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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교육부재문제'에 대한 비판적 소고 (정기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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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3,897회 작성일 16-10-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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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한마당은 아래와 같이 한시애틀로 보내온 정기열 박사의 민족교육부재에 관한 논문을 싣습니다.  민족교육부재의 남녘과 북미주를 포함한 해외동포 사회에서 이 논문을 계기로 민족교육에 관한 문제를 깊숙히 들여다보고 대책을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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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아래 두편의 글은 11월 12일 <조선대학교 60주년 국제학술대회> 발표 논문입니다. 첫째 글은 그러나 대회에서 "15분 발표" 목적으로 6페이지 분량(약 6,400자)으로 대폭 축약한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전문 일본어로 번역되어 학술대회에서 따로 배포될 것입니다. 영어권 참가자들을 위해선 따로 1-2장의 짧은 영문요약본이 배포될 것입니다.

아래 두번 째 글은 원문으로 모두 14페이지 분량(약 22,000자)의 논문입니다. 글 맨끝에 미주(Endnotes)도 실었습니다. 참고가 되시기 바래서 두 논문을 다 보냅니다. 

조선대학교에 온 지 6년 차가 되면서 그 동안 고민하던 <남녘과 북미주 포함 해외동포사회 속의 "민족교육부재문제">를 <재일동포들의 70년 민족교육운동 시각>에서 다룬 글입니다. 이런 내용의 문제는 처음으로 다룬 글입니다.>>


남녘, 북미주 포함 해외동포사회 일반의 “민족교육부재문제”에 대한 비판적소고
- 재일(총련)동포운동이 70년 꽃피운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사” 시각에서 –

2016년 11월 12일

정기열 박사

(조선대학교 객원교수, 김일성종합대학/중국칭화대학 초빙교수, 제4언론 책임주필)

 

들어가는 말: ‘반민족’ ‘탈민족’ ‘민족거부’ ‘민족기피’ 현상과 ‘보수기독교’: 종교와 민족문제

 

분단 뒤 70년 ‘민족교육’(이하, 민족)이란 화두는 “남녘과 북미주 포함 해외동포사회”(이하, 남해동) 속에선 일종의 천덕꾸러기 신세다. 재일동포 특히 총련동포사회 최대화두는 반면 70년 내리 민족이다. 물론 남해동과 후자의 동포사회형성배경이 근본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남해동은 주지하듯 일제미제의 식민지배를 100년 넘게 받은 사회다. 세계제패를 목적한 워싱턴의 전략적 구도에 의해 분단 뒤 남해동사회가 반민족적 반북친미친일사대분단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역사적 배경이 남해동과 재일동포사회의 민족개념이 서로 다르게 경험되는 이유일 것이다. 남해동 경우 민족이란 화두는 오늘 더 심한 천대, 멸시, 감시 대상이다. 흔히 “빨갱이들 이야기”로 치부된다. 해를 더할수록 극심해진 남녘의 반민족, 친미사대, 반공반북, 탈민족, 민족기피, 민족천시, 민족비하, 민족거부현상이 해외동포사회에 그대로 이식된 결과다. 일종의 문화이식현상이다. 그 현상은 북미주 경우 더 심각하다. ‘미국화’(Americanization) 문제가 제일 극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친미사대문화(종교)가 뼈속까지 체내화한 경우다. 문화식민주의 문화획일주의 곧 문화의 동질화 혹은 획일화(Homogenization)가 낳은 결과다.

 

친미사대문화 곧 문화제국주의(식민주의)가 가장 획일화된 곳은 남해동 특히 북미주동포사회의 “4,000여개 한인교회들”이다. 문화(종교)가 민족과 ‘적대관계’에 놓인 경우다. 원조(元祖)는 물론 탈민족적(반민족적)인 친미사대반공반북사상으로 무장한 수많은 남녘의 “보수교회”(개신교)다. 기독교장로들인 리승만, 김영삼,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보수교회문제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종교인[무당(최태민-최순실)]들로 인해 오늘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내리는 이명박근혜재앙시대가 좋은 예다. 2015년 3월 김기종 선생 미국대사피습사건 뒤 “미국에 사죄하고 대사의 쾌유를 비는 기도회”에서 보수기독교인들이 무당옷 입고 서양발레춤 추며 벌인 기상천외한 “굿판기도회” 역시 좋은 예다. 박근혜 제부(弟夫)까지 “미국에 석고대죄(席藁待罪)한다”며 광화문에 돗자리 깔고 난리친 사건까지 정신병적 수준의 극단적인 서구기독교근본주의와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짬뽕된 반북(탈민족)적 친미사대문제다.

 

주지하듯 일본, 남녘은 펜타곤의 “완벽한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가 관철된 대표적 사회다. 각론에서 차이가 있으나 “뼈속까지 서구화/미국화된 자본주의사회”라는 측면에서 두 사회는 본질적으로 같다. 2차대전 뒤 자본과 제국논리가 지배한 미국지배세상 그 어디서도 진정한 의미의 ‘민족교육’은 뿌리내리지 못했다. 일본땅에서 꽃핀 민족교육운동이 예외다. 유일한 예외다. 바로 이 예외가 민족교육운동을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조선민족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비롯되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반북적인” 일본사회에서 온갖 시련을 딛고 활짝 꽃핀 민족교육운동은 그러나 일본과 본질에서 거의 똑 같은 정치사회문화배경을 가진 남해동에서 꽃펴나지 못했다. 재일본조선인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 경험이 왜 미국지배 다른 세상엔 부재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본 논문의 핵심화두다.

 

“정부출연연구교육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재외동포교육론”과 “민족교육부재문제”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의 “재외동포교육” 곧 ‘민족교육’에 대한 정의부터 먼저 살펴보자: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를 대상으로 민족적 정체성과 유대감을 고취하고, 현지생활 능력배양과 적응력을 신장시켜주고, 귀국 후를 대비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실시하는 ‘모국이해, 현지적응, 국내연계교육’”이다. 위 정의에서 먼저 눈에 띠는 것은 한중연이 ‘민족교육’을 민족교육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외동포교육’이란 용어로 대신 부른다. 제목부터 ‘탈민족적’인 것이다. 한중연은 정부출연연구교육기관이다. 그들의 민족교육에 대한 탈민족적 정의는 역대 ‘한국정부’의 ‘민족교육’에 대한 기본 생각, 자세,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한계와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데 일정한 도움을 준다. 그 정의에선 “민족적 정체성”이란 표현이 ‘민족교육’과 관련된 유일한 단어다. 정의를 요약한 내용엔 아예 그 단어조차 빠진다. 따라서 ‘모국이해, 현지적응, 국내연계교육’이 그들이 주장하는 민족교육의 실체다. 민족교육이라 부를 수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역대정부가 분단 이후 민족교육에 대해 기본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좀 더 깊이 파악할 수 있는 자료 하나를 더 보자. 한중연(1990년대) 자료 “북미지역” 편이다:

 

재외동포교육 [在外同胞敎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미국이민사는 약 100년으로 … 경제적 생계유지가 1차적 관심…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있다. … 국어교육기관이 도처에 설립되어 1907-1929년 하와이에 18개 학교가, 미국본토…에 6개 학교가 설립 … 광복 뒤 오랜 기간 민족교육은 … 본국은 물론 교포자신들에 의해서도 잊혀진 상태가 계속... 정부는 1961년대 … 주일장학관 파견 목적 재일동포 민족교육 관장(‘관장’은 그러나 실은 재일동포유학생간첩사건 조작 같은 감시, 미행, 도청이 기본)… 주미장학관 경우 재미유학생 관장(재일동포 경우처럼 북미주유학생간첩단사건 같은 조작사건, 감시, 미행 등이 기본) …. 1970년대 북미주에 [이민자가 급증하면서부터] 재미교포의 민족교육문제가 다시 부각.. 모국어학습 통한 민족교육중흥 조성할 수 있는 … 1985년.. 로스앤젤레스에 남가주한국[한글]학교 설립… 학교위치 좋지 않고 LA 흑인폭동, 지진 등 발생 교육환경 열악 폐교 위기 ....  재미동포 … 한글교육을 비롯한 민족교육은 주로 867개 한글학교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

 

위 자료에는 남해동의 “민족교육”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이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자료는 북미주이민사 전 기간 ‘민족교육’이라 불릴만한 내용이 왜 전무한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자료에 의하면 100년 북미주이민사에 “민족교육”이라 부를 수 있는 내용은 결국 전무한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한글학교”가 유일하다. 밑줄 긋고 두껍게한 곳은 모두 “867개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는 한글학교 이야기다. 그러나 북미주한글학교는 초등학교 수준의 “모국어”를 가르치는 주말학교가 기본이다. 그것도 ‘한인교회’ 부속학교다. 한중연 자료는 그러나 1주일에 한번 그것도 정부기관이 아닌 교회에서 가르치는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한글학교’에서 어떻게 ‘민족교육’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했다’는 그 민족교육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민족교육과 동일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없다. 참고로 북미주동포사회 민족교육부재문제는 다른 해외동포사회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전반 일본강제이주사, 20세기 북미주이민사는 근본에서 같고 다르다

