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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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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082회 작성일 20-01-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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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류현수는 7군단병원에서 벌써 닷새를 보내고있었다. 한때 리숙이 수술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후퇴해 들어오자 병원에 끌려간것이다. 그런데 매일같이 새 부대들이 편성되고있었으므로 자칫하다가는 전혀 생소한 부대로 갈수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부상병들이 그 일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 류현수는 뜻밖에 병원신세를 지고있는 일로 하여 일종의 거북스러움과 수치감을 느끼고있었다.

리숙이와 그의 일행을 자주 생각했다. 그들과 같이 힘겨운 길을 걷고있을 때에 비하면 아주 멀쩡해진 자기가 병원에 들어박혀있는것이 참을수 없이 창피스러웠다.

현수가 들어있는 호실엔 5명이 있었다. 그중 키가 크고 수다스러운 반땅크총부사수만이 초면이였다. 그는 자기가 도합 7대의 적땅크를 파괴했노라고 자랑하군 했다. 얼마전 수술에선 견갑골아래에 박힌 장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큰 파편을 꺼냈다고 은근히 귀띔하기도 했다. 그를 보통 《부사수》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상한 일로 그는 매일 한두가지의 새 소식을 가져오군 했다. 거기엔 치렬한 싸움이 벌어진 운산지구의 전과로부터 새로 부임된 지휘관들, 표창, 처벌 관계, 간호원처녀들간에 오간 비밀의 속삭임 등 별의별것이 다 있었다.

《여보게들, 이제 우리 군단이 곧 전선동부로 진격한다누만!》

그는 복도 한끝까지만 거닐어도 고성능안테나처럼 새소식을 받는듯 했다.

《그런데 병원에 배겨있는 콩깍지들은 다 버려둔채 간다더군. 말하자면 임자네 같은 사람들이지.》

《그럼 자넨 뭔가?》

《나야 알쌈이지. 탄알이 그득 차있는 알쌈!》

그는 늘 말 한마디 없이 입을 꾹 다물고있는 현수를 건드리지 못해 안달아했다.

《이보게 공병! 싸움판에 나가지 못해 그러나?… 그래서 늘 벌레씹은 상이였군그래. 그럼 나 하라는대로 해보겠나? 멋진 수를 하나 대줍세.》

현수는 원래 수다군들을 믿지 않았다. 더구나 남을 웃기려고 우정 말재간을 피우는 사람들앞에서는 심한 불편을 느끼군 했다.

저녁무렵이였다. 키다리 《부사수》가 지팡막대기를 딱딱 소리나게 짚으며 잠간 나갔다 오더니 현수에게 한눈을 찌긋했다.

《여보게 공병! 희한한 소식 하나 대달라나?》

현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하- 임자 귀구멍이 번쩍 트일 새 소식인데두 안듣겠다?!… 에라 그럼 별수 없지. 다음은 우리 전수옥동무 차례요-》

전수옥이란 이제 겨우 열예닐곱이나 났음직해보이는 귀염둥이 간호원이다. 그 처녀는 한 부상병의 상처를 처치하고있었다.

《수옥동무, 새 소식이 있는데 어디 맞혀보라구요-》

《흥, 싫어요. 또 전번처럼 놀림가마리를 만들려구!》

《아- 그런게 아니요. 내 방금 피복서기를 하는 친구 하나를 만났는데 새 피복공급규정이 나왔구만… 굉장하오. 수옥동무, 이제 처녀들에게는 말이요…》

그는 처녀의 귀에 대고 낮게 수군거렸다. 그러자 수옥이 얼굴을 붉히며 낮게 부르짖었다.

《어마! 내가 그건 해서 뭣합니까!》

《아- 모르는 소리.》 키다리 《부사수》가 또 희떱게 열을 내여 말했다. 《어떤 환난속에서도 랑자는 꽃같이 자기를 가꿀줄 알아야 하느니라… 이게 누구의 말인지 아오? 강감찬장군이 설죽화에게 한 말이요!》

현수는 참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이발새로 신음소리같은것이 새여나왔다. 얼굴은 퍼런 빛이 돌만큼 침침해졌다. 그는 껄낏한 욕지거리가 목구멍으로 치미는것을 가까스로 눌렀다. 지금 전선은 100리안팎에 있다. 거기서는 이 시각에도 피어린 격전이 거듭되고있으며 사람들이 피흘리고있다. 리숙이와 그의 일행은 아직도 먼 적구에서 눈물겨운 고된 행군을 계속하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부사수》는 시시껄렁한 롱지거리로 사람들을 웃기고는 장한듯 으시대고있다.

