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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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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268회 작성일 20-05-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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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시간을 너무 침해한것 같은데 이젠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허가이는 쥐여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듯 한 손수건으로 또 한번 이마를 문지르고나서 김일성동지를 쳐다보았다.

허가이는 오늘 오전 도꾜와 서울방송으로 공개된 《유엔군》대변인의 성명발표를 듣고 그이를 찾아온것이다.

《유엔군》대변인의 성명발표는 그만 아니라 내각과 외무성의 적잖은 일군들에게까지 커다란 반응을 일으켰다.

현실을 오도하여 북조선군의 계속되는 《공격작전》과 정전담판에 대한 불성실한 태로로부터 부득이 군사적인 강경책을 취하지 않을수 없다는 위협으로 일관된 그 성명에 대해서는 평양주재 여러 나라 대표부들에서도 심중한 우려를 표시해왔다.

허가이는 비록 자기 채로 치긴 하였지만 결국 그들의 불안을 고스란히 되옮겨놓는것이였다.

《저의 소견으로 볼 때 지금이야말로 최대의 위기, 불안의 씨뚜아찌야가 조성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후퇴시기보다 더한 위험이 드리웠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적들의 성명과 그에 따른 서방측의 움직임으로 봐서 배가의 무력증파를 예견하지 않을수 없는것이고 이렇게 볼 때 우리측의 작전전술적, 정신도덕적우월성으로 유지되던 전선의 균형이 조만간 깨여지지 않겠는가, 이것은 쏘련측 군사무관의 말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저는 현 상황에서 대역전을 위한 특별한 방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방책을 념두에 두고있습니까?》

허가이는 그이의 진중한 안색에 망설이는 빛을 보이다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이렇게 운을 떼고 난 허가이는 그이의 표정을 또 한번 슬쩍 보고는 굳어진 소리로 입을 열었다.

《쓰딸린동지에게 쏘련군참전을 요청하자는것입니다. 이것은 쏘련측의 립장에서도 필요불가결한 일로 될것입니다. 만약 지금까지와 같이 미군과 동맹국군의 무력증파에 계속 수수방관하는 자세에 서있다면 쏘련측은 자기들의 연해주국경에 벗이 아니라 적을 두게 되는것으로 하여 국가방위에 치명적위협을 안게 되고 나아가서는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와 세계의 사회주의화위업을 외면하였다는 수치를 받아안게 될것입니다.》

《동무의 생각엔 쏘련군의 참전이 없다면 우리가… 두만강쪽으로 다시 밀려갈것이라고 생각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커다란 인내성과 그이 고유의 의지력으로 분격을 누르시였다.

《저… 그건… 중과부적인 상태에서의 최악의 경우를 념두에 둔 생각이였습니다.》

《허동무, 중과부적이건 뭐건 그런… 최악의 경우란 있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기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런 요청을 하지 않을것입니다. 지금 그들로서는 할수 있는껏 성의를 아끼지 않고있습니다. 그래 동문 남을 돕는다 할 때 단벌옷까지 다 벗어줄수 있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름할수 없는 서글픔을 느끼셨다. 허가이, 믿음을 앞세워 품어안은 일군이지만 이 순간 그에 대한 실망을 참기 어려우셨다.

(어쩔수 없는 일이다.

청소한 나라, 청소한 당에서 완벽한 일군은 절로 생겨나는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로서 마감을 지읍시다.》

그이께서는 어두운 얼굴로 일어서려는 허가이를 묵묵히 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리고 내가 오늘 동무에게 꼭 부탁하고싶은것은 남의 손, 남의 힘에 의거하는것은 그 나라 인민과 민족의 존엄을 허물어버리는 자멸행위라는것입니다.》

부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말씀을 끊으시였다.

최용건과 로병관이 왔다는 부관의 말에 허가이는 그만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측은해보이시였다.

《이왕지사 왔던 길이니 의논할 문제가 있으면 죄다 말하시오.》

《저… 바쁘시겠는데 후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내가 한가지 물읍시다. 지금 당내 <정간화>문제처리는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구체적인 이야기는 피하려는 기색이였다.

