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50년 여름 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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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모든 인민군부대들이 38선을 넘는 그 시각, 황주-중화사이의 구배진 행길에는 자동차 한대가 가로수에 대일듯말듯 한쪽에 제빠듬히 서있었다. 그옆으로는 중화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닭이며 토끼며 돼지새끼따위를 안기도 하고 등에 지기도 하고 광주리에 넣어 이기도 하고 부산스레 지나갔다.
자동차 적재함에 씌운 천막 한귀퉁이가 풀썩 들리더니 가무잡잡하고 칼칼한 얼굴에 메대추씨같은 눈이 자동차옆으로 지나가는 자전거 탄 사나이를 불렀다. 자전거뒤에는 새끼로 동여맨 궤짝이 실렸는데 그속에서는 삐용삐용하고 병아리들이 드립다 울어댔다.
《여보시오 동무, 지금 몇시요?》
《여섯시 반이우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고개마루라 엉뎅이를 번쩍 쳐들고 헐금씨금 발디디개를 드립다 밟다가 고개를 외로 틀며 대답했다.
물었던 사람은 손을 내밀어 비방울이 떨어지지 않나 하는것을 알아보고 천막을 훌 들추며 일어났다.
《젠장, 이거 어떻게 된거야?》
그는 목을 길게 빼들고 황주쪽을 보다가 천막밑의 모포퉁구리를 꺼내여 그우에 풀썩 물앉으며 혀를 끌끌 찼다.
평양을 다 온 코앞에서 가동뽀인트인지 고정뽀인트인지 하는 뭐 백금으로 만들었다는 파리눈알만한 접점이 떨어져나가 차는 바퀴 떨어진 달구지처럼 되고 그 뽀인트를 얻겠다고 군소재지를 향해 밤중에 떠난 운전수는 팔매돌마냥 돌아올념을 안한다.
지금쯤 떡을 치고 돼지를 잡아싣고 군악을 울리며 농촌벌에 나갔을 전우들을 생각하면 궁둥이가 쑤셔댔고 한편 복심이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간다.
(그건 왜 와서 이 고생을 시키는지.)
일이 신통치 않은 조짐으로는 무엇때문에 차가 떠날 때부터 비는 오는것이며 또 평양을 코앞에 두고 차가 고장이 나는가말이다. 이쯤되면 복심이와의 상면도 씨원치 않을것이 분명하다. 지청구를 늘어놓고 떼거지를 쓸지도 모른다. 그러니 만나자바람으로 되게 굴어야 한다. 나를 잊게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차고받고 하는데 빵! 빵! 하는 차의 경적소리가 울렸다. 앞으로 가던 장군들이 길가녁으로 물러서고 그가운데로 찦차들이 맹렬한 속도로 달려갔다. 두번째 차에서 장령견장을 띠여본 기덕은 놀라 몸을 움츠렸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가 탄차를 스쳐 모터찌클이 속도를 죽이며 지나갔다. 기덕은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보안간부훈련소 반장이던 림운학이 뒤꽁무니에 앉아 무슨 철학가나 된듯, 그 환한 얼굴이 우거지상이 되여있지 않는가. 기덕은 《운학동무!》 하고 소리쳐불렀다.
운학은 기덕이가 손짓까지 해서야 알아본듯 벌떡 일어서다가 차가 속력을 놓는바람에 도로 궁둥방아를 찧었다.
뒤미처 몸을 들이킨 운학은 기덕이 듣기에 전혀 처음 듣는듯한 비장한 목소리로 웨쳤다.
《기덕동무, 잘 있으라, 난 전선으로-》
《뭐이-?》
기덕이 손나팔을 하고 묻자 저만치 멀어진 운학은 한손을 주먹 쥐여 불끈 쳐들었다.
