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조선의 힘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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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로의 접근로들에서 치렬한 전투가 벌어지고있을 때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락동강계선에서 후퇴해온 전선사령부가 수도방어임무를 맡아 수행하게 하는 한편 림진강계선에서 서해안방어사령부관하부대들을 지휘하던 최용건은 다른 중대한 임무수행을 위하여 소환하게 하시였다. 대신 전선사령관 김책이 방어지대에 대한 지휘정찰을 진행하는 한편 수도방어사령부관하 련합부대들의 임무와 배치를 확정하고 방어공사까지 다 맡아 조직하도록 하시였다.
후비부대들의 이동전개는 남일이 맡았다. 그와 동시에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으로서 남일은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 준비도 다그쳤다. 야전지휘소는 최고사령부의 전략적이동과 장군님의 전선지휘를 신축성있게 보장하기 위하여 특별렬차로 정해졌다. 장군님께서 해방후 현지지도의 먼길을 이어가시던 전용렬차였는데 그것을 전선지휘용으로 개조하였던것이다.
남일은 이제 그것을 후비부대들의 이동전개정형과 함께 장군님께 보고드려야 했다. 그는 방어계선으로 이동하는 부대와 함께 수도로 향하고있었다. 한낮이였다. 오전중 내린 비때문에 논벌가운데로 뻗은 길들은 곤죽이 되였다.
어느 구배길에서는 포차 한대가 진창에 빠져 앙-앙 헛바퀴질을 하고있었다. 배기관으로 시꺼먼 연기뭉치들이 탕탕 기관포소리처럼 터져나왔다. 포병들이 몰켜서서 아츠러운 비명소리처럼 《영싸!-》하고 고함을 질렀다. 목줄띠가 퍼렇게 용을 썼으나 바퀴는 점점 더 빠져들고 거기에서 휘뿌려진 시꺼먼 진흙덩이들이 사람들의 가슴이며 무르팍에 다닥다닥했다.
진창에 빠진 포차때문에 길이 막혀 앞뒤에서 연방 경적소리들이 날아왔다. 뒤에서는 군용차들이, 앞쪽에서는 소개해가는 화물차들이 피난민들의 달구지까지 쭉 늘어섰다. 그 가운데엔 외국기발을 꽂은 승용차도 있었다. 그 승용차가 특히 빵 빵-하고 성급하게 독촉해왔다. 그러자 그앞에서 멍에를 멘채 고인물을 마시던 털빠진 소까지 《음메!-》하고 울부짖었다.
그러건 말건 포병들은 뒤에서 걸어오는 보병대렬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푸접좋게 달라붙었다. 도와달라는 청이였다. 밤새 행군해온 보병들은 《발바닥에 털난》 포병들을 두고 욕을 하면서도 다들 차에 매달렸다. 더 붙어볼데가 없는 사람들은 앞사람의 잔등을 냅다 떠밀었다. 저저마끔 소리를 지르며 저만이 힘을 쓰는것처럼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또 벅작 떠들었다.
길을 어기지 못해 주런이 늘어서있는 달구지와 자동차우에서 사람들이 목을 빼들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있었다. 손달구지를 끌고가던 녀인도 풀어진 눈동자를 굴렸다. 외국기발을 꽂은 승용차에서도 한사람이 차창을 열고 머리를 쑥 내밀었다.
바로 그때 남일이 차에서 내려 이곳에 왔다. 길이 막혀 붐비고있는 차들을 둘러보며 뒤따라선 대좌직급의 지휘관에게 엄하게 말했다.
《행군속도를 높이시오. 17시까지는 방어계선에 도착해야 하오!》
《들었습니다!》
부대지휘관은 거수경례를 하고 진창에 빠진 포차에로 달려갔다.
남일은 팔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장군님께서 주신 임무를 하나하나 곱씹어보았다. 그러느라고 진창길을 밟으며 성급하게 마주오는 외국인도 미처 보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외국인이 두손을 싹싹 맞부비며 말을 걸었다.
《이렇게 만날줄은… 정말 반갑습니다!》
남일은 군대와 피난민들이 서로 어기고있는 이 혼잡통에 불쑥 나타난 외국인을 뜨아하여 마주보았다. 그러다 곧 알아보았다.
