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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설 <아리랑> 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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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1,718회 작성일 16-01-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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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예장 《행복의 락원》의 실동훈련장에서 일어난 사고는 엄중했다.

고무총탄력비행에 출연한 두 배우가 동작을 수행하다가 추락하여 크게 다쳤던것이다. 그들이 실려간 병원에서 알려온데 의하면 한명은 한쪽 발목과 무릎이 골절되였으며 다른 배우는 얼굴의 한쪽살갗이 벗겨지고 왼팔이 탈구되였다고 했다. 하도 저공에서 추락하였으니 그 정도이지 그 이상에서 사고가 났다면 돌이킬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번 하였다.

그 이튿날 오후, 림진우는 사고원인을 찾고 작품수습안을 토의하기 위하여 교예장 담당창작가들과 유관부문 인원들을 4호수문쪽에 위치하고있는 경기장회의실에 모이게 하였다.

회의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참가자들의 얼굴빛은 한결같이 어두웠는데 맨뒤에 앉은 강진호의 기색은 말이 아니였다.

《자, 그럼 시간도 없는데 사고원인을 빨리 찾고 작품을 살릴수 있는 방도를 다같이 모색해봅시다. 민기사동무.》

진우는 서두를 떼고나서 세번째 줄 가운데의자에 앉아있는 한사람을 불러세웠다.

《모의시험프로그람은 동무가 짰다니 어서 말해보시오.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되오?》

얼굴이 기름하고 눈빛이 리지적인 30대 초반의 민기사는 침착하게 하나하나 설명하였다. 모의시험프로그람은 조선콤퓨터중심에 의뢰하여 그곳 전문가들과 합동하여 짠것이므로 과학적안정성은 충분히 담보할수 있으며 기재들도 실동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몇차에 걸쳐 엄밀하게 검열측정하였기때문에 이런 측면에서는 사고가 일어날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안목을 넓히고 투시해보면 사고가 일어날수 있는 요소들이 있긴 있습니다. 가령 기상조건도 그속에 얼마든지 포함될수 있지요. 저를 비롯해서 사실 우리들중 그저께 진종일 온 비에 대하여 심중하게 생각해본 사람이 있습니까.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려면 이런 점에도 마땅한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은 머리가 한절반 벗어진 뚱뚱한 몸집의 측정원이 일어났다.

《민기사동무의 견해에는 물론 일리가 있지만 저의 의견은 탄력바에도 문제가 있다는겁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쓰는 탄력바는 지난번 〈백전백승 조선로동당〉때부터 쓰던것이여서 수명이 지난것입니다. 그러니 이런것을 가지고 난도가 높은 동작을 수행하라는 그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그래서 저는 사고의 원인의 하나가 탄력바에 있다고 보면서 만일 교예장을 종전대로 살린다면 탄력바를 수입해오자는것을 제기합니다.》

《그건 안되오.》

림진우는 단마디로 일축해버리였다.

《나라는 지금 강성국가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한그람의 세멘트, 한그람의 강철, 한와트의 전기까지도 금처럼 귀할 때란 말이요. 그런데 우리가 자체로 얼마든지 풀수 있는것까지 나라에 손을 내밀면 되겠소? 방도는 있습니다. 탄력바문제는 동무가 직접 새기술혁신분과와 토론하여 무조건 해결하시오.》

림진우는 이렇게 오금을 박아놓고나서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계속합시다.》

전압파동이 심하여 전동기가 제구실을 못해 사고가 일어났을수 있다는 가설, 탄력바를 지지해주고있는 드림선의 재질과 길이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 사고의 원인은 차츰 폭이 커지고있었다. 림진우는 그것을 들으며 자책감을 금할수 없었다. 얼마나 빈구석이 많은가. 사전에 이런것을 깊이 사색하고 관심을 돌렸더라면, 강진호에게만 맡겨두고 방임하지 않았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것이다.

《저, 제 좀 말하겠습니다.》

열띤 론쟁과 주장들의 엇갈림이 한물 지였을 때 앞줄 맨끝에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섰다. 훈련분과장이였다. 《아리랑》국가준비위원회의 창작가, 상무보장성원들은 그를 가리켜 《치차호인》이라고 부르고있었다. 그것은 호인같은 웃음과 완만성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였다.

