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푸른산악 2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푸른산악 2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3,334회 작성일 20-04-21 00:58

본문

01.jpg

 

2

 

대우산을 마주한 불암산머리우에서는 잠자리비행기가 서는듯 마는듯 조용히 움직인다. 그 비행기에서는 남성도 녀성도 아닌듯 한 중성에 가까운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용감한 인민군장병 여러분, 지겨운 장마철이 다가오고있다. 그대들의 고향집앞뜰에는 잡초가 무성할것이고 썩은 이영으로는 비물이 흘러내릴것이다. 

고향집이 그립지 않는가. 그대들의 부모처자형제들은 당신들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있다. 

올해는 단기 4284(1951)년 전례없는 풍작이 기대되는 해다. 기름진 땅도 당신들을 기다리고있다. 어서 돌아가시라. 고향집을 다시 꾸리고 단란한 가족의 행복을 마련하시라. 

당신들의 고군혈전은 무모한 자살행위이다. 저 히틀러도이췰란드의 용장들도 그 령군술과 지략에 치를 떤 유엔군사령관 매트 비 릿지웨이장군은 바로 당신들과 당신들의 부모처자형제들의 안위와 행복을 념원하며 <정전>을 제기하였다. 정전의 조속한 실현은 전적으로 당신들의 손에 달려있다. 무기를 놓고 고향집으로 돌아가시라. 상관들을 쏴눕히시라. 더 귀한 자유와 행복을 바란다면 우리 품으로 오시라. <대한민국>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들을 기꺼이 맞아줄것이며 그가 누구든 좋은 집, 아릿다운 아가씨를 알선해드릴것이다.

목숨은 오직 하나뿐, 두번 다시 없는 생명을 귀중히 여기시라.》 

《에익, 저걸 그저.》 

누군가 삽을 동댕이치며 투덜거리는 바람에 굳은 청석을 까내느라 땀투성이된 전사들이 하나 둘 허리를 폈다. 

《넨장, 한탄창 풀었으면 좋겠다.》 

《글쎄 말입니다. 이거야 어디 전투원입니까. 두더지꼴이지.》

삽을 동댕이친 전사는 전쟁의 신도 무색할 엄엄한 표정을 띄우며 반들반들한 이마에 내천자를 그려보려 애쓴다. 그런데 암만 뜯어봐야 소년단넥타이를 금방 풀었을듯싶은 신대원이다.

《갑수!》 

그때까지 삽질을 멈추지 않고있던 군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 역시 갑수라는 전사와 어금지금의 나이같아보이나 돌가루가 하얗게 덮인 어깨에는 탄피로 오려붙인 세줄배기 중사표식이 해빛에 번뜩인다. 

《입방아질은 그만 하라구.》 

그는 뭔가 더 말을 할듯 하다 말고 얼굴빛을 흐리며 다시 삽질을 한다. 

《분대장동지, 분대장동진 그래 저소릴 그냥 듣는것이… 맘 편합니까.》 

전사의 볼부는 소리에 중사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그는 쏘는듯 한 눈길로 전사를 보다가 강쇠를 끊어뱉는듯 한 소리로 말했다. 

《난… 저놈들이 우리 말을 쓰는것이 분할따름이다.》 

그가 삽을 내리치자 ㄱ자형으로 꺾인 미국제(로획품) 삽날끝에서 불꽃이 번쩍 일며 사금파리같은것이 튕겨났다. 

이전 중대장의 련락병이였던 그는 며칠전부터 이 분대의 분대장임무를 수행하고있다. 그가 바로 리수복이다. 

잡목림과 칡넝쿨이 어우러진 사이로 두사람이 올라오고있었다. 한사람은 련대장 황영학이였고 그 곁에서 나무가지를 휘여잡으며 유유히 걸음을 옮겨짚는 사람은 전선사령부에서 내려온 로병관장령이였다. 

앙바틈한 몸매의 황영학에 비해서는 목 한기장이나 훨씬 더 큰 로병관은 전호굴설작업중임을 보고하는 중대장의 손을 힘주어 잡아 흔들었다. 

《수고들 하오.》 

전호가에 이르러 (아직은 전호라기보다 작은 실도랑 같지만) 부스러진 청석쪼각을 밟은 그의 장화는 언제 풀숲을 헤쳐왔던가싶게 긁힌 자리 하나없이 반들거렸고 군복깃의 목달개도 눈같이 하앴다. 약간 제껴쓴 군모밑 이마에는 땀젖은 머리카락 몇오리가 S자를 그려붙이고있다. 량눈섭이 모아붙은듯 한 인상만 아니면 나무랄데 없는 미남이라고 할수 있는 그는 《쉬엿!》 하는 구령에 빳빳이 굳어져있는 한 전사에게 시선이 멎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머금었다. 

《동문 언제 입대했소?》 

《두달전입니다. 전사 진갑수!》 

전사는 장령의 눈길이 서툴게 단 자기의 목달개에 쏠리는것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전투에는 세번 참가했습니다.》 

《그러니 구대원이구만.》 

《넷, 그렇습니다.》 

《허, 대단하오. 한데 일이 힘들지 않소?》 

《일없습니다. 장령동지.》 

진갑수는 뒤로 자빠질듯이 몸을 더 꼿꼿이 폈다. 

《왜 힘들지 않겠소.》 

로병관은 함지박만큼 파놓은 그의 전호를 서글픈 눈길로 보며 주머니를 뒤졌다. 그의 손에서는 《금강》표 담배 세갑이 들려나왔다. 

《자, 다들 쉬면서 한대씩 피우기요.》 

전사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데 담배를 채 받아들기도 전에 어데론가 사라졌던 《잠자리》가 또다시 나타나고 이번에는 보슴털마저 간지럽힐듯 한 녀자의 애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공산군오빠들, 뙤약볕속에서 얼마나 고달픈 하루를 보내고 계시나요. 

오늘의 삶과 래일을, 두고온 혈육과 친지들을 생각해 보세요. 

지나간 삶에는 수정이 있을수 없지만 래일의 삶에는 수정이 있을수 있어요. 

삶과 죽음! 오빠들은 두 길의 어데를 택하려 하시는가요. 지금 이 시각도 오빠들의 부모처자들은 사랑하는 아들들과 남편, 아버지들을 애타게 그리며 어서 돌아오라고 목메여 부르고 또 부릅니다. 그럼 이제부터 강원도 모시 모면에 사는 김씨로부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랑독해드리겠습니다.》

《저걸 왜 보고만 있소?》 

로병관의 눈길이 불등처럼 번쩍였다. 담배갑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전사들은 중대장을, 중대장은 황영학을 보았다. 황영학은 바지가랭이에 붙은 풀잎들을 뜯어내고있었다. 중대장은 어줍은 눈길로 로병관을 보았다. 

