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50년 여름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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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서울주재 유피통신사 기자 재크 제임스가 날려보낸 조선전쟁발발기사가 일요조간신문들에 나간후부터 미국은 히스테리적발작속에 휘말려들어갔다. 텔레비의 아나운사로부터 주식시장의 거두에 이르기까지 흥분속에 밤을 보내고 새날을 맞았다.
국무성은 홍수처럼 밀려드는 재벌계의 거물들과 기자들, 외교관들과 모모한 인사들의 질문의 포화속에 벌둥지처럼 소란했다.
그러나 이 연극의 연출가인 해리 트루맨만은 끝없이 침착하고 조용하였다. 인디펜던스의 고향집에서 주말휴가를 보내다가 이 상보를 보고받고 떠날 때부터 그는 오랜 집지기가 아연할 정도로 태연자약하였다. 행장을 꾸릴 때 친히 검은 가죽뚜껑의 성경책을 집어 트렁크에 넣었으며 평소에 본척도 않던 늙은 집지기의 비만증에 대해서 물어도 주었다. 워싱톤의 디씨공항에 내릴 때 안내양의 어깨도 가볍게 두드려주었으며 카메라를 쳐들고 몰려드는 기자들앞에서는 약간 근심스러운 얼굴빛을 유지하면서도 례의있게 웃어줌으로써 미합중국대통령을 미화하려는 기자의 붓끝에 《해리는 강하다!》는 찬사의 제명까지 받게 되였다.
오늘아침 (6월 26일 이 시각은 조선에서는 어두운 밤이였다.) 그는 수리중인 《화이트 하우스》(백악관)를 돌아보았고 유명가수로 되려는 딸 리사이틀의 발성련습도 들었다. 그다음 그는 림시관저인 불레어하우스에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의 조회보고를 받았다. 도수높은 안경의 두터운 유리를 통해 무표정하게 애치슨을 바라보던 그의 눈길이 갑자기 꼿꼿해졌다.
《뭐라고! 딘 다시 말하오.》
그는 책상앞으로 몸을 약간 숙이고 얼굴을 바싹 앞으로 내밀면서 볼을 뿔쿠었다.
이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은근히 자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무쓸리니의 동작에서 본따온, 상대로 하여금 위압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한 연기였다. 그러나 애치슨은 그런 눈치는 전혀 못차린듯 들고온 문건철을 내려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맥아더는 유엔결의안의 세번째 항목에 의견이 있다는것입니다.》
《그래 무엇이 불만이라오?》
《<유엔에 대해 원조를 주며>를 <한국에 대해 모든 군사적원조를 주며>라고 명백히 찍어 밝혀야 한다는것입니다.》
《허허.》
트루맨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웃을 때도 여전히 싸늘한 빛을 잃지 않는 파란 눈으로 애치슨을 응시하였다.
《그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애치슨은 이 물음에 애매몽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제 노르웨이사람인 유엔사무총장 트리그브 리는 트루맨의 요청으로 안보리사회를 긴급소집하고 애치슨이 작성하여 제출한 《결의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아직 세계가 전쟁이라는걸 꿈에도 생각않던 저번주, 트루맨과 애치슨이 주말휴가라는 예비작전에 들어가기전 백악관 대통령실에서 세밀히 검토한것이였다. 특히 세번째 항목은 트루맨만이 할수 있는 치밀한 타산으로 심중히 검토되고 수정되였다. 그때 트루맨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대해 군사적지원을 준다고 하는것보다 <유엔>에 대해 모든 원조를 준다고 한것이야말로 명안이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한국》전쟁을 떠미는 호전국가로가 아니라 <유엔>의 기치를 따르는 평화애호국가의 체면을 그대로 유지할수 있을것이요.
더구나 우리는 몇달전까지만도 <한국>을 우리의 방위권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한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자고 하면 유엔의 동료들이 뭐라고 하겠소. 더구나 크레믈리의 <조아저씨>(쓰딸린을 야유하여 부른 말)가 알면 어쩌겠소?
때문에 우리가 어디까지나 유연을 내세워 유엔의 결정에 끌려가는 역을 해야 되오. 말고삐를 잡건 마차에 타건 씨저는 씨저인것이요.》
며칠전의 이 대화를 상기한 트루맨은 자기가 실언했음을 때늦게 느끼고 화제를 어디로 돌릴가 궁리하는데 애치슨이 입을 열었다.
《맥원수는 괜한 치기를 보이는셈이지요. 우리의 모든 의도를 잘 알면서도 자기라는 존재를 드러내려 그래본 말같습니다.》
《아니, 그는 우리의 의도를 다는 모르오. 그런 사람이라면 그와 내가 자리를 바꿔앉았어야지.》
트루맨은 롱담조로 말했으나 얼굴을 붉혔다.
맥아더를 모든 면에서 질시하고 경원하는 자기의 감정을 너무 쉽게 드러낸데서 오는 일종의 가책과 동시에 항상 자기앞에 커다란 그림자로 나타나는 맥아더라는 거상을 이 방에서나마 짓밟아 야유했다는 통쾌감이였다.
《그런데 맥원수는 지상군 투입명령을 언제 주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트루맨은 눈살을 찌프리였다.
《그런데 왜 <한국>사람들은 단독으로도 북진통일이 자신있다고 하다가 이모양이요? 맥아더도 그랬지. 그리고 당신의 고문인 그 덜레스씨도 그러지 않았소?》
트루맨은 이제까지 지켜오던 외면적 침착과 태연을 깡그리 잃어버렸다. 애치슨이 덤덤히 있자 트루맨은 더 열이 올랐다. 그에게는 잘 어울리지도 않고 또 별로 효과도 없는, 그러면서도 자기로서는 매우 유용한 때에 유용하게 써먹는다는 카우보이(서부의 기마목동)식 란폭한 말투로 넘어갔다.
《다 나발이거든. 그 허풍쟁이 맥아더는 닷새면 된다고 장담하더니 지금 뭐요. 서울의 군대는 아직까지 38도선인가 하는데서 뭉개고있잖소.》
《각하, <한국군>은 38도선으로부터 훨씬 이남으로 밀리웠습니다.
방금 받은 무쵸대사의 전문에 의하면 의정부가 함락되였답니다.》
《의정부?! 의정부란 어데요?》
《서울앞 소도시입니다. 그로 하여 지금 서울정부는 혼란입니다. 그때문에 장면대사가 지금 여기에 와있습니다. 그는 지금 절망상태입니다. 리승만대통령과 그들의 정부 전체가 흔들리고있습니다. 한번 만나서 용기를 주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장면은 울고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참전하게 된다는것을 모르고있습니까?》
《그는 이미부터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의정부가 함락되자 이젠 망했다고 하면서.》
《그가 어제 안보리사회에 나가 연설했다는데 그때도 울었습니까?》
트루맨은 입가에 알릴듯말듯 웃음을 지었다.
《울지는 않았으나 영어로 한 류창한 그의 연설은 적잖은 동요분자들을 눌러놓았습니다.》
《그를 만납시다.》
《그런데 먼저 이것을 보십시오.》
애치슨이 문건철에서 타자를 친 종이장을 내밀었다.
《뭐요?》
《무쵸대사로부터 나에게 온 전문입니다. 리대통령에 대한 자료입니다.》
《두고가시오. 어제와 같은 시간에 그 두번째 회의를 합시다.》
애치슨이 나가는것을 손으로 바래주고난 트루맨은 국무성명판이 찍힌 전신문을 날카로운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
국무장관에게, 서울, 6. 26 밤, 12시, 무쵸로부터
리(리승만을 략칭으로 부르는 말)가 밤 10시 전화를 걸어와 경무대로 갔음, 대사관에 와있던 신성모국부총리와 동행. 리관저에는 전 국무총리 리범석도 와있었음. 대통령은 대단히 긴장, 안면은 경련, 말은 반복되고 끝을 못맺으며 앞뒤련결도 안됨. 의정부 함락상황을 이야기하며 정부를 대전으로 옮길것을 제의해왔음.
개인안전고려가 아니라 정부는 존속돼야 하며 대통령이 공산군에게 잡히면 <한국>의 존립에 중대한 타격인때문이라고 리유를 반복설명. 미국의 원조가 약속대로 안된다고 불평. 나는 무기와 병력이 투입될수 있을것이라고 하면서 정부는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설득. 허나 대통령은 정부가 포로될 모험을 해서는 안된다고 고집. 이 결심을 꺾을수 없어 대통령은 대전으로 가도 나는 서울에 남아있겠다고 했음. 밖에 나왔을 때 신성모국무총리는 대통령은 서울천도를 토론없이 결정했다고 비난.