《사람은 고생을 해봐야 돼. 그래야 자기를 낮추고 사람들을 허심하게 대할줄 알게 되거던. 겸손과 웃음, 이건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는데서 만능의 무기요. 누긋하지 못하고 흥분하기 좋아하는 성격, 고집이 세고 과격한 성미, 이런걸 가지고있는 사람들이 잘되는것 하나도 없어. 그런 사람들은 신통히 높을 고는 좋아해도 그뒤에는 항상 쓸 고자가 따른다는걸 모르는 인간들이거던.》

이것은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 그가 푼 생활철학이라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훈련분과장은 10여년전에 문화성산하 어느 한 단위의 일군으로 있을 때 사람문제를 잘못 처리한 일로 철직되여 다년간 로동현장에서 일하였다고 한다. 그런 생활체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몹시 중시하였으며 사업에 들어가서는 어떤 문제를 토론하든 여기저기 두루거리로 맞추기만 하고 절대로 심각하게 뿔을 세우는적이 없었다.

그러나 림진우는 그의 됨됨을 이전부터 미덥지 않게 보아오고있었다. 이 사람만 보면 년초에 훈련분과의 사업을 료해하는 과정에 분과장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외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에 림시 적을 두고 다니는것을 알게 되여 그를 불러다놓고 되게 질책한 일이 생각키웠던것이다. 《아리랑》 하나만 하자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노래경연에 적을 둔건 무슨 목적인가, 인간관계를 무난히 가져 뒤탈이 없게 한 다음 껄렁껄렁 돌아다니다가 기회를 봐가며 이곳저곳에서 쉽게 열매를 따먹자는건가. 림진우는 그때 훈련분과장을 이렇게 다불리고나서 곧바로 송수화기를 들어 대공연의 조명분과와 노래경연심사위원회에 붙어있는 그의 적을 다 떼버리였다.

림진우는 주석단책상우에 두손을 얹으며 훈련분과장을 재촉했다.

《말해보오.》

푸른색운동복을 입은 그는 일어서서 잘 비다듬어 넘긴 머리칼을 괜히 손빗질을 하며 례의 인상을 지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사고를 분석하는 동무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고의 원인을 저는 단순히 기술실무적인 문제, 즉 기상조건이요, 탄력바요, 무슨 보장성원들의 협동동작 같은데서 찾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전 그것을 객관적인, 부차적인데서가 아니라 작품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참가자들의 눈길이 일시에 그에게로 쏠렸다. 그는 태연한 기색으로 계속했다.

《생각들 해보십시오. 처음부터 이 작품에 얼마나 의견이 많았습니까. 품이 어방없이 드는데다가 모험적인것이 강해서 다들 회의를 표시하지 않았댔습니까. 일은 결국 우려한대로 되고말았지요. 다시 해봤댔자 피장파장일겁니다. 제일 단순한 고무총탄력비행부터가 깨졌으니 앞으로 3단비행, 포탄비행은 무슨 수로 해내겠습니까. 전 승산없는 이 작품을 포기하고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부언하고싶습니다.》

잠시 회의실에는 정적이 깃들었다. 짓수굿하고 책상 한끝을 응시하며 말없이 앉아있던 진우는 그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럼 동무생각엔 작품수습방향을 어떻게 돌렸으면 좋겠소?》

《처음에 물망에 올랐던 작품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대로 하게 되면 순조롭게 될수 있습니다.》

《아니요. 그 작품은 좋은것이 못되오.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림진우는 완강한 어조로, 그러나 부드럽게 부정했다. 물망에 올랐던 그 작품이란 바닥대렬의 형상과 함께 군데군데 교예종목을 넣자는것이였다. 만일 이렇게 되면 《아리랑》의 전체 흐름이 단순하고 구태의연하게 되므로 진우는 그때 애초에 밀어버리였다.

《힘이 들더라도 집체적인 협의를 심화시켜 원인을 찾아서 이 작품을 살리는 방향으로 갑시다.》

《총연출가동지, 예술실무에 들어가서는 누구나 민주주의적인 태도를 가져야 옳지 않습니까. 엄중한 사고가 일어난 오늘에 와서까지 미련을 가지고 계속 내민다면 그건 창발적인 의견을 내리누르는것으로, 관료주의적인 사업태도로밖에 보지 않을수 없을것입니다.》

허, 저 사람이 그때 제 조카애가 창작했다는 작품이 밀려났다고 그리도 불만스러워하더니. 림진우는 쓰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눈길을 들어 객석을 더듬으며 진호를 찾았다.