 

미주이민사가 시작된 20세기 초는 미일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좌우지되던 때다. 1세기 전 숱한 조선민중이 망국노가 되어 세상을 떠돌던 시절 시작된 우리민족의 해외이주사는 그러므로 지역이 어디건(중국, 일본, 미주건) 모두 우리민족에 대한 100년을 넘긴 미일제국주의침략사와의 상호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옳다.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 강제징병, 징용으로 끌려간 망국노들과 그 후예들에 의해 시작된 20세기 전반의 일본강제이주사는 그러므로 같은 시기 만주, 일본, 북미, 남미 등 세상천지 곳곳으로 흘어져간(혹은 팔려간) 해외이민사와 근본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재일동포강제이주사는 거의 100% 남녘동포들로 구성된 20세기 후반 북미주이주사와는 근본에서 다르다. 1세기 전 ‘상갓 집 개만도 못하다’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식민지종주국에 노예처럼 끌려간 재일동포강제이주사는 전쟁 뒤 거의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조국땅을 떠나 “자발적으로 형성된” 해외(북미주)동포이민사와는 근본에서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도 카나다 포함 북미주 그리고 주로 백인국가들인 유럽대륙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로 이어진 남녘동포들의 ‘탈남러시’ 곧 해외이민행렬은 기본 “경제적 이유”에서 출발한 역사다.

 

한편 서구사대주의가 뿌리 깊고 조선민족차별이 극심한 식민지종주국에서 조선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70년 민족교육운동을 발전시킨 사실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남해동에서 민족교육이 부재할 수 밖에 없던 역사를 돌아볼 때 더더욱 그렇다. 민족교육부재문제는 앞에 논한 것처럼 근본에서 온 세상의 미국화 문제다. 세상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제국논리가 지배하는 일본사회에서 꽃핀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사는 그러므로 온 세상의 미국화 문제를 극복했기에 가능한 역사라고 해석해야 옳다. 민족교육운동은 본질에서 미일제국주의자들과의 문화제국주의전쟁에서 승리했기에 가능했던 운동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유네스코가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위대성에 대해 논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보편성(Universality)을 우리민족부터 시작 범세계적으로 시급히 공론화 해야 하는 이유다. 민족교육운동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이미 오래 전 등재되었어야 옳다 주장하게된 배경이다.

 

문화제국주의(미국화)와 재일본조선인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보편성(Universality)

 

민족교육부재문제는 그러나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범세계적 문제다. 예외가 없다. 있다면 지구촌 유일의 “제국주의천적, 미제천적”으로 불리는 조선이 예외다. 조선과 같은 몇몇 ‘반제자주사회주의’ 국가들이 예외다. 조선과 운명과 숨결을 같이한 총련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 또한 예외다. 그것도 국가가 아닌 배경에서 민족교육을 70년 발전시킨 유일한 경우다.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을 전대미문의 인류사 초유의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다. 정치사상문화종교 측면에서의 ‘동질화’(획일화) 즉 “온 세상의 미국화”(문화제국주의) 측면에서 고려할 때 ‘조선’이란 ‘불가사의한 존재’와 재일본조선인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사’는 따라서 인류사에 대단히 특수한 예외다.

 

조선이 미국의 온갖 제국주의책동을 이기고 오늘 최첨단우주핵강국으로 우뚝 올라선 역사와 총련동포들이 역대 일본당국의 온갖 차별, 탄압, 제재를 극복하고 민족교육운동을 활짝 꽃피어낸 역사는 그러므로 근본에서 같다. 조선뿐만 아니라 워싱턴의 지구촌민족교육부재말살전략이 총련동포들에게서도 통하지 않은 것이다. 실패한 것이다. 그 어떤 도전, 고난, 시련에도 진보적인 반제자주적 민족교육운동을 조선은 국가차원에서, 총련동포들은 조직차원에서 70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무려 70년을! 정녕 위대한 인류사적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남해동과 지구촌 곳곳에서 문화제국주의가 민족교육을 질식(말살)시킨 근본 배경이었던 역사를 감안할 때 70년 민족교육운동사의 인류사적 위대성은 따라서 더욱 빛나지 않을 수 없다.

 

민족교육운동은 남녘, 북미주, 해외동포사회는 물론 지구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70년 재일동포운동사는 곧 ‘총련동포운동사’다. 총련동포운동사는 곧 ‘70년 민족교육운동사’다. 즉 민족교육운동 언급없이 재일동포운동을 논할 수 없고 그 반대 역시 같다. 재일동포사회에서 꽃핀 민족교육운동은 그러나 남해동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恨)많은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서 그 어떤 상황, 조건, 처지에도 조국과 운명과 숨결을 같이 하며 70년 피땀으로 일구고 가꾼 총련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과 같은 역사는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사에 전례가 없다. 재일동포들이 70년 꽃피운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렇다. 인류사 그 어느 갈피에도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과 같은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식민지종주국에서 조선사람들에 의해 활짝 꽃핀 민족교육운동을 위대한 인류사적 사건이라고 정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합당하다. 그래야 옳고 타당하다.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주요 근거 중 하나는 무엇보다 먼저 그 운동이 제 나라 제 땅에서 행해진 일반적인 평범한 교육환경에서 꽃핀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방 직후 “민족교육운동”의 첫 걸음을 뗀 ‘국어강습소’ 운동에는 강제징용, 강제징병, 유학 등 일제시대 종주국에 식민지노예로 끌려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운동은 1948년 도쿄 도내 ‘조선학교 폐쇄령’에 맞서 싸우다 당시 오사카에서 16살 소년(김태일)이 일본경찰 총에 맞아 사망하는 “4.24한신교육투쟁”처럼 일본당국의 온갖 탄압, 제재, 억압과 맞서 싸우며 70년 계속된 운동이다. 전국적 단위의 단일한 지휘체계를 갖춘 ‘준(準)국가적’ 조직체계로 정치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며 하나의 옹근 독립국가 지위, 위용에 걸맞는 국제외교관계와 자체의 고유한 언어, 문화, 정신, 얼, 넋, 전통, 생활을 옹호, 유지, 보존하며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독립적인 초중고교육체계를 갖춘 총련조직의 70년 민족교유운동사와 같은 역사는 정녕 인류사에 전례가 없다. 사람과 집단의 위대성이, 조직과 집단에 속한 개개 사람의 용기, 사랑, 의지, 신념, 지혜, 슬기, 아름다움이 집대성된 민족교육운동 같은 위대한 역사적 경험은 인류사에 정녕 없다. 재일본조선인들에 의한 인류사 초유의 그 역사적 경험을 전대미문의 “위대한 무형문화유산”이라 정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때에야 비로소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민족교육운동의 위대한 정치경제문화역사적 의의, 가치가 ‘통전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믿는다.

 

재일동포민족교육운동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옳다

 

식민지시대 민족차별이 계속된 일본에서 재일본조선인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사법민족적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민족교육운동이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아가 분단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조국통일운동 성격을 갖는 것 역시 당연하다. “공화국 해외공민”들인 재일본조선인들이 주체가 된 민족교육운동이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또한 민족교육운동이 반제자주적이고 진보적인 성격을 갖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상극관계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식민지배와 민족분단을 강제한 주범이 반동적인 제국주의세력인 조건에서 총련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이 반제자주적이고 진보적인 운동이 되어야 하는 일처럼 당연한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민족교육운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반제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 ‘조선’”과 70년 “운명과 숨결을 같이” 한 운동이다. 그 정치적 선택 때문에 재일본조선인들은 70년 이루 말로 다 형언키 어려운 대가와 희생을 치렀다. 물론 오늘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총련동포들은 그 어떤 조건에도 조국통일과 반제, 민족자주, 진보, 변혁(혁명)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어떤 환경에도 ‘동포사랑, 민족사랑, 조국사랑이야기’ 곧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된 민족교육운동을 단 한번도 멈춘 적이 없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들의 ‘조국방문’ 걸음은 멈춘 적이 없다. 단 한번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동, 북중남미대륙 등 수백 년 제국주의 지배를 받은 피식민지국가들과 민족들 가운데 침략자들의 말과 글이 아니라 제 민족의 말과 글, 얼, 혼, 전통, 문화가 살아 오늘도 대를 이어 70년 맥박치는 민족교육운동경험은 인류사에 선례가 없다. 민족교육운동은 그러므로 이미 오래 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일찍이 등재되어 세상에 널리 소개되었어야 옳다. 인류가 일찍이 모르는 최악의 열악한 교육 조건, 환경, 처지 속에서도 70년 끊임없이 꽃펴난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경험이 언어, 인종, 민족, 피부, 문화, 종교, 지역에 상관 없이 “세상에 널리 이로운”(홍익인간/재세이화: 洪益人间/在世理化) “인류사적 보편성”을 띠고 있다 믿는다. 유네스코(UNESCO)에 민족교육운동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은 그러므로 뒤늦게나마 대단히 지당하고 천만 번 정당한 일이라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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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약하지 않은 본래 원문)