《당내정간화》란 허가이의 창발성에서 나온 당대렬의 재정리사업이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기해 자기 정체를 드러낸 불순이색분자들을 적발제거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 이 사업은 자못 중요한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로부터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당중앙위원회 3차전원회의에서 당대렬의 사상의지적통일과 순결성을 보장하는것을 주요방침으로 제시하시였다. 그런데 이사업을 직접 맡아보게 된 허가이는 《당내정간화》라는 간판밑에 수많은 당원들을 마구 출당시키는 자의적인 《청당》사업을 벌렸다. 후퇴시기에 미처 피신하지 못했거나 부득이한 상태에서 당증을 매몰한 사람들도 그 비자루질에서 제외될수 없었다. 입당의 문은 거의나 막아버렸다.

《100%짜리의 프로레타리아선진투사》가 되기 전에는 받을수 없다는 원칙밑에 사돈에 팔촌까지 따지며 당장성사업에 제동을 걸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이즈음 거의 매일이다싶이 그 희생자들의 아픔을 듣게 되시였다. 오늘 아침에 있은 군수공장지배인들과의 통화에서도 그런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한 지배인은 허가이가 참가한 회의에서 수많은 기능공당원들이 출당해임되여 생산에까지 그 영향이 미쳐온다고 했다. 출당원인은 후퇴시기 그들이 운반해간 기계부속품의 일부가 분실되고 녹이 쓸었다는때문이였다.

그이께서는 집무탁서랍에서 출당당한 군수공장 기능공당원들의 명단과 함께 보풀이 일대로 인 봉투편지 한장을 꺼내드시였다.

《이 열여섯명의 당원명단은.》 하고 그이께서는 명단에 적힌 이름들을 가리키며 군수공장지배인의 청원에 대해서 말씀하시였다. 지배인은 복당을 요구하지만 자신께서는 회의결정을 취소하고 원래대로 당생활을 하게 할것을 바란다고 하시였다.

허가이는 그이의 말씀뜻을 채 가늠하지 못한듯 눈만 뜨부럭거렸다.

그이께서는 허가이를 진심으로 납득시킨다는것이 어려우리라는것을 다시금 느끼시였다.

《내 알기엔 동문 그 공장에 갔을 때 월권행위를 하였습니다. 당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출당을 호령했으니까. 그러니 나도 이번에 한번 월권을 합시다. 당중앙위원회 위원장의 권한으로 그들 전부에게 당원증을 그대로 돌려주자는것입니다.》

허가이는 낯색이 하얗게 변한채 입술만 움죽거렸다. 그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말을 떼였다.

《저로선 잘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중앙집권적인 당규률로 볼 때 반대할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소.》

그이께서는 봉투의 수신인 주소마저 잘 알리지 않는 편지를 물끄러미 보다가 당원명단과 함께 허가이에게 주시였다.

《이 편지는 강원도당을 걸쳐 나한테 올라온것입니다. 편지를 보면 알겠지만 그 편지를 쓴 동무도 후퇴때문에 당대렬에서 제명당하였다고 합니다. 리유란 적들에게 잡혀 끌려다닌것과 당원재등록사업에 루락된것입니다.

편지는 강원도당에 보낸것이지만 도당에서도 결심하기 어려워 나한테 보낸것입니다. 요즘 내가 바쁘다보니 그에 대해 더 알아보지 못하고있는데 동무생각엔 어떻습니까. 지난 기간 내려보낸 지시문에 본인의 참가없이도 조직문제를 취급하게 하였습니까?》

《네, 우리 나라에서야 제아무리 먼 곳에 가있다 하더라도 보름안이면 올수 있으니만치 그 기간에 재등록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찌 믿을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 동무가 적들에게 끌려다닌것도 편지를 보면 그럴수밖에 없는 연고가 있고… 또 군대에 있다나니 등록사업에 루락된것이지요. 그래서 본인은 자기가 소속한 당조직에도 인차 편지를 띄웠다는데… 일은 그렇게 처리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더구나 본인도 참석하지 않는 회의에서 출당이다, 책벌이다 하는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하여튼 그 편지를 보시오. 나는 그 편지에서 깨끗한 인간의 눈물과 아픔을 보았습니다.》

《그러시다면 김일성동지의 지시에 따라 복당시키게끔 지시를 떨구겠습니다.》

허가이의 눈빛은 공허할만치 무표정하였다.