《장령동지, 진지로출때문에 사격할수도 없고… 또 저놈의 머저리비행기는 웬만한 탄알에는 꿈쩍도 않습니다. 방탄판을 댄 비행기여서-》 

《반땅크총은 없소?》 

《있습니다.》 

《가져오시오.》 

로병관은 쓴 웃음을 지으며 담배갑들을 뿌리쳐 던지고 반총수가 들고온 총을 곧추 세워 격발기를 반쯤 열어제꼈다. 누런 탄알이 보였다. 

《준비는 돼있구만. 됐소!》 

그는 총탁을 반총수에게 맡기고 총신은 자기 어깨우에 올려놓았다. 총신을 어떻게나 드세게 잡는지 하얀 손에 퍼런 힘줄이 칡줄기처럼 부풀어올랐다. 

《사격준비!》 

쇠소리나는 그의 구령에 따라 꿇어사격자세를 취한 반총수는 잠자리비행기를 겨누다말고 황영학의 기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뭘 망설이고있소?》 

로병관의 엄한 목소리에 반총수는 우뜰 놀랐고 전사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장령은 보지 않고도 반총수의 머밋거리는 움직임을 알아맞히는것이 아닌가. 

그가 던진 담배갑을 정히 모아 가슴에 붙안은 진갑수는 감탄정도가 아니라 아예 홀딱 반한 눈길로 장령을 우러러보며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로병관은 나무가지사이로 머밋거리는 잠자리를 쏴보다말고 반총수를 돌아보았다. 

《자신없으면 다른 우등사수에게 맡기오.》 

《아 아니, 제가 하겠습니다.》 

반총수는 눈가에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숨을 헐썩이였다. 로병관은 뜻밖이리만치 허심한 미소를 머금었다. 

《헛방을 쏴도 일없소. 책임은 내가 질테니.》 

《네, 알겠습니다.》 

《자, 준비-》 

로병관은 앞발을 조금 내짚으며 온몸에 힘을 너무 준탓인지 굳어진 소리로 말했다. 

《숨조절을 잘해야 돼, 자,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하나, 둘, 셋, 됐나?》 

함마로 무쇠철판을 때리는듯 한 총성이 일었다. 발사시의 거센 반충으로 억대우같은 반총수의 상반신이 휘친했으나 로병관은 끄떡하지도 않았다. 

《틀렸어, 다시!》 

로병관의 거센 웨침과 함께 재장탄을 하는 반총수의 거뭇한 얼굴살이 푸들푸들 떨렸다. 

절컥!- 격발기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채 멎기전에 전사들속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잠자리비행기에서 검붉은 화염이 솟구쳐 올랐던것이다. 진갑수는 어린애처럼 껑충껑충 뛰며 만세를 불렀다. 

《그럼 그렇겠지.》 

로병관은 락엽처럼 날아 떨어지는 비행기를 보다말고 반총수에게 한눈을 찡긋해보였다. 반총수는 어줍게 웃으며 뒤더수기를 쓸어만졌다. 

《비행기표식을 떼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대장이 달덩이 같은 얼굴로 로병관에게 묻자 로병관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내가 보고있지 않소.》 

비행기표식을 떼오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였다. 불덩이로 변한 《잠자리》는 맞은편 적고지의 산중턱에 떨어진것이다. 그곳 산뒤에서 몇점의 목화송이가 피여올랐다. 

《은페!》 

중대장의 다급한 웨침과 함께 련속적인 폭음이 울렸다. 주변산봉우리와 골짜기의 여기저기에서 폭연이 솟구쳐올랐다. 어림짐작의 사격이다. 

《개새끼들, 실컷 쏘아라, 실컷.》 

중대장의 명령인지라 마지 못해 참나무밑둥에 기대여앉은 진갑수는 로병관이 들으라는듯 큰소리로 쌍욕을 퍼부었다. 그의 눈길은 한시도 장령의 몸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뒤짐을 지고선 로병관은 포사격이 끝날 때까지 한자리에 그냥 있었다. 포사격위치들을 탐색하였다. 

《105㎜구만.》 

황영학에게 말할 때의 그의 얼굴표정은 무척 태연자약하였다. 그는 담배갑을 붙안은채 황홀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진갑수를 알아보자 빙그레 웃었다. 

《왜 그러고있나. 한모금씩들 <해정>을 하게 해야지.》 

그는 다들 여기 모여앉으라고 하며 진갑수옆에 가앉았다. 진갑수는 칭찬을 받는 소년마냥 얼굴을 붉히며 련대장으로부터 시작해서 매 사람에게 담배를 나눠줬다. 

담배를 피울줄 모르는 《애숭이》들이 많은 덕에 마지막 한갑은 절반이나 남았다. 그것을 본 리수복이 《그건 내가 건사하지.》하며 스스럼없이 담배를 제주머니에 밀어넣었다. 그 역시 담배를 피울줄 모르는 애숭이였지만. 

로병관은 파다만 청석바닥의 전호를 내려다보다가 소금기 배인 전사들의 얼굴에 시선을 주었다. 

《그래 동무들은 여기서 석공노릇만 하며 땀을 뽑겠소?》 

저으기 못마땅해 하는 그의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전사들은 중대장을, 중대장은 련대장을 바라보았다. 30대중반의 나이에 벌써 머리에 흰오리가 드문히 섞인 둥실한 얼굴의 황영학은 덤덤한 얼굴로 깨여진 돌쪼각만 매만지고있었다. 단천내기 진갑수만이 로병관의 말뜻을 다 안다는듯 한 얼굴로 벙싯거렸다.

로병관은 전사들의 각이한 반응에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다시 입을 열 때의 말소리는 불같이 뜨겁게 울렸고 눈빛은 사뭇 날카롭게 빛났다. 

《나는 여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소. 그래 적을 족칠 기운을 다 바위와의 싸움질에 날려보내겠소? 보시오. 앞에는 어제까지 우리것이였던 고지에 적들이 틀고앉아있소. 그런 적들을 그냥 보며 앉아뭉개고만 있겠는가. 저기엔 동무네 전우들의 피도 스며있지 않소.》 

그의 말에 모두가 낯빛이 질려 고개를 떨구었다. 리수복의 눈에는 눈물까지 핑 고였다. 그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이전 중대장도 앞고지너머의 《기동전투》에서 희생되였던것이다. 

《장령동지, 한가지 질문할만 합니까?》 

흙빛으로 굳어져있던 중대장이 결연한 태도로 일어섰다. 보풀진 입술이 가늘게 떨고있었다. 로병관은 너그럽게 그를 보았다. 

