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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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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916회 작성일 20-05-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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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13

 

 

군단 최우익인 문등리벌판에서부터 걷기 시작한(차들은 물에 막혀서 더 전진할수가 없었다.) 최현의 일행이 63사담당지역인 어은산 좌측릉선으로부터 851고지를 거쳐 1052고지정점까지 오는데만도 무려 네시간이 걸렸다.

851고지에 오를 때부터는 겨끔내기로 쏘아대는 적의 포사격이 걸음길을 더욱 늦잡게 했다.

최현은 포탄이 터질 때마다 파렬지점이 가깝건 멀건 엎드릴것을 요구했고 잽싸게 엎드렸다가 일어날 때면 견장에 묻은 흙탕을 손바닥으로 훔쳐대군 하였다. 사실상 그것은 괜한 수고였다. 내리치는 비발은 1분도 안되여 그 흙탕을 씻어내기때문이다.

(도대체 뭘 하자는것일가?)

석사리초입에서 최현의 일행을 따라잡은 로병관은 물홈에 빠지거나 비옷자락이 나무가지에 걸려들 때면 이름할수 없는 불만에 증을 내며 입술을 앙다물군 하였다. 전선사령부 병기창고에 들렸다가 김웅의 불같은 독촉을 받고 황황히 뒤따라온 그였다. 텅 비다싶이 한 군단지휘부에서 최현의 일행이 문등리쪽으로 갔다는것을 알았을 때는 적의 땅크가 진출할수 있는 도로옆의 포진지상태를 알아보기 위한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최현은 포진지를 더욱 깊숙이 파라는 잔소리를 얼마간 하고는 곧바로 고지에 오르는것이였다. 무엇때문에 어데까지 가려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말도 비치지 않았다.

로병관의 출현에 대해서는 쓴외보듯 했다. 극상 한다는 인사말이 《그 차림으로 꽤 따를만 하오?》라는 물음이였다.

몸에 걸친 비옷과 장화를 보고 하는 말이였다.

아닐세라 그의 말대로 장화와 비옷이 거치장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으로 되였다. 장화속은 이미 석사리벌판에서부터 물이 차들었고 나무아지와 넌출들이 비옷자락을 끄잡아당겨 여간만 성화가 아니였다. 그런데다가 이따금 마주치는 최현의 눈길에서 《동문 무엇때문에 왔소?》하는듯 한 비웃음어린 빛을 보게 되니 심기가 더욱 뒤틀렸다. 한번은 꽤 잘 판 전호를 보고도 더 깊이 파라고 을러메고는 《동무넨 아직도 뛰여다니는 놀음을 그리워 하는게 아닌가?》하며 로병관을 언듯 보는데 마치 자기더러 들으라는 힐난처럼 받아들여져 속이 옹송그려졌다. 엎친데덮친격으로 황영학은 애당초 그를 보지조차 않는것이였다.

(하여튼 끝까지 따라가보자.)

로병관은 침하되는 기분을 살리기에 무진 애를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일을 놓고 후날 김웅이나 그 어떤 다른 상급에게서 추궁을 받을수 있다는것도 생각했다.

현재까지는 최현의 움직임을 놓고 아무런 타당성과 의미도 찾을수 없었다.

진지굴설정형에 대한 료해라 해도 63사구간은 이미 5차작전때 완비된것으로 새삼스럽게 돌아봐야 할 리유는 없는것이고 52사의 담당지역도 사단지휘관들의 보고면 족한것이였다.

적정료해라고 하면 더욱 맞지 않았다.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운무속에서 무엇을 알아본단 말인가.

이렇게 보면 전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한 일종의 시위행진이라고밖에 할수 없는데 먼곳에서의 포탄폭발에도 겁질린 자세로 엎드리는 행동을 두고 전사들이 무어라고 할텐가.

《왕별 단 아바이들도 포탄을 되게 무서워하더구만.》

이러한 말들은 전호에서 전호를 넘어 지휘관에 대한 불신을 낳을수 있다. 바로 이때문에 로병관은 첫 전투의 세례를 받을 때부터 자신의 행동에 신경을 썼고 태연자약한 지휘관의 풍모를 보여주기 위해 거울앞에서까지 미리 련습을 해두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사들에게 주는 영향도 영향이지만 어느 한발의 포탄이라도 일행을 명중시킨다면 군단도 사단도 머리 없는 몸으로 되지 않는가. 로병관은 이런 의견조차 내비치지 못하는, 아니 내비칠수 없는 자기자신이 무척 가긍스럽기도 하였다.

《에이, 땀깨나 뺐는데!》

52사 4련대장의 감시소로 들어선 최현은 비물이 줄줄이 흘러내리는 모자를 쥐여짜고는 통나무를 세벌로 겹쌓았다는 천정을 보며 실눈을 지었다.

《든든하구나.》

군단장이 내려오면 의례히 《결함》부터 지적받는데 습관되였던 4련대장은 최현의 흡족한 태도에 기뻐서 어쩔줄 모르다가 그가 담배를 꺼내는것을 보고 재빨리 라이타불을 붙여주었다. 지휘관들의 이런 《인사례절》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최현이지만 이번만은 례외로 기쁜 얼굴로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빨았다가 내뿜을 때는 눈이 아주 맞붙고말았다.

《좀 맹랑스러운 걸음같지 않나?》

최현의 뜻밖의 말에 로병관은 흠칫하고 놀랐다. 최현의 말은 63사 사단장에게 하는것이였지만 로병관에게는 자기의 속심을 여겨보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저의 사단에 토지분배를 더하려는것이 아닙니까.》

《그래, 그건 맞았어. 요즘 이 52사 어른들이 몹시 헐떡이거든, 한데 동무넨 어떻게 생각하나.》

최현은 63사 사단장이 데리고 온 두명의 경비중대 대원에게 눈길을 옮겼다.

《동무네도 여기까지 오며 보았겠지만 동무네 사단방어선도 설피지 않았나. 방어시 병사간 거리가 얼마더라.》

《15m입니다.》

한 병사의 말에 최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지, 한데 지금 동무네 구간의 전호엔 40∼50m에 한사람이야. 그건 어째 그렇다?》

《그건 편제인원이 모자라기때문입니다.》

《허, 맞단 말이야. 한데 동무네 사단장은 더 맡을걸 바라는데 이건 꽝포라고 들어야지.》

《아닙니다. 군단장동지, 저희야 늘 그렇게 싸우지 않았습니까.

