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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아리랑> 13-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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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080회 작성일 16-01-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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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심혜영은 철건이 탄 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한참이나 그린듯이 서있었다. 맥없는 걸음으로 너럭바위에 돌아온 혜영은 빨래감을 집어들었으나 좀처럼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박철건을 보자 잊어버리려고 덮어두었던 지난 일들이 하나둘 머리를 들고 되살아나고있었던것이다. 심혜영은 멍하니 앉아 그것을 더듬어보기 시작하였다.

눈내리는 미술박물관의 뒤도로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후 한주일이 멀다하게 잇닿는 박철건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성의 문을 두드리는 사나이의 열정을 느끼며 아릿한 행복감에 취해있던 처녀, 심혜영은 그 손기척을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문을 열어주려는 자기를 발견하고 어느날엔가 갑자기 질겁하여 펜을 놓아버렸다.

그들사이에 불같이 오가던 편지가 끊긴지도 석달이 퍼그나 지난 어느날, 이날도 밤늦게까지 강의안작성(그때 심혜영은 실습차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한 농촌소학교에 나와있었다.)에 골몰하던 혜영은 누가 찾아왔다는 기별을 받고 밖을 나섰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키가 꺽두룩한 박철건이 온 얼굴에 내돋은 땀을 연신 훔치며 떡 버티고 서있었던것이다.

《아니, 여길 어떻게?!》

《독립임무수행중에 혜영이네가 여기 나와있다는것을 알고 찾아왔소.》

《!》

박철건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단박에 들이대는것이였다.

《한마디면 돼, 나를 사랑하는가?》

《…》

《좋아.》

팔굽까지 소매를 걷어붙인 철건은 근육이 울근불근 드러난 팔을 쑥 앞으로 내밀었다.

《동무가 넣은 피를 몽땅 뽑아버리오.》

《?!》

《어서.》

박철건은 독수리처럼 사납게 눈을 굴리며 다그어댔다. 혜영은 가슴우에 두손을 모두어잡고 뒤걸음쳤다.

《철건동지!》

《못하겠단 말이지. 그럼 내가 하지.》

앞가슴에 메고있던 자동보총을 뒤로 제낀 박철건은 총창집에 손을 가져가며 이발을 앙다물었다. 순간 원인모를 인력에 떠밀려 나는듯이 뛰여든 심혜영은 드러내놓은 철건의 팔을 감싸잡았다.

《그러지 말아요.》

《놔, 이걸 놓지 못해? 뭐 우정관계로만, 동지관계로만 남아있자구? 난 잊어버리기로 결심했어. 잊자문 내 몸에 남아있는 혜영이걸 싹 뽑아버려야 해.》

《안돼요, 이러면 안돼요.》

《그럼 뭐야, 대답해.》

《난 사실, 전 사실 동지를.》

심혜영은 뒤의 말은 입속으로 뇌이다싶이했다. 그다음 온몸은 폭풍같은 힘에 휘감겨 안기였고 시큼한 땀내며 총부혁의 메마른 프로필렌냄새가 뒤섞인 거치른 숨결이 미쳐왔다. 머리우에서는 박철건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먼 하늘에서처럼 들려왔다.

《그래야지, 이건 연분이야. 혜영이, 이 연분이 어제오늘 시작된건 아니야. 너의 피가 내 몸에 흘러든 그날부터 이미 맺어졌던거야. 그 무엇으로써도 사지 못할 고결한 마음, 그걸 가지고있는 혜영이를 내놓고 철건이 누구와 일생을 같이한단 말인가.

난 혜영이도 나를 사랑하고있다는걸 알고있었어. 다시말해봐, 크게. 심혜영이는 군인 박철건이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그래요, 사랑해요. 철건동지의 고지식하고 순박한, 당의 위업을 한생 총대로 받들겠다는 동지의 지향에 전 감동되였어요. 혜영인 영원히 철건동지의 심장속에 남아 한생을 드팀없이 살도록 피를 더해주고 숨결을 더해주는 길동무가 되겠어요.》

그의 풀떡이는 가슴에 얼굴을 묻고 행복에 겨워있던 심혜영은 희열에 넘쳐 부르짖듯이 속삭였다.

그뒤에 이러저러한 기회를 통해 박철건은 혜영에게 미리 마음속 준비를 갖추게 하려고 그러는지 군관가족생활이 어떤것인가를 자주 말해주군 하였다. 특히 부대장으로 된 이후에는 편지때마다 그 내용을 강조하군 했다.

혜영인 손풍금도 노래도 잘하는데다 인정이 많아서 우리 병사들이랑 군관가족들이 좋아할거야. 기름튀기 잘하고 김치랑 맛있게 담그는거랑 솜씨를 보이오. 참, 앞으로 부대군인가족예술소조의 총지휘는 혜영이가 해야 할것 같애. 지금 참모장동지네 아주머니가 하는데 내 보기엔 영 아니야. 이러기도 했고.

꽤 견디여낼가, 군사훈련도 해야 하고 또 부대는 고정살림을 못하고 계속 이동하는데다가 돼지랑 염소를 길러야 해라고 걱정스러워하기도 했고. 철건은 그러다가도 끝은 노상 이렇게 맺군 하였다. 하지만 혜영인 이악하니까 마음 놔.

심혜영은 갑자기 밀려드는 련민의 아픔에 눈물이 솟구쳐나와 손등으로 두눈굽을 훔쳤다. 잊지 못할 지난 일을 더듬느라니 불쑥 박철건의 괴로와할 모습이 선했던것이다. 혜영은 종내 빨래를 다하지 못하고 일거리를 거두었다.

아동장출연자들이 거처하고있는 경기장 지하층의 널직하고 건조한 3호실에 들어서니 영아의 로할머니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올해들어 여든일곱살인 할머니는 허리도 꼿꼿하고 걸음이 발랐으며 기력이 아주 좋아 백발의 머리칼만 아니라면 60대처럼 보였는데 아이들의 후원에 여간한 열성이 아니였다. 오늘도 할머니는 두부와 감자를 섞어 끓인 국을 두바께쯔나 들고나온 걸음이였다.

《힘든데 나오셨군요.》 심혜영은 빨래감이 든 바께쯔를 내려놓으며 로인에게 인사했다. 《영아가 세게 앓는다지요?》

귀가 약간 먹어 옆에서 크게 말해줘서야 내용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다짜고짜 혜영이를 한켠으로 끌었다.