《하오. 기탄없이.》 

《저… 저흰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을 할데 대한 상급지휘부의 명령에 따라 전호굴설작업을 하고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공격명령을 준다면 저 앞고지를 단숨에-》 

《아, 알겠소. 내가 말하자는것도 그것이요.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내놓으신 전략적방침이요. 그럼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을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떠도는 잠자리비행기같은것도 대응타격이 두려워 가만 둬두는것인가. 그리고 깊숙이 전호나 파고 웅크리고있자는것인가. 이도저도 다 아니요. 우리 장군님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격이요. 우리 계선을 한치도 잃지 않으면서 적의 유생력량을 부단히 소멸함과 함께 우리 땅을 한치두치 되찾아낸다! 바로 이것이요. 동무네는 최근 있은 실패를 놓고 몹시 위축된것 같은데 그래선 안되오. 때에 따라선 이 고지까지 일시적으로 내줄수도 있소. 그러나 그것은 더 많은 적을 소멸하고 더 많은 지역을 해방하기 위한 전술적인 기동일따름이요. 비유해 말하면 너비뛰기선수가 몇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내달리며 휭 날아넘는것과 같은것이요. 휭- 하고 말이요.》

로병관은 손세까지 써보였다. 모두가 흥분한 얼굴로 설레였다. 진갑수의 눈에는 앞고지를 날아넘는 광경까지 환히 보이는것 같았다. 

《이젠 내 말이 리해되오?》 

로병관은 진지한 눈길로 중대장을 보았다. 얼마전에 있은 창격전에서 오른쪽어깨를 다쳐 팔을 제대로 못쓰는 중대장이였건만 이 순간 그는 여느때 없는 날파람있는 동작으로 거수경례를 붙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장령동지, 알겠습니다. 이제라도 명령만 주시면 본때있는 탈환전투를 벌리겠습니다.》

《옳소, 내가 여기 온것도 그때문이요. 쳐야 하오. 전우들의 피가 배여있는 고지를 보고만 있겠는가. 이건 위대한 장군님의 전략적방침을 관철하는 전투로 될것이요. 쳐야 하오. 내치고 끄당기고 다시 들이치고… 이렇게 부단히 적들을 피로케 하여 수세에 빠뜨려야 하오. 지금 릿지웨이는 말로는 정전을 떠들지만 실지로는 우리 나라의 온 강토를 집어삼킬 꿍꿍이를 하고있소.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선손을 써 강타를 먹인다면 양코배기들이 어떻게 할것 같소.》 

《혼쌀이 나 줄행랑을 칠것입니다.》 

진갑수가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로병관은 껄껄 웃었다. 

《그래 그렇지, 구대원답소. 어떻소? 다른 동무들도 다 이 동무와 같은 생각이요?》 

《네, 그렇습니다.》 

《문제 없습니다.》 

전사들의 떠들썩한 대답속에서 한사람만이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부소대장 현인석이였다.

로병관은 그의 약간 질릴사 한 얼굴과 가슴팍에 단 군공메달략수를 훑어보고는 자못 부드럽게 물었다. 

《상사동무, 동무생각은 어떻소?》 

로병관의 눈길이 자기에게 쏠린것을 알아차린 현인석은 약간 당황하면서도 기다렸던듯 한 태도로 일어섰다. 그러나 마주보기만 할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귀박죽이 축 처져내린 두리두리한 얼굴에 겁기어린 큰눈이 자주 섬벅거렸다. 

《왜 대답을 못하오.》 

중대장이 나무람하는 말에 현인석은 가긍할 정도로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저… 한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허 무슨 군인이 그렇소.》 

《저, 기동전의 전술적필요로 물러나는 경우 어데까지 내놓습니까?》 

《그럴사한 질문이요. 한데 물러난다는 말은 맞지 않고. 물론 동무의 말대로 전술적인 기동에서 필요성이 조성된다면 수㎞ 뒤계선까지 가게 될것이요.》 

《알겠습니다.》 

현인석은 뭔가 더 말을 할듯 하다가 또다시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제 자리에 물러 앉았다. 

로병관의 예리한 눈길이 그의 속까지 꿰뚫듯 번쩍였다. 

《동문 무슨 꼭 할 말이 있는것 같은데-》 

《아니, 없습니다.》 

현인석은 귀뿌리가 벌개져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중대장이 그를 측은하게 보다가 로병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령동지, 이 동무의 집은 우리 사단뒤의 속사리에 있습니다.》 

《그렇소?》 

로병관의 눈섭이 아예 맞붙어 버렸다.

《그래 부모들 소식은 알고있소?》 

그의 물음이 얼마나 은근하고 다정스러웠던지 현인석은 울먹거리는 기색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지난 전략적 일시적후퇴때 아버지가 매를 맞고 운신을 못했는데 지금은 일없답니다.》 

《매라는건?》 

《열성농민이라고 잡혀가서…》 

댓글목록

profile_image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음.》

로병관은 큰 숨을 내불고 한동안 엄엄한 얼굴로 있다가 무겁게 말을 떼였다.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피를 흘리게 하지 말자! 이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결심이요. 걱정마오, 전술적인 기동시에는 인민들에 대한 소개사업이 동반될테니까.》

그는 시계를 언뜻 보며 일어섰다. 얼굴표정은 여전히 엄엄했다.

《동무들,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많은것을 잃었소. 앞으로도 희생이 없다고는… 볼수 없소. 피는 피로! 우리는 백배 천배의 복수로 우리 인민을 도살하는 미제야수들을 모조리 소멸합시다.》

바람이 불어왔다. 동남쪽 대우산상공에는 좀전까지 보이지 않던 검회색비구름이 몰켜들고있었다. 산새들의 연주도 끊어졌다.

멀리서는 둔중한 폭음이 짝잃은 맹꽁이의 울음처럼 도간도간 울려왔다.…

《그러니 동무로서는 찬동이 아니라는거겠소.》

산길을 내리던 로병관은 구새먹은 썩은 나무통에 부딪쳐 걸음을 멈추었다. 황영학은 구새통에서 기여나오는 개미들을 내려다 볼뿐 말이 없었다. 발은 목이 더 움츠러들듯 하고 가늘게 피발이 선 두눈은 흐린 못처럼 침침하다. 이쯤하면 그의 마음을 돌려세우기가 간단치 않음을 잘 아는 로병관은 구새통옆에 피여난 산나리꽃 한송이를 따들고 화제를 돌렸다.

《여긴 무의산계곡같구만. 거기에도-》

《몇시로 계획했습니까?》

황영학은 과거로 이끄는 로병관의 말을 중둥무이시켰다. 로병관은 실심한 웃음을 지었다.

《례입은 그만하오. 공격시간은 새벽 세시요. 날씨도 우리를 봐주는것 같소. 일기예보에도 비가 올것이라고 했으니까.》

《최고사령부에서 알고있습니까?》

황영학은 여전히 례입을 썼다.

《그에 대해선 잘 모르겠소. 근데 동문 왜 이처럼 맥이 풀려있소?》

그의 말에 황영학의 두툼한 볼이 떨렸다.

《그래 동문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리라고 믿소?》 황영학의 물음이였다.

