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푸른산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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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거리며 굴러가는 달구지들과 두엄무지를 파헤치는 돼지들이 부산스레 오가는 비좁은 소로길로 달리던 차는 수수깽이로 울타리를 두른 집앞에서 멎어섰다.
《여기예요.》
운전사의 옆에 앉아있던 녀인이 말아든 양산을 들고 차에서 내리자 최현은 동기와를 입힌 집의 처마로부터 검붉은 바람벽까지 세심히 훑어보고는 어둑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총총히 걸음을 옮기던 녀인이 《여보!》하고 부르는 소리에 방안에서 벽력같은 웨침이 울려나왔다.
《왔소?》
《오셨어요.》
《으-음!》
신음같은 그 소리에 최현은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는 이가 쏘는듯 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토방마루에 걸터앉은 그가 장화를 뽑느라 끙끙거릴 때 집안에 들어갔던 녀인이 맨발바람으로 달려나와 그의 다른쪽 장화를 뽑아주었다.
《허, 이럼 스나(남편)가 좋아하겠소?》
최현은 걸걸한 소리로 한마디하고는 침침한 방안으로 주저없이 들어갔다.
창호지를 바른 뙤창밑 침대에서 까뭇한 얼굴의 사나이가 두손을 벋디디며 몸을 일으키고있었다.
최현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그를 지켜보다가 재빠른 동작으로 그 사나이를 도로 눕히고 녀인이 가져다주는 안락의자에 펑덩하고 주저앉았다.
《이렇게 대령했소다.》
최현의 말에 침대우의 사나이는 입술을 푸들푸들 떨다가 힘줄이 앙상히 드러난 손을 힘없이 내밀었다.
《최현동무, 고맙소. 난 오지 않을줄 알았지.》
《맞았소, 나도 올 생각은 없었소.》
최현은 입술을 꽉 악문채 눈빛을 흐리였다.
왕년의 호랑이로 소문났던 무정(본명 김병희)은 지금 생명의 마지막시각을 톺아가고있는것이다.
최현은 일이 이렇게 될줄은 몰랐다.
집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무정은 마당을 거닐 정도의 회복상태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 수십리길을 걸어 그의 집을 찾아 온 무정의 처로부터 그 《회복》이 림종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일시적《호전》, 생명의 마지막반짝임임을 알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무고하시오?》
무정은 한참이나 지나서야 말을 떼였다.
《무고하지비.》
두사람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난듯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와 무정은 다같이 10대나이에 륙혈포를 차고 항일전에 나선 사람들로서 왜놈들을 족친 수자에 있어서나 성격상 무서움을 모르고 강직하다는데서는 서로가 다 어금지금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걸어온 길이 서로 달랐듯이 두사람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고 이번 전쟁은 두 군사가의 능력과 자질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되여 완전히 다른 두개의 개성임을 확증해주었다.
일찌기 황포군관학교를 마친 무정은 중국 팔로군의 포병지휘원으로 되여 2만 5천리장정을 비롯한 온갖 전역들에서 커다란 공로를 세운 사람이였다. 조국해방과 더불어 모국에 돌아 온 무정은 김일성동지께 남은 반생을 조선혁명에 바칠것을 결의다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이러한 결심과 오랜 지휘관으로서의 경험과 자질을 중시하시여 인민군 고위지휘관으로 임명하시였다. 그러나 무정은 김일성동지의 신임과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였다.
조국해방전쟁 발발과 함께 군집단을 맡게 된 그는 작전초기부터 적잖게 실책을 범했다. 종래의 경험에만 매달려있던 그는 뒤늦게나마 조선땅에서는, 더구나 현대적기술장비와 막강한 화력기재를 가진 미군과의 싸움에서는 그 모든 경험이 맞지 않는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깨달음은 좋았으나 장군님식전법을 완전히 익히기에는 너무나도 때가 늦었다. 이로부터 그는 신심을 잃었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때는 엄혹한 시련이 다가오자 《패군엄장》(패한 군사에는 엄한 지휘관이 되여야 한다는 뜻)의 기치를 들고 기계적명령과 엄한 책벌로써만 군기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이로 하여 그는 마왕과 같은 무서운 존재로 되였으나 지휘관들과 병사들의 전투사기를 극도로 저락시켰고 결국에는 수도방어임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최고사령부의 작전방침관철에 커다란 지장을 주었다.
후퇴의 길에서는 타당한 리유도 없이 마구잡이 처벌바람을 일으켰다.
