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의 어머니 김정숙녀장군 41.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찾으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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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찾으시여
1946년도에 들어서면서 미제는 1월부터 6월까지의 기간에만도 8개 련대의 남조선《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를 조직하였으며 그 통수권을 장악하고 남반부를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있었다.
조성된 정세는 하루빨리 조선인민혁명군을 현대적인 정규적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킬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정세에 대처하여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중앙보안간부학교를 내오시고 여기에서 군사지휘관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며 평양학원에서는 군대 정치문화일군을 키워내도록 하는 군사교육사업을 새롭게 발전시킬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러나 중앙보안간부학교에서는 초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군사교육을 진행하지 못하고있었다.
당시 군사교육기관에 발붙인 사대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은 《쏘련식》이요, 《연안식》이요 또 무슨 식이요 하면서 군사교육을 범벅식으로 하였다.
또한 학교에서는 많은 경우 다른 나라 군사학교의 교재를 번역하여 그것을 거의 그대로 리용하고있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는것을 가르치고있었다.
이것은 학생들속에서 큰 나라를 숭상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는것은 물론 그들이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군사전법을 제대로 습득할수 없게 한 온상이였다.
군사교육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실태를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여러차례 찾으시여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군사교육경험을 잘 살려 군인들을 정치사상적으로 무장시키는 기초우에서 그들의 전투훈련과 현대적군사과학기술학습을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진행하도록 이끄시였다.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군사지식을 주는것, 이것은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군사교육의 기본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군사교육에서 주체를 확립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를 관철하는데 크나큰 심혈을 바치시였다.
군사교육에서 주체를 세우는데서 나서는 선차적인 문제는 교육강령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옳게 만드는것이였다.
다른 나라들에서와 같이 몇년씩 걸리는 과정안을 가지고는 정규무력을 빨리 건설해야 하는 우리 혁명의 요구를 실현할수 없었다.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처음 내올 때 일부 사람들은 선진국가들에서도 중고등학교 졸업생들을 받아 3년동안 군사교육을 주어야 겨우 지휘관을 양성해내는데 우리가 문맹이나 면한 로동자, 농민출신의 청년들을 받아 그것도 1년동안에 군사지휘관을 키워낸다는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라고 시비하여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5(1946)년 7월 26일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찾으시고 항일무장투쟁시기 군사간부들을 키워낸 경험에 기초하여 우리 식대로 짧은 기간에 군사지휘관을 키워낼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중앙보안간부학교에 나오신 녀사께서는 학교일군들에게 교육준비를 갖추는데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교육강령을 잘 짜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다른 나라 군사학교에서 3년동안에 양성해내는 군사지휘관들을 이 학교에서는 1년동안에 양성하며 군사교육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정치과목을 옳게 배합하도록 하신 수령님의 교시를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중앙보안간부학교에 자주 나가시여 학생들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군사사상과 우리 식의 전법, 전술로 튼튼히 무장시키도록 여러차례 교육강령작성을 이끌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중앙보안간부학교에서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교육강령이 작성됨으로써 빠른 시일안에 정규무력의 골간으로 될 핵심들을 믿음직하게 키워낼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였다.
군사교육에서 주체를 세우는데서 나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군사교육의 내용을 잘 꾸리는것이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가 창설된 초기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은 다른 나라의것을 그대로 하자는 론의를 하였으며 일부 교직원들속에서도 이러한 그릇된 주장에 맹종맹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대주의자들은 학생들이 우리 식으로 다리를 쭉 펴고 씩씩하게 행진하는것을 보고는 아무리 보아도 눈에 설다고 하였으며 우리 말로 하는 구령소리를 듣고는 귀맛이 없다고 시비하였다.
주체35(1946)년 8월 20일 중앙보안간부학교의 한 일군을 만나신 김정숙녀사께서는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사들을 중앙보안간부학교에 파견하신 의도가 무엇인가를 똑똑히 인식시켜주시면서 그것은 학생들에게 현대적인 군사지식과 함께 산이 많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전법을 가르치자는데 있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주체35(1946)년 11월 3일 김정숙녀사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찾으시였다.
이곳 책임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기본학기 교육준비정형을 알아보시고나서 교육준비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계시던 녀사께서는 학교의 한 일군에게 기본학기교육을 언제부터 시작하며 교육준비는 어느 정도 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마감단계에서 교육준비를 다그치고있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녀사께서는 교육준비를 잘하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교수준비를 잘하는것은 교육사업의 성과를 좌우하는 근본문제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교수준비에서 중요한것은 강의안을 잘 만드는것입니다.》
이러시고나서 녀사께서는 교원들이 만든 강의안을 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아직 채 다 보지 못했는데 시간을 짜내여 마저 보겠다는 그의 대답을 들으신 녀사께서는 이미 본 강의안 내용을 좀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강의안 내용을 들으시는 녀사의 안색은 점점 흐려지시였다.
다른 나라의 군사규범과 규정을 본딴것들이 군데군데 있는가 하면 조선사람의 비위에 맞지 않는것들도 있었다.
녀사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나서 나직하나 무게가 실린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군사지식을 배워주어야 합니다.
동무들은 지난날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군사교육경험을 잘 살려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때 우리의 실정에 맞는 유격전법을 하나하나 완성하시였으며 그것으로 대원들을 교육하시였습니다.
하기에 유격대는 언제나 전투에서 적들보다 전술적으로 우세하였습니다.》
녀사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 실정에 맞는 군사지식을 주는것, 이것이 군사교육의 기본입니다.》
그러시면서 이것을 명심하고 교원들의 강의안준비를 질적으로 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항일혈전의 나날들에 사대주의, 교조주의의 해독성을 지식으로가 아니라 실지체험으로 뼈저리게 느끼신 김정숙녀사이시기에 강의안에 비낀 그 사소한 표현에 대해서도 이처럼 조금도 허용하지 않으시였다.