《건 무슨 소리요?》

《난 승산이 보이지 않아 하는 소리요.》

《허, 동문 언제부터 이렇게 되였소? 동무네 전사들이 우거지상이 되여있는것이 우연이 아니구만.》

《우리 전사들에 대해선 시비질을 하지 마오. 고지를 뺏겼는데 무슨 희희락락이 있겠소.》

《이런 때일수록 지휘관들의 얼굴이 밝아야지.》

《난 그런 배우노릇은 할줄 모르오. 그리고 전사들의 전투사기를 높인다 해서 진지를 로출시키면서까지 직승기를 쏴떨구고 고동구호를 웨치는것보다… 이길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는것이 지휘관이 할바라는거요.》

《다 말했소?》

《또 있소. 난 동무가 우리 전사들앞에서 한 적극적방어전에 대한 설명도 마음에 들지 않소.》

《건 뭘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요?》

《내치고 끄당긴다, 필요하면 뒤계선까지 물러선다?! 이것이야말로 이미 비판된 <기동전>의 재판이 아니요?》

로병관의 손에서 산나리꽃이 떨어졌다.

《황동무, 놀랍구만, 동무야 나보다 장군님을 더 잘 알지 않소. 장군님의 유격전술에 대해서도 그렇고, 대부대선회작전, 위성타원, 동성서격… 이 모든 작전전술의 요점은 령활무쌍한 기동전이 아니겠소. 이 면에서야 동무가 나보다 선생이 아니요.》

《유격대생활 8개월짜리를 너무 추지 마오.… 하여간 난 이번 작전이 최고사령관동지의 뜻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오.》

《그럼 동문 나나 전선사령관동지를 믿지 않는다는것이 아니요?》

《납득이 잘 안가기때문에 하는 소리요. 사실 대우산을 내준것도 바로 지금의 계획처럼 되였기에… 그렇게 된것이 아니요?》

《그와는 다르오. 이번에는 린접사단의 두개 련대가 좌우량익에서 동무네를 지원하지 않소? 그뿐아니라 초보적인 정찰자료와 우리들의 타산에 의하면 놈들의 방어는 초라하오. 우리의 기동타격전술에 걸려들어 고착방어가 아니라 이동방어를 하면서 역습을 위주로 하는 전술에만 매달려있소.》

《전번에도 그와 같은 타산으로 진지굴설도 없이 싸우다가 밀려난것이 아니요.》

《두렵소?》

로병관은 상급다운 위엄을 보일듯이 낮으나 침착한 목소리로 들었다.

황영학은 그를 외면한체 검회색구름이 떠도는 대우산쪽을 바라보았다.

로병관은 부지중 가슴아픈 소리로 말했다.

《동무와 나는 왜 이렇게 자주 엇나가는지 모르겠구만.》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그래 적의 포화력을 누를 준비는 되여있소?》

《그건 좀 문제요. 동무도 알다 싶이 우리한테 포들이 몇문이나 있소.》

그 말에 황영학의 얼굴이 벽돌장처럼 붉어졌다.

《로동무, 동문 전선사령부에 있으면서 왜 포들을 후방쪽으로 끌어가게 하는걸 눈 감고있소. 도대체 그건 무슨 전술때문이요?》

로병관은 난처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있다가 언짢은 소리로 말했다.

《거야 전선사령관의 명령서에도 밝혀있지 않소. 포의 움직임이 어렵고 폭격에 의한 손실이 크기때문인것이고 또 대부분의 포들을 다시 수리해야 하니만치 어쩔수 없지 않소. 포탄공급도 원활하지 못하고 보급로들이야 몽땅 적들의 폭격으로 마비되여있는것이니 이 역시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요?

문제는 불의의 야습으로 일거에 적진을 타고 앉는것이요. 그렇게 되면 적들의 포들도 벙어리가 되고말거요.》

《공격시간을 30분 앞당겨주오.》

《그건 왜?》

로병관은 저으기 반가와하는 속에 물었다. 황영학은 여전히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대우산기슭에 은밀히 접근하자면 30분안에는 안되오. 그때는 벌써 날이 밝기 시작할 때가 아니요.》

《좋소. 그럼 두시반으로 합시다.》

정각 2시 30분, 하늘에는 별빛 한점 없고 온 공간은 칠흑같은 어둠에 잠겼다. 대줄기같은 비가 나무잎과 풀잎을 두드린다. 로병관의 말대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억수로 변한것이다.

파다만 전호에 자리를 잡은 로병관은 연신 비물을 훔치며 어둠속전방을 주시하고있다. 그의 눈앞에는 넉대의 전화기와 신호권총이 놓여있다.

《이젠 떠나겠습니다.》

기관단총을 앞가슴에 걸멘 황영학이 그앞에 다가왔다.

《다른… 할 말은 없겠소?》

로병관의 말소리는 은연중 떨린다. 그 말에 황영학은 기다렸던듯 입을 열었다. 낮에와는 판다른 밝은 태도이다.

《만약 앞서간 구분대가 돌격선에 닿기 전에 발견된다면 포사격을 좌우량익에 해주오.》

《그건 무엇때문에? 혹시 동문…》 로병관은 저으기 놀랐다. 포사격을 좌우량익에 해달라는것은 적의 시선과 화력을 그리로 돌려 황영학이 자기 련대의 손실을 피하자는 속심이 아니겠는가.

《로동무, 동문 뭔가 내 말을 오해하고있구만.》

《그럼 뭐요. 만약 동무말대로 한다면 적들도 머저리가 아닌이상 3면포위의 위험을 알아차리게 될것이 아니요.》

《그럴수도 있소. 하지만 나도 적들이 머저리가 아니라는걸 다시 생각하게 된거요. 고맙게도 적들이 우리의 정면공격에만 매달려 모든 력량을 집중해온다면 리상적일것이요. 하지만 우리의 3면포위전술에 여러번 경을 친 놈들이 그걸 믿을리 있소?》

《그러니 3면포위공격을 한다는걸 아예 공개하고 친다는것이요?》

《공개한다면 그 반대로 생각할수도 있지 않소.》

《허허, 그건 결국 제 수에 제가 속는것이요. 동문 지나치게 신경이 과민해졌구만.》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신경을 쓰게 되는것은 적들의 화력이 우리쪽에만 쏠린다면 별문제겠지만 그걸 믿고 올라올 린접련대들에 불시타격이 있을가봐 두렵단 말이요.

난 밤마다 대형직승기들이 저 고지에 날아드는걸 보며 방어상태가 간단치 않다는걸 알고있소.》

《왜 이제야 그걸 말하오. 난 동무가 이처럼 위축되여있을줄 몰랐소.》

《작별인사치고는 너무 친절하구만. 자 손이나 한번 더 잡아보기요.》

로병관은 이때에야 자기 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황영학의 비젖은 손을 잡아쥐였을 때 문득 가슴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7년전 중국관내의 무의산에서 작별할 때와 같은 아픔이였다.

황영학은 선두대대가 나가며 늘여놓은 통신선을 더듬으며 산길을 내렸다.

