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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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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417회 작성일 20-04-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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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5

 

이날 건지리의 새벽은 례없이 조용하였다.

푸릿한 어둠이 들리는 속에 최고사령부를 나선 장령들이 하나둘 사라진 뒤부터는 보초병의 구령도 문 여닫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친위중대의 마구간에서만 말투레질소리가 한번 요란스럽게 울렸을뿐이다.

뒤산기슭에 오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친위중대의 마구간에 들렸다가 올라오는 김재명부관을 보시자 귀속말하듯 물으시였다.

《그래 재여보니 어떻던가?》

《딱 맞습니다. 제 짐작이 눈이니까요.》

《그래, 그럼 가보자구.》

그이께서는 손에 드셨던 낫자루를 고쳐잡으시며 오불꼬불 뻗어오른 산길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얼마후 그 길로는 또 한명의 장령이 달려 올라갔다.

잡관목이 빼곡한 속에 들어선 장령은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옷차림을 바로 잡으며 등성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얼마 더 못가서 한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들어서는 안될듯 한 나직한 말소리가 울려왔던것이다.

《재명이, 지난밤 내가 큰소리를 친건 없었니?》

《없었습니다. 큰소리야 최용건동지가 쳤지요.

대우산전방에 1 500발의 포사격이 가해졌다는 보고가 있었을 때 <에익, 사등뼈를 부러뜨릴것들.> 하며 책상까지 치지 않았습니까.》

《그랬던가.》

더는 소리가 없었다.

장령은 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자기에게 물으셨다면 몇가지 사실을 더 말씀드릴수 있었을것이다. 《에익, 사등뼈를 부러뜨릴것들》라고 할 때의 최용건의 눈초리가 바로 자기자신에게로 와 닿았으며 그뒤 최용건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고 사납게 번쩍이던 눈이 불깃하게 흐려졌다는것을.

장령은 큰 숨을 들이쉬고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나무가지사이로 김재명의 얼굴이 쭈뼜하고 솟아 오름과 함께 《누구요?》 하는 김일성동지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울렸다.

《접니다. 정찰국장 강성찬입니다.》

장령은 황급히 소리치며 숲을 꿰질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커다란 바위옆 잔디밭에 앉으신채 파랗게 날이 선 낫을 매만지고계시였다.

강성찬은 그이의 옷이 이슬에 젖어있고 물기어려 번들거리는 장화굽밑에 하얗게 속대가 드러난 나무와 구름노전오리처럼 벗겨진 나무껍질들이 무둑히 쌓여있는것을 놀랍게 보았다.

《무슨 일이요?》

그이의 나직한 물으심에 강성찬은 얼굴에 실렸던 놀라운 빛을 가셔버리며 기쁨에 찬 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대우산일대의 정찰조에서 보고가 왔는데 대우산일대에는 미10군단과 남조선군1군단의 거의 모든 포들과 미8군사령부직속 포부대들까지 진출하여있었고 네개 사단의 병력이 전투대기상태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이의 미간에 실주름이 콱 새겨졌다가 사라졌다.

《그밖의 다른것은 없었소?》

《특별한것은 없고… 포사격이 있은지 얼마후 대우산에 집결된 적들이 기동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주목할만 한것은 후방으로 되돌아가는 차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은 전선중서부방향으로 움직였다는것입니다.》

《중서부?》

《네, 그래서 정찰조들에 적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정확히 알아낼데 대한 과업을 주었습니다.》

《도로주변의 경계가 심했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보고는 없었소?》

《여전하다고 합니다.》

지난밤까지 강성찬이 쥐고있은 자료란 전반적인 전선보급로들에 기동순찰대와 경찰병력까지 인입된 삼엄한 경계진이 펼쳐져 있다는것뿐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되는것은 미8군사령부의 보급창으로부터 전선중부와 서부로 통하는 도로들에는 경계진이 배로 증가됨과 함께 그 가까운 주변의 민가들까지 철수시키는 놀음을 벌리고있다고 합니다.》

《민가들까지?…》

《네.…》

《흥미있소.》

그이께서는 거꾸로 세워잡고있던 낫을 놓으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두손으로 량허리를 꽉 누르며 크게 심호흡을 하셨다.

강성찬은 또다시 입귀를 실룩이였다.

어떤 참변을 막으셨는가.