(그래, 이 사람은 돌아서기가 무척 힘들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속 비분과 아픔을 지그시 누르시며 말씀을 떼시였다.

《그래선 안됩니다. 문제는 그 하나에만 국한되는것이 아니고 그곳 당조직과 당원들이 어떻게 리해하고 처리하는가 하는것입니다.

이 경우 본인도 내려먹이는 식의 복당에 대해선 별로 달가와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모두의 가슴속에 의혹도 불만도 없게끔 정확히 해명하고 처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허가이를 바래워 문밖에까지 나가셨다.

최용건과 주요하게는 전선에서 온 로병관때문이기도 하였다.

문에서 두세걸음 떨어진 곳에 서있던 최용건은 중절모를 붙안고 나오는 허가이를 못마땅한듯 쏴보고는 김일성동지께 차렷자세를 했고 최용건의 몸집에 가려 굳어진 상태로 있던 로병관은 그이께서 《아, 이거 정말 오래간만이요.》라고 하시자 그 말씀이 최용건에게 아니라 자기에게 한것이 너무나 황송스러워 다급히 거수경례를 붙이는데 격한 감동이 휘몰아치는 눈빛과는 달리 얼굴은 무척 창백해보였다.

좀전에 전화로 하던 최용건의 말이 언뜻 스쳐지나갔다. 김웅의 보고서를 놓고 무슨 병증이 또 생긴것 같다고 한 끝에 보고서를 로병관한테 줘보낸것도 다 무슨 쪼간이 있는것 같다고 했다.

대우산전투가 있은 뒤부터 김웅과 로병관은 같은 동우리의 짝패라는 말까지 나돌고있다.

《그동안 더 젊어진것 같구만.》

로병관의 손을 꽉 잡아주시며 얼굴로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여겨보시였다. 앞코숭이가 하얗게 다스려진 장화, 호아맨 자리가 뚜렷한 군복의 여기저기엔 풀물이 배여있었고 불에 그슬린 자욱도 보였다. 로병관이 최현과 함께 탄우속을 휘돌아쳤다는 사실이 새로운 의미에서 가슴을 울렸다.

그냥 손을 잡으신채 집무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히시였다.

《965고지에 나갔댔다지요?》

《네.》

벌떠덕 일어서는 로병관의 눈에는 대번에 물기가 고였다.

《앉소. 앉으라니까.》

그이께서는 무엇때문인지 가슴이 저릿해지시였다. 로병관에게 장령칭호를 주실 때 《군복무년한도 짧고 학생물림인데.》 하던 말들을 단호히 일축하셨던 일이 떠오르셨다.

《보고서》를 보시게 되자부터 그 모든 생각을 잊게 되셨다.

두번 읽으시였다.

《장군님!》

그이의 표정을 살피던 최용건이 입을 열었다.

《그 보고서는 전선사령관동무의 개인적견해같습니다. 로병관동무와는 토론도 없었고 이 동무는 보고서를 여기 와서야 봤습니다.》

《여기 와서야 봤다?!》

그이께서는 몹시 놀라시였다. 로병관의 움질린 기색을 보고 우선우선한 태도로 말씀하시였다.

《그럼 로동무의 말부터 들어봅시다.

우리도 그렇지만 전선사령관동무 역시 동무만큼이야 전선형편에 대해서 잘 알수 없지 않겠습니까. 설사 같은 사실과 현상이라 해도 보는 사람의 견해에 따라 서로 다를수도 있고… 어떻습니까?》

《네.》

로병관은 가슴이 후두두해 일어섰다. 김웅이 보여주던 송우인의 사진이 언뜻 눈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장군님, 우리 전사들은 어떤 역경속에서도 견뎌냅니다.》

《로동무, 장군님께서는 구체적인 사실과 분석을 요구하고계시오.》

최용건의 웅글진 말에 로병관은 길게 숨을 들이그었다.

