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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43. 정규무력탄생의 나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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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166회 작성일 17-10-1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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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규무력탄생의 나날에

 

군복에 깃든 고귀한 은정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께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건군로선을 받드시여 정규적혁명무력의 핵심골간육성사업과 함께 정규군건설에 필요한 후방보장사업을 따라세우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당시 무엇보다 급한것은 군복이였다아직 군복이 제정되지 못하다보니 병사이건 지휘관이건 할것없이 입대할 때 입었던 각양각색의 옷들을 그대로 입고있었고 지어 로획한 일본군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있었다.

군인들에게 통일적인 군복을 해입히지 못하다나니 부대의 군사규률을 세우는데서도 정규적면모를 갖추는데서도 적지 않은 애로를 느끼고있었다.

군대안의 적지 않은 지휘일군들도 이런 실태를 알고있었지만 갓 해방된 나라의 경제형편이 그러한데 별수가 있는가 하면서 군인들에게 통일적인 군복을 해입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하고있었다.

해방후 평양학원을 창설하시던 그때에 벌써 우리 인민군대의 군복은 어떤 색갈로 하며 어떤 형식으로 만들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시고 생각을 무르익혀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 10월초 어느날 또다시 일군들에게 군복제정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창조된 전통을 살려 혁명의 군대인민의 군대로서의 성격이 잘 나타나고 민족적특성과 생활감정에 맞으며 전투행동에서도 편리한 우리 식의 군복을 만드는데서 나서는 원칙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김정숙녀사께서는 군복도안을 완성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어느날 오후였다.

저택에는 백두밀림에서 같이 싸운 녀성항일투사들과 보안간부훈련대대부중앙경위대철도경비대 책임일군들이 와있었다.

녀사께서는 손수 그리신 남녀 군관옷과 병사옷도안을 내놓으시고 그들과 토의를 하시였다.

군복도안에 대한 의견은 각이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입던 군복형식에 직급표식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고 다른 나라 군대들이 입는 군복처럼 팔소매와 저고리 앞섶에 금색줄들을 띄워 보기에 어마어마하게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일군들의 의견을 다 들으신 녀사께서는 다정하게 웃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정규군이 입어야 할 군복형식문제를 가지고 경위대지휘관들과도 의논해보시고 평양학원과 중앙보안간부학교 일군들과 학생들의 의견도 들어보시였다고 하시면서 가운데 펼쳐놓은 군복도안을 손으로 짚으시며 수령님께서는 이 군복형식이 그중 좋은것 같은데 토론을 해보라고 하시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시선은 녀사께서 가리키시는 군복도안에 집중되였다.

새로운 군복형식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녀사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군대의 옷은 조국의 자유와 인민의 행복을 무장으로 옹호보위하는 혁명군대의 제복으로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우리 군대의 옷은 혁명군대의 기상이 비끼게 하면서도 인민들에게 친근감을 주어야 하며 조선사람의 체격에 어울리고 생활과 전투활동에 편리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녀사의 말씀은 일군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그들은 군복에 담긴 깊은 뜻을 가슴뜨겁게 깨달으며 자신들의 짧은 생각을 뉘우쳤다.

그들의 대답을 다 들으신 녀사께서는 다정하게 웃으시며 동무들이 다 좋다면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여 결론을 받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세심한 지도밑에 10월초 우리 식의 군복도안이 완성되게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정규군의 직급표식도안을 제정하는 사업에도 깊이 마음쓰시였다.

녀사께서는 어깨에 견장을 다는 문제로부터 견장의 바탕색갈과 장식선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이렇듯 숭고한 뜻과 깊은 보살피심속에서 처음으로 직급표식이 완성되게 되였다.