《강진호, 동무가 담당자이니 어디 말해보오, 솔직하게 기탄없이. 어떤가, 작품이 될수 있겠나?》

질문을 받은 강진호는 구붓하니 숙인 어깨를 천천히 폈다. 그의 몸가짐에는 어딘가 고집스러운데가 있었다.

《오늘 여러 동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보니 담당창작가로서 준비를 착실히 못한걸 허심하게 반성하게 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어떤 법적, 행정적처벌도 받겠습니다. 총연출가동지, 동지들, 그렇지만 작품만은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작품은 되는겁니다. 사고의 원인은 반드시 찾아내겠으니 한번만 믿어주십시오.》

《여, 강진호동무.》

《치차호인》이 끼여들었다. 그는 진호쪽으로 아예 돌아서서 손세까지 써가며 열변을 토하는것이였다.

《하나 묻자우. 자기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기어코 살리겠다는건 좋아. 한데 동무의 혈관엔 피가 흐르나, 얼음물이 흐르나. 어쩌문 사람이 그렇게 랭혹할수 있어? 사고를 쳐서 생때같은 꽃나이처녀애들을 못쓰게 만들었으면 죄의식을 가지고있어야지 그냥 우겨? 사람의 생명이 무슨 기계부속품인가? 동문 그래 자기 누이동생이나 친척처녀라면 비행에 참가하라고 요구할수 있겠어? 가슴에 손을 얹고 어디 솔직히 말해보란 말이야.》

진호가 대꾸를 못하자 훈련분과장은 아주 득의만면한 인상을 짓고 좌중을 둘러보며 의자에 앉는것이였다.

회의실의 분위기는 삽시에 어두워졌다. 모험성이 다분한 작품, 실동훈련을 통하여 충분히 검증된 그것을 여전히 지지한다는것은 사람의 생명을 놓고 저울질하는것과 같다는 그의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던것이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림진우는 두팔을 펴며 책상우를 벌려짚었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거수가결로 채택하는 방법이 좋을것 같소. 나도 동무들과 동급의 자격을 가지고 가부에 참가하겠소. 오늘 회의결과에 대해선 당조직과 예술위원회에 그대로 반영하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진호동무의 작품을 지지합니다. 원인을 규명해서 강동무의 작품을 살리자는데 찬성하는 동무들은 손을 들어 표시합시다.》

《?》

그 순간 림진우는 전신이 싸늘해나며 갑자기 이름모를 서글픔과 고독감이 엄습해오는것을 느꼈다. 손을 든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행여나 하여 좌중을 둘러보았으나 보이는것은 그의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그와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의 얼굴을 안타깝게 더듬는 강진호의 얼굴이였다.

《오늘회의는 이만하겠습니다. 다들 돌아가서 일들을 보시오.》

그는 침울한 목소리로 회의를 끝내였다.

사람들이 헤여져간 회의실에는 공허한 정적이 깃들었다. 림진우는 홀로 남아 괴로움에 잠겨있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작품이 규모가 지나치게 방대하고 모험성이 다분하지만 내용이 참신하고 혁신적이여서 초기에 의견이 분분했지만 궁극에는 태반이 지지하지 않았는가. 뜻밖의 사고에 주접이 들었는가? 물론 생명안전에 대한 우려와 위구심은 리해할만 하다. 그렇지만 원인을 끝까지 밝혀보지도 않고 사고에만 집착하여 이때껏 품을 들여 준비한 작품을 포기하려들다니. 생각같아서는 총연출가의 권한으로 그냥 밀고나가고싶었지만 일은 이미 엎지른 물사발이였다. 여하간에 훈련분과장이 제기한 작품, 인해전술에 매달린 그런 작품을 가지고는 교예장을 제대로 형상하지 못한다.

림진우는 책상우에 널린 책들을 주섬주섬 거두었다.

《아이참, 여기 계신줄 모르고 온 경기장을 헤매고다녔네.》

진우가 고개를 들어보니 량볼이 발깃한 애어린 타자수처녀가 문가에 서있었다.

《왜? 연출실에서 또 긍정자료통계를 제때에 내지 못한거구만.》

《아닙니다. 부부장동지가 총연출가동지를 찾으라고 해서.》

《어디 계시나?》

《24호구앞에 계십니다.》

림진우는 처녀를 앞세우고 회의실을 나섰다. 《아리랑》국가준비위원회를 맡아보는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차성규는 경기장 24호나들문에 서서 준비위원회의 일군들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진우가 다가가자 성규는 서둘러 그에게로 마주 걸어왔다.

