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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아리랑> 17-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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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043회 작성일 16-01-1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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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영아의 로할머니 렴배복은 요즘 사는 재미가 있어 기분이 좋았다. 증손녀의 하정을 안 다음부터 어린것이 마냥 돋보였고 증손자인 영수도 근간에 들어서서는 아주 의젓하고 바른 언행만 해서 그저 쓸어주고 엉뎅이를 두드려주고싶다.

이전에야 어디 그랬는가. 서해찹쌀로 지은것이라며 끼마다 들여오는 기름진 밥도 목구멍이 깔깔해서 넘어가지 않았고 아침저녁으로 나들면서 아픈데는 없는가고 걱정해주는 의사인 둘째며느리의 지극한 보살핌도 귀찮았으며 바람을 쏘이러 동네마실을 다녀보면 대상이 되는 늙은이가 없어 적적하였다. 증손자, 증손녀애들을 데리고 거리구경을 나갈라치면 로할머니에게 부담을 끼친다며 애들을 떼버리고 승용차를 갖다대는가 하면 손이 근질거려 애들 바지라도 한개 빨아놓은 날이면 온 집안의 녀자들이 달라붙어 애엄마가 게으르다고 입을 모아 두들기군 했다.

대가정의 좌상을 편안히 모시려는 자식들의 애바른 진정은 십분 리해가 되였다. 하지만 한뉘 육신을 놀리며 로동으로 살아온 렴할머니여서 이러루한 일들은 어쨌든 불편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국가과학원 부원장을 하는 맏이를 원망하군 했다.

《인생은 아홉고개를 넘기는것이 중요하느니라. 이제는 할머니의 년세가 아흔고개에 바투 다가서고있으니 너희들은 오늘부터.》 라고 정초 렴배복의 여든일곱돐생일을 치르고난 날 저녁에 머리 큰 집안식구들을 모아놓고 맏이가 일장훈시를 하였기때문이였다.

배복할머니는 갑자기 편안해진 이 생활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흔살이 가까와온다고 하지만 오륙이 성성하고 일하고싶은 의욕이 차넘치는데야 뭘하러 자식들이 고여주는 밥이나 축내며 앉아있겠는가.

마침내 할머니는 좌상의 권한으로 대가정의 법과 같은 맏이의 일장 훈시를 무효화해버리였다.

《래일부터 애들의 집을 차례로 돌련다. 바람도 쏘일겸 일은 바루들 하고있는가, 집이랑은 깨끗이 꾸리고 사는가 어디 보자꾸나.》

물론 대경실색한 맏이가 로년기의 건강료법을 내들며 완강히 반대했지만 할머니가 하루이틀에 먹은 결심이 아니라는것을 깨닫자 물러나고야말았다. 허나 맏이는 내속으로는 평양시와 주변구역에 널려사는 일가친척들에게 할머니가 그러해도 일장훈시는 여전히 엄하게 준수해야 한다는것을 단단히 오금박았다.

《이 녀석이 〈사발통문〉을 돌렸나?》

배복할머니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가는 집마다 일감이 없었고 있다 해도 잡지 못하게 했을뿐더러 극진한 환대며 관심에서 오는 구속감은 맏이네 집과 조금치도 차이나지 않았던것이다.

《이제야 편히 살겠군.》

북새거리에 있는 영아네 집에 도착한 할머니는 하루밤 지내며 동정을 보고나서 무릎을 쳤다. 이 집은 애들이 셋씩이나 되는데 애들의 어머니인 손자며느리는 근처의 소학교 분과장사업을 해서 늘 바쁘다나니 손이 갈데가 많았다.

배복할머니는 빨래감이 가득 들어있는 버치에 다가앉아 팔소매를 썩썩 걷어붙이며 중얼거렸다.

《녀석의 〈사발통문〉이 여기엔 통할리가 만무하지.》

사실 그랬다. 애들의 아버지는 큰할아버지의 엄한 분부를 재차 받은 그날 공교롭게도 출장을 떠나는 바람에 안해에게 미처 알려주지 못하였다.

드디여 할머니는 집안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게 되였다. 하고싶어 손을 붙이는 일은 아무리 해도 힘들지 않은 법이다. 렴배복할머니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한생을 로동으로 늙어왔고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그에게 있어서 집거둠질이며 애들 뒤치닥거리는 일종의 쾌락이나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대체로 며칠 건너 한번씩 5월1일경기장에 들어가군 했다. 더운 국이나 강냉이알펑펑이가 든 폴리마대를 가지고가는데 아이들의 훈련이라든가 아니면 관람석에 올라가 종합훈련을 보고나서야 돌아서군 했다.

이날은 여느날과 달리 일요일이여서 렴배복할머니는 일가를 모두 거느리고 5월1일경기장을 찾았다. 가지고간 올감자로 영아네들에게 국을 푸짐하게 끓여주고난 배복할머니는 훈련을 보려고 한켠자리에 틀고앉았다.

