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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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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806회 작성일 20-05-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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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력사 가운데 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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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1

 

가을이다.

해빛이 정원을 밝게 비치고있었다. 고요가 깃든 마당안에는 한껏 무르익은 가을정취가 소슬바람을 타고 흘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방금 점심식사를 끝내시고 마당을 거닐고계시였다. 아직 군복차림인 그이께서는 괴석이 몇개 놓이고 그옆에 향나무가 한그루 소담하게 자라고있는 정원을 거니시면서 이제부터 밤까지 해야 할 사업을 구상하고계시였다.

걸음을 옮겨짚을 때마다 구두발소리가 울리면서 짙게 가라앉은 마당의 고요를 흔들었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남쪽으로 트인 널대문앞까지 나가셨다가 다시 돌아서서 마당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의 뇌리에는 아침 첫시간에 김책에게 불쑥 하게 된 자신의 한마디 대답이 떠올랐다. 오늘아침 김책이와 사업토의를 하실 때 그로부터 조국개선이후 지방들에 파견하신 정치공작원들의 그간 사업정형에 대한 종합보고를 받으시였다. 김책은 파견원들의 사업에서 례외없이 성과가 크다고 하면서 정치공작원을 한개 도에 몇명씩이 아니라 매개 군에까지 파견했더라면 더 많은 성과를 거둘수 있었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렇게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라고 하시였다. 그런데 그 한마디 되뇌임이 하도 많은 사연과 뜻을 담고있어 그랬던지 오전해껏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되새겨지시였다. 하기는 이때 당을 창건하는 문제, 정권을 세우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문제, 각계각층 군중을 통일전선에 결속하는 문제, 일제가 파괴한 경제를 복구하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는 문제 등 사업을 론의할 때마다 매번 그 종착점은 그것을 누가 책임지고 담당수행하는가 하는데 이르군 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떼시면서 당면하게 처리하여야 할 사업에로 사색을 돌리시였다.

며칠동안 보고를 받아보신데 의하면 시장의 물가가 하루건너 파동치고있으며 시민들 특히 로동자들의 생활이 불안정하고 8. 15를 전후하여 례년에 없었던 큰물피해로 해서 생겨난 리재민들은 아직 한지에 나앉은채로 있다고 한다. 물에 잠겼던 보통벌 토성랑에서는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하였다. 비단 평양뿐만아니라 함흥, 청진, 원산, 신의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위는 깜박 조을듯이 고요하였다. 집무실로 쓰는 2층도 경위대원이 거처하는 아래층방들도 조용하였다. 식사때가 퍽 지난뒤라 사람들이 드나들던 식당칸도 조용하여 산속의 밀영처럼 고요하였다. 오직 다른것이 있다면 이깔나무우듬지를 흔드는 바람소리 대신에 한껏 약해진 거리의 소음이 뒤골목 추녀밑에 알릴듯말듯 감돌고있을뿐이다.

마당을 거니시던 그이께서는 두손으로 허리를 짚으시고 유자덩굴이 받침대를 타고 담장에 기여오른것을 보시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이미 황이 든 넌출에는 끝으로 가면서 크기가 작아진 유자들이 귀엽게 매달려있었다. 유자열매는 한껏 무르익어 빛갈이 곱고 그 향기 또한 여간만 그윽하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손끝으로 서리가 내돋은 몽글몽글한 열매를 다쳐보시였다. 만경대의 사립문 량쪽 울바자에도 가을이면 이렇게 유자가 달려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시였다.

부엌문이 덜컥 열리더니 작식을 담당한 녀대원 안명숙이 바께쯔를 들고 나왔다. 집무실로 올라가신줄 알았던 장군님께서 마당에 계신것을 띠여본 안명숙은 바께쯔를 놓지 못하고 주춤거리였다. 사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산에 있을 때도 그러했지만 이렇게 생활환경이 달라진 오늘에도 그이께서 혼자 거니실 때면 사업을 두고 깊은 사색에 잠겨계신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안동무! 이걸 좀 보오.》 그이께서는 안명숙이쪽으로 돌아서시며 말씀하시였다. 《유자가 이렇게 익은걸 보니 우리가 산에 심은 호박도 지금쯤 딸 때가 되지 않았을가.》

그제서야 그는 마음을 놓으며 손뽐프옆에 바께쯔를 놓고 한낮의 해빛에 유난히 드러난 유자덩굴쪽으로 고개를 돌리였다.

《아이, 정말 흠뻑 익었군요.》

안명숙은 물묻은 손을 이마로 가져가며 웃었다. 그는 이 마당에서 살다싶이 하면서도 여직 그것을 띠여보지 못했던것이다.

안명숙은 즐거운 목소리로 산에 심은 호박도 잘되였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올해는 그 호박맛을 누구도 보지 못하게 됐군.》

불과 한두달차이건만 벌써 밀영생활은 아득한 옛일처럼 추억의 저쪽 언덕에 서있었다. 그이께서는 밀영주변에 심은 호박이며 감자를 두고 잠시 그윽한 감회에 잠기시였다. 광대한 지역, 끝없는 밀림속의 임의의 장소들에 씨앗을 박아넣은 감자나 호박 포기들은 매우 허망한것 같지만 유격대생활을 체험한 사람치고 누구나 이 우연의 고마움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안동무도 밀영생활을 할 때 우리가 심은 호박맛을 더러 보았던가?》

장군님께서 다가오시며 물으시였다.