《기덕이!- 리승만이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을!- 전선에서 만나자-》
기덕은 처음에 그 말의 뜻을 선뜻 리해할수 없었다. 길가던 장군들이 하나 둘 모여들며 어찌된 일인가고 리승만이 끝내 전쟁을 터쳤는가고 묻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며 차에서 뛰여내렸다. 리승만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운학의 말이 그제서야 똑똑히 뇌리에 박혀들었다. 운전수를 만나 뼈골을 뽑아내서라도 빨리 부대로 가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급하게 달리던 그는 황주다리목에서 운전수를 만났다. 운전수 역시 얼굴이 까맣게 질려있었다. 군당에서 뽀인트와 함께 전쟁소식을 얻어가지고 숨이 넘게 달려온것이다. 기덕은 가동뽀인트를 갈아맞추자 그 즉시 차를 되돌려 련대로 되돌아가자고 우겨댔다. 그러나 운전수는 후방물자를 싣고 갈 임무를 받았는지라 그의 뜻을 좇을수 없었다.
차가 앞서가던 장군들을 뒤에 떨구며 한창 달릴 때 보짐을 진데다가 손에는 벼짚망태기까지 든 체대 큰 사내가 길복판을 막다 싶이하고 손을 쳐들었다. 운전수가 그대로 밟아대자 사내는 뭐라 소리치며 다쫓아와 적재함에 매달렸다. 그는 덤벼치는통에 벼짚망태기를 떨구었으나 주을념을 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기덕은 차를 세우게 했다.
《동문 뭐요?》
《중화까지 가면 됩니다.》
덩둘한 두눈이 무척 호인스러워보였다,
《길에 흘린거나 주어오우.》
기덕은 바쁜길을 훼방한 사민이 못마땅하였으나 군관의 체면에 어쩌는수 없었다.
《일없수다. 빨리 가자구요.》
그는 운전수쪽을 향해 소리치고는 서슬이 푸르러 앞을 바라보았다.
《장 보러 가오?》
기덕은 온곱지 않게 물었다. 사내의 눈이 불안스럽게 그를 훑었다.
《장이라니요. 허참, 난 도관개관리소 로동자입니다.》
그는 땀에 절은 얼굴을 팔소매로 훔치고 이젠 퍼그나 멀어져보이는 벼짚망태기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난 장군님 령을 집행하고 가는 길입니다. 장군님께서 한주일전에 여기 화동리에 나오시여 농민들을 만나보셨답니다. 가물과 장마때문에 매번 고생한다는것을 아시고 저수제방공사를 할데 대하여 분부하셨지요. 우리는 닷새동안에 해치웠수다. 어제 저녁 집에 가는걸 이곳 농민들이 한턱 차리고 놓아주지 않는바람에 이꼴이 됐수다.》
《무슨 급한 일이 있소?》
《전쟁이 났다는데 그래 로동계급이 늑장을 부리고있겠습니까. 군대로 가자는겁니다.》
《군대로?!》
기덕은 그가 무척 대견스럽게 여겨졌다. 헤여질 때 그들은 서로 통성까지 하고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사내의 이름은 전호근이라고 했다. 기덕이 평천리의 부대정문에 이르렀을 때는 온 부대가 비상소집을 하여 떠나고 후방일군 몇이 뒤처리를 돌아보고 있을 때였다.
정문에 나와 휴가군인들과 외출군인명단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지시사항을 주던 부대직일관이 기덕이의 소속과 직무를 물어보고는 몹시 반가와했다.
《동무네 련대는 38선에 나갔는데 동무네 련대장은 동무가 꼭 처를 만나게끔 하라고 그 복잡통에 전화까지 해왔소. 동무네 련대군의소장네 집을 아오? 그 집 웃간에 동무 처가 있소. 두시간후에 우리모두 렬차로 떠나니 그때에 오우. 출발시간을 어기지 마오.》
기덕은 전쟁과 복심이라는 문제를 두고 허둥이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들을 정돈할새없이 군관사택마을로 달려갔다. 여느때없이 집앞마다 군관가족들이 서성이는것이 전쟁이라는 이 뜻밖의 사변에 대해 뭔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는것만 같았다.