주체37(1948)년초 김정숙녀사께서는 또다시 학교를 찾으시였다.
그때 학교의 복도에는 여러장의 사진들과 그림들이 붙어있었는데 신통히도 그것이 다 다른 나라 명장들의 초상화와 풍경화였다. 복도의 직관공작을 한다면서 아무러한 고려도 없이 외국화보에 실린 사진들과 그림들을 마구 오려붙이였던것이다.
그림판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이윽토록 사진과 그림들을 보시던 녀사께서는 옆에 따라선 교직원들에게 우리 나라에도 애국명장들이 많고 경치좋은 고장도 많은데 왜 남의 나라 사진과 그림만 붙였는가고 물으시였다.
교직원들은 물론 학교책임일군들도 매일 그앞을 지나면서 무심히 대하고 보아온것이지만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비단 이런 사진과 풍경화뿐만이 아니였다. 매일 집행하고있는 교육강령에서도 우리의것 대신에 많은 경우 다른 나라의것을 실례들어온 그들이였다.
교원들은 자책에 잠겨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녀사께서는 그러는 교직원들을 둘러보시며 우리 인민은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망국노의 설음을 겪었다, 그것은 무능한 리조봉건통치배들이 자기 인민의 힘을 믿지 않고 사대주의를 하였기때문이다, 그러니 나라의 기둥으로 자라날 학생들이 사대주의를 하지 않도록 교양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그림 하나를 보여주어도 조선의 기상을 반영한 우리 나라의것, 슬기와 용맹으로 자랑많은 우리 인민의 영웅적투쟁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을 장군님과 조선혁명에 충실한 역군으로 키울수 있다, 더우기 이 학교는 군대의 군사정치간부들을 키우는 학교가 아닌가? 그런것만큼 모든 문제에 대하여 더욱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녀사의 이 말씀은 그후 이 학교는 물론 경위대를 비롯한 모든 구분대들과 기관들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뿌리빼기 위한 투쟁의 지침으로 되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학생들의 전술훈련장도 여러차례 찾으시여 군사교육에서 주체를 철저히 확립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주체36(1947)년 10월 16일과 주체37(1948)년 10월 14일, 주체38(1949)년 7월 20일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학교에서 진행하는 전술훈련을 보아주시면서 학생들을 훌륭한 군사지휘관으로 키워내자면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전투규정과 교범을 가지고 교육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김정숙녀사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군사교육기관들에서는 사대주의, 교조주의적현상이 점차 극복되고 교육이 우리 식으로 진행되여나갔다.
교육방법은 교수내용와 함께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다.
교육방법문제를 바로 해결해나가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뜻이였다.
당시 각급 군사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은 지난날 학교문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일반기초지식은 매우 약했으며 따라서 옳바른 교육방법을 적용하는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주체35(1946)년 어느날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찾으신 녀사께서는 교수내용을 료해하시고나서 학교에서는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대로 군사과목의 교수내용을 검토하고 학생들에게 우리의 실정에 맞는것을 배워주는 원칙에서 교육강령을 짜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 군사교육에서는 직관물을 많이 리용하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직관물을 리용하면 교원들이 강의하는데도 편리하고 학생들이 강의내용을 리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며 더우기 학생들가운데 지난날 공부를 못한 동무들이 많은 조건에서 직관물은 그들에게 강의내용을 생동하게 빨리 리해시킬수 있으므로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고 주체37(1948)년 2월과 10월 학교를 찾으시여서는 실습교육, 동작교육을 많이 하여 학생들의 활용능력을 키워주도록 하시였다.
주체38(1949)년 6월 3일 학교를 찾으시여 직관물을 보아주시면서 녀사께서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옳바른 교육방법을 적용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녀사께서는 사격연구실에 있는 직관물을 보아주시며 교직원들이 항상 머리를 쓰고 노력하면 교수내용들을 다 직관화할수 있으며 학생들을 얼마든지 잘 배워줄수 있을것이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이어 전술연구실을 찾으시고 전술사판에 몇개의 전술방안을 고정시켜놓았는데 앞으로 여러가지 전술적방안을 다 배워줄수 있도록 만들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
교육방법을 개선하기 위해 크나큰 심혈을 바쳐오신 녀사의 활동은 수령님의 의도에 맞게 학생들을 주체적인 혁명군대의 훌륭한 지휘관으로 키우시기 위한 끊임없는 사색과 정열로 이어진 활동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학생들속에서 모든 사업과 생활을 군사규정과 교범의 요구대로 조직진행하여 정규화적면모를 철저히 갖추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녀사께서는 학생들에게 잠자리를 정돈하는 방법, 병실을 깨끗하게 거두는 방법을 비롯하여 정규군대생활에 필요한 모든 방법과 동작들을 착실하게 배워주어 일과생활을 절도있게 규칙적으로 하도록 하시였다. 이와 함께 학생들이 정규화생활에 익숙될수 있게 교양사업을 강화하며 학교일군들이 요구성을 높이도록 하시였다.
참으로 해방후 군사교육기관들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적현상을 없애고 교육을 우리 식으로 진행할수 있게 된데는 위대한 수령님의 건군위업을 적극 받들어나가신 김정숙녀사의 헌신적인 노력이 깃들어있다.
백두산위인들의 탁월하고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군사교육이 우리 식으로 진행되고 그 질적수준이 높아지게 되였으며 짧은 기간에 정규군건설의 핵심부대가 튼튼히 마련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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