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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5-6. 스리랑카, 진주의 나라에 깃든 눈물의 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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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991회 작성일 23-03-02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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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진주의 나라에 깃든 눈물의 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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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 류태영 박사

 

제국주의자들이 할퀴고 간 나라들은 대부분 심각한 상처들을 받았다. 그 상처가 아물어 정상적인 나라로 존재하는 나라들도 있지만 아직도 그것이 아물지 않고 상처에서 고름이 나오고 부스럼이 가라앉지 않아 고생하는 나라들도 적지 않다.

일찌기 뽀르뚜갈, 네데를란드, 영국의 침략을 받아 443년의 식민지생활의 고초를 당하고 독립된지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내전이 지속되고있는 아시아의 섬나라 스리랑카의 경우가 그 하나의 실례라고 할수 있다.

인디아의 남동쪽, 인디아양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나라 스리랑카는 그 모양이 진주조개와 같다고 하여 《진주의 나라》라고도 불리웠다.

열대성기후를 띠고있는 스리랑카는 년중 이모작으로 쌀을 생산할수 있으며 우거진 산림에는 천연고무와 코코아 등 귀중한 자원들이 매장되여있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론티》 즉 홍차를 무진장 생산할수 있는 천연자원이 있다.

영국은 스리랑카에서 《실론티》를 처음 발견하고 이 나라 이름을 쎄일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쎄일론이라는 이름은 1972년에 채택된 헌법에 따라 스리랑카로 고쳐졌다.

전설에 의하면 B.C. 6세기경 인디아지방의 싱할족인 위자야왕자가 사자의 도움을 받아 스리랑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스리랑카의 국기에는 용맹스러운 사자의 모습을 형상한 그림이 있는데 그것은 스리랑카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있는 싱할족의 자랑이기도 한것이다.

스리랑카라는 이름에서 《스리》는 아름답다는 뜻이며 《랑카》는 땅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합성어로 《아름다운 땅》 그리고 용맹스러운 민족이라는 뜻이다.

스리랑카의 총인구는 약 2 000여만명이며 싱할족 74%, 타밀족18% 그리고 기타 유럽혼혈족과 소수의 말라이족 등이 있다.

종교는 절대다수인 싱할족이 믿는 불교를 국교로 하고있고 인디아를 배경으로 하는 타밀족은 힌두교를 믿고있다. 그외에 그리스도교가 7%가량 된다.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

 

스리랑카의 력사는 B.C. 6세기경에 싱할족의 한 집단이 인디아에서 스리랑카섬으로 넘어와 위자야를 왕으로 내세우고 싱할왕국을 건설함으로써 시작되였다.

이러한 싱할왕국은 약 2 000년동안 왕조를 존속시키면서 고도로 발달한 불교국가를 건설하였다.

스리랑카는 인디아로부터 넘어온 불교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독자적으로 불교문화를 구축했다. 스리랑카는 상좌부불교 즉 소승불교의 나라이다.

이러한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의 력사를 보면 크게 두가지 국면으로 란리가 있었다.

첫째, 불교의 종단들간의 교리해석을 둘러싼 종교싸움이였다.

스리랑카 건국의 초기에는 인디아에서 전승된 불교로서 상좌부불교 즉 소승불교가 스리랑카의 공인된 국교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 상좌부불교는 스리랑카에 불교적민족주의를 확립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상좌부불교는 소승불교에 대항하는 대승불교가 스리랑카에 전래되자 그와의 싸움을 진행하여 12세기에 이르러 대승불교를 스리랑카에서 완전히 퇴각시킴으로써 소승불교의 교단을 완전히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되여 스리랑카에서 1 200여년에 걸쳐 진행된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와의 싸움은 끝나고 정통적인 상좌부불교로 통합평정되였으며 이것이 오늘 스리랑카의 불교로 존속하고있는것이다.

둘째, 타밀족과의 분쟁력사이다.

스리랑카에서 타밀족의 출현은 2 000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타밀족은 남아시아계통의 종족의 하나로서 본래 남인디아지방과 스리랑카 동북지방에 거주하고있었다.

타밀족은 옛날부터 단일한 정치적주체를 이루지 못하고 항상 강대한 왕국들에 의하여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타밀족은 타밀언어를 중심으로 하여 자신들의 언어적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타밀족은 본래 인디아의 힌두교를 믿으면서 불교를 반대했지만 한때는 불교의 대승불교와 합세하여 싱할족의 소승불교를 괴롭힌 력사를 가지고있다.