새끼와 가마니 몇장을 들고오는 련대군의소장의 아주머니를 만났다. 초면이나 다름없는 그 녀자는 몹시 반가와하며 촌에 보낼 짐을 쌀 준비로 가마니를 가져온다고 눈물이 글썽해 일장설화를 하고는 기덕이가 집쪽을 슬밋슬밋 눈짓하는것을 보자 《에구, 주책머리없이…》 하고 수선을 떨며 기덕의 팔소매를 잡아끌고 집마당으로 들어섰다.
《웃방에 있소. 어제밤은 통 자지 않고 동그랗게 꼬부리고앉아 밝혔다니-》
기덕이가 문가에 이르렀을 때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밤새 안잤다니 지금 자고있는것이 아닐가. 전쟁이 일어났다는데 잠은 무슨 잠이야. 장화를 벗은 기덕은 얼굴을 찌프리며 문을 열었다. 쾅하고 울리는 문소리에 방구석의 동그란 보짐에 오도카니 기대여있던 녀인이 화닥닥 놀라며 일어섰다.
기덕은 기억속의 모습과는 판다르게 변한 복심이라는것을 알았으나 시선이 마주칠가 저어하며 뜯어볼념을 못하고 찌프린 눈길로 구들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고무신자리가 동그랗게 반달을 그린 새하얀 버선이 노란 장판바닥에서 옴지락옴지락하였다. 바람벽밑에는 부대로무자 목수아바이의 솜씨가 분명한 네모난 밥상이 놓여있는데 첫물 베천에서 잘라낸 보자기가 씌워져있었다. 그리고 그 우벽에는 언젠가 군인상점에서 본 수예 《소나무와 학》이 걸려있었다.
(흥, 완전히 주저앉아 살림을 하겠다고-)
그러나 그는 의젓한 태도로 첫말을 뗐다.
《수고를 했소. 앉기요. 부모님들은 다 잘 있소?》
《네.》
《으흠!》
기덕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위엄있게 물었다.
《동문 민청에 들었소? 녀맹에 들었소? 물론 민청이겠지.》
복심은 아무 대꾸없이 손으로 보꾸레미를 매만지고있다. 조그마하나 손부리가 여물고 마디진 손이다.
《정말 답답하고 한심하오. 여하튼 동무도 조직에서 매국노 리승만의 전쟁책동에 대하여 들었겠는데 살림을 하겠다고 예까지 온다는게 말이 되오. 이제야 해방이 돼서 5년이나 됐는데 동무도 발전했어야지. 그래 아직도 그 조혼이라는 굴레를 쓰구 나를 따라다녀야 옳소? 생각을 해보오. 나야 일생을 군대에 바쳐야겠는데 어찌 너절히 이따위 살림방에 들어박히겠소. 전쟁이요. 전쟁! 지금 동무때문에 나만이 부대에서 떨어졌소. 모르지, 벌써 부대동무들이 전투에 들어갔는지. 그럼 우리 소대 수십명의 전사들이 지휘관인 내가 없이 어찌한단말이요. 동문 왜 이 송기덕의 발목을 잡아 끄당기오? 그래 아직도 내가 가툴골 로재의 숯검댕이 셋째인줄 아오? 응, 참!…》
기덕은 아예 《동무는 원래 내 대상이 될수가 없소.》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오는것을 간신히 참고 어성을 낮춰 말을 이었다.
《이젠 난 가봐야겠소. 싸움터로 가야지. 내가 가면 다시 만나려니는 생각 마오. 정말 생각을 좀 해보오. 동무도 기억나겠지. 왜정때 순사놈한테, 짝귀 산림간수놈한테 천대를 받던 생각말이요. 우차실이에 잘 안나온다고 새파란 면서기한테 동무 할아버지가 뺨맞던 일을 잊었소. 그런놈들의 세상이 오지 않게 이 기덕이가 목숨을 바칠테란말이요. 목숨을 바쳐… 그놈들의 세상이 오지 않게 싸운단말이요. 응.》
송기덕은 스스로 자기의 말에 감동이 되여 목이 메여올랐다. 그런데 복심이는 분명 자기의 감동과는 다른 설음에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다.