《협의회결과는 어떻게 되였습니까?》

인사를 나누자바람에 차성규가 묻는 말이였다.

《잘 안되였습니다.》

림진우는 단마디로 서두를 떼놓고 동안을 두었다가 퍽 음울한 어조로 말해주었다.

《내 창작생활 50여년어간에 이런 일은 처음 당해봅니다. 나와 강진호동무를 내놓고는 다들 자신심이 없어하는군요. 반대하고있습니다.》

《리유는 무엇입니까?》

《글쎄, 그걸 딱히 몰라서 이러질 않습니까.》

그의 음성이 약간 높아졌다.

《제 너무 성급하게 거수가결방법을 내놓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보기에는 사고가 큰 영향을 준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들 회의감이 있겠지요.》

《…》

《부부장동무도 어련히 알겠지만 작품창작과정이라는게 어디 순탄한 일입니까. 큰 작품일수록 더하지요. 이거 좀 도와주시오, 부부장동무. 진호작품은 됩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품이 많이 들긴 하지만.》

《그건 안되겠습니다. 내가 집단의 일치한 의사를 외면하고 다르게 태도를 취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차성규는 말끝을 흐리였다. 강진호에 대한 좋지 못한 반영, 거기에 림진우도 말려들고있다는 반영을 말하려다가 너무 이르지 않는가고 생각되였던것이다.

《어쨌든 그 문제는 후에 토론합시다. 그건 그렇고, 아침에 개성에서 전화가 왔댔습니다. 래일 아침 첫시간에 서울로 출발한다더군요.》

《저도 알고있습니다. 저녁에 렬차로 떠나야지요.》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갑시다. 오늘 마침 문화성경제선동대를 데리고 토지정리전투장으로 떠납니다. 첫 행선지가 황해도쪽인데 현지에 도착하면 그 차로 개성에 가게끔 이미 조직해놨습니다. 그 차를 리용하는 편이 렬차보다 빠를겁니다.》

림진우는 성규의 권고를 쾌히 받아들이였으나 그가 심중한 문제를 헐겁게 넘기는것은 달갑지 않았다.

그는 부부장과 헤여지자 곧바로 지하층의 기재훈련장으로 향했다. 떠나기에 앞서 강진호를 만나 고무와 신심을 주고싶었다. 그러나 진우가 찾는 강진호는 보이지 않았다.

 

 

 

6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형님네 가정은 잘있는지, 귀여운 내 조카애들도 이젠 퍽 컸겠구만요. 우리 고향은 북방의 해안도시여서 아직도 겨울기운이 남아있겠지만 여기 릉라도는 한창 덥습니다. 새벽에 섬을 한바퀴 달리고나면 싱싱한 기운이 온몸에 뻗쳐나고 그러면 젊음의 긍지와 자부심이 북받쳐오르군합니다. 낮에 땀이 흠씬 나도록 일하고나면 진정한 삶의 희열에 떠밀려 휘파람이 절로 나오고, 어머니, 저녁이면 또 얼마나 멋있겠습니까. 슴슴한 물비린내를 맡으며 강가에 앉아 별들이 내려앉아 빛나는 대동강을 바라보며 사색이라는 〈즐거운 괴로움〉에 시달리군 합니다. 그러면 래일에 대한 자신심과 희망으로 하여 밤을 지새고싶은 심정이구요.

어머니, 그런데 이것은 갑자기 옛일로 되였습니다. 지금 저는 이것이 아득한 과거로 여겨지고 마치 꿈을 꾸고난것 같습니다.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며칠전에 제가 맡은 작품을 야외무대에 올려놓고 첫 실동훈련을 하였습니다. 잘 안되였습니다. 재수정이나 부분적인 의견이 제기된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상하고 기재들이 파손되였으며 그래서 저의 작품은 당분간 중지되였습니다. 영영 파묻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든것을 각오하고있습니다. 엄중한 사고를 발생시켜 귀중한 우리 동무들에게 피해를 주고 국가의 설비기재들을 못쓰게 만들었으니 제가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앞에 나설수 있으며 어떻게 감히 자기를 변명할수 있겠습니까.

