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의 해방전쟁, 그리고 조선의 자주 (김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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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시간에서는 가르쳐주지도 배우지도 못한 해방전쟁과 조선의 민족자주에 관한
김웅진 선생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Ung-Jin Kim
최후 해방전쟁의 시기, 조선인민혁명군(항일빨치산부대)도 만주지역을 비롯, 조선반도의 북부의 여러 곳에서 해방전투를 벌였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일본군은 8.15, 8.19 이후에도 국지적 저항을 했다. (경흥군토리습격전투 45.8.8; 남별리, 동흥진전투 45.8.8; 경흥해방전투 45.8.9; 훈춘해방전투 45.8.9; 훈춘금창전투 45.8.10.; 훈춘대반령전투 45.8.; 훈융,경원해방전투 45.8.12.; 웅기,나진상륙전투 45.8.11.; 경흥만향고개전투 45.8.12.; 청진상륙전투 45.8.13.; 천마산전투 45.8.13.; 목릉해방전투 45.8.11.; 목단강해방전투 45.8.15.; 청진해방전투 45.8.16.; 라남해방전투 45.8.18.; 경성길주성진단천이원북청흥원해방전투 45.8.16-20.; 함흥해방전투 45.8.21.; 원산상륙전투 45.8.21.; 원산, 고원지구해방전투 45.8.21.; 평양철원해주지구해방전투 45.8.22-31...)
조미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의 지원군은 1953년 휴전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남아서 전후복구와 건설사업을 도왔다. 지원군은 수십 만 채의 파괴 건물, 교량, 가옥, 도로, 시설 등을 복구했고 농사를 도왔다. 소련도 중국지원군의 체류를 은근히 지지했다. 그럼에도 김일성수상은 그들에게 철수하라고 강력히 요구했고, 1958년까지, 잔류하던 40만 지원군을 기어코 모두 철수시켰다. 모택동과 주은래는 섭섭하게 생각했다. "수십만이 저희들을 위해 목숨을 잃었고, 우리는 중국장병들에게 조선의 흙 한줌, 풀 한포기도 조국의 것처럼 아끼고 건설을 도우라고 했고, 농사를 돕느라고 병사들이 온 몸에서 똥냄새가 나게 인분을 운반했는데, 은혜를 모른다.." 김일성수상은 중국이든 소련이든 전혀 고분고분하게 대하지 않았다. 민족의 자주권과 자존심을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리면 지원군 기념동상도 박살을 내고, 펑더화이 사령관이라도 멱살을 잡고 사무실 집기를 때려부쉈다. (참고로, 김주석에 비해 모택동은 19세, 스탈린은 33세, 주은래와 펑더화이는 14세 연상이다.) 애국심과 용기! 민족의 존엄!
사대매국노들이라면 중국이나 소련에게 얼마나 저자세로 기어 다녔을까? 2016년 현재까지 우리 땅에 눌러 앉아서 탄저균실험이나 하는 미제의 군대, 이 땅에서 6백만이나 살상, 학살한 민족의 원수들을 영구히 주둔하게 하려고 온갖 아양을 떨며 동족을 사냥개처럼 괴롭히는 매국 괴뢰가 어찌 같은 민족인가.
1945년 8월 초, 소련군 150만 병력이 5000대의 탱크와 4000대의 공군기의 지원을 받으며 만주로 쓸어내려왔다. 막강하던 일제 관동군과 괴뢰 만주국은 일거에 망했다. 8월 19일 관동군 사령관 야마타 오토조 대장이 무조건 항복하였고, 8월 30일까지 만주 지역과 조선반도 북부에 있던 일본군에 대한 전면 무장 해제가 이루어졌다. 불과 1주일(1945년 8월 9일~15일)의 짧은 기간 동안 8만 명이 넘는 일본군이 전사했으며, 최소 60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 (반면, 소련군의 전사자는 1만 명이 되지 않았다.) 중국 동북의 주민들은 소련군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일본이 항복한 직후부터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했고, 소련군은 동북지역에서 철수했다.
북조선 주둔 소련군은 1948.12. 철수했다.
조미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의 지원군은 1953년 휴전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남아서 전후복구와 건설사업을 도왔다. 지원군은 수십 만 채의 파괴 건물, 교량, 가옥, 도로, 시설 등을 복구했고 농사를 도왔다. 소련도 중국지원군의 체류를 은근히 지지했다. 그럼에도 김일성수상은 그들에게 철수하라고 강력히 요구했고, 1958년까지, 잔류하던 40만 지원군을 기어코 모두 철수시켰다. 모택동과 주은래는 섭섭하게 생각했다. "수십만이 저희들을 위해 목숨을 잃었고, 우리는 중국장병들에게 조선의 흙 한줌, 풀 한포기도 조국의 것처럼 아끼고 건설을 도우라고 했고, 농사를 돕느라고 병사들이 온 몸에서 똥냄새가 나게 인분을 운반했는데, 은혜를 모른다.." 김일성수상은 중국이든 소련이든 전혀 고분고분하게 대하지 않았다. 민족의 자주권과 자존심을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리면 지원군 기념동상도 박살을 내고, 펑더화이 사령관이라도 멱살을 잡고 사무실 집기를 때려부쉈다. (참고로, 김주석에 비해 모택동은 19세, 스탈린은 33세, 주은래와 펑더화이는 14세 연상이다.) 애국심과 용기! 민족의 존엄!
사대매국노들이라면 중국이나 소련에게 얼마나 저자세로 기어 다녔을까? 2016년 현재까지 우리 땅에 눌러 앉아서 탄저균실험이나 하는 미제의 군대, 이 땅에서 6백만이나 살상, 학살한 민족의 원수들을 영구히 주둔하게 하려고 온갖 아양을 떨며 동족을 사냥개처럼 괴롭히는 매국 괴뢰가 어찌 같은 민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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