳다. 틀림없는 그다. 전상음은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소꿉시절의 다정한 친구 림진우, 그러니 여적 살아있었단 말인가.

저으기 흥분하여 커피잔을 든채로 전실을 오락가락하던 그는 소탁자로 다가가 허둥거리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텔레비죤방송회사를 찾아 편집물의 출처를 확인해보니 서울에 주재하고있는 본 회사의 기자단이 보내준것을 편집한것이라고 한다. 편집물의 인터네트봉사를 주문한 상음은 대형콤퓨터를 켜고나서 후들거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고 발리돌을 찾았다. 약을 먹고나니 조금 진정되는듯싶었다.

곧 콤퓨터화면에 편집물이 현시되기 시작하였다. 편집물에는 년초부터 진행한 북과 남의 흩어진 가족친척상봉들이 수록되여있었는데 주문이 있어서 그런지 림진우의 상봉장면들이 그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었다. 친척들과 담소하는 진우, 어머니묘소앞에 엎드려 오열을 터뜨리는 림진우, 기자들속에 에워싸여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친구의 모습.

세월의 무정한 흐름도 친구의 모색이며 습관을 지워버리지 못하는것 같았다. 입귀를 처뜨리며 웃는거랑 격하면 손짓, 몸짓이 부산한 거동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옛 친구의 일거일동을 걸탐스레 들여다보던 전상음은 류다른 장면이 나타나자 안경을 고쳐쓰며 화면에 바투 웃몸을 기울이였다. 림진우가 친척들에게 무엇인가 정히 포장한 지함을 하나씩 나누어준다. 진우의 음성이 울려나왔다.

《이건 우리 장군님께서 너희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민족앞에 불초했던 지난 일을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우리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국통일성업에 진심을 다 바쳐야 한다. 우리 다같이 김정일장군님께 인사를 올리자.》

옷깃을 여미며 몸을 일으키는 림진우를 따라 친척들이 우르르 일어선다. 하나같이 불그레하니 상기된 얼굴들, 눈에 어려있는 감격과 행복감. 모두 두손을 높이 들며 《김정일국방위원장님 만세!》를 웨친다.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시라니, 그분이라면 미국과 서방이 인정하는 세계적인물이신데 그럼 진우 이 사람이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총애를 받는 측근신하란 말인가. 대단해졌군.

전상음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화면은 계속 흘러갔다. 차츰 마음이 무르녹으며 코끝이 매워났고 눈앞이 어룽어룽 흐려왔다. 맨나중에 림진우는 친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고향하늘》을 불렀는데 입속으로 따라부르던 상음은 그만에야 끝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가슴이 터질것 같은 북받치는 그리움, 오래간만에 마음속에 깃드는 부드러운 훈향. 이 고결한 감정이 상음이로 하여금 자기를 지탱할수 없게 한것이였다.

두손에 얼굴을 묻고 한참이나 그러고있던 전상음은 비척거리며 피아노가 있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는 건반에 두손을 얹고 마음을 진정했다가 선률을 타며 나직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푸른 산 저너머로 멀리 보이는

새파란 고향하늘 그리운 하늘

언제나 고향집이 그리울제면

저 산너머 하늘만 바라봅니다

 

뇌리속에 떠오르는 옛시절의 추억, 추억들. 물지게를 메고다니던 날들, 달밤, 진창길, 범벅밥덩이들, 땀내가 폭 배인 포대기냄새, 생일날 진애에게서 꽃을 받던 일. 그게 무슨 꽃이였던가. 홍장미? 아니야, 앵초다발속의 카네숀이였어. 진애! 림진애!

사랑했던 처녀, 사랑했던 안해의 이름을 되뇌이며 전상음은 벽에 걸린 진애의 초상화를 올려다보았다. 학생복차림을 한 림진애는 옛시절의 이쁘고 착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수태를 머금은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고있었다. 그때 높아가는 나의 수강료를 대지 못해 안타까와하다가 자기의 피를 판적도 있었지. 그 일이 연고로 돼서 우리들사이에는 애정이 싹텄고.

상음씨, 진애는 영원히 당신 인생의 성실한 조률사가 되여주겠어요. 사랑의 언약이 담긴 격렬한 포옹끝에 림진애가 한 이 말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애틋하고 아릿한 옛시절의 추억은 구름송이처럼 계속 피여오르고있었다. 오늘은 참으로 내 인생에서 기쁜 일만 생기는 날인가부다.

피아노뚜껑을 덮은 전상음은 휘파람으로 례의 곡을 불어대였다. 이런, 브람스가 다 뭔가. 푸른 하늘, 그리운 하늘이지. 내심 혀를 찬 전상음은 곡목을 《고향하늘》로 바꾸었다.