적후투쟁때는 혼자서 한개 소대병력과 싸우는것이 보통이였고… 그래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항일유격투쟁때는 몇십, 몇백배의 적들과 싸우면서도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그래, 동문 사단장을 닮았구나.》

최현은 그 병사의 잔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고 4련대장에게 물었다.

《이쪽에도 포탄이 자주 날아와 터지던데 상한 사람은 없었소?》

《없습니다.》

최현의 말에 4련대장은 빙그레 웃음을 짓다가 정색해 대답했다.

《좀 이상스러운 포사격입니다. 엊저녁에는 제법 참호계선가까이 날아왔는데 오늘은 이곳저곳 갈겨대니… 무슨 놀음놀이 같기도 하고…》

《대구경포는 없었지.》

최현은 혼자소리하듯 말하고는 련락병을 찾아 배낭을 풀라고 했다. 든든히 배를 채운 다음 떠나자는것이였다.

산길을 걷는통에 다들 출출했던지라 버그러지는 웃음들을 감추며 왁새 개울목 넘겨다보듯 련락병의 손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배낭에서 나온다는것이 고작 참나무잎으로 싼 줴기밥 여라문덩이와 한개의 통졸임통뿐이였다. 그것을 본 4련대장이 바빠 난 기색으로 수선을 부렸다.

《군단장동지,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저희들이 얼떤 준비하겠습니다.》

《무스게 있기에?》

《팥밥에 고등어가 있고… 로획품 레이숀 두개가 있습니다.》

《채소는 어떤게 있고?》

《채소는 없습니다만 대용품으로 산나물을…》

《산나물은 채소가 아니라던가. 얼마나 장만했니?》

《장만까지야. 군단장동지도 보시다싶이 허리만 굽히면 맨 곰취에 참나물이 아닙니까.》

《잘들 논다. 이제 며칠안팎으로 이놈의 산들이 한꺼풀 벗겨진다는걸 모르나?》

최현은 꽥 소리를 지르고는 참모장을 돌아보았다.

《참모장동무, 매 사람당 산나물채취계획을 줘야겠소. 적어도 한달분정도 말이요.》

《여기 동무들까지 말입니까?》

《그렇소. 지휘관이건 전사건 몽땅 다 뜯어야겠소.》

군단참모장은 더이상 대꾸를 못했다.

로병관은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이제 당장 적들이 밀려든다는 태도로 전호요 탄약이요 하던 최현이 산나물채취를 운운한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최현의 입에서 또다시 불퉁그러진 소리가 터져나왔다. 4련대장에게 하는 말이였다.

《아까 말한 그 팥밥이란게 무스게니?》

따지듯 하는 물음에 4련대장의 두눈이 휘둥싯해졌다.

《그냥 팥밥입니다.》

《팥밥이야 팥밥이겠지. 한데 그걸 너네가 먹게 됐니?》

로병관은 기가 막혔다.

최현의 질문은 각기병환자들과 야맹증환자들에게만 공급하게 된 팥을 먹는다는데서 나온 추궁인것이다. 하지만 군단장을 생각해서 모처럼 보이려는 성의를 이렇게 무질러버릴수가 있는가.

52사 사단장이 보기 딱한듯 입을 열었다.

《군단장동지, 련대장동무도 야맹증인지 뭔지 하는것에 걸린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시를 했습니다.》

최현은 비웃는듯 한 눈길로 사단장을 보다가 4련대장에게 다시 물었다.

《너 산에서 싸울 때 야맹증에 걸린적이 있니?》

《없었습니다.》

《음 그래, 그랬지. 지금은 대감님이 돼서 그런게야. 곰취랑 산나물이랑 부지런히 뜯어먹었으면 그놈의 비타민결핍증이 덤벼들리 있니?》

《먹긴 먹느라고 했는데… 이 모양입니다. 나이탓인지.》

《그럼 군복을 벗어야겠구나.》

최현은 못 마땅한 눈길로 그를 보다가 주머니를 뒤졌다. 바지주머니에서 마르고 터진 추리 몇알이 나왔다.

《이걸 먹어라. 제꺽 나을게다. 최고사령부 추리니까.》

《네?!》

4련대장은 뜻밖에도 반죽 좋은 웃음을 지으며 추리를 받아들었다. 가벼운 웃음들이 터져나왔다.

최현은 약간 불깃해진 얼굴로 이마살을 찌프리고있다가 52사 사단장에게 물었다.

《동무네 사단에 그 비타민결핍이 몇사람이야?》

《정확한 수자는 장악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다들 전투장에서 쫓겨갈가봐 감추고있으니까요.》

《그래 지금 휴양소에 간 사람은 얼마나 되니?》

《휴양소야 페소시키지 않았습니까.》

《무스게라구?》

최현은 펄쩍 뛰였다.

《누가 그따위 지시를 했어?》

엄페호안이 쩡쩡- 울리였다.

로병관은 가슴이 섬찍해졌다.

경환자들의 치료보양을 위해 꾸려진 화선휴양소는 사흘전 김웅의 지시로 페소시켰다. 예견되는 적의 새로운 공격에 대처하여 전투력을 회복하지 못한 휴양생들은 병원에 이송시키고 웬간히 움직일수 있는 군인들은 전부 다 본위치에 돌아가게 했던것이다.

김웅의 그러한 조치를 조직집행한 당자는 로병관이였다.

군단참모장과 사단장들의 눈길이 일시에 자기에게 쏠린것을 느낀 로병관이 뭔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최현이 그를 보며 물었다.

《로동무, 우리 사람들이란게 한심하지 않소? 적이 덤벼든다 하니 다들 머리에 고장이 생긴것 같구만.》

최현은 로병관과 자기는 한통속이라는듯 웃어보이고는 참모장을 지릅뜬 눈길로 쏴보며 엄하게 말했다.

《오늘 저녁부터 휴양소를 다시 운영하게끔 해야겠소. 휴양소에 갔던 전사들은 물론 전반부대들에서 세세히 조사해가지고 병약자들은 다 보내야겠소. 4련대장도 가야지,》

《군단장동지, 전 이 추리만 먹으면 낫습니다.》

《음, 그럴수 있소,》

최현은 시치미를 떼고 밥들을 먹자고 했다.

