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의 천남 남새농장의 새 살림집 , 단층주택은 이렇게 텃밭을 일굴 수 있다.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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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과학자거리 살림집 부엌과 식당 ©자주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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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에서 최근 대동강변에 건설한 미래과학자 거리 아파트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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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남쪽에서 하는 말이 북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고 한다. 거주이전의 자유라고 하여 누구나 이런 자유를 무제한 누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서울 강남에서 살고 싶다고 누구나 살 수 없지 않는가. 북에서는 직장을 옮기면 거주이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을 옮기려면 옮겨가고 싶은 직장의 노동과에 가서 먼저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 직장에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되고 기존 직장에서도 이전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옮겨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북은 고급 기술 인력 보다는 누구나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평범한 근로자들의 직장 이전이 더 쉽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현재 직장에서 꼭 필요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굳이 직장을 옮길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현재도 자신이 사회에 꼭 필요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을 옮겨가게 되면 당연히 집도 직장 근처에 있는 것으로 바꿔준다. 우리 집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다.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 3남매로 5식구였는데 평양시 동대원구역 삼마동 단층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1985년 국가로부터 더 크고 좋은 새집을 배정받아 평양시 중구역 교구동 새로 지운 현대적인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집에 들어서니 큰 거실과 방3칸, 부엌, 위생실, 창고가 잘 갖추어져 있었고 매 방마다 고급가구들이 들어있었다. 거실에는 신발장이 놓여있었고, 방들마다 양복장, 이불장, 편수책상, 팔걸이의자가, 부엌에는 찬장과 식탁이 제 자리를 잡고 어서 오라 반겨주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무상으로 차례진 것들이었다. 20층짜리 아파트였는데 한 층에 4세대씩 있고 우리 집은 14층이었다. 우리 아파트 정면에는 평양고려호텔과 윤이상음악당이 있고 왼쪽에는 평양역전,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평양대극장이 바라보이고 뒤쪽에는 대동강이 흐른다. 우리는 이렇게 국가로부터 돈 한 푼 내지 않고 살림에 필요한 고급가구들이 들어있는 새집을 배정받는다. 북에는 전세, 월세, 계약의 개념이 없고 본인들이 자신의 돈은 들여 집을 살 걱정이 없으며 집에서 쫒겨날 걱정 같은 것은 할 수가 없다. 모든 인민들에게 직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식구수에 따라 칸수를 정하여 무상으로 집을 배정하며 직장을 옮길 경우에는 그쪽으로 집을 교환해준다. 처녀, 총각이 결혼을 하고 구역 주택배정과에 신청을 하면 순서에 따라 집을 배정해 주며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에는 칸수가 많은 넓은 집을 배정한다. 아마 북의 인민들에게 가장 생소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평생내집마련” 이라는 말일 것이다. 얼마 전 2년 전에 탈북한 한 남자를 만나 이야기 해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의 말이 북에서 그 전에는 탈북하여 현재 비어있는 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배정하군 하였는데 지금은 언젠가는 그 사람들이 꼭 다시 돌아올거라면서 국가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가 집주인이 돌아오면 그대로 다시 돌려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