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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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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27회 작성일 19-10-2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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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jpg

(제 4 회)

제 1 장

4

 

평양곡산공장에서 김일성장군님을 마중한 사람은 공장 로동조합장 리승철이였다.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린 밤색작업복을 입은 조합장은 검버섯이 얼굴에 한벌 돋혀있는 무척 여윈 사람이였다.

물론 리승철이도 김일성장군님을 빨찌산정치위원으로 알고있었다.

넓은 공장마당주변에서는 발벗은 숱한 조무래기들이 참새떼처럼 밀려다니고있었다.

《무슨 애들이 저렇게 많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여기저기 널려있는 어린이들을 둘러보시였다.

《왜정때부터 배곯는 아이들이 곡산공장에서 내버리는 부산물찌꺼기들을 주어먹느라구 여기로 밀려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이 주어먹을 부산물찌꺼기도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기가 막혀 한동안 아무런 말씀도 없이 서계시였다. 어른들은 배고픈것을 참을수 있어도 철없는 아이들이야 어떻게 참아내겠는가.

그이께서는 해방된 이 땅에서 배곯는 아이들을 보시는것이 제일 가슴아프시였다. 《조합장동무, 사실 나는 저 아이들에게 다문 사탕 한알, 엿 한가락이라도 먹일수 없을가 해서 여길 찾아왔습니다.》

리승철은 낯빛을 흐리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지금 공장형편은 막연합니다. 원료도 없거니와 공장설비들이 다 마사졌습니다.》

《좌우간 공장을 좀 돌아봅시다.》

장군님께서 걸음을 떼시였다. 리승철은 그이를 《42》호라는 문패가 붙어있는 원료창고로 안내하였다.

넓은 창고안에 빈 가마니짝들이 널려있고 한쪽에는 군마곡으로 쓰던 사료포대들이 쌓여있었다. 다른 한쪽엔 덩지 큰 도람통들이 자빠져있는데 그밑으로 쥐새끼들이 강냉이알들을 입에 물고다니였다. 그것들은 사람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짹짹거리며 싸다녔다. 창고는 쥐들의 세상이였다.

《이 공장에 자체발전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건 살아있습니까?》

장군님께서 창고천정으로 가로건너간 시꺼먼 전기줄을 띠여보고 물으시였다.

《두개의 타빈이 다 망가졌습니다. 기술자가 없어서 고치지 못하고있습니다.》

《공장종업원들이 몇명입니까?》

리승철은 긴 한숨을 내쉬고나서 해방전에는 천여명 되였으나 지금은 다 흩어져서 600명 되나마나하다고 말씀올렸다.

《600명중 발전길 고칠 사람이 한명도 없단 말입니까? 조합장동문 무엇이 전공이요?》

《전 전공이란게 없습니다. 소학교도 2년밖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10여년동안 막로동을 하면서 대수 기계나사나 맞추는 법을 배워서 기계수리공이라 하지만 허허허.》

리승철은 지나온 전반생이 서글픈듯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기계공인데 발전기는 다루어보지 못했습니까?》

《왜놈들이 3년에 한번씩 발전기를 수리하군 했지만 그때마다 조선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풍막을 치고 저희들끼리 수리하였습니다.》

《왜놈들이 왜 그런것 같습니까?》

《그거야 기술을 안 배워주자고 그랬디요.》

리승철은 너무도 뻔한 물음이여서 제켠에서 눈만 껌벅거렸다.

《그래서만이 아니요. 누구나 한번 보면 고칠수 있기때문에 풍막을 쳤습니다. 보고도 모를 신비한 기계라면 뭣때문에 풍을 치고 수리하겠소. 사람이 600명이나 있으면서 그거 하나 못 고친단 말이요? 지금 전기회사에 와있는 리문도기사를 초청해다 한번만 전습을 받아도 고쳤을거요.》

장군님께서는 대번에 왜놈들의 간계를 까밝히시고는 생산공정별로 작업장들을 돌아보자고 하시였다.