로병관은 그에게 뭔가 따뜻한 말을, 부디 무사하기를 바라는 말을 하려 했으나 황영학은 이미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산아래에는 련대주력으로 되는 두개 대대가 있었다.

《출발!》

산아래에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로병관은 가늘게 한숨을 쉬였다. 그들의 대화로 하여 멀찌감치 물러서있던 사단지휘관 몇이 그에게 다가왔다.

《계획대로 되는것 같습니다.》

참모장의 말에 로병관은 시계를 보았다. 야광시계의 시침은 10분전 3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선두대대를 인솔한 정치부대대장은 (대대장은 전번 전투에서 전사하여 부재중이다.) 2시 50분까지 돌격선에 접근하겠다고 했었다.

(그래, 모든것이 잘될것이다.)

로병관은 전화통에 시선을 옮겼다가 (돌격선을 차지하게 되면 그쪽에서 발전자돌리개를 두번 돌리게 되여있다.) 박격포좌지들을 살펴보았다. 진한 어둠속이라 몇사람의 형체만 겨우 가늠해볼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갔다.

12문, 그것도 120㎜는 두문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82㎜뿐이다.

그 포들은 하나같이 황영학련대의 돌격로앞 산중턱과 봉우리를 겨냥하고있다.

(파구가 뚫려 정점에로 오른다면 모든 적들은 그리로 쏠릴것이다.

영학이, 미안해, 하지만 어쩔수 없지 않나. 몇십분, 아니 몇분만 견지하면 될거네.)

그때면 좌우에서 협공하게 될 두개 련대가 파도쳐 올라갈것이다. 갑자기 돌격선으로 택한 적고지의 아래쪽에서 희스름한 해파리같은것이 둥- 떠올랐다.

《아,》 누군가의 짧은 웨침과 함께 그 《해파리》는 수십수백으로 터져오르고 동시에 벼락치듯 한 폭음과 자지러진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져나왔다.

(조명지뢰를 설치했댔구나.)

로병관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무의식적으로 전화통을 잡는 순간 고지 꼭대기에서 세개의 탐조등이 조명지뢰가 터져오른 구역을 대낮처럼 밝혔다.

그는 자지러진 총성과 폭음속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만세!》소리를 들으며 옆에 선 련포군장의 어깨를 사납게 들이쳤다.

《뭘 하고있소. 때리오. 탐조등과 중화기부터-》

대뜸 목이 쉬여 버렸다.

《발사!》

《발사!》

연거퍼 웨치는 구령과 함께 퐁퐁 하는 너무나 빈약한 소리가 울리고 좀 있어 맞은편 고지의 몇군데에서 벙끗하는 섬광이 일었을뿐 탐조등은 끄떡도 하지 않았고 적의 사격은 더욱 맹렬하여졌다.

로병관은 다급히 전화기의 발전자돌리개를 돌렸다.

황영학련대의 참모장이 전화를 받았다.

《지금 어떻게 되고있소. 사전발각이지?》

《예, 인발선을 밟는통에… 그래서 련대전체가 돌격에로 나갔습니다.》

《련대장은?》

《련대장동지도 돌격전에-》

《련대장도?!…》

《장령동지, 1참호를 넘어서고있습니다.》

《그렇소?!》

로병관은 눈물이 찔끔 나올것 같았다.

《동문 위치를 뜨지 마오.》

로병관은 전화기를 놓고 쌍안경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밤중에, 그것도 비내리는 속에서 쌍안경이 무슨 의의가 있는가.

로병관은 외마디부르짖음과 같은 만세소리가 계속 울려나오는것을 들으며 시계를 보았다.

3시 3분!

그는 거뭇한 산발의 좌우량측을 새매처럼 노려보았다.

(산중턱에는 붙었을테지. 조금만 있으면.)

두개 련대의 익측공격은 량허리를 찌르는 단도의 일격으로 될것이다.

그러나 비틀려진 《운수》였다.

그 어떤 자동기계의 조종인듯 푸른 광선의 거대한 묶음이 산고지의 좌우기슭까지 훑었고 기다리기나 했던듯 거기서도 기관총과 로케트포들, 화염방사기가 불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두개의 전화통이 거의 동시에 울어댔다. 로병관은 절망적인 기분속에 두개의 송수화기를 량귀에 붙여들었다.

《나요, 로병관이요.》

황영학이네 좌우에서 협력하게 된 련대들에서 오는 전화였다. 돌격선에 이르기전에 발견되였다는것과 포사격으로 탐조등만이라도 부셔달라는 전화끝에 한 련대장은 《계속 공격해야지요.》라고 했고 다른 련대장은 화력권을 벗어난 다음 더 멀리 우회해보겠다고 하며 동의를 구하는것이였다.

로병관은 입이 얼어 붙은 사람마냥 대답을 주지 못했다. 두 련대장의 말과 떨리는 음성에서 새로운 결심채택을 요구하고있음을 알게 된것이였다.

《기다리오.》

로병관은 네번째 전화통을 쏴보다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이미 약속이 되여있었던 교환수는 그의 말소리를 알아듣기 바쁘게 전선사령관과 련결시켜주었다.

《어떻소?》

로병관의 눈에는 랭랭한 얼굴에 표정변화가 없는 차거운 눈길의 전선사령관이 방불히 보이는것만 같았다. 그로 하여 그는 자신을 다잡으며 전투과정을 요약하여 보고했다.

《그러니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는거요?》

《네,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흔들어는 놓았겠지?》

전선사령관의 말은 평온하다고 할만치 침착했다. 로병관은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현재 황영학동무의 련대는 1참호에까지 접근했습니다.》

《다른 련대들도 그렇게 되면 포화력에서야 벗어날수 있지 않소. 창격전에 들어가면야… 먹어놓은 만투(빵)인데-》

《그건… 지금같은 화력권속에서 불가능한것입니다.》

《황영학이때문이야. 지금쯤이면 2참호까지 깔아뭉갰어야지. 그렇게 되면야 적들이 좌우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있었겠는가.》

로병관은 아연해졌다. 방금전에 선두대대의 조기발각과 예상치 않은 화력에 대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2참호까지 먹었어야 된다고 하니 뭔가 사령관이 착각에 빠져있는듯싶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상관이자 은사인 김웅사령관에게 불만을 내비칠수 없었다.

《그래, 지금 뭣이 필요되오?》

《곡사포 한개 련대만 있으면 되겠는데… 거야 바랄수 없는것이고-》

《포같은건 말도 마오. 그건 유럽군대의 귀족놀음이요. 정 곤난하면… 철수하오. 오늘전투는 위력정찰전인셈치고-》

《알겠습니다.》

전화기에서 쉭-하는 잡음만 울릴뿐 더는 대답이 없었다.