《예, 재봉대에 있을 때 호박을 삶아먹었는데 맛이 꿀처럼 달았습니다.》

《그래 꿀처럼 달았지…》

그이께서는 먼 하늘가에 시선을 돌리시며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물바께쯔를 가시고있는 안명숙에게 《명숙동무, 한가지 물읍시다.》라고 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동안 잡곡밥을 해서 구수한게 입맛이 좋았는데 요 며칠은 왜 하얀 백미밥만 하는지 모르겠소.》

너무 뜻밖의 말씀이여서 안명숙은 인차 대답을 올리지 못하고 공연히 걷어올린 팔소매만 어루만지였다.

《맨 백미밥보다 조나 콩 같은것을 섞으면 구수한게 참 맛이 좋습니다. 보리나 수수를 섞는것도 좋고… 먹기도 좋지만 원래 오곡밥은 약밥이라고 하지 않소.》

안명숙은 장군님의 뜻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오히려 그래서 인차 대답이 나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산에 있을 때 장군님께서는 어떤 음식이든지 작식대원이 만든 음식을 나무라신적이 한번도 없었다. 콩밥이면 콩밥, 통강냉이면 통강냉이, 지어는 낟알이 한알도 보이지 않는 산나물범벅을 받으시고도 매번 그 음식에 대한 좋은 점을 지적하시면서 맛있게 드시군 하였다. 어느 한때도 대원들과 구별되는 음식을 받으신적이 없었다. 특히 조국에 개선하시여서는 우리 혁명군은 예나 지금이나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해야 한다, 지금 우리 인민의 생활은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인민들이 조밥을 먹으면 우리도 조밥을 먹으면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씀하시군 하였다.

《사령관동지!》하고 안명숙은 자세를 바로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사령관동지의 뜻을 알면서도 저희들이 일을 잘못해서 그렇게 되였습니다. 꼭 잡곡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녀대원의 맑고 빛나던 눈에는 금시 물기가 어리였고 목소리가 약간 떨리기까지 하였다.

《아니요, 아니요.》하고 그이께서는 손을 가로저으시면서 송구한 자세를 취하고있는 녀대원의 대답을 부정하시였다. 《그런게 아니요. 동무들이 일을 잘못하고있다고 책망하자는것이 아니요. 동무들이 언제한번 우리의 생활규범을 함부로 어긴적이 없다는것을 내가 왜 모르겠소. 그저 이 며칠동안 흰밥만 끓인데는 꼭 무슨 사연이 있을것 같아 묻는거요. 그 사정을 알자는거요.》

얼마동안 사이를 두었다가 안명숙은 나지막하게 그러나 또박또박 명확하게 대답하였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전까지는 박원식동무가 장을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잡곡을 구하려고 사동장에도 가고 서성리도 갔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대평에나 원장에까지 나갔는데도 잡곡을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저도 요새 김좌현동무와 같이 장에 나가보았는데 갖추갖추 사낼수가 없었습니다. 잡곡이 혹간 있기는 하지만 입쌀과 별로 값이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 같은값이면 하고…》

《그렇소? 알만합니다.》 하고 그이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러시고나서 그이께서는 다시 의문스러운 어조로 친근하게 물으시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 마가을에 그렇게 되는지 알아본것은 없소?》

안명숙은 입술을 방싯 열기는 하였으나 종시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다시 마당을 거닐기 시작하시였다. 생각깊은 걸음으로 저쯤 쪽대문이 달린 담장끝까지 나갔다가 다시 이쪽 물뽐프가 있는데까지 오가기를 몇번이나 거듭 하시는것을 녀대원은 말없이 지켜보고있었다. 산에 계실 때는 오직 조국광복의 위업을 달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심려없는 날이 하루도 없더니 해방이 된후에도 역시 그대로 만가지시름을 안고계시는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해방이 된것으로 해서 온갖 시름을 잊고 기뻐서 춤추고있는데 오직 장군님께서만은 해방의 기쁨 그 리면에 겹놓인 온 겨레의 크고작은 모든 시름을 한몸에 지니고계시는것이다.

잡곡을 구하기가 왜 힘든가, 안명숙은 그 까닭을 알수가 없고 또 어떤 리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로 될것 같지는 않았다. 인적기가 있어 고개를 드니 대문안으로 김책이 급히 들어오고있었다. 함남도에 파견되여있는 김책이 최근에 얼마간 평양에 올라와 장군님 사업을 보좌하고있었다. 안명숙은 얼른 바께쯔에 물을 채워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김책이 마당에 들어서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기다리고계시였다는듯이 반갑게 맞이하며 점심을 어데서 했는가고 물으시였다. 김책은 돌아오는길에 사동국수집에 들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안동무가 기다리고있는데 빨리 점심을 하라고 권하시였다.