현수는 문가로 걸어갔다. 그의 심상치 않은 기색이 사람들의 주의를 끈것 같았다. 《부사수》가 그를 불렀다.

《여보게 공병!》

현수는 멎어섰다. 천천히 머리를 돌리고 가늘게 쪼프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속에서 불찌가 튕기고있었다. 홀연 방안은 조그만 소리에도 깨질것 같이 땡땡 얼어든 적막이 서렸다.

《난 래일… 전선으로 가오.》 부사수의 말이였다. 입을 실룩거리며 바람새는 소리같이 이상해진 목소리로 계속했다. 《동무들을 유쾌하게 해주려고 했었는데…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해주게.》

《…》

별안간 명치끝이 쑤시는것 같았다. 현수는 흙매질한 벽모서리를 짚으며 몸을 돌렸다. 《부사수》가 또 말을 이었다.

《동무가 무슨 일로 속을 썩이는지 나도 아네. 그래 좋은 소식을 알려줄가 했던것인데… 이건 정말일세. 들어보겠나?… 적구에서 대규모적인 파괴전을 조직진행할데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의해서 전투경험이 풍부한 공병들을 선발하고있네.》

《…》

《왜 믿어지지 않나?… 더 정확히 말하면 최고사령관 명령 제00164호일세. 숱한 공병들이 곧 적후투쟁부대들에 파견된다더구만.》

《…》

현수는 눈시울을 가늘게 떨고있었다. 목줄띠를 잡아당기듯이 목에 경련이 일어났다. 수다쟁이 《부사수》에 대한 경멸과 분노가 바람에 불린듯 사라져버렸다. 그는 비칠거리며 손더듬으로 돌쩌귀를 찾아쥐였다. 당장 문을 차고 달려나갈 기세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를 홱 돌렸다. 《부사수》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꽉 그러쥐고는 별안간 입귀를 바르르 떨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고맙소. 동무!…》

이 며칠사이 그가 처음 한 말이였다. 그는 밖으로 나섰다.

얼마후 현수는 외과과장앞에 서있었다. 한때 민주선전실이였던 집의 넓은 칸을 미닫이로 대충 막고 그 한쪽에 군의일군들이 자리잡고있었다. 다른쪽은 수술실이였다. 석탄산, 요드 등 강렬한 약냄새가 진동하고있었다.

《난 전선으로 가야 합니다.》 현수가 말했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그리 아십시오.》

외과과장은 중좌직급의 늙수그레한 사람이였다. 두눈에 피발이 서있었다. 입을 놀리는것도 힘겨운듯 지싯지싯 중얼거렸다.

《자네가 언제 나가야 하는지 아는건 우리야.》

《난 적후로 가야 합니다. 오늘 당장!… 알겠습니까? 죽으나 사나 가야 합니다!》

《우린 죽을새두 없어.》

외과과장은 귀찮은듯 한팔을 내젓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는것을 현수가 막아섰다.

《이제 당장 적구에... 파괴조들이 떠난단말입니다. 적구에서 대규모적인 파괴전을 벌릴데 대해 장군님께서 명령하셨는데… 내가 공병이라는게 이쯤한 상처때문에… 그래 말이 됩니까, 예?… 장군님께서 나를 부르셨단말입니다. 이래도 못알아듣겠습니까?…》

현수의 마지막 말에 외과과장은 펀뜻 정신을 차린듯 했다.

《이름이 뭐라구?》

《예. 류현수입니다. 여게도 적혀있지 않습니까!》

《음- 그래, 그래!…》

외과과장은 탁자우에서 병력서가 아니라 자그마한 수첩을 펴들었다. 킁킁 코소리를 울리며 몇장 번져보다가 또 현수의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그렇댔군!…》

현수는 어리둥절했다. 별안간 입을 다물고 그가 전화기의 발전자돌리개를 잡는것을 놀라서 바라보았다. 외과과장은 전화를 걸었다.

