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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15. 천여리원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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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60회 작성일 17-04-2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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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여리원정길

 

김정숙녀장군께서 석방되신 그무렵 일제는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미친듯이 확대하면서 조선을 대륙침략전쟁수행의 《공고한 후방》으로 만들기 위하여 파쑈적폭압과 략탈을 강화하기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대규모적소탕전》을 기도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과 인민들간의 련계를 끊기 위해 경찰간첩망을 확장하며 인민들을 강압적으로 《집단부락》에 몰아넣으려고 더욱 발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급변한 정세에 대처하시여 혁명조직들을 더욱 튼튼히 꾸리고 적후방에서 놈들에게 계속 타격을 주며 국내에 있는 적들의 중요한 군사기지와 군수산업지대들에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여 인민들을 반일혁명투쟁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앞으로 국내에 몸소 나가실것을 구상하시면서 사전에 김정숙녀장군을 국내에 파견하기로 결심하시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 8월 김정숙녀장군에게 통신원을 보내시여 국내에 나가 중일전쟁의 발발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백두산밀영과 사자봉밀영회의들에서 제시된 새로운 활동방침과 사령부의 의도를 소부대와 정치공작원들혁명조직들에 전달하고 그들의 사업을 지도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그 지시에 의하면 김정숙녀장군께서 다녀오셔야 할 지대는 랑림부전으로부터 동해기슭을 따라 단천허천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였다.

그런데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적들의 야수적인 고문을 받은 후과로 하여 사실상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에 있었다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미 경찰서에 체포되여계실 때 사령부통신원이 련락장소에 와서 기다리고있으며 자신의 체포소식을 사령부에 보고하기 위해 떠나려 한다는 련락을 받으시고 절대로 자신의 불행을 사령부에 알리지 말라는 답변을 보내시였었다그러다나니 임무는 김정숙녀장군께서 체포되였다는 보고가 전해지기 전에 하달된것이였다.

통신원은 사령부에 가서 실정을 구체적으로 보고하겠으니 김정숙녀장군께서 몸조리를 한 다음 떠나시든가 아니면 국내에 다른 동무들을 보내도록 하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허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믿으시고 과업을 주시였는데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하여 그 수행을 뒤로 미루거나 다른 동무에게 맡긴다면 어찌 사령관동지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우는 참된 혁명전사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 맡겨주신 혁명임무그것은 김정숙녀장군께 있어서 생명보다도 더 귀중한것이였다이 생명보다 더 귀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김정숙녀장군께서는 허약해지신 몸이였으나 주체26(1937) 8월 어느날 삼엄한 적진을 뚫고 천여리 머나먼 국내정치공작의 길에 오르시였다.

신파를 거쳐 자강도 랑림군 인산리에서 정치공작원들과 지하조직책임자들을 만나 사업하신 다음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련화산줄기의 지초령을 넘어 옥련산의 부전령비밀근거지밀영에 나가시였다.

뜻밖에도 김정숙녀장군을 맞이하게 된 이곳 소부대성원들은 환희로 들끓었다.

그들은 김정숙녀장군을 둘러싸고 위대한 수령님의 안부부터 물었으며 자기들과 함께 싸우던 전우들의 소식이며 부대의 활동과 그 성과들에 대하여 저저마끔 물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들이 알고싶어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일일이 대답해주시면서 사령관동지께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동무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걱정하시여 이번에도 자신을 파견하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행군과정에서 얻은 피로도 푸실새없이 소부대책임자와 함께 밀영지를 돌아보시며 이 일대의 지형과 혁명조직들의 활동정형을 료해하시였다.

옥련산은 해발 2,164m나 되는 높은 산으로서 북수백산줄기와 부전령산줄기가 잇닿아있는 곳에 위치하고있었으므로 산줄기를 타고 사처로 은밀히 나들기에 매우 유리한 곳이였다.