《아니 울긴 왜 우는거요?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될 시국에.》
기덕이가 꽥 소리지르자 복심은 우뜰 놀래였다. 그러며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고는 목이 꽉 잠긴 소리로 말했다.
《안울래요. 가요. 어서… 싸운다니… 가 싸워요.》
《하, 전쟁에 나갈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법이… 허참.》
기덕은 녀자가 앙탈을 쓰는바람에 무춤했다.
밖에서 이 울음을 들으면… 련대장이 이 사실을 알면… 하자 등에 땀줄이 서는것 같았다.
복심은 흑흑 서럽게 소리까지 내여 울었다.
《아니, 왜 울보가 돼서 야단이우. 동지적으로 충고를 줬는데. 난 전선으로 간단말이우.》
송기덕이 당황해 말하자 복심은 그때야 처음으로 얼굴을 들었다. 그 순간 기덕의 시선과 부딪쳤다. 빨갛게 짓무른 오목눈에서는 방울방울 눈물이 괴여흘렀다. 기덕은 얼른 눈길을 돌렸다. 밥상이 눈띄운다.
《저 상에건 내 밥이요?》
복심은 말없이 일어나 상보를 내려놓은 다음 두손으로 기덕이쪽에 밀어놓고 돌아앉는다.
상은 떡 벌어지게 차려졌다. 부대에서는 물론 이 지대에서는 구경도 할수 없는 조차떡까지 오르고 소갈비에다가 술주전자까지 놓여있지 않는가.
《아니, 이 술은 웬거요? 내가 술 먹는거 봤소? 더구나 군대가-》
그 말에 복심은 고개를 더 떨구며 입술을 떨었다.
《이 동리에서들 오늘아침 다들 사오길래… 주인들이 전장터에 나간다고…》
《허-》
기덕은 가슴이 뜨끔해서 재빨리 둘러쳤다.
《이 조이차떡이랑 꼬장떡은 집에서 가져온거겠지?》
《네. 좀 쉰것 같아… 찌긴 쪘는데-》
기덕은 저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수저앞에 마주놓인 또 한가락의 수저를 보며 복심이가 자기를 기다려 아직 아침도 안먹고있음을 알고 차마 혼자 먹을 비위는 없었다.
《아침을 안먹지 않았소?》
《…》
《먹기요.》
기덕은 불시에 복심이가 불쌍하고 또 그를 불쌍히 여기게 되는 자기가 불쌍하였다. 두루 가슴이 아파 술주전자로 자연히 손이 갔다. 술주전자옆에는 노란 놋보시기까지 놓여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기덕은 쿨럭쿨럭 거의 한보시기나 쏟아 단참에 입안으로 들이부었다. 떡에 고기점에 저가락질을 연방 하는데 문밖에서 기척이 나면서 주인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기덕이 문을 열자 낯모를 전사가 미안쩍은 기색으로 경례를 붙였다.
《출발시간이 20분후로 앞당겨졌습니다.》
전사의 말에 기덕은 그대로 저가락을 내려놓았다. 보따리옆에 또하나의 보따리런듯 웅크리고 앉아있던 복심이의 낯이 순간에 해쭉해졌다. 기덕은 입에 들어간 떡쪼각을 꿀꺽 삼키고 우쭐 일어났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대로 훌 나가는가. 무슨 인사말을 더 해야 하는가. 치마로 감싼 무릎에 고개를 묻은채 구들바닥에 굳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하는 복심이, 동그스름한 어깨, 늘 푸시시한것으로만 알았던 머리가 윤기나게 쪽져있고 거무스레하게 늘 터있던 목이 하얗게 빛난다. 복심이 아닌 복심이다. 기덕이는 불시에 가슴이 활랑거렸다. 어깨에로 손이 가고싶다. 그러나 아서라. 이제 쌈터에 나가면 자기가 어찌될지 뉘 알랴. 기왕지사 아프더라도 이렇게 헤여지는것이 서로 좋을것이다. 괜히 정을 줬다가 내가 없어지면…
기덕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 말을 떼였다.