《대렬부장을 주시오!…》

잠시 기다리는동안 현수에게 엄한 시선을 보냈다. 벌써 그는 지칠대로 지쳐버린 늙은이가 아니라 까다롭고 막무가내로 고집이 센 군의일군이였다.

《부장동지! 군단병원 외과과장 서용삼입니다. 예, 보고하겠습니다. 다름아니라… 아까 부장동지가 말하던 그 친구를 찾았습니다. 예, 류현수!… 지금 제앞에 와있습니다. 예. 스스로 왔습지요. 어데서 귀동냥해들었는지 적후로 간다나요. 마구다지로 소래기를 지르고있습니다. 예?… 그것말입니까?…물론 싸우기야 하겠습죠…》

현수는 긴장했다. 입술이 말라들었다. 외과과장은 현수쪽을 눈짓하며 주름이 잡힌 입을 비쭉거렸다.

《상처말입니까?… 예, 정확히 말하면 거지반 나아가고있습니다. 예. 지금 상태로도 적구에 들여보내면 폭약대신에 망치를 휘둘러 철다리를 파괴하려들겁니다. 이자도 주먹으로 저의 골을 막 부시려들던걸요… 예, 제꺽 쫓아보냅지요.》

좋은 늙은이였다. 익살맞고 부드럽고 점잖고 고지식하고 또 능청스러운 늙은이였다. 전화가 끝나기 바쁘게 현수는 그의 두손을 꽉 거머쥐였다.

《고맙습니다. 과장동지!》

외과과장이 비명을 질렀다. 황겁히 손을 꺼내자바람으로 입김을 불어댔다.

《원 쇠집게같은게!… 이게 어떤 손인지 알아?… 생명을 건지는 손이야!…》

 

군단대렬부장은 키가 작고 다부진 사람이였다. 잠을 못자 부석부석한 얼굴을 손으로 한참 문질러댄후 현수를 가까이 오도록 손짓했다.

《며칠째 동무를 찾고있었소!》

볕에 탄 거무스레한 주먹을 책상우에 올려놓고 현수를 뜯어보더니 머리를 기웃거렸다.

《싸울수 있겠소?…》

《…》

현수는 그가 자기의 강마른 얼굴을 계속 살피는동안 입을 다물고있었다.

《왜 대답이 없소?》

《부장동지! 저에 대해선… 이미 외과과장동지가 보증하였습니다.》

《음-》

대렬부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수 역시 용수철처럼 튕기듯 일어났다.

《적구로 가야겠소.》 대렬부장은 대뜸 이렇게 시작했다. 《이제 곧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의해 적후활동지역에서 대규모적인 파괴전이 진행되는데… 제1진과 2진은 벌써 출발했소. 동문 제3진으로… 서울제4보병사단활동지역으로 파견되오. 6개의 파괴조를 인솔하는 지휘관이요!》

그는 책상서랍을 열고 새 군관견장을 꺼내였다.

《종전의 직급 그대로 활동하게 되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직접 말씀이 계셨소.》

무엇인가 가슴 한쪽을 뜨끔하니 깨무는듯 했다. 힘껏 다문 입술이 움씰거리고 목이 꽉 메였다.

《장군님께서?!…》

가까스로, 불길같은 짧은 호흡으로 이렇게 속삭였을뿐이였다.

《그렇소. 장군님께서는 동무가 가혹한 처벌을 받았지만 후퇴의 어려운 시련속에서 자신을 단련하며 만난을 이겨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주신 새 전투명령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소.》

《!…》

현수는 가쁜 숨을 들이그으며 헐떡이였다. 심장은 벅찬 경련에 헝클어진 박동으로 맹렬하게 뛰놀았다. 눈앞이 뿌얘지고 대렬부장의 말소리조차 아득히 먼 상공에서 울려오는듯 했다.

《받으시오. 현수동무!…》

눈시울이 사뭇 세차게 실룩거렸다. 형언할길 없는 격정이 가슴속에서 길길이 솟구쳐올랐다.

《장군님!!》

그는 어깨를 떨면서 목메여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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