…
《겁쟁이들!》
트루맨은 그 종이장을 훌 던져버렀다. 그리고는 장면대사를 만나야 한다는것을 까맣게 잊고 아까 보다만 속기록을 천천히 번져나갔다.
트루맨은 모든 비밀회의 속기록은 례외없이 직접 자기가 검토하군하였다. 그 속기록이 백악관의 비밀문서고속에 좀이 쓸어 먼지가 될것이라 하더라도 후날 어느 눈에 띄여 비난받을 대목이 있을가봐 우려하는데서 오는 로파심때문이였다.
엊저녁에 이 집 소회의실에서는 만찬회의 명목으로 조선전쟁문제와 관련된 대비책을 토론하였다. 정치에는 내 알바 없노라는듯 모든 연기를 집어던지고 빨리 조선전쟁에 전면침투하자는 텔레타이프로 송신된 맥아더의 편지가 화제의 기본내용으로 되였다.
맥아더는 리승만군의 새벽공격이 실패한 조건에서 즉시 미지상군전투부대까지 포함한 미군의 개입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중국본토까지 공격하자는 뜻의 제의를 해왔다. 이미전에 이 모든것에 합의를 보았지만 세상의 여론과 눈이 있는 조건에서 다 때가 있고 방법이 있다는데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루맨은 속기록의 여러 대목을 수표용펜으로 벅벅 지워나갔다. 특히 그는 자기가 한 말들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의 검은 수표용펜에서 다음의 대목들이 사정없이 먹칠이 되였다.
…
트루맨:현재는 조선전쟁에 해군, 공군만 동원되고있다. 여론이 지상군투입을 원하게끔 모든 사업이 진행돼야겠다.
죤슨(국방장관):지상군파견에 대한 초기계획을 앞당겨야 한다. 왜 이래야 하는가. 북조선군이 예상외로 강한데 있다. 우리는 리승만군대가 38도선을 넘어 북진하는것을 전제로 2전선을 전개할 안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직접 1선에 나가야 할것 같다.
트루맨:나는 이미전에 《한국군》만으로는 쉽게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본토에서도 지상군이 가야 한다.
죤슨(국방장관):그렇다.
콜린즈(륙군참모총장):
애치슨:우리의 지상군이 전부 참전하는 경우 쏘련에 대한 견제에 보다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본다.
트루맨:쏘련의 극동공군을 없앨수 있는가?
반데버그(공군참모장):원자폭탄을 사용하면 가능하다.
…
이까지 읽고난 트루맨은 눈을 감았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찌를듯한 백광과 불길을 안고 육박해왔다. 번쩍이는 섬광속에 무너져내리는 건물과 각이 찢겨지고 이지러진 시체의 무데기가 안겨왔다.
그의 얼굴은 살기로 이지러지였다.
뭔가 잘못 내다봤다. 5일전쟁이요 7일전쟁이요 하는 도꾜와 서울의 흰소리에 랭정한 리성을 잃었던것이다. 우선 미국의 참전을 합법화하기 위해 꾸민 여러가지 책략자체가 매우 소극적이였다는 느낌이 이 순간 트루맨을 몹시 괴롭혔다. 눈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이미 《2자》혹은 《3자》협의로 합의를 본 미군파견문제를 가지고 엊저녁 늦게까지 다시금 찧고 까분것도 다 소극적인것이고 완만한것이 아닌가.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북조선과 나가서 씨비리나 중국본토를 먹기 위한 대전쟁에 끌고나가기 위해서 구태여 이렇게 회의결정이라는것까지 만들 필요가 무엇인가. 모든것은 명백히 작성되고 결심지어진것이 아닌가.
(의정부?)
트루맨은 발음하기 힘든 지명을 상기하며 벌떡 일어났다. 서류함에 접혀진채로 놓여있던 1945년판 조선지도를 꺼냈다. 미국방성에서 편찬한 50만대 1조선전도였다. 그는 확대경과 갓 생산되여 나온 계산기까지 들고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서울을 찾고 주변을 살피던 그는 한치앞에 의정부라는 도시가 있음을 알아보았다. 거리를 재고 축척비를 보고 계산기단추를 누르던 그는 《음》하고 낮은 신음을 쳤다. 의정부는 서울로부터 불과 10mile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었다.
트루맨은 불시에 온몸을 엄습하는 오한을 느꼈다. 자기가 주관하고 《태평양의 씨저》라고 뽐내는 맥아더가 직접 작전하는 북조선공략작전이 어찌하여 잘 안되는가 하는 의문이 무서운 공포로 미쳐왔다. 이제까지 확고한 결심으로 굳어졌던 계획이 흔들리였다.
(중국본토에 대한 공격은 애치슨의 말처럼 좀 두고봐야 한다. 심중해야 한다.)
트루맨은 수화기를 들고 극동담당차관보인 딘 러스크를 찾았다. 15분후에 38도선을 만든 미국인중의 하나인 러스크가 들어섰을 때 트루맨은 매우 침울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은 현재 북조선군의 움직임을 어떻게 생각하오?》
《그에 대해서는 제가 방금 씨비에스 텔레비에 자료를 주고오는길입니다.》
러스크는 활기있게 다가와 마치 먼 전쟁력사를 이야기하듯 유쾌하게 말을 떼였다.
《북조선군은 서방세계에 던져진 하나의 수수께끼로 되고있습니다.》
《수식사는 그만하오.》
《수식사가 아닙니다. 그들의 반공격속도는 실로 기상천외한것입니다. 그들은 리승만군대의 공격을 단 한시간동안에 진압저지시키고-》
《잠간, 당신은 기자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했소?》
트루맨의 눈은 유리알밑에서 위협적인 빛을 띠고 무섭게 번뜩였다.
러스크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각하, 저는 오랜 군인입니다.》
《알고있소. 계속하오.》
《그들은 맹렬한 기세로 반공격으로 넘어와 이틀째인 오늘현재 서부로는 의정부, 중부로는 춘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의정부에서 서울까지 언제면 들어설것 같소?》
《그들의 공격속도대로 하면 리승만군이 아무리 잘 싸운다 하더라도 3일을 넘지 못할것 같습니다.》
트루맨은 러스크의 반들거리는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당신은 서울이 점령될수 있다고 생각하오?》
《네.》
《그러면 어떻게 되오?》
《서울을 뺏기면 리승만군은 부산까지 도망쳐올것입니다.》
《그다음?》
《거야 대통령각하나 맥아더원수의 결심에 따를것이지요.》
《북조선군이 <한국>을 다 휩쓴 다음에 우리가 들어가는 경우, 전세는 어떻게 될것 같소?》
《그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뭐요?》
트루맨은 자기의 분노를 간신히 억제하며 소리를 낮추어 계속했다.
《당신은 극동담당일군으로 어떻게 그처럼 무관심할수 있소?》
러스크는 트루맨의 눈길에 외면하며 약간 짓눌린 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개전전까지 저는 리승만군이 이기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불리한 경우에도 맥아더의 극동군이 조금만 개입하면 압록강까지는 쉽게 밀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형세로 봐서… 그처럼 잘 훈련되고 장비된 리승만군이 그처럼 치밀히 작성된 전략과 우수한 고문단의 지휘를 받으면서도 패퇴한다는것은 북조선군이 보통군대가 아니라는것입니다. 적어도 쏘련군 몇사단이 포함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런 정보는 없소.》
《여하튼 그 수수께끼같은 반공격을 놓고볼 때 맥원수의 군대로만 안된다는것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렇게 밝은 얼굴이요.》
《각하, 그곳은 수천마일의 타국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얼굴을 찌프렸다 해서 해결될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트루맨은 러스크가 사라지고 방에 자기만이 남았을 때 불안감과 고독감을 더 크게 느꼈다. 그는 처음으로 혹시 이 전쟁에서 실패할수 있지 않을가 하는 무시무시한 예감을 접하고 맹렬히 머리를 저었다. 그는 량손으로 이마를 꽉 누르고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였다. 일본사람들이 심장흥분을 막기 위해 쓰는 방법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후부터 트루맨은 자주 이러군하였다.
회의속기록에 시선이 갔다. 《원자폭탄》이라는 단어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였다.
(그렇다. 나에게는 믿음직한 저 주패가 있다. 아직 미국은 주먹을 쥐고 겨누고있을따름이다. 이제 그 주먹이 나가면 모든것은 달라질것이다.)
트루맨은 전화로 유엔대사 오스틴을 찾았다. 아첨기어린 억양의 말소리가 흘러나올 때 트루맨은 권위와 확신이 넘쳐흐르는 완강한 어조로 말했다.
