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조선의 힘 1-26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조선의 힘 1-2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412회 작성일 19-12-23 19:08

본문

image

26

 

이무렵 도꾜의 다이이찌 빌딩(맥아더총사령부 건물)은 열병에 뜬것처럼 분주했다. 조선전선에서의 혁혁한 《승리》를 전하려고 전신기들이 련발사격을 해대듯 따르륵거렸고 숱한 전보문들이 날아가고 날아왔다. 전화기는 하루종일 쉴새없이 몸부림쳤다. 따르릉, 따르릉!… 민정국장 휘트니준장은 성가시게 울어대는 전화기로 다가갔다. 송수화기를 드니 일본내각 관방장관 오까자끼 가쯔오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류창한 영어로 가쯔오가 말했다. 《한가지 청을 드리고싶어 이렇게 실례하는거예요. 예, 예, 다름이 아니라 요시다 시게루수상이 총사령관각하를 뵙고저 하는데… 오늘 혹은 래일 상면이 가능한지 문의해주시겠습니까?》

휘트니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원수는 요즘 몹시 바쁘오. 잘 아시겠지만 요즘 전선에서는…》

《아 전선형편은 우리도 잘 압니다. 참 미리 축하도 드려야 하는건데 우린 모두 유엔군의 혁혁한 승리를 진심으로 기뻐하고있습니다.》

《고맙소.》

휘트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요 깜찍한 녀석이 왜 여기로 전화를 걸어왔겠는가. 절차대로 하면 부관실을 통해 문의하는게 옳을것이다. 그러나 맥아더의 벗이라고도 할수 있는 나를 통해 쉽게 목적을 이루어보려고 작정한게 분명하다.

《그래 원수를 만나려는 용건은?…》

휘트니의 물음에 가쯔오는 재빨리 말했다.

《예, 수상각하는 조선전선에 조달한 군수품문제와 시게미쯔 전 외상문제 등을 급히 토의하고저 합니다.》

《알겠소. 그렇게 보고드리지요.》

《고맙습니다. 국장님, 그럼 안녕히!》

10분후 그는 맥아더의 방에 가있었다. 공기조절기가 설치된 그의 사무실은 크지 않았다. 호두나무로 장식된 아담한 벽, 검소한 가죽안락의자, 푸른색 라사천이 씌워진 탁자, 한쪽벽에 붙여놓은 유리책장들… 거기에는 수많은 군사리론책들이 꽂혀있었다. 그밖에 또 작은 흡연탁자가 한쪽구석에 놓여있었다. 맥아더는 회색주단을 오가면서 무엇인가 사색하고있었다. 그는 늘 이렇게 혼자 조용히 외계와 동떨어진 세계에 박혀 사색하기를 즐겨했다. 다른 사무실들과 달리 방에는 전화기도 없다. 불필요한 치례와 번잡한것을 그는 질색하였다.

맥아더는 요시다수상의 상면요청에 애매하게 머리를 기웃거리고나서 한동안 주단우를 오락가락했다.

《마침 잘 왔소. 거기 상우에 있는 전보를 읽어보오.》 그는 방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고 량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나는 당장 압록강에 가닿으려 하는데 저기 워싱톤에서는 괴이한 상봉을 제의하고있소.》

휘트니는 탁자앞으로 다가갔다. 한장의 전보가 그우에 놓여있었다.

 

《국무성 제74368호 전보

 

보낸 사람: 국방장관

받는 사람: 극동미군총사령관

오는 15일 트루맨대통령이 당신과 회담을 가질것을 바라고있는바 회담장소는 호놀룰루가 적합하다고 본다. 사정이 있으면 웨이크섬이나 기타 당신이 바람직하다고 인정하는 곳에서 만날수도 있다.》

휘트니의 표정을 살피던 맥아더가 무슨 영문인것 같으냐고 물었다.

휘트니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잠시 생각을 굴렸다. 변호사출신에 다방면적인 지식의 소유자이고 또 맥아더의 심복인 그로서는 적중하고 현명한 해석을 주어야 했다. 전보장을 뱅뱅 돌려보고나서 그는 말했다.

《대통령은 지금 각하의 눈부신 군사적승리를 가로채려고 기도하고있습니다.》

휘트니의 확신에 찬 말에 맥아더는 곰방대를 든채 회색주단가운데서 굳어졌다.