그후 김정숙녀사께서는 견장시제품을 보시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면서 산에서 싸울 때 모자에 오각별을 단 새 군복을 타입으시고 밤이 깊도록 해방된 조국산천을 그리며 잠들지 못하던 일들을 회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지난날 천대받고 억압받던 조선청년들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우리의 새 군복에 견장을 달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고 하시면서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군복생산을 다그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의논해주시였다.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사에게 군인들에게 군복을 통일적으로 해입히자면 군복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피복공장을 꾸려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는 녀사께서는 건물 한동을 보아둔것이 있다고그것을 피복공장으로 쓰면 어떻겠는가고 수령님께 말씀드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다음날 일군들과 함께 현지에 나가시여 피복공장을 확정해주시고 군대피복공장의 물질적토대를 강화하며 공장운영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녀사의 크나큰 관심과 보살피심속에 빠른 시일안에 꾸려진 이 군대피복공장에서는 그해 10월부터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입을 군복을 꽝꽝 생산하게 되였다.

녀사께서는 피복공장에 여러차례 나가시여 군복혁띠모자 등 피복과 장구류시제품생산을 다그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36(1947) 2 25일 녀사께서는 첫 군복시제품을 경위대원들에게 입혀보시고 미흡한 점들을 손수 바로잡아주신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리시였다.

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정규군대의 녀성군복치마는 항일유격대의 녀성대원들이 입던 치마를 참작해서 량쪽에 주름폭을 잡아주고 밑이 퍼지게 한 주름치마로 만들면 좋을것 같다는 의견을 말씀드리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배낭시제품도 보아주시고 잘 만들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군사행동에 편리하고 쓸모있게 다시 만들어볼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정규무력건설구상실현을 위해 불철주야로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자신께서 몸소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로 결심하시였다.

이날 밤 한 녀성항일혁명투사가 녀사께서 계시는 저택으로 찾아왔다.

그가 녀사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서니 방바닥에는 금시 재단을 끝낸 보위색천이 놓여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주무시지 않으시는 녀사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녀사께서는 정색한 안색을 지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규적혁명무력을 확대발전시켜나가는데 절실히 필요한 인민군대의 배낭견본을 하나 만들자고 하는데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제 군대피복공장에서 장군님께 배낭시제품을 몇가지 만들어올렸는데 잘되지 못했어요.

장군님께서는 아무토록 배낭을 혁명군대의 정규적면모에 어울리면서도 전투활동에 편리하게 만들어야 하겠는데 어느 하나의 시제품도 그렇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항일유격대원들이 쓰던 배낭형식을 참작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어요그래서 내가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항일전쟁시기 우리 유격대원들이 지고다니던 배낭을 참작해서 시제품견본을 만들어보던 중이예요.

그러시면서 녀사께서는 재단중에 있는 천쪼박들을 방바닥에 하나하나 펴놓으시였다.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드시는데서 변함없이 열렬하고 드팀이 없는 녀사의 충실성을 다시금 느끼며 그는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를 정겹게 바라보시며 녀사께서는 어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실현해보자고 하시며 재봉기에 앉으시였다.

녀사께서는 《녀성의 노래》를 부르시며 재단한 배낭천을 한뜸한뜸 누벼나가시였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시며 재봉기를 잽싸게 돌리시는 녀사의 모습은 항일의 그 나날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앞장에서 실현해나가시던 친위전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녀사께서 재봉을 끝내시고 한점의 티도 있을세라 실밥까지 말끔히 뜯어내시였을 때는 새날이 잡혀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녀사께서 만드신 배낭시제품은 항일유격대에서 사용하던 배낭과 류사한 점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참으로 그 어느 피복연구사나 전문재단사도 감히 창작할수 없는 문제들까지도 고려한 완성된 배낭시제품이였다.

녀사께서는 완성된 배낭시제품을 정갈한 붉은 보자기에 싸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제 장군님께서 우리가 만든 배낭시제품을 보시면 매우 기뻐하실거예요정규적혁명무력을 확대강화발전시켜나가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수만 있다면 나는 이런 밤을 몇천번이라도 패고싶어요.

이날 아침 김정숙녀사께서는 밤새워 만든 배낭견본품을 위대한 수령님께 보여드리시였다.