그러나 력사적으로 놓고볼 때 타밀족과 싱할족과의 분쟁은 내부적갈등뿐이였고 긴 전쟁으로 이어진적은 없었다.

그런데 스리랑카에 서유럽식민주의자들이 침략해들어옴으로써 타밀족과 싱할족의 관계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였다.

이들 두 종족들이 외세의 의도에 따라 극단적인 싸움을 계속하게 된것이다. 그 싸움은 말그대로 비극의 극치에 이르렀다.

오늘 현재 타밀족은 스리랑카에 약 360만명정도 되며 세계적으로는 인디아, 오스트랄리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미국 등에 30만명정도 흩어져 살고있다.

영국은 스리랑카의 원주민 싱할족보다 타밀족을 노예로 부려먹기가 훨씬 편리하고 쉽다는 타산밑에 타밀족을 인디아에서 노루사냥하듯이 잡아 스리랑카로 강제이주시켰다.

결국 오늘 스리랑카에서 일어나고있는 분쟁의 뿌리는 영국식민주의자들이 심어놓은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뽀르뚜갈의 침략시대(1505-1658년)

 

최초로 스리랑카에 침략의 발을 들여놓은 서양나라는 뽀르뚜갈이였다.

뽀르뚜갈은 스리랑카를 발판으로 삼고 해안지역전역을 점령했으며 1658년까지 153년동안 잔인하고 야만적인 방법으로 스리랑카를 완전한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식민주의자들은 스리랑카의 민족종교인 불교를 억압하고 카톨릭교를 강제로 들이밀었으며 만일 응하지 않으면 잔인하게 처형했다. 그리고 스리랑카인들이 카톨릭교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절대로 살아남을수 없도록 무섭고 잔인한 방법으로 통치했다. 불교의 기관은 모두 파괴되고 승복을 입은 스님들은 발견되기만 하면 모조리 살해당했으며 불교고전과 보물들은 모두 략탈당했고 도서관들은 불에 타버렸다.

바로 이 시기에 이딸리아의 트렌트(Trent)에서는 로마카톨릭교회평의회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1. 전통적인 로마카톨릭교외 모든 타종교들은 본질적으로 해롭고 잘못된것이다.

2. 군주와 왕들은 로마카톨릭교의 선교를 위하여 명확한 의무와 책임을 지고있다.

3. 신의 은총에 의하여 개종을 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결의문에 의거하여 뽀르뚜갈침략자들은 스리랑카에서 모든 불교사원들을 파괴시키고 타종교인들의 종교활동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이들은 심지어 결혼식이나 기타 종교적의식들도 반드시 카톨릭교회의 의식으로만 수행할것을 강요했다.

또한 카톨릭교의 교도가 아닌자는 공무원은 물론 상업도 할수 없도록 법적제재를 하는 등 스리랑카인들이 카톨릭교로 개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남을수 없도록 했다.

반면에 카톨릭교로 개종하기만 하면 명예와 리득을 얻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제도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네데를란드의 침략시대(1658-1796년)

 

네데를란드인들이 스리랑카에 처음 나타난것은 1602년이였다.

싱할왕들이 잔인한 뽀르뚜갈인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네데를란드에 도움을 요청했기때문이다.

그때 로마카톨릭교회는 극도로 부패하여 생명을 잃고있었고 프로씨아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남으로써 유럽의 정치적동향은 매우 류동적이였다.

이러한 정세속에서 카톨릭국가인 뽀르뚜갈은 쇠퇴의 운명에 처하고있었다.

스리랑카에 온 개신교 네데를란드인들은 싱할족과 합세하여 카톨릭뽀르뚜갈침략자들을 밀어내고 1658년에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스리랑카는 뽀르뚜갈대신 1658년부터 1796년까지 138년동안 네데를란드에 의하여 또다시 식민지지배밑에 놓이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네데를란드인들은 처음에는 스리랑카인들을 친절하게 대했다. 그리하여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여있던 불교는 어느 정도 소생하는 시기를 맞이하여 나라에는 평화가 깃들고 불교문화도 발전하는듯 하였다.

그러나 네데를란드침략자들은 자기들의 진짜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형식상 겸손과 인내로 자제하고있었을뿐이였다.

네데를란드침략자들은 점차 스리랑카인들에게 개신교를 주입시키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였으며 전령토에 걸쳐 개신교적인 그리스도교교육제도를 확립하기 시작하였다. 학교는 교회를 겸했고 교사는 종교사절의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네데를란드침략자들은 싱할인들이 배정된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범죄자로 취급하여 시민적공민권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것은 생존권과 결부된 문제와도 같았다.