영아네들은 늘 그러하듯 교원이 두드리는 장고리듬에 맞춰 몸풀이를 한 다음 록음기음악을 켜놓고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비록 해볕에 타서 가밋가밋하나 하나같이 미출한 몸매에 볼록볼록한 볼을 가진 아이들, 그 어느 얼굴에도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수심이나 그늘같은것이 한점도 보이지 않는다.

렴배복할머니는 이따금 영아네 또래아이들을 보면 비명에 죽은 두자식을 생각하군 한다. 해가 바뀌면 마음속으로 나이를 꼭꼭 세여놓군 하는것이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의 애달픈 심정이니 왜 그러지 않겠는가.

할머니의 맏아들은 엄마를 기다리다가 너무도 배가 고파서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마당에 세워놓은 물독에 들어갔다가 거꾸로 박힌채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되여 죽었다. 딸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볼우물이 옴폭옴폭 진 귀여운 일곱살잡이 그 애는 릉라도를 휩쓴 장마가 빼앗아갔다. 딸애를 잃고 온통 새하얗게, 휘뿌옇게만 보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배복할머니는 가슴을 쥐여뜯다가 자식을 따라가버리려고 강물에 뛰여들 독심을 먹기까지 하였다. 세번째자식의 해산을 앞두고 누워있는 렴할머니를 찾아와 일은 안하고 명이 밭은 비렁뱅이자식들이나 가득 싸지르겠으면 당장 나가라고 쟁당거리던 일본놈마름의 몰풍사나운 목소리도 귀에 쟁쟁하다.

한데 이 애들은 정말 좋은 세월에서 자라거던. 그랬던 할머니는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쯧쯔, 어디 이 애들뿐인가. 애들의 부모들은 또 어떻구. 멀리 사람들은 밀어놓고 우리 애들만 봐도 그렇지. 국가과학원 부원장을 하는 맏이네 자식들도 그래, 중앙녀맹에서 과장을 한다는 맏딸네 자식들도 같고 내각부부장사업을 보는 막내네 애들두 다를바 없는것이다. 우리가 살 때야 어디 그랬는가. 할머니는 중얼거리였다. 그래노니 자기가 살아온 옛일이며 형제들의 운명이 자연히 떠오르며 자식들과 비교해보게 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저기 함경도의 경흥군 하면이라는 고장에서 태를 묻고 자란 배복할머니네 6형제는 누구라 할것없이 기구한 운명에 시달리며 곡절많은 인생길을 걸어왔다. 3살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읜 렴할머니네는 인차 아버지도 잃게 되였다. 일제의 《토지조사령》으로 하루밤새에 땅을 떼운 아버지가 일본관리와 대들이판으로 싸운것이 빌미가 되여 감옥에 끌려가 모진 닥달질을 받았는데 어찌나 험하게 매를 맞았는지 집에 돌아와 한달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의지가지할데가 없어진 배복할머니네는 의논끝에 살길을 찾으려면 고향을 떠야 한다고 결심했다. 다음날 맏오빠는 막내오빠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로씨야로 떠났다. 강을 건너 조선사람동네를 찾아가던 맏오빠네 일행은 밤중에 로씨야국경수비대의 불의의 단속을 당하자 뿔뿔이 흩어지게 되였다. 동생을 찾으며 부근을 헤매던 맏오빠는 그가 집으로 갔다는 뜬소문을 그대로 믿고 강을 도로 건너 고향에 찾아갔다고 한다. (후에 알게 되였지만 그때 막내오빠는 국경수비대에 잡혀 씨비리감옥에 끌려가있었다고 한다. 10월혁명이후 오빠는 그 고장에 그대로 눌러앉아 신생로씨야를 위해 복무하였다. 그랬건만 1930년대말에는 중앙아시아의 까자흐스딴으로 가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러나 고향에서는 동생은커녕 남아있던 4형제마저 평양에서 산다는 먼 친척을 찾아 류랑의 길을 떠나가버리고 차압딱지가 붙어있는 초가삼간만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동생들을 찾아 길을 떠나려 했던 맏오빠는 어쨌든 애들의 목적지는 평양에 사는 친척네 집이 분명하니 이왕지사 돈이라도 조금 벌어가지고 갈 작정으로 이번에는 압록강을 건너 일자리가 많다는 간도로 향했다.

한편 둘째오빠를 따라가는 배복할머니네 걸음도 결코 편안치 않았다. 등에 업은 피덩어리녀동생은 소화불량으로 내내 앓다가 로상에서 숨을 거두고 함흥역근방에 이르러 로자돈을 마련하느라 서로 뛰여다니던중에 다섯살잡이 막내남동생이 행불되였다. 설상가상으로 평양에 도착하여 친척을 찾아가니 동리사람들이 말해주기를 한해전에 어디론지 솔가이주했다는것이였다. 오도가도 할데 없는 형제의 가긍한 정상이 하도 눈물겨워 동리사람들이 나서서 그들의 직업을 알선해주었다. 둘째오빠는 사창나루터에서 짐군으로 일하게 되였으며 렴배복할머니는 일본지주의 소유물이였던 릉라도의 락화생밭을 가꾸는 일군으로 고영되였다.