《지금 합중국내에서는 치렬한 선거경쟁을 벌리고있는데 이러한 때 대통령이 각하를 만나 회담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조선전쟁의 승리를 대통령자신의 이름과 결부시켜 생각하게 될것입니다. 그야말로 제때에 맥아더원수를 승리에로 이끌어준 현명한 대통령으로 칭송받자는것이지요.》

맥아더의 곰방대는 불이 꺼져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깊은 생각이 그를 못박아놓고있었다.

아직 맥아더는 한번도 트루맨을 직접 만나본적이 없다. 지난날 트루맨은 두번씩이나 맥아더를 초청했지만 그는 일본의 정세를 구실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미국과 일본사이의 어느 중간지점에서 만나자고 한다. 물론 트루맨은 하와이로 정했으면 할것이다.

맥아더는 계속 불이 꺼진 곰방대를 뻐금뻐금 빨면서 생각하였다. 하와이는 너무 멀다. 웨이크섬을 택하자. 그러면 트루맨은 미국으로부터 나와 그와의 사이의 4분의 3을 날아야 하지만 나는 4분의 1만 날면 된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웨이크섬이야말로 지난 태평양전쟁때 나의 눈부신 공적이 깃든 전적지이다. 응당 미국대통령은 여기에 날아와 전선지휘관인 이 맥아더를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한다.

맥아더는 곰방대를 탁자우에 놓았다.

《전보를 치오. <15일 웨이크섬에서 대통령을 맞이하게 되는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맥아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는 의미있는 미소를 띄우고 계속했다. 《나는 지금 모택동의 16자전법을 써보려고 하오.》

휘트니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모택동의 《16자전법》이 그가 활용한 유격전의 기본원칙 즉 《적진아퇴(敵進我退), 적주아요(敵住我搖), 적피아타(敵避我打), 적퇴아추(敵退我追)》를 이르는 말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회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자 맥아더는 흔히 뽐낼 때 취하는 자세로 두손을 허리에 짚고 목을 약간 왼쪽으로 기울사하면서 말했다.

《적퇴아추-바로 이거요. 대통령이 퇴각을 시작했은즉 추격을 해야 할게 아니요!… 웨이크섬에서 만납시다. 거기서 나는 대통령에게 아니 전체 합중국국민들에게 누가 전쟁을 승리에로 이끌고있는지 보여줄테요!》

맥아더는 트루맨이 루즈벨트가 죽은 후 헌법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대통령권좌에 올라앉던 그때부터 그를 질시하였다. 맥아더 자기가 《웨스트 포인트 군사관학교》졸업생으로서 미합중국륙군의 가장 젊은 대좌로 승진의 길을 걷고있을 때 트루맨은 한갖 《트라흐스터》라는 가게방의 심부름군, 은행서기를 거쳐 1차대전때에 초모되여 후방공급장교로서 련대점포를 열고 장사질이나 해먹던 녀석이였던것이다. 그러다가 벼락같이 출세의 길을 밟기 시작했는데 은행서기를 한 경험이 묘하게도 그를 닦아주고 장식해주었다. 전후 제대되여 미주리주의 정치적실권자에게 가붙었던 그때 깐진 계산과 검열에 대한 각별한 취미를 가지고 미주리주상원의원으로서 참가한 첫 재정검열결과는 그의 명성을 북소리마냥 울려주었다. 그후 국가방위예산안재정검열에서 또 귀신같은 솜씨를 발휘하여 그의 정치적발판은 공고화되였고 나중엔 부대통령자리에 올라앉는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1945년 4월 12일, 이날은 트루맨이 《축복》받는 날로 되였다. 그날 루즈벨트대통령이 자기의 초상화를 마무리짓고있던 화가의 눈앞에서 심한 경련을 일으킨 후 끝내 의식을 차리지 못했던것이다. 그의 침상을 지키고있던 의사들이 대통령의 사망을 확인하기 바쁘게 비밀경호원들이 트루맨에게 달려가 뒤문으로 끌고 나왔다. 어리둥절해진 트루맨이 방탄유리를 낀 승용차에 실려 백악관을 향해 달리고있던 그 시각에 이미 그는 미국헌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대통령이 되였던것이다. 이러한 트루맨이였으므로 전쟁과 피어린 《승리》를 통하여 자기의 명성을 성돌처럼 믿음직하게 하나하나 구축해온 맥아더로서는 경멸할만도 했다.

