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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50년 여름 제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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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4,456회 작성일 20-02-1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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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15 장

 

김책이 중앙청에 도착한것은 밤 12시 10분이였다.

그는 평양에서 떠난길로 내처 오산전투장까지 나갔었다. 그 어떤 필요로 나갔는가고 누가 묻는다면 꼭 찍어 대답할수 있는 리유란 없었다. 감정적으로 볼 때는 평천리폭격장에서 받은 그 어떤 충격에 끌렸다고 할수 있었고 론리적으로 볼 때는 이제 최용건이나 강건을 만나 사업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가볼 시간을 얻어낼수 없다는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뭔가 전선에 대한 일정한 표상과 준비를 가지고 인계사업에 들어서고싶은때문이였다.

나가본 소득은 컸다. 오산은 인간의 증오라는 감정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거대한 힘을 낳는가를 보여주는 격전터였다. 미군의 《신화》는 여기서 여지없이 깨여져버리고말았다.

전투는 10시경부터 시작되였다.

도로를 따라 전진한 15땅크련대의 선두땅크들은 바주카포의 집중포화를 맞받아 맹속으로 돌진하여 그대로 남쪽으로 나가 평택과 안성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였다. 그뒤를 따르던 30련대의 땅크들은 도로변의 포좌지를 무한궤도로 짓뭉개고 페리중좌가 있는 포지휘소를 일격에 짓부셔버렸다. 포지휘기능이 마비되고 곡사포들이 입을 다문 기회를 틈타 18보병련대의 전사들은 땅크와의 협동작전밑에 《스미스특공대》의 제1제대인 A중대와 B중대를 정면과 익측으로 쳐들어가 전멸시켰다. 나머지순위의 중대들로 구성된 스미스자신이 지휘하는 주력이 틀고앉은 118고지는 강력한 중기관총화력으로 아군을 제압하려들었다. 미군비행대까지 날아들어 미군의 권위가 이 땅에서 처음으로 시험되는 《모범전투》를 지원하여 기관총, 폭탄사격까지 퍼부었다. 그러나 어떤 힘도 아군의 진격을 막을수 없었다. 한개 대대가 익측을 우회돌파하여 118고지를 포위하는것으로 전투의 운명은 결정되였다. 논벌과 야산기슭으로부터 총창을 꼬나들고 땅크의 장엄한 동음과 더불어 죽음과 같이 무시무시한 함성을 웨치며 내달아오는 갈색옷차림의 사람들이 불사신마냥 전호에 뛰여들 때 《유람식싸움》, 《스포츠적인 놀음》, 《경찰전》의 달콤한 선전에 끌려와 일확천금의 환상곁에 취해있던 미국의 젊은이들은 자기들을 이런 지옥에 끌어온자들을 미처 저주하기도전에 총창과 총탁에 가슴팍이 뚫리고 골통들이 바사져나갔다. 극소수의 인원만이 살아 도망쳤다.

미군포로는 없었다. 《항복》이라는 조선말을 배워주지 않은 미군지휘관들의 잘못이였으나 보다는 남의 땅에 기여든 이 강도들에 대한 인민군전사들의 증오심이 그런 아량을 베풀게 하지 않았다.

김책은 여기서 로획품 무기와 탄약을 자기들의 부대 운수차가 오면 실어보내려고 기다리는 54사 18련대 군인들과 만났다. 알고보니 그들은 118고지를 창격전을 벌려 점령한 모범전투중대로서 운수차만 아니라 종군기자들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사진촬영대상으로 찍혀져있었던것이다. 김책은 송기덕이라는 중대장과 혼자서 18명의 미군을 찔러눕힌 병사와 짤막한 담화를 나누며 이들은 미국놈 알기를 헝겊막대기처럼 우습게 본다는것을 알았다.

(그래, 이것이 기본이지.)

김책은 큰 발견을 한 사람처럼 기분이 부쩍 좋아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서 그 기분은 깨여지고말았다. 도로는 내려올 때처럼 돌아갈 때도 완전한 복새판이였다. 왕복 90여km밖에 안되는 길에서 근 두시간을 잡아먹었다. 포차와 화물차 고등어차와 탄약차, 행군하는 보병들로 립추의 여지없이 붐비는 도로는 저마끔 앞서겠다는 경적과 고함소리로 터져나갈 지경이였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김책은 사람과 차로 혼탕이 되여 굼뜨게 흐르는 행렬을 보며 심각해지였다.

간밤에 하시던 김일성동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미군의 본격적개입으로 전선사태는 시시각각으로 엄중해집니다. 우리의 승리적전진의 결과로 전선의 길이가 멀어진 실정은 매우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을 빚어내고있습니다.