오누이는 피땀을 짜내며 일했다. 그들에게는 뿔뿔이 헤쳐진 형제들이 언젠가는 돌아올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억척같이 일하느라면 보금자리를 펼 허름한 집이라도 반드시 생기리라는 미련이 있었다. 그리하여 몇해가 지나서 다행 그들오누이는 비록 토벽에 짚이영을 얹고 수수바자를 두른 두칸짜리 조촐한 집이나마 릉라도에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가질수 있게 되였고 더 좋게 되리라는 앞날을 기대하게 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 지나지 않았다. 한해, 두해가 지나가고 10년강산이 바뀌였으나 기다리던 형제대신 그들 오누이에게는 재난과 불행만이 련이어 들이닥치는것이였다.

내 팔자가 이리두 박복하단 말인가. 자식 둘을 잃고나서 배복할머니가 속으로 부르짖은 말이였다. 이것두 과연 내 운명이란 말인가. 둘째오빠와 남편이 한날한시에 징용에 걸려 머나먼 북해도로 끌려가게  되였을 때 하늘을 원망하며 그가 한 부르짖음이였다.

할머니는 살면서 남에게 눈 한번 흘긴적이 없었다. 부모님들은 복을 내내 지고다니라고 이름까지도 배복이라 지어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불행은 나를 지꿎게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것인가. 정녕 믿을수가 없었고 불행의 원인을 알수 없었다.

암, 그랬지. 그 시절의 나로서야 그걸 어찌 알수 있었을고. 렴배복할머니는 주의사람들이 볼가봐 안경을 고쳐쓰는척 하며 눈가장자리에 맺힌 물기를 닦아내였다. 이 애들의 아버지두 몰랐을거다. 우바리탄광에서 돌아오지 못한 둘째오빠도 몰랐을거구, 중앙아시아의 거치른 사막에서 무주고혼이 된 막내오빠도 그랬을거다. 반백년전에 함흥역근방에서 행불된 막내동생도 알수 없었을것이다. 이게 다 몹쓸 세상탓이였어. 망국민이라면 누구나 당하게 되는 인위적으로 강요된 운명의 필연이였구말구. 뒤집혀진 둥지의 알 성한것이 없듯이 나라를 빼앗긴 험한 세상에서 어느 가정, 어느 사람인들 편안히 살수 있었을텐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십니까?》

렴배복할머니는 언뜻 눈을 올리떴다. 영아네들처럼 얼굴이 탄 심혜영교양원이 할머니를 걱정스레 지켜본다.

《괜찮네. 한데 어째 그러나?》

《인차 종합훈련을 시작하는데 이젠 가셔도 될것 같애서 그럽니다.》

《그럼 종합훈련까지 마저 보구 가야지. 가는건 바쁘지 않네.》

배복할머니는 그릇등속을 들고 일어서는 일가의 녀인들을 제제시키며 경기장나들문쪽을 가리켰다.

곧 종합훈련이 시작되였다. 비록 《아리랑》이 완성되지 못하여 종합훈련은 전반부밖에 못하지만 렴배복할머니는 매번 볼 때마다 각이한 감정세계에 빠져들었다. 화면과 음악은 련이어 바뀌며 할머니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어느새 전반부관통훈련이 끝났다. 기분이 거뿐해나서 바닥출연자들이며 배경대를 대견스럽게 바라보던 렴배복할머니는 아뿔싸 하고 입밖으로 외마디소리를 냈다. 두루 주위를 휘둘러보던 배복할머니는 주석단쪽에서 걸어내려오는 배경대총지휘자를 띄여보고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흰 체육복차림이여서 볕에 탄 얼굴이 한결 검붉게 보이는 지휘자는 아는체를 하며 다가와 인사를 한다.

할머니는 다짜고짜 튕겨주었다.

《빠졌네. 분명히 빼뜨렸어.》

《뭘 말입니까?》

《그거 있지 않나. 배경대에 나오는 소백수골안허구 눈내리는 그림, 그리구 노래랑은 어째 없나, 응?》

《오, 〈2월은 봄입니다〉. 2장 2경, 이거 말입니까?》

《난 제목은 몰라. 하여간에 그걸 왜 안해? 얼마나 보기 좋게. 오늘은 휴식을 하나?》

《아닙니다. 당분간 중지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왜, 어디서?》

《아 어디긴요, 준비위원회지요.》

할머니는 돋보기를 추스르고는 불만조로 핀잔을 주었다.

《이보게, 준비위원회라면 숱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인데 그 사람들이 다 입을 모다가지구 자네에게 지시했나?》

《미안합니다, 할머니.》

지휘자는 실언을 깨닫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림진우총연출가동지 아시지요? 그분한테 물어보십시오. 저기 3층 18호가 그의 방입니다.》

이미 몇번 나든적이 있어 배복할머니는 진우의 방을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대기실에 들어선 할머니는 문고리를 잡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반쯤 열린 방문으로 귀에 선 목소리가 흘러나오고있었는데 어찌나 크게 말하는지 어느 정도 귀가 먹은 그도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수 있었다.