강계에서 열린 군정간부회의참가자들은 그를 군벌주의자로 락인찍고 해임철직과 함께 군사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들고일어났다. 황포군관학교시절에 그의 선배였던 최용건까지 그 제기를 막지 못하였다.
지휘관들한테는 범같은 군벌주의자였으나 전사들에게는 자기의 속옷마저 벗어주던 무정, 돌격시에는 전사들속에 뛰여들어 창격전에까지 나서고 퇴각시에는 방차대로 마지막탄알까지 쏘고야 물러서던 무서움 모르는 싸움군, 그의 이런 장점을 아는 사람들도 무정의 과오앞에서 그를 변호할수 없었다. 무정은 후퇴시기 대오를 잃어버린 몇몇 지휘관들에게 무자비한 극형처벌까지 가했던것이다.
하지만 왜놈들과 국민당반동들의 총탄에도 쓰러지지 않은 그를 우리 총으로 쏘아야 하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군사재판제기를 취소시키시였다.
허나 무정은 다시 추설수 없었다. 정신적고민의 응집인듯 불치의 암종이 그를 쓰러뜨려 먼 후방의 침대에서 오직 안해의 동정속에 인생의 석양을 바라보게 된것이였다.
최현은 2전선부대활동과 관련된 사업보고차로 고산진에 갔을 때야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였고 그때부터 무정을 생각하면 일종의 애수 비슷한 아픔을 느끼군 하였다. 그는 동성배척이라는 자연적원리 비슷하게 다같이 드센 성격들인것으로 하여 무정과 거리를 두고 지냈다. 전쟁초기 무정과 자주 접촉하면서 중국전쟁의 경험을 제일시하는 무정의 자만기를 여러번 감촉하면서도 이렇다하게 충고를 주지 못하였다. 이것이 지울수 없는 아픔으로 된것이였다. 이번길에 선뜻 그를 찾아 오지 못한것도 그때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거짓위안도 할수 없고 그렇다고 하여 지난 일을 놓고 이랬소 저렇소 《훈시》를 할수도 없지 않는가.
《이걸 좀 드시며 말씀들을 하세요.》
무정의 처가 쟁반에 받쳐들여온 이곳 특산인 노란 살속의 수박이 끊어졌던 두 사람의 대화를 잇게 했다.
《식사랑은 제대로 하오?》
최현이 수박 한쪽을 집으며 하는 물음에 무정은 반기듯 대답했다.
《하구말구.》
그 소리에 무정의 처는 비참한 형색으로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럼 이 수박을 좀 들어보지비.》
최현은 무정의 처의 얼굴표정에서 뭔가 쿡 찔리우는 아픔을 느끼며 제일 큰 수박쪼박을 집어 무정의 손에 들려주려 했다. 무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것도 들지 못한답니다.》
무정의 처가 울음질린 소리로 말하자 무정은 흘기듯 그를 쏴보았다.
《당신은 나가보오.》
나직이 하는 그의 말에 무정의 처는 구원을 바라듯 최현을 보고는 소리없이 방안에서 사라져버렸다. 최현은 한입만 베여먹은 수박을 내려놓고 무정의 뼈만 남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정은 웃어보였다.
《녀편네들의 말은 믿을게 못되오.》
《약은 제대로 자시오?》
《이젠 약이 필요없소. 하지만 난 저걸로 살아가오.》
무정은 침대끝머리의 서가쪽을 가리켜보였다.
3단으로 된 서가 맨우에는 붉은 비단천으로 포장한 함이 놓여있었다. 최현은 무정의 눈이 그 함에 멎어있는것을 보고 훌쩍 일어나 그 함을 풀어헤쳐보았다. 이름을 알수 없는 갖가지 약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최현은 혀를 찼다.
《약은 이처럼 많은데… 왜 하나도 쓰지 않았소?》
《그건 내가 저 세상에 가지고 갈거요.》
《무슨 객적은 소릴!》
최현은 버럭 성을 내려다가 무정의 눈빛이 흐려드는것을 보고 참았다.
최현이 약함을 제자리에 놓고 앉자 무정은 여전히 그 함에 시선을 준채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최현동무한테니 솔직히 말하지만 난 이달을 못 넘길거요. 의사들은 저들끼리만 알아듣는 꼬부랑말로 말했지만 내가 왜 그 말들을 모르겠소. 암종이 전이되여 내장전체에 퍼지고있는판이요. 내가 지금까지 살고있는것은… 바로 저 약때문이라고 할수 있소.》
《허- 전혀 먹지 않았는데두?》
《그렇소. 하지만… 저걸 그냥 보는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힘이 되고… 결국 생명의 연장력이지.》
《허,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저건 장군님께서 나한테 보내주신거요. 이 한심스러운 죄인인 무정한테 말이요.》
《장군님께서?》
최현은 놀랐다.