《유엔사무총장에게 나의 이름으로 전하시오. 오늘내로 <유엔>군의 이름으로 <한국>전선에 군대를 파견하는 결정이 내려져야겠소. 결정이 내릴 때 당신은 미국을 대표해서 미국군참전을 웨치시오.》
전화를 끊고난 트루맨은 방안을 앞뒤로 거닐다가 긴 쏘파에 가 털썩 물앉았다. 쏘파 팔걸이옆에는 검은 가죽의 성경책이 놓였다. 트루맨은 파르르 떠는 손으로 그 성경책을 집어들었다.
노근노근한 가죽을 감촉한 순간 그는 불현듯 자기가 너무 어질다는데 신경이 뒤집혔다. 그는 서기를 찾았다. 그리고 녀서기의 짙은 금발에서 향수내를 강심제처럼 들이키며 단호히 말했다.
《쓰시오. 도꾜, 더글라스 맥아더에게.
귀관은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써라도 서울을 사수하라. 력사는 귀관과 미합중국의 힘을 지켜보고있다.
<한국>관리들과 군인들에게 유엔군참전으로 고무하라. 귀관의 성공을…》
트루맨의 무선전문이 날아간지 한시간만에 맥아더의 답전이 도착했다.
《…본관은 대세를 날카롭게 주시하고있으며 조금도 비관하지않고있다. 안심하도록.》
이 전문을 받아읽은 트루맨은 노발대발하였다.
대통령이 불안해하는데 맥아더는 여전히 허장성세로 을러대는것이다.
《허풍선이, 미친 총독!》
트루맨은 방안을 맴돌며 영국인들이 맥아더에게 붙여놓은 별명을 꺼들어 한창 질욕을 퍼부었다.
그럴수록 이상스럽게도 마음이 너누룩해졌다.
(내가 너무 신경과민이 아닌가. 서울을 내주게 된다면 아무리 허풍선이 맥아더라도 저렇게 흰소리치지 않을것이다.)
트루맨은 중위가 장령을 대할 때의 신빙감으로 맥아더의 답전을 다시금 읽어보았다.
무덤속처럼 캄캄한 도시로는 자동차불들이 어지럽게 쏘다녔다. 헌병들의 호각소리, 카빙총소리가 겨끔내기로 울리였다. 달리는 차의 뒤좌석에 몸을 묻다싶이한 채병덕은 주변의 모든 현상과 외면하려는듯 눈을 꾹 감고있었다. 경무대에 갔다오는 그의 마음은 몹시 우울하였다. 《국부》랍시는 리승만의 작별전 행동은 기괴하면서 슬펐다.
《자네넨 어찌된 일인가? 이레사이면 백두산에 태극기 꽂고… 압록강 가서 술마시고 아리랑한다던 때가 언젠가. 엉? 대답해봐.》
《각하, 저희의 통찰력이 짧았습니다.》
리승만이 노기충천하여 소리칠 때 신성모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였고 채병덕은 보석류며 수형따위들이 들어있을 프란체스카의 핸드빽을 우울하게 바라보았다.
《그래 신국방은 아무 근거도 없이 그 말을 되옮겼단 말인가?》
《각하, 백두산은 여기서 400㎞입니다. 하루 60㎞면 이레면 충분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로버트씨나 맥아더원수까지도 능히 가능할것으로 인정했습니다.》
《신, 일국의 국방장관이요 국무총리인 자네가 어찌 타국사람에게만 미는가. 순양함 한척이면 북벌이 문제없다던 자네가 아닌가.》
《각하, 죄송합니다. 그건 저의 실언이였습니다.》
《옳거니, 하지만 이제 그걸 더 따지는것도 무리지. 자네들은 이제부터 죽기로써 전패를 막을 각오를 해야 하네.
내 엊저녁 도꾜의 맥아더원수에게도 독촉을 했으니 미군이 불일간 들어올것이야. 용기들을 내게. 그럼 난 떠나겠네.》
리승만이 몸을 일으킬 때 신성모는 날쌔게 두걸음 내짚어 로구의 몸을 부축했다. 리승만의 허리를 감싼 프란체스카의 손이 신성모의 손잔등을 꼭 잡았다놓았다.
《캐틴(선장) 신, 굳모닝.》
《정말 떠나시렵니까?》
이제껏 침묵하고있던 채병덕이 육중한 몸을 떨며 한걸음 내짚었다.
《그럼 자네는 어쩌라는건가?》
리승만은 부석부석한 눈두덩아래 가늘고 예리한 눈길로 채병덕이를 견줘보았다.
《각하가 떠나면 군기의 저락을 어떻게 막습니까?》
리승만은 싱긋이 웃었다.
《내 가는건 필승을 위함이야. 미군이 빨리 움직여 빨갱이를 죄없애기 위함일세. 난 자네의 소위를 나삐 생각지 않으려네.》
리승만은 채병덕의 어깨까지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채병덕은 기가 막힌 심정으로 리승만을 바래주었다. 프란체스카의 손에 입을 맞추는 신성모의 행동에는 역기가 치밀었다. 음흉하고 로회하다는것밖에 볼것없는 로망쟁이 《대통령》과 발라맞추기나 잘하는 신성모따위를 《국방장관》으로 내세워 《반공》의《성업》을 이룩해보려 했다는것이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그길로 신성모와 함께 담배연기가 뽀얗게 감도는 국방부청사 소회의실에 간 그는 작전토론이 아니라 전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옥신각신하고 국방부를 수원에 옮기자거니말자거니 하는 시비속에 들자 분연히 일어나 퇴장하였다. 그는 문가에서 신성모까지 소스라칠 정도의 차디찬 표정으로 엄숙히 선언했다.
《서울사수에 동요하거나 절망하여 도주하는자는 관위여하를 불문하고 총살하겠습니다. 나는 국방부의 제관들이 이에 모범이 될것을 바랍니다.》
신성모가 회의실밖에까지 따라나왔다.
《채총장은 어찌할 셈이요?》
채병덕은 가늘게 떨리는 신성모의 손가락끝에서 담배재가 날리는것을 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한때 영국상선의 선장에 불과했던 신성모가 능통한 영어와 약삭바른 발라맞추기로 무쵸와 프란체스카의 총애를 독점하고 국방장관자리에까지 올랐다는것으로 채병덕은 그를 시답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김구나 려운형이네를 거꾸러뜨리는데서 한패가 되고 참모총장자리를 놓고 숱한 사람이 열을 올릴 때 자기에게 지지표를 던진 신성모인것으로 하여 빚을 지고살았다.
《나는 전선을 돌아보렵니다.》
신성모는 그의 말에 매우 놀란 기색이였다. 그러나 살갑게 웃었다.
《지나친 만용은 삼가하시오. 당신은 군의 수뇌임을 명심해야지. 미고문단도 수원으로 움직일 차비라오.》
《수원으로?!》
채병덕은 격하게 소리쳤다. 계단을 내려갈 때 발을 헛짚어 하마트면 넘어질번 하였다.
《개쌍 백당놈들!》
차에 오른 그가 누구에게라없이 욕질하자 부관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창동전선으로!》
채병덕이 재차 내치는 호령에 부관은 펄쩍 뛰다싶이했다.
《안됩니다. 호위차도 없이 떠나는걸 전… 부관으로서… 용인할수 없습니다.》
채병덕은 서청의 이름짜한 테로명수였던 부관을 새삼스런 눈길로 보다가 지친듯 눈을 감았다.… 그는 차가 륙군본부정문에 들이닥칠 때까지 꼼짝않고있었다. 당직장교가 뛰여나왔다.
《하우즈만대위가 있소?》
《고문단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흠.》
채병덕은 왜서인지 이 순간 심한 피곤과 허탈감을 느꼈다.
(그만둘가?)
비대한 몸집을 무겁게 일으켜 차에서 내렸다. 그가 작전국상황실에 들어가 정황보고를 받고있을 때 부관이 나타났다.
《뭐야?》
《창동전선으로 가시자고… 호위차는 다 준비했습니다.》
《…》
채병덕은 부관을 거의 증오에 차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 눈길과 달리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그렇지, 가야지.》
채병덕은 달리는 차안에서 도대체 자기가 무엇때문에 인민군대의 원거리포탄이나 일선장교들이 공포속에 부르짖는 인민군땅크에 잘못될수도 있는 전선에 나갈가 하고 생각하였다. 한나라의 《대통령》도 륙본담당의 하우즈만대위도 다 도망쳐버린 이 판국에 자기가 무엇때문에 가는가. 그래 자기가 가서 과연 무엇을 바로잡을수 있단 말인가.