아! 나의 다정한 벗들, 한시바삐 만나고싶구나. 결국 스무해전에 서울에 갔을 때 들은 소식, 그네들이 잘못되였다는건 거짓말이였단 말이지. 진애가 보고싶다. 그 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그때 몸에 품고있던 애기는 어떻게 되였을가. 아들일가, 딸일가.

편지를 쓰자. 그런데 이건 늦지 않는가. 인터네트망을 리용해볼가. 아니다, 유엔주재 북조선대표부에 문의해보는것이 더 빨라.

어찌나 과열된 기쁨에 떠있었던지 전상음은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도 까마득히 잊고 이것저것 펜이며 악보를 집었다놓으며 허둥거리기만 하였다. 조금 시간이 흘러서야 펀뜩 정신을 차린 상음은 손전화기를 꺼내 유엔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표부를 찾았다.

《아, 친구를요? 도와드립시다. 외무성에 의뢰해서라도 선생의 희망이 성취되도록 꼭 힘써드리겠습니다.》

사연을 들은 상대자는 그의 요청을 아주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이 성사되면 제 사례를 크게 하겠습니다.》

《이거야 인도주의문제인데 사례는 무슨 사례입니까. 더우기 지금이야 6. 15시대가 아닙니까. 조선사람이라면 이런 일에 응당 발벗고 나서는게 옳지요. 그럼 좀 물어도 괜찮을가요?》

《어서 그러십시오.》

친구의 이름과 집주소, 직업을 묻는 상대방에게 전상음은 될수록 짧고 정확하게 알려주려 하였으나 흥분하여 자주 틀리게 답변하군 했다.

《음, 그렇군요. 곧 알아보겠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만나서 나눴으면 좋겠는데… 래일 오후쯤 여기로 와주실수 있겠습니까?》

《그야 어련하겠습니까. 갑지요.》

《아참, 한가지 잊었는데 선생, 오늘중으로 조회를 해보자면 당장 자그마한 정보라도 있어야 하겠는데 말입니다. 선생은 그 친지분들과 언제 어떻게 갈라지게 되였습니까?》

그 순간 전상음은 온몸을 휩쌌던 즐거움이 졸지에 사라지는감을 느꼈다. 그다음 들려오는 아츠러운 비행음, 폭음, 불기둥,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의 무리, 그속에서 들려오는 너털웃음과 함께 미해병대 소좌 커튼의 술에 취한 목소리.

미스터 상음 전, 당신 친구일행은 괴멸되고말았소. 오늘 아침 우리 헬기편대와 륙전대원들의 협격으로 말이요. 몇이나 살아남았겠는지. 산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종당에는 저절로 사멸되고말거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들은 바보요. 예술보다 리념에 대한 광열적인 미련때문에 제손으로 제 눈을 찔렀거던.

자, 아메리카의 신화를 위하여, 영웅 맥아더장군을 위하여 듭시다.

아!- 불시에 전상음은 내장이 통채로 쏟아져나오는것 같은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전실바닥에 주저앉았다. 놀란듯 한 목소리가 손전화기에서 계속 울려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선생, 말씀하십시오, 예?》

《미안합니다. 제 좀… 제 좀 있다가 다시.》

전상음은 지꿎게 캐여묻는 상대방에게 량해를 구하고는 서둘러 손전화기를 꺼버리였다.

전실에는 잠시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록키산줄기를 넘어오는 해풍과 골짜기기류가 합쳐 수림을 가락맞게 뒤흔드는 바람소리만 들릴뿐이였다.

이맘때면 늘 부는 바람소리, 일명 피서객들이 《룰라비(자장가)》라 부르는 유정하고 아늑한 바람소리였건만 그러나 지금 이 시각 그것은 량심이 눈을 뜬 그날부터 오늘까지 심신을 괴롭히던 그 목소리처럼 들리는것이였다. 너는 그때 어째서 북행길에 오를 결심을 하였는가. 그랬던 그 결심을 너는 무슨 리유로 포기해버렸는가.

이따금 전상음은 과거를 돌이켜볼 때마다 1950년 가을 미군비행대의 폭격이 있었던 그날이 없었더라면 자기의 인생이 바르게 흘러갈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전상음은 매번 도리머리를 젓군 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 만약 그날이 없었더라도 그때 너의 성정과 사고는 기어코 바른 인생길을 역행하였을것이라는 량심의 목소리에 떠밀려서였다.

전상음은 비척거리며 일어나 전실 한벽면을 거의다 차지하고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의 뇌리속에는 반세기전 가을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 선명하게 떠오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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