또 트루맨과 맥아더는 정치적인 적수들이기도 했다. 트루맨-애치슨을 주축으로 하는 국무성-민주당은 유럽제1주의로, 맥아더를 비롯한 국방성-공화당은 아시아제1주의로 호상 격렬하게 대결하였고 1948년 대통령선거때에도 이 두 세력은 각축전을 벌려왔던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대결감정에도 불구하고 군수독점체들의 손에 받들려 정계와 군부에 나섰으며 조선전쟁의 직접적도발자들로서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된 의식이 있었으니 그것은 공산주의를 《박멸》하겠다는 피타는 념원이였다. 공산당,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총과 딸라의 산아들-맥아더와 트루맨은 그러한 공통점에서 출발하여 웨이크섬에서 회담하기로 하였다.

워싱톤에서 보내온 답전에 의하면 대통령은 전용비행기 《인더펜덴스》호로 워싱톤을 출발하여 쎈트 루이스, 쌘프랜씨스코, 하와이를 거쳐 웨이크섬으로 가는바 일행으로는 합동참모본부의장 브레드리대장, 륙군장관 페이스, 태평양함대사령관 레드포드대장, 특별보좌관 해리맨 등 수행기자단이 2대의 수송기에 갈라타고 극비밀리에 떠난다고 했다.

요란스러운 행차였다.

전보를 읽은 맥아더는 잠시 생각한 끝에 말하였다.

《나의 일행은 단출하게 무읍시다. 당신과 부관,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무쵸, 그밖의 전선지휘관들은 싸움터를 떠나서는 안되오. 기자들도 필요없고… 그런데 주치의사는 꼭 준비시키시오.》

도꾜에서 웨이크섬까지는 약 8시간 걸린다. 도꾜시간으로 오후 3시에 웨이크섬에 내렸는데 작전직일장교의 말이 현지시간은 12시 10분이라고 했다. 다들 시계바늘을 돌려 현지시간에 맞추었으나 맥아더만은 자기 손목시계를 얼핏 들여다보고나서 숙소로 곧추 들어가버렸다.

휘트니는 무쵸대사와 같이 섬을 돌아보았다. 찌는듯 한 태양아래 쉼없이 밀려드는 파도의 물갈기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전쟁과 긴장한 로동에서 벗어나고싶었다. 그런데 무쵸가 아메리카식 실용주의의 체현자답게 말했다.

《제때에 쉴줄 아는자가 일할줄 아는자라고 했소.》

다음날 아침 6시 30분 트루맨의 일행이 섬에 내렸다. 비행기가 멎고 문이 열리자 맨처음 승강대로 발을 내짚던 트루맨이 주춤 멎었다.

휘트니는 당황했다. 아직 맥아더가 나오지 않은것이다. 대통령의 얼굴이 해쓱해지는것 같았다. 안경을 주무르며 무슨 말인지 중얼거리고있었다. 그때에야 맥아더가 나타났다. 태평양전쟁때의 낡은 군모를 쓰고있었다.

트루맨이 내려서자 맥아더는 경례를 붙였다. 격식대로 악수를 하고나서 트루맨은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말했다.

《장군, 해리 트루맨은 일없어도 미군 최고사령관을 지체시키는것은 좋지 않소!》

맥아더는 고개를 숙이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회의는 7시 30분에 시작되였다.

트루맨측에서는 브래드리 함동참모본부의장 외 8명이 주런이 위엄있게 앉았으나 맥아더측에서는 휘트니와 부관이 마주앉았을뿐이였다. 무쵸는 서울에서 걸어온 중요한 전화를 받느라고 빠졌다.

이른아침이고 랭풍기도 돌고있었으나 방이 무더워서 트루맨은 웃동을 벗었다. 그런데도 맥아더는 군복단추를 다 채우고 덤덤히 앉았는데 그의 손에는 유명한 곰방대가 들려있었다.

트루맨이 타자를 친 12건의 토의안건을 꺼내놓고 개회사를 하였다.

대일강화문제, 대만방위문제, 필리핀, 인도지나문제 등이 하나하나 토의되였다. 트루맨이 안건을 제기하면 담당자가 설명하고 맥아더가 짤막하게 의견을 내놓군 했다. 다른 의견이 없는가 물으면 매번 《없습니다.》하는 대답이 나오고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군 했다. 광범한 국제문제들, 특히 동방의 제국가 제민족들의 운명을 트루맨과 맥아더 둘이서 다루고있었다.