산정에는 옥련대라고 하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마치 구슬을 한줄에 꿰맨 거대한 띠처럼 늘어서있었다옥련대에 올라서면 사방 100리안팎이 손금보듯 환히 보였으므로 사방을 감시하기에도 좋았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밀영지들을 돌아보신 후 근거지를 좋은 자리에 잘 꾸렸다고 말씀하시면서 소부대책임자에게 동무들은 서강회의에서 백두산근거지를 랑림산줄기와 부전령일대에로 확대하라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이 지역이 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는 백두산지구와 린접된 지대일뿐아니라 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하고 혁명조직을 넓혀나가는데서 중요한 전략적의의를 가지는 지대라는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가르치심을 받은 소부대책임자는 자기들에게 부과된 책임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가를 더욱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수령님의 의도대로 근거지를 더 잘 꾸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곳에서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의 모임을 가지시고 백두산근거지를 랑림산줄기와 부전령일대에로 확대할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의도를 받들고 근거지를 더 잘 꾸릴데 대하여서와 조국광복회조직망을 확대하고 근거지주변지역의 청년들로써 생산유격대를 조직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이곳에서 사업을 마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산새들도 쉬여넘는다는 험한 부전령산줄기를 넘으시여 또 하나의 비밀근거지가 꾸려지고있는 신흥지구로 가시였다.

로동계급이 집중되여있는 산업지구인 함흥흥남지구와 가까이 위치하고있는 신흥지구는 오래전부터 반일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곳이였다.

따라서 신흥지구비밀근거지를 잘 꾸리는것은 중일전쟁발발후의 복잡한 정세와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더욱 강화하여야 할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함흥흥남을 비롯하여 일제의 군수공장들이 집결되여있는 동해안지구에 당 및 조국광복회조직들과 여러가지 반일대중단체들을 확대하며 특히 로조농조들을 혁명적으로 개편하고 애국적인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시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당시 신흥지구비밀근거지는 국내 종심깊이 꾸려진 비밀근거지의 하나로서 항일무장투쟁과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당창건준비사업을 전국적판도에서 적극 벌려나갈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을 실현하는데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때를 회상하시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신흥지구의 비밀근거지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때문에 나는 1937년과 1938년에 신흥지구에 직접 왔다갔으며 그무렵에 김정숙동무를 비롯한 유능한 정치공작원들과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성원들을 자주 파견하군 하였습니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지난 7월에 파견하신 장해우를 만나 주변의 실태를 료해하신 다음 신흥지구비밀근거지가 자리잡고있는 경흥리의 뒤덕봉에 가시여 이미 꾸려놓은 밀영들을 돌아보시고 앞으로 꾸릴 밀영위치에 대하여 토론해주시였다그날 저녁에는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소조성원들의 모임을 여시고 부전령산줄기를 타고앉아 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을 실현해나가는데서 신흥지구비밀근거지가 가지는 의의를 깊이 인식시켜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또한 장진군 고대산밀영에서 소부대성원들을 만나신 후 신흥탄광마을로 직접 내려가시여 여러 조직책임자들과 탄광로동자들그들의 가족들을 만나 혁명의 불씨를 심어주시였으며 흥남지구혁명조직 책임자와 신흥탄광지구혁명조직 책임자들을 만나 위대한 수령님의 반일민족통일전선사상을 해설해주시였다.

김정숙녀장군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신흥지구를 비롯한 흥남함흥지구에서 로동계급의 조직들이 확대되였으며 신흥지구비밀근거지를 튼튼히 꾸리기 위한 사업도 성과적으로 추진되였다.

신흥지구에서 사업을 마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또다시 동해기슭의 홍원북청리원단천지방에로의 기나긴 로정을 이어가시였다.

홍원에서 정치공작원을 만나 농조를 조국광복회 산하조직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방향과 방도를 밝혀주시여 시련과 난관에 모대기고있던 홍원농조를 혁명적인 조직으로 새롭게 발전시켜나갈 투쟁의 길을 열어주신 김정숙녀장군께서 또다시 북청으로 길을 떠나려고 할 때였다.