로병관은 입술을 악문채 신호권총을 쳐들고 주둥이에 노란색을 입힌 탄알을 바꿔넣었다. 퇴각신호의 이 탄알을 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는 사단참모장에게 신호권총을 맡기고 세개의 송수화기를 한손에 쥐였다. 손재봉기를 돌리듯 연거퍼 발전자돌리개를 휘돌리고난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교호식철수를 진행하시오.》

비는 계속 억수로 퍼붓는다.

미군은 이런 날에 추격전을 하지 못할것이다.

로병관은 목단추를 터쳐 놓고 흘러내리는 비물을 들이삼켰다.

그리고는 한동안 눈을 감은채 까딱 않고있었다. 머리가 팽팽 돈다. 모든것을 잊고싶다.

《황영학련대가 어찌된 일이요?》

누군가에게 하는 사단참모장의 말소리에 그는 덴겁한 사람처럼 일어섰다. 1참호부근이라고 짐작되는 곳에서는 여전히 맹렬한 화력전이 벌어지고있었다. 좌우 량옆에 쏠렸던 중화기의 화력도 그들에게 집중되고있었다.

(저 고집쟁이가.)

로병관은 황영학련대와 통하는 송수화기를 다시 들고 발전자돌리개를 맹렬히 돌렸다. 그러나 응답이 없다. 전화선이 끊어진것 같았다. 로병관은 입술이 말라들었다.

《신호탄을 다시 발사하오.》

그의 말과 함께 노란 정구공같은것이 황영학이네 련대쪽으로 날아갔다.

5분… 10분… 황영학이네 련대는 여전히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탐조등의 빛발과 함께 내려쏘는 질풍사격, 거기에 대응하는 아군의 총소리는 간간이 울릴따름이다.

(전멸?!)

로병관은 자기를 통제할 힘을 잃어버렸다. 무의식중에 권총을 빼든 그는 황영학이 내려간 길을 따라 내달렸다. 순간 억센 팔들이 그를 부둥켜 안았다.

《련락병들을 파견했습니다. 신속히 철수하라고-》

로병관은 또다시 입가로 흘러내리는 비물을 삼켰다.

포탄들이 가까이 와 터지기 시작했다.

《뒤로 은페해야겠습니다.》

《은페?!》

로병관의 말이 어떻게나 차겁게 울렸던지 몸을 그러잡고있던 팔들이 저절로 풀렸다. 그는 련포군장을 불러 모든 포탄을 황영학련대의 전방에 퍼부으라고 으르듯 말했다. 련포군장은 기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포탄은 전부 쏴버렸습니다.》

로병관은 몽둥이에 맞은 사람처럼 비칠했다.

머리우에서 슈슈- 하는 휘파람소리같은것이 울리더니 뒤켠에서 무서운 굉음이 일며 거센 폭풍이 그를 후려쳤다.

《포들과 참모성원들은 뒤계선으로 철수하시오.》

그는 장춘공격전투때의 박락권을 그려보며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포탄은 더 자주 날아왔다. 참호부근에서의 맞불질도 끝난것 같았다.

(정말 다시 못 만나게 된단 말인가.)

황영학의 얼굴이 불쑥 떠오르며 심장이 비틀리우듯 아파들었다.

또다시 요란한 폭음과 함께 나무잎이 우수수 떨어져내리고 매캐한 화약내에 기침이 터져나왔다.

《빨리 대피해야겠습니다.》

사단참모장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로병관은 그때까지 참고있던 분노를 그에게 터뜨렸다.

《동문 뭔가. 참모성원들을 철수하라고 하지 않았소? 난 상관말고 물러가오.》

로병관은 이 순간 지나가는 파편에라도 맞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렇다. 차라리 죽는것보다 못하다.)

김웅의 랭랭한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가 죽는다 해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을것이다. 그저 애석한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할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몹시 아파할테지.

이 전투는 이틀전 김웅의 순간적인 결심에서 계획된것이였다.

로병관의 눈앞에는 그때의 광경이 생생히 밟혀왔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대우산전투에서의 실패를 두고 몹시 노하셨소. 이로 하여 우리의 지휘능력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하시였소.》

김웅은 뒤짐을 진채 방안을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지도앞에서 입술을 깨물기도 하였다. 그때 로병관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김웅사령관에게 친서를 보내셨다는것은 알았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고있었다.

《이렇게 합시다.》

김웅은 벗어진 이마를 두손가락으로 꼭 짚고있다가 지시봉을 쳐들었다.

《대우산탈환전투를 조직해야겠소. 이 전투에 대해서는 탈환후 보고드리기로 합시다.》

《최고사령부의 승인도 없이 말입니까.》

《최고사령관동지의 친서에는 탈환할데 대한 사상이 밝혀져 있소. 한치의 땅도 내주지 말데 대한 지시가 그렇지 않소. 그리구 생각해 보우. 우리가 주동적으로 벌린 작전이 잘못된 이상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것이 아니요.

나나 동무나 자기 체면도 생각해야지. 항일빨찌산들이 대대장, 련대장을 하는판에 명색없는 우리가 큰 별을 달고 제구실을 못해서야 되겠소?》

강파른 몸매, 강마른 몸집, 차고 여물진 눈에서는 시퍼런 불꽃이 이는듯 했다.… 

《섯, 누구야?》

앞에 선 보초병의 웨침소리에 이어 대답하는 군호소리와 함께 풀넝쿨과 나무삭정이를 밟으며 올라오는 거뭇한 그림자들이 안겨왔다.

로병관은 가슴이 울컥했다.

(황영학이네로구나.)

몇명이?… 희생자수를 생각하게 되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좀 있어 서로 부축하거나 팔을 낀 사람들이 나타났다. 잔등에 업힌 전사들도 있었다. 맞은편 고지에서 비쳐대는 탐조등의 역광에 그들의 형체가 뚜렷이 안겨왔다. 억대우같은 반총수의 잔등에 업히운 전사가 진갑수라고 하던 《구대원》임을 알아보았다.

《어데 상했소.?》

로병관은 반총수의 겨드랑이어방을 붙잡아 끌어올리며 다급히 물었다. 로병관을 알아본 반총수는 씩씩한 기상을 보이려는듯 두 발꿈치를 모아붙이며 대답했다.

《폭풍에 조금 날렸는데- 약간 돈것 같습니다.》

씩씩 황소숨을 쉬는 반총수의 드바쁜 숨결이 로병관의 가슴을 북치듯 했다.

《수고했소. 좀 내려놓고 쉬지.》

《요아래에 전방군의소가 있답니다.》

반총수는 경례대신 머리를 끄덕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잔등에 업힌 진갑수의 입에서 무슨 신음소리 같은것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여겨듣던 로병관은 어금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엄마!》소리가 가늘게 들렸던것이다. 그런데 진갑수는 눈을 뜨고있었다. 그는 로병관을 보았건만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것 같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것 같았다.

(군인으로서는 끝장이구나.)