《잘 있소. 집에 가면 우리 부모님께랑도 잘 인사를 전해주오. 난 더 생각지 마오. 내 한몸 생각할 때가 아니요. 다 잊기요. 그리고 날 너무 나쁜놈이라 생각지 마오.》
기덕은 문을 열고 문턱에 걸터앉은채 장화를 신었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손이 자꾸 떨린다. 젠장 끝내 장화를 신고 일어선 그는 《잘 있소.》 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는 돌아보지 않고 걸어나갔다.
그때 《저-》 하는 목소리가 그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복심이가 버선발로 달려왔다. 그는 고개를 외로 튼채 베천에 둘둘 감은것을 내밀었다.
《집에서 보낸… 엿이예요… 차입쌀로 한…》
복심이는 더 말을 못하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기덕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뿌리가 뜨끈해지였다. 집이란 도대체 어느 집인가? 저희 집인가, 우리 집인가. 분명 제가 한것이겠지. 복심이를 끌어안고 다시 방에 들어가 자기를 못난놈이라 꾸짖고 다정한 말을 해주고싶은 충동이 불끈 치밀었다.
허나 송기덕은 《잘 먹겠소.》 하는 말을 남기고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맨버선발로 마당에 서있는 복심의 영상이 눈앞에 꽉 차오르는것을, 그 영상앞에 흐려드는 약한 감정을 물리치려 하며 《조국보위행진곡》을 휘파람으로 불려했으나 아무 소리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돌멩이에 걸려 하마트면 넘어질번하였다.
《에익, 바보같으니-》
송기덕은 침을 퉤 뱉었다. 베보자기만은 더 꼭 끌어안으며, 순간 가슴에 딱딱한것이 만져졌다. 두달분 로임이 주머니에 있다는것을 상기한 기덕은 그 돈을 빼들며 돌따서 달려갔다.
문을 여니 눈물범벅의 복심이가 간신히 얼굴을 쳐들었다.
송기덕은 머쓱해서 돈봉투를 문지방앞에 놓고 허리를 폈다. 얼굴이 검붉게 질려 소리치듯 말했다.
《건강하오. 잘 있소, 잘!》
그리고는 되돌아서 달음박질했다. 시원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말 못할 알찌근한 아픔이 가슴을 저미였다.
(할수 없지. 큰일을 하자면 작은 아픔을 극복해야지.)
기덕은 쌀마대와 천막퉁구리들이 실린 유개방통에 올랐다. 렬차가 긴 고동을 울리고 덜커덩하며 움직일 때 누군가 방통문을 열어제꼈다. 모든 군인들이 문가로 모여들어 수도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대동교철다리를 넘고 대동강역이 뒤에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누구도 말이 없이 서있었다.
《난 처와 아이들을 데리고 사진을 찍었어.》
기덕이보다 늦게 차에 올랐던 뚱뚱한 몸매의 한 군관이 자리에 와앉으며 자기 옆군관에게 귀속말을 하였다.
《어떻게 그런 시간을 내였나?》
《5분도 안걸렸어. 사진사는 모든걸 리해하고 잠옷바람에 나와 찍어주더군…》
《잘했구만.》
《독사진도 하나 더 찍어야 되는걸.》
《욕심두 원…》
《어찌될지 알겠나?》
《쓸데없는 소리.》
《왜 난 죽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조국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것은 영광이란말이야.》
《들떠있군.》
기덕은 천막퉁구리에 와 절반쯤 기대누운채 눈을 꾹 감았다.
《어찌될지 알겠나?》 하는 그 말이 귀바위로 뱅뱅 돌아갔다. 잊으리라던 복심의 생각이 엉겅퀴가시처럼 달라붙었다.
(그런 얼빠진 연설을 할 시간에 나도 사진이나 한장 함께 찍었던들 복심의 마음에도 좋고 집에서도 기뻐했을걸 정말 어찌될지 알겠는가.)