군수물자의 수송보장, 통신련락체계, 이것이 제일 큰 고충으로 제기될것입니다. 또한 시간을 다투며 급변하는 정황에 대처하여 전선지휘관들이 어떻게 령활한 반응과 기민한 전투조직을 하는가 하는 이것입니다. 전선사령관은 우마차운행과 전화선가설법으로부터 작전에 이르기까지 박식할뿐아니라 포괄적으로 조직지휘하는 군사가, 경제가의 두뇌를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이 전쟁이 전인민적전쟁이라는것입니다. 이 전쟁의 목적과 의의를 자각한 인민군장병들과 함께 인민들의 힘을 능동적으로 창조적으로 조직동원하는면에 대해서도 전선사령관은 응당한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거기서는 남반부인민들도 례외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정연하고 유일적인 보고체계와 명령지휘체계의 확립입니다. 독자적인 결심과 판단을 내릴수 없는 문제는 즉시적으로 보고하여 결론 받아 움직이는 측면에서 지난 기간 결함들이 있었습니다. 그로 하여 전선지휘에서 우유부단하고 좌왕우왕한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이런데서부터 일부 지휘관들속에서는 자의적으로 움직이려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것은 오래인 유격전쟁에 몸배인 우리 지휘관들만이 할수 있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허나 그것은 립체적인 협동동작밑에 수행하는 현대전에 놓고볼 때 약점으로도 됩니다. 그렇다 하여 복잡하고 수시로 변하는 각이한 정황속에서 지휘관들의 독자적인 결심채택을 무조건 억제하고 <균형>과 협동만을 요구하면 결국 사슬에 묶어놓은 식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전선사령관으로서의 동무의 몫이 있습니다.》

중앙청계단을 오를 때의 김책의 마음은 여러가지로 복잡하고 무거웠다. 그는 군사적인 능력과 지혜로 볼 때 언제한번 자기를 최용건보다 낫게 여긴적이 없었다. 오히려 많은 면에서 그는 최용건의 장점을 인정하고 존경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강에서 범한 최용건의 실책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불만을 금할수 없었다.

오랜 벗이였으나 이로 하여 그는 최용건에 대해 랭혹하다고 할 정도의 비판적인 립장에 서있었다. 당직군관의 보고를 받고 뛰여나온 강건이 2층계단에서 김책을 맞이하였다. 김책은 악수만 나누고 간단히 말했다.

《부서장들이 다 있소? 2시 20분부터 전선사령부 부서장회의를 합시다.》

김책은 강건이 최용건의 방에 안내하려는것을 그만두게 하였다.

《동문 입술에 퉁기까지 쳤구만.》

김책은 강건의 주의깊은 시선을 느끼며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문을 열었다. 차렷자세를 취한 최용건의 부관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집무실문을 열었다.

탁상등이 푸릿한 빛을 던지는 작전탁모서리에 앉은채 두손을 지도우에 얹고 내려다보는 최용건의 모습이 흰벽에 커다란 그림자로 굳어져있었다.

《안녕하시오, 최용건동무!》

최용건은 알릴듯말듯 몸을 흠칫하였다.

《아, 왔구만!》

의자를 와락 밀치고 일어선 그는 성급한 동작으로 걸어왔다.

두사람은 한동안 꽉 부둥켜안았다가 손을 잡은채 작전탁쪽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나 해서 걱정했소.》

최용건이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격동과 고민이 스쳐간 자욱이 거밋하게 그늘을 지운 최용건의 얼굴은 전반적으로는 약간 상기되여있었다.

최용건은 작전탁우의 지도를 반듯하게 해놓고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김책을 보았다.

《김책동무, 나는 지금 대전까지 나갔어야 할 전선을 겨우 여기서 인계하오.》

최용건은 오산계선을 조금 벗어나간 화살표식에 시선을 주었다가 김책의 반응을 지키듯 입을 다물었다.

《다 알고있는 전선이니 그만둡시다. 강건동무도 있지 않소. 그건 그만두고 나의 사업에서 앞으로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되는 점들에 대해서 말해주오.》

최용건은 저으기 놀란 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점점 고통스럽게 변해갔다.

《내가 무슨 신통한 조언을 줄수 있겠소. 있다면 나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것이요. 나의 실책은 서울에서의 3일간 지체를 만들어놓았소. 그런데 아직도 그것을 회복하지 못하고있소. 앞으로도 그것은 무엇으로도 보상 못할것이요.

나는… 결국… 장군님의 작전방침에 지장을 준 사람으로 되였소. 김책동문 응당 그에 대하여 말해야 될것이요.》

김책이 그에게 담배갑을 꺼내 내밀었으나 최용건은 그에 눈도 돌리지 않았다.

김책은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담배대를 뽑아쥐다가 갑채로 놓고말았다.

