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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용발전에 온넋을 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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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162회 작성일 18-08-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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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용발전에 온넋을 바쳐

 

우리 인민들은 20세기 후반기 조선무용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배우가 누구인가고 물으면 누구라없이 홍정화선생이라고 말하고있다.

홍정화선생이 무용배우생활을 갓 시작한 지난 세기 50년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는 느린 장단에 맞춰 률동을 펼쳐보이는 춤이 기본으로 되여있었다.

주체48(1959)년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 독무 《환희》, 쌍무 《목동과 처녀》를 보여드려 기쁨을 드린 홍정화선생은 그때부터 천리마시대의 벅찬 현실을 반영한 무용작품창작에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하루계획을 200%정도 하는것은 슴슴하고 300%정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면서 뛰고 또 뛰는 천리마기수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홍정화선생의 가슴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결과 그의 춤동작은 번개같이 빨라졌다.

그후 년대를 이어가며 비약의 한길로 줄달음쳐온 조국의 현실은 시대의 벅찬 숨결에 호흡하기 위해 불같이 노력해온 그의 춤가락에 그대로 어려 많은 사람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자아냈다.

- 정신이 번쩍 들게 빠른 동작을 하는 무용가, 표현력이 강하면서도 흥취가 나는 조선춤의 장단을 잘 살리는 무용가, 드넓은 무대도 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이 크게 춤을 추는 무용가, 채찍같이 탄력있는 세계일류급의 무용가.

- 어쩌면 저렇듯 순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그러잡을수 있는가. 매력적인 웃음을 짓고 어깨를 으쓱으쓱, 팔은 너울너울 흔들며 잽싸게 발을 디디면서 돌아갈 때면 장내는 온통 조선장단으로 설레이게 된다.

이것은 홍정화선생이 공연을 진행한 세계 50여개 나라 사람들의 반향이다.

처녀시절인 1950년대부터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2000년대초까지의 나날 그는 민속무용, 독무, 군무 그리고 타프춤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무용작품들을 100여편이나 창작하였다.

이 나날 그는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녔으며 절세위인들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속에 김일성상계관인, 인민배우로 자라났다.

무릇 고령의 독창회, 독주회는 있어도 독무회는 없다고 일러왔지만 당의 은정속에 평양에서는 그의 생일 60돐에는 독무회가, 70돐에는 홍정화무용발표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값높은 삶의 나날을 보내온 홍정화선생은 2000년대 중엽부터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회의 일군으로 사업하고있다.

그는 지금 공화국창건 70돐을 맞으며 진행하게 될 공연의 성과적보장을 위해 불같은 나날을 보내고있다.



하기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있다.

- 자연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동시에 조락의 계절이기도 하여 인생의 로년기를 그에 비겨왔지만 80고령을 가까이한 홍정화선생은 락엽을 모르는 풍만한 수확의 가을에 살고있다.

본사기자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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