남녘, 북미주 포함 해외동포사회 일반의 “민족교육부재문제”에 대한 비판적소고

- 재일(총련)동포운동이 70년 꽃피운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사” 시각에서 -

2016년 11월 12일

정기열

(조선대학교 객원교수, 김일성종합대학/중국칭화대학 초빙교수, 제4언론 책임주필)



조선대학교 6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발제논문

 

 

들어가는 말: ‘노예로동’으로 시작된 1세기 북미주이민사

 

북미주대륙(카나다 포함) 특별히 “아메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에 오늘의 수백 만 ‘코리안-아메리칸콤뮤니티’(미주’한인’공동체)가 형성되기까지 약 110년의 세월이 흘렀다.[i] 20세기 초 “꼬레안”(Corean)들이 미국에 첫발을 디딘 때는 조선시대 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다해가던 때다. 1세기를 넘긴 미주이주사는 1902년 12월 2일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만 40일 뒤인 1903년 1월 13일 자정 하와이(사탕수수농장)에 도착한 ‘86명” 첫 조선이주자들로부터 시작된다.[ii] 20세기 초 ‘노예로동’으로[iii] 시작된 미주이주사 배경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1901-1902년 혹심한 가뭄, 홍수로 관서지방에 발생한 대기근; 둘째, 당시 중국, 일본으로부터의 ‘인력수출’이 중단되며 발생한 하와이사탕수수농장 자체의 노동력 부족; 셋째, 조선에 대한 미국기독교단(감리교)의 ‘선교프로젝트’가 핵심배경이었다. 참고로 1902년 제물포를 떠난 조선노동자는 본래 121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와이에 모두 다 가닿지 못했다. 일본 고베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받은 1, 2차 신체검사 때 1차에 먼저 20명, 2차에 15명이 탈락되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결국 86명만 미국땅에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참고로 당시 86명 중 남자는 48명, 여자는 16명, 아이들은 22명이었다.

 

2년 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소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됐던 때까지 약 2-3년 모두 약 7,000명의 “조선로동자”가 하와이사탕수수농장으로 “팔려갔다”.[iv] 조선사람들의 미주집단이주는 그러나 ‘한일합방’이 강제된 1910년 전후 아예 금지된다.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기 위해 관련 자료 하나를 소개한다.

 

… 최초의 이민선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1903년 1월 13일부터 일본의 제지로 이민이 중단된 1905년 7월까지 65척 선편으로 7,226명(남자 6,048명, 여자 637명, 어린이 541명)이 하와이로 들어갔으나 이들 중 479명이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받아 되돌아 왔으므로 1903-1905년 사이 하와이로 이민 간 전체 조선인노동자는 총 6,747명이다. 이민자 중 농부는 불과 1/7이었고 대부분은 막노동자들이다. 또한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사람이 전체의 약 65%였다. 초기 이민자들은 기독교인이 다수고 목회자(목사), 유학생, 향리의 선비, 광부, 군인, 농촌의 머슴, 역부, 건달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v]

 

1905년부터 45년 일제 패망까지 미국 거주 조선사람 증가수는 따라서 완벽하게 멈춘다. 조선노동자들의 해외이주 자체를 아예 금지시킨 배경엔 물론 ‘카츠라-테프트밀약’으로 알려진 1905년의 미일간 야합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망국노’로 전락한 조선사람에게 당시 “해외취업이주”란 말 자체는 실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패망까지 끝없는 해외침략전쟁과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식민지영토확장, 팽창, 지배, 통치, 착취, 수탈에 “로동력”이 절실했을 일제가 그들에게 있던 공짜나 다름없는 ‘식민지로동력’을 ‘취업이주’ 명목으로 미제에게 뺏길 수 없었던 것은 그들에겐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두 부류다. 하나는 역사에 ‘사진신부’로[vi] 알려진 경우다. 또 다른 부류는 초기 ‘조선인류학생’들이다. 사진신부 역사는 하와이로 이주해간 당시 조선노동자 대부분이 20대 남성들이었던 배경에서 시작된다. 당시 하와이사탕수수농장의 여성부족 문제를 푼 것이 ‘사진신부’들이다. 일제시대 20세기 초기 또 하나의 비극적 역사가 탄생한 배경이다. 참고로 사진신부 수는 1910년부터 1925년까지 모두 9백51명에 달했다. 당시 조선인들의 미주이주 자체가 아예 금지됐던 1905년 이후에도 그러나 꾸준히 미국땅을 밟은 또 다른 예외가 있다. 조선인유학생들이다. 기록에는 정확히 1924년까지 약 ‘500 명의 조선류학생’들이 미국 땅을 밟았다. 사진신부들과 달리 ‘류학생’ 대부분은 당시 2천 만 식민지조선민중과 다른, 대단히 다른 극소수의 특수한 예외였을 것이다.

 

II부: 북미주동포사회의 ‘반민족’ ‘탈민족’ ‘민족거부’ ‘민족기피’ 현상과 ‘기독교’: 종교와 민족

 

북미주동포사회 속의 민족교육부재문재와 동포사회의 탈민족적 미국화, 그리고 기독교문제

 

모두 약 250-300만으로 추산되는 북미주동포사회엔 오늘 전국적으로 약 3,500-4,000개의 교회(주로 개신교)가 있다.[vii] 불교사찰은 100개를 넘지 못한다. ‘민족’ 혹은 ‘민족교육’이란 화두가 재일동포사회와 달리 북미주에선 일종의 천덕꾸러기 혹은 ‘찬밥’ 신세가 된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북미주와 달리 재일동포사회 속의 최대화두는 그러나 70년 내리 ‘민족’이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쓰는 ‘민족’이란 화두가 말은 같되 뜻은 크게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경험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생활과 심장에서 경험되는 뜻 또한 다를 것이다. 전자, 후자 동포사회의 형성배경이 정치사회역사적으로 근본에서부터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민족 특히 남녘사회는 주지하듯 100년 넘게 일제, 미제에 의해 연속 식민지배를 받은 역사다.  20세기 후반부터 우리는 특히 분단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 시대적 배경이 재일동포사회와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속에서 경험하고 심장으로 느끼는 민족개념을 서로 다르게 만든 배경일 것이다. 남녘과 북미주동포사회에서 민족 혹은 민족교육이란 화두는 과거보다 더 심하게 천대, 멸시 받는다. 고리타분한 존재다. 경외시된다. 흔히 “빨갱이이야기”로 치부된다. 남녘의 반민족적이고 친미사대적이며 대단히 맹목적인 반공반북적 탈민족, 민족기피, 민족천시, 민족비하, 민족거부 현상이 해외동포사회 전반에 여과없이 그대로 이식된 경우다. “문화이식”( 文化移植:Transplantation of culture) 결과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과 같은 파괴적 경우다. 북미주동포 경우 그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북미주가 ‘미국화’에서 으뜸가는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획일화’(Culturual Homogenization)가 제일 뿌리 깊게 체내화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viii] 친미사대문화가 뼈속 깊이 ‘세뇌’된 대표적 경우다. 친미사대 곧 문화적 획일화가 제일 무섭게 세뇌된 곳은 그러나 위에 언급한 4,000여개 ‘한인교회’들이 아닐까 싶다. 종교와 민족이 일종의 ‘적대적 관계’에 놓인 대표적 경우다. 원조(元祖)는 물론 탈민족적(반민족적) 성향의 미국화된 남녘의 기독교회들이다. 세상을 ‘밝히는’ 존재가 아니라 거꾸로 지극히 ‘어둡게’ 만드는 하여 통일문제에서 마지막까지 가장 어려운 걸림돌로 남을 ‘기독교’가 원조다. 친미사대반공반북사상으로 뼈속까지 무장한 ‘보수기독교’ 문제가 원조다.

 

맹목적인 반공사상으로 무장하고 기독교근본주의(Christian Fundamentalism) 신앙에 기초한 대단히 반북적인 대부분 “북미주한인교회”들의 ‘보수적’ 정치성향은 남녘의 이명박근혜 지지세력과 대동소이다. 차이가 크게 없다. 기독교근본주의와 친미사대주의가 “뼈속까지” 세뇌된 대단히 반북적인 북미주 한인교회들 문제는 그러나 우연의 소치가 아니다. 세상을 속이기 위해 80년대부터 소위 “소프트파워”(Soft Power)로 불리는 수백 년 ‘문화제국주의’ 후과다. 500년 서구지배사는 총칼 앞세운 군사제국주의와 기독교(성경) 앞세운 문화제국주의의 혼합역사다. 제국주의자들은 지난 500년 그랬듯 오늘도 지구촌 곳곳의 식민지민중을 총칼로 무차별 학살, 파괴하고 다른 한편에선 제국주의 언어(말), 문화, 종교로 그들을 끝없이 세뇌 곧 ‘무력화’(Pacification) 시킨다. “서구세력”이 500년 지난 오늘도 세계를 지배하는 결정적 배경이자 원인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식민사관” 탄생의 배경이다. 북미주동포사회는 무엇보다 다수가 스스로 ‘미국화’(식민화)된 경우다. 북미주에서 ‘민족교육’ 흉내라도 낸 것이 있다면 ‘한인교회’들이 운영하는 ‘한글학교’가 유일하다. 뒤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게될 대단히 기초적(초등학교) 수준의 ‘우리말학교’다. 그것조차 주말에 한두 번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북미주동포사회 ‘한글학교’와 재일본조선인들이 70년 고난 속에서 꽃피운 민족교육운동은 따라서 근본에서부터 다르다. 하늘과 땅 차이다. 차원이 다르다.