스딴도르 벤꼬!… 남일이 교육부상으로 있을 때 안면을 익힌 외국특파기자였다.
색이 바랜 가죽잠바를 입고 구겨진 모자를 뒤통수에 붙여쓰고있다. 글을 쓸 때마다 감빨고 쓰다듬어놓군 하던 주홍색 턱수염은 여전히 잘 다듬어져있고… 광택이 없는 푸르스름한 두눈을 연신 껌벅거리며 그는 제나라 말이 아닌, 남일도 잘 아는 로어로 말을 이었다.
《나는 당신이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꼭 만나고싶었습니다만… 그런 기회가 차례지지 않더군요. 전쟁이니까요.》
《…》
그때 진창에 빠졌던 포차를 끌어냈다. 움푹 패여들어간 길에 돌을 채워넣고 다들 길 좌우쪽으로 흩어졌다. 호기심어린 눈빛들이 키가 후리후리한 남일과 외국인에게 쏠렸다. 남일은 손짓으로 대좌에게 출발을 지시했다. 포차들이 다시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앙-앙 지나가는것을 보고서야 그는 몸을 돌렸다.
《기자선생, 안됐습니다. 무슨 용무이신지…》
《예, 저는 당신과 작별하기에 앞서…》
《작별이라니요?》
《아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군요. 전 본사의 지시로…》 벤꼬는 말을 더듬으며 두팔을 벌려보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대사관의 지시를 받고 돌아가는 길인데…》
《돌아가다니… 본사로? 아니면 본국으로요?》
《그야 물론… 그 두가지가 다 해당된다고 할수 있지요.》
《예- 그러니까 결국…》
《옳습니다. 귀국하는 길입니다.》
남일은 놀랐다. 다음순간 가슴에 욱 치미는것이 있었다. 스딴도르 벤꼬로 말하면 지난날 까르빠찌야산줄기를 횡단한 쏘련, 로므니아군의 제1선에서 싸운 발칸사람이였다. 의지가 강하고 억세였다. 결코 신변의 안전때문에 서둘러 귀국할 사람이 아니였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것처럼 대사관에서, 그의 조국에서 소환한것이다. 그들은 조만간 여기서 모든것이 끝장나리라고 생각한것이다. 이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다달았으며 영영 헤여나지 못하리라고 내다본것이다.
《그럼 잘 다녀가시오. 벤꼬선생!》
남일은 쌀쌀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러자 스딴도르 벤꼬가 황황히 그의 앞을 막아나섰다.
《잠간!… 잠간이면 됩니다. 저는… 기자로서 당신에게 즉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에게 마지막으로 묻고싶은 말이 있는데…》
《<마지막>이라니요. 무슨 의미입니까?》
《저… 그건 당신도 아다싶이…》
《그런즉 당신은 우리 나라를 영영 떠난다는것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전… 다시 오고싶고 또 그럴수만 있다면…》
《그럼 다시 오시오!》
《그렇지만…》
《그렇지만… 또 뭡니까?》
스딴도르 벤꼬는 남일의 집요한 시선을 견뎌내지 못하여 허둥거렸다. 입가엔 애처로울 지경으로 면구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사실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아시겠지만… 적들은… 너무 강합니다.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38°선을 넘어선 적들이 벌써 대동강하류에 이르렀다는… 용서하십시오. 우리 나라 속담에 나쁜 소식은 말을 타고 가고 좋은 소식은 걸어서 간다고 했습니다. 제가 잘못 들었다면…》
《아니요. 들은바그대로입니다. 며칠후엔 평양근교에서 전투가 벌어질수 있습니다.》
《예?!…》
스딴도르 벤꼬는 놀래여 사위를 휘둘러보았다. 웅근 포성이 들려오고있다. 포성이 울려오는 그곳으로 포차들과 보병대렬이 진창길을 저벅저벅 밟으며 가고있다. 맞은편에서는 가장집물을 가득 실은 달구지가 굴러오고있고… 그 한귀퉁이에 어머니의 낡은 목도리를 머리에 쓴 계집애가 눈이 올롱해서 앉아있다… 어느덧 벤꼬의 두눈엔 동정과 련민의 빛이 부옇게 비끼고있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말을 태연스레 하고있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글쎄 저로서는… 저 방대한 침략무력에 맞서싸우는 당신들에게…》
남일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빨리 자리를 뜨고싶은 생각뿐이였다.