리승철은 그이를 첫 생산공정작업장인 사입장으로 안내하였다. 원료창고와 통해있는 사입장 콩크리트바닥 한가운데엔 긴 도랑이 째여있었다. 도랑 한끝은 직경이 수메터나 되여보이는 철관과 련결되여있었다.

모든 설비가 숨을 죽이고있었다. 물이 없는 마른 도랑에 썩은 강냉이알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전기뽐프도 상처입은 허리를 구부정한채 소리없이 서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없어 작업장은 무덤처럼 고요하였다.

《작업장에 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리승철은 공장의 파괴상태가 엄청난데다 기술자도 없고 원료, 자재도 거덜이 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루하루를 목적도 방향도 없이 흘러보내고있다고 말씀드렸다.

《다음이 침지작업장인데 거긴 냄새가 고약합니다.》

《냄새가 나면 뭘합니까. 아이들에게 먹이는 일인데 들어가봅시다.》

리승철은 주저하는 기색을 짓고 잠시 쭈물거리다가 사입장뒤문으로 나가 이동나무계단을 밟아내려갔다. 철길이 지나간 구내 저편에 4~5층의 큰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 다층건물안에 침지작업장을 비롯한 여러 생산직장들이 있었다.

일행을 침지작업장으로 안내한 리승철은 통풍이 되도록 출입문을 열어놓았다. 침지작업장은 굉장히 넓었지만 사방이 밀페되여 동굴속처럼 습하고 침침하였다. 지금은 조명등도 무용지물이 되여 출입문만 닿으면 아예 캄캄한 먹방이 되고만다.

과연 작업장안에서는 역한 가스냄새가 풍기였다. 천정을 뚫고 2~3층으로 뻗어올라간 산악같은 여덟개의 대형침지탕크에서 새여나오는 류산가스냄새였다. 66톤의 강냉이를 담는 침지탕크가 8개나 있으니 단번에 528톤의 강냉이를 물에 불구는 거창한 작업장이였다.

산악같은 8형제 목조탕크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어둑시근한 방안에 서있었다. 거의 모든 탕크가 도끼에 얻어맞은것처럼 군데군데 쪼개지고 구멍이 나서 보기에 험상스러웠다.

《이 작업장엔 17~20도의 온도를 유지해야 되기때문에 배기창 하나 내지 않고 밀페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역한 냄새가 풍기는 상처입은 목조탕크곁에 오래도록 묵묵히 서계시였다.

《여긴 모두 목조탕크로구만.》

장군님께서 혼자소리로 뇌이시자 리승철이가 이 안에서는 류산액때문에 쇠붙이는 못 견딘다고 하였다. 하루만 지나면 쇠붙이는 녹이 쓸고 소뼈다귀도 천정에 매달아놓고 한주일 지나면 모래처럼 부실부실해진다는것이였다.

류산가스가 뼈를 녹이는 이런 작업장에서 조선로동자들이 하루 14~16시간씩 일하였다, 채찍을 들고 로동자들을 감시하는 십장이 13명이나 있었고 《일하지 않는 태공분자》들의 살을 물어뜯게 하는 번견이 다섯마리나 되였다.

《다음 작업장은 이 침지탕크안에서 48시간 류산용액에 불구어진 강냉이를 타개는 마쇄작업장인데 냄새가 더 지독합니다. 거긴 그만두고 기름을 짜는 제유작업장과 물엿작업장이나 가봅시다.》

《다른델 못 봐도 그런델 봐야 합니다.》

리승철은 하는수없이 일행을 마쇄작업장으로 안내하였다. 그가 먼저 나무덧문을 댄 작업장문을 열고 들어갔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고 알싸한 그 무엇이 눈알을 따끔따끔 찔러 리승철이도 견디기 어려웠다. 마쇄작업장에도 일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그는 정치위원이 지독한 아류산가스냄새를 꽤 견디여낼가싶었는데 얼굴색 하나 달리하지 않고 작업장에 깊숙이 들어와 집채같은 대형망돌을 유심히 지켜보고계시였다.