 

주지하듯 일본과 남녘은 미국 특히 펜타곤의 “완벽한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가 70년 관철된 대표적 사회다. 그들은 각론에서 차이가 있으나 “뼈속까지 서구화/미국화된 자본주의사회”라는 측면에선 본질적으로 같다. 자본과 제국논리가 지배하는 미국지배세상 그 어디서도 민족교육은 피어나지 못했다. 일본이 예외다. 일본땅에서 꽃핀 민족교육운동만이 예외다. 유일한 예외다. 왜? 어떻게? 어떤 원인, 어떤 배경에서? 위와 질문들은 일본 포함 세상의 모든 양심들이 왜 민족교육운동을 인류사적 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타당성, 정당성을 제공하는데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믿는다. 미국지배가 완벽하게 관철된 하여 친미사대주의가 뿌리 깊은 일본사회에서 그 어떤 도전, 고난, 시련에도 불구하고 꽃펴난 민족교육운동이 일본과 거의 똑 같은 정치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남녘 같은 다른 세상에선 왜 꽃펴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에도 역시 일정한 해답을 준다.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으로 기록될 재일본조선인들의 70년 경험이 왜 다른 세상엔 부재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역시 일정한 해답을 제공한다.

 

일제잔재청산 실패와 민족교육부재문제의 상관성

 

위의 질문들에 대한 “통전적인”[ix]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이해가 만약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개개인의 사회적, 민족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을 떠나 세상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민족교육운동의 유네스코등재를 지지해나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본사람 또한 예외가 아니라고 믿는다. 논문에서 재일동포사회 경험과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나아가 세상 일반의 민족교육부재문제를 “있는 그대로” 비교연구하게된 배경이다.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어디나 반민족적인 친미사대분단세력이 권력을 틀어쥔 조건에서 제대로된 민족교육이 시작조차 못했을 것임은 따라서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이미 오래 전 내려진 것이다.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크게 없다고 믿는다. 거의 대부분 제대로 시도조차 못했다. 세상천지 다른 곳은 둘째치고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전반의 민족교육은 따라서 거의 완벽한 실패다. 왜? 어떻게? 어떤 배경에서? 무엇보다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속에서 “일제잔재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완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산은 커녕 오히려 갈수록 더욱 장성강화됐다. 해방 직후 정치경제사법교육문화대학종교 각 분야 지배층(간부급) 특히 법원, 검찰, 경찰, 군대의 지휘관급 거의 모두 친일민족반역자들이었거나 그와 비슷한 배경을 가졌던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던 역사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남녘의 법원, 검찰, 경찰, 군대가 오늘도 반민족반북반공친미사대세력의 시녀 노릇하고 있는 이유다. 일제잔재가 그 모든 곳에 깊이 뿌리내렸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대표적 경우인 경찰 예를 하나 들자.[1]

 

1946년 미 군정하 경찰 간부의 비율을 보면 관구장 63%, 도경국장 80%, 총경 83%, 경사 이상 간부 83%가 일본 경찰 출신으로 그들이 다시 무대 전면으로 부활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시대 경기도 보안과장 전봉덕은 해방 후 헌병사령관으로, 평남 보안과장이었던 노덕술은 해방 후 수도청 수사과장으로, 일제시대 경기도 수사과장 이었던 최연은 해방 후 경기도 경무국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경찰이 설 자리는 추호도 없었다. 전봉덕, 노덕술, 최연 등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 경시까지 올랐던 이들이 다시 경찰 조직의 수뇌부로 부상하게 된다. 당시 이들을 미군정과 경찰 수뇌부로 천거한 이는 친일 경찰의 대부로 불렸던 최연으로 알려져 있다. 1947년 발간된 수도경찰 발달사를 보면 장택상 수도청장 휘하에 서울시내 10개 경찰서장 자리를 모두 일제경찰 출신들이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일제 고문경찰로 악명을 떨쳤던 노덕술도 등용된다. 명분은 좌익을 척결할 수사진의 강화였다.

[출처] 악질 친일 경찰 노덕술|작성자 화성인

 

소위 “해방된” 제 땅에서조차 70년 “민족교육”을 제대로 실천조차 못한 정치사회문화적 배경이다. 남녘의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가 오늘도 여전히 “빨갱이, 불법노조, 이적단체”로 시련을 겪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하나의 좋은 예다. “민족교육” 자체가 ‘좌경시’(백안시)됐던 환경에서 ‘민족교육’이 부재/전무할 수 밖에 없던 것은 따라서 하등 이상하지 않다. 해방 뒤 70년 지난 오늘도 남녘사회가 일제식민사관, 역사부정, 국정교과서, 일본군성노예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은 따라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일본제국 관동군 중위 다카기 마사오>[1] 딸(바뀐애)이 지애비(18년)도 모자라 오늘도 여전히 청와대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가장 좋은 예다. 2016년 10월 24일 ‘한국국방부’는 ‘박정희 37주기’ 공식기념사에서 박정희가 “1945년 광복군 활동을 했다”고까지 발표할 정도다.[x] 민족교육부재문제는 따라서 결코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문제다.

 

“온 세상의 미국화”(탈민족화, 서구화, 자본주의화)문제와 민족교육부재(전무)문제의 세계화

 

민족교육부재문제의 원인규명과 해결방도는 따라서 온 세상의 미국화 곧 서구문제 일반에서 찾아야 옳다. 그래야 오늘 우리민족만 아니라 중러 포함 세상 거의 모든 나라 일반의 “탈민족화 현상”에 대한 원인규명과 근본적인 해결방안 또한 찾을 수 있다. 한 예로 미국화 곧 “서구화”(Westernization) 문제는 자본주의사회뿐 아니라 35년 “개혁개방”(改革開放: Reform and Opening Door) 시기 “급속히 서구화”(2011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후진타오 국가주석 발언)된 하여 오늘 다른 자본주의사회들과 크게 다를바 없을 정도로 ‘급속히 서구화된 중국’에도 적용된다. ‘민족교육부재문제’는 우리민족만 아니라 중국 포함 지구촌 곳곳의 타민족 국가들에도 존재한다. 지구촌 전반의 민족교육부재현상의 근본원인을 온 세상의 미국화 곧 서구화 문제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 모든 현상과 문제는 온 세상의 “미국식 자본주의화”가 낳은 후과다. 범세계적 차원에서 미국화가 양산한 민족기피, 민족천시, 민족거부, 민족비하 등 천차만별의 탈민족적인 반민족적 후과는 참담할 정도다. 치명적이다. 오래 간다. 서구중심(West-centered)의 세계관, 사고, 언어, 문화, 종교, 철학 등 흔히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xi]으로 불리는 20세기 후반 서구논리 곧 이분법적인 제국주의논리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온 세상에 탈민족적인 서구중심의 반민족적 병패(현상)를 온 세상에 양산했다. 세계관, 사고, 언어, 문화, 종교, 철학에서 주체와 민족, 계급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신 서구중심의 세계관, 사고, 언어, 문화, 종교, 철학이 틀고 앉았다. 외세의존, 서구사대주의, 탈민족주의가 지식인세계(The Elite Society: 주로 학문(대학), 언론, 전문가)에 유행병처럼 퍼지게된 근본적 원인이자 배경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이며 철두철미 미국화된(Thoroughly Americanized) 사회” 중 하나인 ‘대한민국’이 아주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남녘사회가 오늘 어느 정도까지 ‘미국화’ 됐는가를 보여주는 구체적 실례가 하나 있다. “대한민국을 미합중국 51번째 주(State)”로 편입시키자는 ‘운동’ 아닌 운동까지 탄생한 사례가 그것이다.[xii] 미국식 자본주의사회답게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사회”를 탄생시켰음은 물론이다. 주지하듯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 세계1위”의 불명예를 10년 넘게 고수하고 있다. “공공언론의 외래어 사용은” 그것이 도대체 우리말인지 외래어인지조차 분간키 어려울 정도다. 언어, 사고, 의식, 가치판단, 기준, 문화, 종교, 생활 등 남녘사회 거의 모든 것의 총체적 미국화가 뼈속 깊이 진행(세뇌)된 결과다. 대표적으로 언어 예를 하나 들자:

 

“… 지난 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 소속 방송언어특별위원회(이하 언어특위)가 실시한 '지상파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목 사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상파 텔레비전의 장르별 외래어, 외국어 사용비율이 뉴스의 39.40%, 예능의 33.90%, 시사교양 28.00%, 드라마의 16.70%다. 심지어 어린이프로그램의 외래어(외국어) 사용비율이 무려 16.90%에 달한다. … ”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언어 파괴의 심각성. 이대로 좋은가?]에서 발췌[xiii]

 

서구중심 세계관, 언어, 사고, 문화, 종교는 남녘사회 특히 지식계층에 ‘서구사대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탈민족주의’(Post-nationalism)[xiv]를 유행시켰다. 이명박근혜망국시대 9년은 그 현상을 전사회적으로 더욱 촉발, 확대, 심화시킨 대표적 시기다. 탈민족주의(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또 다른 이름)[xv]은 전반적으로 “서구화된 지식인세계” 일반의 서구사대주의문제다. 서구중심 지식인사회에 발생한 또 하나의 “사회문화적 질병”(socio-cultural disease)이다. 소위 “배운자”들 곧 지식계급이 “제꾀에 제가 넘어가는” 격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다. 나라, 민족은 소위 ‘배운자들’ 곧 ‘지식계급’이 망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못 배운 밑바닥 민중(인민)이 아니다. 대부분 사대주의하며 외국에서 얻어 들은 알량한 지식 갖고 장사하는 자들이 나라, 민족 망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역사는 물론 인류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자본과 제국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천지 거의 어디서나 “민족교육이 부재할 수” 밖에 없는 근본원인은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온 세상의 미국화”(Americanization of the World)로 대표되는 서구화 문제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옳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재외동포교육론”과 “민족교육부재문제”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전반의 ‘민족교육부재문제’를 실례를 들어가며 좀 더 구체적으로 규명해보자. 남녘의 “정부출연연구교육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의 “재외동포교육”에 대한 정의부터 먼저 살펴보자: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를 대상으로 민족적 정체성과 유대감을 고취하고, 현지생활 능력 배양과 적응력을 신장 시켜주고, 귀국 후를 대비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실시하는 모국이해, 현지적응, 국내연계교육”이다. 한중연 정의는 그런데 제목부터 ‘민족교육’을 ‘민족교육’이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재외동포교육’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부른다. 그 용어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탈민족적’이다. 민족이란 말을 제목에서부터 아예 탈락시킨 정부출연연구교육기관의 민족교육에 대한 탈민족적 정의는 분단 뒤 역대 ‘한국정부’의 ‘민족교육’에 대한 기본적 생각, 자세,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한계와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먼저 일정한 도움을 준다. 위 정의에 의하면 역대정부는 민족교육에 대하여 대강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 민족적 정체성, 유대감 고취; 2) 현지생활 능력배양, 적응력 신장; 3) 귀국 후 대비 모국이해, 현지적응, 국내연계다. 한중연 정의에 의하면 그들이 민족교육이라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은 (1)의 “민족적 정체성과 유대감 고취”라는 표현(물론 말뿐이지만)이 유일하다. (2), (3)은 민족교육이라기 보다는 이민자들을 현지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귀국 후 국내와 연계가 잘 이뤄지도록 돕는 일종의 봉사수준이야기를 민족교육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남녘역대정부가 분단 이후 민족교육에 대해 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좀 더 깊이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하나 있다. 위에 소개한 한중연(1990년대) 자료다. ‘재외동포교육’(제목), ‘북미지역’(부제)이란 자료다. 자료에서 한중연은 “민족교육”이란 용어를 여기저기에서 사용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 대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재외동포교육 [在外同胞敎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북미지역

 

"미국이민사는 약 100년으로 교민 1세대는 경제적 생계유지가 1차적 관심이었고, … 소수민족의 문화적 특성을 살리고 보존하는 다문화정책을 견지하는 미국에서 우리 교민들은 거주국 교육을 받으며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있다. … 당시 미국에는 국어교육기관[한글학교]이 도처에 설립되어 1907∼1929년에 하와이에 18개의 학교가, 미국본토(주로 캘리포니아)에 6개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 광복 뒤 오랜 기간 이들에 대한 민족교육은 이민교포의 세대교체 및 6·25전쟁으로 인하여 본국 국민은 물론 교포자신들에 의해서도 잊혀진 듯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정부에서는 1961년도에는 일본에, 1970년대 초에는 미국·독일·프랑스에 각각 장학관을 파견하였으나, 주일장학관 파견 목적이 재일동포의 민족교육 관장(감시, 방해, 악마화)에 있었던 반면 주미장학관 경우는 재미유학생을 관장(감시, 미행, 도청, 악마화, 재미유학생간첩단사건 조직 등)하는 것이어서 당시의 대조적인 상황을 나타내주고 있다." ... "1970년대 북미주지역에 [이민자가 급증하]면서부터 재미교포의 민족교육문제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78년 ‘이중언어교육’에 관한 미국법이 종전의 부정적 방침에서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모국어학습을 통한 민족교육 중흥을 조성할 수 있는 …. 이에 따라 1985년 2월에 로스앤젤레스에 남가주한국[한글]학교를 설립하고 1992년 9월에 중·고등학교를 병설하였으나 그 후 … 학교 위치가 좋지 않고 로스앤젤레스의 흑인폭동과 노스리지 지진 등 악재와 함께 발생한 교육환경의 열악으로 폐교되는 위기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재미동포 대부분은 미국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고 한글교육을 비롯한 민족교육은 주로 867개의 한글학교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 캐나다는 이민 역사가 짧으나 초기에 유학생 이민으로 시작하여 제3국을 통한 3국 경유 이민, 가족초청이민, 취업이민, 1980년대의 투자이민으로 동포수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역시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필자 주: 분량을 줄이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저자의 본래 뜻을 보다 정확히 전달키 위해 부분삭제와 일부 표현에 수정을 가하고 활자를 두껍게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xvi]

 

긴 자료를 굳이 소개한 목적이 있다. 위 자료에는 북미주동포사회 “민족교육”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 정보들이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 기초하면 해외동포사회 특히 북미주이민사 전 기간 ‘민족교육’이라 불릴만한 내용이 실재(实在)했는지 혹은 부재(不在)했는지에 대한 사실 파악이 가능하다. 이 자료에는 민족교육이 실재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부재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특히 남녘역대정부의 민족교육에 대한 생각의 한계가 무엇인지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위 자료에 의하면 부끄럽게도 100년 북미주이민사에서 “민족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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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긴 자료를 굳이 소개한 목적이 있다. 위 자료에는 북미주동포사회 “민족교육”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 정보들이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 기초하면 해외동포사회 특히 북미주이민사 전 기간 ‘민족교육’이라 불릴만한 내용이 실재(实在)했는지 혹은 부재(不在)했는지에 대한 사실 파악이 가능하다. 이 자료에는 민족교육이 실재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부재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특히 남녘역대정부의 민족교육에 대한 생각의 한계가 무엇인지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위 자료에 의하면 부끄럽게도 100년 북미주이민사에서 “민족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내용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있다면 “한글학교”가 유일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한 자료 여기저기에 밑줄 긋고 두껍게 덮어쓴 내용들이 있다. 거의 모두 ‘한글학교’ 이야기다. 자료에는 “867개의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는 대목이 있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듯 북미주한글학교는 기초적(초등학교) 수준의 “모국어(우리말)교육”을 가르치는 주말학교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주로 주말에만 모이는 ‘한인교회 부속 한글학교’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1주일에 한번 주로 한인교회에서 가르치는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한글학교’에서 어떻게 ‘민족교육’이 가능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한글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담당했다’는 [한국]정부 주장을 뒷받힘할만한 자료 또한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민족교육부재현상’은 북미주만 아니라 해외동포사회 또한 거의 같다. 대동소이다. “민족교육”이라 부를 수 있는 교육내용은 실은 “부재했다” 혹은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거의 전무했다”는 단정적 결론은 따라서 틀리지 않다. 크게 무리가 없다.[xvii]

 

II부: 문화제국주의(미국화)와 재일본조선인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보편성(Universality)

 

20세기 전반 일본강제이주사, 20세기 북미주이민사는 근본에서 같고 다르다

 

미주이민사가 시작된 20세기 초는 주지하듯 카츠라-테프트조약 같은 미일제국주의자들의 밀약에 의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좌우지되던 때다.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이 조선을 타고 앉기로 비밀리 체결한 1세기 전 나라 잃은 망국노가 되어 세상을 떠돌던 시절 해외이주사는 시작된다. 우리민족의 해외이민(주)사는 그러므로 지역이 어디건(그것이 중국이건 일본이건 미주건 과거 쏘련방국가들이건 상관없이) 근본에서 모두 우리민족에 대한 100년을 넘긴 미일제국주의침략사와의 상호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옳다.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 강제징병, 징용으로 끌려간 식민지망국노들과 그 후예들에 의해 시작된 20세기 초반의 일본강제이주사는 그러므로 같은 시기 만주, 일본, 북미, 남미 등 세상천지 곳곳으로 뿔뿔히 흘어져간(혹은 팔려간) 20세기 초반 해외이민사(북미주 포함)와 근본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재일동포강제이주사는 전쟁 뒤 거의 100% 남녘출신 동포들로 구성된 북미주이주사와는 근본에서 다르다. 1세기 전 ‘상갓 집 개만도 못하다’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식민지종주국에 노예처럼 끌려갔던 재일동포강제이주사는 전쟁 뒤 거의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조국땅을 떠나 “자발적으로 형성된” 북미주동포이민사와는 근본에서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1세기 전 특히 전쟁 뒤 급증하기 시작 오늘도 카나다 포함 북미주 그리고 주로 백인국가들인 유럽대륙국가들과 호주, 뉴질랜드로 이어진 남녘동포들의 ‘탈남러시’ 곧 해외이주(이민)행렬은 기본 “경제적 이유”에서 출발한 역사다.