《선생.》하고 그는 랭담하게 그루박았다. 《도깨비는 쳐다볼수록 커보인답니다. 우리 나라 속담입니다.》
남일은 인사치레로 한손을 약간 들었다내렸다. 그리고는 행군종대의 뒤쪽에서 천천히 미끄러져오는 승용차에로 곧추 걸어갔다.
길섶의 강냉이밭이 우수수 설레였다. 간밤의 비바람때 허리가 꺾인것들이 많았다. 마른 잎사귀들을 축 늘어뜨린 밭머리에서 하릅송아지 한마리가 어정거리다가 제풀에 놀라 후닥닥 뛰여갔다. 남일은 차에 올랐다. 가슴이 뻐근했다. 맘껏 터뜨리지 못한 어떤 분노와 울분이 덩이로 맺혀있는듯 했다. 스딴도르 벤꼬가 한 말들이 생각나 저도모르게 이를 앙다물었다.
(그렇게 서둘러 떠난단말이지!… 그것도 영영 떠나간다?!… 뭐 적들은 너무 강하다고?!…)
등성이에서 시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있었으나 남일은 차창을 올리지 않았다. 그는 벌써 평양에서 여러 외국의 대공사관들이 떠나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스딴도르 벤꼬의 귀국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그들이 말한것에도 부인 못할 근거가 있다는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있는 그였지만 웬일인지 계속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운전사쪽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좀더 속도를 높이오!》
수면부족때문에 그의 눈은 피발이 섰고 눈언저리는 멍이 든것처럼 시퍼랬다. 전에없이 광대뼈가 두드러졌는데 그것은 볼편의 살이 자귀날로 찍어낸것처럼 쑥 우묵져들어간때문이였다. 시꺼먼 눈섭을 흠칫거리며 그는 오래도록 분을 삭이지 못해하였다.…
이 시기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선동부의 정세에 깊은 주의를 돌리고계시였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였던 미제10군단이 제1선에서 물러나던 그때부터 적들의 움직임을 특히 예리하게 주시하시였었다. 정찰국에서 올린 보고에 의하면 미1해병사단은 인천항에서 배에 올랐고 미제7보병사단은 수원에서 남쪽으로 행군해간다고 했었다. 무엇인가 맥아더의 흉책이 예견되였다. 정예중의 정예라고 자처하는 미1해병사단을 전쟁이 한창인 때 본국에 실어갈리는 만무하며 인민군주력부대들이 무사히 후퇴해들어오고있는 이때 미7보병사단을 남하시킬 특별한 리유도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맥아더가 또 한차례의 상륙작전을 준비하고있다는것을 간파하시였다. 그러면 맥아더의 다음 상륙지점은 어디겠는가?… 주목되는것은 서해안의 남포와 동해안의 원산이였다. 그런데 남포는 지리적으로나 작전적으로 큰 의의가 없다. 맥아더가 노리는것은 원산이였다. 원산에 상륙하면 원산-양덕-평양간의 발달된 대도로를 따라 신속히 공격할수 있으며 38°선에 집결된 인민군부대들을 포위할 가능성이 생기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현존 방어력량이 불충분한 조건에서 원산앞바다에 조밀한 기뢰망을 설치하도록 명령하시였다. 그리하여 해군사령부에서는 각종 자석기뢰, 닻기뢰, 음향기뢰 등을 총동원하였다.
이러한 때 원산앞바다에 미10군단이 나타났다. 놈들은 10월 12일부터 비행대와 전함, 순양함, 구축함들의 엄호하에 일본해상보안청의 소해정들까지 동원시켜 기뢰해제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일은 헐치 않았다. 소해작업의 첫날에 벌써 미해군 소해정 《파이레쯔》, 《프릿지》호 등 2척이 자석기뢰에 걸려 산산쪼각이 났다. 태평양전쟁때부터 풍부한 경험을 쌓은 옛 제국해군들로 구성된 일본해상보안청의 소해정 2척도 련이어 거대한 폭발속에 사라져버렸다. 울상이 된 미1해병사단장 스미스는 맥아더에게 다음과 같이 타전했다.