이 생각을 되굴리고난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장군님, 전 방금 그 보고를 받으면서 열하원정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허, 그러니 그때의 추억담을 펼치자고 이렇게 달려온셈이구만.》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으나 강성찬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되시였다.

얼마전까지 3군단 참모장으로 있었던 그가 정찰국장으로 온지는 한달도 채 못된다.

지난밤 대우산전방에 대한 포사격이 있었을 때 그는 최용건으로부터 도대체 정찰은 뭘하고있는가 하는 핀잔을 들었다.

그이께서 김웅의 작전안을 기각시키고 대우산으로 기동하는 사단들의 퇴군을 명령하신 시간은 박일우의 련락군관이 도착하여 20분도 안되는 11시경이였다. 그 시각에는 이미 사단들이 대우산지경에 근접한 상태였고 작전의 비밀보장으로 통신들은 거의나 단절시킨 상태였다.

하여 전선동부방향의 모든 무선유선통신을 그들과의 교신에 돌렸고 드디여 련결을 했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련락병들이 앞서 간 부대들을 다 쫓아 칼벼랑과 계곡에서 쓰러지고 딩굴며 가슴을 태웠겠는가.

그이의 가슴도 탔었다.

그때의 마음속분기, 그때의 가슴속 매연은 아직도 채 가셔지지 않았다. 굴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의문도 다 풀리지 못했고…

김웅의 작전안을 기각시켰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의아해하였다. 사전토론과 비준도 없이 그것도 구체적인 적정도 알지 못한 형편에서 세개 사단을 투입한 모험성에 다들 아연해하면서도 일단 공격출발진지까지 접근한 상태이니 한번 해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심정에 사로잡혀있었기때문이였다. 최용건도 이미 되돌려세우려면 오히려 혼란이 있을수 있다는것으로 한번 내밀어보자는 립장이였다.

그에 대해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다할 반문도 설명도 하지 않으시였다. 여유도 준비도 없었기때문이였다.

세개 사단과 련결이 이루어졌을 때는 전선전반부대들에 대하여 일련의 배비변경명령까지 내리시였다. 이 배비변경 역시 이제까지 론의에조차 붙이지 않았던것이였다. 하여 그에 대한 의도와 목적을 설명하려 하실 때 대우산 전방진출로정에 천수백발의 포탄이 날아와 터졌다는 보고가 왔었다. 최용건은 그때 책상을 친것 같다.

강성찬은 이 일을 두고 열하원정때와 비교하지만 그때는 처음부터 모든것이 명백했다. 물론 그때도 국제당의 지시를 휴지화하시는데 그이의 처사를 두고 의문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성찬도 그랬을것이다.

일본말과 중국말에 능통한 강성찬은 주로 적구공작과 반일부대들과의 사업을 많이 하였는데 열하원정이 개시되였을 때는 사령부와 멀리 떨어져 활동하는 독립중대에 있었다.

계절도 이 맞춤한 때일것이다.

강성찬이 속한 독립중대가 열하원정길에 올랐을 때는 이미 양정우의 부대가 수만대군의 포위속에서 전멸의 위기에 빠져있을 때였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강성찬이네는 그대로 그 파멸의 함정을 향해 내달렸다. 그이께서 파견하신 통신원이 한발 뒤늦기만 했어도 강성찬이네 역시 그 수만대군의 포위속에 삼켜졌을것이다.

강성찬이네와 만난것은 림강현 외차구근방에서였다.

포위환의 마지막고리를 조이던 적들과 맞서 강행돌파전을 벌리고 나온 그들은 산 사람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였다.

그때 강성찬은 다리에 총상을 당했는데 그이의 가슴팍에 안겨들었을 때는 어린애처럼 태질을 치며 엉엉 소리쳐 울었다.…

그이께서는 다감한 정회속에 맞은편쪽의 먼 산발들을 내처 바라보시였다.

지금쯤 대우산에서 퇴군한 부대지휘관들도 그때의 강성찬과 같은 심정속에 있을것이다.

《장군님, 한가지 질문할만 합니까?》

《뭔데?》

그이께서는 웃음을 보이시였다.

《저…》

강성찬은 말꼭지를 떼기가 어려운듯 갑자르다가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장군님께서 어떻게 되여 적들이 대우산에 그물을 치고있는것을 아셨습니까?》

《동문 뭔가 짐작되는것이 없었소?》

《저로선 전선사령관의 부관이 실종되였다는 사실에 좀 께름직했을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부관이 실종되였다는것은 포사격이 개시된다는 보고가 온 다음에야 알려진것이니 장군님께서는 이미 그전에 판단하신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시였다.