《동무의 실책을 생각하면 괴롭소. 나 역시 그런 정황에 부딪치면 다른 방도를 얻지 못했을것이요. 아니 필경 그랬을것이요. 그런데는 왜 제때에 보고하지 못했는가 이것이 안타깝소. 급속강행도하명령을 받고도 동무가 그런 완만한 결심을 단독으로 채택한것이 리해되지 않소.》

김책은 바라지 않던데로 화제가 뻗어가는것이 못마땅했으나 일단 제기된 문제에서 피할수는 없었다.

《어찌보면 동무가 자만하지 않았는가 또 다르게는 가벼운 인정에 끌려 그러지 않았는가.》

김책은 여기서 말을 끊었다. 최용건의 얼굴이 재빛으로 변해가면서 눈섭이 푸들푸들 떨었다.

《최용건동무. 안됐소. 만나기 바쁘게 가슴아픈 말만 했구려.》

《무슨 말을!… 나 하나 가슴아픔이 뭐요? 조국의 운명이, 민족의 운명이 판가름되는 이때에… 나는 전쟁승리를 앞당기는데 아무런 보탬도 못준 지휘관이 되고말았소.》

최용건은 가슴에서 태질하는 진통을 더 참을길 없는듯 김책을 보다가 계속하여 말했다.

《나는 시간을 잃었소. 이것은 나에게 일생 남을 후회요. 정말이지 시간과 기회는 가버리면 다고 후회는 가실길 없으니 영원한 괴로움이요. 김책동무, 열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들이 나를 검증했구만. 나는 낡았소.》

《최용건동무.》

《아니! 내가 왜 이처럼 괴로운가. 그건 더구나 동무앞이기때문이요. 나는 요즈음 자주 41년도 정월회의때를 생각했소. 지금은 더욱 그렇소. 나는 그때의 열렬한 맹세와 약속을 어겼다는 느낌까지 드오. 그래, 어긴것이지.》

최용건은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 열어제낀 창가로 다가가 비통한 자세로 기둥박힌듯 서있었다.

1941년 1월, 북방의 밀림속, 강마른 추위, 어데나 희디흰 눈뿐이였다. 그날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련합군 지휘간부회의에 모인 자리에서 다가오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그리며 혁명의 광활한 전망을 펼쳐주시였다. 밤새 밀림을 쥐여흔들며 눈보라가 울부짖었으나 그때 최용건이나 김책은 진달래 곱게 핀 조선의 산언덕을 해방자로 밟는 아릿다운 꿈에 취해있었다. 회의가 끝난 새벽, 밖으로 나섰을 때 눈보라가 고요히 잠든 밀림의 정수리를 꿰비치며 아침해가 떠올랐다. 흰눈을 붉게 물들이는 려조를 밟으며 김책과 최용건은 애된 소년의 천진한 마음으로 끝없이 걸었다. 최용건은 어느 작식대원이 떨어뜨린 장작개비를 들고 나무가지에 대고 힘껏 던지고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발속에 뛰여들어 허허 웃었다. 그러며 그때 그는 시정에 젖어 말했다.

《김책동무, 우리는 이젠 중로배들이지만 장군님앞에는 어린애들이요. 장군님은 거인이요. 이처럼 위대한분을 모신 전사가 된다는것은 과남한 축복이며 행복이요.

그저 다른게 없소. 어중이떠중이들이 영웅으로 되겠다 개싸움치던 조선공산주의운동의 종파력사가 우리 대에 끝나야 하오.

우리는 장군님 받든 기둥으로, 주추돌로 영원불멸해야 할것이요. 엊저녁 내 장군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이제부터 나는 장군님앞에서는 군장이 아니라 전사요 그러되 가장 모범적인 전사일것이요.

앞으로의 나의 생은 장군님의 손과 발로 되는 길뿐이요.》

지금 최용건은 그때의 맹세, 정화된 량심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고있다. 그점에서 조금도 변심이 없고 리탈이 없다. 그렇다면 최용건은 장군님에 대한 인간적매혹, 사상과 령도, 담력과 예지에 대한 감탄과 동경 하나에서 걸음을 멈춘것이 아닌가. 그것은 결국, 장군님을 잘 받들겠다는 주관적욕망 하나에만 떨어지는것으로 된다. 잘 받들겠다는 충신의 자세는 잘 모실수 있는 준비와 바탕을 필요로 하는것이다. 그렇다면 최용건은 장군님의 의도와 작전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이는데서 노력을 게을리하는것이 아닌가. 이야말로 큰 교훈이다.

누구나 장군님의 높이에서 내다보고 분석하고 판단할수는 없다. 그러나 가깝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며 그이의 뜻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것은 곧 장군님의 사상과 령도, 방법을 골육에 새겨 살과 피로 만드는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김책은 날카로운 사색의 마루를 급히 뛰여넘었다.