《장군님, 기탄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로서 제일 걸렸다고 생각한 점은 2군단방어전연에 투입하기로 되였던 포무기들과 보충력량이 계획대로 배비되지 못한것입니다.

이로부터 여기저기 뛰여다니는 현상도 생기고 진지굴설에도 력량을 집중시킬수 없는 형편이였습니다. 이제 곧 6군단이 도착하는 조건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된데는 병기수송사업에 대한 조직과 집행에서 전투성이 결여된것과 주요하게는 2방어계선강화를 위해 적지 않은 포병력량을 뒤에 두고있기때문입니다.》

로병관은 965고지로부터 전선사령부에 이를 때까지 보고 들은 사실들과 2방어계선에 옮겨간 포의 종류와 수자까지 상세히 말씀드렸다. 도중에 최용건이 《2방어계선이 무언가》고 물었을뿐 김일성동지께서는 내처 침묵하고계셨다.

로병관은 그이의 침묵뒤에 어떤 폭풍이 깃들어있는가를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다. 온몸이 화락하니 젖어들고 심장이 잦은 방아를 쳤다. 김웅의 《2방어계선》이 그의 자작연출이라는것을 최용건의 말을 들어 알게 되자 여러가지 생각이 칡넝쿨처럼 뻗어올랐다.

최용건의 의자가 삐걱거렸다.

《장군님, 전선사령부에 대한 검열을 조직했으면 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잉걸불이 타오르고있었다.

(그래 필요한것이야.)

로병관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온몸은 땅속에 잦아드는듯 했다. 최용건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 2방어계선에 대해서는…》

《2방어계선은 없습니다. 그들과는 좀전에 전화로 만났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무서운 압박감이 가슴을 짓눌렀던것이다. 허가이가 한시간 채 안되는 동안에 전쟁 1년동안에 쌓이고 덧친 상처를 되살리게 했다면 김웅의 보고서와 그가 취한 조치들은 전반작전에 제동을 거는것이나 다름없다는것으로 그이를 격분케 했다.

김웅과의 전화시에도 어렴풋이 감촉은 하셨다.

김웅은 현재의 방어전이 고되다는것만 강조했다. 그 사실자체를 부정할순 없으셨다.

어렵다. 불도가니로 된 고지들에서 적을 막아낸다는것도, 항공대와 포병대의 막강한 화력권속에서 무기탄약을 제때에 보장한다는것도 어렵다는, 그것도 무척 어렵다는것을 인정하셨다. 그의 《2방어계선》에 대해서도 철회시키기는 하셨지만 리해되는 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껏 하나의 자막대기같은 도식, 같은 관념속에서 분석하고 처리하는데 대해서는 용납할수 없으셨다.

무엇때문에 남을 걸고드는가. 무엇때문에 자기의 본심을 타방의 《의견》들로 은페시키는가.

이 순간 그이께서는 김웅을 전선사령관으로 임명하실 때의 일이 생각되셨다.

머리가 명석하고, 판단이 빠르고 정규교육에 의한 풍부한 지식과 일단 결심하면 칼날우에라도 올라서는 강직성… 이것을 장점으로 보셨다.

풍부한 군사지식속에 얼치기리론과 상식이 곁들긴 했지만 그것은 시간의 흐름속에 교정될것이라고 보셨다. 독선적이고 야심이 강하다는데 대해서도 역시 너그럽게 리해해주셨다. 남의 나라 땅에서 남들과 어울리다나니 그런 습벽도 생겨나게 된것이 아니겠는가.

자신께서 혁명의 첫걸음을 떼실 때부터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 역시 처음에는 크나작으나 허물과 같은 약점들을 가지고있었지만 결국 바른길을 걸었다는것까지 생각하셨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한생은 동지복도 크지만 《동지》들의 일로 하여 괴로움이 크셨다는 생각으로 허구픈 웃음을 머금게 되시였다.

그이께서는 최용건의 침중한 눈길을 일별하시며 말씀을 떼시였다.

《오늘부터 전선사령부는 2군단에 대한 지휘권을 내놓는것으로 합시다. 전선사령부는 2군단에 대해 오직 무기, 탄약, 식량, 피복보장과 정황통보의 임무만을 지니게 될것입니다.