《앓는다네, 암, 세게 앓아. 여기가 아예 깨져버렸다니까.》

늙은이는 이러며 혜영의 허리아래부분을 툭툭 쳤다. 영아의 엉덩판이 또 어찌된 모양이였다.

《어제 집에 갈 땐 일없었는데요, 할머니.》

《아니, 밤부터 끙끙대더라니 물어보니까 깨졌대. 오늘 아침엔 근본 일어나앉지 못하구 와짝 열까지 나네.》

영아 할머니는 사실 증손녀에게 깜박 속고있었다. 어제 훈련을 하면서 강이가 잘못 다루어 떨어지는 바람에 전보다 크게 엉덩판을 바닥에 쪼아대여 어지간히 아픈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영아가 아픔을 과장한데는 온 하루 강이의 어깨에 올라가 공기교를 해야 하는 다음날훈련에 참가하기가 싫어서였다. 하느라면 필경 못해서 두세번은 떨구겠는데 그걸 어떻게 당하겠는가. 그래서 영아는 어제 밤과 오늘 아침에 엄살을 부리며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 《부하》인 로할머니를 들볶아대였던것이다.

《그래서 내 선생한테 이전부터 말하자는것이 있었는데 선생, 거 뭬라던가. 응, 옳지. 시험이겠다. 선생, 그 시험을 다시 쳐서 골라주지 않겠나?》

말뜻을 몰라 기웃거리는 심혜영의 거동을 보며 혀를 차던 할머니는 형용까지 해보이며 튕겨주었다.

《아, 거 있지 않나. 누가 이렇게 뚱뚱하구 힘이 세나 시험을 쳐서 우리 영아짝패를 골라달란 말일세. 원래애는 틀렸어. 암, 틀리구말구. 방아다리같은 몸집을 가지구 가을무우만 한 우리 애를 무슨 수로 들어? 어림없지, 안되네.》

그제야 사연을 알아차린 심혜영은 웃으며 늙은이를 안심시켰다.

《잘 알겠어요. 할머니,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난 그저 선생만 믿겠네.》

그래도 안심치 않은지 돋보기너머로 심혜영의 안색을 살피며 다짐을 두는 할머니였다.

오후에 혜영은 빵이며 사이다, 과일이 든 구럭을 들고 봉화산려관뒤거리에 있는 영아네 집을 찾아갔다.

《아이구 이런, 괜스레 아프단 말을 해놔서 바쁜걸음을 시켰구만.》

문을 열자 할머니가 수선을 떨며 반겨맞았다. 로인은 혜영의 손에서 구럭을 받아들며 방안에 대고 소리치는것이였다. 《이 애 영아야, 선생님이 오셨다. 얼뜬 나와 인사하렴.》

심혜영이에게 나부시 인사를 하던 영아는 뒤따라 강이가 들어오는것을 보자 혀를 빼쭉 내민다. 둘러보니 늦은점심을 하댔는지 까만 1인용 밥상에는 삶은 닭알이며 김치, 아직도 구미를 돋구며 김을 올리는 동태국과 찰밥이 거의나 손이 가지 않은채로 놓여있었다.

《글쎄 너무도 아파서 입맛을 통 젖혔다니. 아침도 안먹었는데 점심밥두 전혀 술질을 안하네.》

《누가 아파서 그러나, 몸이 계속 나니까 그러지. 할만 아무것두 모르면서 피.》

밥상을 한켠에 치우며 보를 씌우는 할머니에게 토달거리며 입나발을 부는 영아였다.

《에끼 이놈우 자식, 몸이 가을무이같이 부딩부딩해도 멕히면 그냥 먹어야 돼. 녀잔 코흘리개적하구 체네때를 내놓고는 몸낼 기회가 없어, 에그, 저게 내 말귀를 알아나듣겠는지. 그러니까 밤낮 오빠 좋은 노릇이나 하지.

쟤 오빠두 〈아리랑〉에 참가하는데 무슨 배경대라던지. 그것두 한창 클 때니까 먹새가 좋아서 제걸 먹구두 동생밥을 종종 거덜내군 하네.》

《에이, 씨.》

영아는 한바탕 로할머니에게 해보고싶었지만 심혜영이네가 있어 어쩌지 못하겠는지 속상해서 뚱뚱한 몸을 흔들어댔다.

혜영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 증손녀를 마치 다 큰 딸처럼 대하는 로할머니의 말투가 우스웠다.

《영아랑 강이랑 오늘 이 자리에서 솔직히 말해봐요.》 병상태며 여러 이야기가 오고간 끝에 심혜영은 정색해서 자리를 고쳐앉았다.

《지금 동무들때문에 아동장훈련이 잘 안되여 선생님이랑 로할머닌 안타깝기만 해요. 동무들중 한 동무가 자리를 바꾸어야 훈련이 제대로 될수 있어요. 자, 말해봐요. 누가 양보하겠어요?》

어느 아이도 대답할념을 안하고 뿌루퉁해앉아있었다. 두 아이의 눈치를 번갈아보던 할머니가 하도 답답해나서인지 강이에게 먼저 은근한 목소리로 권고한다.

《강이는 꼬투리를 단 사내인데 아무래도 네가 속을 써야 할가부다.》

그러자 어린것은 깜실깜실한 얼굴을 도고하게 쳐들며 단마디로 내쏜다.

《싫어요.》

《에그 고집두, 꼭 하늘소 뒤발통 한가지로구나. 한데 넌 이렇게 몸이 약하지 않니.》

《씨, 선생님은 가만있는데 할머닌 왜 자꾸 날 보구 그러나요? 내 몸은 약하지 않아요.》

리강이는 어깨며 잔등을 쓸어주는 할머니의 손길이 싫은지 몸을 털면서 마뜩지 않게 내뱉았다. 이때까지 무슨 말을 하나 초조해서 강이만 쳐다보던 영아는 그만에야 실쭉해서 삑 돌아앉는다. 심혜영은 속상했다. 이 애들은 언제까지나 뻗댈셈인가. 도대체 영문을 모를 일이였다. 애들문제가 물망에 올랐을 때부터 진속을 알고싶어 물었지만 강이도 영아도 채워놓은 자물쇠 한가지였다.