녀사의 설명을 들으시며 배낭을 주의깊게 살펴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배낭이 보기도 좋고 쓰기도 편리하며 공장에서 만들기도 쉽겠다고 하시며 멜끈을 그렇게 누벼서 만드니 정규군의 면모에도 손색이 없고 천도 많이 절약되겠다고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기쁨이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삶의 전부였으며 최상의 행복이였다.

녀사께서는 곧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군복과 배낭을 비롯한 피복들을 완성하도록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 3월 중순 그 시제품을 조선인민군 군복으로 제정해주시였으며 4월말까지 모든 군인들에게 입힐수 있도록 여름철군복을 생산보장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정규적혁명무력의 면모에 어울리는 군복이 제정된 기쁨을 안으시고 거의 매일같이 피복공장과 여러 공장들에 나가 작업을 흐름식으로 하여 생산도 늘이고 질도 높일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백두산위인들의 현명한 령도와 보살피심속에 이해 5월부터는 모든 군인들이 새 군복을 입게 됨으로써 우리의 군대는 정규적혁명무력의 면모를 갖추게 되였다.

군복제작을 위한 김정숙녀사의 정력적인 활동은 위대한 수령님의 정규무력건설구상을 하루빨리 실현하는데서 혁명전사의 참된 삶과 보람을 느끼시는 녀사의 숭고한 인생관과 오로지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혁명무력건설의 절대적기준으로 삼으시고 모든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나가시는 투철한 자세와 립장을 보여준 과정이였다.

11 

 정규무력을 우리 식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은 새 조선건설의 다른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이였다.

이 시기 우리 나라에서는 정규적무력건설과 관련한 그 어떤 경험도 가지고있지 못하였으며 참고할만 한 기성리론도 없었다.

거기에다가 군사부문에 잠입한 사대주의교조주의자들은 군건설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다른 나라의 경험에 맞추어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다보니 군사규정과 교범도 우리 식대로 만들지 못하고 교조주의자들에 의해 부식된 다른 나라의 군사규정과 교범을 그대로 적용하였으며 따라서 내무규정위수규정에도 다른 나라의것이 반영되고있었다.

사실상 정규무력을 건설하는데서는 현대적무장장비를 갖추는 문제로부터 군인들의 생활규범과 지어는 식생활에 이르기까지 론의할 문제들이 많았다.

이러한 실정을 구체적으로 꿰뚫어보신 김정숙녀사께서는 확고한 주체적립장에 서시여 군건설에서 나서는 문제를 우리 식대로 풀어나가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가 정확히 집행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주체37(1948) 1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군사부문일군들을 저택으로 부르신적이 있었다.

저택에서 김정숙녀사께서는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외국손님들을 만나는 일때문에 조금 늦어진다는 련락이 왔다고 알려주시였다.

일군들은 부르신 까닭을 알수 없어 사뭇 긴장한 마음으로 초조히 앉아있었다.

잠시후 녀사께서는 그들의 옆에 와앉으시며 웃음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모두 군사지휘관들만 부르신것을 보니 장군님께서 오늘은 건군문제를 토의하시려는가보군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무렵 여러 기회에 군사지휘관들에게 이제 현대적정규무력건설을 선포해야 하겠는데 군대의 규정교범같은것을 미리 연구했다가 한번 토론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고보면 김정숙녀사의 말씀이 옳겠다고 생각되였다.

순간 일군들은 걱정어린 눈길로 서로 쳐다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씀이 계셨는데도 아직 이렇다할만하게 깊이 연구해보지 못했고 따라서 이 문제들에 대한 똑똑한 주견을 가지고있지 못했기때문이였다.

모두들 생각하던 끝에 이제라도 대안을 토론하였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댁에 들어오시면 말씀드려 가르치심을 받자고 의논이 되였다.

그들은 여러가지 안을 내놓으며 토론을 벌렸으나 신통치 않아 머리를 흔들군 하였다일군들은 김정숙녀사께서도 의견을 좀 말씀해주실것을 간청하였다.

녀사께서는 겸손하게 웃으시며 《어서 협의하십시오저는 여기에서 듣기나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한쪽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였다.