《총연출가동지도 알다싶이 출연자들은 매일같이 저를 찾아와 들이댑니다. 당원이 옳은가, 창작가가 맞는가. 어떤 출연자동무는 내가 겁쟁이이고 선이 불투명한 인간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번일을 통해서 저를 심각하게 반성해보았습니다. 그들이 옳습니다. 내가 어떤 리유에 의해서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그렇지요. 이 작품을 포기한다면 이 김룡남이는 당원이 아닐뿐더러 이 나라 공민의 자격조차 상실한 사람입니다. 립장을 명백히 해주십시오. 어떻게 하잡니까?》

에쿠, 다들 알고있었구나. 그제야 영문을 깨달은 렴배복할머니는 귀를 바싹 강구었다.

《흥분하지 마오. 소리치지 말란 말이요. 난 당원이 아니고 이 나라 공민이 아닌가. 당장 내게 무슨 권한이 있는가.》

《너무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태연할수가 있습니까. 똑똑히 아십시오. 그 작품이 정말 빠지게 된다면 총연출가동지부터 스스로 사표를 내야 할겁니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할머니는 질겁해서 얼결에 문에서 몇걸음 물러섰다.

《앉소, 김동무.》

《그만하십시오. 난 이이상 더 론의하기 싫습니다.》

《여보, 룡남이.》

방문이 세차게 열리며 고수머리를 한 중년창작가가 나왔다. 대기실문이 쾅 후려닫기고 격한듯 투닥거리며 멀어져가는 그의 발자국소리에 귀를 쫓던 할머니는 혀를 차며 창작가를 나무람하였다.

《녀석두, 중한 일일수록 오손도손 해야지 왜 괜스레 왝댁거리노.》

배복할머니는 방안에 들어갔다. 사람이 들어온것도 모르고 고뇌에 잠겨 멍하니 앉아있는 림진우를 보니 동정심이 북받쳐오른다. 고운 말, 미운 말 혼자 삭혀야 하는 총대장이니 오죽 힘이 들가. 할머니는 은근한 목소리로 위로했다.

《힘든게구만.》

《어이구, 할머니 오셨습니까.》

림진우는 펀뜩 정신이 들어 황급히 의자를 권하며 인사했다. 그는 숨을 크게 내불며 할머니의 말을 긍정했다.

《예, 진짜 베찹니다.》

《아네, 알아. 내 저기서 들었어.》

문쪽을 가리키고나서 렴배복할머니는 차를 부으려는 진우를 만류하며 그의 손을 잡아일으켜세웠다.

《나허구 같이 가자구. 속이 괴로울 땐 그저 당조직이상 없다니. 당에 가서 속을 툭 털어놓고 조언을 청하문 어련히 풀어주지 않을라구.》

《허허, 어딜 간다구 그러십니까?》

《글쎄 어서 가자니까.》

배복할머니가 림진우를 데리고간 곳은 차성규부부장의 사무실이였다. 때마침 사무실에는 주인이 일을 보고있었다.

렴배복할머니에게서 사연을 듣고난 차성규는 책상빼람을 열고 열덧통이나 되는 편지들을 꺼내였다.

《어서 보십시오.》

배복할머니는 돋보기를 끼며 편지를 집어들었다. 얼추 훑어보니 수도와 지방, 공장, 기업소들에서 보내온것들이였다. 할머니는 그중 하나를 꺼내여 읽어보았다.

《이것도 2월명절문제로구만. 다 같은건가?》

《예. 전부 그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입니다. 편지는 아직도 계속 오고있습니다.》

《음, 그러니까 당조직에서도 아는 문제였구만. 부부장어른, 그럼 인차 2월명절장면을 보게 되나?》

《안될겁니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 승인하지 않으십니다.》

《?》

할머니는 성규의 그 대답이 몹시 언짢았다. 이제껏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일하면서 자신의 일이라면 사소한것이라도 밀막으시는 그분의 겸허한 품성을 몰랐단 말인가.

《섭섭하오, 부부장어른. 일이 그리되였다면 부부장어른이랑 간부들이 잘 조처해서 어떡하나 성사되도록 노력해야지. 일군들의 사고가 어째 그리들 맥혀있나.》

차성규는 답답한듯 목단추를 끌렀다. 의자에 앉은 그는 두손을 책상우에 얹으며 최근 김정일동지께서 하신 말씀내용을 말해주는것이였다.

렴배복할머니는 그이의 말씀의 뜻이 하도 깊어 어떤 대목은 자주 되물어보았다. 할머니는 돋보기를 벗어들며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날 저녁 렴배복할머니의 방은 자정이 넘도록 불이 켜져있었다.