문기척소리와 함께 강건이 들어섰다. 그는 얼핏 두사람을 둘러보고는 작전탁에 놓인 지도에 시선을 떨군채 조용히 말했다.

《부서장들이 다 모였습니다.》

《가겠소.》

김책은 일어서며 최용건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하겠소? 인차 떠나가겠소?》

《좀 있다가.》

김책은 구석진 곳에 놓인 쏘파앞 상두대우에 시집 《백두산》이 펼쳐져있는것을 유심히 보다가 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위성의 행정체계속에서 국장, 부국장으로 있다가 새로 조직된 전선사령부의 부서장으로 직명변경을 받은 병종부서장들은 매우 긴장한 태도로 김책을 맞았다. 융화와 타협, 에누리를 모르는 칼날같은 김책의 성미를 잘 아는 그들이였다.

현란한 무리등의 빛발속에서 붉고 누런 견장들을 번뜩이며 꼿꼿이 서 맞는 그들의 눈에는 일종의 두려움까지 비껴있었다.

김책의 뒤를 따르는 강건의 낯빛이 심상치 않은데다가 김책의 전선직행과 최용건보위상과의 단독접견에 대한 추리에서 얻어진 답이 김책은 현재의 기적적인 승리에 대해서 조금도 만족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불만해하고 그때문에 한바탕 된바람을 일으킬것이라고 넘겨짚은것이였다. 이 답의 신빈성을 담보하는 례증이 즉시에 생겼다. 병기국장을 본 김책은 《905땅크사단에 보내는 땅크포탄운반도화정형을 확인하고 도착하지 못했을 경우 세시간안으로 등짐을 져서라도 나르》라는 명령을 떨궈 내보내였다.

김책의 첫 인사말은 매우 짧았다.

《이제부터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하고는 이미 련락군관을 통해 알려진 전선사령부 부서장임명에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서를 랑독하고는 직판 후방부사령관을 일으켜세웠다.

《동무가 한 오늘사업과 전반사업에서 제기된 문제, 풀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말하시오.》

김책은 보고자의 얼굴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다가 이따금 수첩에 몇자씩 적어넣군 하였다. 후방부사령관은 남진하는 전선부대들이 후방기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상태에서 도로는 제한되고 운수기재가 부족된 형편에서 탄약과 식량수송이 매우 어렵다는것을 수자와 사실을 례들며 말하였다.

적의 폭격에 수송물자의 도중손실이 많다는 대목에서 김책이 말허리를 끊었다.

《그렇기때문에 야간수송을 위주로 하게 되지 않았소?》

김책은 예리한 눈길로 후방부사령관을 지켜보았다. 후방부사령관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듯싶게 재빨리 대답했다.

《네, 그런데는 명령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적의 폭격에 도로나 다리가 없어지는 경우 그것이 수리될 때를 기다리느라면 오래 주저앉게 되는데 그 지체된 시간을 회복하자니 낮에 움직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간 맞습니다. 이 문제를-》

후방부사령관은 여기서 말을 끊었다.

최용건보위상이 들어섰던것이다.

김책은 놀랐다. 한편 반가왔다. 그러나 이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일어났다.

《의자를!》

그가 일어서자 모든 장령과 대좌들이 일어서 보위상을 바라보았다. 최용건은 누군가 김책이옆에 의자를 가져다놓는것을 보며 손을 한번 젓고는 구석진 곳에 놓인 팔걸이의자에 앉았다. 누구도 자기를 상관하지 말라는듯 목책과 만년필을 빼들고 후방부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김책 역시 흔연한 태도로 앉으며 후방부사령관에게 말했다.

《계속하시오.》

후방부사령관은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방금 하던 말과 맥락이 맞지 않게 자기비판으로 넘어갔다.

《사실 그건 제가 연구가 부족해서 방법을 찾지 못한데 있습니다. 저의 이런 무능으로 다대한 지장을 주고있습니다. 제가 좀더 머리를 쓰고 뛰면 해결할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동무 말이 옳소. 연구를 잘하면 풀수 있지.

지금 전선으로 물밀듯 밀려가는 군인들이 다문 포탄 한발씩만 지고가도 하루에 얼마나 많은 량을 운반할수 있소, 군인들은 도로가 아닌곳으로도 갈수 있고 또 인민들이 있지 않소. 물론 이건 동무 혼자힘으로는 풀기 어렵소.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제기해야지. 동무는 자기 사업에서의 이런 난점들을 다 보고했소?》

후방부사령관은 고개를 수굿하고 안경만 매만지다가 거의 입안의 소리로 웅얼거렸다.