로병관은 얼굴이 뜨뜻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사들까지 지켜보는가운데 전선사령부의 지시가 이렇소, 저렇소 하게 되였더라면 어쩔번 했는가, 휴양소문제는 저녁녘에 토론한다 해도 늦지 않을것이다.

최현은 교통호쪽에 있는 자동총수들한테부터 밥덩이를 나누어주게 했다. 사람수에 비해 밥이 모자란다는것을 안 그는 두 사단장과 4련대장에게는 후에 《자기것》을 타먹으라고 했다.

《사단장들이 이런 줴기밥을 먹는것은 위신상문제고 4련대장은 팥밥을 드셔야 할테니 기다리는것이 응당하지. 그렇지 않소?》

《옳습니다.》

4련대장이 볼부은 소리를 한통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최현이 유일한 통졸임통을 자동총수들에게 넘기는것을 본 4련대장이 미군 잠주머니와 전화선퉁구리가 쌓인 구석에서 로획품 레이숀 두개를 끄집어내였다. 떨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이 마주치는 소리가 울렸다.

《거기 뭣이 또 있지 않나?》

《저… 미국아이들의 위스키입니다. 한모금 마시지 않겠습니까.》

《고마운 소리군, 한데 건 어째 숨겨두고있나? 그따위건 죄다 바치게 되지 않았는가?》

최현의 말에 련대장은 기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장마철이여서 비젖은 나무들에 불을 붙일 때 그놈의것이 약으로 됩니다.》

《건 그럴듯 해.》

최현은 비주룩이 웃으며 레이숀함을 자동총수들에게 건네주고는 참나무잎에 싸인 밥덩이를 량손으로 꽉 눌러 떡모양을 만들었다.

발깃한 고추장이 새여나왔다.

《줴기밥은 이렇게 먹는게 멋이야.》

그는 방금전에 성을 냈던것은 가뭇 잊은듯 실눈을 해가며 밥을 씹었다.

레이숀함을 터뜨린 전사가 통안의 완두콩을 보고 《채소》라고 하며 들라고 권하자 최현은 군단장이라기보다 무슨 선전원처럼 정치학습제강의 글귀를 옮기며 한바탕 익살를 부렸다.

《난 그런건 안 먹어, 동무네도 비판적으로 먹어라. 듣자하니 그놈의 양코배기식품엔 모두가 빡 한다는데… 거기엔 100년간의 침략력사가 담겨있어.》

식사를 마치고난 최현은 담배를 꺼내다 말고 도로 넣으며 일어섰다.

《자, 이젠 떠나봐야지.》

그는 밖을 내다보다 말고 황영학을 찾았다.

《이 엄페부를 잘 봐둬라.》

《녜, 잘 봤습니다.》

비틀려진 대답이였다. 한데 최현은 그 말이 기꺼운듯 벌씬 웃었다.

교통호에는 사격자세를 갖춘 전사들이 적이 당장 밀려오기나 하는듯 나무아지 하나 가려볼수 없는 골짜기를 살피고있었다. 보매 《군단장일행》의 래림을 그 어떤 검열이나 전투발령과 결부시켜 《폭풍》을 일으킨것 같았다. 교통호바닥에는 물이 배를 띄울만치나 가득찼다.

최현은 혀를 찼다.

그는 직일기관총수와 감시병을 제외한 전원을 은페부에 들어가게끔 말하려다가 비에 젖다못해 아예 물자루가 된 모습들을 보고는 잔뜩 찌프린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뒤늦은 관심이라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는 가까이 갈 때마다 총을 가슴에 붙안고 차렷자세를 취하는 전사들에게 깍듯한 거수경례로 자기의 미안스러움과 《부탁》을 표시했다. 그 《부탁》이란 《꼭 지켜내겠지? 잘 싸워주오.》하는 내심의 부탁이였다.

얼마간 걷다가 구불구불한 전호길에서 시간을 너무 허비하는것 같아 전호턱으로 오르는 순간 52사 사단장이 다급히 말했다.

《군단장동지, 여긴 직사사격구역입니다.》

전호턱의 나무그루를 잡고 몸을 솟구치던 최현은 2∼3초가량 한 자세로 있다가 도로 내려서고말았다.

《그래, 그렇지.》

최현은 오늘처럼 우연한 포탄이나 탄알에 대하여 신경을 쓴적이 없었다.

전쟁의 운명과 관련된 중대작전을 앞에 두고 눈먼 파편이나 탄알에 자기든 누구든 쓰러진다면 어떻게 될텐가. 그야말로 허무하기 그지 없는 죽음일것이였다.

그가 군단참모장이며 포병사령관까지 데리고 전연전방에 나오기는 처음이였다. 지금까지 그는 주로 련락병이나 부관과만 전방을 돌아보는데 습관되여있었다.

전투계선에 나갈 때는 그곳 사단장이나 련대장의 대동도 거절하였다.

전장에서의 지휘관의 몸값을 잘 아는 그였고 또 그런 지휘관들의 안내와 설명 없이도 적아의 상태를 알아보는 안목을 지니고있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마음같아서는 군단후방부의 지휘성원들까지 데리고 나오고싶은 심정이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통해 작전의 어마어마한 륜곽과 가렬성을 그려본 그는 요란스러운 지휘일군들의 《행차》를 통해 전사들과 전투지휘관들에게 다가올 싸움의 중대성을 느끼게 하고싶었고 미구하여 쇠와 불의 광란속에 말려들 전선을 돌아봄으로써 군단내의 《사무관》들(최현은 전투장에 나가지 못하게 된 직급과 직종의 군관들을 사무관으로 치부하는데 버릇되여있었다.)에게 전투적기분과 정신적앙양을 심어주고싶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이 모든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리유에 불과하였다.

지금 그한테 군단참모장까지 이끌고 전호를 돌아보게 된 리유를 설명하라면 현재의 진지굴설정형을 료해하고 사단과 련대들의 분담구간을 새롭게 선정하기 위한 지대료해라고 할것이였다. 물론 이 문제 역시 어저께 소집하였던 군단군사위원회에서 합의본것으로서 현지에까지 와봐야 할 절박성은 없었다.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전선서부주타격》설과 《6군단기동고려》가 그로 하여금 이 길에 나서게 한것이였다.

(우리 군단력량만으로 막을수 없겠는가.)