무정은 한동안 눈을 감고있었다. 주름잡힌 눈귀로 이슬방울이 흘러내렸다.
최현은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무정의 열기오른 손기 자기 손목에 닿는것을 보며 그에게 눈을 주었다. 무정은 약간 면구하면서도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눈길로 최현을 보며 숨찬 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현동무, 내가 동무를 만나려고 한것은… 몇가지 부탁때문이였소. 편지를 쓰면 좋겠지만 이젠 펜대를 쥘 힘도 없소.…
우선 나의 과오가 무엇이였는가 하는것이요.》
《그건 그만 두오.》
《아니 듣소. 심중한 문제요. 나는 장군님께서 늘… 자기 인민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의 진뜻을 채 깨닫지 못했소. 그때문에 나는 후퇴시 우리 군대를 패군으로 생각하며 그들에 대한 믿음을 잃었댔소. 자기 나라 실정에 맞게 싸울데 대한 말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소. 더군다나 그분께서 우리 지휘관들앞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싸움법을 가르쳐주실 때… 나는 다 알고 있는것처럼 스쳐들었다는 여기에 문제점이 있소. 불경스럽기 그지없게도 나는 장군님의 전법도 구경에는 중국에서 싸울 때의 유격전과 대동소이한것으로 생각했고 손자나 오자병법을 발전시킨것이라는 정도로만 리해했댔소. 여기에 나의 치명적인 과오의 핵이 있소. 나는 지금까지 근 반년 넘게 침대생활을 하면서 동서양의 전쟁사를 다시금 더듬으며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전법과 전투들을 하나하나 대비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 실로 놀라운, 매우 중요한것을 발견하였소. 동성서격이건 위성타원이건 … 그 모든것은 고대로부터 알려진 병법이였으나 그 적용에서는 모든것이 새로왔고 구체적인 정황과 대상에 따라 다 각이하였다는것이요. 여기에 장군님전법의 비범성과 독창성이 있는것이요.
<자기 인민의 힘을 믿고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독창적으로!>
나는 장군님전법의 사상을 이렇게 요약했소. 그런데 이젠 나는 글렀소.》
무정은 짙은 한숨을 내쉬고 한동안 창밖을 추연히 내다보다가 최현의 손목을 더욱 꽉 틀어쥐였다.
《최현동무, 이제 돌아가서 장군님을 뵙거들랑 이 무정이 장군님께 큰 죄를 지었지만… 마음상으로는 장군님 가까이 있고… 무릎꿇어 용서를 빌더라고… 꼭 말씀드려주오.》
최현은 가슴이 뭉클하여 고개만 끄덕였다. 무정은 고마운 눈길로 그를 응시하다가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장군님께 한가지 건의할것이 있소. 그건 박일우와 김웅이… 지금자리에 앉을 재목이 못된다는거요. 그 자리엔… 당신네 빨찌산들이 앉아야 하오. 물론 장군님께서 전선지휘를 직접 하시니만큼 최고사령부 부사령관이나 전선사령관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박일우나 김웅은 엉뚱한데가 있소. 내가 언젠가 장군님께 말씀을 드리자고 생각했지만 남을 깎는것 같애서 그 말씀은 끝내 드리지 못했소. 박일우나 김웅은 다같이 머리도 좋고 군사리론도 어지간히 밝은것만은 사실이요. 그러나 그들은 전쟁을 말로만 알지 실천에서는 백지요. 그런데 문제는 두 사람 다 야심가라는데 있소. 연안에 있을 때 보니 그들은 아래사람들한테는 혁명적원칙이 칼날같은데 웃사람들앞에는 뼈대없이 아첨하는 <알랑참새>(함경도성구-아첨쟁이라는 뜻)들이였소. 내 말을 꼭 장군님께 말씀드리고… 또 박일우와 김웅이를 만나는 경우에도 오늘 여기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다 옮겨주오.》
무정은 여기까지 단숨에 말하고 숨을 헐썩이며 침대베개머리에 놓은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최현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의 말을 정리해보았다. 하나같이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무정은 중국에 있을 때 그가 조직한 화북조선인독립동맹을 기초로 하여 조선의용군을 조직하였다. 거기에는 해방된후 뭔가 조국해방에 기여했다는 명분을 얻고저 입대한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연안에서 중국당의 도움을 받아 얼마간의 총을 얻고 훈련장 부지도 얻어 학습도 하고 전술훈련도 하였으나 이렇다할 전투란 단 한번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속에서 박일우나 김웅은 손자나 클라위제위츠를 읽고 《춘추좌전》과 같은 정권쟁탈의 왕정력사책들을 탐독했다고 한다. 무정의 말처럼 이들은 다같이 머리가 좋아서 해방직후 보안간부훈련소 같은데서 군사리론을 펼칠 때면 최현조차도 그들의 《유식한 말》과 고명한 《전술》에 압도될 정도였다.
