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콕스 없이 생산하는 주체철에 대한 설명 (해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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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 Kumgang 원래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숯을 이용하어 강철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주성분이 산화철인 철광석에서 직접 산소를 환원시키는 방법인데 이를 위해서 용융이 아니라 단조방법을 적용했습니다. 이 방법의 결점은 공업화가 어렵고 대량생산이 불가인 것입니다. 제한적이지만 이것은 콕스가 없이도 철을 생산할 수 있는 근거로 됩니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시기 철을 용융방법으로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었는데 이때 가장 난문제는 환원제를 어느 것을 이용하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1,000도에 달하며 위로 상승하는 열폭풍을 이겨내며 용융상태의 철에 취입시켜 환원반응을 유발시키려면 용융점과 발화점이 높으면서도 환원능력이 강하고 순수하어야 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 탄소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이 무연탄이지만 무연탄은 분탄이고 가볍기 때문에 열폭풍에 날려가 버리는 결점이 존재하었습니다. 유연탄가운데서 갈탄은 순수하지 않고 발화점이 낮으므로 합당치 않으며 결국은 유럽에 비교적 많은 역청탄이 선정되었습니다. 역청탄은 한번 구우면 숯처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콕스입니다.
콕스를 수십m의 높이를 가진 수직로에서 Top-Down방식으로 철광석과 혼합하어 추락취입시키면 무거운 철광석과 콕스덩이가 위로 상승하는 열폭풍을 역추락하면서 고온에 의해 환원되고 용융되어 선철이 됩니다. 이때 철속에 여분의 콕스가 탄소로 포함됩니다. 이렇게 얻어 진 선철은 환원과정에 오히려 탄소가 포함되었으므로 강도가 낮고 부스러 집니다. 하는 수없이 제강로에서 용융상태의 선철에 반대로 산화제를 취입하어 탄소를 산화제거하어 강철을 얻습니다. 이것이 지금 공식화된 철생산원리입니다. 이 방법을 자세히 보면 공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모순적인 반복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역청탄이 없는 나라들에서 1930년대에 개발한 무콕스철생산공정이 바로 입철생산공정입니다. 이것은 철광석을 무연탄과 혼합하어 볼처럼 만들어 시멘트처럼 수평회전로에서 구워내는 방법인데 구단강생산이라고도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어느 나라도 무연탄만을 가지고 구단강을 생산하는데 성공하지 못하어 실천적으로는 콕스와 무연탄을 혼합하어 구단강을 생산합니다.
구단강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산화구단강과 환원구단강이 있습니다. 조선에서 말 하는 구단강은 환원구단강을 의미합니다. 환원구단강을 제강로에 넣어서 강철을 만들 수도 있고 특수한 제철로에서 산소만 약간 취입하어 용융시키면 그대로 선철이 됩니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산소열법제철로입니다.
구단강의 가장 큰 우점은 철의 순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무기용 특수강생산에 적합한 것입니다. 사례로 조선에서는 해방후 성진제강소의 원철로를 폭파한 다음 입철전문가를 남에서 데려다가 입철제강기술을 도입하였으며 이렇게 생산된 특수강으로 각종 저격무기와 지상포를 생산하었습니다.
전후에는 시험적으로 입철제강을 전문으로 하는 청진제강소를 건설하었는데 이 제강소에 대한 일화가 많고 곡절도 많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청진제강소에 대한 소설과 드라마가 여러편이 제작되었다는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입철구단강에 의한 철생산기술개발이 수십년이나 걸린 이유에 대해서 꼬집어 말 하기는 어려우나 한가지는 세계적으로 미개척분야라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소련과 중국이 자기들을 배반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하거나 소련과 중국에 대한 환상에 빠진 사람들의 처사에 따른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미전부터 소련과 중국의 대국주의로부터 자주를 확립하는 방도의 하나가 무콕스철생산이라고 간주한 김일성 주석이 생존시기에 무콕스철생산에 대해 그처럼 소망했지만 결국은 시작하어 50여년동안 끝내 성공을 보지 못한 것으로 됩니다.
1990년대 러시아와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조선이 저들이 개혁개방노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어 고난의 행군을 하는 조선에 역청탄수출을 금지하는 비열한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무콕스철생산기술이 완성되지 못한 상황이었던 조선의 강철업체들은 그때에야 50여년동안 주저한데 대하어 막심한 후회를 하었지만 때가 늦어 큰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태로 하어 조선에서는 무콕스철생산기술 개발도입문제는 체제수호의 운명문제라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으며 과거의 기술보수세력을 단호히 척결하고 모든 전력을 집중하고 허리띠를 조어 결국 50년동안 못한 것을 10여년만에 완성하게 됩니다. 가장 핵심기술은 구단강생산인데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조선에서 공개한 자료들을 종합분석하면 청진제강소와 성진제강소, 김책제철소, 황해제철소에서 각각 독자적인 기술들을 개발했다고 추정됩니다. 그가운데서 구단강생산기술은 황해제철소와 성진제강소의 기술을 인정하고 구단강에 의한 선철생산기술은 김책제철소의 기술을 인정하는거 같습니다. 선철생산과 인연이 없는 강선제강소는 대신 첨단 제강로인 호광로를 자체로 도입운용하고 있으며 중유가 아니라 가스를 이용하여 강재 예열과 압연을 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도입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선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무콕스철생산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도입하고 그것을 주체철생산기술이라고 명명하었으며 학교 교과서에서 콕스에 의한 철생산원리를 아예 삭제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조선에서 무콕스철생산기술을 개발하자 중국이 더욱더 비열하게 원유를 비롯한 각종 수출규제와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시기 철을 용융방법으로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었는데 이때 가장 난문제는 환원제를 어느 것을 이용하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1,000도에 달하며 위로 상승하는 열폭풍을 이겨내며 용융상태의 철에 취입시켜 환원반응을 유발시키려면 용융점과 발화점이 높으면서도 환원능력이 강하고 순수하어야 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 탄소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이 무연탄이지만 무연탄은 분탄이고 가볍기 때문에 열폭풍에 날려가 버리는 결점이 존재하었습니다. 유연탄가운데서 갈탄은 순수하지 않고 발화점이 낮으므로 합당치 않으며 결국은 유럽에 비교적 많은 역청탄이 선정되었습니다. 역청탄은 한번 구우면 숯처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콕스입니다.