《이제 영아에게 물어봐도 같을거예요. 선생님이 이자 말해줬지요? 누구든 양보를 해야 한다고. 그런데 왜들 말을 안 들어요? 강이부터 말해요. 왜 그래요?》

《…》

머리를 푹 수그리고있던 리강이는 심혜영이 자기를 지명하며 재촉하자 억울한듯 고개를 버쩍 쳐들고 혜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린것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였다. 강이는 울먹이며 웨치듯이 말했다.

《아버지장군님을 제일 가까운데서 뵙고싶어 그럽니다. 선생님, 난 다른 자리로 안 가겠습니다. 이제부턴 힘이랑 키워가지구 영아동무를 떨구지 않겠으니 다른 자리로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

무엇인가 후더운것이 훅 치밀어올랐다. 무엇을 더 말하랴. 어린것의 진심을 안담에야, 영아 로할머니도 감심이 되였는지 저고리동정을 들어 눈굽을 찍으며 중얼거리였다.

《에그, 요즘 애들속은 그저 어른 한가지라니까. 됐다, 됐어.》

 

해가 저물녘에야 영아네 집을 나선 심혜영은 강이의 손목을 잡고 봉화산려관으로 향했다. 혜영은 려관까지 가는 동안 줄곧 자책감에 싸여있었다.

사실 심혜영은 지금까지 강이를 그만하면 잘 돌봐왔다고 자인하고있었다. 정말 그렇지 않는가. 혜영은 어린것과 정을 두터이하려고 있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고향에서 자모들이 제 아이들을 만나러 후방물자를 가지고올 때면 애가 외로와할가봐 무척 왼심을 썼고 아프면 밤을 새워 머리맡에 앉아 정성껏 간호해주군 했다. 함께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도 했으며 다심한 정을 기울여 다른 애들에게 짝지지 않게 철따라 새옷을 해주군 했다. 그 어간에 무슨 고생인들 안했으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때문에 남몰래 돌아앉아 흘린 눈물은 또 얼마나 되였던가.

그 애바른 진정을 알아서인지 강이도 차츰 류다른 태도를 가지고 무슨 일이 조금만 생겨도 그에게 달려와 의지하군 했다.

멀었다. 혜영은 부끄러웠다. 아이를 육친의 정으로 돌봐주었다고 하여, 그래서 누구보다 남다르게 따른다고 해서 어머니가 되는것은 아닌것이다. 일찌기 부모를 잃어 조숙하지만 나이는 속일수 없는 철부지라고만 여겨왔던 강이. 이런 어린것의 가슴속에 이렇듯 깨끗한 정신세계가 간직되여있었다는것을 모르는 내가 어머니라는 세상 귀중한 이름, 그 귀중한 자격을 벌써 함부로 가질 생각을 하다니.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 더 아낌없이. 그러자 심혜영의 뇌리에는 사랑하는 애인이 당하고있을 고충이 다시 생각되는것이였다. 철건동진 얼마나 괴로와할가. 이제라도 사실을 말해줄가.

아니야, 그러면 안돼. 그이는 보통 군관도 아니고 한개 부대를 당앞에 책임진 지휘관이며 그래서 가정에 신경을 쓰게 하지 말아야 할뿐더러 그 이상으로 사업을 적극 도와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살겠다는것은 리기적이고 죄스러운 일이 아닌가. 사연을 알게 되면 워낙 인정이 많은 그이는 당장 받자 하겠지만 그러면 안된다. 나는 그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우리는 헤여져야 하는것이다.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해… 그러나… 생각은 또 한고패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철건동진 사연을 알기 전에는, 안다 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거야. 난 어쩜 좋담. 독하게 먹었던 결심이 흔들리는것을 종시 바로잡지 못한 심혜영은 번민을 단념하고 어린것의 온몸을 바싹 끌어안았다.



14

 

《자 조용, 노래 합창하겠습니다. 일주, 선창 떼라.》

뻐스가 움직이자 운전석옆에 서있던 학급장 태식이가 소리쳤다. 인차 고르로운 뻐스의 동음을 누르며 청높은 노래소리가 울려퍼졌다.

 

품은 뜻은 하나요 가는 길도 하나다

붉은 기발아래서 맹세다진 우리다

대렬을 맞추자 걸음도 나란히

장군님 따라서 마음도 나란히 마음도 나란히

 

《영수, 한곡조 뽑을 때가 되지 않았어?》

곡목이 여러번 바뀌고 부를 노래가 거의 바닥이 났을 때 태식이가 영수에게 다가와 하는 권고였다. 매일 이맘때면 장영수는 늘 가지고다니던 트럼베트로 덧곡조 불어제껴 사기를 돋구군 했다.

《싫어, 그냥 노래를 부르자꾸나.》

《저길 보렴, 4학년 2반애들이 되게나 벅작대는데 우리가 저것들한테 왜 지간. 빨리.》

턱짓으로 앞시창너머를 가리킨 태식은 결이 나는듯 까만 체육모자를 뒤로 돌려쓰며 영수를 재촉했다. 앞뻐스에는 4학년 2반애들이 타고있었는데 학과학습과 훈련, 규률 등 모든 면에서 그 학급은 영수네와 언제나 키를 다투고있었다. 지금도 그 애들은 차창을 몽땅 열어제끼고 영수네들이 들으라는듯이 떠따고며 노래를 불러대고있었다.

《정말이야, 태식이. 오늘은 입술이 아파서 그래.》

《참 애두, 요즘은 왜 기분상태가 그래? 꽤나 긴다야.》

황태식은 이상한듯 영수를 보며 투덜거리더니 일주에게 소리친다.

《일주, 북통 꺼내라. 한바탕 두들겨서 아예 눌러버리자.》

장영수는 북통을 꺼내느라고 부산을 피우는 학급애들을 흥심없이 바라보다가 눈길을 돌려버리였다.

요즘 영수는 웃고떠들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도 소망했고 실력이 높아 틀림없이 붙을것이라는 확신에 차서 쳤던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 예비입학시험에서 그만 미끄러졌던것이다.