벽시계가 스르륵하며 땡땡- 하고 종소리를 울렸다. 최현이 구식쾌종시계에 시선을 옮길 때 징소리같은것이 재차 울리고 《여보!》하는 무정의 날카로운 웨침이 방안을 흔들었다. 무정은 나무막대기 같은것으로 침대옆에 붙인 누런 놋바리를 또다시 때렸다. 그 소리의 여운이 채 멎기전에 무정의 처가 황급히 달려들어와 서가에 다가갔다.
서가 두번째단에 드리운 검은 면천을 벗기자 무전기가 드러났다. 처는 익숙한 솜씨로 조절기를 돌렸다. 그러자 귀간지러운 녀인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금일 오전 유엔군사령부의 발표에 의하면 전선동부에서 대우산탈환을 위해 동원된 인민군 3개 군단산하주력이 밴플리트장군과 리종찬참모총장이 지휘하는 미한련합군의 강력한 포화력앞에서 수천의 사상자를 남기고 패퇴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리대통령께서는 정부와 국민의 이름으로 8군사령관 밴플리트장군에게 축하의 메쎄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니!》
최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무정은 단어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듯 귀기울여 듣고있었다. 다만 한쪽 눈시울이 파들파들 떠는것으로 보아 그도 역시 몹시 놀라고있음을 알수 있었다. 무정의 처는 이 보도시간에는 늘 그러하는지 수첩을 펼쳐놓고 그 보도내용의 요점들을 적고있었다.
《…유엔군사령부 대변인의 말에 의하면 이번에 있은 참패로 하여 적은 새로운 보복공세를 취할것이라고 하면서 반타격을 위한 만전의 준비를 가하고있다고 합니다.… 전선서부와 중부는 상대적으로 고요한 안정을 유지하고있는바 이것 역시 새로운 공세의 징조로 된다고 대변인은 말하고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케이, 비, 에스.》
무정의 처가 무전기의(이 무전기는 무정이 중국전선에서부터 가지고 다니던 미국제였다.) 라지오를 꺼버리자 무정은 묻는 눈길로 최현을 보았다.
《저건 허튼 소리요.》
《아니, 사실이요. 이미 닷새전인가 적들이 대우산을 먹었다는 발표가 있었소. 지금 거기를 누가 맡고있소?》
《나요!》
《당신이?!… 누가 대리를 하고있소?》
《인계는 군사부사단장한테 했는데 전선사령부의 로병관이 내려와 돕기로 되여있소.》
《로병관?》
《그렇소.》
《그 사람은 참모부에나 있을 사람이지 지휘관재목은 못되오. 학생물림인데다가… 멋부림쟁이거든.》
《나는 가겠소.》
《아니, 무슨 소릴. 저녁식사라도.》
무정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최현의 얼굴살이 푸들푸들 떠는것을 알아본 그는 나직이 한숨을 짓고는 처에게 《그걸 가져오오.》라고 소리쳤다. 무정의 처는 서가옆 철함에서 두루마리지도를 꺼내왔다.
《어제 밤에 동무가 왔다는 말을 듣고 처를 시켜 그린것이요.》
무정은 량미간을 찌프린채 처에게 지도를 펼치라고 말했다.
군용지도에는 붉은색과 푸른색, 노란색화살표들이 가득 쳐있었다.
무정은 약간 면난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전선표시는 정확치 못할거요. 우리 방송과 베이징, 도꾜, 서울방송에서 나오는 보도들을 참작해 그려넣은것이요. 붉은선은 우리고 그 노란선표식들은 내딴에 예측해 본 적들의 공격로정이요.》
노란색화살표들은 대부분 전선서부와 서해안의 한천과 남포쪽으로 쏠려있었다.