상동무, 의견이 없습니까?》

그이의 시선은 최용건에게 멎으시였다. 최용건은 불안한 기색이였다.

《장군님, 그러심 2군단은 최현동무가 전적으로.》

《아닙니다. 2군단의 작전전투행동에 대한 지휘는 내가 직접 맡겠습니다.》

로병관은 뢰성을 접한듯 하였다.

《로동문 다른 할 말이 없습니까?》

그이의 물으심에 로병관은 고개를 들었다.

《장군님, 전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허허, 처벌이란 말이지요?! …하긴 전선사령부일군으로서는 처벌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요. 그러나 난 동무가 그냥 2군단에 있을것을 바랍니다. 군단내 지휘관들과 서로 배우며 돕기도 하고… 또 동무가 스스로 걸머진 무기, 탄약에 대한 보급문제도 통찰해보고 … 일은 많습니다.》

로병관은 목이 꽉 메여올라 고개를 외로 비틀었다.

《전투는 이제부터라고 할수 있습니다. 최현동무는 또다시 전방고지에 나갔다고 하는데… 그가 나가는것도 오늘까지라고 봅시다.》

그이께서는 지도앞에 마주 서시였다가 돌아서시였다.

《전투가 이제부터라고 하지만 놈들이 떠벌이는 대공세라는 놀음도 극상해야 이제 한주일 이상은 더 걸리지 않을것입니다. 초보적인 정찰자료들에도 그렇고 우리의 추산에도 적들의 물량은 밑창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놈들은 근 반년가까이 날라쌓은 포탄과 탄약을 죄다 쏟아부으며 덤벼친셈인데 놈들의 으름장도 결국엔 막바지에 다달았기에 한번 더 기운을 뽑아보는 만용에 불과한것입니다. 그러나… 여하튼 간고합니다. 이제 며칠, 닷새일지 더 길어 열흘일지 이 기간에 1211고지의 운명이 결정되게 되는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집무탁에 와서시였다. 그이의 눈길이 로병관에게 와닿았다.

《동무가 여기에 온만치 다시 한번 더 강조합시다. 이번 1211고지방위전이 어떤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방위전은 군사예술면에서나 정치사상적면에서 볼 때 우리 식을 확립하는 과정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이러한 산악방어전은 현대전에서 볼 때 우리가 처음하는 방식이라는데 있습니다.

물론 처음한다! 또 우리 식으로 한다! 이것자체에 기본목적과 명분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그에 대해서 강조하는가. 군사에서 우리 식이란 자기 인민, 자기 군대에 대한 믿음, 자기 땅, 자기 나라에 대한 깊은 애정과 파악에서 출발한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일군들속에는 사대주의, 교조주의병에 걸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들의것이라 해도 좋은것은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통채로 받아들이려다간 잘못됩니다. 그건 한마디로 뱁새가 황새흉내를 내면 다리가 찢어지고 황새가 뱁새흉내를 내면 절름발이가 되는것과 같은 리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병에 걸린 사람들은 례외없이 자기자신은 물론 자기 인민에 대한 애착과 믿음이 부족하다는것입니다.

때문에 내가 말하는 우리 식, 우리 식 전법이란 자기를 믿고 자기 인민을 믿고 자기 군대를 믿고 사랑하라! 라는 호소이기도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고서에 눈길을 주셨다가 계속하시였다.

《지금 김웅동무가 <운동전>에 대한 미련을 채 버리지 못하고있는것도 크나 작으나 그런 사대적인 사상과도 관계됩니다. 물론 그로서 볼 때 현재의 진지방어가 어렵기때문인것도 사실입니다. 난관에 대한 그의 분석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난관만을 확대해보고있지 우리 전사들의 심장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있는것이고 중국식이요 뭐요 하는데만 집착한 나머지 우리 식 방어전의 필요성과 승산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적게 연구했습니다.