협의가 다시 시작되였다.

먼저 군대의 성격과 사명계급적구성문제들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다음 정규군의 각종 규정과 교범에 대하여 론의하였다.

그런데 군대의 식사문제를 토의할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군대의 주식을 빵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기때문이였다.

이 의견을 말한 일군은 군대생활의 특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지난날 산에서 싸울 때에도 끊임없이 행군하고 전투하면서 불을 피워 밥을 해먹자니 얼마나 힘들었는가게다가 불의의 정황이 생기면 펄펄 끓는 가마를 이고 달리거나 부주의하여 못 가지고 가면 대원들이 굶은채 힘겨운 전투를 하지 않았는가 하며 자기의 의견을 납득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들까지 렬거하면서 분과 초를 다투는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식사를 하자면 결정적으로 빵을 먹는것이 좋을것이라고 하였다.

그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것 같아 일부 일군들은 말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반대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론의가 분분해졌다.

끝내 합의를 보지 못한 그들은 김정숙녀사를 우러러보며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고 문의하였다.

옆에 앉으시여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녀사께서는 여전히 웃음어린 안광에 잠시 사색의 빛을 담으시더니 천천히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내 생각에는 빵보다 밥이 나을것 같군요빵이 간편하기는 하지만 우리 군대는 조선사람풍습대로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맛으로 한두끼 먹는다면 몰라도 집에서 밥과 국만 먹던 동무들에게 빵이 맞을수 있겠어요.

또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주작물이 쌀인데 그 많은 량의 밀을 어데서 구해다 빵을 먹이겠어요그러니 빵은 우리 사람들의 오랜 식생활구미에도 맞지 않으며 현실성도 없어요.

빵이 아니라 밥을!

김정숙녀사의 말씀은 일군들의 눈을 번쩍 트이게 하였다그 말씀은 간단했으나 일군들은 거기에서 너무나도 크고 많은것을 깨달았다.

모든 문제를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과 인민대중의 요구와 기호에 맞게 우리 식으로 풀어나가자!

김정숙녀사의 론거는 철두철미 여기로부터 출발하고있었다.

문제는 단순한것 같았지만 단순한것이 아니였다만일 우리 군대들에게 밥대신 빵을 먹인다면 그들의 식생활에 맞지 않을것은 더 말할것 없고 쌀을 팔아 밀을 사오느라고 나라의 경제생활전반에 얼마나 큰 혼란을 줄것인가.

일군들은 군대의 식생활문제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우리 나라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시는 녀사의 주체적안목과 높은 정치적식견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한가지 문제를 생각하여도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대로만 생각하고 실천하시려는 김정숙녀사의 투철한 자세앞에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다.

이날 녀사께서는 군대안에 영창제도를 둘것인가말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에도 강압적으로 규률을 세우는 자본주의나라 군대라면 몰라도 자각적인 우리 나라 군대안에서야 그런것을 무엇때문에 두겠느냐고 하시면서 반대하시였다군대의 대렬훈련문제와 복장문제가 화제에 올랐을 때에도 모든것을 철저히 조선사람의 체질에 맞게 우리 식대로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일군들이 한참 토론하며 시간을 보내고있는데 저택에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군문제에 대한 일군들의 토의정형을 들으시고 더없이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는 다른 분야에도 큰 해독을 끼치지만 나라의 존망과 전사들의 생명을 좌우하게 되는 군사분야에서는 파멸적인 후과를 빚어낼수 있다고 가르치시면서 일군들특히 군사간부들은 절대로 사대주의교조주의를 해서는 안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 군사지휘관들과 나누신 말씀은 주체적혁명무력건설에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갈 귀중한 지침으로 되였으며 인민군대의 규정과 교범을 우리 식으로 만드는데서 확고한 밑천으로 되였다.