어린 전사들인 경우, 참혹한 전투의 《세례》앞에서 위축되거나 《도는》현상이 있고 그런 체험을 겪은 전사는 늘 뒤자리에서 우물거리게 된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로병관이였다. 숲이 와실렁거리며 비록 정연하지는 못하지만 3렬종대를 이룬 대렬이 나타났다. 로병관은 눈굽이 시큰해서 그들을 향해 마주 다가갔다.

앞에 선 지휘관이 《차렷!》 구령을 주었다.

《그만하오. 련대장동무는 어데 있소?》

다급한 그의 물음에 지휘관은 머뭇거리는 자세로 있다가 머리를 수그렸다. 로병관은 가슴이 섬찍하였다.

《왜 대답을 못하오. 그가 어데 있소?》

《엄호조로 한개 중대를 데리고…》

《살았소 죽었소?》

《저희가 떠날 때까지는 건재해있었습니다.》

《진지를 차지하고 휴식하오.》

로병관은 《휴식》이라는 말을 하고는 혀를 깨물었다. 그의 옆을 지나온 전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로병관은 어림짐작으로 수자를 세웠다. 대렬은 연신 나타났다.

세시간후 로병관은 김웅사령관 방에 가있었다. 김웅은 흰 사기물을 입힌 철제고뿌에 중국제 홍차를 넣고 숟가락으로 휘저으며 로병관의 보고를 들었다. 그의 두서없는 보고가 끝나자 김웅은 파랗게 질린 얼굴빛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태도로 홍차고뿌를 내밀었다.

《이걸 마시오.》

로병관은 고뿌를 받아들었으나 채 파지 못한 전호에서 적을 대기할 전사들이 떠올라 마실수 없었다.

김웅은 연필로 책상을 다독이다가 매몰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에서 실패원인과 교훈을 찾고… 바로잡아야 하겠소.

기본실패원인은 황영학이 제대로 내밀지 못한데 있소.》

《사령관동지, 그건… 그렇게 된것이 아닙니다. 원인을 찾는다면 제가-》

《그따위 인정은 버리오.》

《인정때문이 아닙니다. 황영학동무네는 결사적으로 싸웠고 황영학동무로 말하면 다른 련대들의 퇴각까지 엄호하며 마지막까지 싸웠습니다. 그는 팔에 부상까지 당했습니다.》

《부상은 부상이고 잘못은 잘못이지.》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도 밀고 올라갈수 없습니다. 그 탄막을 헤친다는것은 전멸을 의미합니다.》

로병관의 항변하듯 하는 말에 김웅은 날카로운 비웃음을 지었다.

《동문… 불속이라도 뚫고나가라면 나가는것이 군대요. 더구나 그런 탄막이 형성될 때까지 뭘했는가 말이요. 놈들이 귀신이 아닌이상 우리의 야습을 알리 만무한것이고 조명지뢰가 터졌을 때에야 비상소집을 하고 자리를 차지했겠는데 그동안 뭘했는가 말이요.》

《조명지뢰가 터짐과 함께 사격이 개시되였습니다. 놈들도 이젠 우리의 야간공격법을 알고…》

《그만하오.

나도 어려웠으리라는걸 리해하고있소. 그래서 철수명령을 내린것이고, 여기서는 우선 나자신부터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오. 그러나 너무 상심할것은 없소. 나로서는 이미 예견했던바이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의 전투는 위력정찰전투라고 할수 있소.》

《정찰전?!》

로병관은 아뜩해졌다. 세개 련대를 투입한 전투를 정찰전으로 묘사하는 김웅의 배포야말로 하늘땅도 짓누를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는 뭔가 속히우고 배반당한듯 한 기분속에 어금이를 깨물었다.

《여기로 오오.》

김웅은 그의 기분에는 꼬물만치도 주의를 돌리지 않고 벽에 붙은 작전지도에 다가갔다. 그의 손에 들린 지시봉은 대우산에 가 멎었다.

《나는 래일안으로 대우산을 다시 탈환할 작전을 결심했소.》

《?…》

《이번에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말그대로 작전이요. 동무의 보고를 들어봐도 그곳엔 적게 잡아 한개 군단포화력과 증강된 보병사단이 도사리고있소. 이걸 그물에 통채로 넣어 잡아족치자는것이요. 우리는 여기 전선동부의 세개 군단들중에서 각기 한개 사단씩들을 뽑아 즉 세개 사단으로 대우산을 멀리서부터 우회포위하고 들이조이자는것이요. 동문 장춘포위전에 참가해봤지? 이번 작전은 그 비슷한 포위공격이요.》

로병관은 가슴이 서늘해지는중에 머리속이 뒤범벅이 되였다.

《한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하오. 내가 말하는것도 동무의 의견을 들어보자는것이요.》

《장춘포위전은 수개월동안 준비된것이고 또 그만치 시간을 끈것이 아닙니까.》

《동무의 말뜻을 알겠소. 물론 동무 생각대로 장기적인 포위전을 하자는것은 아니요. 다만 그 형식이라고 할가. 튼튼한 포위환을 조성하고 질식봉쇄의 위험을 깨닫게 하고 들이친다는것이오. 미군은 산악방어전에는 익숙치 못했거니와 하려고도 하지 않소. 산악방위의 불리성은 엥겔스때부터 론의된것이고 오늘에 와서는 더욱 그렇소. 하니만치 놈들은 우리가 대군으로 포위환을 형성한다는걸 알면 고지방어를 포기하고말것이요. 그놈들은 오직 평지전만 바라오. 거기서만 장끼를 보일수 있는것이니까.》

김웅은 화려한 전투승리의 종막을 그려보듯 회심의 미소를 띠웠다.

《사령관동지, 세개 사단이 움직이면 인차 로출되고 그 경우 적의 포병대와 항공대의 화력속에 들게 되는데 우리로서 그를 막을 힘이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생각했소. 그때문에 멀리서부터 우회하여 넓은 산개대형으로 조인다는것이요. 폭탄과 포탄은 밀집대형에나 위력한것이지 넓게 펼쳐진 수십리포위선을 다 없앨수야 없지 않소. 고지밑에 이르면 제편이 상할가 두려워 폭탄도 떨굴수 없는것이고 대군에 포위된걸 깨닫게 된 적들은 돌려세운 트럭에 올라앉으려 할것이오. 그때 답새긴다 이것이요.》

로병관은 여느 때라면 그의 《작전적혜안》에 수긍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방금 본 요새화된 고지에서의 맹렬한 화력을 상기해보게 되자 하나의 환상곡을 듣는것만 같았다.

《왜? 납득이 안되오?》

《네, 적들이 사령관동지의 의도대로 제풀에 물러선다면 몰라도… 포병화력과 좋기는 비행대화력으로 적의 중화력기재들을 파괴하기 전에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동문 무슨 잠꼬대같은 소릴 하오. 없는 포와 비행기를 무슨 손오공이라고 만들어내겠소.》

《양덕계선에 보낸 중곡사포들을 다시 끌어내오면.》

김웅은 어느 정도 풀어진 얼굴색으로 말을 이었다.