《저의 힘으로 해보려고.》

《잘 안되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랬단말이요?》

김책의 어성은 날카로왔다. 후방부사령관은 안경쥔 손을 떨어뜨리며 꼿꼿이 몸을 폈다. 간곡한 눈길로 하소연하듯 김책을 보았다.

《전선사령관동지, 전쟁환경인데 어떻게 달라는 소리만 하겠습니까? 그래서-》

탕! 김책이 책상을 쳤다. 그의 눈에 불꽃이 번쩍였다.

《그 너절한 체면이 흐르는 사이에 전선 전사들이 얼마나 고생하게 되는가. 련속작전이 얼마나 저애를 당하는가 생각해봤소?》

숨소리 하나 없었다. 방안에 팽팽한 공기가 이젠 한마디만 더하면 터질듯 부풀어올랐다. 김책은 입술을 꽉 다문 최용건의 얼굴이 밤처럼 어두운것을 눈띠여보며 치받쳐오르는 노기를 눌렀다. 그는 만년필을 들어 돌리다가 한풀 소리를 죽여 계속했다.

《물론 군인은 그가 전사건 지휘관이건 자기앞에 떨어진 과업은 자기가 무조건 수행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되오. 머리가 열백번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수행해야 되오. 그러나 하지 못하면서도 잘되는것처럼 우물거리는것은 범죄요. 더구나 경애하는 장군님의 작전방침집행에서 그런 태도는 용서할수 없는것이요.

제때에 보고하지 않는것은 일종의 기만이며 결국 최고사령부에 혼돈을 가져오고 작전지연을 초래하는 행위로 된단말이요.

후방부사령관동무, 전시후방사업은 나라의 온 경제력을 기울여야 할 사업이요. 이걸 동무의 혼자힘으로는 다 풀수 없지 않소. 바로 후방부사령관은 이 모든것을 생각하며 걸린 고리, 풀어야 할 문제, 제기된 난관들을 실태 그대로 종합하여 보고하고 요구해야 전선사령부는 전선사령부적인 규모에서 대책을 세우고 그것도 안되는 경우, 최고사령부적인 대책도 세워 해결할것이 아니요. 이것은 우에 의존하는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보고체계문제며 전사로서의 초보적도덕이기도 하오.

나는 물론 동무가 우의 눈치나 보고 자기 체면이나 세우려고 그랬다고는 보지 않소. 교훈을 찾으시오. 앉소.》

《알겠습니다. 전선사령관동지!》

후방부사령관은 욕을 먹은 사람답지 않게 환한 얼굴이 되여 앉았다. 김책은 그를 유심히 보다가 계속했다.

《나는 후방부사령관동무가 오늘저녁처럼 직접 차판에 짐을 날라싣지 않고 깨끗한 옷을 입고 참가할 때가 오리라는걸 믿고싶소.》

긴장으로 굳어진 좌석에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괜히 의자를 잡아당기고 몸들을 추슬렀다.

《공병에서는 누가 왔소?》

김책은 수첩에 눈을 박고 물었다.

다림발이 짝 선 군복에 얼굴이 희멀끔하게 환한 중성 네알의 군관이 수첩을 펴들며 일어섰다. 옆에 앉은 후방부사령관은 자기와 너무나 대조되게 환한 그의 용모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고개를 떨구었다.

《도로가 동무거지?》

《네, 그렇습니다. 제2제대계선까지 저희가 맡고있습니다. 제l제대연선은 관하부대 공병들이 담당하고있습니다.》

공병부장은 매우 절도있게 거의 경쾌하다고 할 어조로 대답했다. 김책은 약간 미간을 찌프리였다.

《그래 제1제대 부대관하도로는 빼고… 동무네 담당의 주요도로망에 대해서 말해보오. 다리까지 포함해서.》

《알겠습니다.》

공병부장은 수첩에 눈을 준채, 빨락거리는 종이장을 분주히 넘겼다.

《동무, 수첩을 보지 않고는 말 못하겠소?》

김책이 불만어린 눈길로 쏘아보았다.

대좌는 이제까지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잃고 얼굴색이 알리게 변해졌다. 김책은 그를 보지 않고 누구에게라 없이 말하였다.

《자기 맡은 사업에 대하여 수첩을 보고서야 말할수 있는 사람은 이 회의가 끝난 즉시로 사임신청을 내시오. 계속하오.》

김책은 부단히 눈을 깜빡거리며 1등도로, 2등도로 하고 꼽는 그의 말을 별로 새겨듣지 않고있다가 불쑥 물었다.