18

 

적종심깊이 침투하여 반항공망과 레이다기지, 지휘소를 비롯하여 공격지휘체계를 소멸하는 소규모특수구분대들의 전투가 끝나자 곧 하늘을 메우며 박철건이네 부대의 항공륙전작전이 시작되였다. 빠른 속도로 지상에 투하된 부대는 삽시에 적집단을 덮치며 전투에 진입하였다. 불과 불, 철과 철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박철건이네의 기습타격은 그야말로 처음부터 질풍같이 벌어져 적의 공격서렬과 기갑무력, 미싸일기지들은 미처 손쓸사이없이 완전히 소멸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작전이 진행되는 전과정을 주의깊게 지켜보시면서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이께서 방금 보신 훈련은 적들의 가증되는 선제공격기도를 앞질러 분쇄하기 위한 우리 군대의 훈련강령에 포함된 한부분으로서 한달전 총참모부의 높은 평가를 받은 박철건의 작전전술안을 실전에 옮긴것이였다.

펼쳐놓은 지도를 보시며 대련합부대지휘관들로부터 작전상황을 료해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켠쪽에 서있는 박철건을 가까이로 찾으시였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동무는 이 전술안을 짰소?》

《불의적인 기습공격입니다.》

《무엇으로 담보하고있소?》

《좌우린접과 항공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작전이 성과를 거두자면 공격진입속도가 최대한 빨라야 합니다. 그래서 항공륙전대의 강하시간을 단축하는데 열쇠가 있다는것을 포착하고 락하산을 펴지 않는 첫 강하시간을 늘였습니다.》

《실전을 타산했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정넘친 눈길로 박철건을 대견하게 바라보시였다.

《땅크나 장갑차와 같은 기갑장비들의 강하속도도 늘였소?》

《그건 아직 시험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새 학년도훈련에 들어갈 때까지는 무조건 완성하겠습니다.》

얼굴이 퉁투무레하고 상체가 떡 벌어진 대련합부대 부대장이 뒤를 달았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런데 인원들과는 달리 기갑장비의 중량이 엄청나므로 현재 쓰고있는 락하산장비를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 문제를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리고 해결받으려고 생각했댔습니다.》

《그럼 전문부서와 협의해보고 그 결과를 국방위원회에 제출하시오.》

훈련총화가 끝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련합부대지휘관들과 함께 박철건의 부대관하 한 구분대가 준비한 예술공연을 관람하시였다.

곧 막이 열리였다. 공연이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세명의 병사들이 출연하여 대화시를 읊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뜨거워나시였다. 특히 마지막대목은 숭엄한 감정이 스스로 차오르게 하는것이였다. 병사예술소조원들이 읊은 그 대목은 이러했다.

 

병사 그에게는 꿈이 많았다

이름있는 체육인 명성높은 예술가

온 나라가 다 아는 박사 교수도 되고싶었다

허나 너는 태여난 이 땅이 하도 귀중하여

수호자의 총대를 손에 먼저 틀어쥐였거니

우리 다시 불러보자

그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지켜선 조국》을

 

《역시 저 노래는 좋구만.… 원형은 누굽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치위원에게 나직이 물으시였다. 부대정치위원은 허리를 굽히며 입을 한손으로 조심스레 가리웠다.

《김명철이라고 2년전 해상훈련에 나갔다가 서해해전에 참가하여 자폭공격으로 적함선을 들이받고 희생된 동무입니다.》

《아- 김명철영웅? 나도 알고있소.》

《집은 평양인데 가요 〈내가 지켜선 조국〉을 평시에 그렇게도 좋아했다고 합니다.》

《음, 그렇소?! 대화시가 괜찮소. 잘 썼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저 작품은 우리 부대장동무가 쓴것입니다.》

정치위원은 자랑하듯이 말씀을 올리였다.

《그래?》

머리를 돌려 뒤에 서있는 박철건을 피끗 일별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에게 물으시였다.

《이 공연을 병사들이 다 보았소?》

《그렇습니다.》

《작품이랑 쓰는걸 보니 문학에 취미가 있는것 같구만. 부대장, 대화시를 쓰게 된 동기는 뭐요?》

《부대장병들을 보다 높은 훈련목표달성에로 불러일으켜야 했는데 전과 같은 말을 하자니 따분했습니다. 그러던중에 전사한 김명철동무의 병사수첩을 얻게 되였는데 첫 페지를 펼치니 이 노래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명철병사가 좋아했고 우리 군인들이 모두 사랑하는 이 노래를 가지고 부대장병들의 심금을 울려보자고 결심했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없이 무대쪽으로 시선을 다시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한편의 진실한 예술작품이 가지는 거대한 감화력과 생활력을 새삼스럽게 인정하게 되시였다.

《아리랑》은 어떻게 되여가고있을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떠올리시였다. 요전에 림진우가 현실체험을 하겠다고 말했는데 이 근방 어딘가 있을것이다.

공연이 끝난 다음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대장병들이 기다리고있는 사진촬영장으로 가시기에 앞서 수행일군에게 림진우의 행방을 알아보고 그를 대련합부대 군인숙박소로 데려오도록 지시하시였다. 저 멀리 검푸른 산봉우리 뒤켠에서 희뿌연 구름더미가 천천히 솟아오르고있을뿐 하늘은 끝없이 맑고 푸르렀다.

김정일동지께서 사진촬영장에 도착하시자 만세의 폭풍이 고지의 산발을 뒤흔들었다. 장병들의 열렬한 환호에 답례를 보내시던 그이께서는 한손으로 촬영장을 쭉 가리키시며 박철건에게 알아보시였다.