 

서구사대주의가 뿌리 깊고 ‘조선민족차별주의’가 극심한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서 식민지망국노들이 주체가 되어 70년 ‘민족교육운동’을 발전시켜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위대한 기적이다. 불가사의다.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나아가 세상 많은 곳들에서 제대로된 민족교육이 100년 넘도록 부재(거의 전무)할 수 밖에 없던 역사를 돌아볼 때 정녕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민족교육부재문제는 앞에서 논한 것처럼 근본에서 “미국화의 세계화”(혹은 온 세상의 미국화) 결과다. 세상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제국논리가 지배하는 일본사회에서 꽃핀 재일본조선인들의 70년 민족교육운동사는 그러므로 미국화 곧 문화제국주의 문제를 극복했기에 가능했던 역사다. 일본땅에서 꽃핀 민족교육운동은 미일제국주의자들과의 문화제국주의전쟁에서 승리하지 않고 결코 지속될 수 없는 운동이다. 바로 이 측면이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위대성을 논하지 않을 수 없는 제일 중요한 역사적 근거다. 바로 그 측면에서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보편성(Universality)을 논해야 한다고 믿는다. 민족교육운동이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유산으로 이미 오래 전 등재되었어야 옳다고 주장하게된 배경이다.

 

그러나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민족교육부재문제는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 문제는 범세계적 문제다. 그 어디도 예외가 없다. 있다면 지구촌 유일의 “제국주의천적” 혹은 “미제천적”으로 불리는 “조선”과 조선과 반제자주사회주의 성향, 지향, 특히 사회주의혁명국가 건설 배경이 같거나 노정이 비슷한 쿠바, 이란 같은 극소수의 제3세계국가들 뿐이다. 개혁개방시기 ‘급속히 서구화/미국화된’ 문제를 염두에 두더라도 큰틀에서 중국 역시 예외라고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서 자타가 공인하듯 ‘조선’이 대표적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외도 있다. 조선과 운명과 숨결을 같이한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 또한 예외다. 국가가 아닌 틀과 배경, 처지에서 민족교육을 그것도 70년 발전시켜온 역사는 총련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에 유일한 예외다. 민족교육운동을 인류사 초유의 사건으로 전대미문의 위대한 기적의 역사라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사상문화적 측면에서의 ‘동질화’ 곧 ‘획일화’(Homogenization) 즉 “온 세상의 미국화” 구도에서 볼 때 ‘조선’이란 ‘불가사의한 존재’와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사’는 따라서 인류사에 대단히 특수한 예외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이 70년 미국의 온갖 제국주의책동을 이기고 오늘 우주핵강국으로 우뚝 선 역사와 총련동포들이 일본 당국의 온갖 차별, 탄압, 제재를 극복하고 오늘 민족교육운동을 활짝 꽃피어낸 역사는 그러므로 근본에서 같다. 두 역사 다 미국화(문화제국주의)문제를 이긴 지구촌 유일의 예외적 역사다. 온 세상의 민족교육부재문제 곧 미국화가 그들에겐 통하지 않은 것이다. 완벽하게 실패한 것이다. 오히려 반제자주적인 민족교육운동을 조선은 국가차원에서, 총련동포조직은 전국단위에서 모두 70년 아름답게 꽃피워낸 역사다. 정녕 위대한 인류사적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국화가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속에 민족교육을 질식(말살)시킨 근본배경, 원인이었던 역사를 감안할 때 재일동포들의 70년 민족교육운동사의 인류사적 위대성은 따라서 더욱 빛나지 않을 수 없다.

 

재일동포 ‘민족교육’은 남녘, 북미주 포함 해외동포사회는 물론 지구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70년 재일동포운동사는 곧 ‘총련동포운동사’다. 총련동포운동사는 곧 ‘70년 민족교육운동사’다. 즉 민족교육운동 언급없이 재일동포운동을 논할 수 없고 그 반대 역시 같다. 재일동포사회에서 꽃핀 민족교육운동은 그러나 남녘과 해외동포사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恨)많은 식민지종주국 일본땅에서 그 어떤 상황, 조건, 처지에도 조국과 운명과 숨결을 같이 하며 70년 피땀으로 일구고 가꾼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 같은 경험은 우리민족뿐 아니라 지구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재일본조선인들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사는 인류사에 전례가 없다. 전무하다. 재일동포들이 70년 꽃피운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인류사 그 어느 갈피에도 재일동포들이 꽃피운 것과 같은 민족교육운동 경험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식민지종주국에서 조선사람들에 의해 활짝 꽃핀 민족교육운동을 위대한 인류사적 사건이라고 정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합당하다. 그래야 옳고 타당하다.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주요 근거 중 하나는 무엇보다 먼저 그 운동이 제 나라 제 땅에서 행해진 일반적인 평범한 교육환경에서 꽃핀 운동이 아니란 것이다. 해방 직후 “민족교육운동”의 첫 걸음을 뗀 ‘국어강습소’ 운동에는 강제징용, 강제징병, 유학 등 일제시대 식민지종주국에 식민지노예로 끌려간 이들이 주축이 됐다. 그 운동은 1948년 도쿄 도내 ‘조선학교 폐쇄령’에 맞서 싸우다 당시 오사카에서 16살 소년(김태일)이 일본경찰 총에 맞아 사망하는 “4.24한신교육투쟁”처럼 일본당국의 온갖 탄압, 제재, 억압과 끝까지 맞서 싸우며 70년 계속된 운동이다. 민족교육운동이 최악의 환경, 조건 속에서 꽃피어난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이라 아니할 수 없는 역사적 배경이다. 바로 이 배경이 민족교육운동을 인류사에 전무한 위대한 인류사적 민족교육운동경험이 되게한 가장 중요한 근거다.

 

<조선학교 이야기-차별을 딛고 꿈꾸는 아이들>(지구촌동포연대 엮음·선인) 추천사를 쓴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의 말은 경청할 만하다.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사회의 차별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광복 뒤 70년 동안 일본 지배층의 일관된 정책으로 집요하게 재생산돼 온 것이다. 조선학교는 항상 식민지지배 책임을 부인하려는 일본지배층에게 상징적인 표적이 되어 왔다. 그 압력에 대한 저항은 조선반도 남이든, 북이든, 재일이든 분단이데올로기를 넘어 전 민족적으로 공유해야 할 과제다. 조선학교는 이 투쟁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최전선에 선 사람들을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xviii]

 