《음색은 아주 특이하게 곱고 부드럽소. 그런데 선생, 조건이 대단히 나쁘구만. 아래웃이발이 가쯘하지 못하고 아래입술은 군살로 결이 져있으니 서정가요는 잘 연주할수 있겠지만 섬세하고 속도적인 기교는 거의 불가능하오. 에- 물론 유명한 인민배우 류렬동무처럼 그리고 밖에 나가서는 젬스 하리나 루이 암스트롱처럼 조건이 나빠도 트럼베트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일류급연주가들도 있지만 이건 특이한 경우이고.

한마디로 영수학생은 올종이요. 앞으로 2년동안은 그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이후에는 암만 고급한 정규교육을 줘도 크게 늘지 않는단 말이요. 그러니 선생,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영수학생은 안되겠습니다.》

이것은 시험을 치고난 뒤 무슨 구강과 의사처럼 영수의 이발이며 입술을 깐깐히 뒤적여보고난 뚱뚱한 대학시험관이 그의 음악선생에게 한 말이였다.

그가 음악무용대학시험, 그것도 예비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소문은 날개가 돋친듯 삽시에 그날로 퍼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걸려오는 전화마다 첫마디는 례외없이 축축한 동정과 위로였다. 증조할머니의 사랑을 통채로 차지해서 늘 영수의 미움깨를 받다나니 오빠를 멀게 대하던 막내동생 영아까지도 그날 저녁엔 동정심이 북받쳤던지 여태껏 누구도 안 주던 제 간식을 먹으라고 준다.

영수는 부끄러웠다. 노상 이런 심정에 싸이다보니 갑자기 급전된 제 처지를 두고 자주 탄식하게 되였다.

이 장영수로 말하면 어떤 사람인가. 공부나 태권도, 바둑, 축구 등 무엇이나 뒤자리에 서본적이 없다. 특히 평양시내 중학교음악소조들중에서 단연 첫자리를 차지하고있는 그의 음악소조의 실력은 사실상 영수의 이름과 떼놓고 론하면 안될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트럼베트를 멋있게 연주하였던것이다.

영수의 지정곡은 《푸른 버드나무》와 《내가 지켜선 조국》이였는데 첫번째 곡은 한주일 건너 공원숲속에서 연주했고 《내가 지켜선 조국》은 가장 아끼는것이여서 여느때는 좀처럼 연주하지 않고있었다.

《푸른 버드나무》!

이 곡을 연주할 때면 사람들은 얼마나 그에 반했던가. 젖은듯 한 선률이 시내가의 청초한 버드나무를 읊조리며 외등빛이 애무하는 공원숲속에 조용히 퍼져갈 때면 산책하던 늙은이며 처녀총각들, 뛰놀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모여오군 한다. 잔등을 두드리며 재청을 부탁했으며 낯모를 동급생녀학생들이 수첩을 내밀며 수표를 청하기도 했다. 대학시험을 치기 전날 저녁에는 연주가 끝나자 공원주변의 아빠트에서 터진 환성에 놀라기까지 하였다. 영수의 연주가 하도 서정이 짙고 멋있어서 공원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주변아빠트에서 사는 사람들도 베란다에 나와서서 듣고있었던것이다.

시험에서 떨어진 그날부터 영수는 수치스러워 종전의 습관대로 트럼베트는 그냥 메고다녔지만 다시는 공원에 발길을 안했다. 악기에 입술조차 대기 싫었다.

청류정앞에서 하루총화를 짓느라 저녁시간이 퍽 지나서야 집에 들어선 영수는 눈이 단박 커졌다. 부엌 한구석에 놓인 커다란 대야안에서 두키로는 실히 넘을 잉어가 아가미를 쩝쩝 다시며 꿈틀거리는것을 보았던것이다. 올해 들어와 닭이랑 가물치곰이랑 영아에게 세번씩이나 해먹였으니 이젠 내 차례가 된가부다. 하긴 로할머니도 요전에 너두 인춤 곰해줘 하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기분이 좋았다. 영수는 어디가 편찮은지 허리를 직신거리며 앉아있는 로할머니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내가 두드려줄게, 할만.》

《넌 언제봐야 군대처럼 잔뜩 메구지구. 네 어미가 봐줘서 일없다. 배고프겠는데 빨리 그거나 벗구 밥을 먹으렴.》

영수는 잔등에 진 배경대책이며 악기를 벗어놓고 슬그머니 로할머니의 속을 찔러보았다.

《할만, 저 잉어는 어데 쓸라 그러나?》

《영아짝패가 몸이 약해서 네 동생을 계속 떨군다누나. 그래 내 그애에게 곰을 해줄란다.》

체, 영수는 짐작이 빗나가서 부아가 났다.

《아니, 이녀석은 무슨 심술이 나서 갑자기 왱강댕강이냐. 집이 뭐 야장간인줄 아니?》

로할머니는 심사가 비틀어져 밥그릇과 찬접시, 수저를 들었다놨다하며 괜히 광당대는 영수에게 지청구를 했다.

《누군지 할머닌 제 증손자보다 그 애가 귀해요? 나두 요즘 대학시험을 치느라 몸이 형편없이 못쓰게 됐단 말이예요.》

《에그, 기차라.》 대학시험이라는 말을 듣자 로할머니는 그때 속을 앓던 증손자일이 생각키워서인지 앉은걸음으로 밥상곁에 다가와 영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옳다, 옳아. 약해졌지. 영수야, 다음번엔 이 할미가 꼭 해주마. 응?》

그러던 로할머니는 방 한켠에 놓여있는 찹쌀이 담긴 소랭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이르는것이였다.

《에쿠, 내 깜박 잊었댔구나. 너 밥 먹구 중철이네 집에 제꺽 갔다 오너라. 녀석이 인츰 군대에 나간다는데 동네좌상이라는게 이런거밖에 못해주는구나. 가서 중철이 엄마더러 군대 나가기 전에 애에게 찰떡을 실컷 해먹이라고 일러라.》

장영수는 들고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차, 이틀전에 온 전화, 오늘 송별회를 하니 저녁 8시에 공원에 나오라는 중철의 말을 감감 잊고있었던것이다.

영수는 벌떡 일어섰다.

《밥은 안먹구 어딜 가?》

《중철형한테요.》

《그럼 이걸 가지고 가려무나.》

영수는 무춤 망설이다가 로할머니가 내민 쌀소랭이를 받아 내려놓았다.