이 사나흘어간에 사람들속에서는 저와 작품을 두고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아가고있습니다. 그것을 들을 때마다 저는 분하기만 하고 반발심만 솟구칩니다.

어머니, 제 왜 어머니에게 굳이 제 심정을 토로하는지 아십니까.

법적, 행정적처벌을 받는것은 응당합니다. 교예무대에서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될 가혹한 일이 생긴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고통스러운것은 제가 이름을 날리고싶어서, 빨리 당대렬에 들어서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힌탓에 모험을 하였으며 사고를 일으킨 후에는 그걸 변명하기 위해서 된다고 그냥 우긴다는 뒤말들입니다.

이런 너절한 뒤소리를 듣고서야 제 어찌 분격하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이 아들은…》

후- 그만하자. 편지에 괴로움을 진하게 쏟아내던 강진호는 더운 숨을 내뿜으며 펜을 멈추었다. 편지를 읽고 못내 괴로워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는 편지종이를 집어들어 쪼각쪼각 찢어버리였다.

오후내껏 고민속에 싸여있다나니 머리가 흐리터분하였다. 진호는 찢어버린 편지를 모아 태워버리고 문밖을 나섰다.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며 기분을 바꾸고싶었다.

늦은 저녁이여서 그런지 유보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유보도 계단아래 강기슭에는 드문드문 밤낚시군들이 앉아있는것이 보였고 웃도로쪽에서 훈련을 끝내고 돌아가는 출연자들의 웃음소리, 노래소리들이 가끔 들려왔다. 비릿한 물냄새를 싣고 강아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약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선선하였다.

강진호는 왜 그런지 림진우총연출가가 보고싶었다. 그가 걷는 이 유보도는 새벽에 진우와 함께 달리기를 하는 구간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저녁산책을 하며 작품을 토론하는 산보길이기도 했다. 총연출가는 진호에게 있어서 작품창작의 제일가는 동반자, 지지자였다. 부족점이 많아 의견이 분분했던 초시기에 그의 진지한 설득과 사심없는 방조가 없었더라면 강진호의 예술가적재능은 빛을 못 보고 파묻히게 될번 하였을것이다. 그런데 여하튼 결과는 암담하게 끝나지 않았는가. 그 감정이 되살아나서인지 좀처럼 바뀌여지지 않는 기분이였다.

한 십분가량 기계적으로 오락가락하던 강진호는 산보를 단념하고 웃도로쪽으로 올리누운 계단우에 발을 얹었다.

《진호동지!》

뒤쪽에서 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 한정미였다. 정미는 댓걸음 떨어진 거리에 서있었다.

《저기 좀 가자요.》

처녀는 오연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다가 제잡담 돌따서서 유보도휴식터의 대리석란간쪽으로 걸어갔다.

《진호동진 어째서 사람이 그렇게두 곧은목인가요?》

강진호가 란간에 이르자 정미가 한 첫말이였다.

《엄중한 사고가 난데다가 태반이 반대하는걸 보면 전망이 불보듯 뻔하다는걸 알겠는데 그게 뭐예요. 왜 자꾸 우기면서 곁의 사람 보기 딱하게 그러는가 말이예요.》

얼마동안 얼떠름해있던 강진호는 한정미가 말하는것을 듣고서야 처녀가 찾아온 까닭이며 노여움을 터뜨리는 리유를 알아차렸다.

《총연출가동지에겐 미안하게 됐어.》

한정미는 흘껏 눈을 치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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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아니, 할아버지한테 미안할건 하나도 없어요, 진호동지 일이 문제지. 거기에 나까지 포함해서. 사실말이지 그 작품의 운명엔 우리 일이 관계되여있잖아요.》

우리 일? 리해되였다. 작품이 성과적으로 완성되면 나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조선로동당 입당청원도 하게 될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은 한정미일것이다. 그것때문에 평시에 늘 애를 끓인 녀자였으니까. 나를 만나기 이전에 정미의 대상자기준은 가풍과 함께 처녀보다 사업성과가 압도적으로 특출하여 사회적존경과 신망을 받는, 그래서 이른바 자기를 내려다보는 살뜰한 남자가 아니였던가. 그러니 이번 작품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것은 무리가 아닌것이다.