김일성동지의 접견을 받은 순간부터 생각했던 이 문제가 굴뚝처럼 뻗쳐올랐던것이다.

물론 그는 전선서부의 주타격설을 믿지 않았다. 허지만 그에 대한 불안은 지워버릴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오면서 군단단독으로의 방어가능성을 찾아볼수 없었다. 시각적으로 보게 되는 텅 빈 포좌지들과 임자없는 돌출부들과 릉선들, 이빠진 공간처럼 큼직큼직 사이가 벌려진 소대와 중대의 방어진들은 출발시의 용단을 쑥 우무러뜨리고 말았다.

(내가 그동안 전선을 떠나있다나니 약질로 된것이 아닐가.)

그는 이렇게도 자신을 꾸짖어봤으나 암담한 좌절감만이 짙어질 따름이다.

실태는 여기가 주타격방향이 아니라 하여도 력량보강이 필요함을 보여주고있었다.

전쟁에서 린접과 종심문제는 전사로부터 고위지휘관에 이르기까지 전투적사기와 신심이 관건적문제로 되고있다. 전사들에게 있어서는 린접이 기본으로 되고있다. 자기옆에 있는 전투원들의 사격술과 용감성이 어떠한가, 또 그와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우며 자기옆의 전우가 쓰러졌을 때 그를 대신할 사람이 있는가가 힘과 용기의 절대적요인으로 되는것이다.

20m의 구간을 담당한 전사의 경우 그 옆의 전우가 희생되였거나 후송된다면 그 전사에게는 40m의 구간이 차례지며 그만치 상대하는 적의 수자는 곱으로 늘어난다. 이런 경우 용감한 전사는 버텨내지만 비겁한 전사는 퇴각신호만을 기다리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지휘관이라 할 때는 그가 설사 용감하나 뒤의 종심이 없고 지원해올 예비대가 없다면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여 종국적으로는 퇴각이 아니면 비장한 최후를 택하게 된다.

이 경우 중대와 대대로 보면 어느 한 고지나 참호를 잃은것으로 되지만 군단의 경우에는 지역을 의미하며 최현과 그의 군단으로서 볼 때는 이 계선만이 아니라 김일성동지의 말씀처럼 원산이북까지 내주지 않을수 없게 되는것이다.

《지도좌표 19에 5입니다. 》

참모장의 말에 최현은 건듯 정신을 차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지도좌표 19에 5라는것은 63사의 일부 구간을 5군단이 맡게 될 경우 63사가 이쪽으로 옮겨앉으며 52사와 린접을 형성할 지점이였다.

1211고지와 이어지는 릉선 하단의 이 계곡은 아름드리 삼송과 참나무로 빼곡이 차있었다. 그 나무들은 뿌연 안개와 뒤섞여 거뭇한 장벽처럼 보인다. 최현은 왼쪽다리 무릎관절을 주무르고 선 63사 사단장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로혹산전투때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63사 사단장은 전쟁만 아니라면 어느 료양소에 가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였다.

《여기를 잘 봐두오.》

최현은 그에 대한 측은한 감정을 누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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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사단들의 배비변경은 아직까지 군단내 몇몇 지휘관들만이 알고있는것으로서 사단장들에게도 정식명령으로 하달하지 않았다. 63사 사단장은 최현의 엄엄한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흔연한 태도로 말했다.

《저희가 큰 지주가 되라는것이군요.》

《그렇소. 동무네야 방어명수들이고 52사야 뜀박질밖에 하지 못하지 않소.》

최현의 말에 제일 크게 반응을 보인 사람은 황영학이였다.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황영학은 뜀박질이라는 소리에 잔뜩 눈을 지릅뜨고 최현을 보다가 군단장의 눈길이 자기에게 미치는것을 보자 먼 산발을 보는 흉내를 내였는데 비물이 흘러내리는 목언저리에서 바줄같은 혈관이 살아올라 펄덕거렸다.

(그래, 임자더러 들으란 소리야.)

최현은 자기 말에 두눈이 덩둘해 선 자동총수들에게는 한눈을 찡긋해보였다.

《동무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 말이 맞지? 52사를 <급보로 사단>이라고 한다지.》

이 말에는 52사 사단장과 4련대장도 면구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눈길을 내리깔았다.

(자기가 지휘하던 사단을 이렇게 두들기다니-)

로병관은 1차남진때까지만 해도 최현이 52사 사단장이였음을 상기하였다. 더구나 최현은 이번 작전의 주공방어지대를 52사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이처럼 시까스르는가. 일종의 《격장법》인가.)

로병관의 얼굴을 스쳐본 최현이 히죽이 웃었다.

《로동무, 이젠 63사 사단장이야 없어도 되지 않겠소?》

로병관은 억이 막혔다. 63사 사단장을 여기까지 데리고온것이야 최현의 결심이였는데 무엇때문에 자기한테 묻는것인가. 하지만 그는 착실한 하급의 자세로 《네, 그래야 할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난 간무봉까지 함께 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 다리가 문제거든. 점심도 굶겼고…》

최현의 군단단독방어의 구상속에는 63사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6군단을 받지 않을 경우(아직까지는 주관적인 욕망이지만) 63사는 사태리와 문등리의 적을 막는 한편 1052고지와 1211고지에 대한 지원력량으로 되여야 할것이였다. 이렇게 볼 때 63사는 전투의 가장 어려운 모퉁이나 결정적인 전투의 대목에서 전세를 뒤바꿀 예비대의 역할도 해야 되는것이였다. 물론 예비대라고 하면 말이 맞지 않는다. 군단종심을 형성하는 예비대는 어디까지나 제2제대로 있는 77사가 있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최후의 판가름, 어느 한 전선에 파구가 뚫렸을 때 쓰게 될 마지막력량이였다.