덜컹 덜컹… 레루이음짬을 넘는 소리, 간간히 울리는 고동소리…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길을 간다는 현실적인 감각은 이제껏 떠있던 기덕의 감정과 생각을 차분히 가라앉혔고 무겁고 쓸쓸한 감상에 떠밀어넣었다.
(여하튼 복심이한테 안됐다. 그가 불쌍하구나. 한데 짝귀간수얘기를 한것은 잘했지. 짝귀의 아들녀석따위들이 우리한테 덤벼들겠구나.)
기덕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이발을 으드득 갈았다.
기덕은 짝귀로 하여 어머니를 잃었다. 독립군 《토벌》시에 일본군의 안내병으로 따라다니다 한쪽귀를 잃은 짝귀는 린근수십리의 전답과 산림을 거머쥔 지주이자 산림간수로 흉폭하기 그지없는놈이였다. 해방되기 이태전인 어느날 기덕은 심장병이 도진 어머니를 대신해 재물에 삶은 송기를 씻으려 강에 나갔다가 복심이의 도움을 받았다. 복심이가 함지에 담은 송기를 물에 한창 헤우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짝귀의 아들이 나타나 별의별 소리로 다 놀리였다.
《송기떡, 복심이, 쨈쨈이가 들켰구나. 입맞추다 들켰구나.》
《그런게 아니다.》
기덕은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항변했다.
그러나 그자는 여전히 놀려댔다.
《여, 송기떡, 송기떡으로 복심이를 챘는가? 송기떡값이 괜찮은데.》
기덕은 복심의 얼굴이 빨개지고 눈에 눈물이 핑 도는것을 보며 어떻게 달려나갔는지 모른다. 버들뿌리에 발이 걸려 미처 움직이지 못하는 짝귀의 아들을 머리로 받았다. 넘어진 그자에게서 공기총을 앗아들고 죽어라 하고 내리팼다.
《이새끼야, 송기떡이 어떻단말이냐? 송기떡이 송기떡!》
기덕은 울었다. 치고 또 치다가 공기총을 강물에 훌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저녁 짝귀간수가 기덕의 집으로 나타났다. 앓는 어머니를 불러낸 그놈은 제아들을 구타한 기덕의 《죄》를 렬거하고 송기를 벗긴데 대하여 50원의 벌금을 물어내라고 을러댔다. 사유를 안 어머니는 처음부터 빌었다. 《나리님!》, 《어른님!》, 《주사님!》, 《간수님》하며.
짝귀는 웃지도 성내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듣다가 딱 잘라말했다.
《그건 후에 계산하는셈 치고 우선 오늘은 이집녀석의 버릇부터 고쳐줘야겠소.》
《어르신네 소망대로 하시우다. 얘야, 빌어라.》
파릿하게 질린 어머니의 겁에 찬 얼굴을 보며 기덕은 주춤주춤 짝귀한테 다가섰다. 잠뱅이의 허리끈을 고쳐매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비는 말은 나오지 않고 억울한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이녀석, 네 잘못을 알겠느냐?》
《잘못했습니다.》
《음.》
고개를 끄덕인 짝귀는 늘 짚고다니는 짤막한 박달나무지팽이를 훑어보고 높이 쳐들었다.
《주사님,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어머니의 비명같은 웨침이 터지는 순간 그 쇠같이 무거운 몽둥이가 기덕의 어깨로 날아들었다. 기덕은 《악!》소리를 치면서도 그대로 엎뎌있었다. 얼굴을 흙바닥에 꽉 대이고.
찌근! 찌근!
매를 세였다. 그 한대 한대를 벌금대신으로 생각하며 참았다.
자기를 실컷 때리고나면 짝귀의 한이 풀릴것이고 그러면 모든 《죄》가 용서되여 벌금을 안받을것이 아닌가.
《에구, 주사님!》
《이녘은 가만있소.》
《제발 용서!》
쿵 하는 소리에 기덕은 고개를 들었다. 짝귀간수는 기덕의 피터진 어깨를 보고 다가드는 어머니를 그 박달지팽이끝으로 밀쳤다. 대돌에 넘어진 어머니는 얼굴이 하얘지면서 《용서를…》 하는 말을 뇌이다가 쓰러졌다.