이런 방식으로 네데를란드침략자들은 불교와 카톨릭교를 개신교적그리스도교로 바꾸게 하고 불교문화를 개신교적그리스도교문화로 전환시키는 정책을 무려 138년동안 지속했다.

 

영국의 침략시대 (1796-1948년)

 

유럽에서 영국과 네데를란드의 전쟁이 영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자 영국은 자연스럽게 네데를란드로부터 스리랑카에 대한 식민지통치권을 획득하였다.

영국은 벌써 1600년대부터 인디아에 진출하여 동인디아회사를 설립하고 그 지역의 상업리권을 거의다 장악하고있으면서 스리랑카해역을 탐내고있었다.

1796년에 영국은 결국 네데를란드군을 물리치고 스리랑카를 완전히 점령했다.

영국은 스리랑카왕을 포로로 붙잡아 강제로 1815년에 캔디협정을 강요함으로써 스리랑카는 세번째로 서방식민주의자들의 식민지가 되였다.

1815년 캔디협정을 통하여 또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된것은 B.C. 6세기경에 스리랑카가 세워진이래 2 000여년동안 끈질기게 수호해오던 스리랑카의 불법수호의 전통이 완전히 끝났음을 의미하는것이였다.

영국은 스리랑카의 불교를 말살시킴에 있어서 세가지 방법을 적용하였다.

첫째는 내부의 분렬을 조장시키는 방법이였다.

영국은 내부분렬을 일으켜 영향력있는 불교지도자에 대한 반대세력을 키워 그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둘째는 선교활동을 통하여 전국민을 그리스도교화하는 방법이였다.

셋째는 사회적구조를 통하여 서양문화에 동화되도록 하는 방법이였다.

지위를 얻고 명성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리스도교인이 되여야 하고 서양문화에 근본적으로 동화되여야만 했다.

영국은 스리랑카인들이 불교적전통문화를 수치스러운것으로 여기도록 교육했고 그에 응하지 않는것을 교육받지 못한 계층이나 산간벽지의 비문화권에 속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세뇌공작을 했다.

지난날 뽀르뚜갈과 네데를란드의 식민지시대때에는 그래도 명목상 스리랑카의 군주와 왕조는 계속 존속되고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식민지통치하에서는 달랐다.

1815년에 스리랑카를 공격하여 왕을 포로로 붙잡은 영국은 왕위를 페위시키고 스리랑카왕의 통치권을 영국왕실로 합병시키고말았다.

이렇게 되여 스리랑카의 불교왕조는 영국의 식민지통치하에서 송두리채 끝나게 되였던것이다.

 

《사자》와 《호랑이》의 내전으로 혈투장이 된 스리랑카

 

제2차 세계대전후 스리랑카는 영국련방의 회원국으로 독립하게 되였다.

그러나 열대지방의 비교적 온화한 기후와 홍차로 유명한 신비스러운 산림이 우거진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는 나라의 독립과는 거리가 먼 종족간의 내전으로 참혹한 혈투장이 되고말았다.

스리랑카의 내전은 2 000여만명의 인구가운데 74%정도를 차지하고있는 불교계싱할족과 소수인 18%를 차지하고있는 타밀족간의 뿌리깊은 종족, 종교간의 갈등과 반목에서 비롯되고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스리랑카내전의 뿌리는 영국이 심어놓은것이였다.

스리랑카에서는 1948년에 독립한 이후 겨우 10년동안 평화로운 기간이 있었을뿐 50년 넘게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여왔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타밀족은 무장조직을 결성했다. 이 무장조직은 《호랑이》로 상징되는데 타밀엘람해방조직이라고 부른다.

결국 스리랑카의 분쟁은 국제적무대에서 《사자》로 상징되는 싱할족,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타밀족의 《호랑이》와의 싸움으로 인식되여왔다.

1983년 7월에 《사자》와 《호랑이》간에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였으며 이 분쟁으로 인하여 타밀족 3 000명이 죽고 2만여채의 타밀족의 가옥이 파괴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비극들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있는데 분쟁기간 10만명의 타밀족이 목숨을 잃었고 60만명이 피난민이 되여 세계곳곳에 흩어졌다.

그러면 스리랑카의 사태에 대하여 미국을 비롯한 서방사회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사회는 스리랑카의 사태에 대하여 랭혹하게 침묵으로 모르쇠해왔다.

그 리유는 자기들의 리익때문이다.

이렇게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통치로 하여 생겨난 스리랑카의 눈물의 력사는 아직도 가셔지지 못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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