현재 놈들이 벌리고있는 초토화전술은 바로 그렇게 승산을 잃고 동요하고 물러서기를 바란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놈들로서 볼 때 지금의 초토화작전은 오만한 사냥군이 꿩이나 노루를 튕기기 위해 북을 때리고 방울을 울리고 사냥개로 덤불을 뒤지는것과 같은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인내성을 잃고 뛰쳐나가면 그 대상물은 사냥군의 총구속에 듭니다. 바로 <기동전>은 방울소리에 놀란 꿩이 어서 날 잡아라하고 수풀에서 날아오르는것과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것인가.》

김일성동지의 음성이 커지셨다.

《그건 한마디로 우리의 땅을 믿고 깊이 파고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파고 또 파고… 나는 이 방법의 전투를 놓고 갱도전이라는 말을 붙이려고 합니다.

로동무, 너럭바위밑의 심층 두께가 얼마쯤 된다고 했던가요.》

《6m가량 됩니다.》

《그래 6m지요. 6m의 땅과 암석이 반t짜리 폭탄에도 203㎜포탄에도 견뎌냈습니다. 나의 생각은 그보다 더 깊이 파자는것입니다. 처음에는 매 병사의 점호를, 다음에는 호상 굴을 련결시켜 중대, 소대가 1년, 2년이상 견딜수 있는 지하요새처로 만들자는것입니다.》

손세까지 써가시며 말씀하시던 그이께서는 서가우에서 두루말이로 된 종이장을 내리워 앞상우에 펼치셨다.

《이것은 그동안 생각해보며 그려본 단면도입니다.》

무수한 기하학적곡선과 점선들이 뒤엉켜 첫눈에도 도저히 알수 없었다.

《이건 공병국동무들과 토론해 만든건데 앞으로 연구를 더 심화시키려고 합니다. 시험갱도도 만들게 하고… 최현동무한테는 이미 과업을 줬습니다.》

《장군님, 그 도면을 주실수 없겠습니까?》

로병관은 어려움도 잊었다.

《왜? 황영학동무의 고문노릇을 하자고 그러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기뻐하시는 기색이였다. 로병관은 얼굴이 붉어졌다.

《저… 그 동무가 굴간때문에 몹시 상심해있습니다. 장군님뜻대로 못한다고-》

《처음 하는 일이니 그럴수도 있지. 그래도 그 굴이 있어 놈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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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처음 하는 일이니 그럴수도 있지. 그래도 그 굴이 있어 놈들을 멋지게 때려치우지 않았소. 혹시 그가… 동무가 이리로 오는걸 알고있지 않습니까?》

《그건 모릅니다. 한데 그 동무가 저한테 한가지 부탁을 한것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인데-》

《말씀드리기 별스럽습니다만 그 동무도 그렇고 그곳에 있던 전사들은 고지를… 잃었댔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지는 그냥 견지한것으로…》

《무슨 소린지 알겠소. 그다음엔 또 뭐가 있소?》

《황영학동문… 굴간에 있던 전사들에게 뭔가 수훈내신을… 말했습니다.》

《장군님께서 이미 그곳 탈환자들에게 축하전문을 보내주시였소.》

최용건이 벙글써 웃으며 하는 말에 로병관은 당황한 기색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그이의 눈길에는 다함없는 애정과 아픔어린 빛이 깃들어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이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감사를 보내주고싶은데 로동무생각엔 어떻소?》

로병관은 가슴이 울컥해졌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고맙기까지야. 전사들은 훈장을 달아보는것이 더 좋을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마음의 인사를 전하고싶어 그러오.》

그이께서는 숙연한 낯빛으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난 지금 그곳 동무들을 죄다 만나봤으면 하는 심정이요. 그들이 굴속에서 잘못되였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속이 한줌만 해져있었소.… 다들 영웅들이지.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이걸 보오.》

그이께서는 모조지로 된 갱도도면을 펼치시였다.

로병관은 숨이 가빠올랐다.

《이걸 정말 주시려고 합니까.》

《허, 1211고지에서 달라는데 안줄수 있소. 한데 아직은 완성된것이라고는 할수 없소. 내가 생각하는 갱도란 단순히 공습이나 폭격을 피하기 위한것만이 아니라 적과 싸우는 전투거점으로 하자는것이요. 황영학이네가 굴간에 있다가 적을 족치듯이.