《주성천다리가 끊어진것을 알고있소?》

《넷, 알고있습니다.》

《고쳤소?》

《다섯시에 보고를 받고 대책을 세웠습니다.》

《고쳤는가?》

《아홉시반경에 교량수리재목을 보냈습니다.》

《왜 그때야 보냈소?》

김책의 말소리는 옆의 사람도 겨우 들릴 정도로 낮아졌다. 크나큰 격분을 간신히 참느라 모지름 쓰는것을 아는것은 오직 강건뿐이였다. 김책의 손가락에 끼인 만년필이 알릴듯 떨며 펜촉이 수첩에 닿아 락서비슷한것을 만들었다. 공병부장은 가느스름히 눈을 쪼프리고 재빨리 대답했다.

《적의 폭격에 하루에도 몇번씩 교량들이 파괴되는 조건에서 소모되는 재목이 형편없이 많습니다.》

《간단히 말하오.》

《네, 교량수리재목이 미처 오지 않아.》

《그건 어데서 보장되오?》

《후방에서 오는 경우 여기서 날라가기도 하고… 도로주변에 제재소가 있는 경우 거기서 얻기도 합니다. 전선사령관동지, 좋기는 규격재목인데 그 보장이 잘 안됩니다. 이미 수차 그것을 보고했습니다.》

김책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제재한 원목을 동무앞에까지 가져다주면 된다는것이겠소? 재목이 안오거나 뽄똔(도하창)이 폭격에 마사지면 어쩔수 없는것이고?》

김책은 거의 측은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 바로 최용건의 실책은 저런 사람의 견해에 끌린탓이 아니겠는가.

마음같아서는 당장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라고 하고싶었다. 그러나 그럴순 없었다. 이런 환경속에서도 일군들은 키워야 하는것이다. 장군님께서 위청장령의 문제처리에서 보이신 모범이 생각났다. 일군들은 위청을 강급철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본인이 의도적으로 범한 과오가 아니라 우리 식 전법에 대한 리해부족에서 온것이라고 하시며 그 의견들을 막으시였다. 하루밤 꼬박 밝히며 위청과 담화를 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전투훈련부국장으로 임명하시였다. 위청은 몰라보게 변하였다.

원래 군사상식과 경험이 있는데다가 머리가 좋아서인지 일단 자기 오유를 깨닫자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경험과 전술을 쉽게 파악하였다. 초급군지휘관들을 위한 전술학습제강을 만들었는데 김책으로도 감탄할 지경이였다. 그리고 더욱 장한것은 위청이가 조선인민혁명군 출신 지휘관들과 일군들을 만나 집체적인 연구를 하고있는것이였다. 그는 좀더 일찌기 깨달았다면 정규전과 현대전의 배합에 대한 군사예술론문을 썼을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밤낮없이 새로 조직되는 부대들에 나가 지휘관방식상학과 훈련조직에 눈코뜰새없이 움직인다. 그러고볼 때 이 공병부장이라고 왜 앉은방아만 찧겠는가.

허나 김책은 표정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동문 주성천주변의 지형을 아오?》

《저… 지대상으로 보면 산지대입니다.》

《옳소. 그 산들엔 나무가 많소. 동무가 조직해보낸 재목차가 도착하기전에 그곳 인민들과 통과하던 군인들이 그 다리를 다 보수했소.》

김책의 푸릿한 얼굴빛이 엄숙하게 굳어지였다.

《동무! <자력갱생>이라는 말을 알고있소?》

《무슨 뜻인지?…》

《자체로 만들어 일떠선다는 말이요. 앉소.》

김책은 더는 그쪽을 보지 않고 작전, 정찰, 통신… 차례로 부서장들에게서 제기된 문제들을 보고받고 일어섰다. 제나름의 가책과 무거운 생각속에 고개를 떨군 장령들과 대좌들을 일별한 그는 시정극복해야 할 일련의 결함들을 지적하고 미지상군이 개입한 전쟁의 새로운 국면에서 각 부서들의 역할을 일층 더 높일데 대한 문제를 강조하였다.

《끝으로…》

김책은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장군님의 작전방침관철에서 잘못된 일이 있는 경우 직위여하를 관계함이 없이 즉시 제기해달라는것입니다. 그런 문제에서는 장소, 시간을 관계하지 않겠습니다. 이만하겠습니다.

보위상동무, 말씀할것 없습니까?》

김책은 최용건을 보았다. 목책에 무언가 적어넣던 최용건은 몸을 움씰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청탁인듯 의아스럽게 보다가 천천히 목책을 접고 일어섰다. 김책은 회의 전시간 지꿎은 그림자마냥 그의 사색에 그늘을 지으던 최용건의 굼뜬 반응에 뭔가 송구스럽고도 불만한 감정을 동시에 체험하며 병종 부서장들에게 눈길을 옮기고 극히 실무적으로 말했다.

《보위상동진 이제 평양으로 가게 됩니다.》

의자 밀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최용건이 일어섰다. 거뭇하게 질린 얼굴의 그는 책망하는듯 하기도 하고 뭔가 호소하려는듯하기도 한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웅글진 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잘 싸워봅시다. 더는… 결함들을 반복하지 맙시다.》

마지막말을 갑자르며 힘겹게 한 그는 천천히 앞탁에 다가왔다.