자기의 명령에 《네.》 하기전에 먼저 담당고문의 얼굴을 쳐다보는 등신같은 사단장, 련대장들한테서 무엇을 기대하며 또 하우즈만의 조언이 없이 자기가 전방방어진에 대해서 무슨 변화를 줄수 있단 말인가.
채병덕의 눈앞에는 신성모의 여유작작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자는 리승만이나 무쵸의 눈에만 삐뚜로 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라가 위급하든말든 관계없다. 그저 아무데서나 편안히 잘살면 그만이라는것이다. 망한다 해도 그는 아무 미련없이 이 땅을 떠날것이다. 옛날처럼 영국상선의 선장이 된다던가 망명 정부의 고관으로 되여 일신의 안락만 추구할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것이다.)
채병덕은 순간적으로 자기야말로 이 땅에서 《공산주의 괴물》과 맞서 일떠선 투사라는 감정에 도취했다. 그는 가끔가다 이렇게 자가당착의 모순된 생각속에 집념할 때가 많았다. 이럴 때면 그는 자기가 반생을 넘도록 일본인행세를 하며 일본군의 소좌로 있었다는것도 또 지금은 한갖 형식에 불과한 《대한민국》군의 참모총장일뿐이지 실제로 미군사고문단의 지시집행자인 괴뢰에 불과하다는것을 망각하군하였다. 이때 누구던 그를 《괴뢰》라고 하면 진심으로 분격했을것이다. 바로 이러한 모순, 자기의 처지와 놀아야 할 역을 때때로 망각하는것은 그로 하여금 2중성격자로 되게 하였다. 그는 새벽어둠이 씻겨져나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물을 벗긴 포가위에서 덩이밥을 씹고있는 사병들이 지나가는 차를 눈이 덩둘해 보고있었다.
한 장교가 차를 세웠다.
《각하, 더 나가면 공산군진지에 가닿을수 있습니다.》
채병덕은 문을 열어제낀채 전장을 바라보았다. 길옆 밭을 갑자기 뚜져 판 전호마다에는 다갈색 군복의 사나이들이 빼곡이 엎디여있었다. 드문드문 2. 82인치 로케트포가 보였다. 채병덕은 약간 둔덕진곳에 있는 기관총좌지를 보자 한마디 위엄있게 하였다.
《음페와 위장을 잘해야겠소.》
그는 자기를 향해 꿋꿋이 선 사단참모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래일아침도 난 군을 여기서 볼걸 기대하오.》
차에 오른 채병덕은 7사가 있는 방향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부터 귀에선 포사격이 우렁차게 울려왔다.
차가 아카시아꽃이 너저분히 떨어진 야산사이로 빠져나가는데 갑자기 열댓명의 흙투성이 사병들이 달려왔다.
《뭐야?》
채병덕이 놀란 소리를 지를 때 부관이 더 바빠맞아 소리쳤다.
《차를 돌려야지요?》
채병덕은 《그래라.》 하고 혀끝까지 오른 말을 삼키며 앞을 묵묵히 쏘아보았다. 뒤미처 백여명은 넘을 군인들이 길로 산으로 쓸어달려왔다. 채병덕은 되돌아서고싶은 마음의 요구와는 달리 턱을 덜덜 떨며 차문을 열어젖히였다.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그러나 그는 총소리가 몇키로밖에서 울리는것임을 알았다.
《뭐야?》
채병덕이 뛰여나가며 소리칠 때 호위차의 성원들도 그를 옹위하며 《뭣들이야?》 하고 소리쳤다.
모자도 없이 머리를 짓숙이고 달려오던 사병이 흠칫하고 서며 채병덕을 올려다보고 꼿꼿이 굳어졌다. 뒤미처 달려오던 사병들은 우뚝우뚝 멎어서며 겁질린 눈길을 어디다 건사할지 몰라 갈팡거렸다. 부관은 안절부절 못하며 채병덕에게 말했다.
《각하, 공산군 게릴라가 들이닥친것 아닙니까?》
《뭣이?》
채병덕은 흠칫 몸을 떨며 자기의 마음속 공포를 드러내게 한 자극적인 말에 격분하여 부관을 쏘아보았으나 인차 태연한 기색을 지었다. 부관은 굳센 각오의 빛을 하고 엄숙히 차렷자세를 했다가 홱 돌아섰다. 《쌍, 태를 거꾸로 감고 나온것들!》 하며 눈을 부라리던 부관은 한 중위가 뒤걸음치는것을 발견하고 매가 꿩을 덮치듯 달려들어 끌어내왔다.
《누구야?》
부관의 물음에 스물대여섯살난 중위는 낯이 새파랗게 질려 《중… 중대장입니다.》 하고 겨우 말했다.
채병덕은 그자를 향해 다짜고짜 방아쇠를 당겼다. 《악》하는 단말마의 비명에 사병들은 낯이 새까매서 얼어붙은듯 굳어졌다.
채병덕은 발밑에 쓰러져 시뻘건 피가 꿈틀거리며 흘러내리는 중위의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권총을 갑에 넣었다.
불쑥 앞의 대렬속에서 악쓰는 소리가 울렸다.
《나도 쏴라!》 하며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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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나도 쏴라!》 하며 달려드는것은 대위였다. 채병덕은 화닥닥 놀라며 권총집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부관이 더 날쌨다. 그는 대위의 복부를 면바로 차 거꾸러뜨리고 재차 그자의 멱살을 치켜 들고 귀쌈을 갈겨댔다. 대위는 펄쩍 물앉았다. 그리고 땅에 머리를 박고 통곡했다.
《넌 누구냐?》
채병덕은 매우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관의 발길이 대위의 면상으로 또 나가려는것을 막으며 대답을 지켰다. 순간적발작에서 깨인듯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쳐든 대위는 가까스로 일어나며 입에 묻은 피를 닦고는 기척을 했다.
《7사 20련대 작전관입니다.》
《어찌된거야?》
《저흰 고문관님의 명령으로 반돌격에 나갔습니다. 무공을 세울 때라고 련대장님이 친히 앞장섰는데 공산군의 반격에 련대장님이하 대대가 전멸-》
《성대령이 전사했단 말이야?》
《네.》
《그렇다면 함께 전몰되던가 복수를 해야지.》
《목숨이 아까와 도망쳐오는게 아닙니다. 공산군은… 악마입니다. 그놈들은 저의 집과 땅을 빼앗았습니다. 그놈들을 없애기전에는 난 죽을수도 없습니다.》
대위는 피거품을 물고 부르짖었다.
《너희들이 싸우던 곳이 어딘가?》
그 말에야 대위는 정신을 차린듯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너흰 전선에서 20리나 도망쳐왔단 말이다. 그리고도 <멸공통일>할수 있는가?》
채병덕은 대위가 낯이 파래서 부들부들 떠는것을 흡족히 바라보다가 의뭉스런 미소를 지었다.
《대위, 넌…》
채병덕은 생사여탈권을 쥔 자기의 권력에 대한 쾌감을 음미하며 잠시 있다가 너그러운 아량을 보이기로 결심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30분내로 진지를 차지하라. 만약 네가 자기 진지에서 공산군을 저지시키면 모든것을 용서하겠다. 하지만 다시 이런 일이 있다든가, 진지를 내주는 경우엔 이 참모총장이 직접 너를 재판없이 총살하겠다.》
《하!》
《일군에 있었는가?》
《네. 그렇습니다. 각하.》
《좋다. 일본은 나쁘지만 그들의 군인정신은 본받을바 있다. 너를 대대장으로 임명한다. 지휘해라.》
《각하, 감사합니다.》
대위는 눈물이 그렁해 경례를 붙이고 사병들의 무리를 향해 꽥 소리질렀다.
《전체 기착! 참모총장님을 향해 경례-엣.》
사병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공포와 악의에 찬 눈길들이 흘깃거렸다. 대위를 따라 억지로 끌려가는 사병들의 불안에 찬 느릿느릿한 동작을 바라보는 채병덕의 심정은 우울해졌다.
(모두가 저 대위처럼 《멸공》정신이 투철한자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가. 사실상 저 대위는 순간적으로 공포에 사로잡혔을 따름이다.
그렇게 볼 때 저 대위는 제 한목숨을 먼저 생각하여 도피소동을 피우는 대통령이랍시는 리승만이나 국방장관 신성모보다 몇배나 더 낫다. 모두 개쌍놈들뿐이지!)