정치위원의 곁에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젊은 두 군인도 가끔 기침을 깇었지만 끄떡없이 서있었다.

(김일성장군님부대 빨찌산들이 다르긴 다르구나!)

리승철은 해방전에 평남도지구 조국광복회 조직결성자의 한사람인 리주연의 지도밑에 반일운동을 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지만 실지 눈으로 보기는 지금이 처음이였다.

그들의 의젓하고 강의한 모습에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졌다.

김일성장군부대 정치위원은 배곯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자리를 뜨지 못하시는것 같았다. 고역에 시달리던 지난날의 로동자들을 생각하시고계시는지도 몰랐다.

그이께서 조용히 뇌이시였다.

《이 악취나는 작업장에 배기창 한구멍도 내지 않고 사면벽을 몽땅 밀페해버린 일본, 미국자본가놈들이 어떤 고약한 놈들이였던지 짐작이 됩니다.》

그이께선 신선한 작업장에서 즐겁게 일하는 로동자들과 사탕, 과자통을 들고 뛰여다니는 귀여운 어린이들을 눈앞에 그려보시며 오래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이때 누데기옷을 걸친 웬 늙은이가 들어서더니 리승철에게 허리를 굽신거리였다.

《조합장나리, 방금 장시우도당부장나리께서 조합장나릴 전화로 찾으시오이다.》

리승철이 당황해하며 황급히 로인의 팔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후 그가 다시 작업장에 들어왔을 때 장군님께서 물으시였다.

《웬 늙은인데 동무보고 나리라고 합니까?》

《예, 정신이 얼빤한 령감입니다. 이 공장이 생긴 초시기부터 원동기직장에서 보이라공을 하던 령감인데 증기타빈이 다 마사져서 요즘은 식당화부로 쓰고있습니다. 십장들한테 매를 맞아 귀까지 먹다보니 세상물정을 몰라 간부들을 보고 나리님이라고 합니다. 허허허…》

리승철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으나 장군님의 안색은 어두워지시였다. 공장초기부터 20년가까이 보이라에 불을 지펴 증기타빈을 돌려온 오랜 로동자와 로동조합장의 관계에서 주종관계와 같은 불쾌한 인상을 받으시였다.

《오랜 보이라공을 식당화부로 돌려쓰면 되겠습니까? 그런 경험있는 로인들과 토론을 해야 공장을 살려낼수 있지 않겠소.》

《꼴기를 못차리는 령감입니다. 토론할 형편이 못됩니다.》

《그래서 그 로인을 여기저기 심부름을 시키면서 간부들을 나리처럼 대하게 합니까?》

장군님께서 엄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로인의 이름이 뭡니까?》

《석씨 성을 쓰는데… 이름은…》

조합장은 로인의 이름을 몰랐다. 미분탄을 빚어 보이라불을 지피기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미분탄령감, 또는 귀머거리 석령감이라고 했다.

《로동조합장이 로동자의 이름조차 모르고있으니 한심하지 않습니까. 석로인을 존경해야 합니다. 그 로인에게 심부름을 시킬게 아니라 동무네들이 그 로인의 심부름을 들어줘야 합니다. 어제날의 소박한 로동자, 농민도, 청렴한 공산당원도 지도적인 위치에 올라앉아 수양을 하지 않으면 계급사회의 통치자처럼 될수 있습니다.… 작업장을 마저 돌아봅시다.》

장군님께서 출입문을 향해 앞장서 걸으시였다. 리승철은 자책감에 잠겨 무거운 걸음으로 그이를 따랐다.

그이께서는 마쇄직장에서 나오시는 길에 공장관리위원장을 만나시고 29호직장(당화직장)을 거쳐 10호직장(정제유직장)으로 향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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