식민지종주국에서 70년 활짝 꽃핀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은 인류가 정녕 일찍이 모르는 경험이다. 그리 단정해 틀리지 않다. 해방과 분단 이후 일본땅에서 겪은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경험은 그러나 일제시대를 산 2-3천만 조선민족에겐 전혀 낯선 경험이 아니다. 조선사람 전체가 일제시대 이미 경험한 역사다. 일제시대 악랄하고 혹독한 민족차별정책이 장기화되며 우리민족은 자신의 성과 이름, 말과 글을 뺐겼음은 물론 점점 많은 동포들이 점점 자신의 말과 글, 얼, 넋, 뿌리의식을 잃어갔다. 500년 서구지배 속에서 세상 거의 대부분이 ‘서구화’ 하며 자신의 뿌리 곧 말, 글, 얼, 혼, 전통, 문화를 잃어버린 경우와 같다. 500년을 지나며 많은 경우 아예 자신의 말, 글, 뿌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잃어 버렸다. 500년 서구식민주의가 뿌리내린 아프리카대륙과 중남미 경우가 대표적이다. 후자가 특히 더하다. 후자 경우 그들 언어는 수백 년 100% 서반아(西班牙)어로 바뀌었다. 브라질에서만 포르투갈어(Portugese)가 쓰이는 것을 제외하고 중남미는 100% 서반아어를 쓴다. 제국주의자들의 언어가 피식민지 민중의 언어가 된 것이다. 사람의 사고와 의식세계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쓰고 말하는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사고는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xix] 인류사 모든 제국주의역사가 증명하는 명제다. 말, 언어를 잃은 민족 치고 제국주의지배에서 살아남은 민족은 거의 없다. “언어제국주의”(Linguistic Imperialism)[xx]에 대한 해석과 정의가 분분하지만 언어제국주의는 북중남미대륙에 대한 500년 서구식민지배를 가능케한 결정적 요인 가운데 하나다. 말, 글이 그렇다면 ‘종교’(“가장 치명적인 문화제국주의”) 또한 같다. 전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문화(종교)제국주의(Culture Imperialism)는 무력을 앞센 군사제국주의보다 그 후과가 더 치명적이고 오래 간다. 군사력으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러시아, 중동 나아가 동유럽의 일부까지 지배했던 대몽골제국이 중국대륙에 세웠던 위대한 원제국(元帝國)은 한자(漢字)라는 무기(문화)를 가진 중원(中原)의 “문화대국”(文化大国) 한족(漢族)에게 ‘동화(식민화)되어’ 역사에서 사라지고만 경우가 좋은 예다. 중남미 식민지민중의 종교는 500년 뒤 오늘 거의 100% 식민지종주국 종교인 “서구기독교”(흔히 “구교” 혹은 카톨릭)다. 스페인에게서 300년 넘게 식민지배(1571-1898)를 받은 필리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재일동포민족교육운동: 식민지종주국에서 식민지민중에 의해 꽃핀 역설적인 인류사적 사건

 

전국적 단위의 단일한 지휘체계를 갖춘 ‘준(準)국가적’ 조직체계로 정치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며 하나의 옹근 독립국가 지위, 위용에 걸맞는 국제외교관계와 자체의 고유한 언어, 문화, 정신, 얼, 넋, 전통, 생활을 옹호, 유지, 보존하며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독립적인 초중고교육체계를 갖춘 총련조직의 70년 민족교유운동사와 같은 역사는 인류사에 전례가 없다.[xxi] 그것도 식민지종주국에서 끝없는 민족차별, 탄압, 방해, 제재, 온갖 형태의 불이익에도 흔들림없이 70년 꽃핀 민족교육운동사는 인류사에 더더욱 없다. 사람과 집단의 위대성이, 조직과 집단에 속한 개개 사람의 용기, 사랑, 의지, 신념, 지혜, 슬기, 아름다움이 집대성된 민족교육운동 같은 위대한 역사적 경험은 인류사에 없다. 재일본조선인들에 의한 초유의 그 인류사적 경험을 전대미문의 “위대한 무형문화유산”이라 정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때에야 비로소 인류사적 의의를 갖는 민족교육운동의 위대한 정치경제문화역사적 의의, 가치가 ‘통전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믿는다.

 

70년 민족교육운동사는 그러므로 개인과 집단 곧 사람의 아름다움이 총출동/집대성된 위대한 사랑의 대서사시라 정의해야 옳다. 그리 정의해서 틀리지 않다. “끝없는 사랑과 기적의 연속” 그 자체인 위대한 그 대서사시는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민족교육운동 탄생의 역설적 아름다움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그 역설은 제국주의 특히 일제 잔재가 제도적/구조적으로 계속되도록 용인한 워싱턴의 교활한 분열(분단)지배전략과 70년 그에 편승한 역대 일본당국의 반조선(재일본조선인)정책이 탄생시킨 역설이다. 그 역설적 아름다움은 제국주의 잔재가 70년 가장 지독하게 뿌리내린 서울, 동경에서 탄생했다. 일본사회의 극심한 조선민족차별과 반총련문화가 탄생시킨 역설이다. 민족교육운동의 역설적 아름다움을 극한의 조건, 처지, 환경을 극복한 채 꽁꽁 언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인동초(忍冬草)역설적 아름다움에 비교한 이유다.[xxii]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적으로 모든 것이 척박(瘠薄)한(barren, infertile, sterile, poor) 땅 일본에서 재일본조선인들에게 70년 강제된 극한의 그 모든 시련이 인류사 초유의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을 탄생케 했다는 역설은 따라서 틀리지 않다. 정녕 위대한 역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III부: 재일동포민족교육운동을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옳다

 

일제 패망 뒤에도 일본지배계급의 제국주의본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워싱턴 비호 아래 교묘하게 숨겨지고 보호됐다.” 아베 총리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총리가 대표적 경우일 것이다. 주지하듯 그는 “A급 전범”이었다. 70년 숨겨졌던 제국주의본성은 그러나 주지하듯 오늘 또 다시 ‘워싱턴 비호 아래” 아베로 상징되는 신군국주의세력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평화헌법’을 파기하고 군국주의부활을 꿈꾸는 아베로 대표되는 일종의 ‘신제국주의세력’이 그들이다. 일본지배층에게 그대로 남아 있는 제국주의잔재는 70년 재일동포사회와 민족교육운동을 대하는 역대 일본당국의 반조선반총련 정책, 자세, 태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된다. 70년 조선민족차별과 반총련반민족교육운동사는 오늘과 과거 일본지배계급의 제국주의본성이 근본에서 그 어떤 차이도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베정권과 역대 일본당국의 조선인차별정책이 근본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다. 제국주의 성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지배층의 반조선, 반총련, 반민족교육말살정책은 따라서 일제시대나 한신교육투쟁시대나 오늘 아베시대나 근본에서 차이가 없다. 민족교육운동을 끝없이 탄압하고 압살을 시도한 역사적 사례, 근거는 70년 반총련, 반민족교육운동사에 수두룩하다. 역대 일본지배계급은 일제 때와 똑 같은 논리, 배경, 이유에서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베는 따라서 특수한 예외가 아니다. 제국주의 속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일본지배계급의 숨겨진 본성이 오늘 아베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숨겨졌던 제국주의 본성이 아베에 와서 솔직하게 드러난 것일 뿐 특수한 예외는 아닌 것이다.

 

이쯤에서 민족교육운동이 70년 무엇을 목적하고 지향했으며 어떤 꿈과 희망을 가진 교육운동이었는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 간단하게라도 민족교육운동의 본질적 성격에 대해 생각해보자. 첫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교육운동의 민족(주의)적 성격이다. 식민지시대 민족차별정책이 계속되는 일본에서 동포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법민족적 권익을 옹호, 고수하기 위한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이 민족(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다. 둘째 분단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조국통일운동 성격이다. “공화국 해외공민”들인 재일본조선인들이 주체가 되어 벌린 민족교육운동이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하다. 바로 그 성격이 70년 재일동포사회를 다른 지역 해외동포사회와 근본에서 서로 다른 지위에 놓이게 만든 배경이라 믿는다. 해외동포사회 그 어디서도 같은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셋째 민족교육운동의 반제자주적 성격이다. 이 역시 세상 그 어디서도 전례가 없다. 민족교육운동은 따라서 재일본조선인들의 정치경제사회적 권익을 옹호, 고수하기 위한 민족(주의)적 성격 뿐만 아니라 분단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한편 본질에서 반제자주적인 성격을 가진 진보적 민족교육운동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반제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 ‘조선’”과 70년 “운명과 숨결을 같이” 했다. 그 정치적 선택 때문에 70년 재일본조선인들은 이루 말로 다 형언키 어려운 대가와 희생을 치렀다. 오늘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총련동포들은 그 어떤 조건, 처지, 환경에도 조국통일과 반제자주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어떤, 환경, 처지, 조건에도 그들의 ‘동포사랑, 민족사랑, 조국사랑이야기’ 곧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되는 민족교육운동은 단 한번도 걸음을 멈춘 적이 없다. 무엇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들의 ‘조국방문’ 걸음은 멈춘 적이 없다. 단 한번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동, 북중남미대륙 등 서구제국주의 지배를 받은 피식민지국가들과 민족들 중 침략자들의 말, 글이 아니라 제 민족의 말과 글, 얼, 혼, 전통, 문화가 살아 70년 지난 오늘도 대를 이어 살아 맥박치는 민족교육운동경험은 재일본조선인들 외에 인류사에 선례가 없다. 그것도 1-20년도 아니고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실천한 나라와 민족은 더더욱 없다. 전무하다. 해방 뒤 재일본조선인들의 민족교육운동은 그러나 과거 식민지 시대 민족차별과 근본에서 같은 아니 더욱 교활한 형태의 탄압, 제재, 불이익을 끝없이 받았던 70년 분단시대 꽃펴났다. 그러므로 민족교육운동은 이미 오래 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일찍이 등재되어 세상에 널리 소개되었어야 옳다.  세상이 일찍이 모르는 전대미문의 최악의 교육 조건, 환경, 처지 속에서 꽃펴난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운동경험이 지역, 인종, 민족, 피부, 지역에 상관 없이 모두에게 대단히 이로운 “인류사적 보편성”(Universalilty)을 띠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족교육운동이 인류사적 의의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라고 믿는다. 고조선(高朝鲜) 시조 단군왕검(檀君王儉)의 “홍익인간”(洪益人间), “이화세계”(理化世界)[xxiii] 사상이 뜻하듯 민족교육운동이 “세상에 널리 이로운”(洪益人间/理化世界) 인류사적 교육운동경험이라 정의하는 것은 따라서 전혀 무리가 없다. 민족교육운동이 70억 인류에게 대단히 이로운 귀중한 민족교육운동경험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유네스코(UNESCO)에 민족교육운동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은 그러므로 뒤늦게나마 대단히 지당하고 천만 번 정당한 일이라 믿는다.