이 산등에 올라 《목공》작업을 하시게끔 한 여러가지 일들이 착잡히 엉켜돌며 사라지는가 싶던 마음속그늘을 짙게 하였다.

부관도 부관이지만 김웅이며 박일우의 얼굴이 어둑져 떠오른다. 연거퍼 걸려오던 그들의 전화, 저들의 실책으로 고지를 잃었기에 자기들 손으로 죄를 씻으려 했다고…

《내 판단이라는건-》

그이께서는 강성찬을 향해 말씀을 떼시였다.

《첫째로, 동무의 보고에 준한것이요.》

《네?!-》

《그렇소. 대우산일대에 여러 정찰조가 나갔지만 도로주변에 경계진이 펼쳐졌다는것외에 이렇다할 보고자료가 없다는것은 뚫고들어갈 빈틈이 없다는것이 아니겠소.

그렇다면 그것은 뭘 의미하는가. 상당한 무력이 집결되여 뭔가 준비태세에 있다는걸 의미하거든.

이것이 한가지 론거라면 론거고 다음은-》

그이께서는 고개를 쳐들며 하늘을 휘 살피다가 하현달을 가리켜보이시였다.

《저 달이 나를 도운셈이요. 동문 그 지대를 잘 알지?》

1차진공시기 강성찬이 사단장으로 있은 65사는 대우산일대를 휩쓸며 지나갔다.

그곳 산봉우리들에는 고목이 울창하지만 산중턱아래로부터는 잡관목만이 건성드뭇할뿐이다.

《지금은 저달이 희멀건 죽사발처럼 보이지만 지난 밤에는 야광주처럼 빛을 뿜으며 그곳 산판을 대낮처럼 보이게 했을것 아니요.

그러니 몇몇의 습격조도 아닌 련합부대가 그곳으로 은밀히 진출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지. 문제는 단순한거요.》

《알겠습니다.》

강성찬은 얼없이 그이를 우러러보다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놈들이 무엇때문에 아군이 나타나지도 않은 공간지대에 포사격을 하였습니까?》

《그건 동무가 밝혀줘야 할 문제가 아니겠소?》

《저로선 도저히 알 재간이 없습니다. 일반적풀이로 보면 <덤벼들지 말라, 혼낸다.> 하는 으름장인데 놈들도 우리가 그쯤한데는 끄떡도 않는다는것을 잘 알것이 아닙니까. 정말 알쑹달쑹합니다.》

《그건 나로서도 아직 숙제요. 명백한건 동무도 말했지만 나나 동무의 머리를 뻥하게 만들자는것이겠지.》

그이께서는 자신의 추측과 판단을 말씀할수 없으셨다. 이젠 최종결론을 얻었다고도 할수 있으나 정찰국장에게는 시기상조인것이다. 만약 자신의 판단과 결론을 알게 되면 그 시각부터 강성찬은 객관적정보종합이 아니라 자신께서의 판단과 분석에 기초하여 모든 현상을 볼것이고 해당 정찰조들에도 그런 방향에서 자료수집을 요구할것이다.

(그래, 아직은 이르다.)

그이께서는 채 끝내지 못한 일감을 내려다보시였다.

소잔등에 박격포를 실을 쟁기를 만들자고 물푸레대를 찍어 껍질을 다듬었으나 강성찬이때문에 계획이 뒤틀려진 셈이다. 이제 재명이가 친위중대의 마구간에서 재여온 사릅잡이 황소의 몸길이를, 정확히 말하면 어깨팍으로부터 엉치뼈까지의 길이를 재여온 새끼줄로 기장을 맞춰자른 나무대의 량끝을 불에 달궈 구부려놓으면 일은 끝난다. 어제 아침 공정수부관에게 이 과업을 주었는데 만들어놓았다는것이 옹이박이 참나무인데다가 결이 너무 심하여 퇴짜를 놓았었다.

오늘 중낮때쯤이면 1211고지방향으로 가는 호송병이 82㎜박격포를 실은 소를 몰고 올것이다. 김봉률포병사령관에게 그에 대한 상세한 지시를 주었으니 재간껏 해올것이지만 혹시나 해서 만들게 되신것이였다.