일제히 일어서 경의를 표하는 병종부서장들 전체에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설가 말가 망설이다가 매 사람과 악수를 하고는 그로 볼 때는 매우 성급한 동작으로 방에서 나갔다.

김책은 병종부서장들까지 나간 후 한동안 지친듯 앉아있다가 이제부터 자기 사업거처로 될 최용건의 방으로 갔다.

방에는 불이 켜져있었다.

새벽빛이 푸릿하게 밀려드는, 차광막을 열어제낀 창가에 최용건이 우뚝 서있었다. 김책이 들어서자 최용건이 돌아보았다.

《이젠 떠나야 하지 않겠소?》

《떠나겠소.》

《가면… 장군님께 전선실태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주오. 특히 포탄, 탄약 수송에 대해서… 대책이 꼭 서야겠소.》

《알겠소.》

최용건의 눈매가 따뜻해졌다. 자신에 대한 김책의 인간적이며 동지적인 믿음을 크게 느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한가지 말할것이 있소.》

최용건은 망설이다가 계속하였다.

《아까 부서장회의에서도 느꼈지만 동문… 모든 자질구레한 걱정거리까지 장군님께 보고드리자고 하는데 그건 마음에 안드오. 하긴 동무의 표현에선 걱정거리가 아니라 <걸린 문제>로 되였소만.》

김책은 최용건이 마음의 문을 터친것 같아 기뻤다. 그러나 제기한 문제가 심각한지라 김책은 론쟁조로 말에 열을 띠지 않을수 없었다.

《물론 걱정을 끼쳐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동무의 견해엔 공감하오. 지난 기간 나도 무엇때문에 별치 않은 문제로 장군님께 부담과 심려를 끼치겠는가 하고 내 단위에서 내식으로 처리한 실례가 있었소. 잘될 때도 없지 않았지만 결과는 대체로 신통치 못했소. 엄청난 후과를 빚어낸 경우도 있었소.

다음부터 난 보고드리고 결론받는 사업이 우리 혁명에서는 어쩔수 없는 특징이라고 보았소. 나라가 생긴 력사는 짧고 일군들의 경험은 없지. 부닥치는 정황은 복잡다단하지.

우리 머리로 풀수 없는것이 개개거든. 우리 키가 더 자라면 어쩔는지… 더구나 여느 문제도 아닌 조국의 생사운명을 두고 다투는 전쟁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필수적이요. 어쩔수 없소. 좋든 긇든 슬프든 괴롭든 모든 문제를 장군님께 보고드리고 가르침을 받아 하는것이 유일하게 정당한 길인것이요. 하나의 행복스러운 숙명이라 할가. 보위상동무도 언젠가 말하지 않았소. 장군님의 뜻과 의도를 받들어 관철하는 여기에 조선혁명의 승리가 있다고. 사실 터놓고 말해서 전선지휘에서 동무가 범한 실책은 한마디로 여기서부터 나온것이요. 장군님의 사상과 방침에 대한 의혹과 동요… 그때문이였소.

물론 의혹은 있을수 있소. 대번에 그이의 높이에 도달할수는 없은것이니… 그 경우엔 그 의혹, 그 의문을 보고드려 푸는것이 옳은 일이였으나… 동문 거기서 과오를 범한것이요.》

김책은 두손을 의지하듯 창턱에 짚은 최용건이 온몸을 부르르 떠는것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최용건은 그의 눈길을 피했다.

(그러니 이 사람 가슴에 아픔을 싣고 보내누나.)

김책은 일순 가책비슷한 감정의 충격을 느꼈으나 위안을 할수도 또 위안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을 자신과 최용건임을 알기때문에 침묵을 지켰다. 다행스럽게도 강건이 뛰여들었다.

강건은 두사람의 미묘한 심리적간극을 포착하지 못한듯 기쁜 빛으로 말했다.

《최현동무네가 안성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렇소?!》

김책은 환성을 올리듯 말했다.

《멋진 일이요. 그들을 안성으로 진입케 한데 대하여 장군님께서도 잘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소.》

김책으로서는 강건이나 최용건이 이미 알고있는 사실까지 들춰 말했다. 이 전투조직의 배경에는 최용건의 공이 적지 않다는것을 은밀히 암시하는 이 찬탄에 대해서도 최용건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는 아예 이런 세계와는 담을 쌓은듯 창가에서 쉬이 떠나지 않는 새벽어둠을 응시한채 무슨 집념을 고독스레 추구하고있는것만 같았다.