《이건 래일 아침에 갖다줘두 돼요.》

 

김중철의 조선인민군입대를 축하하기 위해서 준비된 송별연은 영수네 아빠트에서 조금 떨어진 구역공원 소나무숲속의 자그마한 공원식당에서 벌어지고있었다. 식당책임자로 일하는 큰어머니가 왼심을 써서 이 저녁에는 그들이 통채로 공원식당을 차지했는데 배석수가 작아서인지 식사칸에는 동네친구들과 학급의 남녀동창생들, 레스링소조의 몇몇 동무들까지 해서 스무명 남짓이 참가하였다. 그래도 식사칸이 작아서 꽉 차보였다.

영수가 들어서자 다들 환성을 올리며 맞이했다. 그들사이가 형제지간처럼 무척 가까왔고 그래서 지금 김중철이 우정 식탁을 비여놓고 그가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태식인 아까 왔는데 넌 왜 이렇게 늦어? 그러지 않아도 널 데리러 사람을 보내려던 참이야. 아니, 이리루 오라. 여기 앉아.》 김중철은 웃몸을 일으키며 지청구를 대다가 녀학생들이 영수를 자기들곁에 앉히려고 하자 손짓을 하여 제 옆자리로 불렀다. 그리고는 주방칸쪽에 대고 큰 목소리로 독촉하는것이였다.

《큰어머니, 이젠 다 왔어요. 음식을 빨리 차리자요.》

영수가 온것으로 하여 분위기는 활기를 띠였다.

《에- 이자 어디까지 말했더라.》

뭉툭한 식지손가락으로 볼을 슬슬 긁어대던 중철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묻는듯 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켠에 앉아있던 태식이가 촉기빠르게 제꺽 짚어댔다.

《명철형이 폭탄을 실은 소형뽀트에 뛰여내린데까지 했어요.》

《오, 맞아. 그다음 어떻게 됐는가.》 김중철의 얼굴에는 비장한 표정이 진하게 떠올랐다. 《경비함에서는 견인로쁘를 던져 소형뽀트를 걸어 못 가게 막았지. 그때 우리 형은 함장동지, 적함을 까부시는건 륙전대원의 임무입니다, 내가 사정거리에 안전하게 이를 때까지 엄호사격을 부탁합니다라고 소리쳤어. 그다음엔 해병도끼로 경비함과 련결되여있는 쇠바줄을 단호하게 찍어팡가쳤어.》

영수는 김중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안다. 그 유명한 서해해상전투에 참가하여 육탄으로 적함을 까부시고 장렬하게 희생된 김명철영웅, 중철은 지금 자기의 형님인 영웅의 위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있었다. 벌써 몇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그 과정에 영웅이 까부신 적함선이 처음엔 미싸일정이였다가 장갑함으로 바뀌고 나중엔 프리케트구축함이 되였는가 하면 육탄공격을 하면서 김정일장군 만세를 웨쳤는데 그 웨침소리가 너무나 커서 전투를 지켜보던 린근지역 인민들이 다 들은 정도였다는 등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끝없이 윤색되고 가공되였다.

그래도 영수는 싫지 않았다. 우리 아빠트가 낳은 영웅, 우리 모란봉이 낳은 영웅의 위훈담은 들을 때마다 매번 영웅이 되고싶은 욕망과 충동으로 하여 가슴속의 피가 부글부글 끓는것 같았던것이다, 장영수는 런닝바람에 앉아 정열적으로 말하는 중철이를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짜개바지시절에는 보호자로, 커서는 레스링을 배워준 그여서 형제지간처럼 가까왔지만 최근에는 그 이상을 초월하는 존경심을 품게 된 영수이다.

영웅의 동생이고 전국청소년레스링경기에서 거퍼 1등을 하여 2련승 수상자로 전도가 촉망되는 중철형님, 그래서 시안의 중학교들에서 최우수인기학생으로 명성높은 그때문만이 아니였다. 졸업식때 1지망도 군대, 2지망도 군대라고 토론했고 그것도 형님이 복무하던 부대에 탄원했다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앞으로 형님이 다니던 중학교는 김명철영웅중학교로 불리울거야. 중철형님도 틀림없이 영웅이 될것이고.

장영수는 원인모를 모멸감에 싸여 중얼거리였다.

《형님은 그렇게 희생되였어.》

영수의 귀전에는 김중철의 갈린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후에 동지들이 형님의 사품을 정리하댔는데 수첩이 하나 나졌대. 그걸 펼치니 첫장에 우리 형님이 군대 나갈 때 동창생들이 매 사람이 한자씩 가사를 적어준 노래가 있었다누나. 제목은 〈내가 지켜선 조국〉이였어.》

좌중에는 침묵만이 흘렀고 모두들 근엄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식탁을 두손으로 벌려짚고 말없이 굳어져있던 김중철은 한손을 떼여 머리칼을 다 밀어버려 시퍼런 정수리를 뻑 올리쓸었다.

《내가 형님의 얘기를 한건 다른게 아니다. 우리도 모두가 영웅이 되자는거다. 군대에 나가는 나만이 아니라 너희들도 다.

우리야 사실 이전에 영웅은 특별한 사람만이 될수 있다고 생각해오지 않았니? 진수, 너 그랬지. 생각이 나?》

그속에서도 식탁우에 차려지는 메추리알튀기며 소고기편육, 빵류들에 정신이 팔려있던 진수라는 동창생은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얼떠름해하였다.

《으응? 맞아, 명철형님은 정말 괜찮았어.》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김중철은 웃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계속했다.

《너도 생각이 날거야. 3년전에 뻐스를 타고 농촌동원 나가다가 영웅론쟁을 벌리던거 말이야.》

《오오, 맞아. 강남 어디 근방이던가?! 하여간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어떤 중학교를 보구 론쟁을 시작했어. 맞아, 생각나. 좌우의 나지막한 푸른 야산을 끼고 안침지게 들어앉은 빨간 벽돌로 지은 중학교교사, 백토를 깐 한적한 앞마당, 울타리를 따라 빙 둘러심은 굉장히 큰 비술나무들. 무척 아담했어.》

《정확히는 이상한 기운이 떠도는 곳에 자리잡았다고 표현했어.》

김중철은 진수의 말을 정정했다.