《정예의 합중국해병대는 조선해역에서 멀미에 시달리고있다.》
상륙작전의 성과는 그의 은밀성과 신속성에 의해서 담보된다. 그러나 미1해병사단장 스미스는 기차를 놓친 사람격이 되고말았다. 그는 물론 도꾜의 맥아더조차 이 모든것이 사전에 예견되여있었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 어떤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에 의해서 한걸음 또 한걸음 래일의 파국에로 끌려가고있다는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고 또 알수도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동해안을 따라 원산에 침입하고있는 괴뢰군l군단의 움직임도 주의깊게 살피시였다. 이제 여기서 앞으로의 전쟁행정을 역전시킬 전대미문의 작전이 수립되게 된다. 그이께서 줄곧 구상하고계시는 비상한 사변은 바로 이곳에서의 적들의 움직임에 따라 시작될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국제1방향장에게 다음과 같은 특별임무를 주시였다.
《이제부터 동문 전선동부지역, 특히 원산-함흥 일대에서 벌어지는 적들의 군사행동에 대해 철저히 감시해야겠소. 사소한 변화라도 놓치지 말고 즉시 나에게 보고하시오!》
사소한것, 사소한 변화라도 놓치지 말라고 그이께서는 강조하시였다. 아직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상한 작전이 지금 그이의 사색속에서 무르익고있었다.…
포성에 창문유리가 드릉드릉 울렸다. 전선은 수도의 문어구에까지 이르렀다. 모든 중앙기관들이 다 소개된지 오래고 이제는 최고사령부만이 남아있었다. 이때 누구보다 더 조바심치고 안절부절한것은 강부관장이였다. 그는 이틀전에 벌써 남일에게서 최고사령부가 야전지휘소로 옮기게 된다는것을 들었었다. 그 준비를 미리 해놓으라고 남일은 귀뜸했었다. 그리하여 강부관장은 깐진 성미대로 모든 비품정리 및 이동준비를 했다. 장군님의 집무실을 제외하고는 최사통신결속소까지도 준비가 끝나있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전선지휘에 여념이 없으시였다.
남일이 도착했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화를 받고계시였다.
계응상박사를 찾아 안전지대로 무사히 소개시켰다는 보고였다. 리성조에 대해서도 보고되였다. 《도주》했다던 리성조가 어데선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병기생산국 서병호국장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군수공업분야에 리성조와 같은 사람들이 발붙이는것을 원래 께름하게 여겨오던 그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곧 서병호를 전화로 찾으시였다. 잠시후 신성천역에 나가있는 서병호국장과 전화가 련결되였다. 보고된 내용과 같았다. 서병호는 리성조가 어데서 전화를 걸어왔는가 하는것조차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해방직후 극좌익 《프로혁명가》들이 부르짖던 《부르죠아자산계급출신인테리 숙청》의 메가폰소리가 아직도 그의 귀전에 메아리치고있는 모양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밖의 바람소리에 귀기울이시며 잠시 말없이 서계시였다. 비스듬히 열려있던 소창문이 덜그럭거리며 찬바람이 쓸어들었다.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군수공장이설은 어떻게 돼가오? 언제까지면 다 끝낼수 있소?》
《장군님! 이제 540호공장설비만 옮기면 기본적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런데 방금 놈들의 폭격이 있었습니다.》
《피해가 많소?》
《제관직장의 샤링그와 기타 설비들이 파괴되였습니다. 그렇지만 수리할수는 있습니다. 보다 더 문제로 되는것은 철도수송이 매우 긴장한데다가 540호공장설비를 문 기관차가 파괴된것입니다.》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요?》
《장군님! 군사교통부에 말해서 여기 신성천역에 서있는 위생렬차의 기관차를 먼저 돌려쓰기로 했습니다. 위생렬차는 부상병들을 더 기다렸다가 출발해도 됩니다. 장군님, 념려마십시오. 무조건 제기일내에 공장이설을 끝내고 생산에 들어가겠습니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애써 분노를 누르시였다. 호흡이 급해지고 손마디들에 경련이 이는듯 느껴지시였다. 매일 매시각 더 어려워지는 전선의 정황도 이렇듯 고통스럽게 느껴보신적은 없었다. 물론 전쟁의 현 시점에서 군수공장이설은 분초를 다투는 초미의 문제이다. 허나 부상병들을 후송해야 할 위생렬차의 기관차까지 떼여달 생각을 하다니, 누가 감히 그럴 권리를 주었는가. 피흘린 전사들을 1분 1초라도 지체시킬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전기관리국 기사장 리성조를 믿을수 없다고 은연중 밀어던진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이께서는 이윽고 천천히, 애써 어성을 낮추며 말씀하시였다.