채병덕은 자못 비분강개하여 주먹을 틀어쥐였다. 속이 음울해오고 피가 끓어올랐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둔덕에 올라 쌍안경으로 방어전방을 살폈다. 줄줄이 파진 전호너머 뽀뿌라가 듬성한 공지쪽을 훑어보던 그는 갈대와 잡초가 설렁거리는속에서 인민군산병선을 발견하였다. 모자에 빨간줄이 있는 군관이 자기쪽을 향해 손짓하는것을 보며 가슴이 섬찌했다. 그는 쌍안경을 내렸다.
(한시간이면 여기에 닿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돌아서 군화목까지 잠기는 흙비탈로 천천히 걸어내려왔다. 비젖은 흙은 그의 육중한 중량이 실린 발밑에서 밀려내려갔다. 부관이 그를 부축하였다. 차에 이른 그는 비탈길을 내리며 지체된 시간을 단축하려는듯 매우 날랜 동작으로 올랐다. 부관이 신발에 묻은 흙을 터는것을 보고 잔뜩 화가 나 소리쳤다.
《뭘해, 빨리 가자.》
그 순간 그는 자기가 쏴죽인 젊은 중위의 시체를 보았다. 진창에 떨어진 아카시아꽃잎을 물들이며 거무스레한 피가 퍼져흘렀다. 심한 오한과 구토감이 치밀었다.
(나도 총알에 맞으면 저렇게 될수 있다.)
불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무섭게 엄습해오며 삶에 대한 본능적애착이 그의 온 심신을 결박해버렸다. 채병덕은 달리는 차안에서 무선으로 7사단장을 호출하였다. 그리고 북동 5㎞지점의 인민군산병선에 곡사포사격을 가할것을 명령하였다.
서울시내에 들어서자 얼마간 마음이 진정되였다. 길목마다 설치된 바리케트들과 직사포진지들을 에돌며 륙본에 도착했을 때 분명 도주했다고 생각한 하우즈만대위가 자기의 종졸과 함께 채병덕의 방에서 기다리고있었다.
《나는 새벽에 수원에 갔댔습니다. 고문단이 그리로 옮겼기때문입니다. 도꾜와의 통신련락의 신속성과 기밀보장으로 그리로 옮긴것이지요. 도꾜에서는 서울을 무조건 사수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왔소?》
채병덕은 군화에 더덕더덕 붙은 진흙을 양복솔로 긁어내리며 무심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하우즈만은 대답은 피하고 《륙본의 결심은 어떻습니까?》 하고 은근히 물었다. 허리를 굽히고있어 얼굴에 피가 몰린 채병덕은 하우즈만의 깊숙한 눈확에서 불안스럽게 번뜩이는 눈을 맞바로 한참 보았다.
(그래 너는 너희 상급에게서 쫓겨 이리로 온셈이구나. 분명 서울을 못지키면 모가지라는 소릴 들었겠지. 그런데 너는 이제 불길속에 휘말릴 도시에 있고싶진 않을것이다.)
채병덕은 음울한 어조로 말했다.
《륙본은 병사와 애국시민들과 함께 여기서 결사전을 하려고 합니다.》
하우즈만의 낯색이 창백해지였다. 그러나 그도 태연한 빛으로 웃었다.
《미스터 채는 황군의 옥새주의를 따르려는것이 아닙니까. 전쟁을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머리는 아껴야 합니다. 륙본은 당신네 군대의 머리입니다. 머리만 있으면 병사는 얼마든지 생깁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소?》
채병덕은 잔뜩 늘어붙은 소리로 되물었다.
하우즈만은 얄팍한 입술을 혀로 핥고 날카롭게 채병덕을 일별하였다.
《현대전에서는 통수부의 인물이 일선에 나가는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발전된 통신기재로 당신네를 장비시킨것은-》
그자는 말을 채 맺을수 없었다. 싸이렌소리가 울리고 뒤미처 직일장교가 뛰여들었다.
《항공입니다.》
하우즈만은 화닥닥 일어섰다. 그는 눈살을 찌프리고 내쏘듯 말했다.
《이런 상태에서 작전을 제대로 할수 있습니까?》
그 위협적인 살기어린 눈을 쳐다보던 채병덕은 자기가 져야 한다는것을 알았다.
《난 륙본을 이미전에 후보지로 정했던 시흥으로 옮겼으면 합니다.》
하우즈만은 마치 깊이 생각하는듯 눈섭을 껌벅거렸다.
(개자식, 썩은 다꾸앙이나 처먹고 설사나 콱 만날 여우새끼같은것.)
채병덕은 속이 뻔한 연극을 하는 하우즈만에게 골탕을 먹일수 없는것이 한스러웠다. 하우즈만이 고개를 쳐들었을 때 그 눈과 얼굴에는 매우 진지한 사색의 빛이 흘렀다. 주요한 전략문제를 결론하듯 이제까지와는 판달리 매우 뜨직뜨직한 말씨로 입을 열었다.
《난 채총장이 그렇게 결심한 이상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뭔가 생각하는듯(허나 채병덕은 이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것이 아니라 공산군 항공기의 비행음을 듣고있음을 알았다.) 눈을 쪼프리고있다가 갑자기 결심이 생긴듯 헌헌한 태도로 계속했다.
《그럼 내가 먼저 가겠습니다. 륙본이동에 대하여 고문단에 통고하고 맥아더원수의 사령부에 보고도 하고…》
《감사하오.》
채병덕은 울며 겨자먹기로 강잉히 웃음을 띄웠다.
하우즈만은 방에서 나가다가 되돌아섰다.
《한강교폭파준비는 어떻게 됩니까?》
《포치되였소.》
《<매사에 불여튼>이라는 당신네 성구는 좋은것입니다.》
하우즈만이 사라지자 채병덕은 신성모에게 전화를 걸고 작전국에 장성회의소집을 명령했다. 신성모의 참가하에 열린 장성회의에서 륙본이동에 대한것이 결정되였다. 제일 기뻐한 사람은 신성모였다.
륙본이동은 비밀리에 진행되였다.
시흥에 도착한 채병덕은 보병학교 교장실에 자리를 잡고 첫 사업으로 서울전방 사단장들과 전화교신을 하였다. 7사와 2사 사단장이 인민군대의 맹렬한 공격을 떠들며 철퇴를 운운해오자 그는 같은 계급의 동료에게 군사재판으로 위혁하며 한걸음도 움직이지 말라고 을렀다. 그다음 종졸이 날라온 점심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위스키를 부어 배를 덥힌 후 비프스테끼 한점을 집어드는데 모터찌클과 승용차의 발동소리가 요란히 울리고 뒤미처 왁자하는 소음이 복도를 채웠다. 채병덕이 엉거주춤히 일어서자 마당에 넉대의 승용차가 들이닥치고 첫 차에서 레인코트를 걸친 칼칼한 얼굴의 미국인이 뛰여내렸다. 전쟁전날 작전계획도를 가지고 도꾜의 맥아더사령부에 갔던 주한미군사고문단 참모장 라이트대좌였다. 로버트준장의 대리로 실제적인 한국통수자인 그를 본 채병덕은 막연한 불안과 함께 막연한 희망을 안고 나프낀으로 입술을 재빨리 닦으며 문가로 걸어갔다. 그가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을 때 성칼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뚱보 채>는 어데 있소?》
그 소리에 채병덕은 얼굴이 지지벌개졌다. 미군장교들속에서 자기의 성에 《뚱보》를 붙여 이름대신 부른다는것을 알았으나 라이트가 숱한 하졸들이 있는데서 그렇게 부르는데는 아연하였다. 채병덕은 더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않고 그대로 바위처럼 굳어져있었다. 라이트가 나타나자 기계적으로 손을 올렸다. 라이트는 컴컴히 흐려진 채병덕의 눈길과 마주치자 개짖는것처럼 표독스럽게 웨쳤다.
《당신은 왜 여기 와있습니까?》
《…》
채병덕은 돌덩이를 삼킨 사람처럼 낯을 일그러뜨렸다. 라이트는 지금상태로는 채병덕을 누를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말없이 그의 옆을 스쳐 채병덕의 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르던 신성모가 채병덕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채병덕이 치받치는 울화를 간신히 제어하고 들어갔을 때 라이트는 왜정때 유물인 등받이에 국화꽃문양이 새겨진 안락의자에 주저없이 앉아 신성모를 보며 물었다.
《나는 당신네 군부수뇌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에 유감을 금할수 없습니다.
맥아더원수는 나에게 서울을 무조건 사수할데 대하여 명령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트루맨대통령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현재 당신들의 행동은 우리 미국정부와 시민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줍니다. 더구나 륙본까지 서울에서 도망쳐 이 촌락에 숨어배긴데 대하여 맥아더원수는 몹시 노하였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매 사람의 인끔이 평가될 때라고 맥아더원수께서 얘기가 있었습니다.》
라이트는 우연인듯 채병덕을 흘끔 쳐다보았다.