물론 새벽 3시반에 이 산릉에 오르시게 된것은 《쟁기》마련이 꼭 기본으로 되는것은 아니였다. 그이께서는 본격적인 휴식이, 그것도 《맑은 휴식》이 필요하셨는데 이러한 휴식은 잠으로 해결되는것이 아니였다.

지난날 올기강에서의 낚시질이 위험한 정황에서의 출로를 탐색하시는것과 함께 안절부절못하는 지휘관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휴식이였다면 이날 새벽의 휴식은 착잡한 생각과 그동안의 긴장된 사색에 마지막종지부를 찍기 위한데 있었다.

사색과 판단은 시간의 길이에서가 아니라 머리가 얼마나 맑은가에 따라 결정되는것이다. 그이께는 고요한 집무실보다 때로는 이런 산속, 맑디맑은 이슬이 맘과 손을 적시고 서늘하고 생신한 공기를 뿜어주는 산속이 더없이 훌륭한 사색터로 되였다.

《그만 내려가자구.》

그이께서 시계를 보시며 자신께서 다듬으신 나무대와 낫을 쥐실 때 고사총중대가 있는 산정쪽에서 기상나팔소리가 울렸다.

그때까지 얼레구름속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달을 쳐다보던 강성찬이 우뜰 놀라며 그이께서 쥐신 낫과 물푸레대를 받아들고는 머리를 기웃했다.

《장군님, 이 막대기는 무엇에 쓰려고 합니까?》

《그건 비밀이요. 특수무기니까.》

그이께서는 유쾌한 롱담으로 받으셨다.

82㎜박격포를 실은 소와 호송군관이 도착한것은 그이께서 아침과 저녁마다 한부씩 받게 되는 총참모부 작전종합일보와 뒤미처 올라온 전선사령부의 무선보고문을 받아드셨을 때였다.

작전종합일보에서 주목되는것은 전선중서부의 여러 지역들에 적정찰대의 침습이 있었다는것과 생포된 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아군측 방어종심상태를 알아내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는것이 밝혀져있었다.

전선사령부에서 보내온 무선보고문에는 전날밤 김웅이 곱씹던 자기비판 분석외에 대우산전투과정에 범한 개별적지휘관들의 오유와 실책이 명기되여 있었는데 황영학이가 그 대표적인물로 되여있었다.

그이께서는 이 보고문을 문건보관함속에 그냥 넣으려고 하시다가 다시 보시였다. 화학연필로 쓴 황영학의 이름자가 덧글로 새겨져있는것에 시선이 미쳤기때문이였다.

동글납작한 글체, 얼핏 짚여드는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놀라움속에, 다음에는 커다란 슬픔과 실망속에 자기 오빠의 이름을 썼을 영숙이의 모습이 눈앞에 밟혀오며 가슴이 아파드셨다.

(어쩐다?!)

그이께서는 이 순간 영숙이를 볼 일이 큰 시름거리로 되셨다.

(알지 못한척 할가.)

바로 이때에 김봉률포병사령관으로부터 박격포를 실은 소와 호송군관이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즉시 만나기로 하셨다.

밖에 나서니 최용건이 마당가에 들어서고있었다.

새벽녘에 그와 헤여지면서 잠시라도 눈을 붙인 뒤에 다시 만나자고 하셨는데 전체적인 인상으로 보아 그 역시 잠자리에 들지 못한 형색이였다. 충혈진 눈에는 지난 밤과 같은 격동과 심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듯 했다.

그이께서 박격포를 실은 소를 보러 나섰다는 말씀을 하시자 최용건은 두눈섭이 맞붙다싶이 되였는데 김봉률이 소와 호송군관을 데리고 나타날 때까지 의문어린 기색은 풀리지 않았다.

소는 강동군적인 품평회에서 1등을 맞은 대짜배기였고 김봉률이 도로경무초소와 병기국에까지 줄을 놓아 뽑아왔다는 호송군관은 52사 박격포소대장으로서 산세를 보는데서는 풍수맞잡이고 산길을 오가는데서는 산양맞잡이라고 했다.

그와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보니 그이께서 인상깊이 기억에 새겨두고계시는 법동군 범바위골의 김만산이라고 하던 로인의 아들이였다. 반가웁기 그지없으시였다. 그 호송군관은 더욱 그랬다.

전쟁전 그이께서 최용건과 함께 그 고장을 찾으시였을 때 이 호송군관도 장군님을 뵈웠노라고 하며 기뻐 어쩔바를 몰라 했다.