63사 사단장과 52사 4련대장을 돌려보내고난 최현은 착잡한 생각속에 걸음을 옮겼다.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오늘까지 최현은 방어전투가 질색이였다. 부득이한 조건에서 방어전을 한다 해도 그는 부단한 역습으로 때리는데만 익숙됐고 또 그렇게 하기를 좋아했다. 38경비려단장으로 전선서부를 맡았을 때도 그한테는 《방어》라는 관념이 없었다. 송악산, 은파산 등지에서 벌어진 방어전투도 종당에는 공격으로 나가는 전투로 되게끔 했으며 적후투쟁때는 유격전의 온갖 경험을 살려 여러가지 기습과 역포위로 적을 제압소멸하였다. 이에 따라 그밑의 지휘관들도 한자리에서의 방어가 아니라 기습과 역포위에 의한 공격에 버릇되였다. 대표적인것이 52사였다. 부대란 그 지휘관의 습벽과 기질을 적잖게 닮는 법이다. 얼마전까지만도 최현은 이에 대해 일종의 긍지를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대우산을 내준데도 그러한 《공격》버릇이 작용했다고 생각하게 되였고 여기에는 자기자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러면서도 그가 1052고지와 1211고지방위를 52사에 맡기려 한것은 《자기사단》이였다는데도 있었다. 그는 52사의 지휘관들과 구대원들을 거의나 알고있었고 그들에게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빨찌산식》담과 배짱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동시에 그들도 자기라는 인간을 필요한만큼 파악하고있을것이였다.

전쟁에서는 지휘관들이 밑의 사람들을 잘 알고있는것과 함께 아래사람들도 지휘관을 정확히 리해하고 믿는것이 중요한것이다. 하여 그는 병사들앞에서 모독으로 될 《급보로 사단》이라는 말도 꺼리낌없이 하였으니 이것은 그로 볼 때 52사 사단장과 4련대장, 특히는 황영학에게 보내는 주의신호인 동시에 애정의 발현이기도 하였다.

1211고지정점까지 오르면서 포병화력배치와 적정을 료해하며 차페식방어에 대한 몇가지 의견을 주고 난 최현은 지금까지 모두가 잊고있던 무선수를 찾아 군단과 무전결속을 하게 하였다. 오각별 안테나를 바로세우고 채찍처럼 후려갈기는 비발속에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던 무선수가 무전결속이 이루어졌다고 하자 단 두마디로 된 송신문을 타전하게 하였다. 《소백수가 묻는다.》

군단의 대호도, 52사의 대호도 아닌 《소백수》의 물음이 날아가자 2분도 안되여 《령》이라는 답전이 날아왔다. 전선서부에 대한 공격이 계속된다는 대답이였다.

최현은 한동안 량미간을 찌프린채 무선수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걸음을 다그쳐야 하겠소.》라고 하고는 지금까지 걷던 전호가가 아니라 메돼지들의 식량구입통로였을 지름길을 탔다.

1211고지정점에 오르자 그들의 앞에는 끝없는 안개의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그속에서 톱날처럼 기복을 이룬 릉선들과 산봉우리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최현은 가장 치렬한 격전장으로 점찍은 산아래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서도 보이는것은 안개뿐이였다. 그 안개속에서는 서늘한 랭기와 독기가 풍겨오는것 같았다. 왼손켠으로는 965고지가 아리잠직하게 보였다.

어데선가 처량하면서도 구슬픈 곡조의 노래소리가 울려왔다. 최현은 귀를 강구다가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저건 무스게요?》

《가칠봉의 적들이 축음기를 틀어놓고있습니다. 》

대답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 최현은 그가 락동강가에서 자기 생명의 은인으로 되였던 정치부대대장임을 알아보았다.

《매일 저런 노래요?》

《네, 그저께부터 축음기소리가 울리는데 저 노래는 <신라의 달밤>입니다.》

《옛날 장량의 수법이구만. 초패왕의 군대를 녹여내던-》

《저흰 개짖는 소리로 알고있습니다.》

《그럴테지.》

최현은 가칠봉과 이어진 돌출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정치부대대장이 그를 막았다.

《군단장동지, 저긴 안됩니다. 》

《몇사람이 나가있나?》

《한개 소대가 배치되였습니다.》

《한개 소대가 있다면 무서울게 없구만.》

최현은 롱말로 받으며 그냥 걸었다.

깊숙이 파진 교통호가 마음에 들었다.

《여긴 뭐라고 부르오?》

《말안장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병사들이 지은 이름입니다.》

《비슷해,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해야겠소.》

최현은 축음기소리가 점점 가까와지자 이마살을 찌프렸다. 앞으로의 전투를 그려보게 되였던것이다.

1211고지보다 고도상으로 훨씬 높은 가칠봉이야말로 이 말안장을 내리찌르는 비수로 될것이였다.

그는 황영학을 둘러싸고 그동안의 반가움인지 걱정인지를 쏟아놓는 군인들을 죄다 굴안에 모이게 했다. 이들모두가 대우산비극의 체험자들이라는것과 이곳이 가장 어려운 모퉁이라는것으로 가슴이 무거웠다.

《동무넨 대우산을 왜 떼웠다고 생각하오?》

부러 엄한 표정을 짓고 하는 몰풍스러운 그의 물음에 전사들은 대뜸 울상이 되였다.

개중에는 로병관과 황영학을 스쳐보며 죄스러운 기색으로 입술을 깨무는 군인들도 있었다.

최현은 방금 지나온 교통호쪽에서 《섯, 누구얏》 하는 나지막한 물음에 이어 뭔가 오가는 말들이 있고 두명의 군인이 어슴비슴 다가오다가 굳어져 서는것을 보며 한결 누긋한 어조로 말을 떼였다.

《난 말이요 그 첫째가는 책임이 동무네 지휘관들, 특히 여기 있는 련대장동무에게 있다고 봤소.》

가벼운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거부의 반응이였다. 최현은 그에는 전혀 무감각인듯 계속했다.

《그래서 련대장을 해임시키기로 했댔소. 사실 해임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어떻소? 동무들생각엔…》

로병관이 마른 기침을 했다. 최현은 전호벽에 몸을 붙이며 실눈을 지었다.

《말들 해보라구. 련대장의 눈치만 보지 말고.》

그의 말에 황영학은 어색한 웃음을 빼물고 어딘가 안개낀 골짜기를 내려다보았고 로병관은 《뭐, 괜한 롱말이요.》하는 자세로 전사들에게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순간 챙챙한 목소리가 울렸다.

《군단장동지, 말씀드릴만 합니까?》

보초병의 단속을 받았다가 온 두명의 군인중의 한 중사가 애모쁜 눈길로 최현을 보았다. 낯은 해쓱하게 질려있었다. 진지굴설작업을 하던 이곳 군인들과는 차림이 달랐다. 자동총을 메고 예비탄창을 찬 앞에 미식단도와 수류탄 두개를 차고있었다.