《그러면서 넌 영웅은 대도시나 아빠트에서보다 주로 저런데서 나온다고 했지? 그땐 누구도 반박을 못했다. 하지만 난 오늘 그걸 당당히 부정할수 있어. 우리 형님을 보렴, 형님은 나완 달리 성격도 얌전하고 눈에 뜨이지 않는 수수한 보통학생이였어. 형님이 다니던 우리 중학교엔 뭐가 류다른거 있니? 우리 아빠트는 또 어떻구? 그런데도 영웅이 나왔고 영웅이 되였거던.

복잡하게 생각할거 없다. 노래에 있어, 금잔디 밟으며 첫걸음 떼고 애국가 들으며 꿈을 키운. 우린 이렇게 자라왔어. 때문에 난 어디서 살며 무슨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디서 살든 어떻게 살며 어떻게 일을 하는가, 여기에 영웅이 될수 있는 비결이 있다고 주장하고싶다.》

김중철은 식탁을 짚고 일어섰다. 흥분으로 하여 그의 얼굴은 상기되여있었다.

《이왕 영웅화제가 나온김에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나의 조선인민군입대를 축하하여 이 자리를 마련해준 정다운 동무들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들, 얼마후이면 우리들은 서로 헤여지게 됩니다. 각기 자기가 맡은 초소에 가서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일하게 됩니다. 우리 잊지 맙시다, 스승에 대한 존경, 벗들과의 우정, 하급생들에 대한 사랑, 앞날의 꿈과 희망, 학창시절에 우리가 품어왔고 가꾸어왔던 이 모든 귀중한것들을 잊지 맙시다. 아울러 우리는 평양의 아들, 모란봉의 아들이라는것을 잊지 말고 일을 잘하여 영웅의 금별메달로 고향과 조국을 더욱 빛내이자는것을 진심으로 호소하고싶습니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졌다.

《야, 굉장하게 멋있다야!》 식탁 맨끝에 앉아있던 태식이가 박수를 치며 연신 감탄한다. 《이젠 중철형님을 축하하여 노래를 부르는것이 어떻습니까?》

황태식은 중철의 연설에 아주 감동되다못해 그만에야 얼굴이 새빨개져가지고 저가락으로 식탁을 두들겨대며 힘껏 소리를 질러댔다. 좌중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먼저 장영수동무가 제일 사랑하는 곡을 듣겠습니다. 트럼베트독주 〈내가 지켜선 조국〉. 여, 톤수. (남달리 몸집이 실해서 동무들은 영수에게 《톤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여기에는 속이 깊고 입이 무겁다는 의미도 있다.)》

저건 쫄랑거리면서 그래, 음식두 들기 전인데. 장영수는 태식에게 눈을 흘겼다.

《이자 보니 악기를 못 가져왔구나.》

영수의 잔등을 얼핏 스쳐보며 퍽 서운해하는 김중철이였다. 그는 장영수에게 웃몸을 약간 기울이였다.

《요즘 대학시험에서 미끄러진것때문에 고민한다지?》

《그것만이면 좋게요. 며칠전엔 태권도장에 참가시켜달라고 제기했다가 퇴빵 맞았어요.》

《어째서?》

《키가 작다나요. 그래서 배경대루 밀려나고말았어요. 중철형, 말 좀해달라요. 태권도장에 참가하는 인원선발은 기본적으로 형님네 학교 레스링소조지도원선생님이 보잖아요.》

《인원선발이 끝나지 않았을가. 아무튼 말해보자. 긴데 배경대문 뭐라니?》

장영수는 기가 막혀 한숨을 푹푹 내쉬였다.

《야, 형님은 깜깜세상이로구나. 배경대라는게 뭘 하는덴줄 알아요? 하루종일 앉아서는 싱겁게스리 책을 펼쳤다접었다 이게 다예요. 이런데서 무슨 소문 짜한 일을 해보겠어요.》

《…》

《왜 말이 없어요. 중철형, 해주지요?》

《으응… 알았어.》

《?!》

영수는 김중철의 태도가 어정쩡하여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의 요구나 부탁이라면 무엇이나 들어주던 중철형이 아니였던가.

며칠후.

영수는 봉화산려관으로 가려고 점심시간을 맞추어 훈련장을 출발하였다. 아침에 잉어곰을 강이에게 갖다주라는 로할머니의 엄한 분부를 받았던것이다.

가는 동안 영수는 강이라는 알지 못할 애에게 내심으로 화풀이를 했다. 도대체 어떤 애게 로할머니가 자기는 물론 영아까지 젖혀놓고 그리도 정성을 기울이는가 해서였다. 집이 아무리 지방이라지만 그 애에게는 부모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들은 어째서 제 아들에게 관심을 돌리지 않는가. 선생들도 답답하다. 짝패를 다루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하다면 자리를 바꾸면 되는데 그만한것도 생각을 못하다니. 이 장영수도 알만 한 사람이구나. 화풀이를 할수록 리해가 안되였고 심부름이나 하는 자기가 측은해보였다.

강이네 유치원아이들이 거처하고있는 봉화산려관 4층 3호에 올라가 알아보니 교양원은 회의에 갔다고 하였다. 강이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 애는 힘키우기를 해요, 저기서.》

힘키우기? 영수는 기웃거리다가 한 아이가 대준 4층 탁구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탁구장 한켠에서 얼굴이 까무스레하고 눈빛이 록록치 않게 보이는 어린 아이가 아래우가 맞달린 까만 훈련복을 입고 아령운동을 하고있었다. 영수의 짐작엔 아령이 한개에 한 500그람짜리는 되여보였다. 제법인데.

《너 강이란 애가?》

대답대신 마주보는데 아주 마뜩지 않은 눈길이다. 하 요거, 조련치 않은 놈이로구나. 영수는 은근하게 어조를 바꾸었다.

《나 영아 오빠야. 널 만나러 왔어.》

아이의 표정은 대뜸 풀리였다.

《그래요?- 내가 강이예요.》

《근데 너 왜 아령운동을 하니. 네 나이엔 이런 운동이 몸에 안 맞아.》

《팔힘을 키우려구요, 영아를 계속 떨궈서.》

강이는 풀이 죽어서 턱을 목밑에 붙이였다. 아마 영아 오빠가 단단히 혼을 내주려고 온줄 아는 모양이였다.