그이께서 그 군관과 여러사람의 합작으로 만들었다는 곧은백이 길마대를 량끝이 휘인 길마대로 교체해 주실 때는 두눈이 휘둥그래졌고 곧은백이 길마대가 소의 어깨팍과 엉치뼈에 상처를 입힐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는 얼친 사람처럼 굳어지고말았다.

그이께서는 김철규라고 부르는 이 군관과 거의 반시간 남짓하게 담화를 하시였다. 전선형편으로부터 그의 고향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이어가시던 그이께서는 김재명이 가지고 나온 중동부일대의 지형이 색인된 지도를 호송군관에게 넘겨주시며 그가 가야 할 로정을 일일이 밝혀주시였다. 될수록 산길로만 가되 지름길을 택하라고 그리고 그 로정을 지도에 표시하고 도착하는 즉시 지도와 함께 도착날자와 시간을 군단지휘부에 보고하라고 하시며 가는 길에 고향에 꼭 들려보라고 하셨다.

소와 호송군관이 떠나려 할 때 먼 우뢰소리가 몇번 울리더니 비꽃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우뢰질소리에는 꿈쩍하지도 않던 소가 《가자》하며 바끈을 당기자 대뜸 네굽걸음을 놓는데 호송군관하고 미리 약속이나 한듯 싶었다.

그이께서 최용건과 함께 집무실에 들어서시였을 때는 비소리가 동이로 물 붓는것처럼 들렸다.

(푹 젖겠구나.)

산등을 탈 때는 일 없겠지만 골짜기에 내려설 때는 무척 힘들것이다.

(하지만 법동내기니까.)

그 청년이 가게 된 길은 새로운 보급로의 탐색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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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양덕고개 넘어서부터 산발을 타면 행길로 걷는것보다 숱한 시간을 앞당길것이다. 항공에 의한 위험도 없을것이고.

《그 동무의 아버지가 기억됩니까?》

《네.》

《범을 잡은 로인이라고 했지요.》

그이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최용건에게 의자를 권하시였다.

《오늘 오후 첫 시간에 총참모부와 작전국지휘성원들로 최고사령부비상협의회를 하려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허두를 떼시고 참가시킬 사람들의 이름을 찍어주시였다.

《안건은… 무엇으로 하겠습니까?》

《그 동안의 적정연구에 대한 총화라고 할가. 금후 작전방향에 대한 결심채택을 위한것입니다.》

최용건의 눈빛이 번쩍했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최종단안을 내리셨겠지요.》

그이께서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셨다. 아니라고도, 그렇다고도 할수 없으셨기때문이였다. 만약 그의 물음에 긍정으로 표시한다면 최용건은 자기의 판단과 견해는 뒤전에 붙이고 끝없는 질문속에서 답을 찾고는 깊은 생각에 잠기든가 격한 흥분에 탄성을 터뜨릴것이다. 매양 그랬다. 그런데 지금의 그이께는 무작정의 공감과 탄성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결심을 비쳐보실 거울이 필요했다.

지난 기간 김책과 강건이 그런 상대역이였다면 지금 가까이에 있는 적격자로서는 최용건이라고 할수 있다.

오랜 로장으로서의 경험과 안목, 전쟁에서 작용하는 온갖 요인들에 대한 정확한 리해와 타산, 있을수 있는 온갖 기만과 책략에 대한 풍부한 리해와 감각, 자그마한 세부까지 놓치지 않는 미세한 관찰력과 탐구력, 이것이 그이께서 높이 평가하게 되시는 최용건의 장점이였다.

《그에 대해서는 먼저 상동무의 생각을 들어봐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여러차례 론의를 벌렸지만 이젠 최종결론을 지어야 할 때입니다. 적의 작전기도는 무엇인가, 그에 대처한 우리의 작전방안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입니다.》

최용건은 묵묵히 그이를 우러르다가 큰 숨을 내쉬였다.

《저로서는 지금 온통 가설뿐인데… 그것도 혼탕입니다. 지난밤부터는 적들도 전면방어로 이전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적들의 총적인 작전기도가 공세가 아니라 방어로 된다 이 뜻입니까?》

《네 물론 이것도 모색속의 가설입니다만.》

《계속하시오.》

그이께서는 심중해지시였다.