 22

 열병식을 앞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6(1947) 10월말 어느날 군건설사업에서 이룩된 성과에 기초하여 다음해 2 8일에 중앙주권기관창립 2돐을 맞으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을 현대적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시켜 조선인민군을 조직한다는것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며 그날에 조선인민군 열병식을 성대하게 진행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항일의 녀장군 김정숙녀사께서는 반만년 조선민족사에 길이 빛날 력사의 날을 가장 의의깊고 성대하게 장식하기 위한 사업에 불면불휴의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녀사께서는 선군조선의 력사에 길이 빛날 이날의 열병식을 위하여 제일 걸리고있는 군복을 자체로 생산하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당시 열병식을 위해서는 수천벌의 군복을 더 생산하여야 하였다기간은 석달밖에 없는데 생산능력은 제한되여있었다이로부터 일부 일군들은 현재의 생산능력으로는 열병식군복을 제기일에 보장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군복을 만들어올 생각을 하고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36(1947) 11 20일 피복공장을 찾으시여 일군들과 로동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열병식에 참가하는 군인들에게 다른 나라에서 군복을 만들어다 입힐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교시하신데 대하여 알려주시면서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에도 봄가을철이면 재봉대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군복을 만들어 대원들에게 갈아입히군 하였는데 그때에는 싸움이 계속되는 속에서 제힘으로 천과 솜을 구해다 손재봉이나 손바늘로 군복을 지어야 했고 돗바늘로 재봉바늘을 만들어쓰면서도 장군님께서 정해주신 날자를 어긴적이 없었다고 하시며 그들을 불러일으키시였다.

녀사의 말씀은 공장의 일군들과 로동자들의 심장마다에 혁신의 불을 달아주었다.

군복생산자들은 조선인민혁명군 재봉대원들의 그 정신그 기백으로 열병식군복을 기한내에 무조건 생산보장하기 위한 힘찬 투쟁을 벌려나갔다.

조선인민군 열병식을 한창 준비하고있던 주체37(1948) 1월 초순 어느날에도 녀사께서는 피복공장을 찾으시여 열병식준비를 위한 군복생산정형을 료해하시였다.

녀사께서는 하루 군복생산량을 따져보시고 생산조직을 일일이 료해하시고나서 이런 식으로 해서는 열병식전으로 군복을 원만히 보장할수 없다고 못내 안타까와하시였다.

공장일군들은 어머님의 안광에 비끼신 그늘에서 자기들의 죄책을 느끼면서도 기대와 기능공이 제한된것으로 하여 해결방도를 말씀드릴수가 없었다녀사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문제는 로동자들을 분발시키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작업반간 증산경쟁운동을 조직할데 대하여서와 경쟁조항이며 단계별 총화방법까지 가르쳐주시였다.

녀사의 가르치심을 받은 공장일군들은 신심에 넘쳐 기어이 해내겠다고 말씀드리였다.

녀사께서는 일군들의 역할을 높여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종업원들을 이끌며 적극 고무할데 대하여 신신당부하시였다.

그후 공장에서는 녀사의 가르치심대로 정치사업보장사업을 선행시키고 작업반간 증산경쟁운동을 힘있게 벌린 결과 기한전에 군복을 모두 질적으로 생산보장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열병식이 진행될 광장을 보수확장하고 잘 꾸리기 위한 사업을 비롯하여 열병식에 참가할 개별적군인들의 훈련상태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가르치심과 은정깊은 사랑을 다 돌려주시였다.

주체37(1948) 2월 초순 열병식참가자들은 열병행사가 눈앞에 박두해옴에 따라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맹훈련을 진행하고있었다.