마지막으로 회담의 기본의제인 조선전쟁문제가 토의되였다. 먼저 선천-고인동-풍산-성진까지로 규정되였던 《맥아더선》문제가 론의되였다. 사실상 맥아더는 자기의 이름으로 명명된 이 계선이상은 절대 넘어서지 않겠다고 언명했었으나 오늘 유엔군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사태처럼 밀려가는 현 시점에서는 그러한 약속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보고있었다. 그는 《맥아더선》을 철회할것을 주장했다. 그대신 새로운 《감은절공세》를 벌려 전조선을 재빨리 일거에 점령하여야 한다고 력설했다. 그러면 극동의 조선반도는 《대륙에로의 건늠다리》로 될것이고 우리는 임의의 시각에 즉 정세가 바람직하다고 보아지는 그때에 중국이나 쏘련으로 급속히 진출할수 있을것이다.

맥아더는 군사작전회의에서 연설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적당한 체스춰로 자기의 주장을 믿음직하게 담보할줄 알았고 박력있고 정확하게 다듬은 말마디를 련속 줄기차게 내뿜을줄 알았다. 그럴 때 그의 연설을 듣는 사람들은 그가 곰방대로 내뿜는 지독한 연기에 취하듯이 전설적인 이 오성장군에게 취하고마는것이였다.

그러나 트루맨은 부기원출신답게 타산이 밝고 랭정하고 무서울만치 싸늘한 침착성의 소유자였다. 맥아더의 열띤 장광설이 고조에 이를무렵 그는 천천히 안경을 벗어들고 입김을 불며 닦기 시작했다. 그 무심한 동작에 맥아더는 입을 다물고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트루맨은 기다리고있은듯 조용히 물었다.

《장군, 전쟁이 언제 결속되오?》

바로 이것이 그의 주되는 관심사였다. 그가 알고자하는것은 여기에 있었고 여기서 그의 정치적책략이 시작될것이였다.

《각하.》하고 맥아더는 미소를 띄웠다. 《조선에서 적의 저항은 감은절(11월 제4주 목요일)인 11월 23일전으로 끝장날것입니다.》

《그 근거는?》

《그것은 첫째, 38°선 이북의 북조선군대는 현재 10만명 미만인데 그것도 장비와 훈련이 매우 부족합니다. 골격을 이루던 부대들은 남부전선에서 포위섬멸되거나 붕괴되였습니다.》

맥아더는 또한번 미소했다. 그러나 트루맨은 여전히 안경을 닦고있었다. 이것은 맥아더로 하여금 약간 어성을 높이게 했다.

《둘째, 우리는 무적의 공군을 가지고있습니다. 압록강의 북쪽이건 남쪽이건 가림없이 적의 기지와 보급로를 마음대로 파괴할수 있습니다. 설사 수십만의 대군이 나타난다 해도 우리 공군은 그들을 소멸할것입니다. 지금 우리 공군에는 타격할 대상이 없는것이 골치거리입니다.

각하, 이것은 제8군이 크리스마스전으로 일본에 돌아올수 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빈집이나 다름없이 된 일본을 쏘련이 노릴수 있기때문에 빨리 전쟁을 결속하고 조선에는 총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미군 2개 사단과 그밖의 유엔군 부대들을 남겨두는것이 합당합니다. 총선거는 래년 1월초순에 하게 될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트루맨의 권한에 속하는 정치문제까지 제멋대로 다루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태도가 너무도 틀지고 너무도 확고하여 트루맨조차 비난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다들 유쾌한 기분이였다. 조선전쟁이 끝나면… 하는 화제가 시작되였다. 그러나 맥아더의 열변으로써 회의는 사실상 끝난셈이였다.

얼마후 트루맨과 맥아더는 섬의 운수과장방에 가서 휴식을 했다. 과장방은 더웠다. 트루맨은 줄곧 땀을 훔치면서 얼음차를 청해서 마시고있었지만 맥아더는 땀한방을 흘리지 않고 태연히 앉아있었다. 공동성명초안이 작성된 후 수표를 했다. 이로써 웨이크섬회담은 끝났다.