《여기 혹시 빠진 병사들이 있지 않소?》

《신병훈련소와 중도하창대대가 이동훈련중이여서 참가 못하였습니다.》

《어디 있소… 철령너머라.》

박철건의 대답을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시계를 보시며 흔연히 결심하시였다.

《아무래도 내 그 동무들을 만나봐야겠소.》

한 수행일군이 나서서 좀 있으면 날씨가 나빠지며 더우기는 저녁에 평양에서 한 외국대표단 접견이 조직되여있다면서 그이의 결심을 만류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일군을 가볍게 나무람하시였다.

《허, 날씨걱정을 하는걸 보니 현동문 철령을 처음 넘어보는 사람같구만. 어쩌겠소. 접견은 래일로 미룹시다. 그러나 우리 병사들을 만나는 일은 미루어서는 안되오. 내가 왔댔다는것을 알게 되면 그들이 몹시 섭섭해할거요. 자, 공연한 걱정을 하지 말고 빨리 갑시다. 저 동무들이 우릴 기다리는걸 보오.》

 

해가 지자 창밖에서는 어둠과 번개불, 온갖 소음들이 맞부딪치며 한층 더 격렬한 싸움을 벌리고있었다. 푸르다못해 강렬한 백색을 띤 번개불줄기가 어둠의 장막을 한순간에 여러갈래로 찢어버리고는 도로 삼키우고 여느때는 숙부드럽던 골개물이 바위들을 와르륵 와르륵 굴려대며 맹수처럼 날뛰는가 하면 우우 하고 비줄기를 몰고다니며 아우성치던 골 바람은 두터운 창유리를 뚫고들어오지 못해 극성인듯싶다.

《허, 그놈의 장마비가 꽤 사납군.》

김정일동지께서는 창밖을 응시하다가 림진우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이번에 일정에 없던 서부지역도 돌아보고 그 걸음으로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까지 가보았다는데 얻은것이 많겠소.》

림진우는 무엇부터 말씀올려야 할지 몰라 잠간 머뭇거렸다. 그만큼 현실에서 받은 충격이 컸던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술가는 한생을 현실속에서 살아야 한다는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림진우는 그때의 흥분이 되살아나는것을 자제하며 조리있게 이야기해드리였다. 진우의 이야기속에는 각지의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이 이룩한 기적적인 생산성과와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돌파하기 위하여 노력하고있는 정형과 같은 순 기술실무적인 내용들도 있었으나 보다는 그것을 창조한 인간들에 대한 예술가의 애정과 공감이 더 많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의 이야기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시였다. 진우의 입에서 불리워지는 사람들의 이름과 더불어 그이께서도 잘 아시는 그들의 얼굴이, 지어 말투며 행동거지까지 련상되시였다.

태천군 은흥협동농장.

키가 후리후리하고 남자처럼 골격이 굵은 은흥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의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처녀적에 대학롱구선수로 활약했다지. 용하거던. 그 척박한 땅을 두벌농사도 소리치며 짓는 기름진 옥토로 만들자니 무슨 고생인들 안했겠는가.

룡천군 신암협동농장.

이름이 영순이였던가. 옳아. 키가 자그마한 그 신암관리위원장의 이름이 맞아.

장군님, 제 은흥 정희(은흥관리위원장의 이름)와 토론했습니다. 동봉 리영애(함주 동봉관리위원장의 이름) 레 경쟁농장들중에서 제일 조건이 불리한 동해안지대인데 벌방과 중간지대가 합해서 도와주자고 말입니다. 정희는 저와 농대동창생이여서 의합이 제꺽 됐습니다.

이것은 전에 가셨을 때 자신께서 관리위원장, 경쟁도 철저히 집단주의에 기초해야 돼 라고 이르시자 그 녀성이 하던 말이였다. 그때 그이의 뇌리에는 평북도사투리가 진한 녀성관리위원장의 말투가 깊이 찍혀있었다.

락원기계련합기업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그리시였다. 락원의 봉화를 지피시려고 기업소를 찾으신 그이께서는 그들이 이미 이룩해놓은 투쟁성과에 너무도 만족하시여 저녁식사때 몸소 지배인에게 술을 부어주시였다. 그런데 그는 술 한잔이 들어가자 인차 인사불성이 돼버리고마는것이였다. 알고보니 그는 물론이고 집안래력에 술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후에 기업소를 찾으신 자신께서 과업을 주시고나서 여담삼아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지배인, 술엔 왜 그리 약골이요 하자 그가 뭐라고 했댔던가.

제 못난이여서 술은 잘 못들었지만 장군님께서 주신 임무는 몸이 열쪼각, 백쪼각이 되여도 기어이 수행하겠습니다라고 했지.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를 통하여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남흥의 로동계급이 오늘 어떻게 일하고있으며 그 투쟁을 누가 선두에서 이끌고있는가를 알고계시였다.