《륙본은 이 즉시 본위치로 옮겨가야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채총장.》
채병덕은 거대한 무게로의 압박감을 느끼며 우울히 대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라이트는 싱그레 웃으며 주머니에서 돌돌 만 전신지를 꺼내들고 마치 전지전능의 신비력이 담긴 물건인듯 살피다가 채병덕에게 내밀었다.
《채총장, 이걸 보십시오.》
채병덕은 주변환경이 요구하는데 따라 남의 의지에 인도되듯 공손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모르수부호를 따라나가며 써넣은 보라색 글자를 보던 채병덕은 숨이 가빠올랐다.
《맥아더로부터 라이트에게. 귀관은 본위치로 돌아가라. 머잖아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 안심하도록!…》
라이트는 방금까지의 신경질적인 태도를 버리고 곰살궂게 웃으며 채병덕에게 다가와 전신지에 쓴 《변화》라는 글자를 반지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겠지요?》
채병덕은 이 순간 라이트라는 사람은 한갖 대좌가 아니라 이 나라의 운명은 물론 자기의 운명까지 쥐고있는 미국이라는 힘의 대표임을 새삼스럽게 절감하였다.
《알고있습니다.》
라이트는 웃었다. 그는 벗어쥔 장갑으로 손등을 툭툭 치다가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채총장이 알고있는것은 우리 미국군대의 참전이겠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뿐만아니라 영국, 프랑스, 토이기, 필리핀 등 수십개 나라를 망라하는 <유엔군>이 올것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는 비밀입니다. 당신들만이 알고있어야 합니다.》
라이트는 매개 사람을 굽어보다가 작전탁앞으로 걸어갔다. 신성모에게 량해를 구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매우 공식적인 어조로 결패있게 말을 떼였다.
《나는 죤 처치준장으로부터 도꾜사령부의 취지를 전달받은 후 현재의 불리한 정세를 회복할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커다란 작전지도를 테블에 펼쳤다. 지도의 량가녁을 두손바닥으로 누르고 엄엄한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본후 주로 채병덕에게 시선을 주며 설명했다.
《미군전투사단이 올 때까지 당신들은 지연전, 소모전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되 우리는 최상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한 몰트케장군의 지론을 지침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기-》
라이트는 동부의 적갈색 산줄기를 깊다란 손가락으로 죽 훑어내렸다.
《당신네 6사가 지켜선 산줄기를 우리는 하나의 요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대하는 공산군은 게릴라전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군대인것으로 만약 이 중동부의 산줄기들을 내주는 날에는 미군이 들어올 경우에도 상당한 지장을 받을수 있다고 맥원수께서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나 기본은 어디까지나 서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서울방위를 할것인가. 나는-》
라이트는 오른손을 모재비로 세우고 춘천과 서울사이로 칼처럼 들이밀었다. 채병덕은 바싹 긴장하였다. 라이트는 그의 긴장된 시선을 보자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습니다. 나는 절단기습작전을 결심했습니다. 한개의 강력한 사단으로 인민군 53사와 52사의 린접점 아니 현재는 그 린접점이 없습니다. 당신네 용감한 6사 장병들이 중부의 52사를 견제함으로써 보시오. 인민군 53사는 여기 미아리앞까지 이르렀으나 52사는 저기 춘천을 겨우 벗어났습니다.
바로 이 공간지대를 한개 사단이 진입하여 53사의 허리나 배후를 들이치면 서울진공작전을 꾀하던 인민군사령관은 어떻게 할것 같습니까.》
라이트는 감탄하는 상의 신성모와 눈섭을 쭝깃거리는 채병덕을 일별하고나서 책상을 가볍게 치였다.
《퇴각을 명령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사령관도 전쟁경험이 풍부하니만치 역포위에 들수 있다는것을 알고 한발 물러서 전반적전선의 균형을 보장하려 할것입니다. 이 시간, 이 황금의 시간은 서울을 구하는 시간이면서 우리의 강유력한 미군이 전면적으로 전투마당에 뛰여들 때까지의 여유를 만들어줄것입니다. 미군사단들이 개입된 다음에는 전선이고 전술이고 머리아픈 토론은 없을줄 압니다. 채총장, 어떻게 생각합니까?…》
채병덕은 라이트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지는것을 보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들이 래일이나 모레 서울로 쳐들어오는 경우 어떻게 됩니까?》
채병덕은 창동전방에서 본 인민군의 공격산병선을 그려보았던것이다. 그의 물음에 신성모도 라이트도 억이 막히다는 눈길로 웃었다.
라이트는 채병덕의 심각한 얼굴색을 알아보고 정색하여 대답했다.
《채총장, 당신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중부의 52사가 서울 포위를 위한 부대라고… 그들은 여러 사단이 수비하는 대도시공격에 더구나 천험의 요새마냥 산에 둘러싸인 이 도시 공격에 린접이 없이 덤벼드는 햇내기가 아니라는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정면으로 결박하고 52사로 하여금 익측이나 후방을 갈기게 하고 들어오자는것입니다. 이 전술은 우리도 앞으로 연구할 매우 훌륭한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도꾜나 여기엔 그 모든것을 알아맞히는 머리가 있는것입니다.》
라이트의 말에 가벼운 웃음이 실내로 줄달음쳤다. 그러나 채병덕만은 생각에 잠겼다.
신성모따위들이 한개 대좌에 불과한 라이트의 말에 어떻게 하면 재빠른 찬동과 감탄의 반응을 보이겠는가 눈치만 살필 때 미군참전이라는 강심제로 기분을 회복한 채병덕은 어떻게 하면 보다 완벽한 작전을 세우겠는가 하는것에 자기의 군사적지식과 두뇌를 깡그리 동원하는것이였다.
《아직 리해 안되는것이 아닙니까?》
《두가지 문젭니다. 방금전에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중부의 52사는 그들의 가장 유능한 오랜 빨찌산인 최현이 지휘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 52사를 순전히 서울점령의 보조타격부대로만 생각하다간 큰 실수가 빚어질수 있습니다. 그들이 서울쪽을 위협하다가 중부회랑으로 그냥 내려오는 경우 아군은 전반이 절단될수 있습니다.》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6사가 그들을 막고있고 또 새로 투입되는 사단이 그 인민군 52사와 53사사이에 뛰여들어 53사를 역포위할듯이 하여 놀래운후 52사를 옆으로 쳐갈기면 다 풀릴것입니다. 이미 도꾜에서까지 인민군 52사의 진출기도를 포착하고 그 진출로를 5공군의 비행대로 봉쇄하게 하였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인민군 52사와 53사사이에 쐐기칠 사단이 없습니다.》
《여보 채총장.》
신성모가 답답한듯이 대화에 뛰여들었다.
《거야 후방사단을 긴급출동시키면-》
《후방사단이 어데 있습니까?》
채병덕이 독살스럽게 내쏘자 신성모는 눈이 올롱해졌다. 그러나 어조는 침착하였다.
《이제 미군참전만 알려지면 구름모이듯 군대들이 생겨날것이요. 그 보장은 내가 맡겠소.》
채병덕은 도저히 신빙성이 없는 들뜬 장담이라고 여겼으나 더할 말이 없었다. 라이트가 또 다른 질문이 없는가고 물었을 때 죤 피리트대위가 일어섰다.
《국방장관각하에게 한가지 묻고저 합니다.》
《말하시오. 대위.》
신성모는 호의적웃음을 띠우고 그를 바라보았다.
죤대위는 음울한 눈길로 신성모를 주시하며 말했다.
《저는 일정한 정보선을 통해 서울시내에 공산게릴라가 준동하고있으며 그들과 결탁밑에 서대문, 마포형무소들에서 폭동이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조처하시겠습니까.》
《그건 내무장관의 관할문제요.》
《각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것은 국무총리라는 각하의 직함으로도 응당 처리하여야 할 문제가 아닙니까.》
신성모는 당황해서 채병덕을 보았다. 채병덕은 쓴 웃음을 머금었다. 일개의 국무총리가 미군대위의 추궁에 어쩔바를 모르는것에 화가 났으나 한편 우스웠던것이다. 500년전의 보신각 종우에 독수리가 앉아있는 마크를 어깨에 붙이고 눈을 내리뜬 대위를 다시 봤을 때 채병덕은 순간적인 반발감을 느끼며 신성모에게 말했다.
《주모자급들부터 처치하면 되지요.》
신성모를 보고 한 말이였으나 죤이라는 대위가 성급히 받아나섰다.