《말하오. 한데 동무는 어디 소속이요?》

《옛, 2대대 1중대 1소대 3분대장 중사 리수복, 포로호송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가던 길입니다.》

《가만, 포로라니?》

《저의 중댄 서화원통지구에서 우회전투를 벌리던중 괴뢰군 부대대장을 생포하였습니다. 군단장동지의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리수복의 대답이 여기서 뚝 끊어졌다.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눈에 눈물이 핑 고이는것이 알렸다.

최현은 로병관과 황영학이 은근한 반가움과 놀라움속에 그와 그뒤에 딱 붙어선 애어린 전사를 돌아보는것을 보며 호기심이 부쩍 커졌다.

《중사동무, 기탄없이 말하오.》

《말씀드리겠습니다. 》

방금전의 용기는 어데 갔는지 푹 잦아든 소리였다.

《군단장동지, 대우산은 저희들의 잘못때문에 떼웠습니다. 대우산을 잃은것을 교훈 삼아 저흰 보다 각성하고 잘 싸워야겠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인발지뢰를 밟지 않았더라면 또 포화속을 그냥 뚫고 나갔더라면 점령했을것입니다. 그때문에 련대장동지는 선두돌격조의 맨 앞장에서 달렸습니다. 련대장동지한테는 잘못이 없습니다. 처벌하려면 저희들전체를 처벌해주십시오.》

《여하튼 돌격중지명령이야 련대장이 내리지 않았는가.》

《그건? 련대가 전멸되기때문이였습니다.》

《전멸되건 뭐건 점령하라면 점령해야지.》

리수복의 고개가 맥없이 수그러졌다. 모두가 얼어붙은듯 굳어진 속에 입술을 떨기도 하고 총부혁을 매만지기도 하고… 원망과 슬픔어린 눈길들도 있다.

최현은 무근한 진통을 느꼈다. 괜히 이런 화제를 꺼냈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 다른 동무들도 이 중사동무와 같은 생각이요?》

마음이 조밋한 가운데 우선우선한 낯빛으로 물었다. 찬물을 끼얹은셈이니 무슨 대답이 나오랴 하는 위구심때문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네, 그렇습니다.》하는 폭발적인 대답이 있었다.

《군단장동지, 저 동무의 심정이자 우리의 심정입니다. 앞으로 퇴각명령을 받아도 퇴각하지 않겠습니다.》

한 특무상사가 주먹까지 쳐들며 목메여 웨쳤다.

최현은 코언저리가 시큰해졌다.

《동무네가 옳소. 장군님께서도… 동무들처럼 말씀하셨소.》

이 순간 그는 자기 말이 장군님말씀과는 좀 다르다는것도 또 자기가 황영학에게 엄중경고를 준것도 잊었다. 모두들 꽉 그러안아주고 싶은 심정뿐이였다.

《동무네한테 한가지 부탁하자구.》

그는 자기를 다잡으며 떨리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여기에 더 나오지 못할것 같애. 군단장이란 뒤에서 호통만 치는 사람이거던. 그래서 하는 부탁인데 여길 잘 지켜달라는거야. 이건 군단장의 명령으로 들어도 좋구 나많은이의 부탁으로 들어두 좋아.》

최현은 눈앞이 뿌잇해지는 속에 한손을 쳐들어보이고 물찬 교통호바닥을 어루쓸듯 걸음을 옮겼다. 목 메인 웨침의 대답들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황영학이 그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군단장동지, 한가지 제기할만 합니까?》

《무언데…》

《특별히 하실 말씀이 없다면 전… 이 길로 서화원통계선에 나가있는 중대들에 나갔다오겠습니다.》

《저 동무들과 함께?》

최현은 리수복이라는 중사와 그 옆의 전사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지금 그곳 동무들이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있습니다. 》

《거기에 두개 중대가 있지?》

《네, 련대주력이 새로운 진지를 완전히 차지할 때까지 방차대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금 적들의 포위를 헤치고있습니다. 》

《알고있소. 한데 저 동무들은 포로호송을 왔다고 했던가?》

《네. 》

《그랬지. 》

최현은 리수복과 그 곁에 선 전사를 손짓해 불렀다. 군단장을 처음으로 보는듯 두눈이 휘둥그래 다가온 애어린 군인은 《전사 진갑수》 하고 힘차게 보고하다가 최현의 뒤에 선 로병관을 보고는 슬며시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놈한테서 무얼 좀 얻어들었나?》

《네, 좀 들었습니다. 그놈은 아군진지들을 확정하기 위해 파견된 전투정찰대를 인솔하였답니다. 그리고 굉장한 정보를 가지고있다고 했습니다.》

《그 굉장한 정보란거는?》

《그에 대해선 굳게 침묵을 지켰습니다. 련대나 사단지휘부에 가서 말해줄 내용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정보를 빼낸 다음 자기를 쏴 죽일가봐 그런것 같았습니다.》

리수복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군단참모장이 전화기가 있는 엄페부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올 땐 어느 길로 왔소?》

《어방치기로 걸었습니다. 965고지에 이르러 2련대 동무들을 만나 거기서부터는 산을 타지 않고 이포리쪽 도로를 타다가 매봉쪽으로 난 지름길로 련대지휘부까지 갔습니다.》

《한데 돌아간다면서 여기는 어째 올라왔소?》

《저희가 떠날 때 련대소식이랑 두루 알아가지고 오라고 해서… 련대부에서 제가 잘 아는 82㎜박격포 소대장동지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뵈웠다는걸 알고 그리루 갔댔습니다.》

《그 사람 김철규 아니야?》

《네, 그렇습니다.》

리수복의 눈이 빛났다.

《그래 그 사람한테서 무슨 얘길 들었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옥체만강하시구 귀중한 조국의 강토를 한치도 내주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는걸 들었습니다. 그리구 모임에도 참가했습니다.》

《모임이라니?》

《저희들이 그곳에 가보니 63사와 77사의 전사대표들까지 와있었습니다. 그렇게 매일이다싶이 찾아온다는데… 모임에서는 좋은 토론들이 있었습니다. 박격포소대동무들은 자기네가 뒤걸음질하는 경우엔 우리더러 자기들을 쏴제끼라고 했습니다.》

《허허,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냈구만.》

《다들 장군님의 말씀을 전해 듣구 윽윽했습니다.》

《윽윽했다?!》

최현은 가슴이 훗훗하게 달아올라 고개를 돌렸다. 황영학과 눈길이 마주치자 웃음을 보였다.