야- 하고 영수는 소리치려다가 침을 꿀떡 삼켰다.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면 안되는것이다. 그는 달래듯이 아이에게 충고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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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어린 나이에 이런 운동을 하게 되면 관절이 못쓰게 돼. 강이, 너 힘들문 자리를 바꾸면 되지 않니. 이 형님이 널 생각해서 권고하는데 자리를 바꾸려마. 그게 너를 위해서도 좋아. 그렇게 하는게 어때?》
《…》
《왜 말이 없어? 나도 너만치 쪼꼬마할 때 집단체조에 참가해봐서 알아. 이런 경우에는 바꾸는게 땅수야.》
《영아 로할머니가 무슨 말씀 안하셨나요?》
《몰라. 무슨 말?》
어린것의 물음에 장영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강이는 못내 소심스러운 목소리로 자리를 양보 안하는 리유를 설명했다.
영수는 놀랐다. 강이의 이야기를 듣는 그의 심정은 며칠전 로할머니나 심혜영이들과 마찬가지였다.
《자식, 쪼꼬만게 형님을 울리는구나.》 그는 코등이 매워나서 손등으로 뻑 훔치며 손에 든것을 내밀었다.
《이걸 받아, 우리 로할머니가 네게 보내는거다. 그리구 보니까 넌 팔보다 다리힘이 약해. 다리의 힘을 키우는 운동을 하라.》
영수는 반시간 남짓이 품을 먹여 강이에게 다리힘을 키우는 운동방법을 대주고나서야 봉화산려관을 나섰다.
그는 배경대훈련장이 있는 학교에 가려다가 고쳐생각하고 5월1일경기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강이의 진속을 알게 되니 동생의 처사가 아주 괘씸해났다. 먹새퉁이같은게, 저밖에 모르는 그건 강이가 어째서 독심품구 훈련하는가를 절대로 리해 못할거다. 우리 영아가 자리를 양보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영수는 또 한번 큰 충격을 받고 그 결심을 철회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5월1일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녀동생을 불러낸 영수가 얼리다가 말을 안 들어 욕사발을 퍼붓자 영아가 단박에 포도알만 한 눈물을 뚝뚝 떨구며 이렇게 항변했기때문이였다.
《나도 아버지장군님을 제일 가까운데서 뵙구싶어 그래. 그래서 강이와 이제부턴 싸우지 말구 잘해보자고 약속했는데 오빤 뭐야. 가라, 가라.》
영수는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뺑소니치듯 자리를 떴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꼬맹이들의 사고수준이 보통이 아니구나. 아직도 코수건을 달고다니는 어린애들이라고 우습게 볼것이 아니다. 난 대학시험에서 미끄러지고 태권도장에서 빠졌다고 투덜대는데 이 애들은.
영수는 갑자기 제 존재가 초췌해보였다. 그는 영 기분이 뜨지 않아 하루종일 우울하게 지냈다.
 
이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퍽 늦게야 집에 들어선 영수는 로할머니에게서 한장의 편지를 받게 되였다. 김중철이가 쓴것이였다. 그는 서둘러 편지를 펼쳐들었다.
《사랑하는 내 동생 영수야.
나는 오늘 떠난다. 너에게 〈썩은 사과알 주어던지기〉(레스링에서 적수의 허리를 뒤돌아잡아 어깨너머로 들어던지기수법) 를 마저 못 배워줘서 미안하다. 마음에 걸리는것은 요전에 네가 한 부탁이다. 솔직히 터놓는다면 너의 요구가 그른것이여서 아예 소조지도원선생님에게 말을 비치지 않았다.
영수야, 너는 언제부터 태권도장이요 뭐요 하며 타발을 하고 배경대일을 우습게 보게 되였니. 구봉령할머니는 도로를 보는 관리원이지만 온 나라가 다 알고 떠받드는 할머니이다. 김광철영웅 역시 전인민군적으로 제일 많은 평범한 소대장들중의 한사람이지만 선군시대가 낳은 모범지휘관으로, 영웅으로 우리 장군님의 기억속에 있다. 이런 실례를 들자면 끝이 있니.
시간이 허락치 않아 구체적으로 쓰지 못하겠구나. 너에게 한마디만 명백히 말해주고싶은것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오늘도, 지금 이 시각도 멀고 험한 전선길에 계시는 우리 장군님을 나는 어떻게 받들어야 하겠는가 그걸 항상 생각해보라는것이다. 배경대에 그냥 꾹 눌러앉아있는것이 좋겠다.
떠나면서 아픈 소리를 해야 하니 나도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건강해서 학과학습이며 배경대훈련도 잘하기를 바란다.
너의 형 중철로부터.》
 