적들의 총적인 작전기도에 대해서는 초여름에 진행된 아군의 5차작전이후부터 구구하게 론의들이 많았다. 믿음직한 정보로 입수된 《미군철퇴설》과 함께 5차작전에서 된탕을 먹은 적들이 새로운 보복전략을 들고 나오리라는 예측들이 기본으로 되였다. 그런 속에 5차작전의 결과가 릿지웨이의 정전담판제의로 끝나게 되자 《미군철퇴설》에 공감하던 사람들은 환성을 올렸다. 수세에 빠진 적들이 부득불 손을 들고 물러나게 되였다고.

그러나 그후의 사태는 다른것을 보여주었다.

그이께서 이미전부터 예측하신대로 적들은 정전담판의 막뒤에서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며 주도권을 얻기 위한 공격으로 나올것이라는것이 일치한 결론으로 되였다. 그런데 누구보다 먼저 그이의 판단에 보조를 맞추던 최용건이 이런 변화를 보인다는것은 그저 스쳐갈 일이 아니였다.

최용건도 자기의 생각이 신통치 않다는듯 이마살을 찌프리며 계속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것은 지난 밤에 있은 대우산에서의 허무한 포사격에서부터라고 할수 있습니다. 큰 전투를 한번 치르고도 남을 포탄을 무인지경에 마구 퍼부은것은 단순하게 볼 때는 위력시위든가 유인기만전술로 볼수 있지만 막강한 대군을 깔고있은 상태에서 그런 맹랑한짓을 벌릴수는 없을것입니다.

분명히 이 놀음은 우리에게 혼돈을 야기시키려는것도 있지만 주되는것은 우리에게 공격을 그만 두라. 자기네들도 공격을 하지 않겠다 하는 표시라고 보게 됩니다.

또 하나 대우산에 집결되였던 병력의 일부가 중서부방향으로 움직인다는것 역시 전면적인 방어를 위한 력량의 균등한 배치라고 풀이하게 되였습니다.》

《오늘 새벽 전선서부의 일부 지역에 적의 정찰대의 침습이 있었다는것을 알고있겠지요?》

《네, 저는 그것으로 하여 더욱 방어로 이전하는것이 아닐가 하고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포로된 자들의 입에서 한결같이 나오는 소리가 전선중서부에 대한 공격준비라고 한다는데 이 역시 전반전선에 균등한 방어선을 펼치기 위한 연극이고 시간쟁취놀음이라고밖에 볼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 모든것을 놓고 풀이를 하고 대응책을 취하는 기회를 빌어 전반전선을 정리보강하리라는것입니다. 물론》

최용건은 여기서 말을 뚝 끊고 입술을 깨물고있다가 계속했다.

《이 모든것은 허구적인 억측일뿐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이 가설은 적이 노리는 정치군사적목적과는 무관계한 상태에서의 추리이고 느낌에 불과하기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저는 장군님께서 여러차례 일깨워주신대로 적들은 반드시 새로운 공세를 취해올것이다. 그럼 어디로 오겠는가? 하는 물음속에 여러개의 답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동부?!… 적들로서 지난 밤 아군의 세개 사단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알았다던가 림기응변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지난밤이 절호의 기회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놈들로서는 배심도 타산도 부족했겠거니와 한번 빠져들면 미궁속에 들어서는것과 같은 산악공격은 감히 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럼 중부인가. 이건 지금 김화, 철원계선에서 벌리는 유리한 지대장악을 위한 제한공격이지 전선을 뚫고 들어올수는 없을것입니다. 좌우에서 얻어맞게 되니까. 이렇게 볼 때 대부분 동무들이 추측하는것처럼 전선서부라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한데 이것 역시 타당성은 부족합니다. 전쟁초기에 실패한 방식을 되풀이하는 식으로 되지 않겠습니까.》

최용건의 얼굴에 진한 땀방울이 맺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지금 얼마나 큰 심뇌와 방황속에 모지름 쓰는가를 력력히 느끼셨다.

최용건에게는 하나에 집착되면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어느 한 고리에 빠져든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설을 세워 보던끝에 이도 저도 아닌 방황속에 든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너무 많이 알게 되는 사람들이 범할수 있는 혼돈이라고 한다.

어느 하나도 놓침없이 보고 파고드는 통찰력과 탐구, 풍부한 경험과 안목에서의 복잡다양한 추리와 타산… 그런데 여기서 본질적인것을 놓치면 복잡한 와류속에 빠져드는것이고 그렇게 되는 경우 동서남북이 묘연해질수 있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생각을 다시금 정리해보며 말씀하시였다.