《여보, 이런 전사들을 데리고 대우산을 잃었다는게 말이 되오?》

그는 깊은 정을 안고 리수복을 돌아보았다.

《이제 좀 있으면 어둡겠는데 중대를 꽤 찾아갈수 있을가?》

《네, 문제 없습니다. 이 진갑수동무가 산세를 보고 길을 찾는데는 귀신입니다.》

최현은 무엇때문인지 시종 게면쩍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있는 전사에게 눈길을 줬다가 그의 신발을 여겨보게 되였다. 흙탕물에 잠긴 신발을 통신선으로 비끄러맨데다가 여러군데 터져나갔고 한쪽은 앞코가 쩍 벌어져있었다. 리수복의 신발도 매한가지였다.

《동무네 신발들이 다 이 모양이요?》

리수복과 전사는 난처한 얼굴로 최현과 황영학을 엇갈아볼뿐 대답을 못했다.

이때 엄페부에 갔던 참모장이 헐썩거리며 달려왔다.

《군단장동지, 좀…》

그는 리수복과 진갑수를 물러나라고 손짓하며 최현의 귀바투 입을 대고 속삭임조로 말했다.

《괴뢰군 부대대장에 대한 심문결과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놈은 괴뢰 5사소속인데 사단전체에 전투발령이 내리고 추가식료품과 탄약이 지급되였다고 합니다. 놈들의 사단에서는 하루이틀안으로 이 일대의 고지를 타고앉는다고 한답니다.

군단정찰에서 알아본것과 같은 내용이지만 추가식료품에 술이 들어있다는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오늘 저녁 아니면… 래일일수 있습니다.》

《오늘 밤은 아니요.》

최현은 단마디로 잘랐다. 그러나 은근히 마음이 켕겨들었다. 그는 황영학과 뭐라 말하고있는 리수복을 찾았다.

《동문 지도를 볼줄 아오?》

《넷, 전 얼마전까지 중대장 련락병이였습니다.》

《그럼 됐구만. 련대장동무한테 동무네 중대의 정확한 위치와 가는 길을 대드리오.》

《이제 함께 가면 안되겠습니까?》

황영학이 물었다. 최현은 언짢게 머리를 저었다.

《련대장이 앞으로 가는가 마는가 하는건 두고보기요. 중대의 차후 방어계선을 찍어주오.》

그리고는 전호턱에 닁큼 올라앉아 꽁꽁 동여맨 신발끈을 풀며 진갑수를 불렀다.

《신발이 몇문이지?》

어름어름 그앞에 다가온 진갑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뻔히 보다가 최현이 신발 두짝을 다 벗어 탁탁 터는것을 보고는 두눈이 화등잔처럼 되였다.

최현은 싱긋 웃어보였다.

《바꾸자구. 밑지지 않아.…》

《군… 군단장동지, 전 일 없습니다.》

《이건 명령이다.》

진갑수는 울상이 되였다.

《전 그 신발이 맞지도 않습니다. 36문입니다.》

《그래.》

최현은 맹랑한 기색이 되였다가 리수복을 찾았다.

《중사, 신발을 벗어라.》

《저… 저도 36문입니다.》

《거짓말 말아.》

최현은 눈을 뚝 부릅떴다. 그때 두명의 자동총수가 달려와 저마끔 신을 벗었다.

리수복과 진갑수는 자기들앞에 세컬레의 신발이 놓이자 물기가 그렁한 눈으로 최현과 황영학을 엇갈아보았다.

《빨리 신발들을 벗고 맞는걸 골라신어라.》

결국 리수복과 진갑수는 신발을 벗게 되였다. 리수복한테는 최현의 신발이 맞았다.

최현은 리수복이 신었던 군화를 한참이나 여겨보다가 나무통에 대고 요란스레 두들겨댔다. 흙과 모래가 떨어져나가니 어데 하나 온전한것 없는 구멍투성이의 넝마였다.

《싼다루구나.》

최현은 벙글써 웃으며 그 신을 신었다.

그의 련락병으로부터 군단참모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 신발을 신겠다고 했으나 최현은 들은둥만둥이였다.

황영학이한테는 눈까지 부라렸다.

《너네 후방부련대장한테 처벌을 준다고 해라.》

리수복이 그랬던것처럼 통신선으로 신발을 비끄러맨 다음 몇발자욱 걸어보았다. 리수복이를 보자 눈을 끔뻑해보였다.

《중사, 나와 발이 같구나.》

《군단장동지, 고맙습니다.》

《가거들랑 전사들한테 말해라. 이 군단장이 제 구실을 못해서 고생을 시킨다고…》

최현은 손을 한번 휘젓고 돌아섰다.

로병관은 모두의 눈길이 자기에게 쏠리는듯싶어 황급히 고개를 떨구었다.

서화원통계선에서의 싸움은 대우산을 잃게 된데서부터 치르게 된 혼전이였다.

최현은 서희령골의 965고지에 이르렀을 때 또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 사이에 비가 멎고 뽀얀 연무속에 들쑹날쑹한 산봉우리들이 드러났는데 져가는 해의 빛발속에 린제-이포리를 련결하는 외줄기도로가 실오리처럼 보였다.

《여기가 중요해.》

최현은 누구에게라없이 말하고 황영학에게 시선을 주었다.

《동무가 여길 맡아야겠소.》

《군단장동지, 여긴 77사담당이 아닙니까?》

52사 사단장이 의아해 하는 말에 최현은 싱그레 웃었다.

《77사가 여기에 그냥 있을수 없지. 그리고 황영학이네는 차후임무수행이 있을 때까지 여기서 굴을 파야 돼, 저 아래 놈들의 땅크들이 덤벼들 도로엔 포좌지도 만들고…》

《군단장동지!》

황영학의 눈에서 부시불같은것이 번쩍했다.

《저희 련대를 공병련대로 하자는것입니까?》

《그래 차후임무수행이 있을 때까진 공병이 돼야 돼. 그것은 보통공병이 아니야. 61사 14련대의 사명산전투를 알지? 그때 그들이 만들었다는 참호식엄페호를 발전시켜 깊숙이 파란거야.》

《처벌작업치고는 가벼운거군요.》

《처벌?!》

최현은 웃었다.