《어머니!》
기덕은 성난 고양이처럼 일떠나 짝귀의 팔목을 잡고 이발로 손등을 물어뜯었다. 어머니의 실신에 당황한 짝귀는 기덕이를 발로 차버리고 황황히 달아났다. 어머니는 보름도 못되여 세상을 떠나고…
(아, 그 원쑤를…)
기덕은 그때의 몸부림이 되살아나 벌떠덕 일어나 앉았다. 담배를 꺼냈으나 손이 후들거려 불을 붙일수 없었다.
기덕은 그 피맺힌 상처를 건드린것으로 하여 3년전에 군인의 체모에 손실을 줄 일을 저지를번했다.
오침을 하기 위해 대렬점명을 하고 병실로 들어갈 때 아직은 초면과 다를바없는 동무들 여럿이 그 별명을 불렀다.
《송기떡?!…》
《송기떡이란 소나무껍질로 만든 떡이지.》
아, 그때 그들이 짝귀의 아들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처지의 동무들이며 한갖 롱말로 친근히 부른다는것을 잊었던가.
《뭐야, 이 쌍, 어디서 이따위들이야!》
날씨가 더운탓이였던가. 신경이 너무 예민했다. 분명 주먹을 쳐들었다. 다행히 반장(분대장)인 림운학이 뛰여들어 말려 때리지는 않았으나 규률위반건으로 처벌훈련을 받게 되였다. 속에서 치받치는 분함과 슬픔을 눈물로 쏟으며 무거운 보총을 꼬나들고 운동장을 돌게 되였다.
《뭣때메 동무들의 롱담에 그처럼 성내오?》
그의 처벌훈련을 지켜보게 된 림운학이 안타까이 물었을 때 기덕은 입을 악문채 대답하지 않았다.
운학은 혼자서 운동장을 한바퀴 두바퀴 돌아가는 기덕이가 보기 딱했던지 자기 역시 총을 꼬나잡고 그의 뒤를 동무삼아 따라 주었다. 기덕은 그것이 눈물나게 고마왔다.
운동장을 네바퀴째 돌고나니 맥이 빠지고 총대가 후들거렸다. 어데다 터뜨려야 할지 모를 분노와 슬픔이 마구 치밀어오르며 눈물이 괴여올랐다.
《앞으로… 그런 성격은 죽이라구.》
운학이 헐떡이며 속삭일 때 기덕은 통분한 눈물과 함께 내쏘았다.
《〈송기떡〉이 나의 어머니를 죽였단말이야.》
그때 훈련소 마당으로 한대의 승용차가 들이닥쳤다. 그 차에서는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리셨다.
기덕은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처벌훈련을 하고있다는 보고에 몹시 언짢은 빛이시였다. 림운학이 사유를 말씀드리고 기덕이 눈물을 덤벙덤벙 쏟으며 원한 맺힌 과거를 하소연하듯 말씀드렸을 때 장군님의 안색은 흐려지셨다. 기덕은 자기의 철부지같은 행동때문에 장군님께서 노하셨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간신히 말씀드렸다.
《장군님, 잘못했습니다. 다신 동무들에게… 그러지… 않겠습니다. 군대에서 내보내지만 말아주십시오.》
《누가 동무를 내보낸다고 했소?》
장군님의 음성에는 노여움과 안타까움이 스며있었다. 기덕은 뭔가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눈물이 쏟아지고 말이 나가지 않았다. 숨가쁜 침묵을 이기지 못해 기덕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그는 깜짝 놀랐다. 장군님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있는것이였다.
《난 동무가 훌륭한 군인이 되리라는걸 믿소. 다시는 그런 과거가 오지 않게 군사복무를 잘하오.》
장군님께서는 더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였다. 기덕은 흐느낌을 터치며 그이의 품에 와락 얼굴을 묻었다.
《장군님!》
감격의 절정에 서서 다진 그때의 맹세가 지금 기덕의 뇌리에 불꽃처럼 살아 명멸하며 가슴을 그들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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