 

이렇듯 웨이크섬회담은 외견상 트루맨과 현지사령관사이의 상봉비슷한것으로 되였다. 그러나 남부태평양상의 고도-웨이크섬에서 있은 이 회담은 사실상 미제의 새 세계전략의 리정표로 되였다. 드디여 트루맨-애치슨을 주축으로 하는 국무성-민주당의 이른바 유럽제1주의정책은 아시아제1주의로 방향전환을 시작하였다. 트루맨과 맥아더는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아시아를 지배하여야 하며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하여서는 조선반도를 반공전략의 교두보로 확고히 전변시켜야 한다는데서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리하여 조선전선의 《감은절공세》가 결정되고 맥아더는 호기있게 《전군은 압록강을 향해 돌진하라!》는 공식명령을 내리게 되였다.

그러나 트루맨과 맥아더는 오산하고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눈먼 소경노릇을 하고있다는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전장에서 일생을 보냈으며 로회한 책략의 능수, 빛나는 작전의 명수, 전설적인 명장 등으로 언론과 사가들에 의해 화려한 의상을 떨쳐입고있은 맥아더조차 바로 그무렵 자기네 배후에 강력한 제2전선이 전개되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지어 그는 8군사령부에서 《북조선공산군 주력부대들중 일부가 중부산악지대에 집결되고있다.》라는 전보를 보내왔을 때도 그것을 낡은 휴지장모양 밀어버리고말았었다. 맥아더의 심복인 휘트니준장이 그 전보를 알게 된것은 그로부터 이틀후의 일이였다.

매해 10월에 개최되는 히비야공원의 국화전시회는 도꾜의 전통적인 가을축제중의 하나이다. 휘트니는 이꾸찌외무차관의 초대를 받고 거기로 갔다. 사실은 맥아더도 초청되였으나 그는 이찌다마 일본은행총제의 방문을 구실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처 지니와 아들 아써를 보냈다.

1903년에 만든 도꾜에서 가장 오랜 이 공원은 한때 일본에서 보낸 벗꽃나무의 답례로 워싱톤에서 기증한 산딸기나무로 덮혀있다. 공원구조 역시 동서양식의 범벅이여서 이국적인 맛은 덜하였다. 그러나 흔치 않은 휴식의 한때여서 휘트니는 사뭇 기분이 좋았다. 그는 지니를 상대로 또 이꾸찌외무차관에게는 자기의 박식을 뽐내려 도꾜의 력사를 훑기까지 하였다.

15세기중엽 군주 도칸오카가 성을 쌓아 에도라고 부를 때만 하여도 크지 않은 도읍이던것이 수세기를 지나서는 어떻게 나라, 교또를 딛고 일어나 수도로 번창하게 됐는가 하는 장황한 풀이였다. 그러던중 이꾸찌외무차관이 잠간 자리를 뜬 짬을 타서 지니가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

《원수하고도 늘 력사풀이를 하세요?》

휘트니는 좀 얼떠름했다. 지니가 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원수가 제일 즐기는건 상륙과 폭격이예요. 통털어 말하면 전쟁이지만…》

《저… 무슨 말씀인지…》

《아유, 당신이 그걸 모르시는게 유감이군요. 10군단이 아직 원산에 상륙하지 못했어요. 또 당신네들이 웨이크섬에 가서 열변을 토하고있을 때 포위섬멸한다던 북조선군대주력이 다 빠져나갔대요. 일부는 어덴가 집결했고… 워커장군한테서 그런 전보가 왔어요!》

휘트니는 서둘렀다. 적당한 구실을 붙여 곧장 총사령부로 달려갔다. 맥아더를 찾아가 국화전시회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한 다음 넌지시 문제의 전보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맥아더는 한동안 우울한 기색을 하고있다가 천천히 곰방대를 빨았다.

《10군단의 상륙이 늦어진것이나 워커의 전보나 다 대수롭지 않은것이요. 10군단은 장진을 거쳐 강계로 쳐들어갈것이니 처음부터 예견했던 그대로인 셈인게고… 다음은 살아남았다는 북조선공산군 사단들 문제인데… 그에 대해서는 내 이미 웨이크섬에서 다 얘기하지 않았소?… 떠들어댈것은 아무것도 없소.》

이어서 그는 자기가 늘 인용하군 하는 석가모니의 말로써 끝을 맺었다.

《말해주는것은 좋다. 그러나 생각하는것은 더 좋다. 지혜로운것은 좋다. 그러나 때를 기다리는것은 더 좋다!…》

휘트니는 입을 다물고있었다. 맥아더의 곰방대에서 뿜어진 회색의 연기가 또다시 그를 취하게 하고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