《좋습니다. 전시이니 군에서 담당하면 좋을것입니다.》
이 대위는 미중앙정보국 요원이였다. 그의 폭동설은 완전히 꾸며진것이였다. 그러나 상부로부터 서울을 내주는 경우 《부역자》들을 다 없애라는 지시를 받고 묘하게 데마를 만들어 학살조직을 은밀히 사촉한것이였다. 신성모는 채병덕이와 그의 제안에 절대찬성하는 죤대위의 얼굴을 보다가 그제야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으로서의 자기 위치를 자각했던지 엄숙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순천-려수계 폭동자들과 제주도패들부터 처리해야겠소.》
채병덕은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동의를 표시하였다.
라이트는 그러한 채병덕을 매우 신뢰어린 눈빛으로 보았다. 잠시후 서울로 들어가는 승용차에서 채병덕의 옆에 앉은 라이트는 더없는 친절과 믿음을 풍기며 속삭였다.
《이제부터 모든 문제는 서울에 달려있습니다. 서울의 운명은 곧 나나 당신의 운명입니다.》
채병덕은 그 말에 은연히 품고있던 그에 대한 불만조차 거의 잊고말았다. 한강교를 넘어설 때 그들은 뜻밖의 환영대렬과 부딪쳤다. 라이트가 그토록 비밀로 강조한 《유엔군참전》과 《미군참전》이 어떻게 새여나갔던지 환영나온 유지신사들이 든 프랑카드와 머리에 동인 수건에는 《서울을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글발과 함께 《환영 미군참전》, 《환영 유엔군참전》이라는 글자가 띄여 놀라움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채병덕에게는 힘과 고무로 안겨드는 감동적인 화폭이였다.
…그 구름은 분명히 적란운이였다. 번개를 띤 그 구름속에 들어가면 비행기는 폭파될것이였다. 운학이는 자연이 주는 이 도움을 고맙게 생각하였다. 모름지기 도하수송대의 지휘관인 공병과장도 군사부사단장도 그렇게 생각했을것이였다.
비구름이다. 얼마나 고마운가, 적기는 못올테니 어서 가자, 남한강으로! 패잔병들의 먼 총질에는 외눈도 돌리지 않았다.
《항공!》과 《음페!》구령이 떨어졌을 때는 이미 적기들은 그들의 머리우에 나타났다. 무수한 까만 점들이 삽시에 십자가의 형태로 변했다. 따르락! 그 소리는 신호였다. 달리던 자동차가 훌 들리고 눈앞에 번개가 번쩍였다. 림운학은 운전칸지붕에 머리를 짓쪼으며 차에서 굴러내렸다. 화약내를 떠실은 폭풍이 그를 떠실어 몇메터가량 뿌려던졌다. 온몸이 지근지근 쏘고 눈앞이 캄캄했다. 눈을 뜰수 없었다. 손바닥으로 땅을 더듬었다. 돌멩이, 따끈따끈한 쇠쪼각이 잡혔다. 파편인가 아니면 부서진 자동차의 잔해인가, 나무와 뼁끼가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귀청을 긁어대며 급강하하는 적기의 비행을, 기관총사격과 동시에 일어나는 폭탄의 폭발, 땅은 지진을 만난듯 떨었다. 흙비가 돌덩이와 함께 그의 어깨며 잔등을 두들겼다. 운학은 군관학교 강실에서 배운대로 될수 있으면 배를 땅에 붙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가까운곳에서 폭탄이 터질 때마다 밀어쳐오는 폭풍과 땅의 진동에 그는 몇번이나 태질을 당하였다.
(이렇게 죽는가.)
그는 폭격의 중심권에서 헤여나가려고 했으나 첫 폭발에 눈이 상했는지 아무것도 분간할수 없었다. 눈은 불맞은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보았다. 흙부스레기와 껍진한 진흙이 매달려있었다. 와락 긁어내렸다. 눈물이 솟구치며 캄캄한 밤중에 별빛이 흘러드는 창문을 보았을 때처럼 주위가 희스름한 빛속에 안겨왔다.
(눈에 흙이 들어갔구나.)
그는 아까 운전칸 창문에서 본 풀어놓은 천필처럼 나타나던 강물을 생각하였다. 폭음과 아우성이 차넘치는 속에서 강의 여울물소리를 귀담아들으려 했다. 그리고 기여갔다. 시원한 강바람과 물비린내를 맡으며 일어나 달렸다. 발길이 물에 닿는 순간 풍덩 물앉으며 두손으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그것으로 성차지 않자 자맥질하듯 물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두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손으로 눈을 씻었다. 쇠꼬치로 쑤셔대는듯 아파나는것을 참았다. 어린시절 눈앓이를 할 때 소금물사발을 들고나온 어머니가 싫다고 앙탈을 쓰는 그의 머리를 젖내풍기는 가슴에 안고 눈을 씻어주던 일이 불쑥 떠올랐다.
(어머니한테 편지를 써보게 될가.)
숨이 막혀 얼굴을 쳐들자 주변이 한결 밝아졌다. 그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머리우로 허연 배때기를 번쩍이며 적기가 날아지났다. 운학은 다시 물속에 잠겨들었다. 그러기를 몇번…
물속에서 다시 솟구쳐나온 그는 고막이 《앵-》 하고 진동하는것을 느꼈다. 그의 눈앞에는 스산한 광경이 펼쳐졌다. 뽀얀 안개가 자욱히 서린 강녘과 길에는 45㎜포와 76㎜ 산포를 끌던 말들이 향방없이 달리고 불타는 자동차와 빠롬(경도하창)주변에서 군인들이 뛰여다녔다. 말을 탄 기마수가 사방에 뛰여다니며 뭐라고 소리쳤다. 운학은 적기가 사라져간것을 알고 비칠거리며 강에서 걸어나와 자기가 타고있던 자동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 부서졌구나, 다.)
운학은 몇분동안에 사단의 도하기재와 적지 않은 포와 자동차들이 녹아난 사실앞에 너무 기가 차서 우들우들 몸을 떨었다.
《뭘하고있소?》
그는 박격포탄상자를 메고 걸어오는 한 군인의 힐난에 찬 부르짖음에 정신을 차렸다. 낯모를 포병군관이였다. 그 군관은 비난과 의혹어린 눈길로 보다가 거칠게 말했다.
《짐이 없는 군인들은 직위병종 여하를 불문하고 포탄을 나르게 되였소. 사단장동지의 명령이요.》
이때야 운학은 말을 타고 번개같이 앞뒤로 달리는 군인이 최현 장령임을 알아보았고 불타는 자동차들에 까맣게 달라붙은 군인들이 날라가야 할 《짐》과 《포탄》을 찾으려 한다는것을 알았다.
《빨리 움직이오. 사단장동지가 시퍼렇게 성이 났소. 빨리 맞은편 대안에 넘어가라는거요. 적기가 또 날아올수도 있거든… 너무 슬퍼마오.》
군관은 굳어져 서있는 운학에게 마지막으로 동정조의 말을 남기고 강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를 따라 온통 흙투성이의 군인들이 따랐다. 운학은 저도 모르게 최현장령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현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있었다. 마상에 앉은 그는 불타고있는 경도하창을 보며 동상처럼 굳어져 까딱하지 않았다. 그가 탄 말의 한쪽 허벅다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땀에 번들거리는 말의 궁둥이가 이따금 푸들푸들 경련하듯 떨었다. 운학은 못볼것을 본듯 가슴이 아릿하여 포탄차에로 다가갔다. 운전칸은 뭉청 날아났으나 포탄이 튀지 않은것이 놀라왔다. 그는 기계적으로 상자를 메워주는 한 군인에게서 포탄상자를 받아들었다. 몹시 무거웠다.
그는 경도하창을 가설하기 위해 박아놓은 말뚝에 하마트면 부딪칠번 하였다. 물속에 들어가서는 몇번이고 넘어질번 하였다. 어떤 곳은 물이 목에까지 차올랐다. 대안의 버들숲에까지 이르며 두번이나 물을 먹었다. 여기저기서 옷을 벗고 쥐여짜는 군인들속에 섞여 그도 옷을 벗어 짰다. 옷주머니에 있는 딴딴한 지갑을 감촉하고 군인증과 함께 있는 어머니와 련화의 사진이 못쓰게 되였을것이라는것을 생각했을 때는 다 짜고난 뒤였다.
《…이 상태에서 쳐나갈수 있을가.》
《중포나 싸마호트(자동포)들이 하나도 못건너게 됐으니 야단이지.》
불안스럽게 울리는 말을 들으며 운학은 사단의 전투행동에 엄중한 난관이 생겼음을 깊이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웃쪽 버들숲에 몇명의 지휘관들이 있는것을 보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최현장령이 네명의 자동총수와 함께 강을 건너오는것을 보았다. 최현도 포탄 두개를 옆구리에 끼였다.