《병관이, 언젠가도 말했지만 양덕계선에 보낸 포들은 단순히 적의 항공대타격에서 감춰놓기 위한것만 아니요. 만약 우리의 기동에 걸려든 적들이 양덕계선까지 밀려오는 경우 거기에 <유엔군>전체의 무덤을 만들자는것때문이요.》

《아니 거기까지 퇴각한단 말입니까?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그런 지역적기동은 우리한테 맞지 않는다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소. 때문에 만약 경우라고 하는것이지.》

김웅은 기분을 잡친듯 눈살을 찌프렸다.

《동문 이제 가서 좀 쉬오.》

재차 하는 말에 로병관은 얼른 떠나고싶었다. 그러나 머리속 한구석을 누르는 무거운 생각에 다시 물었다.

《최고사령부에서는 비준이 있었습니까?》

《박일우동지한테 작전안을 올려보냈소. 사실 내 욕심으로 말하면 최고사령관동지께는 우리 작전이 승리한 다음 보고드려졌으면 하는거요.

그이께서는 우리를 이처럼 크게 믿고 중임을 맡겨주셨는데 이제껏 무엇 하나 제대로 못했거든.》

로병관은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제가 쏟은 물은 제가 닦는것이 옳은 처사가 아닌가.

《작전의 중요성때문에 내 부관을 보냈소.》

김웅은 이 말로써 자기 이야기를 끝마쳤다.

김웅의 부관이란 김웅이 상해에서 왜놈고관들과 주구들에 대한 암살공작을 진행할 때 그의 호위원격으로 따라다니던 사람이다.

장령숙박소에 들어선 로병관은 비젖은 속옷을 갈아입은 뒤에도 인차 잠자리에 들수 없었다.

김웅의 말을 들을 때 석연치 않던 문제들이 명료한 륜곽으로 드러났다. 타당성있는 작전안이라는것으로 답이 모아졌다.

이제 벌릴 작전도 규모만 다를뿐이지 오늘까지 진행한 두차례의 전투방식과 본질상 같았다. 얼핏 생각하면 같은 방식의 반복은 실패라는 결론이 나오지만 적들로서 볼 때 실패한 방식을 세번씩이나 되풀이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할것이다. 분명히 김웅은 그것을 내다보고 이번 작전을 세웠을것이다. 다만 한가지 께름한것이 있다면 한두개 련대도 아닌 세개 사단까지 인입시키는 작전을 장군님께 보고드리지 않고 할수 있다는 불안이였다.

김웅은 이번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작전과 전투행동때마다 먼저 박일우에게 문의하고 보고하는것을 법처럼 여겨왔다. 례외로 되는것은 전투승리보고때만이다. 이 역시 리해되는것은 있었다. 1차남진때 인천방어에 력량을 집중시킬데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집행하지 못한것으로 김웅은 엄한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그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몹시 어려워하면서 기쁨의 보고가 아닌 거의 모든 문제는 박일우를 통해 장군님께 보고드려왔다.

(박일우동지가 보고드려 결론을 받을테지.)

로병관은 이런 생각으로 마음속 그늘을 지워버렸다.

그가 김웅이며 박일우를 알게 된것은 중국의 연안에 있던 조선의용군을 찾아갔을 때부터였다.

중국팔로군에서 지휘원을 하던 무정을 사령관으로 하여 조직된 《조선의용군》에서 박일우는 부사령관을 하였고 김웅은 그 아래에서 지대장을 하였다.

김웅의 눈에 《군사적수재》로 인정되였던 로병관은 그의 작전참모격으로 있으면서 김웅과 박일우가 남다른 친분관계를 맺고있는것을 알게 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과 쏘련군에 의한 조국해방이 알려졌을 때 박일우와 김웅은 거의 매일밤을 마주앉아 귀국후의 《조선의용군》의 명분을 놓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였다. 바로 그럴 때 김일성동지께서 해내외의 모든 독립운동자들을 부르신다는 전갈이 왔다.

《호!》

그날 박수를 치며 방안을 거닐던 김웅의 호기만만한 얼굴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김웅은 그때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새 조선건국에 대하여 말하면서 정규군사교육을 받은 《조선의용군》출신들이 군건설에서 한몫 할것이라는 일장의 연설도 했다.

그때문이였던가, 귀국렬차가 심양에 머물렀을 때 김웅은 동북지방에서의 새로운 내전을 예시하며 군사학책과 훈련으로만 전쟁을 알고있는 로병관을 비롯한 여러 《수제자》들을 림표가 지휘하는 4야전군소속 조선인부대들에 파견했다.

로병관은 그 길에서 중국동북해방작전에 참가한 조선인민혁명군 강건부대를 만났다.

그가 장춘해방전투로부터 중국국내해방전역에 참가한것은 2년밖에 안되였으나 조국에 돌아왔을 때는 《정규전》의 경험자로 인정받게 되였고 김일성동지를 만나뵙는 영광까지 지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경력으로부터 사평전역까지의 상세한 전투참가과정을 물으면서 인민군건설의 기둥감이라고 크나큰 믿음을 주시였다.

하여 그는 7년전 중국의 무의산에서 헤여져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갔던 황영학이보다 한급 높은 사단참모장의 직무를 맡게 되였고 전쟁이 발발되면서부터는 총참모부에서 일하게 되였다. 그때의 그의 직속상관은 강건이였다. 그런데 강건과는 석달밖에 있지 못했다. 상주해방전투를 치른 후에 있은 강건의 희생은 로병관에게 있어서 한생에 지울수 없는 큰 상실로 되였다. 그는 강건을 통해 김웅이나 박일우의 강의에서 듣지 못했던 김일성장군님 전법의 첫장을 깨치던중이였던것이다.

(여하튼 잘되겠지.)

포근한 모포속에 누웠을 때 로병관은 전사들의 야외잠자리를 돌아볼 황영학의 모습이 다시 떠올라 한동안 이리궁싯, 저리궁싯하며 천정의 동발목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다음날 조회차로 김웅이한테 들어간 로병관은 사령관의 얼굴이 흐린 밤처럼 어두워진데 놀랐다. 어데 편치 않은가 하는 말에 김웅은 팩하여 내쏘았다.

《부관이 잘못된것 같소. 박일우동지는 그를 보지조차 못했다고 하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다른 련락군관을 보냈소. 그놈의 항공에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런데 점심녘에 만난 김웅은 그답지 않은 밝은 웃음으로 로병관을 맞으며 남이 들을가 저어하듯 중국말로 말했다.

《인슈이! (윤허, 승인을 받았다는 뜻) 그도 몹시 걱정하오. 최고사령관동지의 기대와 신임에 따르지 못한다고- 그런데 동문 밤잠을 제대로 못잤구만.》

《저… 그런게 아닙니다.》

로병관은 더 다른 말을 할수 없었다.

이 시각 그는 김웅의 《작전결심안》이 밴플리트의 책상우에 올라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