정치공작원들은 멀고 험한 행군길에 너무도 수척해지고 지칠대로 지친 김정숙녀장군을 보기가 딱하여 잠시나마 휴식하시기를 간절히 권하였다.

그러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우리가 한걸음 더 걸으면 더 걸을수록 광복의 날은 한걸음 더 다가올것이라고 말씀하시고나서 《오늘의 이 길이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에 개선할 그날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걸을수록 힘이 솟아납니다.》라고 하시며 길을 재촉하시였다.

그때 공작원들에게는 김정숙녀장군께서 고대산밀영에 들리셨을 때 소부대성원들에게 하시던 말씀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고대산마루에 올라서시여 동해안일대는 물론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 장진고산지대의 나무숲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였었다.

고대산지구는 유격투쟁을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곳입니다사령관동지께서 국내에로 무장투쟁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랑림산줄기를 튼튼히 장악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는데 부전령산줄기에 위치하고있는 고대산지구도 랑림산줄기에 못지 않게 좋은 곳입니다우리가 여기에 오기를 잘했습니다사령관동지께 고대산일대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올릴수 있게 되였습니다동무들의 말대로 산세가 험하다고 하여 되돌아섰더라면 사령관동지께 빈말로 보고하였을것입니다우리는 어떤 조건과 환경에 처하더라도 사령관동지께 올리는 보고는 자기가 직접 보고 확인한 조건에서 정확한것을 올려야 합니다

그 얼마나 숭고한 뜻이 어린 말씀인가.

사령관동지께 올리는 보고는 자기가 직접 보고 확인한 조건에서 정확한것을 올려야 한다!

이 활동원칙철의 신념은 진정 김정숙녀장군에게 있어서 그 모든 육체적고통도 이겨내고 죽음의 고비도 수없이 헤치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지하공작임무를 언제나 훌륭히 수행할수 있게 한 중요한 정신적원천으로 되였다.

바로 이런 철의 신념을 지니시였기에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간악한 일제의 경비망이 늘어서고 밀정특무들이 곳곳에 박혀있는 삼엄한 속을 뚫고 사선의 고비를 헤치시며 천여리원정길을 걷고 걸으시였다.

후치령을 넘어 풍산과 삼수땅을 거쳐 9월 중순 도천리에 도착하신 김정숙녀장군께서는 그동안에 벌리신 정치공작정형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통신원을 통해 상세히 보고올리시였다.

사업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참으로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 주체26(1937) 8월 동해지구의 여러곳에서 벌리신 혁명활동로정은 국내에서의 반일혁명투쟁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자랑찬 로정이였으며 어떤 곤난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를 끝까지 관철해나가시는 불같은 충실성과 불요불굴의 투쟁정신대담하고 능란한 사업방법과 인민적사업작풍을 서사시적화폭으로 보여준 불멸의 로정이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 걸으신 천여리원정길은 그해 9 위대한 수령님께서 진행하신 력사적인 신흥지구진출의 디딤돌로 되였다.

주체26(1937) 10 15일 김정숙녀장군께서는 부대로 돌아오라는 사령부의 명령을 받으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림강현 부후물부근밀영에 도착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하공작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신 김정숙녀장군을 사령부귀틀집앞에서 맞아주시였다.

《수고했소장하오… 정말 장하오나는 믿었소동무가 잘 싸우고 이렇게 돌아오리라고 믿었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장군께서 그동안 귀중한 적정자료와 많은 원호물자를 보내여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들을 승리적으로 결속할수 있게 하시였으며 압록강연안 국경지대와 국내깊이의 동해안일대에 조국광복회망을 꾸려놓아 앞으로의 군사정치활동에서 큰 은을 낼수 있게 하신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언제 어디서나 수령님을 따라 혁명의 한길로만 걷고걸으리라 굳게 맹세다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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