콕스를 수십m의 높이를 가진 수직로에서 Top-Down방식으로 철광석과 혼합하어 추락취입시키면 무거운 철광석과 콕스덩이가 위로 상승하는 열폭풍을 역추락하면서 고온에 의해 환원되고 용융되어 선철이 됩니다. 이때 철속에 여분의 콕스가 탄소로 포함됩니다. 이렇게 얻어 진 선철은 환원과정에 오히려 탄소가 포함되었으므로 강도가 낮고 부스러 집니다. 하는 수없이 제강로에서 용융상태의 선철에 반대로 산화제를 취입하어 탄소를 산화제거하어 강철을 얻습니다. 이것이 지금 공식화된 철생산원리입니다. 이 방법을 자세히 보면 공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모순적인 반복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역청탄이 없는 나라들에서 1930년대에 개발한 무콕스철생산공정이 바로 입철생산공정입니다. 이것은 철광석을 무연탄과 혼합하어 볼처럼 만들어 시멘트처럼 수평회전로에서 구워내는 방법인데 구단강생산이라고도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어느 나라도 무연탄만을 가지고 구단강을 생산하는데 성공하지 못하어 실천적으로는 콕스와 무연탄을 혼합하어 구단강을 생산합니다.
구단강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산화구단강과 환원구단강이 있습니다. 조선에서 말 하는 구단강은 환원구단강을 의미합니다. 환원구단강을 제강로에 넣어서 강철을 만들 수도 있고 특수한 제철로에서 산소만 약간 취입하어 용융시키면 그대로 선철이 됩니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산소열법제철로입니다.
구단강의 가장 큰 우점은 철의 순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무기용 특수강생산에 적합한 것입니다. 사례로 조선에서는 해방후 성진제강소의 원철로를 폭파한 다음 입철전문가를 남에서 데려다가 입철제강기술을 도입하였으며 이렇게 생산된 특수강으로 각종 저격무기와 지상포를 생산하었습니다.
전후에는 시험적으로 입철제강을 전문으로 하는 청진제강소를 건설하었는데 이 제강소에 대한 일화가 많고 곡절도 많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청진제강소에 대한 소설과 드라마가 여러편이 제작되었다는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입철구단강에 의한 철생산기술개발이 수십년이나 걸린 이유에 대해서 꼬집어 말 하기는 어려우나 한가지는 세계적으로 미개척분야라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소련과 중국이 자기들을 배반하리라고 예측하지 못하거나 소련과 중국에 대한 환상에 빠진 사람들의 처사에 따른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미전부터 소련과 중국의 대국주의로부터 자주를 확립하는 방도의 하나가 무콕스철생산이라고 간주한 김일성 주석이 생존시기에 무콕스철생산에 대해 그처럼 소망했지만 결국은 시작하어 50여년동안 끝내 성공을 보지 못한 것으로 됩니다.
1990년대 러시아와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조선이 저들이 개혁개방노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어 고난의 행군을 하는 조선에 역청탄수출을 금지하는 비열한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무콕스철생산기술이 완성되지 못한 상황이었던 조선의 강철업체들은 그때에야 50여년동안 주저한데 대하어 막심한 후회를 하었지만 때가 늦어 큰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태로 하어 조선에서는 무콕스철생산기술 개발도입문제는 체제수호의 운명문제라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으며 과거의 기술보수세력을 단호히 척결하고 모든 전력을 집중하고 허리띠를 조어 결국 50년동안 못한 것을 10여년만에 완성하게 됩니다. 가장 핵심기술은 구단강생산인데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조선에서 공개한 자료들을 종합분석하면 청진제강소와 성진제강소, 김책제철소, 황해제철소에서 각각 독자적인 기술들을 개발했다고 추정됩니다. 그가운데서 구단강생산기술은 황해제철소와 성진제강소의 기술을 인정하고 구단강에 의한 선철생산기술은 김책제철소의 기술을 인정하는거 같습니다. 선철생산과 인연이 없는 강선제강소는 대신 첨단 제강로인 호광로를 자체로 도입운용하고 있으며 중유가 아니라 가스를 이용하여 강재 예열과 압연을 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도입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선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무콕스철생산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도입하고 그것을 주체철생산기술이라고 명명하었으며 학교 교과서에서 콕스에 의한 철생산원리를 아예 삭제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조선에서 무콕스철생산기술을 개발하자 중국이 더욱더 비열하게 원유를 비롯한 각종 수출규제와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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