때로 살을 에이는듯 한 모진 바람이 훈련장을 휩쓸군 하였으나 훈련에 열중하는 군인들의 등은 땀에 젖어있었고 얼굴은 해볕에 타서 구리빛으로 번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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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입술이 트고 발이 부르트거나 다리가 팅팅 부어오른 대원들이 잠자리에 누울 때면 앓음소리를 내군 하였지만 막상 훈련에 들어가면 누구에게 뒤질세라 이악하게 훈련하였다.
그들은 이제 며칠 안 있어 백두산3대장군을 모시고 거행하게 될 조선인민군열병식에 참가하게 된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훈련에 박차를 가하였다.
녀사께서는 이런 군인들의 높은 정치적열의와 사상적각오를 대견히 여기시면서 자주 훈련장에 나오시여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느날 훈련장에 나오시여 경위대원들의 열병훈련을 보아주시던 김정숙녀사께서는 쉴참에 한 대원을 부르시였다.
그 대원의 대렬동작이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던것이였다.
영문을 알수 없어 달려와 서있는 그 대원을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녀사께서는 훈련이 힘들지 않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게 될 열병식에 참가한다고 생각하니 새힘이 부쩍 솟는다고 말씀올렸다.
그러나 녀사께서는 그가 훈련을 무척 힘들어하고있다는것을 다 헤아려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발이 부르터 고생을 하는것 같구만요.》
《아니… 일없습니다.》
그는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우정 발을 탕탕 굴러보이는것이였다.
그 대원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게 될 열병식대오에서 떨어질가봐 걱정이였던것이였다. 지난해에 부대에 갓 입대하여 이번 열병식에 참가하게 된 그의 기쁨은 한량없이 컸다. 그래서 그는 그 어떤 아픔도 꾹 참고 견디여왔기에 지휘관들도 미처 가려보지 못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 열병식에 참가하지 못할가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지요?》
《전… 정말 일없습니다.》
대원은 부르튼 발을 다시 굴러보았다.
《거짓말을 곧잘하는군요. 그렇지만 나를 속이지는 못해요. 지휘관들에게는 알리지 않을테니 걱정말고 여기서 좀 기다려요.》
녀사께서는 웃으시며 그 대원을 나무라시듯 조용히 말씀하시고나서 자리를 뜨시였다.
잠시후 녀사께서는 양말을 한컬레 가지고 다시 그에게로 오시였다.
《이걸 신으면 발이 부르트지 않을거예요.》
양말을 받아든 대원은 녀사의 살틀한 은정에 목이 메여 얼른 그것을 신을념을 하지 못했다.
그 존함만 들어도 새힘이 솟고 가슴 울렁거려지던 김정숙녀사께서 이렇듯 친어머니의 사랑을 부어주시니 그 대원은 격정이 북받쳐올라 눈시울을 적시였다.
양말을 두손에 받아쥔채 고개를 수그리고 굳어진듯 서있는 그 대원을 잠시 지켜보시던 녀사께서는 훈련이 인차 시작되겠는데 어서 신으라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그가 물기어린 눈을 슴벅이며 신발을 벗자 녀사께서는 한쪽으로 몰린 발싸개를 손수 풀어헤치시였다.
그는 어쩔바를 몰라하며 제손으로 발싸개를 풀어헤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녀사께서는 그의 손을 가볍게 밀어놓으시며 발바닥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발바닥에는 군데군데 물집이 생기고 푸르딩딩 부어있었다.
녀사께서는 안색을 흐리시고 이렇게 발이 심하게 부르텄으니 오죽 아팠겠는가고 걱정하시며 손수 처치까지 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발싸개를 잘 펴서 감아야 발이 편하여 좋다고, 발싸개에 비누칠을 하여 신으면 아무리 강행군을 해도 발이 잘 부르트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대원들도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시였다.
친어머니가 되시여 돌봐주시며 이렇게 험한 발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손수 가져오신 양말을 신겨주시면서 발싸개도 꽁꽁 여미여주시는 녀사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앞에 그 대원은 자신을 더 억제하지 못하고 격정을 터쳤다.
그는 훈련장에 서있다는것도,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지켜보고있다는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어깨를 떨었다.
이름없는 한 전사의 발싸개를 갈아주시고 지난날 간고한 행군길에서 얻으신 자신의 경험도 들려주시며 발싸개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시는 녀사의 은정깊은 사랑은 진정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을 다 합치여도 못미칠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이였다.