《그래, 나로선 처벌이다. 하지만 그 과업은 장군님께서 너를 믿으시여 맡겨주신거다. 한번 시범을 창조하라구 하시면서… 네 밸통과 지식이 은을 낼것이라구까지 하셨다.》

최현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이번에는 바람개비가 되지 말아라.》

황영학의 두눈이 불시에 흐려졌다.

《더 해주실 말씀은 없습니까?》

《무스걸 더 말하겠니. 칭찬이야 할게 없는게구 비판은 그만큼 받았으면 배부르겠지. 구체적인 명령은 오늘 밤에 떨어질게다.》

《한가지 청원할것이 있습니다.》

《무언데?》

《후방부련대장에 대한 처벌을 취소시켜주십시오.》

《음, 그거… 그건 한번 해본 소리야.》

최현은 웃음어린 눈길로 황영학으로부터 주위의 지휘관들을 둘러보다가 로병관에게 시선이 미치자 웃음을 지워버렸다.

로병관은 가슴속에서 뭔가 뚝 부러져나가는감을 느꼈다.

(나에 대한 불신은 풀리지 않겠구나.)

최현은 황영학이와 헤여지면서 또 한번 로병관의 가슴에 못박히는 소리를 했다.

《영숙이가 문안을 전하더라. 한데 너의 그 공주님이 너무 고와지길래 내 한마디 해줬다. 얼뜬 녀석들이 덤벼붙지 않게 단단히 철조망을 치고있으라고.》

서희령좌측릉선을 걸쳐 간무봉에 오를 때 그들은 뜻밖에도 3군단장 류경수와 그가 거느리고 온 일행과 만나게 되였다.

《최현동지!》

《삼손아.》

옛 빨찌산련대장과 중대장과의 상봉은 감격적이였다.

류경수가 최현의 옹골찬 몸을 휘잡아안고 한바퀴 빙 도는것을 볼 때 로병관은 눈굽이 시큰해졌다.

그들의 사이가 부럽기 그지없었다.

류경수는 2군단지역의 일부를 떠맡을데 대한 김일성동지의 명령을 접하고 떠난 길이라고 했다.

이날 저녁 군단지휘부에 돌아온 최현은 로병관과 군단참모장, 부군단장들을 부른 자리에서 군단 자체력량으로 방어작전을 할데 대한 새로운 결심을 발표하였다.

《나는 우리한테 오는 6군단을 본위치에 가도록 최고사령부에 건의하자고 합니다.

그에 따라 6군단과의 공동작전을 전제로 계획했던 방어배치진을 새롭게 짜야 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모두에게 있어서 마른 하늘의 벼락처럼 울렸다. 로병관은 자기 귀까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가 오늘 새벽 김웅으로부터 받은 과업은 바로 최현에게서 이런 결심을 내리게 하기 위한것이였다. 이렇게 볼 때 《녜, 좋습니다.》라고 하면 모든 일은 무난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이빠진 공간지대가 무수한 전방을 돌아본 뒤끝의 그로서는 《녜.》하는 대답을 할수 없었다. 이상스럽게도 최현이 황영학에게 하던 《바람개비가 되지 말아라.》고 한 말이 귀전에 살아올랐다.

(두번다시 흔들릴순 없다.)

최현은 로병관과 참모장이 시종 침묵을 지키자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와 조자룡의 고사까지 펼쳐놓았다.

요해처에서는 한명의 장수가 수만대적을 막아내는데 우리 인민군병사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1211고지는 일부 막능당의 요해처이니 군단력량만으로도 능히 막을수 있다.

앉을념을 않고 방안을 오락가락하며 말하던 최현은 군단참모장앞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감사납게 따져물었다.

《왜 입을 닫아매고있소. 겁이 나시오?》

《타당성을 찾을수 없습니다.

전선서부에 대한 주타격설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한것이 아닙니까?》

《전선서부가 주타격인가 아닌가 이따위는 말을 하지 마오. 거기도 주타격이고 여기도 주타격일수 있는것이 전쟁이요.》

《군단장동지.》

로병관은 최현이 혼란상태에 빠져있다고 판단했다.

《저로서 말할수 있는것은 우선 군단장동지가 좀 더 깊이 생각했으면 하는것입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6군단을 이리로 기동시키게끔 하신것은 있을수 있는 온갖 정황을 다 내다보시고 조처하신… 대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니만치 그에 이의를 표시하는것은…》

《가만!

그러니 내가 장군님의 뜻을 어긴다 그 말이요?》

로병관은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수 없었다.

이 며칠사이에 얻어진 교훈으로부터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대한 무조건성을 말한다는것이 최현을 걸고드는것으로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군단장동지, 다시 생각해보는것이 옳을것 같습니다.》

참모장까지 이 말을 하자 최현은 한숨을 지었다.

《옳소. 다 옳은 말이요.》

그리고는 새삼스럽게 밝은 기색을 보이며 로병관에게 물었다.

《로동무, 동무가 전호에 있다 생각하기요. 그래 동무 혼자서 한개 소대쯤 막아내지 못하겠소?》

로병관은 왜서인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거야… 막을수 있겠지요.》

《음, 그렇지. 동무가 한개 소대를 막는데 우리 전사들이야 더 말할게 있소.》

최현은 그의 말이 로병관에게 모욕적으로 들리리라는것도 잊은듯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었다.

밤빛처럼 흐려진 얼굴이였다.

《내가 이 자리에서 동무들에게 한가지 부탁할것이 있습니다. 만약 이 최현이가 장군님뜻을 어기는 사람같다면 가차없이 쏴제껴버려달라는것입니다. 장군님뜻을 저버리는 최현은 이미 최현이 아니니까.》

《군단장동지!》

누군가의 항변하듯 하는 웨침에 최현은 숱진 눈섭을 꿈틀하며 손을 저었다.

《나는 장군님의 짐을 함께 나눠메자는것이요. 좀 힘들겠지만 우리만을 생각지 말고 전반전선을 생각해보자는… 더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누구도 말이 없자 최현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난… 더 다른 의견이나 반대가 없다면 동의하는것으로 믿겠습니다.》

이날 밤 최현이 올려보낸 무전문에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답신은 짧았다.

《알겠다. 그에 따른 군단장결심지도를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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