갑자기 전화종이 요란스레 울렸다. 특별한 전화외에는 작전실과 비서방에 걸게끔 한것을 잘 아는 그들은 거의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김책은 최용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것 같은것을 느끼며 전화기에 다가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전선사령관동지, 최고사령부에서 전화입니다.》

교환수의 애된 음성이 꺼지기도전에 증폭장치가 된 수화구에서 우렁우렁한 음성이 방안을 가득 채우며 울렸다.

《김책동무입니까?》

《장군님, 김책 전화받습니다.》

김책은 반가움을 금치 못하며 긴장된 자세로 대답올렸다. 잠시 공간을 둔 사이에 울리는 장군님의 숨결을 감각으로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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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잠시 공간을 둔 사이에 울리는 장군님의 숨결을 감각으로 받아들이며 이 새벽전화를 거신 장군님의 의도를 알아보려 신경을 도사렸다.

《사업에 착수했습니까?》

《예.》

《제기된것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

《전선에 나갔댔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사이를 두지 않고 약간 엄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김책은 자신의 처사를 두고 김일성동지께서 걱정하심을 알았다.

《전선은 아니고 오산까지 나가봤습니다.》

《오산까지?!… 그런데 왜 최용건동무를 보내지 않습니까?》

(이것때문이였구나.)

김책은 저으기 당황해서 최용건을 보았다. 이미 창가에서 떠나 부동의 차렷자세로 전화말씀을 듣던 최용건은 김책의 시선을 받자 뭔가 말하려는듯 입술을 움죽거리다가 전화선에 묵중한 눈길을 떨구었다.

김책은 신통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분명치 않게 말씀드렸다.

《두루… 저때문에 좀 늦어졌습니다. 지금… 여기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의 약간 헤덤비는 말투에 뭔가 느끼신듯 선뜻 말씀을 떼지 않고있다가 화제를 돌리시였다.

《특별히 제기할 일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장군님, 구체적인 보고는 보위상동무편에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그리고… 하나 알려줄것이 있습니다. 방금 들어온 자료인데 미25사 사단장 킹이 오늘래일로 대전의 띤을 만나러 온다고 합니다. 25사도 조만간 출동한다는 예고입니다. 무슨 부탁할것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최용건동무를 바꿔주시오.》

두손으로 송수화기를 받아쥔 최용건은 《안녕하십니까, 장군님!》 하고는 더 말을 못하고 뿌리박힌듯 서있었다.

《인계사업이 잘되였습니까?》

김책은 약간한 불안속에 최용건을 주시했다. 최용건은 입술을 감빨다가 동안뜨게 말씀드렸다.

《미흡한 전선을… 그대로 인계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미흡한 전선?!》

《그렇습니다.》

《최용건동무!》

격하신 음성이 울렸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로서 자기 성과에 도취하거나 자만하는것은 그릇된 일이지만 비하하는것 역시 나쁜 일입니다.

과오에 눌려 살면 안됩니다. 과오를 찾는것은 반복하지 말자는것이지 그에 눌려 괴로와 있자는것은 아닙니다.

동문 우리의 승리, 우리의 성과를 잊고있습니다. 세계의 어떤 전쟁력사에도 있어 보지 못한 반공격작전에서 우리가 빛나는 승리를 이룩했다는것을, 그 성과에는 보위상동무의 공헌도 크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장군님, 그 승리야…》

최용건의 목소리는 떨리다가 여기서 끊어졌다. 불편근육이 움씰거리고 컴컴히 흐려졌던 눈에 흥분어린 빛이 번쩍였다. 김책은 그가 채 못한 말 (그 승리야 전적으로 장군님께서 마련하신것이 아닙니까. 제야 그 뜻을 관철하는데서 오히려 굼뜨지 않았습니까) 하는 말을 마음속으로 뇌이며 이 순간 왜서인지 가슴이 그들먹해지고 눈굽이 뜨거워오르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격동을 주체 못하는 거쿨진 몸매의 최용건의 열띤 모습때문에 더욱 그런것 같았다.

《장군님!》

갑자기 최용건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의 얼굴과 눈빛은 엄숙한 표정을 띠였다.

《절 여기 남게 해주십시오. 김책동무를 도와 일하겠습니다.》

《김책동무와?》

되뇌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그러면 김책동무는 좋겠지만 나는 어쩝니까. 김책동무가 거기 나간데다 동무까지 안오면…》

롱담조의 말씀이였으나 간곡한 정이 깃든 그 말씀에 최용건은 《장군님!》 하고 책상모서리를 꽉 움켜잡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웃음기를 거두고 엄하면서도 따뜻한 어조로 단호히 말씀하셨다.

《다른 생각 말고 빨리 오시오. 여기엔 일이 산더미같습니다.》

《장군님! 이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최용건은 조용히 수화기를 놓고 손수건으로 눈굽을 오래도록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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