최현이 주의깊은 눈길로 표식부호들을 살피는것을 보자 무정은 점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릿지웨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오. 하지만 대략 안데 의하면 야심에 있어서는 맥아더를 찜쪄먹는다고 하오. 그자는 계속 우는 소리를 하면서 <유엔군>사령관으로 부임한지 한달동안에 조선전쟁에 투입한 병력과 화력기재를 거의 곱으로 불구었소. 그 력량이면 놈들이 곧잘 떠드는대로 중국본토는 물론 씨비리까지 공략할수 있지. 모름지기 우리한테 장군님이 계시지 않고 당신같은 빨찌산지휘관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저 어디 장춘땅에 가서나 묻히게 될것이였소.
정말 걱정되오. 내가 그 지도에도 표기했지만 놈들이 지금 극성스레 철의 삼각점과 전선동부에 대해 떠들지만 궁극에는 전선서부, 특히 서해안쪽에 밀려들것 같소. 지금 서해안에는 누가 있소?》
《박정덕이가 군단장으로 서해를 맡고있소.》
《박정덕?!》
무정은 약간 놀랜 소리를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중국관내해방전투에 참가하고 돌아 온 지휘성원들을 정식지휘관으로 발령하기전에 무정은 그 시험관의 한사람으로 되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그 시험장에 친히 나오시였다.
작전전술리론과 정황처리에서 최고점수를 기록한 사람은 로병관이였다. 그때 박정덕은 작전전술리론에서는 중간급이였으나 정황처리에서 락제로 평가되였다. 이로하여 《시험관》들은 로병관은 련대참모장으로, 박정덕은 군사부대대장을 시키는것이 적합하다고 점수를 매겼다. 그런데 김일성동지께서 락제로 평가된 박정덕의 정황처리를 우로 평가하시면서 그를 련대장으로 임명하게끔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정덕의 정황처리에서 시험관들로서는 미처 보지 못한 새로운 기발한 전술을 포착하시였던것이다. 무정은 그후 1차 남진과 후퇴과정에 사단을 지휘한 박정덕이 싸움마다에서 련전련승했음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니 장군님께서도 서부를 중시하시는구만.》
무정은 자기의 판단이 김일성동지와 같다는것으로 대단히 흡족한 기색이였다.
《그렇소.》
최현은 김일성동지께서 서부의 한천과 남포보다 현재에 와서는 원산과 통천지대를 더 중시하신다는것을 말할가 하다가 비밀도 비밀이지만 시간이 바빠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무정은 근심낀 최현의 얼굴을 보다가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젠 가보오. 아, 내가 다시 일어설수 있다면-》
무정은 《음.》 소리를 내며 최현이 미처 어쩔새없이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몇초의 순간에 그의 이마엔 하얀 땀방울이 내배였다.
《이러지 마오.》
최현은 그의 손을 꼭 잡고 뭔가 따뜻한 인사말을 하려 했으나 가슴만 저려들뿐 아무런 말도 더 할수 없었다.
《최현동무, 내 몫까지… 부탁하오.》
《념려마오. 동무의 지도는 내가 장군님께 가져다 올리겠소.》
《장군님께!… 여보! 이 사람한테 절을 하오.》
무정의 웨침과 함께 처는 그의 말그대로 무릎을 꿇며 앉은 절을 하였다. 무정의 눈에서 비오듯 흘러내리는 눈물을 더 보기 어려워 부디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쫓기듯 방에서 나왔다.
차에 올랐을 때 그는 문턱을 짚은채 한손을 흔드는 무정을 보게 되였다.
《최현이, 장군님을!… 장군님을 잘 모셔주오!》
왕년의 로장은 마지막부탁을 하는것이다.
(유언이로구나.)
최현은 차에 오를수 없었다.
홱 돌아섰다.
《무정동무.》
뚜벅뚜벅 걸어 간 그는 무정의 손목을 꽉 틀어잡았다.
《나와 함께 가기요.》
《어델?》
《어디는 어디겠소. 평양이지.》
《나를?!…》
무정은 무슨 롱담이냐 하는듯 빙그레 웃었다.
최현은 거칠게 말했다.
《그렇소. 죽어도 장군님 가까이서 죽으란거요.》
무정은 몸을 떨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가?》
《무스게라구. 그래 당신은 조선사람이 아니요?》
최현은 이때에야 장군님께서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을 전하게 되였다.
무정은 꿈에 취한 사람처럼 듣다가 안해를 찾았다.
차비하는데는 30분밖에 안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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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무정의 처까지 탄 차가 최현의 집앞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의주를 거쳐 안주에 이르렀을 때부터 억수로 비가 쏟아져내렸다.
