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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패망시킨 전범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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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72회 작성일 16-12-2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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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선생님은 제국주의를 '주의'라고 할 수도 없는 '국제강도근성'이라고 부릅니다.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마음대로 빼앗고 짓밟는 것이니 그야말로 강도나 조폭들이지요.  문제는 백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국제강도근성의 나라들이 겉으로는 정의의 사도처럼 미화하여 민중을 세뇌하고 여전히 국제강도짓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을 패망시킨 전범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김갑수의 조선역사 에세이] - 86

제국주의는 다른 민족을 침략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와 대립되고, 전제정치라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대립된다. 그런데 유럽의 열강과 일본은 자국민에게는 자유를 누리게 하고 민족주의를 강화하면서 다른 민족에게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억압했는데, 이 이중성이 곧 제국주의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제국주의란 ‘주의’라고도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국제강도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의 발달을 산업혁명으로 연결시킨 유럽 국가들은 예전에 없던 생산의 과잉 문제에 부닥치게 되었다.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생산자는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게 되었는데, 시장을 찾고 보니 그곳에는 값싼 원료와 노동력까지 있었다.

그리하여 서구 열강이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군사력이 약하고 빼먹을 게 많은 나라 순서로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식민지’였다. 그리고 식민지를 갖고 있는 나라를 제국이라고 했다. 게다가 식민지에서는 노예와 여자까지 얻을 수 있었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위 체제 확립을 이룬 영국은 19세기 중엽 이미 자기네 영토보다 75배를 넘는 50개 이상의 식민지를 경영했다. 그들은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 전역에 걸쳐 통상권을 지배하면서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그들은 ‘대영제국의 영토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더욱 황당한 말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거였다. 물론 이 말은 그들이 얼마나 인도를 황홀히 여겼는지를 역설적으로 짐작케 하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인도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그들의 강도 근성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이런 영국도 19세기 후반에 들면서 독일, 미국, 프랑스 등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유럽과 미 대륙은 바야흐로 자본주의 강국끼리의 각축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게다가 18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유럽의 경제 불황은 이런 각축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종주국 영국은 광범위한 식민지의 결속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에즈 운하 주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인도 지배를 강화했으며 영연방 자치령을 본국과 결합하려 하였다. 한편 불황이 장기화되자 유럽의 제국들은 더 많은 식민지를 얻으려 하는 과정에서 빈번한 분쟁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1880년부터 30여 년 동안 아프리카를 나눠 먹는 과정에서, 외교적 대립과 군사적 충돌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1898년 영국의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와 프랑스의 대령이 통솔하는 군대는 수단의 나일 계곡에 있는 파쇼다에서 일촉즉발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것은 영국의 종단정책과 프랑스의 횡단정책이 교차점에서 충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제국주의들은 금세 야합하기로 합의했다. 영국은 이집트를, 프랑스는 모로코를 각각 먹는다는 것으로 묵계가 이루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일이 모로코에서 프랑스에 시비를 걸었다. 추악한 이전투구가 전개되었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지역 전쟁도 결국 식민지 분할 전쟁이었다. 남의 나라, 남의 영토를 놓고, 선점한 제국과 우리에게 부스러기라도 떼어 달라는 후발 제국이 벌이는 분쟁과 대립은 하나같이 더러운 싸움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럽의 제국들은 식민지 경영의 명분으로, 대상국의 질서 유지와 문명 혜택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약탈과 학살로 나타났다. 예컨대 벨기에의 군인은 고무 채집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콩고 주민의 팔 다리를 잘랐다. 이런 일들은 식민지 침략과 지배 과정에서 어디서든 예외 없이 빈번히 나타났다.

영국은 금과 다이아몬드가 새로이 발견된 땅을 빼앗으려고 보어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보어인 게릴라들은 무섭게 저항하며 영국군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보어인을 우습게 안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할퀸 것이었다. 그러자 영국은 보어인 섬멸 작전을 무자비하게 펼쳤다.

영국은 인구 50만, 병력 7만인 나라에 45만 명의 정규군을 투입하여 모든 전답과 가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비전투원이 대다수인 보어인 21만 명을 집단 수용소에 넣었다. 시설과 대우가 최악이었던 이 수용소에서는 불과 열 달이 안 되어 2만 구의 시체가 처리되었다.

이제 제국주의의 배후에는 과잉 생산자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그림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대 금융자본가와 무기산업자들이었다. 전자는 금융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손쉽게 전환하기 위하여, 후자는 매출의 지속과 확대를 위하여 극우주의자들과 결탁, 유착했다.

1910년 조선 망국 이후 시점을 기준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20개국 전후, 독일과 스페인과 러시아는 10여 개국, 미국, 네덜란드, 벨기에가 5개국 정도의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 밖에 이태리, 포르투칼, 노르웨이, 덴마크 그리고 일본 등이 제국주의 열강에 합세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일본은 비서구권에서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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