이제 전투를 하면서 그런 진지를 만든다는것이 간단치 않을것이요. 그러나 해야지요.

동문 이제 몇시쯤 떠나려고 합니까?》

《장군님께서 허락하시면 즉시 떠나겠습니다.》

《그럼, 어두워진 다음 떠나시오.》

그러시고는 로병관을 유심히 보시다가 전선사령부에 대한 검열에 대해 의견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로병관이 긴장된 기색으로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최용건에게 6군단이 현재 어느 지점까지 왔는가고 하시였다.

최용건이 이틀후엔 지휘부를 포함한 선두부대가 회양까지 도착하게 됨을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누구에게라없이 말씀하시였다.

《상동무가 그리로 가는것은 단순히 검열사업만이 아니라 6군단의 력량을 2군단에 배속시키는것과 관련된 간부대렬사업과 지휘체계보장과 관련된 문제때문입니다.》

그이께서는 동의를 구하듯 최용건을 보시며 래일쯤엔 떠나야 할것 같다고 하시고는 뜻밖의 말씀을 하시였다.

《보위상동무, 이 동무한테 줄 무슨 선물이 없을가요?》

《장군님, 무슨 선물이 더 있겠습니까? 갱도를 주셨는데.》

《그거야 일감이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다가 계속하시였다.

《내 생각엔 로동무한테 군복을 하나 새로 입혀보냈으면 합니다. 최고사령부에 왔다가는 사람이 신수가 훤해야 우리도 면목이 설것이 아닙니까.》

그이께서는 깜짝 놀라는 로병관을 즐기듯 보시다가 최용건에게 재차 말씀하시였다.

《한데 그 옷문제는 상동무가 해결해줬으면 합니다. 난 후방총국에 그런 빚을 많이 져나서 이번엔 상동무의 방조를 받아야 할것 같습니다.》

로병관은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이께서 선물이라고 하실 때까지만도 2군단에 필요한 그 어떤 무기나 장비기재라고 점쳐보았던 그였다.

《영숙동무는 못만나봤겠지요?》

로병관은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최용건이 싱긋이 웃는것을 보고 사실임을 알아차렸다.

《장군님! 전 일없습니다.》

로병관의 얼굴이 삽시에 벌겋게 달아오르는것을 보신 그이께서는 웃음을 지으시며 정색하시였다.

《영숙동문 오빠때문에 더욱 걱정하는것 같은데 가기 전에 꼭 만나주오. 떠나기전에 다시 만납시다.》

로병관은 저녁 8시 10분에 건지리를 떠났다. 그의 안전한 귀대를 바라듯 하늘은 칠흑처럼 흐리고 비까지 내렸다. 그의 차에는 김일성동지께서 마련해주신 정대가 한가득 쌓여있었고 품속에는 최현에게 보내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서가 있었다. 정대는 뽀베지트가 붙어있는것으로서 전시환경에서는 무척 귀한것이였다.

《이 정대는 내 마음의 상징적증표라고 알려주시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하루사이에 수백날 맞잡이의 고뇌와 환희를 체험한 로병관은 기세좋게 쏟아지는 비발을 엄숙히 바라보며 전쟁에 대해, 사랑에 대해 시인다운 묵상에 잠겨 고산까지 갔다.

그와 황영숙의 상봉은 시원치 못하였다.

이미전에 받은 편지를 통해서도 짐작한것이였지만 영숙이가 대우산전투는 물론 황영학의 《재판때》 말 한마디 못하고있은데 대해서까지 죄다 알고있다는것을 알고 말도 행동도 죄다 얼어붙고말았던것이다.

그는 다른 때라면 영숙이와의 서먹한 상봉과 리별을 두고 퍼그나 속을 썼을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김일성동지로부터 받아안은 감격이 너무나 컸던것이다.

(거대한 두뇌, 거대한 심장!)

그는 력사상의 위인들과 명장들의 행적을 더듬으며 일찌기 김책이 백두산은 나라의 머리요, 장군님은 그 머리우에 빛나는 태양이시라고 하던 말을 엄숙하게 뇌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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