그동안 울기도 하고 최현의 《은혜》를 뭘로 갚느냐고 하며 수선을 부리던 무정은 풍천을 두드리는 비소리를 듣자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한층 더 수다를 떨었다. 대부분 우스개소리들이였다.
어릴적 서당훈장한테서 종아리를 맞고 그의 벼루집에 늘메기새끼를 집어넣었는데 광복후 사죄 겸 인사차로 찾가가보니 그 선생은 이미 청진시 락타봉뒤산에 묻혔더라는 이야기도 웃으며 말했다.
최현이 건지리에 있는 최고사령부에 도착한것은 다음날 아침 10시 20분이였다.
평성에 이르렀을 때 그처럼 기뻐하며 수다를 부리던 무정이 의식을 잃은것으로 하여 부득불 룡성병원에 입원시키고 오다나니 더 지체되였던것이다.
최현은 뜻밖에도 최고사령부 문전초에서 출입거절을 당하게 되였다. 그를 잘 아는 친위중대 보초병은 중요회의가 있기때문에 누구도 출입시키지 않게 되였음을 말하면서 최현만은 례외이니만큼 부관실에 알리겠다고 일종의 호의를 보였다. 최현은 회의에 온 사람을 알아보다가 허가이까지 왔다는 바람에 끝날 때가지 기다리겠노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최현은 허가이만 보면 멀리서도 딴전을 팔며 아예 대면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해방전에 쏘련당의 어느 한 지방일군을 한것을 턱대고 당안에서는 자기 이상 없노라고 우쭐대는듯 한 그의 건방진 인상에 기분잡쳤던것이다.
그때 못가쪽으로 해서 한사람이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최현은 그가 수령님 부관인 공정수임을 알아보고 서둘러 마주갔다.
《무슨 회의야?》
최현은 그의 인사를 받기 바쁘게 소리를 낮춰 물었다.
《아니 오셨음 저를 만나줘야 옳잖습니까?》
공정수는 왜 벌써 돌아왔는가고 하고는 못가에 이를 때까지 침묵을 지키다가 최현의 귀전에 입을 대고 큰 비밀이나 말하듯 속삭였다.
《최현동지문제를 토론하는것 같습니다.》
《내 문제라니?… 그건 무슨 소리야.》
《건 잘 모르겠습니다. 얼핏 문가에서 들으니 최현동지의 이름이 나오더군요.》
《그-래?… 그런데 대우산은 어떻게 된거니. 떼웠다는게 사실이니?》
《사실입니다. 장군님께서만 아니였더라면 더 큰 변이 생길번 했습니다. 이번통에 <기동전>패들이 쑥 들어갔습니다.》
《그래, 떼웠단 말이지.》
《네.》
최현은 한몽둥이 맞은 사람처럼 뼁해졌다. 그는 공정수의 방으로 들어서다가 벽에 줄느런히 세워놓은 나무대들을 보고 버럭 화를 내였다.
《넌 여기서 농사군이 됐니? 이따위건 뭣하러 가져왔니.》
《인차 치우겠습니다. 한데 그건 장군님께서 마련하게 해서-》
《장군님께서?! 건 뭣때문에-》
《저… 거 있잖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소잔등에 박격포를 싣고 다닐 방법에 대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거기 쓸 길마대란걸 만들었던건데 합격품은 이미 전선으로 보냈습니다.》
《어느쪽으로 갔니?》
《군단장동지네 부댑니다. 소를 몰고 간 동무가 군단장동지네 박격포소대장인데 소속을 알아보니 황영학동무의 련대에 있더군요.》
《그-래?!… 근데 황영학인 어떻게 된거냐?》
최현의 날카로운 물음에 공정수는 시무룩해졌다.
《돌아가는 말로는 군사재판에 회부한다고 하기도 하고… 장군님께서 김웅사령관에게 엄중경고를 주었으니 황영학이도 무사치 못할것입니다.》
《그 전투과정을 듣자.》
현은 성난 얼굴로 공정수의 팔소매를 끄잡고 그의 방으로 들어섰다. 공정수는 따라 들어서다 말고 직일부관에게 그의 도착을 알려줘야겠다고 했다. 최현은 뚝한 얼굴로 서있다가 공정수를 따라나섰다. 부관실과 마당 한쪽을 사이둔것이 장군님의 집무실이다.
공정수가 들어가다가 채 못닫은 문짬으로 뜨직뜨직 울리는 석쉼한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최현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수는 없었으나 그 소리의 임자가 허가이라는것만은 알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