《그럼 정민 내가 어쨌으면 좋겠어?》

딩딩하던 한정미의 얼굴기색이 풀리였다. 정미는 두손을 가슴앞에 모두어잡고 한걸음 다가갔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봐요. 준비위원회에 찾아가 협의회에서 한 주장 철회하고 방향을 돌리겠다고 제기해요. 작품을 편안하게 고치면 될거 아닌가요. 솔직한 심정인데 나두 처음부터 탄력비행의 난도가 높아 뜨아했댔어요. 아니나다를가, 어쩌문 참.

어때요? 진호동지, 그렇게 하지요?》

《그렇겐 못해.》

강진호는 몰풍스럽게 고집했다.

《왜 못해요?》

《내가 주장한건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때문이야. 난 앞으로 교예장을 다른 작품으로 바꾼다 해도 협의회에서 한 주장을 거둘 생각은 꼬물도 없어.

총연출가동지의 심정도 마찬가지일거야. 그가 뭐 마음에 둔 작품이여서, 도와준 작품이여서 손을 들어 지지해준줄 알아? 총연출가동진 예술가의 량심이 가리키는대로 행동한거야. 그런데 내가 내 입으로 작품을 부정하다니, 그렇게는 절대루 못해. 만약 불피코 작품을 바꾸어야 한다면 난 내 작품을 론문으로라도 무조건 주장할테야.》

《할아버지는 왜 자꾸 꺼드는가요? 지금 할아버진 우리 일에 방해만 될뿐이예요.》

한정미는 짜증을 냈다. 강진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일에 할아버지는 방해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라는 말에는 나도 들어있지 않는가. 좋게만 생각하자.

《그러니까 끝내, 끝내 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겠다는거군요, 다름아닌 제 부탁을.》

한정미는 울기가 올라있는 진호의 얼굴을 이상한듯 세세히 뜯어보았다.

잠시 그들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경우가 안된것 같은데 진호동지, 제 하나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강진호는 먼발치에 앉아있는 밤낚시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선입견인지 모르겠는데 요즘 난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들군 해요. 어째서 우리는 마주서면 약속이나 한듯이 어색해하고 따분해하는가요. 우리 집에 인사하러 가자는것도 흔연히 응하지 않고, 근간엔 약속을 어기는 일들도 잦고.

진호동지, 속을 좀 털어놔봐요. 우리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고있어요?》

《…》

《앞으로 우리의 관계는 언제까지 이렇게만 지낼 작정인가요?》

강진호는 씁쓸한 미소를 띠우며 란간에 얹은 두손우에 어깨를 약간 구부리였다. 가늠할수 없는 앞으로의 문제처리로 하여 괴로움에 싸여있는 련인의 심정은 외면하고 그가 말했듯이 경우에도 어울리지 않는 문제를 내드는 처녀의 처사가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그의 거동에 정도이상의 신경이 가는 모양이였다. 한정미는 밤바람의 서슬에 목언저리에서 흩날리는 머리칼들을 모두어잡아 뒤로 던지며 거의나 따지다싶이 재촉하는것이였다.

《왜 말을 못해요. 툭 터놓기 힘든가요?》

강진호는 울컥했다.

《쓸데없는걸 묻는구만. 지금 그걸 론할 경황이나 돼? 선입견은 버려. 난 우리의 관계를 심각하게 끌고갈 생각은 조금치두 해본적이 없어.》

《아니, 난 오늘 그걸 꼭 들어야겠어요. 어서 말해줘요.》

진호는 무가내로 우기는 처녀를 못마땅한 눈길로 지켜보다가 손바닥으로 란간을 가볍게 쳤다.

《좋아, 기어코 알고싶다니 말해주지. 기회가 없어 그랬지 사실 내 전부터 정미에게 하고싶었던 말은 있었어. 하나 묻자구. 그래 휴양을 진짜 가야겠어?》

《휴양이야 공민의 권리인데 어쩜 그런 투로 따지고드는거예요?》

《아니야. 정미는 진짜 몸이 불편해서 그러는게 아니야. 부디부디 휴양을 가겠다고 제기한데는 다른것이 있어.》

진호는 처녀의 대답을 부정하고나서 리면을 파헤쳤다.

《축전참가자선발때 처신을 바로 못해 당조직과 심사위원회로부터 받은 응당한 비판, 그때문에 집단과 동지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한것 같은 느낌, 이런것들로 해서 제스스로 모멸감에 차 어딘가 도피하고싶었던거야.