《서병호동무, 군수공장이설은 물론 최우선적인 과업이요. 보총 한자루가 귀한 때이니만큼 그것은 한시도 미룰수 없소. 그러나… 그 모든 초미의 과업, 최우선적과업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소. 그것은 동지에 대한 사랑, 인민에 대한 사랑이요. 이것은 모든 사업의 출발점이요. 그런데 동문… 사람들보다 먼저 무기를 생각하고있소. 그 총을 메워줄 전사들은 왜 생각 못하오. 자기가 만든 총을 메고 싸워야 할 전사들이 그곳에서 고통받을것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말이요!… 참을수 없는 일이요. 동무의 주관적의도는 어떻든간에 지금 동무는 탈선하고있소. 엄중하게도 우리 인민군전사들의 순결한 애국심에 그늘을 던지고있소!…》
그이께서는 가슴이 쓰리시였다. 능력있고 정열적이며 통이 큰 일군으로 알려진 서병호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고있는가!… 흔히 전쟁에서는 단호하고 무자비해야 한다고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일군들이 없지 않다. 그들은 이 전쟁이야말로, 날마다 시각마다 류혈과 죽음에 몸서리쳐지는 이 전쟁이야말로 가장 뜨거운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것을 망각하고있다. 그것이 보통사람의 편견이라면 문제가 다르지만 수백수천명 사람들의 생활과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일군들의 경우에는 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크게 숨을 내뿜으시였다.
《위생렬차의 기관차는 즉시 돌려주시오. 파괴된 기관차를 복구하되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엔 최고사령부에 직접 련락하시오. 그리고 리성조동무를 찾으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데리고 가야 하오!…》
그이께서는 전화를 끝내고도 한동안 계속 한자리에 서계시였다. 남일이 한발 앞으로 나서자 비로소 그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남일의 보고를 주의깊게 들으시였다. 새로 편성된 부대들이 전개된 계선을 지도에 몸소 표식하시였다.
그러는 가운데 한동한 침묵이 흘렀다. 남일은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기회를 얻기가 힘들리라고 생각했다.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절박한 문제가 있었다.
《장군님! 한가지 더 보고드릴게 있습니다.》
《뭐요?》
그이께서는 아직 지도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시였다.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가 특별렬차에 준비되였습니다. 이제 최사통신결속소만 옮기면 다 끝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허리를 펴시였다.
《지금 그 렬차가 어데 있소?》
《옥천차굴에 대기시켰습니다.》
《?…》
그이께서는 손에 쥐고있던 연필을 놓으시였다. 남일이 또 설명을 달았다. 급변하는 정세는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를 렬차로 정하는것이 장군님의 전선지휘를 보다 신속하고 믿음직하게 담보하리라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남일의 말이 옳다는것을 인정하면서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우시였다. 남일이 진정 가슴조이며 기다리고있는것이 무엇인지를 그이께서는 알고계시였다. 그는 지금 장군님께서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로 한시바삐 옮겨가시기만 바라고있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탁상일력을 피끗 쳐다보고나서 조용히 물으시였다.
《최현동무와 박정덕동무들한테선 아직 아무 소식도 없소?》
《예.》
《김책동문?》
《지금 황주계선에서 미1기병사단의 침공을 저지시키고있습니다.》
《김책동무가 후방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해야겠소. 지금 김책동무는 마지막까지 결사전을 벌릴 생각을 하고있는것 같은데… 그래선 안되오. 즉시 련락하시오!》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남일은 제기한 문제에 대한 결론을 끝내 받지 못한채 집무실을 나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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