 

나가는 말: “조선의 승리는 과학이다”, “민족교육운동의 승리는 과학이다”

 

본 논문은 지난 몇년 위대한 민족교육운동의 인류사적 의의에 대한 연구가 무르익어가면서 1차적으로 정리된 생각들을 모은 글이다. 무엇보다 논문에서 다룬 문제들은 일회성으로 연구하고 쓰고 발표하고 멈출 일이 아니라 믿는다. 좀 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는 분들과 집단적인 중장기연구가 뒤따라야 할 과제라 믿는다. 끝으로 유네스코등재 관련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중장기전망, 방안, 대책을 연구하는 후속논문들이 뒤이어 나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최근 <로동신문> 론설위원 동태관 선생의 <조선의 승리는 과학이다>란 제목의 정론 기사가 화제다. 동 선생의 기사 논조, 시각에 100% 동조하며 같은 논조, 시각에 기초해서 아래와 같은 명제로 부족한 미완성의 논문을 끝맺는다: “조선의 승리가 과학”이듯 총련동포들에 의한 “민족교육운동의 승리 또한 과학이다.”

 

 

 

2016년 10월 25일 작성

 

 

 

<끝>

 

 

 

 

미주(Endnotes)


[ii] http://tip.daum.net/question/48622561

[iii] http://tip.daum.net/question/48622561

“… 또 하와이에 간 조선인들이 노예취급을 당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정부로서는 국민을 노예로 팔 수 없다는 것이었다. …”

[iv]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23072

[v] http://tip.daum.net/question/48622561

[vi] <동아일보> 1998, 02, 25자 “고국을 떠났던 선조들 한민족 流民史(유민사)…발자취를 좇아서 (7) 구한말 하와이 농장이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22500209130001&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8-02-25&officeId=00020&pageNo=30&printNo=23804&publishType=00010

관련하여 서울의 학술논문 하나를 소개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하와이 이민에 관한 연구>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47039151&dir_id=0&page=0&query=20%EC%84%B8%EA%B8%B0%20%EC%B4%88%20%ED%95%98%EC%99%80%EC%9D%B4%EB%85%B8%EB%8F%99%EC%9E%90%20%EC%82%AC%EC%A7%84%EC%8B%A0%EB%B6%80&ndsCategoryId=10305

[vii] 북미주(카나다 포함)동포사회에 약 3,500에서 4,000개의 ‘한인교회’들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http://cafe.naver.com/enpost001/1810

http://blog.naver.com/ohgom12/220223255943

[viii] “특정 사회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선택이 다른 나라에서도 채택되어 동일한 문화 현상을 보이는 것을 문화적 동질화라고 한다. 문화의 동질성 현상에 대해 국가들 간 상호교류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주장과 힘이 강한 중심국가가 이익과 필요에 따라 주변국에 일방적으로 자국의 문화를 침투시킨 결과라는 주장이 대립한다.” [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91428&cid=42251&categoryId=42252

[ix] “통전”(統/通全)적은 한자의 통할 통(通)과 통합/통일할 통(統) 그리고 전체의 전(全)을 복합하여 만든 새로운 우리말 신조어다. 영어로 holistic이라 흔히 쓴다. 제국주의논리는 기본적으로 이분법적이고 분열적이다. 사람의 사고체계를 끝없이 쪼개(분열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사물, 상황을 얼른 제대로 파악치 못하게 한다. 명확하고 분명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혼란, 혼돈(Chaos)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오늘 지어는 ‘혼돈의 제국’(Empire of Chaos)이라고까지 불리게된 배경이다. 통전적이란 신조어의 뜻은 따라서 사람들이 사물, 상황을 얼른 바르게 전, 후, 좌, 우, 상, 하를 통일적으로 일관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x]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1024000607

[xi] 결국 서구논리이자 20세기 후반 풍미했던 서구철학의 한 조류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세상일반의 설명 또한 “서구중심적”이다. 그래서 세상은 이래저래 서구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의 모든 것이 500년 서구중심으로 구조화된 이유다. 500년 서구구도를 사고와 의식, 말, 표현, 철학, 종교, 문화에서 깨지 못하면 서구로부터의 해방은 없다. 그러나 말 자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위해 아래 서울 <두산백과사전>의 포스트모더니즘 정의를 소개한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3925&cid=40942&categoryId=32856

[xii] 미합중국 성조기의 51번째 별이 되자!

http://blog.naver.com/stekideau/150124590527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된다면?

http://blog.naver.com/sjm880219/30021460471

우리나라는 미국에 편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58060586&qb=66+47ZWp7KSR6rWtIDUx67KI7Ke4IOyjvA==&enc=utf8§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TsxHvlpySEKssbkCf4KsssssssK-126940&sid=XbrPKE5o7C9FnDkV5O7pXQ%3D%3D

[xiii]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언어 파괴의 심각성. 이대로 좋은가?]

http://chamstory.tistory.com/2493

[xiv] http://blog.naver.com/sten1/10187491584

[xv] “최근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 탈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강종훈(한국고대사연구소, 2008)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1104577

“민족주의, 이제는 버려야 하나”, 이서민(삼성경제연구소, 2008)

http://www.yes24.com/24/goods/3194086

[xvi]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5445&cid=46615&categoryId=46615

[xvii]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2445136&&page.page=1&ndsCategoryId=10915

[xviii] “일본정부가 조선학교 차별하는 이유 아시나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0602.html

[xix] http://cafe.naver.com/social86/37801

[xx]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9964하듈蔰듈﷽﷽﷽﷽﷽﷽﷽﷽

[xxi] <민족교육 ― 재일조선인학교 민족교육 주요년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총련) 자료

http://www.chongryon.com/k/edu/index8.html

<민족교육-민족교육의 체계> (총련 자료)

http://www.chongryon.com/k/edu/

[xxii]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6&docId=58466680&qb=7J2464+Z7LSI&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TsAObspySoVsstmiCRwsssssssN-062771&sid=hQfoNVQowbqM2%2BVYReuOBw%3D%3D

“인동초는 추운 겨울에도 죽지 않고 굳굳하게 살아남아 푸른잎을 유지하며 강인하게 겨울을 나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 겨울은 모든 식물의 생존에 아주 불리한 계절이다. 대부분 식물은 겨울에 잎이 다 떨어지거나, 잎과 함께 일부의 줄기가 죽기도 한다. 일년생 식물은 종자만 남기고 모든 부분이 죽는다. 일부 다년생 경우 뿌리만 살아남아 이듬해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새싹에서 자란 줄기에서 꽃을 피운다. 인동초라는 식물은 겨울 동안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피는 꽃이기에 겨울을 ‘이기는 꽃’ 혹은 ‘인내하는 꽃’이라 하여 ‘인동’(忍冬)의 뜻을 담아 인동초라 부른다.” “8월 18일 오늘, 제15대 대한민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일곱 해가 되었습니다. 투옥, 망명, 연금. 그리고 다섯 번의 죽을 고비 속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 국민과 민족의 화합을 이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추모합니다.”

[출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인동초,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http://blog.naver.com/siheungblog/220790438776

[xxiii] “단군왕검이 건국이념을 ‘홍익인간’으로 정한 까닭”

“…..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이화세계(理化世界)라는 말과 한짝을 이루는 것으로 당연히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화세계는 말 그대로 세계를 이화한다는 겁니다. 理라는 것은 이상, 윤리, 진리를 연상하면 되는 데, 인간이 할 수있는 최상의 도덕적 이상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조상들의 생각의 폭과 깊이가 오늘을 사는 우리보다 [훨씬] 넓고 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상사회를 꿈도 꾸지않고 현실에만 안주하며 급급하지 않습니까. 홍익인간도 이화세계라는 말과 같습니다. 인간이란 것이 사람이란 뜻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시간, 공간, 세간 하듯이 간(間)이라는 것은 세계라는 뜻이 있습니다. 홍익인간은 세상 세계를 심지어 우주 자연 모두를 이롭게하고 위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우리 선조는 국가를 세우면서 세계와 우주를 생각했습니다…”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1&docId=60851158&qb=7KGw7ISg7J2YIOyLnOyhsCDri6jqtbDsmZXqsoAg7ZmN7J217J246rCE&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TsV1/dpySpsssvv5Qj0sssssssd-499682&sid=Xyrh3YUCFP1aQwKucUXZHg%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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