정미네 할아버지를 만나는것도 그렇지. 우리야 원래 〈아리랑〉이나 끝내놓고 두 집 부모들에게 정식 인사하자고 약속하지 않았댔어.》

《사람을, 사람을 함부로 모욕하지 말아요. 그만해요.》

진호에게서 귀에 거슬리는 뜻밖의 충고를 들은것이 어찌나 분했던지 한정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고는 두손으로 량볼을 감싸쥐는것이였다. 강진호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말을 막지 말고 똑똑히 마저 들어. 지금이 어느때야. 한사람이 두몫, 세몫을 맡아안아도 손이 모자라는 바쁜 시절이 아닌가. 그런데 휴양을 가?

정미는 점점 별나게 돼가고있어. 난 이걸 곁에서 목격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고 불쾌해. 이 나라엔 정미보다 더 큰 공로를 세운 사람들이 많아. 비록 그들은 수수한 작업복을 입고 기대앞에, 콤퓨터앞에, 논벌에 서있지만 알고보면 모두 영웅들이야. 그래도 그들은 내색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일을 못하는 자책감에 싸여 일하거던. 떠받들어주고 내세워줄수록 머릴 숙이구 성실하게 일해야 돼, 더욱 성실하게. 내가 동무에게 언제부터 하고싶었던 말은 이거야.》

어디선가 물면에서 떰벙 하는 물장구소리가 나더니 이내 강변에는 이름 모를 정적이 깃들었다. 아까부터 이쪽을 흘끔거리며 보던 밤낚시군은 왜서인지 혀를 차며 주섬주섬 줄을 거둔다. 그들때문에 물고기를 낚지 못할가봐 자리를 옮기는 모양이였다.

《듣기 좋군요.》

한정미는 볼을 싸쥐였던 손을 풀어 무척 침착한 동작으로 머리며 옷매무시를 천천히 비다듬었다. 몸거둠새를 끝낸 처녀는 란간우에 놓은 선홍색멜가방을 집어들었다.

《참 잘 알았어요. 듣기 좋아요. 동지가 제게 조언을 다 주고. 어쩌면 사랑하는 처녀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험구를 할가. 난 왜 이때까지 이런걸 모르고 지내왔을가. 어디 솔직히 말해봐요. 입당도 하고 명예칭호를 받는게 뭐가 나빠요.》

《난 자기를 속이면서 그런 평가를 받고싶진 않아.》

한정미는 강쪽으로 눈을 돌렸다.

진호는 그가 코웃음을 친것 같이 여겨졌다.

《난 그래도 저를 생각해서 한 권고인데. 할아버지의 관록과 위치, 인끔에 손상이 간다는것을 알면서두 말이예요. 성실하게, 더욱 성실하게 일하라구? 진호동지, 어쩐지 이 말은 자기를 빗댄것 같이 느껴지는군요.》

강진호는 눈을 무섭게 번뜩이였다. 한정미는 태연하게 진호의 눈길을 피하며 어깨우의 가방끈을 추슬렀다.

《됐어요, 피차에 아픈 말은 그만하자요. 서로 리해를 하지 못한다면 더이상 함께 가면 안되는거예요. 사랑이 아무리 귀중해도 난 구걸을 하고싶진 않아요. 전 결심했어요. 우리 관계는 오늘로써, 이것으로 그치자요.》

한정미는 랭랭한 얼굴을 오연하게 쳐들고 걸음을 내짚었다. 너무나도 창졸간에 벌어진 일로 하여 아연해서 굳어져있던 진호는 한참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처녀를 불렀다.

《정미! 정미!》

그래도 처녀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냥 걷는다. 차츰 정미의 도고한 뒤모습도 어둠속에 잦아버리고 멀어져가는 구두뒤축소리만이 무정하게 들리였다.

뒤쪽에서 한무리의 밤낚시군들이 다가오고있었다. 그들은 지나치며 뻔뻔스레 진호를 뜯어보았는데 얼굴에는 한결같이 비웃는듯 한 웃음이 늠실거리고있었다. 방금 처녀와 헤여지는 광경을 목격한것 같았다. 그들중 한명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 한가락을 능청스럽게 뽑아댔다.

 

저건너 앞산에 봉화가 떴구나

우리 님을 허절씨구 만나를 보잔다

아라린가 스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에익, 강진호는 주먹으로 휴식터 대리석란간을 세게 치며 울화를 터뜨리였다. 갈테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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