여러 군인들이 사단장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한 군인에게 포탄을 넘겨준 최현은 물녘에 넘어져 있는 버드나무통에 주저앉아 장화를 뽑기 시작하였다. 련락병이 그 장화에 손을 대자 최현은 강을 건너오는 군인들을 처염한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운학은 불시에 최현장령이 측은해지며 가슴이 저릿해왔다.
오늘 새벽 최현은 그 어느때보다 너그럽고 락천적인 사람이였다.
《애인생각이 나지?… 이제 불이 번쩍나게 가보자.》
련락병에게서 장화를 받아쥔 최현장령은 그것을 꺼꾸로 쳐들었다. 좌르륵- 물이 쏟아져내리였다. 최현은 장화에서 마지막 물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신었다. 운학은 저도 모르게 그앞에 다가갔다. 그를 본 최현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왜, 우는가?》
《네?!》
운학은 이때야 폭격시에 다친 눈에 피가 졌고 눈물이 계속 내리는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켰음을 알았다. 좀전에 본 포병군관이 비난과 의혹속에 주시하던것이 자기가 울고있는것으로 알았기때문일것이다. 운학은 애써 웃어보였다.
《폭탄바람에 먼지가 눈에 좀 들어갔습니다.》
손바닥으로 눈굽과 볼을 훔쳤다. 볼가죽이 불에 데인것처럼 뜨끔거렸다. 손바닥에는 눈물과 함께 점점이 피가 묻어났었다. 최현은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군사부사단장과 지휘관들이 있는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서는 무선수가 애처로울 지경의 급한 목소리로 《청천강》을 불러댔다.
잠시후 최현이 운학이를 불렀다.
최현은 손에 종이쪽지를 들고있었다. 그의 옆에서는 무선수가 울상이 되여 흙투성이 된 무선기를 분해하고있었다. 운학은 직감적으로 무선기가 고장났음을 알았다.
《말탈줄 알아?》
《못타봤습니다.》
《의정부의 도봉산을 알겠지?》
《압니다.》
《거기에 전방지휘소가 있소. 이제부터 내 말을 똑똑히 기억해두라구.》
최현은 날카로운 눈길로 림운학을 살펴보다가 종이쪽지에 눈길을 떨구었다.
《…포화력기재로 증강된 서울진출부대는 남한강 좌표 20, 23지점에서 적의 항공습격을 받았음.
손실-중도하기재 전부, 포차 8대, 122㎜포 3문, 76㎜포 2문… 자동포 1대… 》
최현은 수자를 부르다 말고 그 종이쪽지를 구겨버렸다. 입귀가 떨리고 눈길이 사납게 번쩍거렸다. 운학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눈에는 면도칼로 도려낸듯이 포탄파편에 잘리워나간 사단장의 장화코숭이가 안겨들었다. 불그스레한 물거품이 그 코숭이를 덮고있었다. 장화굽으로 물매미 한마리가 엉금엉금 기여오르다가는 떨어지고 떨어졌다가는 다시 기여올라갔다. 최현은 그 물매미를 집어 강물에 휙 던져넣고는 한결 침착한 음성으로 계속했다.
《중도하기재의 파괴로 자동포, 포,… 등 중화력기재들과 자동차의 시급한 도하는 불가능하게 되였음. 나의 결심에서 변화된것은 없음. 사단장 최현.
복창하시오.》
《사단장동지!》
《복창하시오.》
운학은 속이 떨렸다. 기계적으로 받아외웠다.
《포화력기재로 증강된 서울진출부대는 북한강 좌표 20, 23지점에서…》
중부회랑으로 이름지어진 춘천-서울방향의 도로에 대한 미5공군전투폭격기들의 맹렬한 폭격은 최현사단의 도하기재를 거의 다 부셔버렸다. 그 도하기재의 파괴는 중포를 비롯한 전투기재의 서울방향으로의 이동을 파탄시킨것이였다. 대담하고 기발한 이 전투행동은 불의에 나타난 60여대의 대폭격기편대의 도로절단작전으로 부득불 지체되지 않을수 없었다.
최현은 이 불의적인 사태를 전방지휘소에 보고하지 않을수 없었다.
《동문 이제 기마정찰수 두명을 데리고 도봉산에 가오. 늦어도 두시간안으로 도착해야겠소. 가서 무선기가 마사졌다는것도 보고하오.》
《사단장동지, 절 여기에 그대로 있게 해주십시오.》
최현은 엄한 눈빛으로 운학이를 쏴보았다. 운학이 머뭇거리자 최현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이건 명령이야.》
최현의 음성이 부드러워지고 그 눈에 서글픈 미소가 지나갔다.
《게 가야 서울에 빨리 갈수 있어. 우린… 좀 늦었다.》
《사단장동지!》
운학은 열띤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래서가 아닙니다. 전 전… 여기서 이 난관을 함께 헤쳐보고싶습니다. 서울엔 못가도 좋습니다.》
《명령이야. 가서 여기 정황을 그대로 말하라구. 미국것들의 까마귀떼한테 맞아 이 최현이 넙적해있더라는걸… 그러나 청년! 우리가 서울에 못들어가리라는 생각은 집어치워. 문제는 내 계획에서 늦었다는거야. 내 계획에서!》
최현은 절통하게 부르짖었다. 오늘안으로 서울 측방이 아니라 한강 넘어 서울 뒤계선까지 나가볼 욕심이였다.
최현은 얼굴을 붉히며 일어서 정찰과장을 소리쳐 불렀다.
《이 동무에게 길을 가리켜주게-》
그리고는 어쩔바를 질정 못하는 사람처럼 서성이다가 련락병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내 말을 가져와-》
련락병이 뛰여가더니 다리에 붕대를 동인 불빛말을 끌고 나타났다. 최현은 말고삐를 넘겨잡고 말머리를 쓸어주었다. 말은 코를 벌름거리며 최현의 손바닥에 자꾸 입을 가져갔다. 최현은 말고삐를 운학의 손에 넘겨주었다.
《하루 타봤는데 순한 말이야. 눈치도 빠르고.》
《사단장동지 말이 아닙니까.》
《타고가라구. 이젠 말을 타고다니긴 글렀어.》
운학은 주저주저하다가 말고삐를 잡았다. 이제 최현이와 헤여지면 다시 못만날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쳤다.
《가보라구. 더 할말이 있나?》
《없습니다. 사단장동지, 명령대로 수행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아니, 올 필요는 없어.》
《사단장동지, 이 상태에서 정말 내밀수 있습니까.》
《허허, 이사람 봐라. 우린 옛날에 소총만으로도 몇배나 되는 적과 싸웠어.》
최현은 웃으며 운학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말고삐를 잡은채 강을 건너던 운학은 중복판에서 돌에 미끄러졌다. 간신히 몸을 다잡으며 무심코 돌아본 그는 최현장령이 량손을 허리에 얹은채 자기를 지켜보는것을 보고 눈앞이 부얘졌다.
두명의 기마정찰수와 함께 도봉산을 목표로 길이건 산이건 관계없이 직선으로 내닫던 림운학은 바람재라는 등마루에서 둬개 중대의 전투서렬과 부딪쳤다. 보리밭을 배경으로 움직이던 그 서렬은 운학이네가 가까이 갈 때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한걸음 앞서 달리던 기마정찰수가 말을 끄당겨 멈춰세웠다.
《적입니다.》
《여기엔 적이 없기로 되여있지 않았소?》
운학이 길을 잘못 들었나 주위를 살필 때 그 대렬이 넓게 산개하며 사격을 개시했다. 운학은 뒤에 선 기마정찰수에게 급히 최현장령에게 가 알리라고 한 후 말을 짓쳐몰아 오른쪽으로 에돌아달렸다. 말은 최현의 말대로 무척 령리하였다. 기관총탄이 날아오고 륙공포탄까지 터지자 말은 주인이 고삐를 채기전에 총탄이 적게 미치는 뽕나무밭속으로 뛰여들어 요리조리 나무사이를 에돌며 빠져달렸다. 드디여 적의 사격이 멀어진다고 생각했을 때 초가집이 듬성한 길목에서 또 한패가 나타나 《빨갱이다!》 하고 총질을 하며 쫓아왔다. 총알이 팽팽- 날아가는것에 바빠난 운학이 몸을 수그리는데 말이 푹 꼬꾸라졌고 운학은 호되게 땅에 부딪쳐 딩굴었다.
《생포하라!》
하는 귀따가운 웨침에 운학은 권총을 뽑아들며 훌쩍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