녀사의 자애로운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모든 대원들은 가슴을 들먹이며 더욱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열병식을 앞두고 김정숙녀사께서는 우리 군대의 군기제작사업을 몸소 맡아하시였다. 녀사께서는 군기는 부대를 상징하는 영광의 기발이라고 하시면서 도안작성으로부터 제작에 이르는 전과정을 보살피시여 군기가 훌륭히 완성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36(1947)년 어느 가을날이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시고 돌아오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책상을 마주하고 앉으시여 종이에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계시였다.
한 일군이 무슨 그림을 그리시는가고 묻자 녀사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이제 열병식이 있게 되면 각 부대들이 군기를 앞세우고 행진하게 되는데 그 도안을 생각해보는중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의 군기!
김정숙녀사의 말씀을 들으며 일군들은 보무당당히 행진하는 부대들의 대오앞에 휘날리는 군기를 보는것만 같아 가슴설레였다.
며칠후,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자리에서 몇개의 군기도안을 놓고 밤늦도록 토의하시였다. 그곁에는 어리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도 계시였다.
참으로 잊을수 없는 력사의 밤이였다.
백두산3대장군께서 보아주신 그 뜻깊은 군기도안이 바로 오늘 영웅적조선인민군의 군기로 되였다.
녀사께서는 군기제작작업장을 찾으시여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군기는 당과 혁명을 위하여, 조국의 자유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부대가 걸어온 영광스러운 전투적행로를 상징하는 기발이며 그 부대의 존재를 의미하는 생명입니다.
세상에는 군대도 많고 군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인민군대의 군기처럼 깊은 뜻이 담겨진 군기는 많지 못할것입니다.》
녀사께서는 손수 군기에 정성담아 한뜸한뜸 수를 놓고 재봉기를 돌리시며 이제 우리 군대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군대로 될것입니다, 우리 조선인민군은 영원히 백전백승의 혁명무력으로 세계를 진감시킬것입니다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오늘 우리 혁명무력의 대오앞에 최고사령관기와 함께 나붓기는 영광의 군기들에는 그 나날에 바치신 김정숙녀사의 뜨거운 심혈이 깊이 스며있다.
녀사께서는 열병식을 사열하실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입으실 복장을 갖추어드리는데도 최대의 정성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군복과 외투, 모자, 장화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녀사께서는 손수 마련하시였다.
드디여 주체37(1948)년 2월 8일 우리 인민이 그처럼 바라고바라던 력사의 그날이 왔다. 이날 평양에서는 정규무력의 조직을 선포하는 열병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위대한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께서도 이날 열병식장에 나오시였다.
지축을 울리며 보무당당히 기세충천하여 나아가는 열병대오를 바라보시는 녀사의 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여올랐다.
강력한 총대, 나라를 지키고 민족의 운명을 지켜줄 군대가 없어 외적이 왕궁에 란입하여 왕비를 불태워죽여도 하소연 한마디 못했던 조선, 강력한 군대가 없어 국권을 강탈당하고 40여년간의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해야 했던 조선, 그 조선이 오늘은 강대한 일제를 타승한 조선인민혁명군의 항일전통을 계승한 불패의 정규적혁명무력을 가지게 되였으니 인민의 영광은 하늘에 닿았다.
참으로 자주성을 위한 조선인민의 위대한 정의의 력사가 그처럼 고대하고 기원하던 영광의 시각이였다.
이날을 위하여 백두산위인들이 바친 뜨거운 심혈은 그 얼마나 고심참담하였으며 성스러운것이였던가.
김정숙녀사께서는 곁에 있는 항일투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세계 그 어느 령장도 우리 장군님처럼 그렇게 어려운 조건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며 군대를 창건하고 강화발전시킨적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의 인민군대는 오늘도 앞으로도 영원히 위대한 장군님의 군대가 되여야 할것입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의 얼굴도 눈물에 젖어있었다. 오늘을 위하여 바치신 선군혁명의 개척자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수령님의 건군위업을 받드시여 김정숙녀장군께서 바치신 심혈과 공적이 어려와 가슴뜨거워옴을 금할수 없는 그들이였다.
참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는 길에 남기신 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의 불멸의 업적은 수십성상의 선군사와 더불어 영원히 길이 빛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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