《정말입니다. 오늘은 사실입니다. 저 방동무가 보증할수 있습니다.》

김책은 웃으며 뒤따라온 운전수에게 손짓을 하였다.

《정 그렇다면 또 한번 속는셈치고 믿어봅시다.》하시며 그이께서는 활달한 걸음으로 승용차가 서있는 대문쪽으로 나가시였다.

《김책동무! 예정했던대로 토성랑으로 나가봅시다. 이제 인차 날이 추워지겠는데 집을 잃은 사람들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구식이긴 하지만 류선형으로 생긴 승용차는 경쾌하게 본정거리를 빠져 보통강쪽으로 달리였다. 김책을 옆에 앉힌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창을 통해서 거리풍경을 보시다가는 고개를 돌리군 하시였다. 밤이고 낮이고 분주히 뛰고있는 김책의 건강이 념려되시였던것이다. 오늘도 그는 신새벽에 석탄을 풀어볼가 해서 사동탄광에 나갔었다. 강기가 있어서 웬간한 피로는 좀체로 나타내지 않는 그였건만 요새는 그것도 정도가 지나쳐 눈확이 푹 꺼져들어가고 입술에 덕지까지 앉았다. 그러나 언제나 정기를 잃어본적이 없는 크지 않은 그 눈만은 변함없이 예리한 빛을 뿜고있다. 그이의 걱정어린 시선과 마주치자 김책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한가지 제기할것이 있습니다.》하고 조용한 기회를 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 말을 떼였다.

《어서 이야기하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띠우시며 다시한번 김책을 쳐다보시였다. 요새 어느 하루 번진적이 없이 사업토의를 하여왔건만 김책은 매번 긴요하고 적절한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그것은 대체로 정책작성에서나 방침을 제기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기여로 되군 했었다. 때문에 이번에도 그이께서는 성근히 응할 용의를 가지고 이야기를 재촉하시였다.

《평양철도국장으로 배치할 한명구기사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배치문제를 다시 고려한단말입니까?》

그것은 실로 뜻밖의 제기였다. 미소를 띠였던 그이의 얼굴이 금시 긴장되였다. 일제때 전기기사였던 아끼다공대출신 한명구를 평양철도국장으로 배치하자는데 대해서는 김책이 먼저 제기하였고 호상 신중히 토의한후 락착지은 문제였다.

《일부 사람들은 한명구기사를 철도국장으로 사업하게 하는것이 적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벌써 몇번이나 저에게 제기해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명구가 일제때 복무한 인테리라는것과 또 그것때문에 로동자들속에서 상당한 정도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있다는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설명한 김책은 고개를 돌려 김일성동지를 쳐다보았다. 그이의 얼굴에는 의혹의 그늘이 짙어가고있었다.

《그 문제는 이미 우리가 사전에 론의했던것이 아닙니까? 하긴 동무가 말한 그 사람들은 그때 없었으니까 혹시 리해가 미치지 못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까?》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선행한 고전가들의 모모한 로작들을 죄다 외워대면서 오히려 저를 설복하려 하고있습니다. 인테리를 혁명력량편성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부류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리론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철도국장 한명구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인테리 일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관점과 립장에 서야 하는가 하는 원칙적인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것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잠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알만합니다. 시간을 내서 그 동무들과 충분히 의견교환을 합시다.》

《다른 문제는…》하고 김책은 운전수의 등을 두드려 차를 좀 천천히 몰라고 주의를 주고나서 뒤를 이었다. 《지방에 보낸 정치공작원동무들이 급히 모임을 가져달라는 의견을 제기하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이쪽으로 상체를 돌리시며 물으시였다.

《떠나간지 이제 한달도 못되는데 왜 올라오자고 합니까. 그 동무들을 내려보내면서 년말경에 가서 총화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동무들도 그걸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내려가보니 생각던것보다 지방실정이 매우 복잡한 모양입니다. 저도 역시 함흥에서 그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시급히 결론을 받을것도 많고 자체로 해결하기 바쁜 문제도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안길동무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안길동무는 두번이나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곳 실정도 여전히 복잡하다고 합니다.》

《김일동무도 소식이 있습니까?》

《서면보고가 올라왔는데 매일반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신중히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말씀하시였다.

《그러면 한번 모이도록 합시다. 이제 곧 당창건을 위한 회의도 있는것만큼 거기에 참가할겸 올라오는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 제가 인차 련락하겠습니다.》

《그런데 김책동무! 인차 알아보아야 할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하고 그이께서는 김책을 쳐다보시였다.

김책은 정색해져서 귀를 기울이였다.

《이미 우리가 생각한바도 있었지만 오늘 안명숙동무와 잠간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곧 시장형편을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장마당형편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이께서는 식량이 들어오는 형편과 물가시세 그리고 시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동향과 정서도 알아보아야겠다고 하시였다.

《알았습니다.》

어느덧 자동차는 큰물이 지나간 흔적이 력력한 토성랑감탕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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