장영수는 천천히 편지를 접었다. 중철형의 충고가 옳아. 자책감에 젖어있던 영수는 홀연 머리를 치는것이 있어 저녁상을 차리는 로할머니를 찾았다.
《중철형이 이 편지를 언제 주고갔어요?》
《낮께 인사하러 왔다가 네가 보이지 않으니까 써놓고 갔느니라.》
영수는 부랴부랴 송수화기를 들어 중철이네 집을 찾았다. 빈 신호음만 들리였다. 면식있는 그의 동창생들과 레스링소조원들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은 집에 없었다. 한참만에야 레스링소조의 한 하급생에게서 드디여 알아낸 영수는 태식이를 송수화기로 불러냈다.
《야 태식이, 오늘 저녁 밤 9시 중철형이 떠난대. 시간이 거의 됐어. 평양역으로 빨리.》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부리나케 달려 도착한 그들은 평양역사의 큰 시계가 8시 40분을 가리키고있는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허나 영수네들은 인차 자기들이 한발 늦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렬차에 오르기 위하여 역앞에 정렬해있던 초모생대렬이 벌써 움직이고있었던것이다.
《너희들 늦었구나.》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쳐서 돌아보니 중철의 동창생이였다. 그의 주위에는 김중철의 동창생들과 레스링소조원들, 동네친구들이 둘러서있었다.
《중철형 갔어요?》
《갔어. 조금만 빨리 왔어도 되는건데.》
《그런데 역사에 왜 들여놓지 않는대요? 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여 여, 이건 특수부대야 특수부대. 비밀이 새문 안되거던. 그래서 저렇게 나와서있잖아.》
동창생은 바래주러 나온 사람들과 초모생대렬사이에 듬성듬성 서서 차량과 인총을 차단하고있는 경무원들과 교통보안원들을 가리켰다.
《야 참, 쫄딱 녹았구나. 이럴줄 알았으면 저녁총화를 빨리 지어버릴걸.》
《말도 말아. 우리도 겨우 시간을 맞춰냈다. 이 동무들도 너희들처럼 이자 오는통에 중철일 못 만났어.》
태식의 탄식에 상고머리를 한 동창생이 꽃송이를 쥐고 서있는 김중철이네 학급 녀학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식이, 수가 있어.》
막연한 눈길로 역사로 들어가는 초모생대렬의 맨 뒤꼬리를 쫓던 영수는 금시 떠오르는것이 있어 그의 팔소매를 잡아당기였다.
《가자, 날 따라와.》
태식이를 이끌고 지하도를 건는 여수는 역사쇠울타리를 더듬어보며 달리다가 혀를 깨물었다. 얼마전에 여기를 지나가다가 보수공사를 하느라고 그랬는지 울타리란간 몇개를 해체해놓아 어른 하나는 충분히 나들수 있게 된것을 기억하고있었다. 그런데 그날중으로 보수를 끝냈는지 말끔히 서있지 않는가.
《체, 영수, 이런건 내가 외려 나을거야.》
까닭을 모르고 따라왔다가 쇠울타리앞에 와서야 알아차린 태식은 코웃음을 치더니 제잡담 동성교쪽으로 달려갔다.
《조금 가면 담장이 낮은데가 있어. 그걸 넘어가면 역온실이 있는데 뒤길로 해서 빠지면 돼. 거긴 지키는 사람이 아예 반반해.》
《너 모르는거 없구나.》
《파고철을 얻으러 들어가군 했댔으니까.》
《오-너 그래서 남들보다 늘쌍 파철을 많이 수집하댔니?》
《허튼소리 그만해. 이젠 다 왔다. 요기야.》
태식은 숨을 헐썩거리며 담우를 손짓했다. 어른키를 훨씬 넘는 담장이 정말 여기에 이르러서는 왜 그런지 확실히 낮아진감이 알리였다. 그들은 서로 밀어올리고 잡아당기며 담장우로 기여올랐다.
《영수야, 우린 어떡하니?》
언제 따라왔는지 중철이네 학급 녀학생들이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찾는다.
《쳇, 치마를 입구 여긴 어떻게 올라온다고 그래요. 우리가 전해줄게 그거나 달라요. 영수, 내가 먼저 내려가서 안전하문 휘파람을 불게 그담에 내려오라.》
꽃송이를 받아쥔 태식이는 담장에서 훌쩍 뛰여내려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몇초가량 지나서 온실뒤켠에서는 휘파람이 아니라 아우성소리가 들려왔다.
《요놈의 자식, 너 꽃을 꺾으러 들어왔지?》
《아이고 아이고, 놓으라요. 난 꽃을 가지러 들어오지 않았어요.》
《거짓말 말아. 옳아- 그러니까 꽃을 채가댔구나. 이런, 장미, 국화에 글라디올라스까지. 요녀석이 신통히두 온실에서 한창 피는것만 꺾었구만.》
《아니예요. 이건 챈거 아니예요. 영수야, 뛰라. 난 잡혔어.》
《소래기는 왜 쳐, 이놈. 그런다구 내 너네 일당을 잡아내지 못할줄 아니. 장아바이, 요놈을 꼭 붙잡구있소. 내 저기 가봐야겠소. 소래길 지르는것을 보니 이녀석 혼자만 오지 않았수다.》
들켰구나. 이쪽으로 귀에 선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오자 영수는 담장우에서 훌쩍 뛰여내리였다.
그때 거대한 손풍금리드가 떠는듯 한 경쾌한 기적소리가 붕- 하고 한번 길게 울리였다.
떠나는구나. 어쩌면 좋담. 영수는 역사쪽을 둘러보다가는 담장우를 쳐다보며 안절부절했다. 그러던 그는 시내학생취주악대가 정렬해있는 역전공원으로 되짚어 달려내려갔다. 그 걸음으로 취주악대를 헤치고 들어가 트럼베트를 하나 앗아든 영수는 숨을 몰아쉬며 지휘봉을 든 학생에게 다가갔다.
《성일아, 부탁해. 〈내가 지켜선 조국〉. 전주속도는 늦춰줘.》
곧 휘몰아치는듯 한 금관악기들의 선률이 역전공원을 통채로 휩싸안으며 울려퍼졌다. 이어 그속에서 따랑따랑한 트럼베트선률이 뭇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솟구쳐올랐다.
장영수는 나팔을 불었다.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불었다.
 
금잔디 밟으며 첫걸음 떼고
애국가 들으며 꿈을 키운 곳
내 자란 조국이 하도 소중해
가슴에 총 안고 전호에 섰네
아 정다운 나의 조국아
 
내 집에 띄웠던 람홍색기발
전호가노을에 어리여오네

 
2절부터는 같이 불렀다. 중철이네 동창생들, 레스링소조원들, 부모들 아니, 노래는 모래속에 슴새드는 물처럼 바래주러 나온 사람들속으로 순식간에 퍼져갔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노래는 사람들모두의 가슴을 절절하게 적시며 태여날 때부터 불러오던 조국이라는 그것을 새로이 되새겨보게 하였던것이다. 신성한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바쳐온 고난의 행군의 날과 날이 되새겨졌던것이다. 그래서 노래는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자식들, 형제들, 동창들과 벗들에게 하는 부탁이자 그들과 어깨나란히 자기들이 차지한 시대의 전호를 굳게 지킬 언약이기도 했다. 노래는 대합창으로 번져갔다.
 
해와 별 빛나는 조국이 없인
고향도 가정도 나도 없으리
한없이 귀중한 그대를 지켜
내 한생 총잡고 초소에 살리
아 정다운 나의 조국아
 
중철형, 잘 가라요. 장영수는 눈물이 그렁해서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들의 노래소리에 화답하듯 붕- 하고 울리는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검푸른 밤하늘가에 애정겹게 메아리쳐간다. 영수는 역구내를 출발한 렬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오래동안 서있었다.
그로부터 이틀후, 학교청년동맹위원회에 찾아간 장영수는 자기를 배경대의 한성원으로 받아줄것을 열렬히 청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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