《상동무가 세워 본 여러가지 가설과 추측들, 그에 따른 결론의 대부분에 대해 긍정합니다.

전선중부? 들어올수 없다. 옳습니다. 전선동부와 서부의 아군의 량면공격에 넙치가 되고 말것입니다.

전선서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놈들이 그곳의 우리 방어선을 허물자면 지금보다 적어도 3∼4배의 력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좁디 좁은 땅에서 그만한 력량을 옮겨 놓는다면 그날 그시로 우리에게 알려질것이고 그에 대처한 방어진이 형성되리라는것도 잘 알것입니다. 설사 그쪽 전선을 넘어선다 합시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밀물처럼 될뿐이지 다시금 썰물처럼 될것입니다.

놈들은 전선중동부의 산악지대를 우리가 장악하고있는 한 그러한 평지공격이 무의미하다는것을 잘 알것입니다.》

그이께서는 깍지 껴 잡은 손을 푸셨다.

《그럼 어느 곳으로 오는가. 이에 앞서 공세인가 방어인가에 대해 다시 론해봅시다. 나는 여전히 공세라는것, 그것도 최단시일내에 대규모적으로 벌어지리라는데 대해 의심치 않습니다.

서투른 토막극 같은 잔놀음에는 신경을 쓰지 맙시다. 놈들이 8만가지 묘계를 가지고 노는 귀신이라 해도 길은 하나, 뭔가 성과를 올려야 할 길밖에 없습니다.

릿지웨이나 밴플리트가 보다 현명해져서 고향집에 갈 생각이 있다 해도 놈들에게는 그럴 자유가 없습니다. <백악관>과 <펜타곤>이 그걸 허용하지 않기때문입니다.

그럼 왜 꼭 공세를 택하겠는가.

그것은 상동무도 방금 상기시킨것처럼 놈들이 노리는 정치군사적목적과 관계된것입니다. 정전담판에서 영예로운 승리를 얻자면 우리측 지역을 넓게 타고 앉아야만 하는것이고 또 하나는 놈들로서 볼 때 방어란 하기 어려운, 그것도 무척 어려운것으로 되기때문입니다.

공격도 그렇지만 방어야말로 강한 의지력과 인내성이 있어야만 이기게 되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놈들에게는 그런 의지력과 인내성이 없습니다.

그래 어느 병사가 우리 전사들처럼 우박치는 총포탄속에서 팔다리가 끊어져나가면서도 수류탄을 던지고 입술로 압철을 누르며 버텨내겠습니까.

제 땅, 제 인민을 지키는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분연히 솟구치는 격정을 누르지 못하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말을 타고 내달리며 토착민들을 쏴제끼고 밭들을 불 태우고… 이렇게 생겨난 미군은 오늘 이때까지 오직 공격, 공격에서 승리를 얻는데만 습관되였습니다. 여기서는 미군만 아니라 유럽의 동맹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군사의 천재들이 말한 승리는 오직 공격이라는것을 굳게 믿는 그들은 방어로 넘어간다면 패배로 인정할것이고 마지 못해 군대를 파견하던 나라들에서는 즉시 철군을 요구할것입니다.

이 모든것이 법칙성에서 본 공세의 제 원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반박해보십시오.》

최용건은 잠에서 깨인 사람처럼 그이를 우러르다가 어깨를 움씰하며 입을 열었다.

《장군님께서는 동부라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놈들은 모름지기 1211고지쪽을 택할것이고 나 역시 그러기를 바랍니다. 또 그렇게 되게끔 해야 되고…》

《전날밤의 배비변경도 이를 위한 준비였습니까?》

《그 배비변경은 6군단의 기동을 위한 연막입니다. 나는 전선서부에 있는 6군단을 전선동부에 이동전개시키려고 합니다.》

《네??-》

최용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뭔가 잘못 듣지 않았는가 하는 눈길로 그이를 바라보는 최용건의 눈에는 공포라고밖에 달리 부를수없는 빛이 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결심을 다시금 되새겨보며 말씀하시였다.

《나 역시 그것이 위험한, 자칫하면 전쟁의 전반운명을 비틀수 있는… 모험과 같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것입니다.》

최용건은 침묵을 지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순간 어떤 설명과 론거로도 그를 납득시키기가 어려움을 느끼셨다.

(그렇다, 아직까지는 이 모든것이 예측에 불과한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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