그곳 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가 실력가형의 일군이라고 한다. 남흥에 오자 우선 나프샤계통의 석유화학설비들을 재정비수리하여 원료만 있으면 언제든지 즉시 생산을 할수 있게 해놓은 다음 후방기지조성사업을 시작했는데 잡도리가 어찌나 큰지 사람들이 놀란다고 하였다.

제 2. 8에서 조직비서를 할 땝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저를 불러앉히더니 하는 말이 얘 경선아, 너 승용차를 타고다니는걸 보니 간부가 분명한데 어째서 로동자들에게 식량을 못 주니,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때에두 공장에서는 강냉이되박이라도 줬어, 내 생각엔 너들이 일을 쓰게 하지 못해 그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가슴을 바로 찌르는 말이였습니다. 어머니가 정확히 봤습니다. 간부들이 일을 잘했더라면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했겠습니까? 우리 장군님께서 인민생활때문에 걱정을 하셨겠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전 기회가 있으면 일군들에게 늘 말해주군 합니다. 우리 공장엔 현재 7련대는 준비되여있는데 오중흡이가 없다, 작업반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직장장, 부문당비서, 당, 행정일군들, 이렇게 간부들이 오중흡이 되여야 진정한 7련대라고 말할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라야만 남흥은 소리치며 일어선다고 말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의도대로 일을 아직 크게 해놓지 못하여 당보에 날 자격이 없다며 취재를 거절한 책임비서가 당보기자에게 한 이야기라고 한다.

남흥, 이제 그곳은 반드시 일떠설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의 래일을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장군님,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지배인동무 말입니다.》

그이께서는 상념에서 깨여나시였다.

《오, 관준지배인?》

《예. 그 사람 참 괴짭니다.》

《?!》

《텔레비죤에 의견이 많습니다. 글쎄 자긴 원래 술을 아예 못하는데 작가가 술군으로 만들었다면서 총연출가아바이, 거 〈아리랑〉에선 본 그대로 씁소, 이러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 작가령역이 자기네 련합기업소구내인줄 아는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치시였다.

《그러나 관준지배인이 명담을 했소. 본 그대로 쓰라, 참 로동계급다운 말이요. 5월1일경기장에서만 맴돌았다면 이런 소리를 들어봤겠소?》

《옳습니다, 장군님.》

림진우는 수긍했다.

《이번에 현실에 나가보니 마음이 넓어지고 궁냥이 트이는게 상이 턱턱 잡힙니다. 그래서 전번에 보고드린 전반부를 동무들과 토론해서 다시 개작했습니다.》

개작안을 들어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매장, 경에 의견이 하나도 없다고 시종 만족해하시였다.

《이제야 〈아리랑〉이 제 곬을 타고 흘러가는것 같구만. 진우동무가 옳게 말했소. 예술가는 한생을 현실속에 몸을 잠그고 살아야 하오. 그래야 명작을 쓸수 있거던.

참, 진우동무가 좋아하는 음악작품은 어떤것들이요?》

그이의 느닷없는 물으심에 진우는 생각해보다가 순서없이 제목을 불러드리였다.

《음- 그렇구만. 동무도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좋아한다니 그럼 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를 고쳐앉으시였다.

《작곡가 김옥성이 관현악과 합창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작곡하면서 주제선률때문에 무던히도 애를 먹었습니다, 무슨 씨름질인들 안했겠소. 그러다가 어느날 에이, 상도 떠오르지 않는데 농촌에 나가서 가을걷이나 도와주자 하고 청산리로 가는 뻐스에 올랐지.》

그이께서 손세를 써가며 구수하게 이야기를 엮어나가시였다. 진우는 속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이였다.

때마침 장날이여서 뻐스에는 장을 보고 돌아가는 청산리사람들이 태반이였다. 무심한 눈길로 차창밖을 내다보다가는 눈을 감아버리기도 하고. 그러던 작곡가는 차안의 분위기가 몹시 흥그러운데 주의가 가서 승객들과 말을 나누어보았다. 뒤주에 차고넘친 분배쌀자랑, 재봉기며 자전거를 산 자랑, 아들딸 시집장가보낼 궁리, 상상외로 눅어진 시장가격, 한결같이 부유해진 집안살림자랑, 나라살림자랑이였다. 김옥성은 그들의 심정이 십분 리해가 되였고 제일처럼 기뺐다.

그때였다. 도랑창같은데를 넘는지 뻐스가 왈카당 하고 들추었다. 다들 의자를 붙잡아 앉음새가 그리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한아름되는 보따리를 부둥켜안고 작곡가앞에 앉아있던 늙은이만은 재구를 쳤다. 의자에서 튕겨올라 천정을 짓받고는 엉덩방아를 찧었던것이다. 그 바람에 와- 하는 웃음이 터졌다. 아프겠수다 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러나 령감은 보따리를 그냥 안고 엉덩방아를 또 찧어보이며 호기있게 핀잔을 주는것이였다. 녀석두, 별 걱정, 아프긴 뭘 아파. 세월이 좋으니까 춤을 추는것 같다. 넨장, 또 왈카당 해보려무나. 춤을 계속 추게.

다시 한번 웃음판이 터졌다. 승객들과 함께 웃음짓던 김옥성은 홀연 굳어져버리였다. 그렇게 찾고찾던 작품의 상, 그것이 불시에 뇌리에 스며들어 온몸을 뒤흔들었던것이다.

《결국 세월이 좋다며 그 중늙은이가 엉덩방아를 찧은 그게 그대로 작품의 주제선률이 되였소. 후에 김영규작곡가가 그 주제선률을 발전시켜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편곡했고.

현실은 이렇게 예술가에게 있어서 작품창작의 원천이고 비옥한 토양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림진우동무가 처음부터 교예장을 강력하게 지지한것은 옳은 처사요. 동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교예장에선 현실냄새가 푹푹 나거던.》

김정일동지의 과분한 치하가 거듭될수록 림진우는 죄송스럽기만 하였다. 그는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터놓았다.

《장군님, 솔직히 말씀올리면 저는 장군님의 안목으로 보지 못하고 교예장을 순 실무적으로 대하였습니다. 제가 지지한것은 〈아리랑〉의 전작품의 고저와 균형을 맞추는데 적합하다고 보았기때문이였습니다. 이런 기계적인 안목을 가지고있다나니 〈아리랑〉전반부를 이제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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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이런 기계적인 안목을 가지고있다나니 〈아리랑〉전반부를 이제야 끝냈습니다.》
《림동무가 자기의 오유를 정확히 알고있으면 마음이 놓입니다. 됐소. 이제부터 잘 끌고나가면 될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너그럽게 리해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아리랑》 대본창작이 이때까지 주선을 틀어쥐지 못하고 좌왕우왕했던 원인을 분석하신 다음 현실을 대하는 창작가의 자세문제를 두고 계속하시였다.
《지난날 노예살이를 숙명으로 간주하기만 했던 조선민족이 오늘 세계의 무대에 존엄높은 민족으로 당당히 나설수 있게 된것은 민족의 자주적인 주체가 탄생하여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왔기때문입니다. 민족의 자주적인 주체란 무엇이겠소. 강성국가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이 아니겠소. 그래서 당에서는 예술창작가들에게, 특히 〈아리랑〉 창작가들에게 시대가 비끼고 들끓는 현실이 담긴 작품을 창작할것을 요구하고있는것입니다.》
민족의 자주적인 주체, 강성대국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의 형상. 림진우는 귀가 번쩍 트이여 서둘러 속기를 했다. …
《작품토론은 이만하면 잘된것 같구만. 진우동문 어떻소. 리해가 안되는것은 없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퍼그나 시간이 흐르고 작품토론도 한물 진듯 하여 진우에게 물어보시였다.
《없습니다. 그런데 저…》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얼굴에 무엇인가 말하고싶어하는 표정이 알릴듯말듯 비껴있는것을 감촉하시였다. 그이의 시선과 마주치자 진우는 용기를 낸듯싶었다. 림진우는 힘들게 입을 떼였다.
《그 2월명절장 말입니다, 그건.》
《진우동무!》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노여우시여 그의 말허리를 자르시였다. 허나 림진우는 이번에는 작정을 단단히 했는지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이건 민심의 요구입니다, 장군님. 민심이 바라는것은 우리도, 그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시였다. 둑을 넘으려고 움실거리는 격한 심정을 누르시느라 창가로 다가가신 그이께서는 잠시 밤의 장막이 드리운 밖을 응시하시였다.
언제부터인지 창밖은 조용하였다. 바람도 잦고 비도 멎었으며 퍽 승기가 빠진 골개물소리만이 들려왔다.
한참이나 그린듯이 서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직한 음성으로, 그러나 단호하게 진우의 청을 밀막으시였다.
《그래선 안되오. 부탁하는데 동무들이, 동무가 나를 대신해서 인민들을 잘 리해시켜주시오.…
밤도 어지간히 깊었구만. 오늘은 이만합시다.》
그이께서는 책임부관을 불러 군인숙박소 소장을 데려오도록 이르시였다. 곧 방으로 중키에 몸이 뚱뚱한 50대중반의 대좌가 들어섰다.
《대좌, 이 동무를 아오?》
《압니다. 당창건 55돐을 맞으며 진행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총연출한…》
《옳소. 오늘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총연출가이고, 군대로 말하면 련합부대 사령관이지. 그러니 나의 〈아리랑〉 사령관의 편의를 잘 돌봐줄것을 부탁하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진우에게 돌아서시였다.
《앉은김에 쉬여간다고 여기서 한 이삼일 눌러앉아 로독이랑 풀고 떠나오. 보니 건강관리를 잘하는것 같지 않구만. 쉬면서 짬을 내여 이곳 대련합부대 예술소조공연도 구경하고, 〈아리랑〉에 참고가 될거요.》
림진우는 그이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물러갈념을 안하고 그냥 서있기만 하였다. 진우는 절절한 어조로 다시 청을 드리였다.
《장군님, 민심은 천심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 소원을 그리지 않는다면 인민이, 전체 조선민족이 우리를 두고두고 욕할것입니다. 우리는 력사앞에 죄를 짓게 될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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